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피부 - 나의 푸른 그림에 대하여
이현아 지음 / 푸른숲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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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일을 하다 보니 그런지 첫 에세이인데도 소재에 거리낌없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숨김없이 쓰다니 놀랍다. 이 책 『여름의 피부』는 에디터이자 라이터로서의 직업 때문인지 독자들의 시선을 놓치지 않고 글을 끌어가는 솜씨가 중견 작가 못지않은 느낌을 준다. 주제 의식이 뚜렷하고 평소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림일기를 통해 쓰고 모아둔 것이 빛을 발휘한 모양이다. 저자 이현아는 이 에세이가 처음으로 낸 책이라고 한다. 작가로서의 첫 발을 내디딘 셈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유년과 여름, 우울과 고독에 관한 가장 내밀한 이야기를 '푸른 그림'을 통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에디터로 일하며 써 내려간 그림일기에서 자신이 모으는 그림들이 유난히 ‘푸른 기운’을 머금고 있는 것을 발견하곤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대중에게 친숙한 에드워드 호퍼, 피에르 보나르를 비롯해 소설가 제임스 설터와 줌파 라히리의 책 표지 그림으로 널리 알려진 던컨 한나와 에이미 베넷, 그리고 자신만의 고유한 색을 품은 세계 각국의 화가 스물네 명의 푸른 그림에서 위안을 담은 다양한 이야기를 길어 올린다. 4장으로 나눈 이 책은 우리의 사계(四季)와 닮았다. 아니, 어쩌면 담았다고 표현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모두 4장으로 나뉜 이 책은 1장 「유년-새파랗게 어렸던, 덜 익은 사랑」, 2장 「여름-모든 것이 푸르게 물들어가는 계절」, 3장 「우울-사람의 몸이 파랗게 변하는 순간 죽음, 병, 멍, 그리고 우울」, 4장 「고독-비밀과 은둔과 침잠의 색」으로 구성됐다.

 


 

오래도록 '그림 바라보기’를 취미로 둔 저자는 잡지사 에디터로 취재차 세계 곳곳을 다닐 때도 늘 곁에 그림을 두었다. 저자의 그림 사랑은 대단하다. 조지아 오키프의 발자취를 따라 미국 서부로의 로드 트립을 계획하고, 소설가 제임스 설터의 표지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 던컨 한나를 만나기 위해 뉴욕으로 날아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림을 바라보고 모으는 것을 너머 꾸준히 그림일기를 쓰던 작가는 문득 자신이 모은 그림들에는 ‘푸른 기운’이 담겨 있음을 발견한다. 이 책은 작가가 언젠가 글을 통해 나누고자 마음속에 품어 두었던, 그만의 시선으로 바라본 푸른 그림에 관한 이야기다.

저자는 작가의 말 「써내려 간다는 것」을 통해 푸른 그림에 대해 밝히고 있다. "널찍하고 두툼한 노트 한 권을 샀다. 그림을 골라 인쇄하고, 가위로 오려, 왼쪽 페이지에 흐르는 대로 생각을 적었다. 일기와는 다른 종류의 고백이 두서없이 그곳에 쌓였다. 토트를 반절쯤 채우니 그것들이 되레 말을 걸어왔다. 나를 낚아챈 그림 속에는 공통된 색이 잇었다. 그것은 구체적인 이름을 붙일 수 있는 하나의 색이라기보다는 '푸른 기운'에 가까운 어떤 것이었다. 실제로 푸름은 손안에 쥘 수 없는 색이다. 다만 시선을 멀리, 그리고 높이 가져가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멀리 있는 산, 거리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하늘과 바다, 그 너머의 수평선과 지평선. 그곳에 펼쳐진 푸름은 우리가 다가갈수록 뒤로 물러난다. 투명하게 사라진다. 푸름은 여기와 거기의 사이에, 그 거리 속에 존재하며, 바라보고 가까워지려는 시도 속에서만 유효하다."(p.14)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이러한 푸른색들은 책에 나오는 다양한 화가들의 작품에서 만나볼 수 있다. 피에르 보나르, 조지아 오키프, 루시안 프로이드, 던컨 한나, 호아킨 소로야, 밀턴 에브리, 가브리엘레 뮌터 등 이들이 캔버스에 칠한 푸른색을 바라보다 보면 저자가 이야기하는 손안에 쥘 수 없는 푸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그 안에 담긴 감정까지도. 푸른색은 그것이 가진 정서와 이미지가 정 반대편에서 움직이는 독특한 색이다. 예를 들면, 몽상가적인, 내밀한, 고독한, 멜랑꼴리한 등의 우울한 감정의 반대편에는 파릇파릇하다, 청량하다, 시원하다, 푸른 바다, 시린 하늘 등의 싱그러운 이미지가 있다. 푸른색은 가끔은 초록빛을 띄기도 한다.

블루와 그린 사이에 걸쳐진 그 오묘한 색을 에메랄드그린(에매랄드 빛을 띤 아름다운 녹색), 청록색(푸른색을 띤 초록색), 코발트블루(녹색을 띤 짙은 파란색)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초록색뿐이랴. 보라색과 회색 그 어느 사이에서도 푸른색은 존재한다. 이런 푸른색이 가진 오묘하고도 복잡한 스펙트럼은 저자에게 글을 쓰는 영감이자 원천이다. 이들 푸른 기운이 생성해내는 감정적 충돌은 다양한 감정선을 인정한다. 하나의 시선으로 붙잡을 수도 없고, 붙잡히지도 않는 감정들의 다변화. 일견 모순적이고 알 듯 말 듯한 푸른색은 어쩌면 가장 불확실했던 날들, 가장 고독했고 결핍되었다고 느꼈던 그 시간들이, 나를 돌아보고 이해하는 가장 귀중한 시간이었음을 깨닫게 만든다.

 


 

저자가 푸른 그림을 매개 삼아 들려주는 이야기들 역시 우리가 어렴풋이 느꼈던, 제대로 형언하지 못한 답답한 감정들을 소회하게 돕는다. 실타래처럼 꼬인 마음의 퍽퍽함을 누군가는 알아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모순된 그 마음들…. 저자는 이런 마음을, 꼭 이해하는 사람이다. 푸른색은 복잡하다. 가끔은 속내를 비치지 않는 미지의 인물을 보는 듯해 속상한 기분마저도 든다. 저자의 말처럼 “투명하게 사라져 버린다.” 은둔과 비밀의 색이지만 한편으론 가장 투명하다. 우울한 색이라고들 하지만 가장 깊고 따뜻한 색이기도 하다. 푸른 그림들만 모아 놓은『여름의 피부』를 읽다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복잡한 색의 균열이 오히려 우리 내면의 혼란스러움을 인정하고 위로를 건넨다. 푸른색의 기운을 잘 이해하고 해석한 저자가 푸른 그림의 바닥에서부터 써 내려간 이야기가 우리의 불안과 고독을 다독여주기 때문이다.

화가 피에르 보나르는 늘 관찰자로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대상을 살피며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닌 자신만의 블루를 완성했다. ‘가장 고독하고 고독한 자’라고 불리던 독일의 화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는 작품 안에 자기만의 서늘한 푸른 세계를 건설하고, 고유한 초상을 만들어냈다. 저자는 “나이와 상관없이 여전히 모난 구석을 가진 사람들. 뾰족함을 연마하거나 닳지 않도록 애쓴 이들. 그런 예술가들이 좋아서, 이들이 지켜낸 뾰족함으로 무언가를 꿰뚫는 송곳을 만들었으면 해서, 그들에 대한 글을 계속 쓰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p.168)라고 썼다.

 


 

이 책 『여름의 피부』는 그런 예술가들을 이해하고, 또 강퍅한 삶에 위안을 건네는 가장 내밀한 색 ‘블루’를 이해하려는 시도다. 그중 ‘푸른 그림’에 관한 가장 첫 번째 책이다. 1장 「유년, 새파랗게 어렸던, 덜 익은 사람」은 유년기에 겪었던 상실, 그리움, 애도의 시간들, 그리고 어린 시절 배워 몸에 꼭 익힌 태도와 습관의 기록이다. 에드바르 뭉크, 발튀스, 호아킨 소로야, 던컨 한나의 그림에서 찾은 푸른 그림들이 작가의 유년 시절 편린을 불러낸다. 누군가를 좋아할수록 내가 싫어지는 감정들, 가진 적 없지만 마치 가진 것처럼 꾸며대는 어른 아이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어떻게 하다가 내가 전봇대를 켜는 일을 맡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그 아래 푸름을 익혔다. 거기 서서 불을 밝히는 법을, 바라보는 법을, 기다리는 법을 배웠다. 그 모든 것들이 푸름 속에서 일어나고 또 내 안에 있다는 걸 느꼈다.” (p.36)

2장 「여름, 모든 것이 푸르게 물들어가는 계절」에선 여름이 주는 청량감, 홀가분함, 뜨거움과 서늘함의 대치가 푸른 그림에 담겨 있다. 나신이 된 자신을 내려다보는 루치타 우르타도(p.75)의 그림에서 비로소 나로 살아가는 생의 기쁨을, 보는 이마저 깊은 잠으로 초대하는 것만 같은 푸른 여인의 모습은 피에르 본콩팽(p.118)의 그림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이외에도 이어지는 글과 그림을 읽고 감상하다 보면 태양이 내리쬐는 어느 해의 여름, ‘여름의 수행원’(p.122) 자격으로 이름 모를 나라의 미술관을 돌아다니는 저자와 함께 양지와 그늘을 옮겨 다니며 푸른 그림을 감상하는 기분을 만끽하게 된다.

 


 

3장 「우울, 사람의 몸이 파랗게 변하는 순간(죽음, 병, 멍, 그리고 우울)」에서는 가장 잘 알려진 푸른색의 상징성 ‘우울’에 관해 이야기한다. 우울증을 앓았던 저자의 고백에서 독자는 현대인이 겪는 불안감을 마주한다. 나, 자신에게서 도망치려는 자의 자리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은 것도 저자가 겪은 경험이 우리의 상황과 그리 다르지 않아서다. 폴 델보(‘나에게서 달아난 자’ 151쪽)의 그림에서 알 수 있는 건, 도망자의 자리는 어느 누구의 자리도 아닌 우리 모두의 자리라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다른 무엇도 아닌 나에게서 도망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참 내달리다 뒤를 돌아보면 그곳에는 나에게서 달아난 나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오로지 나밖에 없는 풍경은 폐허나 다름없다.”(p157~158)

4장 「고독, 비밀과 은둔과 침잠의 색」은 고독에 관한 내밀한 이야기다. 독립해 자신만의 방을 꾸린 저자의 친구 ‘홈 오브 라벤더 걸’(p.198)에게는 소박하게나마 자신의 고유성을 지켜나가는 안정적인 고독감이, 저자가 브루클린의 어느 숙소에선 잠시 맞이한 혼자만의 시간(p.204)에는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고독감이 배어 있다. 성실하게 자신의 세계를 일궈낸 사람만이 뿜어낼 수 있는 풍요로운 고독감은 어떤가. ‘어떤 저녁 식탁’(p.175)은 오래도록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해 노력한 한 사람이 뿜어내는 우아한 고독감이 곳곳에 스며 있다. 이들이 어째서 존경심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한꺼번엔 불러일으키는지 빌헬름 하메르스회의 그림을 빌어 알려준다.

 


 

“여름에는 새로운 단어를 껴안을 수 있는 몸을 갖게 된다. 여름이 나를 통과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어떤 것이든 안으로 흘러들어와 나를 간지럽히도록 내버려둔다. 눈꺼풀 위로, 손톱 아래로, 등줄기로, 양 뺨으로.”(p.76)

 

“내가 그 식탁에서 배운 것은 어떤 종류의 풍요로움이었다. 많은 세계를 품어본 사람만이, 또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것. 금전적인 부유함이 아니라 지적인 윤택함으로 빛나는 것. 그날 이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이 저녁 식사를 떠올린다. 온기와 냉기가 적절히 오가고, 단정한 음식과 와인이 오르고, 내가 아는 세계로 타인을 가두지 않고, 가본 적 없는 곳으로도 멀리멀리 데려가는 장면을 그린다. 언젠가는 그 식탁을 관장할 수 있는 사람으로 늙고 싶다는 소망도 슬쩍 올려두면서.”(p.182)

 

저 : 이현아

 

에디터, 아트 라이터. 1990년 충주에서 태어났다. 인터뷰, 칼럼, 에세이 등 예술에 관한 다양한 글쓰기를 한다. 그 중에서 2017년부터 노트에 쓰고 있는 그림일기를 가장 아낀다. 매거진 《어라운드》에서 에디터로 커리어를 시작해 퍼블리, 젠틀몬스터를 거쳤다. 지금은 IT 회사에 UX라이터로 일한다. 남산 아래서 남편과 두 고양이 말테, 미쭈와 살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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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물었고 영화가 답했다 - 한 편의 영화가 나에게 일러준 것들
이안 지음 / 담앤북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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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가르침은 어려운 범어나 한자로 새겨진 경전에서만 배우고 듣는 게 아니다. 영화는 불교의 가르침을 닮았고, 이를 화면에 담았다. 우리 삶이 영화를 만들고, 영화는 우리가 갈 길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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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물었고 영화가 답했다 - 한 편의 영화가 나에게 일러준 것들
이안 지음 / 담앤북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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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영화 마니아급은 아니지만 애호가라고 할 정도는 된다. 코로나 이전 영화관람이 연 평균 15회 이상은 됐으니 화제의 영화는 물론 화제가 되지 않더라고 보고 싶은 영화는 직접 영화관에서 보는 편이다. 물론 코로나 이후 개인적인 기저질환 때문에 영화관을 거의 못 가고 있지만... 그러나 영화도 전공하지 않았으니 어쩌면 겨우 문외한을 막 벗어난 정도라고 해도 반박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 책 『삶이 물었고 영화가 답했다』를 독자가 선택한 이유는 영화가 담은 메시지가 불교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한 점이 있는 부분을 리플레이하는 느낌으로 읽을 만한 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자 이안의 말대로 영화와 불교의 가르침은 우리 삶을 주제와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같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불교의 가르침을 배워 널리 알리려는 수행자나 일반 불교 신자나 같은 입장일 것이다. 영화나 불교나 우리 삶을 다룬다는 점에서는 맥락이 같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삶의 어느 부분을 담았느냐에 따라 영화의 장르가 분류될 것이고, 또 그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로도 사용될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불교라는 것은 “어려운 범어나 한자로 새겨진 경전”에만 깃들어 있지 않다. 삶 자체가 질문이자 화두인 것이다. 흔히 영화는 삶의 축소판이라고들 한다. 그러니 어느 영화인들 화두로 삼는 주제 하나 없는 영화가 어디 있으랴. 그만큼 삶에 대한 질문과 고민들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매일의 삶이 질문을 던지는 날들, 매일의 삶이 화두 자체인 삶 속에서 저자는 이를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대신 영화를 통해 치열하게 그 답을 찾는다.

 


 

이 책의 첫 장을 여는 1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안에는 작년부터 뜨거운 화제를 몰고 온 영화 〈미나리〉와 베네딕트 컴버배치 주연의 〈닥터 스트레인지〉, 그리고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당신의 사월〉을 포함한 6편의 영화가 소개된다. 2부 「세상 가장 낮은 목소리」, 3부 「생명을 품는 마음」, 4부 「무한한 인연, 희망의 연꽃」에서도 액션부터 코미디,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와 주제를 담은 다채로운 영화들이 소개된다. 저자는 자신의 글을 통해 불교의 가르침이 반드시 어렵지는 않다는 것을, 한자로 가득한 경전에서만이 아니라 우리네 삶의 여정 곳곳에서 언제든 불교의 교리와 마주할 수 있음을 일러주는 동시에 한 편의 영화에서 자신이 주목한 화두에 대해 이야기하며 불교를 잘 모르는 독자들도 공감할 수 있도록 능숙하게 이야기를 끌어간다.

저자는 책의 첫머리 「저자의 말」을 통해 ""영화는 어떤 영화든 불심으로 보면 화두요 답"이라며, “나에겐 영화가 그런 것이다. (…) 고민과 갈등, 그리고 공부”라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저자가 수많은 영화에 깃든 다양한 화두를 자신만의 시선으로 발견하고, 영화 곳곳에 스며든 불교의 교리들을 삶 속에서 겪는 고민과 갈등에 비추어 보고 또 대입하면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공부한 일종의 ‘수행의 기록’인 셈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 현대인들은 각자 하나, 혹은 여러 개의 고민과 갈등을 안고 살아간다. 때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해 보기도 하고, 마음의 짐으로 남겨 둔 채 살아가기도 한다. 화두란 불교에만 해당되는 용어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며 마음 안에서 자연스레 피어오르는 그 모든 고민과 갈등, 즉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질문’들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저자는 『삶이 물었고 영화가 답했다』를 통해 불교적 관점으로 영화를 바라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본 영화가 ‘불교 영화’뿐인 것은 아니다. 저자는 "삶이 영화이고, 영화가 곧 삶이란 생각을 갖고 지금까지 영화를 공부하고, 보고, 글도 썼다"고 말한다.

이 책에 액션부터 코미디,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와 주제를 담은 다채로운 영화들을 소개하는 이유다. 그는 자신의 글을 통해 불교의 가르침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불교의 가르침은 한자로 가득한 경전뿐만이 아닌 우리네 삶의 여정 곳곳에서 언제든 녹아 있음을 일러주는 동시에 한 편의 영화에서 자신이 주목한 화두에 대해 이야기하며 불교를 잘 모르는 독자들도 공감할 수 있도록 능숙하게 이야기를 끌어간다. 앞서 언급한 〈미나리〉와 함께 새롭고 낯선 터전에서 뿌리내리기 위한 인물들의 지난한 삶의 여정을 따라간다. 하루 종일 직장에 나가야 하고, 그러면서도 암평아리는 살리고 수평아리는 죽이는 ‘병아리 감별’이라는 직업에 대해 자괴감을 느끼며, “살생이 아니라 가꾸고 키우는” 삶을 살고 싶다는 이민자들의 고민과 갈등에 주목하는 한편 영화에 등장하는 ‘미나리’가 상징하는 생명의 싱그러움과 푸르름을 이야기한다.

 


 

또 불교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환생’과 ‘변신’을 주제이자 스타일로 풀어낸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영화 〈엉클 분미〉에서는 죽음을 앞둔 ‘분미 아저씨’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죽음과 생명이라는 거대한 순환의 과정을 발견하며 “영혼과 전생과 만물에 불성(佛性)이 있음을” 깨닫는다. 〈닥터 스트레인지〉 같은 블록버스터 영화에서도 “모든 것은 흘러가고, 생이 있으면 죽음도 있으며 (…) 그 흐름을 지키기 위해 수행하는 자가 된 닥터 스트레인지”가 캐릭터가 겪는 수행의 과정을 설명하면서 “불교를 앞세우지 않고도 불가의 가르침을 대중적인 방식으로 오락물 안에서 설명하는 흥미로운 영화”라고 소개한다.

2부 「세상 가장 낮은 목소리」에서는 이 세상이 외면하고 있는 모든 ‘낮은 목소리’를 대변하는 영화 8편에 대한 글을 엮었다. 그중에서도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 〈낮은 목소리 2〉는 2부의 주제를 가장 정확하게 대변하는 영화일 것이다. 저자는 “역사를 증언하고 바로잡으려는 목소리의 주인들이 하나씩 둘씩 세상을 뜨고 있건만, 점점 더 우경화되는 일본의 태도와 정부의 무관심”에 대해 한탄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면서도, 성철 스님의 법문과 달라이 라마의 가르침을 인용해 ‘자비’의 마음과 ‘용서’를 이야기하며 이들의 아픔을 사랑으로 감싸 안는다.

 


 

언뜻 불교와는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코미디 영화 〈정직한 후보〉에서도 저자는 불교의 이상적 왕인 ‘전륜성왕’과 그가 전파한 가르침을 함께 엮어낸다. 경전 『전륜왕사자후경(轉輪王獅子吼經)』에서 언급되는 내용인 “진리에 따라 국가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법의 파괴자로부터 보호해야 하며, 국민이 악의 길을 걷지 않도록 제지해야 한다”라는 근원적이고도 변하지 않는 교리를 현재 한국의 정치 상황과 비교하고, 또 이런 상황을 코믹하게 풀어낸 영화에 대해 '권력을 탐하는 비리의 온상'인 한국 정치판 한가운데서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음을 밝힌다. 또한 '전륜성왕의 도래를 기다리는 사회'보다는 국민들 또한 바른 눈으로 이를 바라보는 것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3부 「생명을 품는 마음」에서 소개되는 10편의 영화는 “지구상의 모든 존재와 존재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들, 우리의 몸과 마음을 이루고 있는 것들과 우리를 포함한 생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저자는 〈미스터 주: 사라진 VIP〉에서는 이 한 편의 영화로 인해 “사람에게 이용당하고 무시당하는 동물들의 목소리”에 자연스레 귀 기울이게 되었다고 말한다. 나아가 천성산 도롱뇽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건 단식도 불사했던 '지율 스님의 마음'을 되새기고, “뭇 생명이 이 세상의 VIP이고, 그 중생들을 지키고 살리는 일”의 중요성을 마치 “절에서 범종과 목어, 운판과 북을 울리듯” 영화와 그 영화에 깃든 웃음으로 문득 깨우친 자신의 내면을 새삼 발견하기도 한다. 또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서는 “죽은 이의 영혼을 극락으로 보내기 위해 치르는 불교 의식이 천도재라면, 이 영화는 고독사한 불행한 사람의 영혼을 성불시키는 영화적 천도재”로 소개하며 영화의 핵심적 메시지와 불교 교리를 정확하고도 아름다운 비유로 연결시킨다.

 

 

4부 「무한한 인연, 희망의 연꽃」은 인연을 바탕으로 희망을 꿈꾸는 영화 6편을 담았다. 저자는 4부를 여는 영화로 2020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인 뒤 올 초 개봉되었던 〈미싱타는 여자들〉을 소개한다. 이 영화는 인권과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불타는 몸으로 평화시장”을 가로지르던 전태일 열사의 이야기뿐 아니라 전태일 열사와 함께한 ‘전태일의 누이들’, 즉 전태일과의 인연을 통해 내면의 거대한 불씨를 키우고 노동자와 여성의 인권에 목소리를 높이고 스스로를 불살랐던 여공들이 40년이 지난 현재를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조명한 작품이다.

저자는 진흙탕 같았던 시절, 열악했던 노동 현장에서 온몸을 던져 변화의 물결을 이룬 전태일 열사와 그의 동지들이 피워낸 수많은 업적을 '희망의 연꽃'이라고 표현한다. 탁한 진흙 속에서 자신을 피워내면서도 청정함과 깨달음의 향기를 잃지 않는 연꽃은 그 자체로 곧 불교와도 같다. 저자는 ‘연꽃’과 ‘인연’이라는 불교의 상징을 통해 “영화를 통해 그 시절의 자신을” 마주할 그들이 지금의 자신을 만든 소중한 인연을 다시금 불러내어 “화쟁의 큰 인연과 희망의 연꽃을” 피워내길 바란다는 간절한 바람을 글 속에 녹여 낸다.

 


 

그런가 하면 2021년 개봉한 영화 '기적' 안에서는 “발원을 세우고 더 나아가 정성을 다하는 노력을 기울이면 하늘이 돌보아 뜻을 이루어주게 되는 지극한 힘”, 즉 '가피력'에 주목하여 이야기를 풀어간다. 철길을 따라서 가는 위험천만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집에 가야 했던 봉화 산골 주민들이 정부 기관이나 지자체의 지원 없이 역 건물을 세우고, 승강장을 만들고, ‘양원역’이라는 이름까지 손수 지어 마침내 그곳에 기차를 서게 만든 놀라운 실화를 한 이 영화를 보며 저자는 “정성을 다하는 진인사의 마음”을 되새긴다. 그리고 이 공간을 “대중울력과 가피력이 깃든 기적의 공간, 그 자체”라는 말로 영화 속 인물들의 지극함에 대한 존경과 감동을 표한다.

그는 “어리석은 눈과 마음”을 지녔더라도 “불심으로 보면 어떤 영화든 화두요, 답”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독자들은 어느새 자신만의 화두가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있을 것이고, 모호한 삶의 물음을 한 편의 영화 속에서, 영화 속에 깃든 불교의 가르침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나에겐 영화가 그런 것이다. (…) 고민과 갈등, 그리고 공부”라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삶이 물었고 영화가 답했다』는 저자가 수많은 영화에 깃든 다양한 화두를 자신만의 시선으로 발견하고, 영화 곳곳에 스며든 불교의 교리들을 삶 속에서 겪는 고민과 갈등에 비추어 보고 또 대입하면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공부한 기록인 것이다.

 

저자 : 이안

 

서울대학교에서 미학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서 영상문화이론과 영화학을 전공했다. 문화일보, 미디어오늘, KBS, YTN, 레디앙 등 다양한 매체에서 영화를 소개하는 평론가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성공회대학교에서 영화에 대해 가르치는 강사, 독립 다큐멘터리 〈나의 노래: 메아리〉를 제작한 프로듀서, 예술영화 전용관인 ‘영화공간 주안’ 관장 겸 프로그래머, 그리고 서울국제실험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이주민영화제, 세이브더칠드런아동권리영화제 프로그래머를 거쳐 지금은 춘천SF영화제 운영위원장이자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다. 2019년부터 지금까지 영축총림 통도사에서 발간하는 월간 〈통도〉에 ‘영화, 불교’라는 칼럼을 써오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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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영화는 이것이 있다 - 심리학, 경제학, 교육문화로 읽는 영화 이야기
이승호.양재우.정승훈 지음 / 청년정신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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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심리학, 경제학, 교육문화 측면에서 분석을 통해 왜 위대한 영화가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와 높은 평가를 받은 이유, 대중을 사로 잡은 요인들에 대해 전문가 3인이 분석을 통해 조명하고 새로운 감상법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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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영화는 이것이 있다 - 심리학, 경제학, 교육문화로 읽는 영화 이야기
이승호.양재우.정승훈 지음 / 청년정신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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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위대한 영화는 이것이 있다』는 영화에 대한 분석과 지식을 바탕으로 영화감상법의 여러 가지 측면을 제시한다. 심리학, 경제학, 교육문화 측면에서 이른바 '걸작'을 재조명하고 있다. '위대한 영화'가 왜 '위대한'이란 타이틀을 거머쥐었는지에 대한 분석을 통해 새 감상법도 제시하는 셈이다. 우선 어떤 영화가 위대한 영화 반열에 있는가를 '선정'하는 작업은 저자들(3인 공저)의 영화에 대한 지식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많은 독자들과 영화팬들의 공감을 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저자 자신들의 주관적 의견보다는 이미 대중의 평가와 평론가들의 분석으로 명화 반열에 오른 영화들을 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는 공감보다는 정확한 영화의 이해에 책의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 선정 작업은 객관성과 대중 설득력을 갖춘 일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저자들은 이 선정 작업에 대한 의견을 한데 모아 이 책의 성격과 발간 취지로 삼았다.

"위대한 영화들은 많다. 하지만 가끔은 왜 그 영화들이 위대한 작품으로 꼽히게 되었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다. 평론가들이 먹고살고 영화를 소개하는 유튜브들이 많은 조회수를 올리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정작 영화보다 이런 프로그램들을 더 좋아하는 이들도 있을 정도니까. 영화평론가들의 분석들은 대개 고답적이어서 지루할 뿐이지만 6개의 테마를 중심으로 18편의 영화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세 사람이 각자 전문분야인 심리학, 경제학 그리고 교육문화의 시각을 가지고 보는 영화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고 색다른 울림을 준다. 한 편의 영화를 두고 나누는 우리네 삶의 이야기다."

 


 

흔히 유명 영화제에서 상을 수여하는 분야를 보면 연출(감독), 배우, 미술, 음악, 번역, 작품성 등 다양하지만 흔히 최고의 영예인 '대상' 작품을 선정할 때는 종합 평가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라는 자체가 대중성을 띈 예술이기 때문에 작품성과 대중성이라는 상호 대조적인 기준을 맞추기 어려워 둘 다를 갖춘 작품을 대상에 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대중적 인기를 받은 영화 중 예술로서의 작품성을 따진다는 것이다. 이는 일반 영화제에서 상을 주는 방식이고 이에 따른 영화제가 대부분이다. 또 대중의 인기를 한몸에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역시 배우들이기 때문에 '남녀 주연상'에 초점이 맞춰지는 예도 많다.

우리 영화는 비교적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영화 노벨상'이라고 일컬어지는 최고 권위의 아카데미상 수상작도 나왔고, 칸느 영화제나 베를린 영화제는 이미 단골 손님 역할을 하고 있을 정도다. 일제 강점기에 시작한 한국의 영화가 이토록 빠르게 성장해 세계 영화제에서 당당한 '최고의 영화'로 선정되는 경우가 많은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어쩌면 영화 산업 자체가 경제력에도 비례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느 날 갑자기' 최고 대우를 받은 것이 오히려 얼떨떨한 느낌마저 준다. 물론 영화계 내부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받았어야 할 상들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우리 영화계의 경사는 한국 영화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 기뻐해야 할 일임에 틀림없다. 영화가 다른 예술과는 다르게 한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지는 음악, 미술 등의 예술과는 다른 종합예술이라는 측면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기계와 돈에 의존하는 요소가 내포된 예술이라서 '상업성'이라는 뗄 수 없는 요인을 가지고 있지만 분명 20세기 가장 화려한 예술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 책은 앞서 언급한 대로 영화 분석을 세 가지 측면으로 분석하고 있다. 심리, 경제, 교육문화 분야다. 먼저 심리적 측면에서의 분석은 오늘날의 영화의 흐름을 짚어볼 수 있는 대폭이 아닌가 한다. 현대인들은 1차 산업혁명부터 시작된 눈코뜰 새 없이 빠른 격변의 사회에 적응하는 데 고통스러워 한다. 이른바 일과 삶에 대한 걱정이 새로운 스트레스로 부상하면서 심리 갈등 해소가 삶의 한 부분이 될 정도로 시달리고 있다. 이 때문에 영화 역시 표현하려는 방식이 '심리'의 흐름을 추적하는 전개를 갖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이 책을 접하면서부터 일어나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18편의 위대한 영화 중 첫 번째 작품은 「동주」이다. 이준익 감독, 강하늘(윤동주 역), 박정민(송몽규 역) 주연의 흑백영화로서 우리의 자랑스러운 시인 '윤동주'에 대한 서사다.

영화 「동주」는 일제 강점기에 한글 이름으로 유학을 갈 수 없어 창씨 개명을 해야 했고, 한글로 쓴 시를 출판하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었던 시대를 살았던 윤동주 시인의 삶을 보여준다. 마치 그 시대를 보여주는 듯 흑백영화로 만들었던 것도 이준익 감독의 강점기의 억압된 심리를 보여주는 '신의 한 수'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영화에서나 실제로나 시(詩)보다 독립운동을 중요하게 생각되는 송몽규는 동갑의 친한 친구이면서 동주를 한없이 부끄럽게 하는 존재다. 인간 윤동주를, 나라를, 모국어를 빼앗긴 시인으로,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케 하는 작품이다. 동주는 친한 친구이면서 항상 자신을 앞서가는 몽규에게 유일한 필살기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문학이다. 이것만큼은 몽규에게 밀릴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신춘문예에 당선된 사람은 몽규. 이렇게 되니 공부에 이어 문학까지 몽규에게 졌다고 생각하는 동주의 심정은 어땠을까? 이런 심리 묘사를 하기에 컬러보다는 흑백이 더 어울렸음직하다는 사실은 영화인이 아니어도 알 수 있지만 과감히 컬러, 그것도 디지털 컬러시대에 흑백을 결정한 이준익 감독의 심리도 함께 들여다볼 일이다. 영화 스토리의 전개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부분 알고 있다. 거기에 크게 어긋남이 없이 기존의 다른 영화와 차이점을 주기에는 주인공 동주의 심리를 좇아가는 게 훨씬 스토리가 흥미로웠을 것이라는 느낌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만 가졌을까?

 


 

이 책은 「동주」를 세 가지 분야 중 '심리'에 초점을 맞춰 분석하고 있지만 경제와 교육문화 분야도 함께 아우르고 책을 통해 분석,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당초 계획대로 6개 테마(자아, 가족, 사랑, 인생, 죽음, 행복)로 나누고 각 테마별로 세 작품씩 모두 18편의 영화가 등장한다. 또 한 개 영화마다 세 가지 측면에서 분석과 조명이 이루어지지만 「동주」는 첫째 항목 〈자아,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에 테마가 맞춰져 있다. 심리적 분석이 적절한 작품이었을 것 같다는 느낌이다. 물론 경제, 교육문화 측면에서 분석과 감상과 함께 이어진다. 같은 테마 '자아'의 다른 영화엔 「와일즈」가 있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상 여우주연과 여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된 작품이다. 2015년 장 마크 발레 감독이 만들었고, 리즈 위더스푼(셰릴 스트레이드 역)과 로라 던(바비 역)이 주연을 맡았다. 삶에 대한 유일한 희망이었던 엄마마저 갑작스럽게 돌아가시고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 셰릴. 그녀는 이혼과 마약 등 방황에 방황을 거듭하다 우연히 눈에 띈 수천 킬로미터의,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극한의 공간인 PCT(Pacific Crest Trail)를 걷기로 결심한다.

그 길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리고 그녀는 이 도전을 통해 삶에 어떤 변화를 맞이하게 될까? 이 영화는 자아의 심리적인 면을 들여다본다. 또 셰릴의 트레일 도전을 '행동경제학' 측면에서 분석한다. "경제학이란 '최소한의 자원으로 최대한의 성과를 끌어내기 위한 학문'이다. 소위 인풋 대비 아웃풋이 매우 중요시 되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단 경제학에는 한 가지 전제가 있는데, 인간은 매우 합리적이며 이성적인 선택을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즉 쓸데없는 감정을 배제한 채 수학적으로 가장 좋은 결과를 끌어낼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호모 사피엔스라 부르기도 하지만, 경제적으로는 호모 이코노미쿠스(경제적 인간)이라는 칭호를 붙이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실제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성적 판단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갑작스러운 감정에 휘말리면서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학의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등장한 학문이 바로 행동경제학이다." 극한의 도전으로 자아 찾기에 성공하고 결국 다큐멘터리 PD와 결혼도 하고 행복한 삶을 예정하고 있다는 행동경제학의 논리로 이 영화를 분석하고 있다.

 


 

세 번째 테마 〈사랑, 첫 사랑과 마지막 사랑 사이 그 어디〉란 제목에서 「오만과 편견」이 주목을 끈다. 독자가 원작 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까지 봤던 작품이어서다. 1813년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다. 원래 이 작품은 당시 영국 사회의 결혼 풍습을 풍자하는 소설이다. 오스틴의 창작 목적(?, 작품 주제)는 당시 남녀, 특히 결혼 적령기의 남녀들이 '결혼에 이르는 길'에 대한 심리적, 사회적 매커니즘을 밝히고 비판하는 데 있었다. 이 작품의 유명한 시작 부분은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재산깨나 있는 독신 남자에게 아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 이런 남자가 이웃이 되면 그 사람의 감정이나 생각을 거의 모른다고 해도, 이 진리가 동네 사람들의 마음속에 너무나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그를 자기네 딸들 가운데 하나가 차지해야 할 재산으로 여기게 마련이다."

영화 「오만과 편견」은 조 라이트 감독, 키이라 나이틀리(엘리자베스 베닛 역)와 매튜 맥퍼딘(미스터 다아시 역)이 주연을 맡았다. 영화는 평화로운 19세기 초 영국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시작한다. 다섯 딸을 좋은 가문에 시집보내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생각하는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다섯 딸이 함께하는 '베넷가'는 평화로운 일상이 지속된다. 그러던 어느날 대가문의 신사 '다아시'가 찾아오게 되고, 베넷가의 둘째딸 '엘리자베스'는 그와 사랑의 줄다리기를 시작하게 된다. 오만과 편견, 그리고 가문과 체면이 뒤엉키는 혼란 속에서 그들은 과연 진정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까? 이 작품은 19세기 초 신분 차이와 계급사회를 넘어선 남녀의 러브스토리를 바탕으로 한다. 남주인공 다아시는 잘생기고 귀족 가문에다 재산이 넘친다. 그래서일까. 그가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냉정하며 조금은 오만해 보이기까지 하다. 여주인공 엘리자베스는 평범한 가문인데도 기가 죽어 보이지 않는다. 스스로에 대한 주체성과 미모, 쾌활함이 넘친다. 원작 소설은 당시 남녀의 사랑보다는 정략적 결혼의 문제를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당당한 엘리자베스의 말에서 우리는 똑똑하고 주체적인 당시로서는 '신여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깊은 사랑 없인 나도 결혼 안 해." 매우 인상적인 장면이다.

 


 

어린 시절. 집 천장에는 밤마다 쥐들이 뛰어다니며 운동회를 열었습니다. 어느 날 새벽. 화장실이 급해 눈을 뜨니 반짝하며 쳐다보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쥐였죠. 녀석과 눈이 마주친 순간 소름이 돋아 이불을 다시 뒤집어썼습니다. 이후 결심을 하였습니다. 어른이 되면 쥐가 없는 아파트에서 살리라. 쥐 잡는 용품 구입. 라면박스 위에 미끼인 사과 한 알을 놓고 주변에 끈끈이를 잔뜩 뿌려놓았습니다. 새벽 무렵 다시 소리가 납니다. 불을 켜니 눈앞에 드러난 전경. 두 마리의 쥐가 접착제에 붙어 허우적거립니다. 먹이를 구하러 왔다가 봉변을 당한 입장. 지켜보았습니다. 한참이나. 벗어나기 위해 털이 뽑히면서도 발버둥치는 녀석들. 그 속에 내가 보였습니다. 살기 위해 악다구니를 하는. 영화 속의 그녀도 그러하였습니다. “내가 왜 이 힘든 길을 걷고 있는지 하루에도 몇 십번이나 자문하였지.”(p.32~33) - 「심리편」 중에서

 

셰릴은 94일간 총 1,770km를 걷는다. 무려 6개나 되는 발톱을 희생하며. 경제적으로 이러한 행동은 그녀에게 아무런 성과를 가져다주지 못한다. 아니 성과는커녕 오히려 그나마 가지고 있던 돈까지 다 써버리게 되니 경제적으로는 최악의 선택을 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여행의 막바지에는 이런 걱정까지 하게 된다. “300마일(약 483㎞) 정도 남았어. 제발 끝났으면 좋겠어. 하지만 두렵기도 해. 그게 끝나면…. 내 이름 앞으로 200원밖에 남지 않거든. 그래도 계속 살아야겠지. 하지만 아직 전혀 준비되지 않았어.” 하지만 행동경제학적으로 보게 되면 그녀의 선택은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감정적으로 크게 흔들리는 상황에서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성과가 아닌,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즉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아보고 다시 힘을 내 새로운 삶에 도전하기 위한 스스로에 대한 격려와 위로, 그리고 믿음을 회복하는 시간이 더 필요했던 것이다. 당장의 경제적 성과가 아닌, 터닝 포인트를 만들기 위한 일시적 멈춤이 그녀에게 더 중요했던 거라 할 수 있다.(p.52) - 「경제편」 중에서

 

많은 자기계발서는 ‘계속 무언가를 하라’고 한다. 오히려 더 많은 것을 하라고. 한때는 승자와 패자라고 구분 지어서 이러면 패자다, 그러니 계속 ‘이렇게’ 하라고 했다. 산업사회 이래로 게으름은 악이었다. 이젠 게으름을 즐기며 생활의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을 때리는 시간이 현대인에게 필수다. 시청 앞 광장에서 멍 때리기 대회도 열리는 시대다. 오늘은 어떤 멍을 해볼까.(p.57~58) - 「교육문화편」 중에서

 


 

저자 : 양재우(차칸양)

경제인문학자이자 라이프 밸런스 컨설턴트로서 ‘경제·경영·인문적 삶의 균형을 잡아드립니다’를 모토로 일하고 있다. 평범한 사람도 얼마든지 행복하고 풍요롭게 살 수 있다고 자신하며, 스스로를 대상으로 그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일반인 스스로 경제뿐 아니라 경영, 인문적 관점에서의 삶을 계획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 <에코라이후 기본 과정>을 9년째 운영해 오고 있으며, 2021년부터는 경제 기본기 습득 프로그램 <돈의 흐름을 읽는 습관(돈습관)>도 진행하고 있다. 일반기업, 도서관, 공공기관 등 다양한 곳에서 강의를 진행로 활동하고 있으며, 인문배움공동체 ‘숭례문학당’의 경제 멘토로도 활약 중이다. 구본형변화경연구소 4기 연구원 출신으로 『소심야구』(2012년), 『불황을 이기는 월급의 경제학』(2013년), 『평범한 사람도 돈 걱정 없이 잘 살고 싶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2019년), 『돈의 흐름을 읽는 습관(2020년)』 외 1권(공저)을 출간했다.

 

저자 : 이승호

‘나의 목소리로 세상을 밝게 합시다.’ 사명 선언문 기반 글과 강의라는 천직에 업을 걸고 있다. 인간 행위에 대한 관심으로 대학에서 심리학을, 대학원에서는 여가학을 전공. 방문판매 기업체에서 약 20년 현장 영업과 교육 파트를 경험하였다.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을 통해 나의 이름으로 된 첫 번째 책 『여자는 알지만 남자는 모르는 20가지』(2013년)을 출간하였고, Dale Carnegie 리더십 강사, 전문코치 자격증 등을 바탕으로 인간, 자연, 힐링, 치유, 명상, 감성 인문학 강의를 하고 있다. 데일 카네기 코리아, KT&G, KMA 한국능률협회, LG생활건강 등 기업체 및 서울시 50플러스, 서울시 식생활 종합 지원센터, 경기 중장년 행복캠퍼스, 복지관, 도서관, 평생교육원 외 출강 중이다.

 

저자 : 정승훈

자칭 디지털 미디어 문화학자.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아이를 낳고 다시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서 교육학을 공부했다. 2008년 그림책 등 독서강의를 부모 대상으로 시작하고 미디어로 분야를 확장한 14년차 프리랜서 강사이며 강사와 기관을 연결하고 강사를 양성하는 스마트에듀빌더 대표다. 뒤늦게 다시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비교문화협동과정 석사 졸업을 하고 2021년 박사 과정 중이다. 교육과 문화에 관심이 많고 독서와 미디어를 융복합한 기획을 하고 있다. 2020년 길 위의 인문학으로 <원작이 있는 그림책> 강의를 영천도서관에 했다.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 11기 연구원으로 인문학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책도 출판했다. 저서로는 『학원 없이 살기』(2013), 『불안을 주세요 안심을 드립니다』(2020), 『0~7세 공부 고민 해결해 드립니다』(2020), 『문화로 크리에이터』(2021) 공저가 있고 『어느 날 갑자기 가해자 엄마가 되었습니다』(2020) 단독저서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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