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도망자의 고백
야쿠마루 가쿠 지음, 이정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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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이런 내가 진정으로 웃을 수 있는 날은 찾아올까요?” 뺑소니로 사람을 죽인 죄에서 도망치는 가해자와 그의 뒤를 쫓는 피해자의 남편, 죄를 짊어진 이들의 고백을 통해 ‘죄와 벌‘의 의미 그리고 진정한 속죄를 다시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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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도망자의 고백
야쿠마루 가쿠 지음, 이정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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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어느 도망자의 고백』은 일본의 추리소설이다. 저자 야쿠마루 가쿠는 일본을 대표하는 추리소설가로 손꼽힌다. 그가 쓴 수많은 추리소설은 대부분 독자들의 선풍적인 인기를 몰고 왔으며, 이 가운데 3편은 일본의 TV에서도 드라마로 방영될 정도로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작가다. 특히 이 소설은 ‘현대사회의 죄와 벌’을 주제로 집필해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못지 않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는 현재 일본 최고의 사회파 미스터리 작가로서 흡입력 있는 이야기 속에서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묵직한 작품으로 큰 지지를 얻고 있다. 그런 저자가 이번에는 ‘죄의식’과 ‘진정한 속죄’에 관한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이 작품 『어느 도망자의 고백』은 사람을 치고 도주한 뺑소니 가해자와 그로 인해 사망한 피해자 가족이 사건 이후 얽히며 일어나는 사건을 다뤘다. 탁월한 심리 묘사와 특유의 가독성 높은 문체로 써 내려가 쉽게 잘 읽히는, 그의 작품으로서는 가장 최근의 수작(秀作)이다. 추리소설이지만 흉악한 범죄나 사이코패스 범인을 추적하는 스릴러가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 문제, 개인의 심리 변화 등에 중점을 둔 작품이다. 이 때문에 그의 작품은 곧잘 '도스토옙스키적' 사회 구조 비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 같다. 이 작품 역시 단순한 자동차 뺑소니 사건의 피의자와 피해자간의 심리적 변화와 갈등을 잘 묘사했다는 평가을 받았다. 법에 따른 처벌만으로는 다할 수 없는 속죄, 가해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 등, 우리가 직면한 사회적 문제를 폭넓게 아우르는 『어느 도망자의 고백』은 야쿠마루 가쿠 자신도 ‘이것이야말로 내가 지금 써야 하는 이야기’라 칭한 이 작품이야말로 그의 ‘승부작’이자 새로운 ‘대표작’임을 숨기지 않는다.

 


 

대학생 마가키 쇼타가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늦게까지 놀고 귀가한 밤, 그의 휴대전화에 여자 친구의 문자가 날아든다. ‘지금 당장 날 보러 오지 않으면 헤어지겠다’는 메시지를 본 쇼타는 술이 완전히 깨지 않은 상태에서 운전대를 잡는다. 비가 퍼붓는 악천후를 뚫고 차를 몰고 가던 중 무언가를 치었다는 것을 느꼈지만 공포로 인해 그대로 그곳을 떠난다. 그리고 다음 날, 쇼타는 뉴스를 통해 자신이 친 것이 길을 건너던 노인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신의 미래, 가족의 행복, 연인의 웃음···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이란 공포감이 엄습한다. 죄를 인정하면 영영 잃어버리게 될 것들이 너무도 많았던 쇼타는 경찰에 붙잡히고도 자신이 저지른 일에서 계속해서 눈을 돌리기만 한다. 그러는 한편, 피해자의 남편 노리와 후미히사는 한 가지 ‘결심’을 마음속에 품고 쇼타를 만나러 간다.

 

"차 안에 나나의 울음소리가 울렸다. 처음에는 신경 쓰지 않았지만, 평상시와 다른 소리로 울고 있었다. 왜 그럴까 싶어 조수석을 쳐다보며 이동 장에 왼손을 뻗은 순간, 엄청난 충격이 일어 앞 유리를 봤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세찬 빗방울이 부딪히는 가운데, 뭔가에 올라탄 듯한 감촉이 핸들을 쥔 손에 전해지고 빗소리를 지우는 듯한 ‘끄아악’ 하는 기괴한 소리가 귀에 울렸다. 순간 브레이크에 발을 옮기려 했지만, 백미러에 비친 붉은 빛이 눈에 들어와 그대로 액셀을 밟았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절규가 몇 초 만에 들리지 않게 되고, 그 대신 심장이 쿵쾅대는 소리가 들렸다. 차내 온도가 단숨에 10도쯤 내려간 듯한 냉기를 등으로 느끼며 다음 적색 신호등이 나타날 때까지 계속 액셀을 밟았다."(p.15)

 

 

지금까지 야쿠마루 가쿠는 작품 속에서 주로 ‘피해자’에 포커스를 맞춰, 피해자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조명하고 그들의 심정을 묘사하는 데 주력해 왔다는 것이 평단의 언급이다. 하지만 『어느 도망자의 고백』은 그의 데뷔 이래 처음으로 사건의 가해자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이 책은 뺑소니 사망 사건을 일으킨 가해자, 마가키 쇼타의 시점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그의 내면을 여실히 그린다. 야쿠마루 가쿠가 그동안 써온 살인에 관한 이야기에서 가해자는 뉴스에서나 볼 법한 극악무도한 범죄자로 등장한다. 그렇기에 독자들은 작품 속 상황을 ‘어디까지나 나와는 관계없는 허구의 일’이라 받아들이며 읽는다. 하지만 이 작품은 차를 운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사망 사고를 일으킨 주인공 쇼타의 입장이 될 수 있다고, 가해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만일 사고가 일어났을 때 쇼타와 같은 말과 행동을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느냐는 물음을 우리에게 던진다.

이 작품의 중심에 있는 주제는 바로 ‘죄의식’과 ‘속죄’다. 죄를 저지르고 재판을 받으면 법에 따른 형벌이 선고된다. 징역형이라면 정해진 형기를 채우고 사회에 복귀하면 법적으로는 책임을 다한 것이며, 죄를 뉘우친 것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여기서 작가는 ‘과연 법적 책임을 다했다 해서 진정으로 죄를 뉘우친 것이라 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작중 주인공 쇼타가 겪는 시련을 통해 가해자가 진심으로 자신의 죄와 죄의식을 마주하고 속죄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그 후의 삶을 성실히 살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런 점에서 추리소설을 단순히 범죄와 범죄자를 체포해 응징하는 점에 주력하지만 저자의 이 작품은 추리소설을 한 단계 끌어올려 사회의 구조적 부조리를 드러냄으로써 사회 발전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흥미 위주보다는 범죄와 죄의식, 가해자와 피해자의 심리 변화 등을 디테일하고 세밀하게 좇아간다. 재판을 통해 4년 10개월의 징역형을 살고 나온 쇼타뿐만 아니라, 쇼타의 가족 자체는 파괴되었다. 쇼타가 형기를 다 마치고 나왔을 때, 더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현실을 직시한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혼했고, 사건이 일어나기 전 결혼을 앞둔 누나도 파혼했으며, 유능한 교육학자였던 아버지의 명예는 바닥에 떨어졌다. 가족 모두가 정상의 삶을 유지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쇼타 역시 전과자로 쉽게 취직마저 할 수 없다. 예전 친구를 만나도 거리를 느낄 뿐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완전히 쇼타는 딴세상 사람이 된 것이다. 그나마 그의 곁에서 다시 친구가 되어준 아야카만이 유일한 인간미를 보여줬다. 그리고 그의 옆집으로 이사 온 이상한(?) 노인이 그의 시야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교도관의 질문에 마가키 쇼타는 "네" 하고 고개를 끄덕인 뒤 감방을 나왔다. 교도관을 따라 복도를 지나 안내된 방에 들어갔다. 테이블 위에 이곳에 왔을 때 가져온 가방이 놓여 있었다. 그 옆 상자에는 지갑과 집 열쇠와 휴대전화가 들어 있고, 그 옆에는 새 옷이 놓여 있었다."(p.129)

 


 

죽은 여인(피해자)의 남편이 가해자를 쫓는 장면이 소설 속에 나온다. 그(가해자)는 징역형 4년 10개월로 끝나지만 죽은아내가 돌아올 리 없다. 더욱이 자신도 쇼타가 출소하면 89세임을 인식하며 복수를 준비하는 것처럼 묘사된다. 그러나 법이 사회적 갈등을 완전하게 해결해 줄 수는 없다. 아무리 중간에서 법이 나서 합리적 판단으로 가해자에게 '벌'을 줘도 피해자로서는 성에 차지 않을 수 있다. 대개는 그렇다. 더욱이 자동차로 사람을 치어 죽이고 도망간 주제에 법정에선 사람이 치인 줄도 몰랐고, 가벼운 충격의 느낌은 있었지만 작은 동물일 것으로 생각했다고 뻔뻔하게 거짓말을 늘어놓는 가해자를 인간적인 차원에서 그냥 둘 수 없다는 사적 보복, 복수의 감정이 생길 수 있다. 가해자가 법정에서 전혀 죄를 뉘우치는 기색이 없었으니 피해자의 남편으로서는 분노와 복수를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상식일 수 있다. 피해자가 원하는 그대로 법이 결론 내주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 나선다는 복수심은 인간이기에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법의 판단은 분노나 동정, 연민 같은 것이 끼어들 리 없다. 즉 법리적인 판단은 다르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 그러니 내가 만족할 수 없는 판결을 마주했다면,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마무리 짓고 싶은 게 인간의 마음일 수 있다. 하지만, 아니었다. 피해자의 남편이 가해자를 쫓는 건 사실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가해자를 쫓던 그 마음은 일반적인 예상과는 조금씩 달라져 간다. 그런 변화의 심리적 묘사는 저자의 장기 아닌가? 오히려 인간다운 면이 강조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언제 어떤 상황을 만났느냐에 따라 우리는 가해자도 되고 피해자도 될 수 있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상황에 따른 결과는 자신의 의지가 아니더라도 책임이라는 형태로 짐을 지게 한다. 한때는 가해자였던 이가 다른 상황에서는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저자는 말하고 싶은 게 아닐까?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소설은 추리작가 야쿠마루 가쿠의 전작(前作)에서 보지 못한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쓴 것이란 느낌을 받는다. 쉬운 표현으로 죄와 죄인, 그리고 피해자와 경찰관 등 범인을 쫓는 추리소설이 아니다. 저자는 이 작품에서 가해자의 눈으로 사건을 본다. 뺑소니 사건의 가해자가 사건을 일으켰을 때부터 사건 이후의 이야기까지 가해자 쇼타의시선으로 사건과 상황이 전개된다. 그리고 그는 분명 벌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이고, 법의 심판으로 벌을 달게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가 받은 형량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게 소설 속 이야기로만 남을 수 있을까? 독자도 운전을 하는 사람으로서 운전하는 사람이라면 사고의 위험을 함께한다. 누구나 가해자 쇼타의 입장이 될 수 있고, 피해자와 유가족의 입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막상 사건이 터진다면, 운전자인 내가 부주의로 누군가를 치어 죽였다면, 그리고 아무도 보는 사람 없는 비오는 날 밤이었다면... 일상에서는 쉽게 상상하지 않는 일이지만 이 소설을 읽으며 "내가 가해자였다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해보니 어쩌면 쇼타와 같은 상황 대처, 징역형, 그리고 새 삶 등 끔찍하기만 하다. 끔찍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지만 마지막 생각은 쇼타와 비슷하게 흘러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죽이는 교통 사고를 일으켰지만, 마땅히 사회가 정한 대로 죄값을 치렀다면 남은 인생은 새로 시작할 상황으로 만들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점에서 범행 동기보다 범행 결과만 중요시하는 법의 맹점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다만 범죄자의 심리 변화와 보통 인간의 심리 변화의 차이를 어떻게 계측화할 수 있겠는가?라는 의문점만 쌓여간다. 즉 법이 벌을 가한 범죄자의 죄의식을 어떻게 들여다보며 숫자로 표시하듯 명확하게 계측할 수 있을까? 어려운 문제 아닐까?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이 마음속에서 맴돈다.

 


 

저자 : 야쿠마루 가쿠

 

1969년 효고(兵庫)현 아카시(明石)시 출생. 도쿄로 이사 온 열한 살 때부터 용돈을 손에 쥐고 극장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영화에 푹 빠진다. 배우를 지망해 고교 졸업 후에는 극단에 들어가지만, 몸으로 이야기를 표현하기보다 머리로 이야기를 구상하는 게 자신의 적성에 맞다는 걸 느끼고 극단을 그만둔다. 시나리오 신인상 1차 예선에 통과하지만 성과가 나오지 않던 차에 친구를 통해 만화 원작의 길을 알게 돼, 잡지 『올맨』에 가작으로 입선한다. 하지만 잡지의 폐간 등으로 한계를 느낀다. 그러던 중 당시 신인 작가였던 타카노 카즈아키의 데뷔작이자 에도가와 란포 상 수상작인 『13계단』을 읽고 충격을 받아 소설가의 길을 가기로 한다. 에도가와 란포 상을 목표로 피나는 노력 끝에 2003년 33세의 나이에 데뷔작 『천사의 나이프』로 제51회 에도가와 란포 상을 수상한다. 그 외에도 2007년 『오므라이스』로 제60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후보, 2011년 『하드럭》으로 제14회 오야부하루히코상 후보, 2014년 『유자이』로 제35회 요시카와에이지문학신인상 후보, 2014년 『불혹』으로 제67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후보에 올랐으며, 2015년 발표한 『침묵을 삼킨 소년』으로 2016년 제37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을 수상했다. 2016년 『A가 아닌 너와』로 제37회 요시카와에이지문학신인상을 수상하였다.

데뷔 10주년이었던 그는 일본을 대표하는 사회파 추리소설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하였는데, 그의 작품은 대체로 사회구조적 범죄를 통해 심화되어 가는 현대 사회의 냉혹한 현실에 의문을 던진다. 소설가가 되어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법과 경찰, 매스컴이라는 사회 시스템을 그려 왔다. 앞으로도 미스터리와 사회적 문제를 다루고 싶다는 야쿠마루. 세 번의 홋카이도 취재를 통해 완성시킨 작품 『허몽』을 비롯하여 기다렸던 복수의 밤』, 『익명의 전화』, 『어둠 아래』, 『허몽』, 『악당』 등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형사의 약속』은 2013년 일본 TBS 방송국에서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한 『형사의 눈빛』과 장편 『그 거울은 거짓말을 한다』에 이은 ‘나츠메 형사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다.

 

역자 : 이정민

 

출판 및 일본어 전공. 일본 도쿄의 회계사무소에서 인턴십 프로그램을 수료하고 귀국 후에는 일본인 주재원의 전속 통역으로 근무하며 한국어와 일본어의 차이와 사이에 매료되었다. 현재 재미있고 감동적인 작품을 기획 및 소개하는 데 힘쓰고 있다. 역서로는 『어긋나는 대화와 어느 과거에 관하여』, 『슬로하이츠의 신』, 『아침이 온다』, 『신의 아이』, 『눈의 소철나무』, 『요철』, 『최저』, 『언덕 중간의 집』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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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미스터리 키친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김진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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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음식에 대해 좋은 습관을 갖고 있다. 소량이고 위생적이다. 또 그들만의 특성인지 모르겠지만 아기자기한 멋이 있다. 원래 그랬는지, 아니면 개혁(메이지유신) 이후 달라진 습관인지 모르지만 좋은 습성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음식 문화도 굉장히 위생적이지만 굴곡진 역사 속에서 침략 받고 지배 당하고 하는 과정에서 음식 문화가 많이 비틀어진 것 같다. 음식 문화는 그 나라, 그 민족만의 특성이 깃들어 있다. 세계 제일의 음식 문화라고 하는 중국은 사실 '못 먹는 게 없다'고 할 정도로 모든 걸 먹는다는 의미에서 선진 음식 문화라고 독자는 생각지 않는다. 일본이 위생적이고 소량의 음식섭취(먹을 게 많지 않아 소식의 습관이 들었는지 모르지만) 문화가 더 선진적이다.

이 책 『한밤의 미스터리 키친』은 일본의 인기 작가 이시모치 아사미가 쓴 '푸드 미스터리 소설'이다. 미스터리 소설이라고 하지만 범죄를 저지르고 이를 쫓는 탐정이나 수사관 이야기는 아니다. 읽는 순간 침이 고이는 특별한 음식 미스터리 소설이다. 저자 이시모치 아사미는 ‘일본추리작가협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 등 일본의 내로라하는 대표 문학상에 잇달아 이름을 올렸으며, 특히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에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과 각축을 벌이면서 일본을 대표하는 미스터리 작가로 자리매김했다고 한다. 추리소설 탐독 경력이 짧은 독자로서는 히가시노 게이고는 잘 아는 편이지만 이 책의 저자에 대해서는 잘 몰라 조금 안타까운 마음으로 열심히 읽었다.

 


 

그는 발표하는 작품마다 어느 하나 장르가 겹치지 않고 클로즈드 서클, 사회파 미스터리, 심리 서스펜스 등 미스터리의 다양한 변주를 보여주는 천재 작가이자 일본에서 평단과 대중들이 믿고 보는 작가로 손꼽힌다고 하니 내친 김에 그의 전작들을 몇 권 더 읽어볼 생각이다. 특히 그는 소설을 출간할 때마다 각종 미스터리 랭킹 상위를 독점하면서 현재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고 하니 추리소설의 영역을 무한 확대시키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듯하다. 물론 저자의 노력의 결과겠지만.

이 작품 『한밤의 미스터리 키친』은 분명 장르가 ‘미스터리’이지만 사람 하나 죽지 않고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만 폴폴 풍기는 독특한 '미식' 미스터리이다. 과즙향 짙은 나파밸리 와인과 로스트비프, 담백한 사케와 짭짤한 오징어 통구이, 차가운 맥주 한 잔과 겉은 바삭 속은 촉촉하게 익힌 다코야키가 연달아 등장하고 그 군침 도는 식탁에 오랜 친구와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게 전부이다.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은 이야기 속에서 예기치 못한 사건을 마주하고, 머리좋은 친구 ‘나가에’를 통해 사건의 진실을 듣게 되는 것은 그 어떤 안주에 못지않게 감칠맛 나는 저녁 메뉴다. 얼마 전 히트를 쳤던 『카모메 식당』, 『심야 식당』(독자는 영화로만 봤다)이 생각나기도 한다. 일곱 개의 단편을 모은 이 단편집은 단편 하나하나의 향과 맛도 강렬하지만, 작은 반전들이 이어지다 마지막 편에서 팡 터지는 반전으로 독자들의 눈을 휘둥그레 만든다. 흥미롭기까지 하다.

 


 

이 책의 단편 소설은 모두 7편으로, 각 단편마다 제목에 음식 이름이 부제로 나온다. 무척 흥미롭고 일본 사람들도 이런 걸 먹나? 생각케 하는 메뉴도 있다. 첫 번째 「산 넘어 산」에는 나파벨리 와인과 로스트 비프가 나온다. '술과 안주' 다. 독자는 미식가도 물론 아니고, 미식가들에 대한 독자의 평가는 한결같이 박하다. 이유는 간단명료하다. 지구 한쪽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고 있는데 한쪽에선 맛있는 음식을 잔뜩 쌓아놓고 어떻게 먹어야 더 맛있게 먹는지 연구하고 있어서다. 그래서 독자는 미식가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옛날 조선시대처럼 한 잔 술과 안주는 있으면 좋고 없으면 없는 대로 좋다. 벗과 나누는 정담이나 '나쁜 놈들' 욕할 수 있어 좋다. 특별히 안주를 챙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인지 TV 프로그램에서 음식 소개하는 것을 여간해선 보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소설로 읽는 음식 이야기는 좋은 점수는 줄 수 없지만 흥미 그 이상의 느낌은 없다. 그러나 이 책의 작가에 대해서는 사뭇 다른 생각이 든다. 우선 책의 완성도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저자 특유의 교묘한 트릭이 잘 녹아들어 있는 깔끔한 결말, 코스요리의 화룡점정이다. 추리소설 기법에 잘 들어맞게 구성했다는 얘기다. 늦은 밤, 오늘을 살아가기에 바빴던 일상을 뒤로하고 식탁에 둘러앉아 편안하게 이야기를 듣다 보면 문득 일상을 시름을 잠시 내려놓게 될 맛있는 소설이라는 점에서 후한 점수를 주게 된다. 물론 읽다 보면 배가 고프게 될 것이니 식사 후에 읽는 것이 어떨지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우리의 술 문화도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술을 혼자 먹지 말 것을 권했다. 맛이 없을 뿐 아니라 부정적인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이를 가속화시켜 부정적인 습관도 생긴다는 의미에서였을 것이다. 그래서 회사에서도 단체 회식이다, 부서간 회식, 동료 회식 등을 통해 함께 술자리를 가지는 게 보통이었다. 그러던 것이 젊은 세대, 특히 MZ 세대들은 '혼술'(혼자 술 마시는 일)을 즐긴다고 했다. 불과 10년도 안 된 이야기다. 이유가 있다. 여럿이 함께 마시면 과음하기 일쑤고 과음하면 실수가 잦아지니 이런 폐단을 없애기 위해서라고 했다. 다른 사람은 다른 결정을 내기도 한다. 회식 땐 '꼰대'들의 잔소리나 업무 이야기가 싫고, 동료들끼리 마시면 술값 문제가 발목을 잡기도 한다. 때문에 술을 마시고 싶은 날엔 집으로 들어가 혼자 마시는 게 속도 편하고 뒤끝도 없다는 것. 조금은 서글픈 얘기도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은 이런 현상을 앞당겼다.

 

“잘 마시겠습니다.” 사케를 한 모금 마셔봤다. 똑같이 북서쪽 지역이라도 아키타산은 니가타산과는 풍미가 다르다. 니가타산이 담백하고 깔끔하다면, 아키타산은 또렷한 느낌. 이 술도 야무지게 각 잡힌 듯한 맛이다. 오징어내장구이로 젓가락을 뻗었다. 아직도 뜨거워서 조심스럽게 입에 넣었다. 향긋한 맛이 입안에서 톡 터지며 퍼져나갔다. 내장과 약간의 된장이 오징어 본래의 맛에 깊이를 더해준다. 잘 씹어서 삼키고 다시 사케 한 모금. 자칫하면 너무 강할 수 있는 오징어내장의 맛을 사케가 깔끔하게 씻어냈다. 그러면서도 뒷맛에 내장과 사케의 맛이 또렷하다. 정말 맛있다. “이거 정말 괜찮네요.” 겐타도 감탄한 듯 말했다. “오징어는 원래 담백한 맛인데, 이렇게 세게 간을 해도 자체의 맛이 그대로 남아 있네요.” (p.90)

 


 

의사들은 혼자 술 마시는 습관은 좋지 않다고 한다. 알코올 중독이 염려되기 때문이다. 알코올 중독자들이 혼자 술 마시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같은 경우라고 비유하긴 어렵지만 독자로서는 혼자 술 마시는 세대도 아닌 데다 여럿이 함께 마시지 않는 술은 분위기나 맛이 없어서 잘 마시지 않는다. 1인 가구가 많아지면서 혼술은 가속화되는 것 같다. 젊은 세대는 당연히 주머니가 가벼울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여섯 번째 소설 「문어 안 든 다코야키」도 재밌다. 다코야키 기계로 만든 다코야키를 먹으며 맥주를 마시는 이야기다. 다코야키 안에 든 문어가 없거나 작으면 씹는 맛이 없어서 이상하다며 나가에는 크게 썰어 다코야키 안에 넣는다. 역시 먹어보니 큰 문어가 든 쪽이 풍미가 좋다. 그러면서 난 문어 안 든 다코야키 같다는 말을 한다. 옛날에 들은, 국적 불명의 흔한 비속어로 쓰인 말이 생각난다. '팥 없는 찐빵'이란 말이다. 그때 일제강점기 때 생긴 말인지 '앙꼬 없는 찐빵'이란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겉보기만 그렇지 실속이 전혀 없는 사람이나 상황을 말할 때 쓰던 말이다. '문어 없는 다코야키'의 의미가 명확해진다.

 

"다코야키를 입으로 배달했다. 기름을 넉넉히 써서 그런지 표면이 바삭바삭, 떡 덕분에 속은 말랑말랑, 동시에 튀김 부스러기 덕분에 가벼운 식감. 다코야키를 삼킨 다음, 맥주를 흘려넣었다. 열기와 소스의 매콤함이 싹 씻겨 나가면서 입안에 상쾌한 쓴맛만이 남았다. 그래, 이거야말로 어른의 식사다."(p.198)

 


 

이 책에는 일곱 가지 술과 일곱 가지 안주가 나온다. 단편 하나에 술과 안주 각각 하나씩인 셈이다. 나파밸리 와인, 쌀소주, 사케, 사오싱주, 샤르도네 와인, 맥주, 시드로처럼 일본 술부터 외국 술까지 다양하게 등장한다. 독자로서는 '사오싱주'는 처음 들었다. 사오싱주는 다른 말로 '소흥노주'라고도 불리우며 쌀 혹은 좁쌀을 혼용하여 만든 발효숙성주 중에서 전통 양조주인 황주의 하나로 중국 저장성(浙江省) 사오싱(소흥) 일대에서 나는 특산주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알코올 도수는 평균 14도에서 18도 정도라니 우리가 마시는 '정종' '법주' 정도의 도수다. 대략 기록에 나오는 것 만으로도 3,000년은 기본으로 넘기는 중국 술 중에서도 가장 역사가 길어 유명한 명주라고 한다.

술뿐만 아니라 '연어 술지게미 절임'도 처음 들었다. 이 외에도 앞서 언급한 다코야키, 로스트비프, 삼겹살구이 등 다양하게 즐긴다. 술과 함께 먹는 맛있는 안주에 이야기가 빠질 수가 없을 것이란 말에 동의한다. 이 책에서 함께 어울리는 네 명 중 세 명은 대학시절부터 친구였고, 그중 두 명이 부부가 되었고, 남은 한 명은 결혼해서 자신의 남편을 소개하고 있다. 그렇게 네 명이자 부부 2팀은 술과 안주를 곁들여 이야기를 하며 그 이야기에 숨은 미스터리를 푸는 즐거운 시간이 이 책의 구성요소이고 전개과정이다. 저자의 유기적 구성은 추리소설에서 잔뼈가 굵은 티가 난다. 또 음식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를 한 듯하다. 이 책은 '미스터리'라는 제목 외에도 서점에서 '추리소설'로 분류되는 이유가 있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는 일에 '나가에 다카아키(長江高明)'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사소한 위화감을 짚어내 그로부터 진실을 밝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그 이야기가 100% 진실이라고는 당사자로부터 들은 것이 아니어서 추측할 뿐이지만, 만약 당사자의 의도가 맞는다면 그 사실을 알아내는 나가에의 통찰력은 대단하다. 이야기에 숨은 의도를 짐작하고 알아채는 능력은 누구나 원하는 것이지만 누구나 가지고 있지 않다. 이 소설에서 나가에는 놀라운 추리 능력을 보여준다. 이 소설이 추리소설이 되는 가장 큰 이유이고 중심인물이다. 타인이 전해주는 몇 마디 들은 말로 이야기 주인공의 상황을 파악하고 의도까지 알아내는 능력은 뛰어난 탐정이나, 명수사관이 갖춰야 하는 능력일 것이다. 술자리에서 나온 평범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에 이 같은 인물은 스토리를 더욱 뜻밖이고, 재밌게 끌고간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인물로 다룬 저자의 통찰력도 대단하다는 느낌이다. 이 소설은 겉으로는 음식과 술 이야기지만 우리가 삶에서 놓치기 쉬운 삶의 지혜나 통찰력에 대한 아쉬움이 짙게 배어 있어 독자들의 관심을 끌어모으는 데 부족함이 없다. 마지막까지 저자의 유기적 구성 능력과 인물 묘사 능력에 감탄하게 한다.

 

저자 : 이시모치 아사미

현재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미스터리 작가. 1966년 에히메 현에서 태어났다. 2002년 『아일랜드의 장미』로 장편소설 데뷔를 하였다. 그 후 『달의 문』,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 등으로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와 ‘일본 추리작가 협회상’의 주목을 받았으며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는 ‘본격 미스터리 대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출간되는 책마다 각종 미스터리 랭킹 상위를 독점하면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떠올랐고, 2003년 『달의 문』으로 일본 추리작가 협회상 후보에 올랐다. 『절벽 위에서 춤추다』는 이시모치 아사미가 보여 주는 순도 백 퍼센트의 본격 미스터리다. 악덕 기업에 복수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연쇄 살인 사건을 치밀한 논리 싸움과 두뇌 게임으로 풀어 가는 재미를 선사한다.

저서로는 폐쇄된 공간에서, 한정된 사람들이 한정된 시간 안에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보여 주면서, 독자의 두뇌 게임을 유도하는 말 그대로 ‘지(知)’의 향연을 보여 주는 책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 정통 미스터리 작가로 불리는 이시모치 아사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이질적이기에 더 돋보이며 이례적으로 살인범의 시점에서 쓰여진 연쇄살인 소설인 『귀를 막고 밤을 달리다』, 수족관에서 벌어진 의문의 살인사건을 다룬 『물의 미궁』, 살인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 살인에 필요한 조건을 서두에서 모두 공개하는 이색적인 전개가 돋보이며, 날카로운 논리력과 극한의 서스펜스가 균형을 이루어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들려주는 『살인자에게 나를 바친다』, 그 외에 『나가에의 심야상담소』, 『청부살인, 하고 있습니다』 등이 있다. 『살인자에게 나를 바친다』는 2008년 인기 배우 마쓰시타 나오 주연의 TV 드라마로 제작되었다.

 

역자 : 김진아

서울외국어고등학교 영어과를 졸업하고 서울여자대학교에서 경영학과 영어영문학을 전공했다. 다년간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근무했으며 일본 문화에 매료돼 현재 일본어 전문 번역가이자 프리랜서 편집자로 활동 중이다.

옮긴 도서로는 『노트 하나로 인생을 바꾸는 기적의 메모술』, 『왜 자꾸 죽고 싶다고 하세요, 할아버지』, 『터부』, 『1%의 마법』, 『나는 고양이지만 나쓰메 씨를 찾고 있습니다』, 『도해 마술의 역사』, 『안토니오 가우디』, 『바(BAR) 레몬하트』, 『언령 음률사 오토나시 유카리 ~의뢰인의 언령~』, 『가모가와 식당 2,3,4』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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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1페이지, 지적 교양을 위한 철학 수업 - 인간의 본질에 대한 통찰이 담긴 입문서
조이현 지음 / RISE(떠오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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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투명한 미래, 보이지 않는 희망으로 암울한 삶의 길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가장 중요한 힘은 인문학의 힘이다. 이 책은 저자가 20년간 읽고 써온 ‘씨앗 문장‘을 통해 인간의 본성과 삶의 본질을 탐구해온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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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1페이지, 지적 교양을 위한 철학 수업 - 인간의 본질에 대한 통찰이 담긴 입문서
조이현 지음 / RISE(떠오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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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1일 1페이지, 지적 교양을 위한 철학 수업』은 제목을 읽으면 대부분이 짐작하듯 철학자들의 말(명언), 그들의 철학과 사상을 저자 조이현이 사유를 더해 부문별로 나눠 정리했다. 저자는 "깨달음이 많아도 돌이킴이 없으면 가치 없는 존재가 되고, 고귀한 생각을 품고도 행하지 않으면 저속한 삶을 산다"는 선현들의 가르침을 배움과 삶에 적용해 자신의 단점을 보강하는 데 게을리하지 않음으로써 더 나은 삶의 지표로 삼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 책에 대해 「작가의 말」을 통해 인간의 본성과 인생의 본질에 관한 이야기를 썼다고 전제하고 "인간의 모습은 객관적인 시각에서, 인생은 영원의 관점에서 해석했다"고 밝힌다. 이로써 각 편의 주제는 인간에게 부여된 보편적인 것으로 삶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것들을 골라 자신의 사유를 더함으로써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썼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다만 현실적으로 서술하다보니 인간은 위대함이 아닌 연약함이, 인생은 찬란함이 아닌 허무함이 강조됐다고 설명한다. 동서양 고전에 담긴 삶의 지혜를 풀어쓴 철학교양서로 사용할 것을 독자들에게 당부한다.

 


 

출판사인 떠오름 측에서는 책의 앞 부분 「들어가기 전에」를 통해 "삶을 대할 때,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보다 긍정적인 사고를 하는 것이 삶을 영위하는 것에 더 도움이 된다"고 한 니체의 말을 인용, 니체의 철학 사상이 많이 가미된 것임을 귀띔한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니체에게 있어서 진정 궁극적인 긍정은, 바로 '부정(不正)의 긍정'이었다. 쉽게 말하여 부정의 감정을 긍정의 의식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보다 더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며, 거기까지 도달하지 않은 것으로 스스로를 위안하는, 자신이 겪은 고난을 삶의 경험치로 치환하여 체화하는 것이 아닌, 그저 '순간의 진통제' 같은 긍정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 니체의 '긍정의 삶'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니체는 ① 내가 겪은 불행, 앞으로도 겪을 불행으로부터 고개를 돌리지 않는 것, ② 얼마든지 고통스러운 일이 있더라도 그 고통조차 내 삶에 받아들이는 것, ③ 설령 행복하지 않을 나의 부정마저 그대로 긍정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니체에게 있어서 최고의 긍정 공식이라는 것이다. 니체에게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은 순간의 위로가 아니라, 매 순간 불행을 겪는다고 할지라도 한 발자국 나아가 그 부정을 견딜 수 있는 사람으로 점점 나아가는 것이었다고 설명한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뿐이다."

 


 

우리는 지금 전대미문의 재난, 팬데믹 시대를 거치고 있다. 그저 막연한 상상이 아니라 언제 나에게 닥쳐올지 모를 실제 죽음에 대한 공포를 겪었다. 하루하루 발생하는 확진자의 수는 더 이상 뉴스만의 이야기가 아니며, 생명이 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숫자의 무게는 우리를 짓누른다. 녹록지 않은 현실 또한 우리의 목을 죄어온다. 희망은 그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간다. 내 미래를 위해, 가족을 위해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간다. 저자 조이현은 그런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어떻게 이 삶을 살아내야 할 것인가?”

저자는 삶과 연관된 본질적인 소재들을 선별해 각각의 주제마다 철학을 엮었다. 동서양 고전의 지혜로 현실적인 도움이 되는 통찰을 담았다. 또한 우리 삶 곳곳에 숨은 지혜를 그러모아 인생을 살아낼 힘이 되도록 하나의 문장에도 함축적으로 의미를 부여했다. 저자는 20년간 꾸준히 씨앗 문장을 수집해 좋은 글귀를 만드는 글 장인으로서, 인간의 본성과 인생의 본질에 대해 탐구해왔다고 한다. 저자의 지혜가 오롯이 담긴 이 책은 방황의 길 위에 선 우리에게 긍정으로 향하는 지혜의 나침판이 되어줄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우리는 살면서 누구든지 여러 가지 시련을 겪고, 무수히 많은 선택의 기로 앞에서 헤메는 순간이 있다. 정답이 없는 문제, 그 선택의 책임을 오롯이 혼자 져야 하는 때가 대부분이다. 나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버티게 해주는 건 자기 스스로 중심을 잡고 살아가는 힘일 것이다. 이 책은 인생의 100가지 키워드를 시작과 끝, 채움과 비움이라는 두 가지 갈래로 엮었다. 넘어지더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긍정, 혼란스러워지더라도 다시 마음을 맑게 채울 지혜의 메시지로 한 권의 책을 가득 채웠다. 저자는 파란만장한 우리 삶의 과정 속 숱한 기로와 선택의 순간에 현명하게 대처한다면 인생의 더 큰 가치와 참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 강조한다.

이 책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인생이란 긴 여정을 앞에 둔 수많은 사람이 각자가 꿈꾸는 미래를 그리며 삶이라는 커다란 퍼즐을 완성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이 책은 1부 「시작과 끝, 깊은 우물로부터 생명수를 얻기까지」, 2부 「채움과 비움, 참다운 삶을 살 수 있기까지」로 나뉘어 있다. 1, 2부 합쳐 모두 100가지 항목으로 세분되었다. 두 개의 대조적인 단어를 나란히 적어놓은 목차를 보면 독자들에게 소설책처럼 처음부터 읽기 시작해 끝까지 읽는 형식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각 항목별로 100개의 항목을 만들어낸 것도 저자의 일상의 사유가 얼마나 깊은 지 짐작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제 1장 〈시작에서 끝을 헤아릴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시작은 없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1장의 목차 제목은 '시작과 끝'으로 되어 있다. 제목만 읽어도 시작의 중요성을 말하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에 대한 해석과 저자의 설명은 긴 생각 끝에 나온 것인지 금세 알 수 있다. 생각은 길지만 글로 표현할 때는 매우 간략하게 적을 수 있다는 점은 사유가 깊다는 말이다. 거의 모든 철학자들이 그렇듯이.

"현명한 자는 철저한 준비를 통해 시작에 많은 공을 들인다. 끝을 빛나게 하고자 시작부터 갈고 닦는다. 이것은 역경을 이겨내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덕목이다. 준비여부에 따라 천 리 길이 헛걸음이 될 수 있고, 최상의 상태에서 최악을 경험할 수 있다. 시작부터 쓰러질 수 있고 끝에 가서 허물어질 수 있다. 끝은 염두에 두고 시작하고 시작해서 끝을 헤아린다면 이보다 더 좋은 시작은 없다."

 


 

3장 〈행복은 손이 닿는 곳에 있지 않고 마음이 미치는 곳에 있다〉에서 저자는 행복과 불행은 극단적인 것이어서 행복은 빨리 찾아와도 늦은 것이고, 불행은 늦게 찾아와도 이른 것이다고 말한다. 행복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만족이며 지속되는 행복은 살아서 경험하는 천국이다고 덧붙인다. 저자는 "신은 인류에게 인간답게 살아야 할 의무와 행복하게 살아야 할 의무를 동시에 주었다"고 주장한다. 이를 '행복과 불행'에 대한 종교적인 말로 받아들여도, 비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정의로 받아들여도 상관 없다.

저자에 따르면 행복은 가까운 거리에서 찾으면 흔한 것이고, 시선 너머에서 찾으면 드문 것이다. 행복은 손이 닿은 곳에 있지 않고 마음이 미치는 곳에 있으면 손으로 붙들어 맬 수는 없어도 가슴에 머무르게 할 수는 있다. 행복은 뉘우침에서 얻는 것이 아닌 깨달음에서 오는 것이고, 붙잡고자 다가서는 것이 아닌 떠나지 않도록 마음에 품는 것이다. 저자가 이 장(章)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행복'이다. 아주 간략하게(다소 종교적 언어가 들어 있긴 하지만) 철학적 사유를 이끌어낸 것이다. 저자의 다음 설명은 우리가 일상에서 부딪치는 문제에 대한 저자의 사유의 방법과 깊이를 알 수 있게 한다. "행복을 누리는 데는 돈이 들지 않는데 사람들은 행복에 너무 많은 돈을 쓰고 있다. 그들은 무익한 것을 손에 쥐고, 허탄한 것을 가까이하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행복이 소유와 쾌락에 있다고 믿기에 하찮고 사소한 것에 둘러싸여 남모르는 기쁨을 만끽하는 세상 밖의 살마들을 비웃는다. 하지만 이들은 행복이 절정에 이를 수 없어 행복을 누릴 순 없다. 행복을 집에서 찾지 못하는 사람은 오대양 육대주를 누벼도 찾을 수 없다. 말콤 포브스의 말처럼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쇼핑 장소를 잘못 택한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종교적인 단어들이 일부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책의 뒷 부분 「에필로그」를 통해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잠언집의 형식을 빌리되 바탕은 성경을 모티브로 했다고 밝히고 있다. 인간의 본성에 관한 부분은 『시편』과 『욥기』, 인생의 본질은 『전도서』에서 영감을 받았다. 저자의 이 같은 토로는 익히 알려진 대로 세계적인 문학작품 대다수가 성경에서 영감을 받아 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말을 믿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 듯하다. 누군가는 성경을 '최고의 교훈적인 역사와 전기, 빼어난 시, 최대의 극적인 효과, 탁월한 웅변, 순결한 철학 등 최고의 모든 문학의 매력이 한데 모인 책'이라고 말을 하고, 저자는 그 말을 굳게 믿는다.

 

저자 : 조이현

 

푸른 바다와 뭉게구름을 좋아하고 아침 안개와 저녁노을을 좋아한다.

이름 모를 풀꽃에 마음이 들뜨기도 하고 반짝이는 별빛에 설렘을 느끼기도 한다.

작고 사소한 것에 가슴을 내밀기도 하고 시선 너머에 가만히 마음을 두기도 한다.

한 줌의 영감을 얻기 위해 고독과 삶을 섞기도 하고,

한 장의 여백을 수놓기 위해 때론 낯섦과 만나기도 한다.

삶을 기록하기 위하여.

글로써 삶을 흘려보내기 위하여.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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