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시대 리토피아 소설선 4
방서현 지음 / 리토피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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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작품 『좀비시대』는 얼마 전 '열품'을 일으킨 드라마 속의 좀비를 먼저 떠올리게 한다. 제목만 보고 책을 선택했다면 제목과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제목에서 나오는 좀비는 노동자들이 '살아 있는 시체'를 연상시킨다는 의미다. '좀비 시대'란 제목을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 소설은 풍자소설이고 사회 고발 소설이다. 좀비(Zombie)란 '살아있는 시체'를 말한다.

시사상식사전을 살펴보면 서인도 제도 원주민의 미신과 부두교의 제사장들이 마약을 투여해 되살려낸 시체에서 유래한 단어라 한다. 영화에서는 1932년 벨라루고시의 〈화이트좀비〉가 좀비를 다룬 첫 작품이며, 조지로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을 기점으로 해서 〈좀비오〉, 〈바탈리언〉과 같은 수많은 아류작들이 탄생했다고 이 사전은 설명을 덧붙인다. 좀비가 영어에 처음 등장한 건 1838년으로 당시엔 zombi로 표기되었으나, 1900년대에 'e'가 추가되어 오늘날의 zombie가 되었다고 한다. 좀비는 이후 디지털 기기에 푹 빠져 외부 세계와 절연된 사람은 ‘디지털 좀비(digital zombie)’, 장기 보관을 위해 방사선 처리(irradiation)를 한 식품은 ‘좀비 푸드(zombie food)’라고 파생어를 생산해내며 확대해석되었다고 한다. 좀비의 역사가 꽤 오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얼마 전 일어난 '좀비 열풍'의 원인을 알게 되면 이 소설이 말하는 『좀비시대』의 의미에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다.

 


 

『인문학은 언어에서 태어났다』란 책에서 저자 강준만은 문강형준의 「왜 ‘좀비 열풍’이 부는가?」를 인용했다.(2014. 12. 8) "좀비의 기원은 아이티의 부두교 흑마술로 알려져 있다. 일단의 흑마술사들이 사망 상태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약을 사람들에게 먹여 ‘죽였’다가 다른 약으로 나중에 ‘살려’내어, 환각상태에 빠진 이들을 농장의 노예로 부렸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처럼 좀비는 삶과 죽음의 권리 자체를 박탈당한 채 영원한 노예가 되어버린 자들의 이름이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1960~70년대 전성기를 맞았던 좀비 서사에서 좀비가 흔히 노동자 계급 출신으로 묘사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자유롭게’ 노동력을 팔면서도 사물로 변해버린 노동자의 형상은 좀비와 닮았다. 자본주의하의 노동자는 동시에 소비자이기도 하다. 소비하기 위해 노동하고, 노동하기 위해 소비하는 끝없는 순환 속에서 좀비는 또한 쇼핑몰을 배회하는 소비자로 그려진다. 쇼핑몰은 해방감을 선사하며 자본주의 체제의 생존을 보장해주는 또 다른 억압의 공간이다. 그 속에서 좀비는 여전히 노예다.······그런 점에서 좀비는 현대인의 거울상이다. 좀비를 뜻하는 ‘살아 있는 시체’라는 표현이 애초에 니체가 인간을 묘사했던 말에서 온 것이 의미심장한 이유다.”

 


 

이 두 명의 시사평론가들은 좀비 열풍을 새로운 노예 노동자의 출현이라는 노동사회적 현실을 설명하기 위해 좀비 열풍을 진단하고 있다. 이 소설 『좀비 시대』의 저자 방서현이 소설에서 그리고 있는 노동 현실을 고발하기 위해 풍자적으로 '좀비 시대'란 제목을 붙인 것으로 이해된다.

이 소설은 이미지 광고에 감쪽같이 속아 학습지 회사에 들어간 연우와 수아를 통해 '노예 노동'의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은 이십 대 젊은이들로 경제적인 문제로 인해, 꿈을 접거나 혹은 잠시 내려놓고 현실 세계에 뛰어든다. 하지만 자본의 세계는 그들이 꿈꾼 세계와는 거리가 멀다. 그들이 보기에 현실 속의 사람들은 이상하다. 갑자기 이상한 세계에 놓인 듯한 느낌이다. 현실 속의 사람들은 인간이 아닌 좀비가 되어 있다. 이들 좀비는 자신들과 똑같은 좀비가 될 것을 요구한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자본 창출을 위해 좀비 바이러스를 전염시켜려 한다. 저자는 학습지 방문교사의 이야기를 통해 시대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우리 시대가 인간성을 상실한 '좀비 시대'임을 선언한다. 인류애 대신에 돈과 권력이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채 아니, 감염된 그 사실도 모른 채 살아가는 좀비 시대라는 비유적 표현을 썼다.

 


 

지금 좀비는 우리 나라 인터넷에서 부정적인 의미로 인기를 누리는 단어가 되었다. 앞서 인용한 『인문학은 언어에서 태어났다』에서 강준만 저자는 〈조선일보〉(2013년 3월 19일)의 “최근에는 국내 인터넷 환경을 설명하며 ‘좀비’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소위 ‘좌좀’(좌익좀비), ‘우좀’(우익좀비)이라는 조어가 그 예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고 쓰고 있다. “좀비는 기본적으로 떼를 형성하고, 무뇌(無腦)이며, 무한 증식한다. 온라인에서는 거침없는 내용의 게시물을 올리는 전사이지만, 막상 현실의 오프라인에서는 전혀 힘을 쓰지 못하는 소심한 사람들과도 같다.

문화평론가 이명석 씨는 ‘인간성을 잃어버린 채 떼 지어 다니면서 인간을 사냥하는 좀비는 온라인의 익명성을 이용해 하나의 이슈에 몰려드는 키보드 워리어(전사)와 닮았다’고 했다. 〈뉴욕 타임스〉는 또 〈워킹 데드〉 방영 당시 ‘현대인이 무방비로 접하는 인터넷과 미디어가 바로 현대의 좀비’라고 보도했다.” 당시 2013년 3월 셋째 주말(15~17일) 국내 개봉 영화 흥행 1위는 좀비를 소재로 다룬 외화 〈웜 바디스(Warm Bodies)〉였다고 지적한다. 1990년대 이후, 세기말적 상상력은 대중문화의 강력한 한 축이었다. 공산주의를 유토피아로 착각했던 현실사회주의의 붕괴, 핵 공포와 방사능 유출, 테러, 지진 · 쓰나미 등 자연 · 인공 재난 등이 반복되면서, 이런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에 가속도가 붙었다는 게 지배적인 해석이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 등 좀비 영화의 대부로 불리는 미국의 조지 로메로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현존하는 모든 재난이 곧 좀비’라면서 ‘좀비 영화는 사람들이 이 재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을 그려낸 것’이라고 했다. 2011년의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북한의 핵 위협도 이런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의 뿌리가 되고 있다.······어쩌면 좀비와 전염병 텍스트의 유행은 인간의 탐욕에 대한 역설적 경고일지도 모를 일이다.”

 

 

좀비 열풍은 사실 20세기 말 미국의 신자유주의 학파와 맥이 닿아 있다. 신자유주의 학파는 미국 시카고대학의 프리드먼 교수를 중심으로 하는 경제학파이다. 이 학파의 주장은 합리적인 경제운영을 기하고 물가상승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가격기능을 부활시키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으로 정부 활동보다는 민간의 자유로운 행동을 중시한다.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란 국가권력의 시장개입을 비판하고 시장의 기능과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중시하는 이론이다.

1970년대부터 케인스 이론을 도입한 수정자본주의의 실패를 지적하고 경제적 자유방임주의를 주장하면서 본격적으로 대두되었다. 케인스경제학은 제1차세계대전 이후 세계적인 공황을 겪은 많은 나라들의 경제정책에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였다.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가들은 케인스 이론을 도입한 수정자본주의를 채택하였는데, 그 요체는 정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소득평준화와 완전고용을 이룸으로써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것이다. 케인스 이론은 이른바 '자본주의의 황금기'와 함께하였으나, 1970년대 이후 오일쇼크 등으로 세계적인 불황이 다가오면서 이에 대한 반론이 제기되었다.

장기적인 스태그플레이션은 케인스 이론에 기반한 경제정책이 실패한 결과라고 지적하며 대두된 것이 신자유주의 이론이다. 시카고학파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은 닉슨 행정부의 경제정책에 반영되었고, 레이건 행정부 때 이른바 '레이거노믹스'의 근간이 되었다. 소련이 무너지는 계기가 되었고, 우리 나라에도 본격적으로 도입돼 김영삼 정부 때 '세계화'의 국제 정세 변화에 따라 추진하다 급격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에 결정적 타격을 입히는 'IMF 외환 위기'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 책 뒷 부분에서 고명철 교수(문학평론가, 광운대)는 「간접고용과 중간착취, 그 디스토피아와 좀비들의 묵시록」이란 해설을 통해 "한국문학사에서 노동문학이 한국 민주주의와 함께 논의되고 그 문학적 실천에 혼신의 힘을 쏟았던 적이 있었다"고 전제하고 "방서현의 장편소설 『좀비시대』는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 아래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새로운 고용 구조 속에서 엄습하는 새로운 유형의 노동 착취에 따른 노동의 구조악과 행태악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 소설 『좀비시대』는 우리 시대의 노동의 적나라한 문제를 예각적으로 파헤치고 있는 바, 비록 장편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교육사업의 경제활동을 통해 학습지 시장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중간착취와 노동 억압에 대한 현장보고서라 해도 손색이 없다."고 평가하고 있다.

 

저자 : 방서현

 

충남 논산에서 자라고 목원대학교 국어교육학과 및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오랫동안 글쓰기 수련과 깊은 사색을 해왔으며, 2022년 계간 리토피아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현재, 무지개와 같은 글을 쓰고자 고향 놀뫼에 둥지를 틀고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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