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함 속 세계사 - 129통의 매혹적인 편지로 엿보는 역사의 이면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 지음, 최안나 옮김 / 시공사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선 이 책을 접하는 독자로서는 이 책이 가진 몇 가지 의문점과, 이를 깨끗이 해결한 저자에 놀라움을 표한다. 첫 번째 놀라움은 역사상 주요 인물(세계 역사를 움직인 인물)들의 편지 129통을 발견해 낸 점이다. 수백 년, 멀게는 수천 년이 지난 편지들을 어떻게 발굴했을까. 역사의 기록을 보고 발굴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편지란 것 자체가 비밀의 내용을 받는 당사자에게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역사에 그 모든 사실이 기록됐을까? 의문이 든다. 그런데 저자는 독자의 의문을 편지 원문을 공개함으로써 의심의 여지 없이 깨끗이 지워버린다. 만일 리스트롤 작성해 하나씩 찾아나간 것이라면 저자의 노력과 집념이 경이롭다.

의문점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편지의 존재 여부를 어떻게 확인하고 찾았을까?다. 편지의 발송을 기록에 남겼다 할지라도 그 원본을 찾지 않는다면 진위를 확인할 수 없을 것인데 하나씩 찾아가 모두 129통의 편지를 발굴, 공개한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독자의 두 번째 의문은 책 군데군데에서 드러나듯 편지를 받는 쪽에서 보관하거나 기록에 남겼을 가능성이 크다. 세 번째는 의문보다는 궁금한 점이다. 수백~수천 년 동안 보관된 편지를 어떻게 입수해 공개가 가능했을까?이다. 저자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는 작가 겸 역사학자이다. 역사학을 공부한 그가 어떤 이유로 편지를 모아 책을 쓸 생각을 했을지 궁금한 점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이 책을 쓴 계기가 궁금한 것이다. 목차에 등장한 129통의 편지를 쓰거나 받은 인물들은 수백 사람 중 몇 사람을 빼고는 이미 고인이 됐는데 저자의 이 책은 놀라움 그 자체를 독자에게 선물해준 책이다.

 


 

출판사 소개글은 편지에 대한 일반론을 먼저 내놓는다. 이에 따르면 편지는 인류가 글을 쓰기 시작할 때 함께 등장해,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매체다. 수천 년의 역사를 통틀어, 사람들이 편지 쓰기를 멈춘 적은 없었다. 점토판에도, 파피루스에도, 양피지에도 편지를 썼다. 그 편지들 중에는 차마 발송되지 못하고 불 속에 던져진 것도 있고 소중하게 리본으로 묶인 채 금고에 저장된 것도 있다. 인류는 그렇게 순간의 감정과 기억을 종이 위에 빼곡히 남겼고, 그것이 역사가 되었다. 기쁠 때, 슬플 때, 사랑을 속삭일 때, 경고를 던질 때, 명령을 내릴 때, 협상할 때 등 역사의 모든 순간이 편지로 쓰인 것이다.

『우편함 속 세계사(원제: WRITTEN IN HISTORY)』의 저자이자 역사학자인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는 이미 『예루살렘 전기』, 『젊은 스탈린』 등에서 탁월한 이야기꾼의 면모를 보이며 역사 분야 독자들의 호평을 받은 바 있다. 그는 이번 신간에서, 고대 이집트와 로마부터 현대 미국, 인도, 중국,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간과 장소를 아우르는 편지를 모았다. 황후, 여배우, 폭군, 예술가, 작곡가, 시인 등 편지를 쓴 사람도 가지각색이다. 저자는 「머리말」을 통해 "편지는 삶의 덧없음뿐 아니라 인터넷에서 느껴지는 얄팍한 단기성까지 해결해주는 문학적 해독제입니다. 편지의 마법에 대해 깊이 생각한 괴테는 편지가 '한 사람이 남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회고록'이라고 했습니다"고 괴테를 인용해 책 발간 취지를 밝힌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편지는 시대를 초월해, 편지가 쓰인 당시의 시대상이나 편지를 주고받은 사람들이 처해 있던 환경, 편지를 쓴 사람의 가치관 등을 진솔하게 드러낸다. 문체나 길이에 따라 발신인의 계층과 신분을 알 수 있기도 하다. 어떤 편지에서는 역사책에서 발견할 수 없는 사생활도 엿볼 수 있고, 편지를 받은 사람이 역사의 판도를 바꾸는 일생일대의 결단을 내리기도 했다. 결국 이 책 『우편함 속 세계사』는 편지를 모은 책이면서 동시에 역사가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이기도 하다. 아무런 부담 없이, 우편함에 들어 있는 누군가의 편지를 읽는다는 생각으로 책을 펼쳐보자. 한낱 사적인 문서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편지에 이토록 흥미롭고 풍성한 내용이 담길 수 있는지 놀라게 될 것이다.

책에서 저자는 이를 입증하듯 세계 역사를 바꾼 인물들에 대한 내밀한 편지까지 찾아내 공개하고 있다. 아직 여왕이 되기 전의 엘리자베스 1세는 언니인 ‘피의 메리’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편지를 보낸다. 루스벨트와 처칠이 제2차 세계대전의 위기를 앞두고 1940년 절박한 몇 달 동안 주고받은 글은 21세기 들어 가장 중요한 편지로 꼽힌다. 히틀러는 소련을 침공하기 전날 밤, 같은 편인 무솔리니에게 전쟁의 동기를 드러내는 편지를 보낸다. 발자크가 그의 폴란드인 팬, 아름다운 한스카 백작 부인에게 보낸 편지는 대단히 열정적인데, 서로 만나기도 전에 오로지 편지의 힘만으로 두 사람이 사랑에 빠졌을 정도다. 또 홀로코스트 죽음의 수용소에 갇힌 남편에게 보내는 아내의 희귀한 작별 편지는 우리에게 견디기 힘든 공포를 안겨준다.

 


 

이 책은 편지의 내용과 받을 인물, 그리고 그들의 당시 지위 등이 모두 나타난 '역사적 인물'들이 직접 쓴 것들이다. 지금처럼 통신이 발달되지 않은 시대의 편지를 저자는 내용에 따라 사랑, 가족, 창조, 용기, 발견, 여행, 전쟁, 피, 파괴, 재앙, 우정, 어리석음, 품위, 해방, 운명, 권력, 몰락, 작별 등의 키워드로 정리했다. 역시 가장 많은 수의 편지는 '사랑'과 '권력'이다. 저자의 「머리말」은 각 카테고리의 실제 편지를 직접 읽기 전에 가장 강력한 의미를 전달한다. "현대의 언론처럼 역사의 기록에는 소문과 추측, 신화, 거짓, 오해와 비방이 가득합니다. 타블로이드 잡지나 가십 사이트를 접할 때 우리는 지금 읽는 것 중 절반은 거짓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와 달리 사적 편지를 읽을 때의 즐거움은 그 속에 담긴 모든 내용이 사실이라는 점에 기인하지요. 가십에 의존하지 않고 진실한 말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읽는 편지가 곧 스탈린이 그의 심복들에게 말한 방식이고, 휘렘 슐판이 술레이만 대제에게, 프리다 칼로가 디에고 리베라에게 사랑을 담아 보낸, 충격적일 정도로 지저분한 편지도 있지만요."

이처럼 편지는 용도에 따라서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 결정적 이유가 되기도 한다. 저자는 이런 역사 인식이 충분히 준비된 상태에서 직접 편지를 확인함으로써 어떤 경로를 거쳐 어떤 인식하에 집권자가 결정을 하는지도 알 수 있다. 이 편지들은 역사 의식이 확고한 사람이 아니라면 쉽게 해낼 수 없는 일을 해낸 저자의 끈질긴 노력의 산물이기에 더욱 값지고 우리의 '조선왕조실록'에 버금가는 일을 한 역사학자이자 작가가 일권낸 훌륭한 작업이라고 독자는 믿는다. 그의 정확하고 올바른 역사 인식은 각 편지를 소개하고 뒤에 저자가 해설, 설명을 붙일 때 여실히 드러난다.

 


 

이렇게 탄생한 이 책이 어느 한 부분, 단 하나의 편지도 훌륭한 역사의 기록일 수 있는데다 엄중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몇 개의 편지 해설에서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함으로써 '독자를 위한 책'의 집필을 확신하게 한다. 한 예로 '반유대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시대 에밀 졸라가 프랑스의 인종차별과 반유대주의에 맞서 "나는 탄핵하노라!"라고 규탄한 편지를 소개한다.

21세기의 저자는 그런 저항이 끔찍하게 '현대적'으로 느껴졌으며,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양 대륙에 새롭게 독기 가득한 반유대주의가 나타나는 시대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졸라의 주장)고 생각했다고 털어놓는다. 우파뿐 아니라 (영국에서는 특히) 사회주의 좌파 주류에서도 스탈린의 유대인 말살 정책으로 되돌아가는 비도덕적 압력이 점차 나타났다고 말하며, 이런 주장이 훨씬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마르크스주의가 다시 인기를 얻은 셈이라고 평가한다. 저자는 이 분에서 두 명의 마르크스주의 창시자,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주고받은 귀중한 편지를 함께 실었다고 언급한다. 이들이 평범한 품위와 평등을 위해 싸운 이타적이고 고결한 사회운동가라고 생각해온 사람들은 정작 사납고 파렴치한 인종차별주의와 반유대주의를 마주하고 아마 깜짝 놀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책에는 람세스 2세가 히타이트 왕 하투실리에게 보낸 경멸 어린 편지가 실려 있다. 그리고 1,000년 뒤에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옥타비아누스(미래의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 자신이 클레오파트라와 "같이 잔' 것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불평한 편지도 공개한다. 실제로는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고 저자는 해설을 덧붙인다. 다시 1,000년 뒤로 가면 살라딘과 사자왕 리처드 1세는 "신성한 땅"을 나누는 협상을 벌인다. 또 500년 뒤로 가면 펠리페 2세가 메디나시도니아 공작에게 영국에 맞서 무적함대를 출정시키라고 명령한다. 다시 400년이 흐르면 링컨이 그랜트 장군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그의 관대함에 감탄하게 된다. 또 루스벨트와 처칠이 1940년 절박한 몇달 동안 주고받은 글을 이 책에 공개한다.

 


 

독자는 얼마 전 케이블TV에서 우연히 '하렘'에 관한 오스만 제국 당시 황제 술레이만과 휘렘이 등장하는 역사 드라마를 즐겨봤다. 터키 방송이 제작한 드라마로 보이는데 굉장한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이슬람에 대해 거의 무지했던 독자는 배운다는 의미로 참 열심히 보았다. 그 드라마에서 황제 술레이만 대제와 휘렘 술탄이 자주 등장한다. 하렘의 어원은 아랍어에서 '금지된 것'을 의미하는 '하람'이라고 한다. 하람은 원래 쿠란 혹은 샤리아에서 금지하는 모든 것을 가리키지만, 좁은 의미로는 각 가정에서 손님, 외부인이 들어갈 수 없는 여인들의 방을 가리킨다. 이 드라마에서는 궁 안에 여자들의 거처다. 우리 조선시대로 보면 궁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이들이 주고 받은 편지(1530년대) 중 술레이만이 휘렘에게 보내는 편지를 공개한다. 일부만 여기에 옮긴다.

 

나의 외로운 자리 왕좌, 나의 부, 나의 사랑, 나의 달빛

나의 가장 진실한 친구, 나의 동반자, 나의 존재 그 자체, 나의 술탄...

 

저자는 편지의 끝에 "1521년쯤 휘렘은 첫아들을 낳았다. 아주 중요한 남성 후계자를 낳은 것이다. 술레이만은 첩 한 명에게 아들 한 명만 둘 수 있다는 제약을 무시했고, 첩과 결혼한 적 없는 다른 술탄들의 전례 역시 무시하고 1533년쯤 휘렘과 결혼했다. 휘렘은 운 좋게도 황제에게 아들 다섯과 딸 하나를 안겨 주었다. 대부분의 자녀는, 특히 아름답고 지적인 딸 미흐리마는 그중에서도 오래 살았다. 그녀는 아버지의 충실한 보좌관이자 오빠 셀립의 자문이 되었다.

 


 

이 책에는 놀랍게도 트럼프 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주고받은 편지 중 트럼프의 편지를 공개한다. 당시 정상회담을 관련된 서신들이다. 여기에 있는 편지는 2018년 5월 24일 날짜로 못박혀 북미 정상회담(하노이)보다 20일 앞서 보낸 것이다. "양쪽 진영에서 오랫동안 기대려온 정상회담과 관련한 최근 협상과 논의에서 보여주신 위원장의 시간과 인내, 노력에 대단한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위원장과 거기서 만나는 순간을 매우 기대하고 있었습니다...."(p.384)

 

저자 :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SIMON SEBAG MONTEFIORE)

케임브리지대학교의 곤빌 앤드 캐이어스 칼리지에서 역사를 공부했다. 저서로 새뮤얼 존슨상, 더프 쿠퍼상, 마시 전기상의 최종 후보작이었던 《예카테리나 대제와 포??킨CATHERINE THE GREAT AND POTEMKIN》, 영국출판대상에서 올해의 역사책상을 수상한 《젊은 스탈린STALIN: THE COURT OF THE RED TSAR》, 소설 《사셴카SASHENKA》, 오프라 윈프리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로마노프 왕가THE ROMANOVS: 1613-1918》, 전 세계적으로 100만 부 이상 판매되었으며 중국에서 웬진 올해의 책상을 수상한 《예루살렘 전기JERUSALEM: THE BIOGRAPHY》 등이 있다.

 

역자 : 최안나

어려서부터 언어를 좋아한 때문인지 글로 먹고살게 되었다. 문장 하나가 누군가의 삶을 바꾸고 책 한 권이 누군가의 세상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현재 출판사에서 인문ㆍ역사ㆍ사회 분야 도서를 편집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