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미스터리 키친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김진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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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음식에 대해 좋은 습관을 갖고 있다. 소량이고 위생적이다. 또 그들만의 특성인지 모르겠지만 아기자기한 멋이 있다. 원래 그랬는지, 아니면 개혁(메이지유신) 이후 달라진 습관인지 모르지만 좋은 습성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음식 문화도 굉장히 위생적이지만 굴곡진 역사 속에서 침략 받고 지배 당하고 하는 과정에서 음식 문화가 많이 비틀어진 것 같다. 음식 문화는 그 나라, 그 민족만의 특성이 깃들어 있다. 세계 제일의 음식 문화라고 하는 중국은 사실 '못 먹는 게 없다'고 할 정도로 모든 걸 먹는다는 의미에서 선진 음식 문화라고 독자는 생각지 않는다. 일본이 위생적이고 소량의 음식섭취(먹을 게 많지 않아 소식의 습관이 들었는지 모르지만) 문화가 더 선진적이다.

이 책 『한밤의 미스터리 키친』은 일본의 인기 작가 이시모치 아사미가 쓴 '푸드 미스터리 소설'이다. 미스터리 소설이라고 하지만 범죄를 저지르고 이를 쫓는 탐정이나 수사관 이야기는 아니다. 읽는 순간 침이 고이는 특별한 음식 미스터리 소설이다. 저자 이시모치 아사미는 ‘일본추리작가협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 등 일본의 내로라하는 대표 문학상에 잇달아 이름을 올렸으며, 특히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에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과 각축을 벌이면서 일본을 대표하는 미스터리 작가로 자리매김했다고 한다. 추리소설 탐독 경력이 짧은 독자로서는 히가시노 게이고는 잘 아는 편이지만 이 책의 저자에 대해서는 잘 몰라 조금 안타까운 마음으로 열심히 읽었다.

 


 

그는 발표하는 작품마다 어느 하나 장르가 겹치지 않고 클로즈드 서클, 사회파 미스터리, 심리 서스펜스 등 미스터리의 다양한 변주를 보여주는 천재 작가이자 일본에서 평단과 대중들이 믿고 보는 작가로 손꼽힌다고 하니 내친 김에 그의 전작들을 몇 권 더 읽어볼 생각이다. 특히 그는 소설을 출간할 때마다 각종 미스터리 랭킹 상위를 독점하면서 현재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고 하니 추리소설의 영역을 무한 확대시키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듯하다. 물론 저자의 노력의 결과겠지만.

이 작품 『한밤의 미스터리 키친』은 분명 장르가 ‘미스터리’이지만 사람 하나 죽지 않고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만 폴폴 풍기는 독특한 '미식' 미스터리이다. 과즙향 짙은 나파밸리 와인과 로스트비프, 담백한 사케와 짭짤한 오징어 통구이, 차가운 맥주 한 잔과 겉은 바삭 속은 촉촉하게 익힌 다코야키가 연달아 등장하고 그 군침 도는 식탁에 오랜 친구와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게 전부이다.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은 이야기 속에서 예기치 못한 사건을 마주하고, 머리좋은 친구 ‘나가에’를 통해 사건의 진실을 듣게 되는 것은 그 어떤 안주에 못지않게 감칠맛 나는 저녁 메뉴다. 얼마 전 히트를 쳤던 『카모메 식당』, 『심야 식당』(독자는 영화로만 봤다)이 생각나기도 한다. 일곱 개의 단편을 모은 이 단편집은 단편 하나하나의 향과 맛도 강렬하지만, 작은 반전들이 이어지다 마지막 편에서 팡 터지는 반전으로 독자들의 눈을 휘둥그레 만든다. 흥미롭기까지 하다.

 


 

이 책의 단편 소설은 모두 7편으로, 각 단편마다 제목에 음식 이름이 부제로 나온다. 무척 흥미롭고 일본 사람들도 이런 걸 먹나? 생각케 하는 메뉴도 있다. 첫 번째 「산 넘어 산」에는 나파벨리 와인과 로스트 비프가 나온다. '술과 안주' 다. 독자는 미식가도 물론 아니고, 미식가들에 대한 독자의 평가는 한결같이 박하다. 이유는 간단명료하다. 지구 한쪽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고 있는데 한쪽에선 맛있는 음식을 잔뜩 쌓아놓고 어떻게 먹어야 더 맛있게 먹는지 연구하고 있어서다. 그래서 독자는 미식가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옛날 조선시대처럼 한 잔 술과 안주는 있으면 좋고 없으면 없는 대로 좋다. 벗과 나누는 정담이나 '나쁜 놈들' 욕할 수 있어 좋다. 특별히 안주를 챙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인지 TV 프로그램에서 음식 소개하는 것을 여간해선 보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소설로 읽는 음식 이야기는 좋은 점수는 줄 수 없지만 흥미 그 이상의 느낌은 없다. 그러나 이 책의 작가에 대해서는 사뭇 다른 생각이 든다. 우선 책의 완성도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저자 특유의 교묘한 트릭이 잘 녹아들어 있는 깔끔한 결말, 코스요리의 화룡점정이다. 추리소설 기법에 잘 들어맞게 구성했다는 얘기다. 늦은 밤, 오늘을 살아가기에 바빴던 일상을 뒤로하고 식탁에 둘러앉아 편안하게 이야기를 듣다 보면 문득 일상을 시름을 잠시 내려놓게 될 맛있는 소설이라는 점에서 후한 점수를 주게 된다. 물론 읽다 보면 배가 고프게 될 것이니 식사 후에 읽는 것이 어떨지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우리의 술 문화도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술을 혼자 먹지 말 것을 권했다. 맛이 없을 뿐 아니라 부정적인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이를 가속화시켜 부정적인 습관도 생긴다는 의미에서였을 것이다. 그래서 회사에서도 단체 회식이다, 부서간 회식, 동료 회식 등을 통해 함께 술자리를 가지는 게 보통이었다. 그러던 것이 젊은 세대, 특히 MZ 세대들은 '혼술'(혼자 술 마시는 일)을 즐긴다고 했다. 불과 10년도 안 된 이야기다. 이유가 있다. 여럿이 함께 마시면 과음하기 일쑤고 과음하면 실수가 잦아지니 이런 폐단을 없애기 위해서라고 했다. 다른 사람은 다른 결정을 내기도 한다. 회식 땐 '꼰대'들의 잔소리나 업무 이야기가 싫고, 동료들끼리 마시면 술값 문제가 발목을 잡기도 한다. 때문에 술을 마시고 싶은 날엔 집으로 들어가 혼자 마시는 게 속도 편하고 뒤끝도 없다는 것. 조금은 서글픈 얘기도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은 이런 현상을 앞당겼다.

 

“잘 마시겠습니다.” 사케를 한 모금 마셔봤다. 똑같이 북서쪽 지역이라도 아키타산은 니가타산과는 풍미가 다르다. 니가타산이 담백하고 깔끔하다면, 아키타산은 또렷한 느낌. 이 술도 야무지게 각 잡힌 듯한 맛이다. 오징어내장구이로 젓가락을 뻗었다. 아직도 뜨거워서 조심스럽게 입에 넣었다. 향긋한 맛이 입안에서 톡 터지며 퍼져나갔다. 내장과 약간의 된장이 오징어 본래의 맛에 깊이를 더해준다. 잘 씹어서 삼키고 다시 사케 한 모금. 자칫하면 너무 강할 수 있는 오징어내장의 맛을 사케가 깔끔하게 씻어냈다. 그러면서도 뒷맛에 내장과 사케의 맛이 또렷하다. 정말 맛있다. “이거 정말 괜찮네요.” 겐타도 감탄한 듯 말했다. “오징어는 원래 담백한 맛인데, 이렇게 세게 간을 해도 자체의 맛이 그대로 남아 있네요.” (p.90)

 


 

의사들은 혼자 술 마시는 습관은 좋지 않다고 한다. 알코올 중독이 염려되기 때문이다. 알코올 중독자들이 혼자 술 마시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같은 경우라고 비유하긴 어렵지만 독자로서는 혼자 술 마시는 세대도 아닌 데다 여럿이 함께 마시지 않는 술은 분위기나 맛이 없어서 잘 마시지 않는다. 1인 가구가 많아지면서 혼술은 가속화되는 것 같다. 젊은 세대는 당연히 주머니가 가벼울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여섯 번째 소설 「문어 안 든 다코야키」도 재밌다. 다코야키 기계로 만든 다코야키를 먹으며 맥주를 마시는 이야기다. 다코야키 안에 든 문어가 없거나 작으면 씹는 맛이 없어서 이상하다며 나가에는 크게 썰어 다코야키 안에 넣는다. 역시 먹어보니 큰 문어가 든 쪽이 풍미가 좋다. 그러면서 난 문어 안 든 다코야키 같다는 말을 한다. 옛날에 들은, 국적 불명의 흔한 비속어로 쓰인 말이 생각난다. '팥 없는 찐빵'이란 말이다. 그때 일제강점기 때 생긴 말인지 '앙꼬 없는 찐빵'이란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겉보기만 그렇지 실속이 전혀 없는 사람이나 상황을 말할 때 쓰던 말이다. '문어 없는 다코야키'의 의미가 명확해진다.

 

"다코야키를 입으로 배달했다. 기름을 넉넉히 써서 그런지 표면이 바삭바삭, 떡 덕분에 속은 말랑말랑, 동시에 튀김 부스러기 덕분에 가벼운 식감. 다코야키를 삼킨 다음, 맥주를 흘려넣었다. 열기와 소스의 매콤함이 싹 씻겨 나가면서 입안에 상쾌한 쓴맛만이 남았다. 그래, 이거야말로 어른의 식사다."(p.198)

 


 

이 책에는 일곱 가지 술과 일곱 가지 안주가 나온다. 단편 하나에 술과 안주 각각 하나씩인 셈이다. 나파밸리 와인, 쌀소주, 사케, 사오싱주, 샤르도네 와인, 맥주, 시드로처럼 일본 술부터 외국 술까지 다양하게 등장한다. 독자로서는 '사오싱주'는 처음 들었다. 사오싱주는 다른 말로 '소흥노주'라고도 불리우며 쌀 혹은 좁쌀을 혼용하여 만든 발효숙성주 중에서 전통 양조주인 황주의 하나로 중국 저장성(浙江省) 사오싱(소흥) 일대에서 나는 특산주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알코올 도수는 평균 14도에서 18도 정도라니 우리가 마시는 '정종' '법주' 정도의 도수다. 대략 기록에 나오는 것 만으로도 3,000년은 기본으로 넘기는 중국 술 중에서도 가장 역사가 길어 유명한 명주라고 한다.

술뿐만 아니라 '연어 술지게미 절임'도 처음 들었다. 이 외에도 앞서 언급한 다코야키, 로스트비프, 삼겹살구이 등 다양하게 즐긴다. 술과 함께 먹는 맛있는 안주에 이야기가 빠질 수가 없을 것이란 말에 동의한다. 이 책에서 함께 어울리는 네 명 중 세 명은 대학시절부터 친구였고, 그중 두 명이 부부가 되었고, 남은 한 명은 결혼해서 자신의 남편을 소개하고 있다. 그렇게 네 명이자 부부 2팀은 술과 안주를 곁들여 이야기를 하며 그 이야기에 숨은 미스터리를 푸는 즐거운 시간이 이 책의 구성요소이고 전개과정이다. 저자의 유기적 구성은 추리소설에서 잔뼈가 굵은 티가 난다. 또 음식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를 한 듯하다. 이 책은 '미스터리'라는 제목 외에도 서점에서 '추리소설'로 분류되는 이유가 있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는 일에 '나가에 다카아키(長江高明)'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사소한 위화감을 짚어내 그로부터 진실을 밝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그 이야기가 100% 진실이라고는 당사자로부터 들은 것이 아니어서 추측할 뿐이지만, 만약 당사자의 의도가 맞는다면 그 사실을 알아내는 나가에의 통찰력은 대단하다. 이야기에 숨은 의도를 짐작하고 알아채는 능력은 누구나 원하는 것이지만 누구나 가지고 있지 않다. 이 소설에서 나가에는 놀라운 추리 능력을 보여준다. 이 소설이 추리소설이 되는 가장 큰 이유이고 중심인물이다. 타인이 전해주는 몇 마디 들은 말로 이야기 주인공의 상황을 파악하고 의도까지 알아내는 능력은 뛰어난 탐정이나, 명수사관이 갖춰야 하는 능력일 것이다. 술자리에서 나온 평범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에 이 같은 인물은 스토리를 더욱 뜻밖이고, 재밌게 끌고간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인물로 다룬 저자의 통찰력도 대단하다는 느낌이다. 이 소설은 겉으로는 음식과 술 이야기지만 우리가 삶에서 놓치기 쉬운 삶의 지혜나 통찰력에 대한 아쉬움이 짙게 배어 있어 독자들의 관심을 끌어모으는 데 부족함이 없다. 마지막까지 저자의 유기적 구성 능력과 인물 묘사 능력에 감탄하게 한다.

 

저자 : 이시모치 아사미

현재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미스터리 작가. 1966년 에히메 현에서 태어났다. 2002년 『아일랜드의 장미』로 장편소설 데뷔를 하였다. 그 후 『달의 문』,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 등으로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와 ‘일본 추리작가 협회상’의 주목을 받았으며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는 ‘본격 미스터리 대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출간되는 책마다 각종 미스터리 랭킹 상위를 독점하면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떠올랐고, 2003년 『달의 문』으로 일본 추리작가 협회상 후보에 올랐다. 『절벽 위에서 춤추다』는 이시모치 아사미가 보여 주는 순도 백 퍼센트의 본격 미스터리다. 악덕 기업에 복수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연쇄 살인 사건을 치밀한 논리 싸움과 두뇌 게임으로 풀어 가는 재미를 선사한다.

저서로는 폐쇄된 공간에서, 한정된 사람들이 한정된 시간 안에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보여 주면서, 독자의 두뇌 게임을 유도하는 말 그대로 ‘지(知)’의 향연을 보여 주는 책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 정통 미스터리 작가로 불리는 이시모치 아사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이질적이기에 더 돋보이며 이례적으로 살인범의 시점에서 쓰여진 연쇄살인 소설인 『귀를 막고 밤을 달리다』, 수족관에서 벌어진 의문의 살인사건을 다룬 『물의 미궁』, 살인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 살인에 필요한 조건을 서두에서 모두 공개하는 이색적인 전개가 돋보이며, 날카로운 논리력과 극한의 서스펜스가 균형을 이루어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들려주는 『살인자에게 나를 바친다』, 그 외에 『나가에의 심야상담소』, 『청부살인, 하고 있습니다』 등이 있다. 『살인자에게 나를 바친다』는 2008년 인기 배우 마쓰시타 나오 주연의 TV 드라마로 제작되었다.

 

역자 : 김진아

서울외국어고등학교 영어과를 졸업하고 서울여자대학교에서 경영학과 영어영문학을 전공했다. 다년간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근무했으며 일본 문화에 매료돼 현재 일본어 전문 번역가이자 프리랜서 편집자로 활동 중이다.

옮긴 도서로는 『노트 하나로 인생을 바꾸는 기적의 메모술』, 『왜 자꾸 죽고 싶다고 하세요, 할아버지』, 『터부』, 『1%의 마법』, 『나는 고양이지만 나쓰메 씨를 찾고 있습니다』, 『도해 마술의 역사』, 『안토니오 가우디』, 『바(BAR) 레몬하트』, 『언령 음률사 오토나시 유카리 ~의뢰인의 언령~』, 『가모가와 식당 2,3,4』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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