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상호부조론 - 자선이 아닌 연대 니케북스 사회과학 시리즈
딘 스페이드 지음, 장석준 옮김 / 니케북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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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력, 조직 갈등, 돈 문제 그리고 번아웃 등등... 상호부조단체가 빠지기 쉬운 함정들을 과감히 벗어나서 자선에 의지하지 말고 연대 협력 강화해 인류 대위기의 시대를 건너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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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상호부조론 - 자선이 아닌 연대 니케북스 사회과학 시리즈
딘 스페이드 지음, 장석준 옮김 / 니케북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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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는 전쟁과 협력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두 가지를 번갈아 지속해 왔다. 전쟁은 인류가 이뤄낸 모든 것을 파괴하고 죽였고, 협력은 전쟁의 복구나 생존을 위해 집단간 필요해 의해서만 성립했다. 결국 끊임없이 경쟁을 하며 서로를 견제하는 것이 인류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지속될 것이란 암울한 주장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두 가지 상반된 개념은 인류 존속을 위해 불가피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학자들도 있다. 인류의 역사 내내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협력해왔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자본주의와 식민주의가 수립한 임금노동과 사적 소유 구조는 사람들이 서로간의 경쟁을 부추겼을 뿐 서로 연대하고 필요한 자원을 공유해온 방식을 파괴함으로써 부를 소수에 편중되게 했다. 이에 따라 우리는 생존을 위해 경쟁하고, 필요한 것들을 얻기 위해 국가가 운영하는 시스템, 공공 서비스에 의존하게 되었다. 건강 유지가 아니라 이윤을 중심으로 설계된 보건 시스템, 환경을 파괴하는 식량 및 교통 시스템, 폭력적인 치안 시스템하에서 우리는 의지할 곳 없이 고립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정신질환이나 약물남용, 가정폭력이나 학대에 시달리는 사람은 경찰이나 법원이 개입하기 전까지는 어떠한 도움도 얻지 못하는데, 공권력의 개입은 피해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하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공공 서비스가 배제적이고 불충분하며 징벌적인 상황에서, 누구나 돌봄과 좋은 삶을 누리도록 하는 상호부조 활동은 충분히 급진적인 행위가 될 수밖에 없는데도 범죄로 여기기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책에 따르면 재난은 정치의 방향을 좌우하는 요소가 된다. 재난은 시스템의 균열과 허점을 드러내고 대안을 요구한다. 실제로 코로나19 팬데믹 중에 상호부조 단체들이 급증했고, 지난 수십 년간보다 더 많은 이들이 상호부조를 조직하는 방법을 학습하고 있다. 이는 많은 변화를 이뤄낼 커다란 기회라는 것이다. 위기의 절정을 넘기면 사라지는 게 아니라, 꾸준히 더 많은 사람을 활동으로 이끌어 그들을 격분하게 하는 위기와 불평등의 근본 원인을 깊이 이해하며 대담한 집단행동 역량을 구축하도록 지원할 수 있는 상호부조 단체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할 기회라는 것이다. 로빈 켈리(Robin D. G. Kelley, 역사학자, 《자유의 꿈: 흑인 급진파의 상상력Freedom Dreams: The Black Radical Imagination》 저자)는 "표트르 크로포트킨은 상호부조를 가리켜 ‘진화의 한 요인’이라 했으며, 블랙팬서당은 ‘생존을 위한 지속적 혁명’이다"고 말했다. 이 책 『21세기 상호부존론』의 저자 딘 스페이드(Dean Spade)는 상호부조가 지속적 혁명과 연대를 이루기 위한 근본 토대임을 강조한다. 우리 시대의 필수 안내서로 인식되는 이유이다. 이 책은 상호부조 없이는 강력한 사회운동이 있을 수 없음을 가르쳐준다"는 주장으로 추천평을 썼다.

이 책 『21세기 상호부존론』에서 저자는 재난 시기야말로 정치의 방향을 결정하는 시점이라고 주장하며, 지금 그리고 미래의 위기를 대비한 민중의 연대로서 상호부조 단체의 가치와 가능성을 전망하고 그 실행을 위한 매뉴얼을 찾는다. 이 책은 2부 5장으로 이루어졌다 1부 「상호부조란 무엇인가?」는 오늘날 상호부조가 왜 중요하며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설명했으며, 2부 「목적의식을 가지고 협력하기」에서는 상호부조단체가 직면하는 어려운 문제들, 예컨대 집단문화와 의사결정 권한, 구성원 간의 갈등, 돈 관리와 번아웃 등을 다룰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일련의 논의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상호부조를 일상에서 지속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우리 자신에 대한 집단적 돌봄을 조직하고 수천만 민중을 참여시켜 근본적인 변화를 이뤄내는 방법을 상상하도록 돕는 것이 이 책의 골자다.

 


 

저자 딘 스페이드는 이 책에서 좌파 사회운동에 크게 두 가지 과제가 있다고 진단한다. 첫째는 파국적인 상황에서 사람들이 생존하도록 돕기 위한 ‘조직화’, 둘째는 이 위기의 근본 원인을 해결할 수 있도록 수천만 민중이 저항에 참여하도록 하는 ‘확장’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하면서 동시에 저항에 참여하게 이끈다는 두 가지 과제를 해결할 방법이 바로 상호부조 프로젝트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르면 세력화하고 중요한 변화를 이뤄낸 사회운동들은 모두 상호부조를 포함했지만, 이는 운동 안에서 눈에 잘 띄지 않고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부분인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코로나 국면에서 이미 보았듯이, 운동이 구축되면 정부, 대기업, 거대 언론이 접근할 텐데, 이는 부정적인 영향을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우선 일부는 상호부조 활동의 급증을 무시한다. 또 다른 일부는 이를 자원봉사 담론 안에 가둬두려 하며, 상호부조 활동을 영웅적이라 칭하면서 기존 시스템과 대립하기보다는 시스템과 정부의 노력을 보완하는 것으로 묘사하려고 애쓴다. 마지막으로 일부 경찰과 첩보기관은 상호부조 활동을 감시하고 범죄시한다. 문제는 상호부조 단체도 그에 대한 피드백으로 세 가지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도움받을 자격을 위계구조화해 또다시 취약계층을 소외시키거나, 시혜적인 태도로 구세주주의와 온정주의에 빠지거나, 제도권으로 흡수되어 세력이 약화되거나 심지어 시스템을 정당화 또는 확장하는 도구로 쓰이기도 한다.

 


 

저자는 또 지난 50년간 사회운동 역사는 치안 당국, 기금 제공자, 문화의 압력 아래에서 자선 모델이나 사회서비스 모델로 변질되고 변혁적 역량을 상실한 상호부조 단체의 사례로 넘쳐난다고 주장하고 있다. 상호부조 활동의 긴급성으로 인한 한 가지 단점은, 프로젝트의 도움을 받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는 신경 쓰지만, 막상 단체가 강력하고 지속가능하기 위한 훌륭한 내부 관행을 만드는 데는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사결정이 투명하지 않은 단체에서는 지도자가 돈이나 명예에 유혹받고, 일자리를 얻고 보조금을 타거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위해 단체의 핵심 가치를 팔아넘기기가 훨씬 쉽다. 치안 당국이 침투해 파괴하기도 쉽다. 또한 참여자들이 과로에 시달리다 번아웃되기 십상이다.

이 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2부는 저자가 활동가로서 현장을 누빈 경험을 바탕으로 단체를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 다양한 체크리스트와 템플릿을 수록한 실용적인 가이드북이다. 민주적인 집단문화를 구축하고 합의형 의사결정을 도출하는 과정, 권한을 나누어 가지는 지도력 자질, 구성원 개인의 과로와 번아웃을 예방하는 방안, 갈등 상황을 조율하고 즐겁게 활동하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실제로 단체 내에서 자주 겪게 되는 문제들을 진단하고 해결할 수 있는 표와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실려 있다. 수많은 사람이 삶의 일부로서 지속적으로 상호부조에 참여함으로써, 이윤이나 위계에서 벗어나 지구에 파괴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먹고 소통하며 대피하고 이주하며 치유하고 서로를 돌보는 세계를 이 책은 상상한다.

 

 

기후위기,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정부 정책이 위기에 적절하게 대처하기는커녕 오히려 특정 집단을 피해자로 만드는 것을 보면서 지역사회 안에서 대응에 나서야겠다고 느끼는 보통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이들은 자원을 함께 나누고 취약한 이웃을 돕는 대담하고 혁신적인 방식을 만들어내고 있다. 혁명적 변화를 요구하는 사회운동과 연계를 맺으며 벌어지는 구조 활동, 이른바 ‘상호부조(mutual aid)’다. '상호부조는 자선이 아니라 연대!'라는 책의 내용을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이유다.

2012년 허리케인 샌디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음식, 물, 의약품과 기타 필수품을 공급한 것은 정부가 아니라 이전 해 오큐파이 월스트리트 운동에서 태동한 자원활동가 기반 네트워크 오큐파이 샌디였다. 2019년 홍콩에서 반정부시위가 이어지던 당시 코로나 발생 국면임에도 당국이 복면금지법을 내세워 마스크 착용을 막고 국경 폐쇄를 꺼리자, 시위대가 직접 시민들에게 마스크와 손 소독제를 공급했고, 노동조합에 속한 7,000명의 보건의료 노동자들은 국경 폐쇄와 개인보호장비 지급을 요구하며 파업에 나섰다. 그 밖에 구급차 출동이 오래 걸리는 가난한 동네에서 주민들이 서로를 위해 응급 처치를 훈련하거나, 병원비가 없는 이들을 위해 임신중절 비용을 모금하거나, 과도한 경찰폭력이나 이민 단속에 맞서 범죄화된 대상을 숨겨주는 행동이 모두 상호부조 사례다. 상호부조는 지역사회가 사회운동과 연계해 생존과 관련된 필요를 충족하는 다양한 구조 활동을 아우른다.

 


 

변호사이자 법학 교수, 사회운동가인 저자 딘 스페이드는 저소득층 유색 인종 성소수자를 위해 법률구조를 지원하는 단체 ‘실비아 리베라 법률 프로젝트’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으며, 그 자신도 빈곤한 유대인 가정 출신 트랜스젠더로서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성장했다. 미국의 각박한 복지제도, 열악한 서비스산업 비정규직 노동의 현실, 계급·젠더·인종 등 미국 사회의 온갖 모순이 응축된 입양제도 등등… 이 중 어디에서도 저자는 그저 차가운 관찰자의 시선으로만 머물렀던 적이 없다.

"'20세기 후반에 급증한 비영리 부문의 탄생은 1960년대와 1970년대 반인종주의, 반식민지, 페미니스트 운동의 대중적 상호부조 활동이 제기한 위협에 맞선 직접적 대응이었다. 비영리단체는 진정한 변화는 소수의 유급 전문가 집단이 아니라 수백만의 보통 사람들로 이루어진 운동을 통해 실현된다는 진실을 감추고 불의한 시스템을 정당화하며 우리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해 고안되었다. 오늘날 빈곤을 해결한다고 자처하는 비영리단체는 대개 백인 엘리트에 의해 운영된다. 비영리단체와 대학은 석 · 박사 학위 소지자가 사회 문제의 해답을 찾아내는 데 적격이라는 생각을 고취한다. 빈곤 문제가 석·박사 학위 소지자만이 풀 수 있는 일종의 알쏭달쏭한 수학 문제인 양 포장하면서 빈곤의 원인을 신비화한다. 그러나 가난한 이라면 누구나 빈곤의 원인이 사장, 지주, 의료보험회사의 탐욕이고, 백인우월주의와 식민주의 시스템이며, 전쟁과 강제 이주임을 안다. 엘리트적 빈곤 해법은 항상 부의 재분배가 아니라 가난한 이들을 관리하는 것이다."(p52~53)

 


 

이 책의 역자 장석준은 「옮긴이 해제」 '갑자기 왜 21세기 코로나19 팬데믹 논의에서 벗어나 100년도 더 된 책(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 이야기를 꺼내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부족하거나 결핍된 사회적 요소가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 후반부 주제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크로포트킨은 다른 생물 종들과 마찬가지로 인간 역시 상호부조를 통해 생존하고 발전하며 번영했음을 보여주며, 문명 발전에 따라 협력의 양상이 어떻게 변천해왔는지 훑는다. 그러면서 협동과 연대가 개별 인간이 아니라, 그렇다고 국가도 아니라 주로 다양한 연합들을 통해 이뤄졌음을 강조한다. 농업이 주된 산업이던 시기에는 마을 공동체가 이런 역할을 했고, 도시가 등장한 뒤에는 도시 자치조직(코뮌)과 동업조합(길드)이 이 임무를 맡았으며, 근대에 들어서는 노동조합, 협동조합, 공제회 같은 자발적 결사체들이 그 뒤를 이었다. 크로포트킨은 제도화된 종교에 적대적인 아나키스트임에도 여러 종교 공동체 역시 이런 상호부조 조직에 속한다고 인정한다고 밝혔다."고 언급한다. 즉 지금의 한국 사회의 흐름을 보면 급진좌파 사회운동가 크로포트킨의 주장이 생각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 : 딘 스페이드(Dean Spade)

변호사이자 시애틀대학 로스쿨 부교수. 주로 공권력, 감금, 젠더, 인종, 사회운동에 관한 강의를 맡고 있다. 20여 년 동안 감옥, 국경, 빈곤, 전쟁을 철폐하고 민중 생존권 투쟁을 지원하는 사회운동에 종사해왔다. 특히 2002년에는 저소득층, 유색인 트랜스젠더, 인터섹스, 젠더 비순응자에게 무료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며 공동체 방식으로 운영되는 비영리 법률 단체 ‘실비아 리베라 법률 프로젝트Sylvia Rivera Law Project’를 창설했다. 저서로는 《정상적 삶: 행정 폭력, 비판적 트랜스 정치 그리고 법의 한계Normal Life: Administrative Violence, Critical Trans Politics, and the Limits of Law》 등이 있고, 《더 크로니클 오브 하이어 에듀케이션The Chronicle of Higher Education》, 《아웃Out》, 《인 디즈 타임스In These Times》, 《소셜 텍스트Social Text》, 《사이즈Signs》 등에 정기 기고하고 있다.

 

역자 : 장석준

사회학을 공부하고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과 교육 활동에 참여해 왔다. 지금은 출판·연구 집단 산현재 기획 위원으로 일하면서,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이 사회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연구하고 글을 쓴다. 그동안 쓴 어린이책으로 《우리가 몰랐던 현대사》가 있으며, 《세계 진보정당 운동사》,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장석준의 적록서재》 등을 쓰고 《디그로쓰》, 《코로나, 기후, 오래된 비상사태》, 《유럽민중사》, 《도서관과 작업장》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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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 허풍담 5 - 휴가
요른 릴 지음, 지연리 옮김 / 열림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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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란드 사냥꾼들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지만, 조금 더 행복할 줄 안다.” 덴마크의 ‘어쩌다 작가‘ 요른 릴은 북극에서의 일상을 유쾌한 렌즈로 포착해내고, 삶의 모습과 여유를 훌륭하게 형상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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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 허풍담 5 - 휴가
요른 릴 지음, 지연리 옮김 / 열림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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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인류의 삶의 한 모델이 되는 것 같다. 높은 소득, 높은 세금으로 복지국가의 선진적 모델이 되고 있어 더 모범적으로 보인다. 이른바 스칸디나비아 3국으로 일컬어지는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를 말함이다. 그들의 높은 소득은 첨단 산업이나 앞선 기술에 의하기보다는 수산업과 농업, 관광 산업 그리고 모범적 첨단 산업이 균형적으로 발전되어 있다. 그들의 모범적 국가 운영은 그야말로 본받아야 할 모델이 되기에 충분하다. 석유나 가스 자원이 풍부해 광해산업으로 높은 소득을 올리지 않는다. 그들의 영토는 대부분 추운 지역이라 인구 밀도도 낮다. '대국'으로 평가받기에 어렵다.

이 소설이 쓰여진 배경은 그린란드이다. 덴마크령이지만 덴마크령으로 되어 있는 빙하의 나라다. 인구가 5만 명밖에 안 된다고 들은 곳이다. 여기에서 국가를 이루고 사람이 산다는 것도 이 책을 보며 처음 알았다. 어디에 있는지는 알지만 우리의 기억에서 지워진 땅이다. 최근 자료에는 이 지역의 복지국가라는 범위에 아이슬란드도 들어가 있다. 인구 30만 정도에 머무는 말 그대로 빙하에 둘러싸인 나라다. 오랫동안 아무도 주목하지 않아 지구상의 '버려진 땅'이었다. 그들의 축구팀이 러시아 월드컵에서 놀랄 만한 실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러시아 영토가 아닌 극지방이다.

 


그린란드 일룰리사트 항구의 모습(출처: 게티이미지 코리아)

 

네이버백과에 따르면 이곳은 덴마크어로 ‘그뢴란(Grønland)’이라고 하는 그린란드의 인구는 약 5만 명, 행정 중심지는 누크이고 전 국토의 약 85%가 빙상1)으로 덮여 있다. 빙상의 높이는 내륙부로 들어가면서 점차 높아져 최고 3,300m에 달한다. 섬의 날씨는 빙하 지역에서 뿜어 나오는 차가운 공기로 언제나 서늘하다. 이곳에서는 영상 5~10℃까지는 따스한 기온이고, 영하 10℃는 그저 쾌적한 온도로 통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린란드라고 하면 얼음과 추위 그리고 어두움을 연상한다. 하지만 혹독한 추위는 그렇더라도 어두움의 경우는 잘못된 고정관념이다. 어두움이 전 지역을 오랫동안 지배하는 경우도 있지만, 여름철에는 약 3개월 동안 태양이 지지 않는 곳도 있기 때문이다. 그린란드의 기후는 꽤나 예측하기 힘들다. 각 지역마다 다르기도 하지만 갑자기 변하는 날씨는 기상대라고 해도 예측하기 힘들 정도다. 따라서 날씨에 관한 정보는 원주민에게 물어보는 것이 상책이다. 이렇게 불리한 기후 조건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의 교육 수준은 꽤나 높은 편이며, 이것이 그린란드를 현대적으로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린란드(덴마크령)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누이트(Inuit)이라고 불리는 에스키모인들이다. 아주 옛날에 시베리아를 비롯한 중앙아시아로부터 넘어온 그들의 선조는 우리나라 사람들과 얼굴이 닮은 몽골 인종이었다. 그 후 알래스카, 캐나다, 덴마크 등에서 이주해 온 서양 사람들과 섞여서,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북서쪽 끝의 툴레 주위와 동그린란드에서만 순수한 이누이트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소설 『북극 허풍담 5』 「휴가」 편은 시리즈 다섯 번째다. 그동안 1편 「즐거운 장례식」, 2편 「그 후 엠마는 어떻게 되었나?」, 3편 「백작의 유산」, 4편 「지옥의 사제」는 이미 출간됐다. 5편 「휴가」가 최신간이다. 이 『북극 허풍담』 시리즈는 일생 동안 전 세계 곳곳을 탐험한 작가 요른 릴의 자전 소설이라고 한다. 젊은 나이에 그린란드 북동부에 갔다가 북극의 매력에 푹 빠졌던 요른 릴은 그곳에서 무려 16년을 보냈다. 그리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허풍담’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불린 단편소설들을 써 내려간다. 사실 요른 릴은 구태여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도, 자신이 쓴 원고들을 어딘가에 발표하겠다는 목표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집필한 단편소설들은, 북극의 사냥꾼들에게 책을 파는 상인의 손에 들어갔다가 그것을 계기로 출간되어 놀라운 성공을 거둔다.

인구가 겨우 500만 명에 불과한 덴마크에서 25만 부 이상 판매되고 전 세계 15개 이상의 국가에 번역 출간된 것이다. 전화기는 꿈도 꿀 수 없고, 이웃집에 가려면 개 썰매를 몰고 며칠을 이동해야 하는 고립의 공간, 북극. 겨울이면 해가 뜨지 않는 긴 밤이 시작되고, 눈보라와 혹독한 추위를 일상처럼 겪어야 한다. 여기, 19세에 그린란드 북동부 탐사에 참여했다가 아예 북극에 눌러앉아버린 한 청년이 있다. 그는 사냥꾼들과 겪은 놀라고 특별한 체험을 잊지 않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하고, 묻힐 뻔한 그의 글은 한 책 장수 덕에 세상 빛을 보게 된다. 경이로운 대자연과 홀가분한 생활을 찾아 북극에 온 사냥꾼들이 거친 기후와 고립감을 유쾌하게 격파해나가는 매일매일의 비범한 에피소드로 채워져 있다.

 


 

소설 『북극 허풍담』은 모두 10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삶을 진정으로 즐기는 북극의 사냥꾼들의 이야기와 삶의 모습이 담겨 있다. 문명 세계에서 온갖 기계와 콘크리트 건물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우리에게 일상의 해독제이자 활력소가 되어줄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이다. 작품의 배경인 북극은 현대의 문명인들에게는 하루 머무는 것조차 상상하기 힘든 공간이다. 1년에 한 번 도착하는 보급선이 세상 소식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며, 동료 사냥꾼의 집에 방문하려면 개 썰매를 타고 밤낮없이 이동해야 한다. 그뿐인가. 추위는 모든 것을 얼려버릴 만큼 혹독하며, 여름이면 해가 지지 않는 백야가, 겨울이면 해가 뜨지 않는 극야가 시작된다.

『북극 허풍담』에는 이렇듯 혹독한 땅 북극을 제 발로 찾아온 괴짜들이 등장한다.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홀가분하고 자유로운 삶을 찾아 덴마크,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등 조국을 떠나 북극에 도착한 이들이건만, 때로는 이들 역시 혹독한 자연과 고립감 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 젊음의 혈기를 분출하지 못해 우울증을 앓고, 향수병에 시달린다. 경이로운 풍경에 취해 항해하다가도 성난 파도에 휩쓸려 북극해를 떠돌고, 한밤중에 곰을 마주쳐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은 결코 좌절하지 않는다. 고난과 역경을 유쾌하게 이겨내는 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 요른 릴은 북극에서 배운 것이 “북극에서 사는 법이 아니라, 살아가는 법 자체”였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이처럼 극단적인 환경에서도 삶을 긍정해내는 북극의 인생관을 익히니, 어디서고 행복할 수 있었다는 뜻이리라.

 


 

출판사 측에 따르면 시종일관 즐거운 분위기를 유지하는 『북극 허풍담』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는 고독과 죽음이다. 일상적으로 고립감을 느끼고, 늘 죽음의 위협이 뒤따르는 사냥꾼들의 생활을 다루었으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다만 이 같은 주제 역시 유쾌한 문체로 다루는 작가의 태도는 다소 이색적이다. 『북극 허풍담』 속 사냥꾼들은 동료의 장례식을 즐거운 잔치로 만들어버리고, 종국에는 자신들이 누구를 애도하는지조차 잊고 만다(『북극 허풍담 1』 중 「즐거운 장례식」). 항해 중 생사의 기로에 맞닥뜨렸으면서도 눈앞에 닥친 죽음보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것을 힘겨워하고(『북극 허풍담 2』 중 「짧은 우회」), 외로운 마음에 상상 속의 여인과 사랑에 빠졌다가(『북극 허풍담 1』 중 「차가운 처녀」),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그녀를 떠나보내기도 한다(『북극 허풍담 2』 중 「그 후 엠마는 어떻게 되었나」). 동료 간의 결투에서 패배한 뒤 그 상심으로 인해 죽어버린 한 친구의 시신을 가족에게 온전한 모습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애쓰던 사냥꾼들은, 시신을 보관한 빙산이 떠내려가는 통에 두 계절을 온통 친구를 찾는 데 흘려보낸다(『북극 허풍담 4』 중 「잘 보존된 시체」).

물론 천진한 태도를 하고 있다고 해도, 이러한 주제의 무거움을 실감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발랄한 문체로 쓰여진 이 이야기들이 때때로 섬뜩하고 아프게 느껴지는 이유다. 자신이 쓴 이야기들을 두고 “거짓으로 들릴 수 있는 사실 혹은 그 반대”라고 말하며 “허풍담”이라 이름 붙인 요른 릴은, 때로는 과장처럼 느껴지는 활기찬 일상을 묘사하면서도 인간의 근본적인 어둠을 함께 그린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이야기들을 그저 재미나고 유쾌하게만 읽고 넘길 수 없다.

 


 

저자는 이렇듯 인간의 근본적인 어둠을 수용하고 극복하는 사냥꾼들의 모습을 통해 ‘허풍담’이란 장르에 깊이감을 부여한다. 단편소설의 정석이라 불려도 지나치지 않은 훌륭한 짜임새를 지닌 각각의 이야기들은 웃음과 비극이라는 양면성을 겸비하며 문학사에 더욱 특별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모든 것이 부족한 북극이지만, 작품 속 인물들은 사소한 것에서 큰 행복을 느낀다. 노간주열매로 담근 술이나 종종 찾아드는 따사로운 햇빛, 1년 중 아주 짧은 기간에만 누릴 수 있는 낮과 밤이 있는 날들이 그렇다. 물론 최고의 행복은 동료 사냥꾼들이다. 언제나 죽음의 위협이 도사리는 데다, 막막한 고립감을 견뎌야 하는 북극이란 공간에서 동료들은 최고의 보물일 수밖에 없다. 동료 사냥꾼을 만나려면 개 썰매를 타고 밤낮없이 이동해야 하지만, 『북극 허풍담』 속 사냥꾼들은 곧잘 여정에 나선다. 북극 연안을 떠도는 시시콜콜한 소문을 전하거나, 그저 수다를 떨고 우정을 나누기 위해 긴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또한 사냥꾼들은 서로를 따뜻하게 배려할 줄 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저 우애와 배려만으로 북극 공동체가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서로 믿고 의지하되, 서로의 영역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북극의 법이다. 자유로운 삶을 찾아 북극을 찾은 이들이니 당연한 이치다. 이들은 씻지 않거나 온종일 잠을 자는 것도, 사냥꾼 자격으로 북극에 머물면서 정작 사냥보다 농사에 집중하는 것도 모두 존중한다. 다만 서로를 존중한다는 원칙을 어기고 함부로 군림하려 한 이에게는 호된 응징을 가하기도 한다. 이들의 삶의 모습과 특성은 1~4편에도 곳곳에 등장하며 웃음을 주고, 때로는 슬픔을 주기도 한다. 이렇듯 『북극 허풍담』은 혹독한 환경에서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모습은 북극의 빙판처럼 깨끗한 거울이 되어 우리를 되돌아보게 한다.

 


 

저자 : 요른 릴(Jørn RIEL)

대자연, 주로 북극을 배경으로 유머와 인간애, 호방한 철학을 담은 독특한 작품을 써온 작가이자 탐험가. 1931년 덴마크 오덴세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늘 탐험을 동경하던 그는 19세에 라우게 코크Lauge Koch 박사의 그린란드 북동부 탐사에 참여했다가 그곳의 매력에 흠뻑 빠져 북극 생활을 시작했다. 1년에 한 번 소포와 보급품을 싣고 오는 수송선이 문명 세계와의 유일한 연결 통로인 그린란드 북동부에서 16년을 지내면서, 그곳의 사냥꾼들과 겪은 놀라운 체험,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잊지 않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작가가 된다는 생각도 없었고, 자신이 세계적 명작을 쓰고 있다는 사실도, ‘허풍담skrøner’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였다. 하마터면 묻힐 뻔한 그의 걸작들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은 어떤 뻔뻔한 책 장수 덕분이었다. 북극 사냥꾼들에게 장식용 책을 무게로 달아 파는 그가 요른 릴의 원고를 몰래 빼내 출판업자에게 넘겼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의 작품들이 출간되기 시작해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그 후 UN을 위해 중동과 파키스탄에서 파견 근무를 했으며, 파푸아 뉴기니, 알래스카 등지를 여행했다. 수마트라 섬을 걸어서 횡단하는 등 그는 여행하는 곳마다 구경꾼이 아니라 원주민으로 살아왔다. 현재 ‘해동을 위해’ 말레이시아에 거주하고 있다는 작가는 여전히 수시로 그린란드 북동부 지역을 드나들고 있다.

그가 발표한 콩트, 일화집, 단편집, 장편소설 등 40여 권의 책은 대부분 이국적인 자연을 배경으로 한 유머러스한 작품들로, 덴마크는 물론 유럽 여러 국가에서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며 오랜 세월 널리 읽히고 있다. <북극 허풍담 시리즈>(전 10권, 1974~1996)는 그의 대표작이다. 문명을 등지고 그린란드 북동부에서 살아가는 괴짜 사냥꾼들이 주인공이다. 한편 우스꽝스럽고 한편 애수 띤 짧은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단편은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 연결을 가진다. 그 밖의 작품들로는 『내 아버지들의 집』(1970), 『생을 위한 노래』(1989), 『바다의 어머니를 찾으러 간 소녀』(1972), 『뚱뚱하고 하얀 투안』(1974), 『파란 문』(1982), 『혼란』(1992) 등이 있다. 1995년 덴마크 서적상 황금 월계관상을, 2010년 덴마크 학술원 대상을 받았다.

 

역자 : 이지연 (지연리)

그림을 좋아해 화가가 되었습니다. 글을 좋아해 번역을 시작했고, 삽화를 그렸습니다. 한국을 떠나 10여 년간 프랑스에서 살며 세상 곳곳을 여행했습니다. 지금은 태어난 곳으로 돌아와 그간의 경험을 글과 그림으로 옮기고 있습니다. 프랑스와 한국에서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을 가졌고, 『북극에서 온 남자, 울릭』, 『거꾸로 흐르는 강 1,2』, 『오늘도 살아내겠습니다』, 『두 갈래 길』 등 여러 서적을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는 코끼리 이야기』는 어른을 위한 동화 『파란심장』에 이어, 그리고 쓴 두 번째 책으로 내가 나로 되어 가는 여정에 있는 모두를 위해 창작되었습니다. 우리는 늘 심장에 박힌 별을 찾아 여행을 떠납니다. 그리고 그 길 끝에서 별과 하나인 자신을 발견합니다. 1995년 성신여자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1999년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 제8대학에서 조형미술을 공부했다. 2004년 정헌메세나 유럽 청년 작가상을 수상했다. 탄생과 소멸, 평면과 입체, 빛과 어둠 등 이분된 양극 사이에 주목한 작품을 [Entre-temps, 1과 2/1] [Entrevoir] [꿈속의 꿈] 등 개인전과 여러 단체전을 통해 꾸준히 발표해 왔다. 현재 서울을 기반으로 화가, 삽화가, 번역가, 그림책 작가로 활동 중이다.

쓰고 그린 책으로 『파란 심장』이 있으며 『내가 혼자 있을 때』 외 다수의 도서에 그림을 그려 넣었다. 『꾸뻬 씨의 행복 여행』을 시작으로 몇몇 필명을 사용해 『행복한 걸인 사무엘』, 『너의 꿈 끝까지 가라』, 『남은 생의 첫날』, 『내가 언제나 바보 늙은이였던 건 아니야』, 『북극에서 온 남자, 울릭』, 『오늘도 살아내겠습니다』, 『두 갈래 길』, 『코끼리에게 필요한 것은?』 등을 우리말로 옮겼고, 옮기고 그린 책으로 『내가 언제나 바보 늙은이였던 건 아니야』 『남은 생의 첫날』 『행복한 걸인 사무엘』 등이 있다.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Big&bang』, 『매일 아침 1분』, 『세상은 나를 울게 하고 나는 세상을 웃게 한다』 등 한국과 프랑스에서 다수의 도서에 그림을 그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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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새는 울지 않는다 부크크오리지널 6
김설단 지음 / 부크크오리지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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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죽은 새는 울지 않는다』는 사회 비리와 부조리를 풍자하기 위한 리얼리즘 소설의 범주에 속한다. 사회 지도자급의 고위층들의 비리를 파헤치기 위해 가장 적절한 인물이 검사일 터다.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역할로 알맞을 테니... 그러나 비리를 추적해야 할 현직 검사가 어느날 지방의 무령으로 간 뒤 실종된다. 소설의 발단이다. 이날 날씨와 주위 배경 묘사로 소설이 시작된다. "바람은 차고 궂었다. 산등성이의 거뭇한 윤곽 위에는 낮부터 내내 먹구름이 걸려 있었는데, 얼핏 보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 같았다."(p.9) 겨울의 눈이 올 듯한 우중충한 분위기가 소설의 분위기를 휘감으며 음산하다. 이런 날 사건이 벌어진다면 필경 추잡한 구석이 드러나게 될 것이란 징조를 보여준다.

겨울 해는 일찍 저문다. 구름 사이를 비집고 나온 불그스레한 노을이 서쪽 산마루에서 섬광탄처럼 반짝이다 이내 사라진다. 콜타르만큼 농밀한 어둠이 작은 마을을 뒤덮는다. 흩날리던 눈발이 이내 굵어져 솜털 같은 함박눈으로 바뀐다. 이곳은 지방의 조그만 군(郡) 단위의 한 마을이다. 낡은 철조망 너머로 단단하게 자리잡은 두 개의 저수지, 첩첩으로 두른 산 사이로 쥐어짜듯 일군 비좁은 논배미와 버려진 집, 멋대로 자란 나무들만이 가득한 작은 고장이다. 이날 바로 현직 검사가 이곳으로 향한 뒤 실종된다. 설상가상으로 얼마 후에는 그의 피 묻은 신분증이 발견되었다는 소식마저 전해진다. 사건을 추적할수록 거액의 비트코인이 엮인 추악한 범죄의 실마리가 서서히 드러난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곤히 잠들고 죽은 자는 말없이 잊힌 밤. 과연 검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진실은 모습을 드러낼 것인가.

 


 

이 작품의 저자 김설단은 이 책이 그의 첫 소설이다. 처음 소설을 쓴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탄탄하고 정교한 서사로 글솜씨와 스토리 구성에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거기에 입체적이고 매력적인 등장인물,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치밀한 반전 등을 쉴 새 없이 몰아치며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또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인물들의 심리와 자칫 장황하게 흘러갈 수 있을 법한 배경이나 상황들을 섬세하면서도 감각적인 묘사로 깔끔하게 풀어낸 점도 주목할 만하다.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압도적인 흡인력으로 이끌며 묵직한 존재감을 선보임으로써 우리 문단에 분명한 족적을 남길 것으로 예상된다.

소설 속 사건이 일어난 곳은 인구 팔만 명 남짓의 작은 고장, 무령이다. 현직 부장검사의 실종사건이 발생한다. 현직 검사가 무령에는 왜 왔으며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는 무령경찰서 경장 진태수다. 작은 마을이라 마을 사람이 실종되더라도 큰 사건일진대 현직 부장검사의 실종은 어마어마한 사건으로 온 마을을 발칵 뒤집어놓기에 부족함이 없다. 태수는 사건 발생 시점부터 등장한다. "태수는 빛의 강물을 거스르며 약동하는 노란 생명체(전등에 반짝이는 눈송이)들을 쳐다보았다. 한순간 바람이 잦아들자 레몬색 눈송이들이 공중에 뜬 채 그대로 멈추었다. 마치 누군가 버튼을 눌러 시간을 멈춘 듯 세상이 단 하나의 장면으로 얼어붙었다. 태수 역시 숨을 멈췄다."

 


 

태수는 뒤에 더 큰 범죄가 엮여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다. 정의를 위해 진실을 파헤쳐야 하는가. 모두의 안위를 위해 이대로 묻어 두어야 하는가. 이러한 태수의 물음에 정길은 ‘적당히 정의롭게 살라’며 넌지시 고개를 젓는다. 태수는 결혼할 여자 유지나와 경찰서 동료다. 이날 당직실 근무자인 유지나 경장과 치킨을 함께 먹자고 선배 강모 형사가 둘 사이에 끼어들어 다리를 놔준 것이다. 시골 경찰서 사건 없는 밤 풍경 그대로다. 드디어 셋이 합석해 치킨을 먹으려는 찰나 당직실 전화벨이 울린다. "무령경찰서입니다. ······네?" 수화기를 뺨에 붙인 지나의 미간에 부챗살처럼 주름이 잡혔다. 여기 경찰서예요. ······여보세요. 여기 경찰서라고요." "왜? 무슨 일인데?" 강모가 물었다. 송화구를 손으로 막으며 지나가 어깨를 으쓱했다. "반반 한 마리 갖다 달라는데요."

순간 강모의 육중한 몸이 어울리지 않을 만큼 빠르게 움직였다. 전화기 쪽으로 내달리는 강모의 옆구리가 책상에 부딪히면서 종이 한 장이 팔랑거리며 땅으로 떨어졌다. 강모는 팔을 뻗어 신고접수용 전화기의 스피커폰 버튼을 눌렀다. 전화기에서 여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반반 말이에요.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이요.' "여기 경찰서인 거 알아요?" 강모가 물었다. '네, 알아요, 안다고요.' 핀볼 기계의 범퍼 사이에서 튀는 쇠공처럼, 세 사람은 빠르게 눈빛을 교환했다. 태수는 굳은 표정으로 치킨을 책상에 내려놓았다. 지나가 벽에 있는 관내 지도의 한 지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무지개 아파트예요, 라고 속삭였다. 혹시 지금 위험한 상황이면 콜라 큰 거로 달라 카소, 하고 강모가 말했다. '······콜라 큰 거로 주세요.' "본인 외에 다른 인질도 있어요?" '얼마나 걸려요?' 태수가 벽의 지도와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빠르면 십 분, 이십 분." '최대한 빨리 좀 부탁해요.' 태수가 강모에게 물었다. "권총도 챙길까요?" "그래."

 


 

자칫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사건 발단 부분만 요약했다. 모두 40장(章)으로 이 소설의 1장만 독자가 내용만을 임의로 편집한 것이다. 다음 부분은 소설의 중간 중간 이야기의 핵심이 될 만한 내용이 들어 있는 부분을 발췌해 일부만 공개한다.

 

"차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태수는 눈을 떴다. 상체를 일으키고 창문을 여니 두꺼운 외투를 껴입은 강모가 콧김을 뿜으며 밖에 서 있었다. 그리고 강모 옆에는 젊고 아담한 여자가 서서 검붉은 체크무늬 담요로 어깨를 감싼 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여자의 눈가에는 마스카라가 번져 있었다. 투명한 피부에 작고 빨간 코. 얼어붙은 실핏줄이 여자의 양쪽 뺨에 빨간 동그라미를 그렸다."(p.68)

 

"여러분의 도움이 좀 필요합니다.

어떤 도움을 말씀하시는지?

유림은 입술을 다물고 눈을 내리깔았다. 손깍지를 낀 유림의 양손이 배꼽 부근으로 내려오더니 위로 벌어지며 무언가를 떠받치는 듯한 모양을 만들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직 부장검사 한 사람이 사라졌습니다."(p.104)

 

"그거 루미놀 아니가?

뒤로 좀 물러나이소.

태수는 정길과 함께 한 걸음 뒤로 물러선 다음 왼쪽 소매로 입과 코를 가리고 오른팔을 쭉 뻗어 신분증 위에 용액을 분사했다. 정길도 파카 목깃을 들어 올려 호흡기를 가리고 눈을 가늘게 떴다. 태수는 분무기를 근처 책상에 내려놓은 후 출입구 옆으로 가서 스위치를 눌렀다. 사무실의 불이 모두 꺼지자 순식간에 눈앞이 암흑으로 변했다. 이윽고 일그러진 빛의 고리가 마치 어둠 속에서 형광 막대를 휘저은 잔상처럼 선명히 떠올랐다."(pp.173~174)

 


 

어쩌면 이 소설은 지금 우리가 발 디디고 서 있는 현실의 축약판이다. 검사나 경찰, 군수 같은 그럴듯한 허울 뒤 탐욕과 비리로 물든 그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씁쓸함과 차가운 무력감을 안겨준다. 저자 김설단은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분이다. 지금 직업은 뭔지 모르겠지만 검사나 변호사, 판사 등의 법조와 시장, 군수의 행정직 지도자들의 일부 비리 공무원들의 어두운 부분을 잘 아는 것 같다. 그들의 비리 행태나 뒷돈을 챙기는 수법 등에 대해 나름 잘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을 것으로 독자는 판단한다. 단순히 저자의 상상력만으로 이 책처럼 자세하게 비리 수법을 파헤치지는 못할 것이란 예상에서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저마다의 이해와 목적을 앞세워 공조와 배신을 넘나드는 인물들이 여전히 공직의 높은 자리에 앉아 있다. 저자는 ‘적당히’ 눈감아 줄 것을 종용하는 현실, 늘 그렇게 흘러왔듯 결국 변하는 것 하나 없는 결말 등을 통해 “거짓을 한 겹 더 벗겨낸다고 진실을 볼 수 있는 건 아니”(p.349)라거나 “우리가 흔히 진실이라고 부르는 건 서로 합의된 이야기에 불과”(p.366)하다고 이야기하며 묵직한 한 방을 던진다.

이 소설은 우리 사회의 일부이거나 전부일지 모를(?), 얼룩지고 일그러진 민낯을 그린 하드보일드 스릴러다. 독자의 마음 한구석에 쉬이 지워지지 않을 날카로운 흔적을 남길 것이다. 자긍심과 사명감으로 경찰을 꿈꾸고 형사 생활을 해왔던 태수다. 태수는 고민 끝에 자신이 믿는 정의를 위해 나아가기로 마음먹지만 수사를 계속할수록 거대한 권력 앞에 좌절감만 맛보게 될 뿐이다. 그렇게 사건이 흐지부지 마무리된 후 군수는 그에게 “한 번 물속에 잠기면 다시 떠오르지 않는 것들도 있는 법”(p.349)이라며 의미심장한 말을 건넨다. 결국 태수는 경찰을 그만 두고 무령을 떠난다.

 


 

"태수야, 경찰 생활을 하다 보면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회의감이 들 때가 있다. 다들 자기 능력에 맞춰서 최대한 악하게 사는 게 사람이지 싶을 때가 있거든."

"저는 잘 모르겠습니더. 그래도 원칙이라는 게 있어야 한다 아닙니꺼."

"원칙이 밥 먹여주더나."(p.179)

 

좀 더 어려운 이야기를 하자면, 비트코인은 법의 테두리 밖에 있어요. 어떤 전자지갑에 거액의 비트코인이 들어 있다고 해보죠. 그리고 그 사실을 세상 사람들이 다 알아요. (중략) 그걸 실제로 회수하려고 들면 문제가 생기죠. 비트코인은 실체가 존재하지 않으니까. 누군가 자신의 전자 지갑에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다면 개인 암호키를 알아야 그 비트코인을 이체할 수 있어요. 지갑 주인이 암호키를 외운 다음 어디에도 흔적을 남겨두지 않는다고 가정해 봐요. 어떻게 할 방도가 없죠. 그러니까 순수하게 이론적으로 따지면, 비트코인은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고 완벽하게 지킬 수 있어요. 기억력만 좋다면.(pp.241~242)

 

저자 : 김설단

 

1981년생. 경희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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