그가 나에게 말하지 않은 것
로라 데이브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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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그가 나에게 말하지 않은 것』은 결혼한 지 14개월 밖에 안 된, 아직도 신혼의 단꿈에 젖어 있는 주인공 해나가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출근한 줄로만 알았던 남편이 남겼다는 쪽지를 누군가로부터 전달받게 되면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이 쪽지에 적힌 글은 짧고, 남편이 남긴 의미를 파악하기에는 해나는 남편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 쪽지에는 "당신이 보호해줘"라는 한 줄뿐이다. 무엇을 보호하라는 뜻인지, 무슨 일을 하라는 의미인지 전혀 파악이 어려운 해나에게 다음 행동을 어떻게 취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남편이 남긴 한 줄의 메시지에 담긴 숨겨진 의미를 되짚으며 그동안 미처 말하지 못했던, 철저히 숨길 수밖에 없었던 남편의 비밀을 추적해나가기로 결심하기 전까지는. 이 소설은 이처럼 한순간에 완전히 뒤바뀐 삶의 여정 속에서도 결코 놓을 수 없는 가족에 대한 사랑과 신뢰, 헌신과 선택에 대한 매우 깊은 울림과 통찰을 형상화함으로써 보여준다. 뭔가 어두운 사건 속으로 들어가며 해나가 보여준 가족에 대한 사랑과 신뢰는 독자들에게도 큰 호평을 받아 출간 즉시 아마존 베스트셀러 종합 1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며 단숨에 화제의 중심에 섰다. 이 '로맨스 미스터리'는 1년 만에 130만 부 이상의 판매를 기록하는 등 올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로맨스 미스터리로 평가받았다.

 


 

머리가 새하얘졌을 해나는 간신히 정신을 수습하고 사랑하는 남편 오언에게서 예상치 못한 뜻밖의 메모에서 누굴 보호하라는 말인지 직감적으로 알아낸다. 무척이나 당혹스러웠고 두려웠지만, 해나는 자신이 누구를 보호해야 하는지 정확히 직감한다. 바로 오언의 딸 베일리였다. 어렸을 때 비극적인 사고로 엄마를 잃은 열여섯 살의 베일리는 청소년기 그 또래 아이들이 그러하듯, 아빠의 새 아내인 해나와는 그 어떤 관계도 맺고 싶어 하지 않은 채 벽을 쌓아두고 있었다. 그래서 해나는 늘 베일리와의 소통에 애를 먹어 왔다.

하지만 그 뒤로, 낯선 꼬마아이에게서 받은 노란색 리걸 패드 종이에 적힌 짧은 메시지를 본 뒤로는 모든 것이 달라진다. 아무리 필사적으로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 남편 오언. 갑자기 FBI에 체포된 남편의 상사 소식이 뉴스를 통해 들려오고, 예고도 없이 소살리토에 있는 집으로 미 연방수사국 수사관들이 들이닥치면서 해나는 자신의 남편이, 자신이 알고 있던 사람이 아니었음을 빠르게 깨닫는다. 2년 4개월 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자신이 안다고 믿어왔던 남편은 누구이며, 베일리가 알고 있던 아빠는 누구인가? 어쩌면 오언의 진짜 정체와 그가 사라진 이유를 밝혀줄 열쇠는 베일리가 쥐고 있는지도 몰랐다.

 

 

해나는 진실을 찾아 나서기로 한다. 해나와 베일리는 미처 알지 못했던 오언의 조각난 과거를 한데 합쳐 나가면서 새로운 미래를, 두 사람 모두 전혀 예상치 못했던 엄청난 미래를 감당해야 함을 깨닫게 된다. 오언은 왜 늘 목숨보다도 사랑한다고 말해왔던 아내와 딸을 두고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걸까? 그가 해나에게 전하고 싶었지만 결코 하지 못한 수많은 말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지금까지 자신이 알고 있던 모든 상황이 진짜가 아님을 알게 된 순간, 송두리째 흔들리는 인생 앞에서 해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많은 궁금증을 독자들에게 전달한 이 소설은 미국에서 출간과 동시에 독자들의 입소문과 탄탄한 스토리에 힘입어 결코 “눈을 뗄 수 없는 전개”와 “가슴 아픈 감동과 반전”이라는 평과 함께 그야말로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소설답게 해나는 하나씩 미지의 진실에 하나씩 접근해 가면서 독자들이 원하는 원칙과 합리성에 결코 위배되지 않는 점이 돋보인다. 짧은 메시지만 남긴 채 실종된 남편의 숨겨진 진실을 찾아나서는 한 여성의 아슬아슬한 서스펜스이자 의붓딸을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진짜 모성애를 알아가는 가슴 절절한 휴먼 드라마에 독자들이 출간 1년 만에 무려 9만 7,000여 건이 넘는 어마어마한 리뷰 수를 기록, 호응과 응원이 증명된다.

 


 

이 소설은 원래 2012년도에 처음 집필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뒤 여러 번의 고민과 수정을 거듭하면서도 결코 중단하거나 놓을 수 없어서 무려 10년 만에 탈고한, 정말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숙성하고 완성해낸 역작임을 알 수 있다. 그만큼 『그가 나에게 말하지 않은 것』은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독자들이 책장을 펼치는 순간, 시작부터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속도감 있는 전개와 긴장감, 참신하고 섬세한 감정 묘사, 곳곳에 숨겨진 아찔한 반전과 흡입력 등이 어우러지는 한 가족의 이야기는, 마지막 순간 충격적이고도 가슴 아픈 장면을 마주하게 될 때까지 독자들로 하여금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

이 소설은 그간 영미권에서 영화 및 텔레비전에 판권이 팔린 여러 편의 장편 소설을 집필하며 필력을 다져온 저자 로라 데이브를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시킨 '결정적' 역할을 한다. 이 책은 남편의 행방과 흔적을 추적해나가는 긴박한 현재의 이야기와 남편이 나에게 남긴 기억의 파편을 재조명해보는 과거의 이야기가 교차되는 구성이지만, 결코 느슨해지지 않는다. 이 소설이 가진 매력이다. 단숨에 빠져드는 진정성 있는 스토리의 힘과 매우 치밀하게 깔린 복선과 강력한 플롯, 끝까지 예측할 수 없게 하는 반전의 묘미는 ‘단 한 장의 페이지도 버릴 게 없다’는 평이 나올 정도로 실감난다. 독자들을 강력하게 끌어당긴 힘이다.

 


 

무엇보다 이 소설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단순히 ‘추리·미스터리’ 혹은 ‘서스펜스·스릴러’라는 장르로 국한하거나 규정하기 힘든, 애틋한 로맨스와 가슴 뭉클한 가족애(부성애와 모성애)를 매우 복합적으로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읽고 나면 그 어떤 로맨스 소설보다도 안타깝고 슬프다는 것을, 그 어떤 가족 소설보다도 더 마음 찡하고 감동적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은 또 한번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된다. 어쩌면 오늘날 미국 사회에서 가장 선망하는 가족의 모범적 예를 보여주는 것 아닌가 싶다. 그런 내용을 잘 담아 매우 빠르고 재미있게 읽히는 몰입의 페이지 터너를 자랑하면서도 메시지나 여운만큼은 결코 가볍지 않은 소설이다. 이 책에 대해 수많은 독자들이 감탄하고 열광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으로 독자는 생각한다.

살다 보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자신했던 삶에 불쑥 예기치 않은 불청객이 찾아와 인생 전체를 뒤흔들 때가 있다. 그것은 어쩌면 배우자의 불륜일 수도 있고, 부모로부터의 버림일 수도 있으며, 남편이 남긴 쪽지 한 장일 수도 있다. 내가 잘 안다고 확신했고 믿었던 나의 가족이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님을 깨달았을 때, 사랑하는 사람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남편이 남긴 말 한마디에 담긴 의미를 끝까지 놓치지 않고자 한 주인공 해나를 통해 결혼과 가족,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그 특별하고 위대한 사랑과 신뢰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그 속에서 발견하는 기적 같은 희망을 다시금 온전히 되새겨보는 데에도 이 소설은 힘을 줄 것이다.

 


 

베일리는 기억의 공백을 아빠에게 들은 이야기로 채웠다. 당연한 일이었다. 누구나 그런 식으로 잃어버린 기억을 채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기억이 어린 시절의 추억이 되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거짓말을 한다면, 그 이야기들로 기억의 공백을 채운 나는 어떤 사람일까? 오언처럼 거짓말을 했다면?

오언은 누구일까? 자기가 잘 안다고 생각하고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사라져버린다면, 두 사람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여전히 진실이라고 믿지 않는 한, 자신이 신기루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내가 믿었던 사랑이 거짓이라면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모든 것이 거짓이라는 것인데, 그 같은 거짓들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 거짓들을 어떻게 끼워 맞춰야만 그 남자가 완전히 사라지는 걸 막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주어야 그 남자의 딸도 자기가 완전히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있을까?(p.210)

 

“베일리, 당장 여기서 나가야 해. 이미 싼 짐만 챙겨서 나가자. 어서 가야 해.”

하지만 호텔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베일리는 더는 그곳에 없었다. 베일리가 사라졌다.

“베일리?”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베일리에게 전화를 걸려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려고 전화기를 찾았다. 하지만 곧 내가 전화기를 부숴버렸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나에게는 전화기가 없었다. 복도로 달려 나갔다. 청소 카트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재빨리 카트를 지나 엘리베이터로, 층계로 뛰어갔다. 베일리는 없었다. 그 누구도 없었다. 베일리가 간식을 사러 호텔 바에 갔기를 바라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로비로 내려갔다. 호텔 식당으로, 스타벅스로 달려갔다. 베일리는 두 곳 어디에도 없었다. 그 어디에도 없었다.(p.319~320)

 


 

저자 : 로라 데이브(LAURA DAVE)

참신한 캐릭터, 섬세한 감정 묘사, 깔끔한 필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 베스트셀러 작가다. 《800개의 포도(EIGHT HUNDRED GRAPES)》와 《첫 번째 남편(THE FIRST HUSBAND)》을 비롯해 미국과 해외에서 호평을 받고 베스트셀러가 된 책을 여러 권 집필했다. 그녀의 작품은 18개 국가에 번역 출간되었으며, 이 중 총 5권이 영화 및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 제작된 바 있다. 가장 최신작인 《그가 나에게 말하지 않은 것(THE LAST THING HE TOLD ME)》도 현재 리즈 위더스푼의 제작사 헬로 선샤인과 디즈니의 20세기 텔레비전이 참여하는 제니퍼 가너 주연의 애플TV 신작 시리즈로 제작되고 있으며, 직접 드라마 각색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스포트라이트〉, 〈퍼스트맨〉, 〈더 포스트〉 등으로 에미상을 수상한 바 있는 영화감독인 남편 조시 싱어(JOSH SINGER)와 함께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에서 산다.

 

역자 : 김소정

하루의 반을 책을 읽으며 보내고 싶다는 꿈을 간직한 번역가다. 대학교에서 생물학을 전공했고 과학과 역사를 좋아한다. 꾸준히 동네 분들과 독서 모임을 하고 있고, 번역계 후배들과 함께 번역을 공부하고 있다. 실수를 하고 좌절하고 배우고 또 실수를 하는 과정을 되풀이하고 있지만, 꾸준히 성장하는 사람이기를 바라며 되도록 오랫동안 번역을 하면서 살아가기를 바란다. 《남아 있는 모든 것》, 《휠체어를 탄 소녀를 위한 동화는 없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생물학》, 《길 위의 수학자》, 《사과는 떨어지지 않는다》, 《프리티 씽》, 《아홉 명의 완벽한 타인들》, 《커져버린 사소한 거짓말》, 《허즈번드 시크릿》, 《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 외 다수의 책을 번역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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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시대 리토피아 소설선 4
방서현 지음 / 리토피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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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작품 『좀비시대』는 얼마 전 '열품'을 일으킨 드라마 속의 좀비를 먼저 떠올리게 한다. 제목만 보고 책을 선택했다면 제목과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제목에서 나오는 좀비는 노동자들이 '살아 있는 시체'를 연상시킨다는 의미다. '좀비 시대'란 제목을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 소설은 풍자소설이고 사회 고발 소설이다. 좀비(Zombie)란 '살아있는 시체'를 말한다.

시사상식사전을 살펴보면 서인도 제도 원주민의 미신과 부두교의 제사장들이 마약을 투여해 되살려낸 시체에서 유래한 단어라 한다. 영화에서는 1932년 벨라루고시의 〈화이트좀비〉가 좀비를 다룬 첫 작품이며, 조지로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을 기점으로 해서 〈좀비오〉, 〈바탈리언〉과 같은 수많은 아류작들이 탄생했다고 이 사전은 설명을 덧붙인다. 좀비가 영어에 처음 등장한 건 1838년으로 당시엔 zombi로 표기되었으나, 1900년대에 'e'가 추가되어 오늘날의 zombie가 되었다고 한다. 좀비는 이후 디지털 기기에 푹 빠져 외부 세계와 절연된 사람은 ‘디지털 좀비(digital zombie)’, 장기 보관을 위해 방사선 처리(irradiation)를 한 식품은 ‘좀비 푸드(zombie food)’라고 파생어를 생산해내며 확대해석되었다고 한다. 좀비의 역사가 꽤 오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얼마 전 일어난 '좀비 열풍'의 원인을 알게 되면 이 소설이 말하는 『좀비시대』의 의미에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다.

 


 

『인문학은 언어에서 태어났다』란 책에서 저자 강준만은 문강형준의 「왜 ‘좀비 열풍’이 부는가?」를 인용했다.(2014. 12. 8) "좀비의 기원은 아이티의 부두교 흑마술로 알려져 있다. 일단의 흑마술사들이 사망 상태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약을 사람들에게 먹여 ‘죽였’다가 다른 약으로 나중에 ‘살려’내어, 환각상태에 빠진 이들을 농장의 노예로 부렸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처럼 좀비는 삶과 죽음의 권리 자체를 박탈당한 채 영원한 노예가 되어버린 자들의 이름이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1960~70년대 전성기를 맞았던 좀비 서사에서 좀비가 흔히 노동자 계급 출신으로 묘사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자유롭게’ 노동력을 팔면서도 사물로 변해버린 노동자의 형상은 좀비와 닮았다. 자본주의하의 노동자는 동시에 소비자이기도 하다. 소비하기 위해 노동하고, 노동하기 위해 소비하는 끝없는 순환 속에서 좀비는 또한 쇼핑몰을 배회하는 소비자로 그려진다. 쇼핑몰은 해방감을 선사하며 자본주의 체제의 생존을 보장해주는 또 다른 억압의 공간이다. 그 속에서 좀비는 여전히 노예다.······그런 점에서 좀비는 현대인의 거울상이다. 좀비를 뜻하는 ‘살아 있는 시체’라는 표현이 애초에 니체가 인간을 묘사했던 말에서 온 것이 의미심장한 이유다.”

 


 

이 두 명의 시사평론가들은 좀비 열풍을 새로운 노예 노동자의 출현이라는 노동사회적 현실을 설명하기 위해 좀비 열풍을 진단하고 있다. 이 소설 『좀비 시대』의 저자 방서현이 소설에서 그리고 있는 노동 현실을 고발하기 위해 풍자적으로 '좀비 시대'란 제목을 붙인 것으로 이해된다.

이 소설은 이미지 광고에 감쪽같이 속아 학습지 회사에 들어간 연우와 수아를 통해 '노예 노동'의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은 이십 대 젊은이들로 경제적인 문제로 인해, 꿈을 접거나 혹은 잠시 내려놓고 현실 세계에 뛰어든다. 하지만 자본의 세계는 그들이 꿈꾼 세계와는 거리가 멀다. 그들이 보기에 현실 속의 사람들은 이상하다. 갑자기 이상한 세계에 놓인 듯한 느낌이다. 현실 속의 사람들은 인간이 아닌 좀비가 되어 있다. 이들 좀비는 자신들과 똑같은 좀비가 될 것을 요구한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자본 창출을 위해 좀비 바이러스를 전염시켜려 한다. 저자는 학습지 방문교사의 이야기를 통해 시대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우리 시대가 인간성을 상실한 '좀비 시대'임을 선언한다. 인류애 대신에 돈과 권력이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채 아니, 감염된 그 사실도 모른 채 살아가는 좀비 시대라는 비유적 표현을 썼다.

 


 

지금 좀비는 우리 나라 인터넷에서 부정적인 의미로 인기를 누리는 단어가 되었다. 앞서 인용한 『인문학은 언어에서 태어났다』에서 강준만 저자는 〈조선일보〉(2013년 3월 19일)의 “최근에는 국내 인터넷 환경을 설명하며 ‘좀비’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소위 ‘좌좀’(좌익좀비), ‘우좀’(우익좀비)이라는 조어가 그 예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고 쓰고 있다. “좀비는 기본적으로 떼를 형성하고, 무뇌(無腦)이며, 무한 증식한다. 온라인에서는 거침없는 내용의 게시물을 올리는 전사이지만, 막상 현실의 오프라인에서는 전혀 힘을 쓰지 못하는 소심한 사람들과도 같다.

문화평론가 이명석 씨는 ‘인간성을 잃어버린 채 떼 지어 다니면서 인간을 사냥하는 좀비는 온라인의 익명성을 이용해 하나의 이슈에 몰려드는 키보드 워리어(전사)와 닮았다’고 했다. 〈뉴욕 타임스〉는 또 〈워킹 데드〉 방영 당시 ‘현대인이 무방비로 접하는 인터넷과 미디어가 바로 현대의 좀비’라고 보도했다.” 당시 2013년 3월 셋째 주말(15~17일) 국내 개봉 영화 흥행 1위는 좀비를 소재로 다룬 외화 〈웜 바디스(Warm Bodies)〉였다고 지적한다. 1990년대 이후, 세기말적 상상력은 대중문화의 강력한 한 축이었다. 공산주의를 유토피아로 착각했던 현실사회주의의 붕괴, 핵 공포와 방사능 유출, 테러, 지진 · 쓰나미 등 자연 · 인공 재난 등이 반복되면서, 이런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에 가속도가 붙었다는 게 지배적인 해석이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 등 좀비 영화의 대부로 불리는 미국의 조지 로메로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현존하는 모든 재난이 곧 좀비’라면서 ‘좀비 영화는 사람들이 이 재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을 그려낸 것’이라고 했다. 2011년의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북한의 핵 위협도 이런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의 뿌리가 되고 있다.······어쩌면 좀비와 전염병 텍스트의 유행은 인간의 탐욕에 대한 역설적 경고일지도 모를 일이다.”

 

 

좀비 열풍은 사실 20세기 말 미국의 신자유주의 학파와 맥이 닿아 있다. 신자유주의 학파는 미국 시카고대학의 프리드먼 교수를 중심으로 하는 경제학파이다. 이 학파의 주장은 합리적인 경제운영을 기하고 물가상승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가격기능을 부활시키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으로 정부 활동보다는 민간의 자유로운 행동을 중시한다.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란 국가권력의 시장개입을 비판하고 시장의 기능과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중시하는 이론이다.

1970년대부터 케인스 이론을 도입한 수정자본주의의 실패를 지적하고 경제적 자유방임주의를 주장하면서 본격적으로 대두되었다. 케인스경제학은 제1차세계대전 이후 세계적인 공황을 겪은 많은 나라들의 경제정책에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였다.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가들은 케인스 이론을 도입한 수정자본주의를 채택하였는데, 그 요체는 정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소득평준화와 완전고용을 이룸으로써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것이다. 케인스 이론은 이른바 '자본주의의 황금기'와 함께하였으나, 1970년대 이후 오일쇼크 등으로 세계적인 불황이 다가오면서 이에 대한 반론이 제기되었다.

장기적인 스태그플레이션은 케인스 이론에 기반한 경제정책이 실패한 결과라고 지적하며 대두된 것이 신자유주의 이론이다. 시카고학파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은 닉슨 행정부의 경제정책에 반영되었고, 레이건 행정부 때 이른바 '레이거노믹스'의 근간이 되었다. 소련이 무너지는 계기가 되었고, 우리 나라에도 본격적으로 도입돼 김영삼 정부 때 '세계화'의 국제 정세 변화에 따라 추진하다 급격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에 결정적 타격을 입히는 'IMF 외환 위기'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 책 뒷 부분에서 고명철 교수(문학평론가, 광운대)는 「간접고용과 중간착취, 그 디스토피아와 좀비들의 묵시록」이란 해설을 통해 "한국문학사에서 노동문학이 한국 민주주의와 함께 논의되고 그 문학적 실천에 혼신의 힘을 쏟았던 적이 있었다"고 전제하고 "방서현의 장편소설 『좀비시대』는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 아래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새로운 고용 구조 속에서 엄습하는 새로운 유형의 노동 착취에 따른 노동의 구조악과 행태악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 소설 『좀비시대』는 우리 시대의 노동의 적나라한 문제를 예각적으로 파헤치고 있는 바, 비록 장편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교육사업의 경제활동을 통해 학습지 시장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중간착취와 노동 억압에 대한 현장보고서라 해도 손색이 없다."고 평가하고 있다.

 

저자 : 방서현

 

충남 논산에서 자라고 목원대학교 국어교육학과 및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오랫동안 글쓰기 수련과 깊은 사색을 해왔으며, 2022년 계간 리토피아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현재, 무지개와 같은 글을 쓰고자 고향 놀뫼에 둥지를 틀고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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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고 - 불안과 기만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조숙의 지음 / 파람북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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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숭고』를 읽으려면 '숭고', '숭고미', '숭고의 미학'에 대한 개념 정립이 먼저일 것 같다. 미학에서, 숭고란 위대함을 나타내는 용어로, 물리적, 도덕적, 지적, 형이상학적, 미적, 정신적, 또는 예술적인 것을 포함한다. 이 용어는 특히 계산, 측정 또는 모방의 가능성을 넘는 위대함을 나타낸다는 것이 사전적 풀이다. 그러나 숭고란 단어를 백과사전에 찾아 들어가면 훨씬 깊고 풍부한 의미를 들여다볼 수 있다. 세계미술용어사전에 따르면 미적 범주의 하나로서 보통 좁은 의미의 ‘미’와 대립되는 개념으로 쓰인다. 대상이 인간을 압도하는 크기 또는 힘을 갖는 경우, 소위 미적 형식은 상실되며 처음에는 그 형식과 내용의 길항(拮抗)으로 인해 불쾌감을 느끼지만 곧 그런 느낌이 사라지면 유한한 감성을 매개로 무한한 것을 표현하려고 한다.

그럼으로써 오히려 인간의 생명 감정이 자극되고 역감(力感)이 높아져 대상에 대한 경외, 정서적인 경악이나 황홀경, 즉 넓은 의미로의 ‘미’의 감정을 낳게 된다. 전형적인 것으로서는 해돋이나 바다와 같은 숭고한 자연(칸트Immanuel Kant), 비극적인 행위의 도덕적 신념(쉴러Friedrich von Schiller) 또는 초기의 인도적, 모하메드적, 유태, 기독교적 시와 신비주의 속에서의 신의 임재(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가 언급될 수 있다. 후기 고대의 논문 『숭고에 관하여Vom Erhabene』(수도-롱기누스Pseudo-Longinos) 이래로 숭고의 개념은 미학의 확고한 구성성분이 되었으며, 18세기와 19세기에 들어서 체계적으로 완성되었다. 철학과 미학적 시선으로 보는 숭고는 굉장히 복잡하고 난해한 아름다움으로 일반 대중에게 다가설 수 있다.

 


 

이 책은 조각가 조숙의가 자신의 예술적 지향을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낸 예술론이다. 저자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주관하는 가톨릭 미술상 본상을 수상하고 한국여류조각가회 회장을 역임한 중견 조각가이며, 현재 인천 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인간의 내면에 깃든 신성과 숭고의 미학을 탐구해오고 있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현대과학의 눈부신 성과는 인간의 내면은 파편화되고 정신성을 훼손하는 부작용을 낳았다는 점을 부각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멀어지고 신과 인간의 관계 또한 불편해졌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물신주의는 우리 모두를 알게 모르게 속물적 존재로 전락시켰다. 저자의 생활철학이자 예술관이라고 할 수 있는 '숭고의 미학'이 소중하게 다가오며 빛을 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가 문명의 척도로 여기고 있는 과학기술이 우리의 삶을 충만하고 윤택하게 해주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우리는 결코 포기하는 일이 없다. 기대를 넘어서 확고한 믿음으로 자리 잡고 있기까지 하다. 이 믿음은 실상 물질에 대한 미신이자 맹신에 지나지 않는다. 기술의 진보가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며, 우리의 존재의 가치를 실현해 줄 것이라는 착각은 오래 앓아온 현대인의 고질병이다."고 강조한다. 삶을 진정으로 가치 있게 하는 숭고한 인간은 고귀한 영혼과 관련되어 있으며, 그 앞에는 수많은 장애물이 깔려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예술하는 사람을 '숭고한 인간', 예술을 숭고미를 지향한다는 자신의 예술론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그의 이런 생각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맥'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독자는 예술가도 아니고, 철학가도 아닌 입장에서 그의 작품을 평하기도 어렵고 그의 작품에 내재된 그의 예술혼이나 감각을 읽어낼 수도 없다. 이른바 문외한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 책의 서평은 그의 숭고의 미학이나 그의 예술혼, 작품론 등은 모두 저자의 주장에 따라 하나씩 배우는 심정으로 이해해가는 과정임을 미리 밝힌다. 그의 예술에 대한 생각부터 들어본다. 그는 「서문」에서 우리의 삶은 그 자체가 하나의 충체적인 예술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아가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깊은 내면에 해결되지 않은 상처와 아픔의 가시를 안고 살아간다. 예술은 무언가를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아픔과 갈등을 필연적으로 받아들이면서 화해의 길을 모색하며 경직되는 것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싶었다. 아니 단 한 사람에게라고 더 알리고 싶었다." 이것이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한 이유다. "인간 지성에 바탕을 둔 인문과학이 아무리 인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수평적인 차원만을 설명해 줄 수 있을 뿐이다. 그의 존재가 본래 어디서부터 창조되고 유래했는지 또 궁극적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지 하는 인간 존재의 핵심을 꿰뚫는 질문에 대해서는 전혀 답을 주지 못한다. 그러기에 철학을 비롯한 제반 인문과학은 인간에 대한 단편적인 이야기들만 제시할 수 있을 뿐이다. 피상적인 삶에 몰린 현대인에게 우선 '고요한 시간'을 가질 것을 제안하며, 누구든지 갈 수 있는 이 고요의 길을 통해서 만나게 되는 숭고한 인간의 내면세계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저자의 작품 세계와 연결된 이 같은 주장은 저자의 작품들을 읽고 이해하는 데 결정적 단서를 제공하리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저자는 더 구체적인 설명을 내놓는다. 저자는 우리 사진이 내면 깊숙이 안고 있는, 이유 없이 당하는 가시와 같은 '고통의 문제'에 주목했다고 털어놓는다. 그에 따르면 우리 인간이 겪게 되는 아픔과 고통의 문제는 인생 여정에서 누구나 겪게 되는 희로애락 가운데에서도 절대 피해갈 수 없는 가장 절실하면서도 인간 구원과 관련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이 신비로운 감정인 고통의 문제가 놀랍게도 예술작품에 있어서만은 매우 중요한 가치로 등장한다. 인류가 사랑한 예술작품에는 반드시 여러 형태의 고통이 아로새겨져 있고 동시에 숭고한 정신을 드높인다."고 전제하고 "인간의 깊이를 다루는 작품은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게 하고, 상처 입고 고통 당하는 내면의 나와 화해의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가까운 예로서 내 작품 〈자신 안을 쳐다보다〉가 그렇다. 자신을 향한 시선은 결국, 고요의 통로를 통해서 깊은 침묵 안에서 자신의 근원을 되찾고, 고귀하고 숭고한 자신을 회복하여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한다. 나아가 조화로운 자기조절 능력과 타인(대상)과의 상호작용, 창의적인 소프트웨어를 발전시키는 바탕이 된다. 삶을 진정으로 가치 있게 하는 숭고한 인간은 고귀한 영혼과 관련되어 있으며, 그 앞에는 수많은 장애물이 깔려 있다. 다소 추상적인 단어들이 많아 한 번 읽고서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내용이지만 한 번만 더 읽어본다면 비로소 그의 작품세계와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저자의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고,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가는 결정적 문장이 바로 이것이다. "나는 창작하는 사람으로서 자연스럽게 창작하는 주체를 중요하게 여긴다." 저자는 이 때문에 이른바 광활하고 아름다운 대자연을 접하게 되면 습관처럼 창조주를 찾아 찬미하고 싶은 생각에 이른다. "또한 내가 좋아하는 베토벤의 피아노곡 〈비창〉을 들으면서 참으로 훌륭한 연주자에게 진정으로 경의를 표하지만, 이 곡 안에 들어가 감상하면서는 곡의 원주인, 바로 베토벤을 떠올린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는 말도 설득력을 갖는다. 저자는 신비로운 인체를 탐색하는 인체 조각의 세계도 마찬가지이다. 이토록 섬세하게 설계된 신비로운 인체는 바로 '영적인 몸'이라고 말한다.

저자의 예술론은 서서히 정점을 향하여 오른다. "인간은 정신적이고 영적이며 신비로운 존재이면서도 문젯거리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존엄한 존재임이 틀림없다. 존엄하면서도 문젯거리이기도 한 '아이러니'야말로 인간 존재를 관통하는 '숭고한 인간'을 보여준다. 이렇듯 신비로운 세상을 창조한 인격적인 사랑의 '창조주'에 관해서도 이 책에 썼다고 밝힌다. 조각가인 저자가 글쓰기를 시작하게 된 것은, 운둔에 가까운 생활에서 오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다고 「서문」 첫 문장에서 이미 토로한 사안이다. 작가가 작업이 끝나고 텅 빈 작업실에서 느끼는 사람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은, 유대감의 상실과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것이라고 여겨진다는 게 저자의 집필 이유를 한 가지 더하는 것 같다.

 


 

"아도르노와 료타르의 미학 관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둘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점이 있지만 하나의 공통점이 발견되고 있다. 아도르노에 있어서 예술작품은 사유될 수도 묘사될 수도 없는 것의 가상적이고 감각적인 현실이었다. 그는 현대의 문화를 중의성이라는 개념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중의성(重義性) 속에는 미적이고 의사소통적인 잠재력을 해방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과 문화가 사멸하게 될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다.

아도르노가 미적 체험의 무아적 황홀경의 계기를 유토피아적 계기로 해석하는 한 그의 사상은 중의적이라고 할 수 있다."(고영복, 「료타르의 숭엄성의 미학」, 1996) 독자는 갑자기 미학에 관심을 둔 것은 이 책의 제목이 '숭고'이고, 이 숭고에 대한 미적 추구는 오랫동안 논란이 거듭된 점 때문이다. 독자는 이들로부터 배운 것은 숭고함에 대한 견해차뿐만 아니라 '숭고미'에 다가가는 접근의 차이이다. 저자도 이미 이런 논의나 주장에 대한 충분한 인지 아래서 자신의 작품을 관통하는 '숭고'에 대해 자신만의 이론을 정립하였기 때문이라고 이해된다.

그의 작품들은 이를 더욱 설득력 있게 해주는 실체적 증거로서도 충분하다. 저자는 조각가이다. 그의 조각예술론을 여기에 적어본다. "구상 조각에 있어서 인체라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모델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러한 인체 조각을 흔히 판에 박은 듯 정형화된 형태의 전형으로 간주하기도 하는데 이는 그만큼 인체 조각이라 것이 어렵다는 말이기도 하다. 인체 조각에 관한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이른바 누드의 포즈부터가 조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인간적, 심리적 표현성을 그 속에 담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격정적인 몸짓이 아니더라도 절제된 포즈의 입상이나 좌상은 보다 내면화된 감정의 표출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p.99) 이후 이 책에 실린 작품 감상이나 해석은 이 책에 실린 저자의 예술론과 해설에 따라가면 결코 후회하지 않을 독서가 됐음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독자는 믿는다.

 


 

‘고통당하는 인간’은 언제나 피해갈 수 없는 중요한 중심 화두이다. 예술가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어느 정도의 애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고통의 문제를 쉽게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의 생물학적 구조나 심리상태, 사회생활, 심지어 영혼의 문제까지 진지하고 성실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당하는 고통을 간과한다면 인간의 가장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를 빼놓는 것이다.(p.134)

 

저자 : 조숙의

 

조각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대학원에서 「현대조각에 있어서 성(Holiness)과 실존(Existence)의 문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1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서울, 제네바, 뉴욕 등에서 17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창작활동과 더불어 20여 년간 교직 생활을 했으며, 2000년부터 인천 가톨릭대학교에 재직하면서 가톨릭 예술의 본질을 탐색하는 연구를 진행해오고 있다. 2007년 『월간조선』에서 주관하는 ‘평론가 선정 현대작가 55人’에 선정되었고, 2015년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주관하는 ‘가톨릭 미술상 본상’을 수상했다. 한국 조각계의 중심에 굳건히 자리매김해오고 있는 한국여류조각가회 회장을 역임했고, 가르멜수도회 제3회원으로 2021년 은경축을 지냈다. 현재 고요한 창작 생활과 연구 활동으로 다음 세대의 꿈나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주요 작품 및 소장처로는, 제네바 UN 대한민국대표부 소녀상, 과천시민회관 로비 벽면 부조 무동답교놀이, 2005년 서울 가톨릭대학교 개교 150주년 기념 조각(신학대학, 혜화동), 맨발 가르멜수도회 영성센터 청동문과 성미술 작품(명륜동 한국본부), 일만 위순교자현양동산 위로의 주님상(인천 강화도), 나자로마을 나자로상(의왕시), 겟세마니 피정의 집 십자가의 길(강원도 인제), 성가소비녀회 인천관구 성가족상, 성당 성미술 작품,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정하상기념경당의 가족상, 정약종 등 5人의 초상 조각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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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주는 행복, 기쁘게 유쾌하게 - 딱 남들만큼 특별한 산중냥이의 사계
보경 지음, 권윤주 그림 / 불광출판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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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고양이가 주는 행복, 기쁘게 유쾌하게』는 산사에서 고양이와 함께 살면서 느끼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자연의 발견으로 이어지는 수행 스님의 일상이 결코 따분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사실 저자 보경 스님은 고양이와 살게 된 인연을 고양이가 좋아서는 아니다. 몇 해 전 어느 겨울날 길고양이 한 마리(냥이)가 산중암자에 사는 스님 앞에 불쑥 나타났다. 그날 이후 낯선 고양이와 어색한 동거를 시작한 스님은 사람과 닮은 듯 다른 고양이의 생활을 지켜보며 존재와 삶을 생각하고 그로부터 얻은 교훈을 글로 적어 왔다. 이미 그 첫 기록이 『어느 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바라보기’와 ‘기다리기’가 중심 이야기였다.

이어서 『고양이를 읽는 시간』이란 제목으로 출간된 두 번째 책에는 고양이와 무더운 여름을 함께 나며 터득한 ‘느리게’ 그리고 ‘느긋하게’ 살아가는 지혜를 담았다. 이번에 출간된 『고양이가 주는 행복, 기쁘게 유쾌하게』는 세 번째 책으로 앞선 두 책을 잇는 보경 스님의 고양이 에세이 시리즈 마지막 편으로, 매 순간을 기쁘고 유쾌하게 살아가는 법을 성찰한 글이다. 독자는 앞서 발간된 두 책을 읽어보지 못해 이 책을 읽고 이해하는데 약간의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당연한 기우였다. 오히려 더 깊은 사색과 자연에 대한 성찰은 물론, 생명을 귀중하게 보호하는 불교 수행자로서의 마음이 전해져오는 것 같아 더 감동적이었다.

 


 

저자인 보경 스님과 냥이가 함께 지낸 지 햇수로 6년째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스님이 십수 년간의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산중암자로 돌아온 2017년 겨울 저녁,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은 굶주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꼬리 없는 누런 고양이에게 우유와 토스트를 건넨 것이 이 특별한 인연의 시작이었다. 산중암자에 불쑥 찾아든 야지의 고양이는 이제 스님의 거처인 송광사 탑전을 자신의 왕국으로 삼아 그 주위를 거의 벗어나지 않고 안온하게 지내고 있다. 도 한번 닦아보겠다는 출가도 아니면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아버린 그 태도가 너무나 태연하여 스님은 꼼짝없이 고양이를 보살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스님과 냥이가 알콩달콩 지내는 사이, 계절이 오가듯 많은 인연이 오고 갔다. 엄마 이쁜이와 주니어 이쁜이, 주니어 이쁜이가 낳은 여러 마리의 새끼 고양이들… 여러 차례 생명의 탄생과 죽음을 목격하는 와중에 스님 마음속에는 잊지 못할 추억과 이야깃거리가 수북이 쌓여 갔다. 단풍이 무르익듯 깊어진 스님과 고양이들의 나날을 담은 이 책은, 어찌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과 어찌할 수 없는 인연의 오고 감과 어찌할 수 없는 존재의 본질에 대한 성찰이다. 인적 드문 산중암자에서 ‘냥이선사’로부터 터득한 농밀한 삶의 지혜다.

 


 

저자에 따르면 사람에게는 각자의 일이 있고 각자의 농사가 있다. 그 일에 집중하고 그 속에서 기쁨과 보람을 찾아야 한다. 보경 스님은 50대에 접어들어 책 읽고 글 쓰며 불교를 인문학적으로 해설하는 일로 인생의 후반부 계획을 세웠다. ‘반짝이는 번개 속에서 글을 읽더라도 읽는 값을 치러야 한다’는 말을 모토로 삼아 삶과 수행에서 얻은 통찰을 세상 사람들과 나누려 애쓰고 있다. 지식이든 지혜든, 자신이 아는 것을 남들과 나누지 않고 홀로 삭이는 것만큼 비참한 일도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책에 담긴 스님의 메시지는 ‘경이롭게 바라보기’다. 평생 혼자 사는 데 익숙한 스님에게 찾아온 낯설고 신비로운 존재, 사람의 상식으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고양이의 하루하루를 지켜보면서 알게 된 행복의 비결이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는 놀라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별 볼 일 없다는 듯 바라보면 모든 게 다 시시하다. 그런 삶에는 즐거움이 적다. 작은 것 하나도 경이롭게 바라보면,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소한 것들 안에 있는 특별함을 볼 줄 아는 안목을 가지면 매 순간이 놀랍고 흥미로워진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옛 선사와 현자 들이 하나같이 행복을 좇지 말라고 가르친 까닭이다. 행복은 외적 발견이 아닌 내적 경험이기 때문이다.

 

 

책에는 고양이들의 습성은 물론 고양이의 마음까지 읽어내는 보경 스님의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을 지키려는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고양이를 통해 얻은 지혜와 부처의 말씀은 물론 서양 철학자나 문호들의 말들이 적절하게 인용돼 고양이와 자연 예찬이 드러난다. 고양이들은 어디서든 잘 산다. 고양이들이 낯선 곳이라도 태연하게 자리를 잡고 살아갈 수 있는 건 그들의 생각이 바람과 같아서 불현듯 옮겨가고 지난 과거는 머릿속에 남기지 않아서다. 그리고 매사 ‘알맞게’, ‘지나치지 않게’ 살기 때문이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잔다는 선종의 가르침을 가장 잘 실천하는 존재가 바로 고양이들이다. 마땅히 사람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지나간 것에 대한 집착은 삶을 옥죈다. 내일은 오늘과 다를 거라는 헛된 기대와 환상도 마찬가지다. 집착과 욕망은 삶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공범이다. 지치거나 치이지 않고 자신만의 삶을 온전히 살아가려면 세상을 조금 더 냉정하게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욕망은 마르지 않는 샘과 같아서 또 다른 욕망을 낳는다. 좋은 삶이란 생각을 좇아 이리저리 방황하는 일 없이 지금 순간을 충만하게 살아가는 데 있다. 어제처럼 오늘을 사는 것, 곧 평정심을 잃지 않는 자세야말로 삶을 든든하게 지탱해 주는 힘이다.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 그것이 수행이다."는 의 말(『행복한 기원』 중에서)이 떠오른다. 고양이와 함께 살면서, 자연을 배워가며 인간의 삶에 대해 깊은 사색이 엿보이는 등 이 책은 '고양이 집사'로서의 즐거움보다는 고양이 마음을 읽어내고 자연과 함께 사는 수행 스님의 잘 드러나 독자들에게도 많은 사색거리를 던져 준다.

 


 

이 책을 독자가 좋아하게 된 이유는 '자연과의 삶', '자연적인 삶'에 대해 저자가 독자들에게 해주는 조언이 조근조근 옆 사람과 속 깊은 대화를 나누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책을 여러 권 냈다고 하지만(이 책의 내용도 그렇지만) 문학적 수사를 별로 사용하지 않으면서 사유와 수행으로 얻은 삶의 지혜를 일러춘다. 그의 태도는 진지하지만 과장이 없고, 심오하지만 이해하기 쉽다. 가르치는 듯한 내용이지만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다. 저자의 글 습관일 것이다. 그 글 습관은 저자 자신의 사람 대하는, 또 자연과 생명을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됐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마음이 먼저 차분해진다. 한두 줄만 읽으며 깊은 사유가 묻어나오고 자연에의 외경심도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정감 있는 태도는 그의 말에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누구든 그의 책을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쉽사리 손을 놓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지금 누리는 이 여유가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항상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볼 생각을 하는 것이고 사람이 아닌 저 털북숭이 친구인 냥이에게도 말을 건네고 마음을 주고 뭐라도 재미있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 냥이가 실제 즐겁고 행복할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냥이를 애틋하게 생각하고 소중히 대하며 소홀하지 않는 자세에서 나의 마음이 익어가는 게 유쾌하다. 그렇다면 뭘 못해? 까짓것 정원쯤이야. 그렇게 해서 화단을 만들었고 어설프지만 ‘냥이의 장미정원’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 과정은 생각보다 일이 많았다."(p.81~82)

 


 

저자는 「여는 글」을 통해 속내를 드러낸다. 스스로 산중에 산다고 자연인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도시와 사람들로부터 멀어져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연적인 삶에 대한 성찰이 깊어졌음을 고백한다. 만일 누군가가 자신에게 자연에서 살아가기 위한 조건을 묻는다면 '청빈'과 '시간'의 문제를 말하고 싶다고 한다. 청빈은 신비주의자들에고 수행자들에게도 존중되는 삶의 주체라는 것이다. 마호메트가 "나는 나의 가난을 자랑한다"고 했듯이 영혼의 소리를 들으려면 마음을 비워야 한다.

마호메트도, 그 이전의 예수도, 또 그 이전의 부처도 같은 말을 한 셈이다. 저자의 비유가 한층 돋보인다. 자연 속의 생활에서 얻은 듯하다. "속이 꽉 찬 피리는 없다. 비워야 울린다. 값진 기름을 품고 있는 호두알갱이를 꺼내려면 껍데기를 깨야 하고 진주를 꺼내려면 조개를 깨뜨려야 한다. 하물며 영혼의 정화를 고난 없이 얻을 수 있겠는가." 마음 비움과 함께 시간을 잘 보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한다. 책에 따르면 세상을 살면서 적어도 시간만은 나의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 정도는 경험해봐야 한다. 시간을 얻었으면 된 것이다.

평범한 돌조차 오랜 기간 햇볕을 쬐면 루비가 된다. 야생의 세계는 고독하다. 자연 속으로 들어가 보면 눈에 띄는 모든 생명체들이 죄다 홀로 살아간다. 고독은 다시는 사람을 만나지 못할 것 같은 세계로의 진입이다. 그래서 자연 속에서는 반드시 일을 해야 한다. 자신이 일이라고 생각하는 무엇이 있지 않으면 견디기 어렵다. 일은 인간 행복의 큰 요소이기 때문이다. 선종의 물 긷고 나무하는 일체가 도 아닌 게 없다는 법문이 그냥 생긴 게아니다. 일을 하면서 만족하는 사람에게 기쁨은 주어지게 마련이다. 저자가 수행하면서 실천하고 자연 속에서의 깨달음이라 더욱 귀중한 말이다.

 


 

나는 선명하게 깨어있으려고 한 번씩 밖으로 나가 햇살을 살피고 들어오기를 반복한다. 냥이는 잠에서 잠으로 이어지는 속에서 또 한 세계를 보고 있는지 오후 햇살이 넘어가도록 콧등도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오늘따라 밀키와 쵸코도 웬일인지 방에서 늘어지게 잔다. 각자 자신의 시간을 만끽하는 이 느슨함은 도리어 팽팽한 긴장감을 드리운다. 평화는 긴장의 균형 속에서 찾아진다. 고요하다.(p.64)

 

저자 : 보경

 

송광사가 출가본사다. 선방에서 10년을 살았고 서울 법련사 주지, 조계종사회복지재단 상임이사, 보조사상연구원장을 역임했다. 동국대 대학원에서 〈수선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겸임교원으로 강의를 했다. 일생 만권독서의 꿈, 불교의 인문학적 해석을 평생의 일로 삼고 정진하고 있다. 현재는 보조사상연구원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탑전에서 독서와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사는 즐거움》, 《이야기 숲을 거닐다》, 《행복한 기원》, 《인생을 바꾸는 하루 명상》 등의 에세이와 《기도하는 즐거움》, 《한 권으로 읽는 법화경》, 《슬픔에 더 깊숙이 젖어라》, 《숫타니파타를 읽는 즐거움》, 《선문염송 강설》, 《원하고 행하니 이루어지더라》, 《아함경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 《수선사 연구》 등의 경전류와 논서가 있다. 이 책 《고양이가 주는 행복, 기쁘게 유쾌하게》는 전작 《어느 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 《고양이를 읽는 시간》을 잇는 연작으로써 탑전 냥이의 사계를 채우는 가을과 봄의 이야기다.

 

그림 : 스노우캣(권윤주)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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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함 속 세계사 - 129통의 매혹적인 편지로 엿보는 역사의 이면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 지음, 최안나 옮김 / 시공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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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책을 접하는 독자로서는 이 책이 가진 몇 가지 의문점과, 이를 깨끗이 해결한 저자에 놀라움을 표한다. 첫 번째 놀라움은 역사상 주요 인물(세계 역사를 움직인 인물)들의 편지 129통을 발견해 낸 점이다. 수백 년, 멀게는 수천 년이 지난 편지들을 어떻게 발굴했을까. 역사의 기록을 보고 발굴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편지란 것 자체가 비밀의 내용을 받는 당사자에게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역사에 그 모든 사실이 기록됐을까? 의문이 든다. 그런데 저자는 독자의 의문을 편지 원문을 공개함으로써 의심의 여지 없이 깨끗이 지워버린다. 만일 리스트롤 작성해 하나씩 찾아나간 것이라면 저자의 노력과 집념이 경이롭다.

의문점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편지의 존재 여부를 어떻게 확인하고 찾았을까?다. 편지의 발송을 기록에 남겼다 할지라도 그 원본을 찾지 않는다면 진위를 확인할 수 없을 것인데 하나씩 찾아가 모두 129통의 편지를 발굴, 공개한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독자의 두 번째 의문은 책 군데군데에서 드러나듯 편지를 받는 쪽에서 보관하거나 기록에 남겼을 가능성이 크다. 세 번째는 의문보다는 궁금한 점이다. 수백~수천 년 동안 보관된 편지를 어떻게 입수해 공개가 가능했을까?이다. 저자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는 작가 겸 역사학자이다. 역사학을 공부한 그가 어떤 이유로 편지를 모아 책을 쓸 생각을 했을지 궁금한 점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이 책을 쓴 계기가 궁금한 것이다. 목차에 등장한 129통의 편지를 쓰거나 받은 인물들은 수백 사람 중 몇 사람을 빼고는 이미 고인이 됐는데 저자의 이 책은 놀라움 그 자체를 독자에게 선물해준 책이다.

 


 

출판사 소개글은 편지에 대한 일반론을 먼저 내놓는다. 이에 따르면 편지는 인류가 글을 쓰기 시작할 때 함께 등장해,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매체다. 수천 년의 역사를 통틀어, 사람들이 편지 쓰기를 멈춘 적은 없었다. 점토판에도, 파피루스에도, 양피지에도 편지를 썼다. 그 편지들 중에는 차마 발송되지 못하고 불 속에 던져진 것도 있고 소중하게 리본으로 묶인 채 금고에 저장된 것도 있다. 인류는 그렇게 순간의 감정과 기억을 종이 위에 빼곡히 남겼고, 그것이 역사가 되었다. 기쁠 때, 슬플 때, 사랑을 속삭일 때, 경고를 던질 때, 명령을 내릴 때, 협상할 때 등 역사의 모든 순간이 편지로 쓰인 것이다.

『우편함 속 세계사(원제: WRITTEN IN HISTORY)』의 저자이자 역사학자인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는 이미 『예루살렘 전기』, 『젊은 스탈린』 등에서 탁월한 이야기꾼의 면모를 보이며 역사 분야 독자들의 호평을 받은 바 있다. 그는 이번 신간에서, 고대 이집트와 로마부터 현대 미국, 인도, 중국,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간과 장소를 아우르는 편지를 모았다. 황후, 여배우, 폭군, 예술가, 작곡가, 시인 등 편지를 쓴 사람도 가지각색이다. 저자는 「머리말」을 통해 "편지는 삶의 덧없음뿐 아니라 인터넷에서 느껴지는 얄팍한 단기성까지 해결해주는 문학적 해독제입니다. 편지의 마법에 대해 깊이 생각한 괴테는 편지가 '한 사람이 남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회고록'이라고 했습니다"고 괴테를 인용해 책 발간 취지를 밝힌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편지는 시대를 초월해, 편지가 쓰인 당시의 시대상이나 편지를 주고받은 사람들이 처해 있던 환경, 편지를 쓴 사람의 가치관 등을 진솔하게 드러낸다. 문체나 길이에 따라 발신인의 계층과 신분을 알 수 있기도 하다. 어떤 편지에서는 역사책에서 발견할 수 없는 사생활도 엿볼 수 있고, 편지를 받은 사람이 역사의 판도를 바꾸는 일생일대의 결단을 내리기도 했다. 결국 이 책 『우편함 속 세계사』는 편지를 모은 책이면서 동시에 역사가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이기도 하다. 아무런 부담 없이, 우편함에 들어 있는 누군가의 편지를 읽는다는 생각으로 책을 펼쳐보자. 한낱 사적인 문서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편지에 이토록 흥미롭고 풍성한 내용이 담길 수 있는지 놀라게 될 것이다.

책에서 저자는 이를 입증하듯 세계 역사를 바꾼 인물들에 대한 내밀한 편지까지 찾아내 공개하고 있다. 아직 여왕이 되기 전의 엘리자베스 1세는 언니인 ‘피의 메리’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편지를 보낸다. 루스벨트와 처칠이 제2차 세계대전의 위기를 앞두고 1940년 절박한 몇 달 동안 주고받은 글은 21세기 들어 가장 중요한 편지로 꼽힌다. 히틀러는 소련을 침공하기 전날 밤, 같은 편인 무솔리니에게 전쟁의 동기를 드러내는 편지를 보낸다. 발자크가 그의 폴란드인 팬, 아름다운 한스카 백작 부인에게 보낸 편지는 대단히 열정적인데, 서로 만나기도 전에 오로지 편지의 힘만으로 두 사람이 사랑에 빠졌을 정도다. 또 홀로코스트 죽음의 수용소에 갇힌 남편에게 보내는 아내의 희귀한 작별 편지는 우리에게 견디기 힘든 공포를 안겨준다.

 


 

이 책은 편지의 내용과 받을 인물, 그리고 그들의 당시 지위 등이 모두 나타난 '역사적 인물'들이 직접 쓴 것들이다. 지금처럼 통신이 발달되지 않은 시대의 편지를 저자는 내용에 따라 사랑, 가족, 창조, 용기, 발견, 여행, 전쟁, 피, 파괴, 재앙, 우정, 어리석음, 품위, 해방, 운명, 권력, 몰락, 작별 등의 키워드로 정리했다. 역시 가장 많은 수의 편지는 '사랑'과 '권력'이다. 저자의 「머리말」은 각 카테고리의 실제 편지를 직접 읽기 전에 가장 강력한 의미를 전달한다. "현대의 언론처럼 역사의 기록에는 소문과 추측, 신화, 거짓, 오해와 비방이 가득합니다. 타블로이드 잡지나 가십 사이트를 접할 때 우리는 지금 읽는 것 중 절반은 거짓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와 달리 사적 편지를 읽을 때의 즐거움은 그 속에 담긴 모든 내용이 사실이라는 점에 기인하지요. 가십에 의존하지 않고 진실한 말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읽는 편지가 곧 스탈린이 그의 심복들에게 말한 방식이고, 휘렘 슐판이 술레이만 대제에게, 프리다 칼로가 디에고 리베라에게 사랑을 담아 보낸, 충격적일 정도로 지저분한 편지도 있지만요."

이처럼 편지는 용도에 따라서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 결정적 이유가 되기도 한다. 저자는 이런 역사 인식이 충분히 준비된 상태에서 직접 편지를 확인함으로써 어떤 경로를 거쳐 어떤 인식하에 집권자가 결정을 하는지도 알 수 있다. 이 편지들은 역사 의식이 확고한 사람이 아니라면 쉽게 해낼 수 없는 일을 해낸 저자의 끈질긴 노력의 산물이기에 더욱 값지고 우리의 '조선왕조실록'에 버금가는 일을 한 역사학자이자 작가가 일권낸 훌륭한 작업이라고 독자는 믿는다. 그의 정확하고 올바른 역사 인식은 각 편지를 소개하고 뒤에 저자가 해설, 설명을 붙일 때 여실히 드러난다.

 


 

이렇게 탄생한 이 책이 어느 한 부분, 단 하나의 편지도 훌륭한 역사의 기록일 수 있는데다 엄중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몇 개의 편지 해설에서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함으로써 '독자를 위한 책'의 집필을 확신하게 한다. 한 예로 '반유대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시대 에밀 졸라가 프랑스의 인종차별과 반유대주의에 맞서 "나는 탄핵하노라!"라고 규탄한 편지를 소개한다.

21세기의 저자는 그런 저항이 끔찍하게 '현대적'으로 느껴졌으며,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양 대륙에 새롭게 독기 가득한 반유대주의가 나타나는 시대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졸라의 주장)고 생각했다고 털어놓는다. 우파뿐 아니라 (영국에서는 특히) 사회주의 좌파 주류에서도 스탈린의 유대인 말살 정책으로 되돌아가는 비도덕적 압력이 점차 나타났다고 말하며, 이런 주장이 훨씬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마르크스주의가 다시 인기를 얻은 셈이라고 평가한다. 저자는 이 분에서 두 명의 마르크스주의 창시자,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주고받은 귀중한 편지를 함께 실었다고 언급한다. 이들이 평범한 품위와 평등을 위해 싸운 이타적이고 고결한 사회운동가라고 생각해온 사람들은 정작 사납고 파렴치한 인종차별주의와 반유대주의를 마주하고 아마 깜짝 놀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책에는 람세스 2세가 히타이트 왕 하투실리에게 보낸 경멸 어린 편지가 실려 있다. 그리고 1,000년 뒤에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옥타비아누스(미래의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 자신이 클레오파트라와 "같이 잔' 것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불평한 편지도 공개한다. 실제로는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고 저자는 해설을 덧붙인다. 다시 1,000년 뒤로 가면 살라딘과 사자왕 리처드 1세는 "신성한 땅"을 나누는 협상을 벌인다. 또 500년 뒤로 가면 펠리페 2세가 메디나시도니아 공작에게 영국에 맞서 무적함대를 출정시키라고 명령한다. 다시 400년이 흐르면 링컨이 그랜트 장군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그의 관대함에 감탄하게 된다. 또 루스벨트와 처칠이 1940년 절박한 몇달 동안 주고받은 글을 이 책에 공개한다.

 


 

독자는 얼마 전 케이블TV에서 우연히 '하렘'에 관한 오스만 제국 당시 황제 술레이만과 휘렘이 등장하는 역사 드라마를 즐겨봤다. 터키 방송이 제작한 드라마로 보이는데 굉장한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이슬람에 대해 거의 무지했던 독자는 배운다는 의미로 참 열심히 보았다. 그 드라마에서 황제 술레이만 대제와 휘렘 술탄이 자주 등장한다. 하렘의 어원은 아랍어에서 '금지된 것'을 의미하는 '하람'이라고 한다. 하람은 원래 쿠란 혹은 샤리아에서 금지하는 모든 것을 가리키지만, 좁은 의미로는 각 가정에서 손님, 외부인이 들어갈 수 없는 여인들의 방을 가리킨다. 이 드라마에서는 궁 안에 여자들의 거처다. 우리 조선시대로 보면 궁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이들이 주고 받은 편지(1530년대) 중 술레이만이 휘렘에게 보내는 편지를 공개한다. 일부만 여기에 옮긴다.

 

나의 외로운 자리 왕좌, 나의 부, 나의 사랑, 나의 달빛

나의 가장 진실한 친구, 나의 동반자, 나의 존재 그 자체, 나의 술탄...

 

저자는 편지의 끝에 "1521년쯤 휘렘은 첫아들을 낳았다. 아주 중요한 남성 후계자를 낳은 것이다. 술레이만은 첩 한 명에게 아들 한 명만 둘 수 있다는 제약을 무시했고, 첩과 결혼한 적 없는 다른 술탄들의 전례 역시 무시하고 1533년쯤 휘렘과 결혼했다. 휘렘은 운 좋게도 황제에게 아들 다섯과 딸 하나를 안겨 주었다. 대부분의 자녀는, 특히 아름답고 지적인 딸 미흐리마는 그중에서도 오래 살았다. 그녀는 아버지의 충실한 보좌관이자 오빠 셀립의 자문이 되었다.

 


 

이 책에는 놀랍게도 트럼프 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주고받은 편지 중 트럼프의 편지를 공개한다. 당시 정상회담을 관련된 서신들이다. 여기에 있는 편지는 2018년 5월 24일 날짜로 못박혀 북미 정상회담(하노이)보다 20일 앞서 보낸 것이다. "양쪽 진영에서 오랫동안 기대려온 정상회담과 관련한 최근 협상과 논의에서 보여주신 위원장의 시간과 인내, 노력에 대단한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위원장과 거기서 만나는 순간을 매우 기대하고 있었습니다...."(p.384)

 

저자 :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SIMON SEBAG MONTEFIORE)

케임브리지대학교의 곤빌 앤드 캐이어스 칼리지에서 역사를 공부했다. 저서로 새뮤얼 존슨상, 더프 쿠퍼상, 마시 전기상의 최종 후보작이었던 《예카테리나 대제와 포??킨CATHERINE THE GREAT AND POTEMKIN》, 영국출판대상에서 올해의 역사책상을 수상한 《젊은 스탈린STALIN: THE COURT OF THE RED TSAR》, 소설 《사셴카SASHENKA》, 오프라 윈프리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로마노프 왕가THE ROMANOVS: 1613-1918》, 전 세계적으로 100만 부 이상 판매되었으며 중국에서 웬진 올해의 책상을 수상한 《예루살렘 전기JERUSALEM: THE BIOGRAPHY》 등이 있다.

 

역자 : 최안나

어려서부터 언어를 좋아한 때문인지 글로 먹고살게 되었다. 문장 하나가 누군가의 삶을 바꾸고 책 한 권이 누군가의 세상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현재 출판사에서 인문ㆍ역사ㆍ사회 분야 도서를 편집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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