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도망자의 고백
야쿠마루 가쿠 지음, 이정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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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어느 도망자의 고백』은 일본의 추리소설이다. 저자 야쿠마루 가쿠는 일본을 대표하는 추리소설가로 손꼽힌다. 그가 쓴 수많은 추리소설은 대부분 독자들의 선풍적인 인기를 몰고 왔으며, 이 가운데 3편은 일본의 TV에서도 드라마로 방영될 정도로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작가다. 특히 이 소설은 ‘현대사회의 죄와 벌’을 주제로 집필해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못지 않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는 현재 일본 최고의 사회파 미스터리 작가로서 흡입력 있는 이야기 속에서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묵직한 작품으로 큰 지지를 얻고 있다. 그런 저자가 이번에는 ‘죄의식’과 ‘진정한 속죄’에 관한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이 작품 『어느 도망자의 고백』은 사람을 치고 도주한 뺑소니 가해자와 그로 인해 사망한 피해자 가족이 사건 이후 얽히며 일어나는 사건을 다뤘다. 탁월한 심리 묘사와 특유의 가독성 높은 문체로 써 내려가 쉽게 잘 읽히는, 그의 작품으로서는 가장 최근의 수작(秀作)이다. 추리소설이지만 흉악한 범죄나 사이코패스 범인을 추적하는 스릴러가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 문제, 개인의 심리 변화 등에 중점을 둔 작품이다. 이 때문에 그의 작품은 곧잘 '도스토옙스키적' 사회 구조 비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 같다. 이 작품 역시 단순한 자동차 뺑소니 사건의 피의자와 피해자간의 심리적 변화와 갈등을 잘 묘사했다는 평가을 받았다. 법에 따른 처벌만으로는 다할 수 없는 속죄, 가해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 등, 우리가 직면한 사회적 문제를 폭넓게 아우르는 『어느 도망자의 고백』은 야쿠마루 가쿠 자신도 ‘이것이야말로 내가 지금 써야 하는 이야기’라 칭한 이 작품이야말로 그의 ‘승부작’이자 새로운 ‘대표작’임을 숨기지 않는다.

 


 

대학생 마가키 쇼타가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늦게까지 놀고 귀가한 밤, 그의 휴대전화에 여자 친구의 문자가 날아든다. ‘지금 당장 날 보러 오지 않으면 헤어지겠다’는 메시지를 본 쇼타는 술이 완전히 깨지 않은 상태에서 운전대를 잡는다. 비가 퍼붓는 악천후를 뚫고 차를 몰고 가던 중 무언가를 치었다는 것을 느꼈지만 공포로 인해 그대로 그곳을 떠난다. 그리고 다음 날, 쇼타는 뉴스를 통해 자신이 친 것이 길을 건너던 노인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신의 미래, 가족의 행복, 연인의 웃음···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이란 공포감이 엄습한다. 죄를 인정하면 영영 잃어버리게 될 것들이 너무도 많았던 쇼타는 경찰에 붙잡히고도 자신이 저지른 일에서 계속해서 눈을 돌리기만 한다. 그러는 한편, 피해자의 남편 노리와 후미히사는 한 가지 ‘결심’을 마음속에 품고 쇼타를 만나러 간다.

 

"차 안에 나나의 울음소리가 울렸다. 처음에는 신경 쓰지 않았지만, 평상시와 다른 소리로 울고 있었다. 왜 그럴까 싶어 조수석을 쳐다보며 이동 장에 왼손을 뻗은 순간, 엄청난 충격이 일어 앞 유리를 봤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세찬 빗방울이 부딪히는 가운데, 뭔가에 올라탄 듯한 감촉이 핸들을 쥔 손에 전해지고 빗소리를 지우는 듯한 ‘끄아악’ 하는 기괴한 소리가 귀에 울렸다. 순간 브레이크에 발을 옮기려 했지만, 백미러에 비친 붉은 빛이 눈에 들어와 그대로 액셀을 밟았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절규가 몇 초 만에 들리지 않게 되고, 그 대신 심장이 쿵쾅대는 소리가 들렸다. 차내 온도가 단숨에 10도쯤 내려간 듯한 냉기를 등으로 느끼며 다음 적색 신호등이 나타날 때까지 계속 액셀을 밟았다."(p.15)

 

 

지금까지 야쿠마루 가쿠는 작품 속에서 주로 ‘피해자’에 포커스를 맞춰, 피해자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조명하고 그들의 심정을 묘사하는 데 주력해 왔다는 것이 평단의 언급이다. 하지만 『어느 도망자의 고백』은 그의 데뷔 이래 처음으로 사건의 가해자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이 책은 뺑소니 사망 사건을 일으킨 가해자, 마가키 쇼타의 시점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그의 내면을 여실히 그린다. 야쿠마루 가쿠가 그동안 써온 살인에 관한 이야기에서 가해자는 뉴스에서나 볼 법한 극악무도한 범죄자로 등장한다. 그렇기에 독자들은 작품 속 상황을 ‘어디까지나 나와는 관계없는 허구의 일’이라 받아들이며 읽는다. 하지만 이 작품은 차를 운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사망 사고를 일으킨 주인공 쇼타의 입장이 될 수 있다고, 가해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만일 사고가 일어났을 때 쇼타와 같은 말과 행동을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느냐는 물음을 우리에게 던진다.

이 작품의 중심에 있는 주제는 바로 ‘죄의식’과 ‘속죄’다. 죄를 저지르고 재판을 받으면 법에 따른 형벌이 선고된다. 징역형이라면 정해진 형기를 채우고 사회에 복귀하면 법적으로는 책임을 다한 것이며, 죄를 뉘우친 것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여기서 작가는 ‘과연 법적 책임을 다했다 해서 진정으로 죄를 뉘우친 것이라 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작중 주인공 쇼타가 겪는 시련을 통해 가해자가 진심으로 자신의 죄와 죄의식을 마주하고 속죄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그 후의 삶을 성실히 살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런 점에서 추리소설을 단순히 범죄와 범죄자를 체포해 응징하는 점에 주력하지만 저자의 이 작품은 추리소설을 한 단계 끌어올려 사회의 구조적 부조리를 드러냄으로써 사회 발전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흥미 위주보다는 범죄와 죄의식, 가해자와 피해자의 심리 변화 등을 디테일하고 세밀하게 좇아간다. 재판을 통해 4년 10개월의 징역형을 살고 나온 쇼타뿐만 아니라, 쇼타의 가족 자체는 파괴되었다. 쇼타가 형기를 다 마치고 나왔을 때, 더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현실을 직시한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혼했고, 사건이 일어나기 전 결혼을 앞둔 누나도 파혼했으며, 유능한 교육학자였던 아버지의 명예는 바닥에 떨어졌다. 가족 모두가 정상의 삶을 유지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쇼타 역시 전과자로 쉽게 취직마저 할 수 없다. 예전 친구를 만나도 거리를 느낄 뿐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완전히 쇼타는 딴세상 사람이 된 것이다. 그나마 그의 곁에서 다시 친구가 되어준 아야카만이 유일한 인간미를 보여줬다. 그리고 그의 옆집으로 이사 온 이상한(?) 노인이 그의 시야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교도관의 질문에 마가키 쇼타는 "네" 하고 고개를 끄덕인 뒤 감방을 나왔다. 교도관을 따라 복도를 지나 안내된 방에 들어갔다. 테이블 위에 이곳에 왔을 때 가져온 가방이 놓여 있었다. 그 옆 상자에는 지갑과 집 열쇠와 휴대전화가 들어 있고, 그 옆에는 새 옷이 놓여 있었다."(p.129)

 


 

죽은 여인(피해자)의 남편이 가해자를 쫓는 장면이 소설 속에 나온다. 그(가해자)는 징역형 4년 10개월로 끝나지만 죽은아내가 돌아올 리 없다. 더욱이 자신도 쇼타가 출소하면 89세임을 인식하며 복수를 준비하는 것처럼 묘사된다. 그러나 법이 사회적 갈등을 완전하게 해결해 줄 수는 없다. 아무리 중간에서 법이 나서 합리적 판단으로 가해자에게 '벌'을 줘도 피해자로서는 성에 차지 않을 수 있다. 대개는 그렇다. 더욱이 자동차로 사람을 치어 죽이고 도망간 주제에 법정에선 사람이 치인 줄도 몰랐고, 가벼운 충격의 느낌은 있었지만 작은 동물일 것으로 생각했다고 뻔뻔하게 거짓말을 늘어놓는 가해자를 인간적인 차원에서 그냥 둘 수 없다는 사적 보복, 복수의 감정이 생길 수 있다. 가해자가 법정에서 전혀 죄를 뉘우치는 기색이 없었으니 피해자의 남편으로서는 분노와 복수를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상식일 수 있다. 피해자가 원하는 그대로 법이 결론 내주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 나선다는 복수심은 인간이기에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법의 판단은 분노나 동정, 연민 같은 것이 끼어들 리 없다. 즉 법리적인 판단은 다르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 그러니 내가 만족할 수 없는 판결을 마주했다면,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마무리 짓고 싶은 게 인간의 마음일 수 있다. 하지만, 아니었다. 피해자의 남편이 가해자를 쫓는 건 사실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가해자를 쫓던 그 마음은 일반적인 예상과는 조금씩 달라져 간다. 그런 변화의 심리적 묘사는 저자의 장기 아닌가? 오히려 인간다운 면이 강조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언제 어떤 상황을 만났느냐에 따라 우리는 가해자도 되고 피해자도 될 수 있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상황에 따른 결과는 자신의 의지가 아니더라도 책임이라는 형태로 짐을 지게 한다. 한때는 가해자였던 이가 다른 상황에서는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저자는 말하고 싶은 게 아닐까?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소설은 추리작가 야쿠마루 가쿠의 전작(前作)에서 보지 못한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쓴 것이란 느낌을 받는다. 쉬운 표현으로 죄와 죄인, 그리고 피해자와 경찰관 등 범인을 쫓는 추리소설이 아니다. 저자는 이 작품에서 가해자의 눈으로 사건을 본다. 뺑소니 사건의 가해자가 사건을 일으켰을 때부터 사건 이후의 이야기까지 가해자 쇼타의시선으로 사건과 상황이 전개된다. 그리고 그는 분명 벌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이고, 법의 심판으로 벌을 달게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가 받은 형량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게 소설 속 이야기로만 남을 수 있을까? 독자도 운전을 하는 사람으로서 운전하는 사람이라면 사고의 위험을 함께한다. 누구나 가해자 쇼타의 입장이 될 수 있고, 피해자와 유가족의 입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막상 사건이 터진다면, 운전자인 내가 부주의로 누군가를 치어 죽였다면, 그리고 아무도 보는 사람 없는 비오는 날 밤이었다면... 일상에서는 쉽게 상상하지 않는 일이지만 이 소설을 읽으며 "내가 가해자였다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해보니 어쩌면 쇼타와 같은 상황 대처, 징역형, 그리고 새 삶 등 끔찍하기만 하다. 끔찍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지만 마지막 생각은 쇼타와 비슷하게 흘러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죽이는 교통 사고를 일으켰지만, 마땅히 사회가 정한 대로 죄값을 치렀다면 남은 인생은 새로 시작할 상황으로 만들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점에서 범행 동기보다 범행 결과만 중요시하는 법의 맹점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다만 범죄자의 심리 변화와 보통 인간의 심리 변화의 차이를 어떻게 계측화할 수 있겠는가?라는 의문점만 쌓여간다. 즉 법이 벌을 가한 범죄자의 죄의식을 어떻게 들여다보며 숫자로 표시하듯 명확하게 계측할 수 있을까? 어려운 문제 아닐까?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이 마음속에서 맴돈다.

 


 

저자 : 야쿠마루 가쿠

 

1969년 효고(兵庫)현 아카시(明石)시 출생. 도쿄로 이사 온 열한 살 때부터 용돈을 손에 쥐고 극장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영화에 푹 빠진다. 배우를 지망해 고교 졸업 후에는 극단에 들어가지만, 몸으로 이야기를 표현하기보다 머리로 이야기를 구상하는 게 자신의 적성에 맞다는 걸 느끼고 극단을 그만둔다. 시나리오 신인상 1차 예선에 통과하지만 성과가 나오지 않던 차에 친구를 통해 만화 원작의 길을 알게 돼, 잡지 『올맨』에 가작으로 입선한다. 하지만 잡지의 폐간 등으로 한계를 느낀다. 그러던 중 당시 신인 작가였던 타카노 카즈아키의 데뷔작이자 에도가와 란포 상 수상작인 『13계단』을 읽고 충격을 받아 소설가의 길을 가기로 한다. 에도가와 란포 상을 목표로 피나는 노력 끝에 2003년 33세의 나이에 데뷔작 『천사의 나이프』로 제51회 에도가와 란포 상을 수상한다. 그 외에도 2007년 『오므라이스』로 제60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후보, 2011년 『하드럭》으로 제14회 오야부하루히코상 후보, 2014년 『유자이』로 제35회 요시카와에이지문학신인상 후보, 2014년 『불혹』으로 제67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후보에 올랐으며, 2015년 발표한 『침묵을 삼킨 소년』으로 2016년 제37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을 수상했다. 2016년 『A가 아닌 너와』로 제37회 요시카와에이지문학신인상을 수상하였다.

데뷔 10주년이었던 그는 일본을 대표하는 사회파 추리소설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하였는데, 그의 작품은 대체로 사회구조적 범죄를 통해 심화되어 가는 현대 사회의 냉혹한 현실에 의문을 던진다. 소설가가 되어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법과 경찰, 매스컴이라는 사회 시스템을 그려 왔다. 앞으로도 미스터리와 사회적 문제를 다루고 싶다는 야쿠마루. 세 번의 홋카이도 취재를 통해 완성시킨 작품 『허몽』을 비롯하여 기다렸던 복수의 밤』, 『익명의 전화』, 『어둠 아래』, 『허몽』, 『악당』 등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형사의 약속』은 2013년 일본 TBS 방송국에서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한 『형사의 눈빛』과 장편 『그 거울은 거짓말을 한다』에 이은 ‘나츠메 형사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다.

 

역자 : 이정민

 

출판 및 일본어 전공. 일본 도쿄의 회계사무소에서 인턴십 프로그램을 수료하고 귀국 후에는 일본인 주재원의 전속 통역으로 근무하며 한국어와 일본어의 차이와 사이에 매료되었다. 현재 재미있고 감동적인 작품을 기획 및 소개하는 데 힘쓰고 있다. 역서로는 『어긋나는 대화와 어느 과거에 관하여』, 『슬로하이츠의 신』, 『아침이 온다』, 『신의 아이』, 『눈의 소철나무』, 『요철』, 『최저』, 『언덕 중간의 집』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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