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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물었고 영화가 답했다 - 한 편의 영화가 나에게 일러준 것들
이안 지음 / 담앤북스 / 2022년 7월
평점 :
독자는 영화 마니아급은 아니지만 애호가라고 할 정도는 된다. 코로나 이전 영화관람이 연 평균 15회 이상은 됐으니 화제의 영화는 물론 화제가 되지 않더라고 보고 싶은 영화는 직접 영화관에서 보는 편이다. 물론 코로나 이후 개인적인 기저질환 때문에 영화관을 거의 못 가고 있지만... 그러나 영화도 전공하지 않았으니 어쩌면 겨우 문외한을 막 벗어난 정도라고 해도 반박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 책 『삶이 물었고 영화가 답했다』를 독자가 선택한 이유는 영화가 담은 메시지가 불교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한 점이 있는 부분을 리플레이하는 느낌으로 읽을 만한 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자 이안의 말대로 영화와 불교의 가르침은 우리 삶을 주제와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같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불교의 가르침을 배워 널리 알리려는 수행자나 일반 불교 신자나 같은 입장일 것이다. 영화나 불교나 우리 삶을 다룬다는 점에서는 맥락이 같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삶의 어느 부분을 담았느냐에 따라 영화의 장르가 분류될 것이고, 또 그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로도 사용될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불교라는 것은 “어려운 범어나 한자로 새겨진 경전”에만 깃들어 있지 않다. 삶 자체가 질문이자 화두인 것이다. 흔히 영화는 삶의 축소판이라고들 한다. 그러니 어느 영화인들 화두로 삼는 주제 하나 없는 영화가 어디 있으랴. 그만큼 삶에 대한 질문과 고민들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매일의 삶이 질문을 던지는 날들, 매일의 삶이 화두 자체인 삶 속에서 저자는 이를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대신 영화를 통해 치열하게 그 답을 찾는다.
이 책의 첫 장을 여는 1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안에는 작년부터 뜨거운 화제를 몰고 온 영화 〈미나리〉와 베네딕트 컴버배치 주연의 〈닥터 스트레인지〉, 그리고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당신의 사월〉을 포함한 6편의 영화가 소개된다. 2부 「세상 가장 낮은 목소리」, 3부 「생명을 품는 마음」, 4부 「무한한 인연, 희망의 연꽃」에서도 액션부터 코미디,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와 주제를 담은 다채로운 영화들이 소개된다. 저자는 자신의 글을 통해 불교의 가르침이 반드시 어렵지는 않다는 것을, 한자로 가득한 경전에서만이 아니라 우리네 삶의 여정 곳곳에서 언제든 불교의 교리와 마주할 수 있음을 일러주는 동시에 한 편의 영화에서 자신이 주목한 화두에 대해 이야기하며 불교를 잘 모르는 독자들도 공감할 수 있도록 능숙하게 이야기를 끌어간다.
저자는 책의 첫머리 「저자의 말」을 통해 ""영화는 어떤 영화든 불심으로 보면 화두요 답"이라며, “나에겐 영화가 그런 것이다. (…) 고민과 갈등, 그리고 공부”라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저자가 수많은 영화에 깃든 다양한 화두를 자신만의 시선으로 발견하고, 영화 곳곳에 스며든 불교의 교리들을 삶 속에서 겪는 고민과 갈등에 비추어 보고 또 대입하면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공부한 일종의 ‘수행의 기록’인 셈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 현대인들은 각자 하나, 혹은 여러 개의 고민과 갈등을 안고 살아간다. 때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해 보기도 하고, 마음의 짐으로 남겨 둔 채 살아가기도 한다. 화두란 불교에만 해당되는 용어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며 마음 안에서 자연스레 피어오르는 그 모든 고민과 갈등, 즉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질문’들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저자는 『삶이 물었고 영화가 답했다』를 통해 불교적 관점으로 영화를 바라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본 영화가 ‘불교 영화’뿐인 것은 아니다. 저자는 "삶이 영화이고, 영화가 곧 삶이란 생각을 갖고 지금까지 영화를 공부하고, 보고, 글도 썼다"고 말한다.
이 책에 액션부터 코미디,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와 주제를 담은 다채로운 영화들을 소개하는 이유다. 그는 자신의 글을 통해 불교의 가르침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불교의 가르침은 한자로 가득한 경전뿐만이 아닌 우리네 삶의 여정 곳곳에서 언제든 녹아 있음을 일러주는 동시에 한 편의 영화에서 자신이 주목한 화두에 대해 이야기하며 불교를 잘 모르는 독자들도 공감할 수 있도록 능숙하게 이야기를 끌어간다. 앞서 언급한 〈미나리〉와 함께 새롭고 낯선 터전에서 뿌리내리기 위한 인물들의 지난한 삶의 여정을 따라간다. 하루 종일 직장에 나가야 하고, 그러면서도 암평아리는 살리고 수평아리는 죽이는 ‘병아리 감별’이라는 직업에 대해 자괴감을 느끼며, “살생이 아니라 가꾸고 키우는” 삶을 살고 싶다는 이민자들의 고민과 갈등에 주목하는 한편 영화에 등장하는 ‘미나리’가 상징하는 생명의 싱그러움과 푸르름을 이야기한다.
또 불교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환생’과 ‘변신’을 주제이자 스타일로 풀어낸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영화 〈엉클 분미〉에서는 죽음을 앞둔 ‘분미 아저씨’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죽음과 생명이라는 거대한 순환의 과정을 발견하며 “영혼과 전생과 만물에 불성(佛性)이 있음을” 깨닫는다. 〈닥터 스트레인지〉 같은 블록버스터 영화에서도 “모든 것은 흘러가고, 생이 있으면 죽음도 있으며 (…) 그 흐름을 지키기 위해 수행하는 자가 된 닥터 스트레인지”가 캐릭터가 겪는 수행의 과정을 설명하면서 “불교를 앞세우지 않고도 불가의 가르침을 대중적인 방식으로 오락물 안에서 설명하는 흥미로운 영화”라고 소개한다.
2부 「세상 가장 낮은 목소리」에서는 이 세상이 외면하고 있는 모든 ‘낮은 목소리’를 대변하는 영화 8편에 대한 글을 엮었다. 그중에서도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 〈낮은 목소리 2〉는 2부의 주제를 가장 정확하게 대변하는 영화일 것이다. 저자는 “역사를 증언하고 바로잡으려는 목소리의 주인들이 하나씩 둘씩 세상을 뜨고 있건만, 점점 더 우경화되는 일본의 태도와 정부의 무관심”에 대해 한탄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면서도, 성철 스님의 법문과 달라이 라마의 가르침을 인용해 ‘자비’의 마음과 ‘용서’를 이야기하며 이들의 아픔을 사랑으로 감싸 안는다.
언뜻 불교와는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코미디 영화 〈정직한 후보〉에서도 저자는 불교의 이상적 왕인 ‘전륜성왕’과 그가 전파한 가르침을 함께 엮어낸다. 경전 『전륜왕사자후경(轉輪王獅子吼經)』에서 언급되는 내용인 “진리에 따라 국가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법의 파괴자로부터 보호해야 하며, 국민이 악의 길을 걷지 않도록 제지해야 한다”라는 근원적이고도 변하지 않는 교리를 현재 한국의 정치 상황과 비교하고, 또 이런 상황을 코믹하게 풀어낸 영화에 대해 '권력을 탐하는 비리의 온상'인 한국 정치판 한가운데서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음을 밝힌다. 또한 '전륜성왕의 도래를 기다리는 사회'보다는 국민들 또한 바른 눈으로 이를 바라보는 것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3부 「생명을 품는 마음」에서 소개되는 10편의 영화는 “지구상의 모든 존재와 존재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들, 우리의 몸과 마음을 이루고 있는 것들과 우리를 포함한 생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저자는 〈미스터 주: 사라진 VIP〉에서는 이 한 편의 영화로 인해 “사람에게 이용당하고 무시당하는 동물들의 목소리”에 자연스레 귀 기울이게 되었다고 말한다. 나아가 천성산 도롱뇽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건 단식도 불사했던 '지율 스님의 마음'을 되새기고, “뭇 생명이 이 세상의 VIP이고, 그 중생들을 지키고 살리는 일”의 중요성을 마치 “절에서 범종과 목어, 운판과 북을 울리듯” 영화와 그 영화에 깃든 웃음으로 문득 깨우친 자신의 내면을 새삼 발견하기도 한다. 또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서는 “죽은 이의 영혼을 극락으로 보내기 위해 치르는 불교 의식이 천도재라면, 이 영화는 고독사한 불행한 사람의 영혼을 성불시키는 영화적 천도재”로 소개하며 영화의 핵심적 메시지와 불교 교리를 정확하고도 아름다운 비유로 연결시킨다.
4부 「무한한 인연, 희망의 연꽃」은 인연을 바탕으로 희망을 꿈꾸는 영화 6편을 담았다. 저자는 4부를 여는 영화로 2020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인 뒤 올 초 개봉되었던 〈미싱타는 여자들〉을 소개한다. 이 영화는 인권과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불타는 몸으로 평화시장”을 가로지르던 전태일 열사의 이야기뿐 아니라 전태일 열사와 함께한 ‘전태일의 누이들’, 즉 전태일과의 인연을 통해 내면의 거대한 불씨를 키우고 노동자와 여성의 인권에 목소리를 높이고 스스로를 불살랐던 여공들이 40년이 지난 현재를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조명한 작품이다.
저자는 진흙탕 같았던 시절, 열악했던 노동 현장에서 온몸을 던져 변화의 물결을 이룬 전태일 열사와 그의 동지들이 피워낸 수많은 업적을 '희망의 연꽃'이라고 표현한다. 탁한 진흙 속에서 자신을 피워내면서도 청정함과 깨달음의 향기를 잃지 않는 연꽃은 그 자체로 곧 불교와도 같다. 저자는 ‘연꽃’과 ‘인연’이라는 불교의 상징을 통해 “영화를 통해 그 시절의 자신을” 마주할 그들이 지금의 자신을 만든 소중한 인연을 다시금 불러내어 “화쟁의 큰 인연과 희망의 연꽃을” 피워내길 바란다는 간절한 바람을 글 속에 녹여 낸다.
그런가 하면 2021년 개봉한 영화 '기적' 안에서는 “발원을 세우고 더 나아가 정성을 다하는 노력을 기울이면 하늘이 돌보아 뜻을 이루어주게 되는 지극한 힘”, 즉 '가피력'에 주목하여 이야기를 풀어간다. 철길을 따라서 가는 위험천만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집에 가야 했던 봉화 산골 주민들이 정부 기관이나 지자체의 지원 없이 역 건물을 세우고, 승강장을 만들고, ‘양원역’이라는 이름까지 손수 지어 마침내 그곳에 기차를 서게 만든 놀라운 실화를 한 이 영화를 보며 저자는 “정성을 다하는 진인사의 마음”을 되새긴다. 그리고 이 공간을 “대중울력과 가피력이 깃든 기적의 공간, 그 자체”라는 말로 영화 속 인물들의 지극함에 대한 존경과 감동을 표한다.
그는 “어리석은 눈과 마음”을 지녔더라도 “불심으로 보면 어떤 영화든 화두요, 답”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독자들은 어느새 자신만의 화두가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있을 것이고, 모호한 삶의 물음을 한 편의 영화 속에서, 영화 속에 깃든 불교의 가르침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나에겐 영화가 그런 것이다. (…) 고민과 갈등, 그리고 공부”라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삶이 물었고 영화가 답했다』는 저자가 수많은 영화에 깃든 다양한 화두를 자신만의 시선으로 발견하고, 영화 곳곳에 스며든 불교의 교리들을 삶 속에서 겪는 고민과 갈등에 비추어 보고 또 대입하면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공부한 기록인 것이다.
저자 : 이안
서울대학교에서 미학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서 영상문화이론과 영화학을 전공했다. 문화일보, 미디어오늘, KBS, YTN, 레디앙 등 다양한 매체에서 영화를 소개하는 평론가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성공회대학교에서 영화에 대해 가르치는 강사, 독립 다큐멘터리 〈나의 노래: 메아리〉를 제작한 프로듀서, 예술영화 전용관인 ‘영화공간 주안’ 관장 겸 프로그래머, 그리고 서울국제실험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이주민영화제, 세이브더칠드런아동권리영화제 프로그래머를 거쳐 지금은 춘천SF영화제 운영위원장이자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다. 2019년부터 지금까지 영축총림 통도사에서 발간하는 월간 〈통도〉에 ‘영화, 불교’라는 칼럼을 써오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