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고 - 불안과 기만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조숙의 지음 / 파람북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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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숭고』를 읽으려면 '숭고', '숭고미', '숭고의 미학'에 대한 개념 정립이 먼저일 것 같다. 미학에서, 숭고란 위대함을 나타내는 용어로, 물리적, 도덕적, 지적, 형이상학적, 미적, 정신적, 또는 예술적인 것을 포함한다. 이 용어는 특히 계산, 측정 또는 모방의 가능성을 넘는 위대함을 나타낸다는 것이 사전적 풀이다. 그러나 숭고란 단어를 백과사전에 찾아 들어가면 훨씬 깊고 풍부한 의미를 들여다볼 수 있다. 세계미술용어사전에 따르면 미적 범주의 하나로서 보통 좁은 의미의 ‘미’와 대립되는 개념으로 쓰인다. 대상이 인간을 압도하는 크기 또는 힘을 갖는 경우, 소위 미적 형식은 상실되며 처음에는 그 형식과 내용의 길항(拮抗)으로 인해 불쾌감을 느끼지만 곧 그런 느낌이 사라지면 유한한 감성을 매개로 무한한 것을 표현하려고 한다.

그럼으로써 오히려 인간의 생명 감정이 자극되고 역감(力感)이 높아져 대상에 대한 경외, 정서적인 경악이나 황홀경, 즉 넓은 의미로의 ‘미’의 감정을 낳게 된다. 전형적인 것으로서는 해돋이나 바다와 같은 숭고한 자연(칸트Immanuel Kant), 비극적인 행위의 도덕적 신념(쉴러Friedrich von Schiller) 또는 초기의 인도적, 모하메드적, 유태, 기독교적 시와 신비주의 속에서의 신의 임재(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가 언급될 수 있다. 후기 고대의 논문 『숭고에 관하여Vom Erhabene』(수도-롱기누스Pseudo-Longinos) 이래로 숭고의 개념은 미학의 확고한 구성성분이 되었으며, 18세기와 19세기에 들어서 체계적으로 완성되었다. 철학과 미학적 시선으로 보는 숭고는 굉장히 복잡하고 난해한 아름다움으로 일반 대중에게 다가설 수 있다.

 


 

이 책은 조각가 조숙의가 자신의 예술적 지향을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낸 예술론이다. 저자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주관하는 가톨릭 미술상 본상을 수상하고 한국여류조각가회 회장을 역임한 중견 조각가이며, 현재 인천 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인간의 내면에 깃든 신성과 숭고의 미학을 탐구해오고 있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현대과학의 눈부신 성과는 인간의 내면은 파편화되고 정신성을 훼손하는 부작용을 낳았다는 점을 부각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멀어지고 신과 인간의 관계 또한 불편해졌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물신주의는 우리 모두를 알게 모르게 속물적 존재로 전락시켰다. 저자의 생활철학이자 예술관이라고 할 수 있는 '숭고의 미학'이 소중하게 다가오며 빛을 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가 문명의 척도로 여기고 있는 과학기술이 우리의 삶을 충만하고 윤택하게 해주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우리는 결코 포기하는 일이 없다. 기대를 넘어서 확고한 믿음으로 자리 잡고 있기까지 하다. 이 믿음은 실상 물질에 대한 미신이자 맹신에 지나지 않는다. 기술의 진보가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며, 우리의 존재의 가치를 실현해 줄 것이라는 착각은 오래 앓아온 현대인의 고질병이다."고 강조한다. 삶을 진정으로 가치 있게 하는 숭고한 인간은 고귀한 영혼과 관련되어 있으며, 그 앞에는 수많은 장애물이 깔려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예술하는 사람을 '숭고한 인간', 예술을 숭고미를 지향한다는 자신의 예술론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그의 이런 생각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맥'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독자는 예술가도 아니고, 철학가도 아닌 입장에서 그의 작품을 평하기도 어렵고 그의 작품에 내재된 그의 예술혼이나 감각을 읽어낼 수도 없다. 이른바 문외한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 책의 서평은 그의 숭고의 미학이나 그의 예술혼, 작품론 등은 모두 저자의 주장에 따라 하나씩 배우는 심정으로 이해해가는 과정임을 미리 밝힌다. 그의 예술에 대한 생각부터 들어본다. 그는 「서문」에서 우리의 삶은 그 자체가 하나의 충체적인 예술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아가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깊은 내면에 해결되지 않은 상처와 아픔의 가시를 안고 살아간다. 예술은 무언가를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아픔과 갈등을 필연적으로 받아들이면서 화해의 길을 모색하며 경직되는 것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싶었다. 아니 단 한 사람에게라고 더 알리고 싶었다." 이것이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한 이유다. "인간 지성에 바탕을 둔 인문과학이 아무리 인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수평적인 차원만을 설명해 줄 수 있을 뿐이다. 그의 존재가 본래 어디서부터 창조되고 유래했는지 또 궁극적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지 하는 인간 존재의 핵심을 꿰뚫는 질문에 대해서는 전혀 답을 주지 못한다. 그러기에 철학을 비롯한 제반 인문과학은 인간에 대한 단편적인 이야기들만 제시할 수 있을 뿐이다. 피상적인 삶에 몰린 현대인에게 우선 '고요한 시간'을 가질 것을 제안하며, 누구든지 갈 수 있는 이 고요의 길을 통해서 만나게 되는 숭고한 인간의 내면세계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저자의 작품 세계와 연결된 이 같은 주장은 저자의 작품들을 읽고 이해하는 데 결정적 단서를 제공하리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저자는 더 구체적인 설명을 내놓는다. 저자는 우리 사진이 내면 깊숙이 안고 있는, 이유 없이 당하는 가시와 같은 '고통의 문제'에 주목했다고 털어놓는다. 그에 따르면 우리 인간이 겪게 되는 아픔과 고통의 문제는 인생 여정에서 누구나 겪게 되는 희로애락 가운데에서도 절대 피해갈 수 없는 가장 절실하면서도 인간 구원과 관련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이 신비로운 감정인 고통의 문제가 놀랍게도 예술작품에 있어서만은 매우 중요한 가치로 등장한다. 인류가 사랑한 예술작품에는 반드시 여러 형태의 고통이 아로새겨져 있고 동시에 숭고한 정신을 드높인다."고 전제하고 "인간의 깊이를 다루는 작품은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게 하고, 상처 입고 고통 당하는 내면의 나와 화해의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가까운 예로서 내 작품 〈자신 안을 쳐다보다〉가 그렇다. 자신을 향한 시선은 결국, 고요의 통로를 통해서 깊은 침묵 안에서 자신의 근원을 되찾고, 고귀하고 숭고한 자신을 회복하여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한다. 나아가 조화로운 자기조절 능력과 타인(대상)과의 상호작용, 창의적인 소프트웨어를 발전시키는 바탕이 된다. 삶을 진정으로 가치 있게 하는 숭고한 인간은 고귀한 영혼과 관련되어 있으며, 그 앞에는 수많은 장애물이 깔려 있다. 다소 추상적인 단어들이 많아 한 번 읽고서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내용이지만 한 번만 더 읽어본다면 비로소 그의 작품세계와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저자의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고,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가는 결정적 문장이 바로 이것이다. "나는 창작하는 사람으로서 자연스럽게 창작하는 주체를 중요하게 여긴다." 저자는 이 때문에 이른바 광활하고 아름다운 대자연을 접하게 되면 습관처럼 창조주를 찾아 찬미하고 싶은 생각에 이른다. "또한 내가 좋아하는 베토벤의 피아노곡 〈비창〉을 들으면서 참으로 훌륭한 연주자에게 진정으로 경의를 표하지만, 이 곡 안에 들어가 감상하면서는 곡의 원주인, 바로 베토벤을 떠올린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는 말도 설득력을 갖는다. 저자는 신비로운 인체를 탐색하는 인체 조각의 세계도 마찬가지이다. 이토록 섬세하게 설계된 신비로운 인체는 바로 '영적인 몸'이라고 말한다.

저자의 예술론은 서서히 정점을 향하여 오른다. "인간은 정신적이고 영적이며 신비로운 존재이면서도 문젯거리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존엄한 존재임이 틀림없다. 존엄하면서도 문젯거리이기도 한 '아이러니'야말로 인간 존재를 관통하는 '숭고한 인간'을 보여준다. 이렇듯 신비로운 세상을 창조한 인격적인 사랑의 '창조주'에 관해서도 이 책에 썼다고 밝힌다. 조각가인 저자가 글쓰기를 시작하게 된 것은, 운둔에 가까운 생활에서 오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다고 「서문」 첫 문장에서 이미 토로한 사안이다. 작가가 작업이 끝나고 텅 빈 작업실에서 느끼는 사람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은, 유대감의 상실과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것이라고 여겨진다는 게 저자의 집필 이유를 한 가지 더하는 것 같다.

 


 

"아도르노와 료타르의 미학 관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둘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점이 있지만 하나의 공통점이 발견되고 있다. 아도르노에 있어서 예술작품은 사유될 수도 묘사될 수도 없는 것의 가상적이고 감각적인 현실이었다. 그는 현대의 문화를 중의성이라는 개념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중의성(重義性) 속에는 미적이고 의사소통적인 잠재력을 해방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과 문화가 사멸하게 될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다.

아도르노가 미적 체험의 무아적 황홀경의 계기를 유토피아적 계기로 해석하는 한 그의 사상은 중의적이라고 할 수 있다."(고영복, 「료타르의 숭엄성의 미학」, 1996) 독자는 갑자기 미학에 관심을 둔 것은 이 책의 제목이 '숭고'이고, 이 숭고에 대한 미적 추구는 오랫동안 논란이 거듭된 점 때문이다. 독자는 이들로부터 배운 것은 숭고함에 대한 견해차뿐만 아니라 '숭고미'에 다가가는 접근의 차이이다. 저자도 이미 이런 논의나 주장에 대한 충분한 인지 아래서 자신의 작품을 관통하는 '숭고'에 대해 자신만의 이론을 정립하였기 때문이라고 이해된다.

그의 작품들은 이를 더욱 설득력 있게 해주는 실체적 증거로서도 충분하다. 저자는 조각가이다. 그의 조각예술론을 여기에 적어본다. "구상 조각에 있어서 인체라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모델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러한 인체 조각을 흔히 판에 박은 듯 정형화된 형태의 전형으로 간주하기도 하는데 이는 그만큼 인체 조각이라 것이 어렵다는 말이기도 하다. 인체 조각에 관한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이른바 누드의 포즈부터가 조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인간적, 심리적 표현성을 그 속에 담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격정적인 몸짓이 아니더라도 절제된 포즈의 입상이나 좌상은 보다 내면화된 감정의 표출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p.99) 이후 이 책에 실린 작품 감상이나 해석은 이 책에 실린 저자의 예술론과 해설에 따라가면 결코 후회하지 않을 독서가 됐음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독자는 믿는다.

 


 

‘고통당하는 인간’은 언제나 피해갈 수 없는 중요한 중심 화두이다. 예술가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어느 정도의 애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고통의 문제를 쉽게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의 생물학적 구조나 심리상태, 사회생활, 심지어 영혼의 문제까지 진지하고 성실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당하는 고통을 간과한다면 인간의 가장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를 빼놓는 것이다.(p.134)

 

저자 : 조숙의

 

조각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대학원에서 「현대조각에 있어서 성(Holiness)과 실존(Existence)의 문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1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서울, 제네바, 뉴욕 등에서 17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창작활동과 더불어 20여 년간 교직 생활을 했으며, 2000년부터 인천 가톨릭대학교에 재직하면서 가톨릭 예술의 본질을 탐색하는 연구를 진행해오고 있다. 2007년 『월간조선』에서 주관하는 ‘평론가 선정 현대작가 55人’에 선정되었고, 2015년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주관하는 ‘가톨릭 미술상 본상’을 수상했다. 한국 조각계의 중심에 굳건히 자리매김해오고 있는 한국여류조각가회 회장을 역임했고, 가르멜수도회 제3회원으로 2021년 은경축을 지냈다. 현재 고요한 창작 생활과 연구 활동으로 다음 세대의 꿈나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주요 작품 및 소장처로는, 제네바 UN 대한민국대표부 소녀상, 과천시민회관 로비 벽면 부조 무동답교놀이, 2005년 서울 가톨릭대학교 개교 150주년 기념 조각(신학대학, 혜화동), 맨발 가르멜수도회 영성센터 청동문과 성미술 작품(명륜동 한국본부), 일만 위순교자현양동산 위로의 주님상(인천 강화도), 나자로마을 나자로상(의왕시), 겟세마니 피정의 집 십자가의 길(강원도 인제), 성가소비녀회 인천관구 성가족상, 성당 성미술 작품,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정하상기념경당의 가족상, 정약종 등 5人의 초상 조각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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