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주는 행복, 기쁘게 유쾌하게 - 딱 남들만큼 특별한 산중냥이의 사계
보경 지음, 권윤주 그림 / 불광출판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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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고양이가 주는 행복, 기쁘게 유쾌하게』는 산사에서 고양이와 함께 살면서 느끼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자연의 발견으로 이어지는 수행 스님의 일상이 결코 따분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사실 저자 보경 스님은 고양이와 살게 된 인연을 고양이가 좋아서는 아니다. 몇 해 전 어느 겨울날 길고양이 한 마리(냥이)가 산중암자에 사는 스님 앞에 불쑥 나타났다. 그날 이후 낯선 고양이와 어색한 동거를 시작한 스님은 사람과 닮은 듯 다른 고양이의 생활을 지켜보며 존재와 삶을 생각하고 그로부터 얻은 교훈을 글로 적어 왔다. 이미 그 첫 기록이 『어느 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바라보기’와 ‘기다리기’가 중심 이야기였다.

이어서 『고양이를 읽는 시간』이란 제목으로 출간된 두 번째 책에는 고양이와 무더운 여름을 함께 나며 터득한 ‘느리게’ 그리고 ‘느긋하게’ 살아가는 지혜를 담았다. 이번에 출간된 『고양이가 주는 행복, 기쁘게 유쾌하게』는 세 번째 책으로 앞선 두 책을 잇는 보경 스님의 고양이 에세이 시리즈 마지막 편으로, 매 순간을 기쁘고 유쾌하게 살아가는 법을 성찰한 글이다. 독자는 앞서 발간된 두 책을 읽어보지 못해 이 책을 읽고 이해하는데 약간의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당연한 기우였다. 오히려 더 깊은 사색과 자연에 대한 성찰은 물론, 생명을 귀중하게 보호하는 불교 수행자로서의 마음이 전해져오는 것 같아 더 감동적이었다.

 


 

저자인 보경 스님과 냥이가 함께 지낸 지 햇수로 6년째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스님이 십수 년간의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산중암자로 돌아온 2017년 겨울 저녁,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은 굶주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꼬리 없는 누런 고양이에게 우유와 토스트를 건넨 것이 이 특별한 인연의 시작이었다. 산중암자에 불쑥 찾아든 야지의 고양이는 이제 스님의 거처인 송광사 탑전을 자신의 왕국으로 삼아 그 주위를 거의 벗어나지 않고 안온하게 지내고 있다. 도 한번 닦아보겠다는 출가도 아니면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아버린 그 태도가 너무나 태연하여 스님은 꼼짝없이 고양이를 보살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스님과 냥이가 알콩달콩 지내는 사이, 계절이 오가듯 많은 인연이 오고 갔다. 엄마 이쁜이와 주니어 이쁜이, 주니어 이쁜이가 낳은 여러 마리의 새끼 고양이들… 여러 차례 생명의 탄생과 죽음을 목격하는 와중에 스님 마음속에는 잊지 못할 추억과 이야깃거리가 수북이 쌓여 갔다. 단풍이 무르익듯 깊어진 스님과 고양이들의 나날을 담은 이 책은, 어찌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과 어찌할 수 없는 인연의 오고 감과 어찌할 수 없는 존재의 본질에 대한 성찰이다. 인적 드문 산중암자에서 ‘냥이선사’로부터 터득한 농밀한 삶의 지혜다.

 


 

저자에 따르면 사람에게는 각자의 일이 있고 각자의 농사가 있다. 그 일에 집중하고 그 속에서 기쁨과 보람을 찾아야 한다. 보경 스님은 50대에 접어들어 책 읽고 글 쓰며 불교를 인문학적으로 해설하는 일로 인생의 후반부 계획을 세웠다. ‘반짝이는 번개 속에서 글을 읽더라도 읽는 값을 치러야 한다’는 말을 모토로 삼아 삶과 수행에서 얻은 통찰을 세상 사람들과 나누려 애쓰고 있다. 지식이든 지혜든, 자신이 아는 것을 남들과 나누지 않고 홀로 삭이는 것만큼 비참한 일도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책에 담긴 스님의 메시지는 ‘경이롭게 바라보기’다. 평생 혼자 사는 데 익숙한 스님에게 찾아온 낯설고 신비로운 존재, 사람의 상식으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고양이의 하루하루를 지켜보면서 알게 된 행복의 비결이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는 놀라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별 볼 일 없다는 듯 바라보면 모든 게 다 시시하다. 그런 삶에는 즐거움이 적다. 작은 것 하나도 경이롭게 바라보면,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소한 것들 안에 있는 특별함을 볼 줄 아는 안목을 가지면 매 순간이 놀랍고 흥미로워진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옛 선사와 현자 들이 하나같이 행복을 좇지 말라고 가르친 까닭이다. 행복은 외적 발견이 아닌 내적 경험이기 때문이다.

 

 

책에는 고양이들의 습성은 물론 고양이의 마음까지 읽어내는 보경 스님의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을 지키려는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고양이를 통해 얻은 지혜와 부처의 말씀은 물론 서양 철학자나 문호들의 말들이 적절하게 인용돼 고양이와 자연 예찬이 드러난다. 고양이들은 어디서든 잘 산다. 고양이들이 낯선 곳이라도 태연하게 자리를 잡고 살아갈 수 있는 건 그들의 생각이 바람과 같아서 불현듯 옮겨가고 지난 과거는 머릿속에 남기지 않아서다. 그리고 매사 ‘알맞게’, ‘지나치지 않게’ 살기 때문이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잔다는 선종의 가르침을 가장 잘 실천하는 존재가 바로 고양이들이다. 마땅히 사람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지나간 것에 대한 집착은 삶을 옥죈다. 내일은 오늘과 다를 거라는 헛된 기대와 환상도 마찬가지다. 집착과 욕망은 삶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공범이다. 지치거나 치이지 않고 자신만의 삶을 온전히 살아가려면 세상을 조금 더 냉정하게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욕망은 마르지 않는 샘과 같아서 또 다른 욕망을 낳는다. 좋은 삶이란 생각을 좇아 이리저리 방황하는 일 없이 지금 순간을 충만하게 살아가는 데 있다. 어제처럼 오늘을 사는 것, 곧 평정심을 잃지 않는 자세야말로 삶을 든든하게 지탱해 주는 힘이다.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 그것이 수행이다."는 의 말(『행복한 기원』 중에서)이 떠오른다. 고양이와 함께 살면서, 자연을 배워가며 인간의 삶에 대해 깊은 사색이 엿보이는 등 이 책은 '고양이 집사'로서의 즐거움보다는 고양이 마음을 읽어내고 자연과 함께 사는 수행 스님의 잘 드러나 독자들에게도 많은 사색거리를 던져 준다.

 


 

이 책을 독자가 좋아하게 된 이유는 '자연과의 삶', '자연적인 삶'에 대해 저자가 독자들에게 해주는 조언이 조근조근 옆 사람과 속 깊은 대화를 나누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책을 여러 권 냈다고 하지만(이 책의 내용도 그렇지만) 문학적 수사를 별로 사용하지 않으면서 사유와 수행으로 얻은 삶의 지혜를 일러춘다. 그의 태도는 진지하지만 과장이 없고, 심오하지만 이해하기 쉽다. 가르치는 듯한 내용이지만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다. 저자의 글 습관일 것이다. 그 글 습관은 저자 자신의 사람 대하는, 또 자연과 생명을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됐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마음이 먼저 차분해진다. 한두 줄만 읽으며 깊은 사유가 묻어나오고 자연에의 외경심도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정감 있는 태도는 그의 말에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누구든 그의 책을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쉽사리 손을 놓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지금 누리는 이 여유가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항상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볼 생각을 하는 것이고 사람이 아닌 저 털북숭이 친구인 냥이에게도 말을 건네고 마음을 주고 뭐라도 재미있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 냥이가 실제 즐겁고 행복할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냥이를 애틋하게 생각하고 소중히 대하며 소홀하지 않는 자세에서 나의 마음이 익어가는 게 유쾌하다. 그렇다면 뭘 못해? 까짓것 정원쯤이야. 그렇게 해서 화단을 만들었고 어설프지만 ‘냥이의 장미정원’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 과정은 생각보다 일이 많았다."(p.81~82)

 


 

저자는 「여는 글」을 통해 속내를 드러낸다. 스스로 산중에 산다고 자연인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도시와 사람들로부터 멀어져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연적인 삶에 대한 성찰이 깊어졌음을 고백한다. 만일 누군가가 자신에게 자연에서 살아가기 위한 조건을 묻는다면 '청빈'과 '시간'의 문제를 말하고 싶다고 한다. 청빈은 신비주의자들에고 수행자들에게도 존중되는 삶의 주체라는 것이다. 마호메트가 "나는 나의 가난을 자랑한다"고 했듯이 영혼의 소리를 들으려면 마음을 비워야 한다.

마호메트도, 그 이전의 예수도, 또 그 이전의 부처도 같은 말을 한 셈이다. 저자의 비유가 한층 돋보인다. 자연 속의 생활에서 얻은 듯하다. "속이 꽉 찬 피리는 없다. 비워야 울린다. 값진 기름을 품고 있는 호두알갱이를 꺼내려면 껍데기를 깨야 하고 진주를 꺼내려면 조개를 깨뜨려야 한다. 하물며 영혼의 정화를 고난 없이 얻을 수 있겠는가." 마음 비움과 함께 시간을 잘 보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한다. 책에 따르면 세상을 살면서 적어도 시간만은 나의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 정도는 경험해봐야 한다. 시간을 얻었으면 된 것이다.

평범한 돌조차 오랜 기간 햇볕을 쬐면 루비가 된다. 야생의 세계는 고독하다. 자연 속으로 들어가 보면 눈에 띄는 모든 생명체들이 죄다 홀로 살아간다. 고독은 다시는 사람을 만나지 못할 것 같은 세계로의 진입이다. 그래서 자연 속에서는 반드시 일을 해야 한다. 자신이 일이라고 생각하는 무엇이 있지 않으면 견디기 어렵다. 일은 인간 행복의 큰 요소이기 때문이다. 선종의 물 긷고 나무하는 일체가 도 아닌 게 없다는 법문이 그냥 생긴 게아니다. 일을 하면서 만족하는 사람에게 기쁨은 주어지게 마련이다. 저자가 수행하면서 실천하고 자연 속에서의 깨달음이라 더욱 귀중한 말이다.

 


 

나는 선명하게 깨어있으려고 한 번씩 밖으로 나가 햇살을 살피고 들어오기를 반복한다. 냥이는 잠에서 잠으로 이어지는 속에서 또 한 세계를 보고 있는지 오후 햇살이 넘어가도록 콧등도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오늘따라 밀키와 쵸코도 웬일인지 방에서 늘어지게 잔다. 각자 자신의 시간을 만끽하는 이 느슨함은 도리어 팽팽한 긴장감을 드리운다. 평화는 긴장의 균형 속에서 찾아진다. 고요하다.(p.64)

 

저자 : 보경

 

송광사가 출가본사다. 선방에서 10년을 살았고 서울 법련사 주지, 조계종사회복지재단 상임이사, 보조사상연구원장을 역임했다. 동국대 대학원에서 〈수선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겸임교원으로 강의를 했다. 일생 만권독서의 꿈, 불교의 인문학적 해석을 평생의 일로 삼고 정진하고 있다. 현재는 보조사상연구원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탑전에서 독서와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사는 즐거움》, 《이야기 숲을 거닐다》, 《행복한 기원》, 《인생을 바꾸는 하루 명상》 등의 에세이와 《기도하는 즐거움》, 《한 권으로 읽는 법화경》, 《슬픔에 더 깊숙이 젖어라》, 《숫타니파타를 읽는 즐거움》, 《선문염송 강설》, 《원하고 행하니 이루어지더라》, 《아함경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 《수선사 연구》 등의 경전류와 논서가 있다. 이 책 《고양이가 주는 행복, 기쁘게 유쾌하게》는 전작 《어느 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 《고양이를 읽는 시간》을 잇는 연작으로써 탑전 냥이의 사계를 채우는 가을과 봄의 이야기다.

 

그림 : 스노우캣(권윤주)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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