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죽은 새는 울지 않는다 ㅣ 부크크오리지널 6
김설단 지음 / 부크크오리지널 / 2022년 8월
평점 :
이 소설 『죽은 새는 울지 않는다』는 사회 비리와 부조리를 풍자하기 위한 리얼리즘 소설의 범주에 속한다. 사회 지도자급의 고위층들의 비리를 파헤치기 위해 가장 적절한 인물이 검사일 터다.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역할로 알맞을 테니... 그러나 비리를 추적해야 할 현직 검사가 어느날 지방의 무령으로 간 뒤 실종된다. 소설의 발단이다. 이날 날씨와 주위 배경 묘사로 소설이 시작된다. "바람은 차고 궂었다. 산등성이의 거뭇한 윤곽 위에는 낮부터 내내 먹구름이 걸려 있었는데, 얼핏 보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 같았다."(p.9) 겨울의 눈이 올 듯한 우중충한 분위기가 소설의 분위기를 휘감으며 음산하다. 이런 날 사건이 벌어진다면 필경 추잡한 구석이 드러나게 될 것이란 징조를 보여준다.
겨울 해는 일찍 저문다. 구름 사이를 비집고 나온 불그스레한 노을이 서쪽 산마루에서 섬광탄처럼 반짝이다 이내 사라진다. 콜타르만큼 농밀한 어둠이 작은 마을을 뒤덮는다. 흩날리던 눈발이 이내 굵어져 솜털 같은 함박눈으로 바뀐다. 이곳은 지방의 조그만 군(郡) 단위의 한 마을이다. 낡은 철조망 너머로 단단하게 자리잡은 두 개의 저수지, 첩첩으로 두른 산 사이로 쥐어짜듯 일군 비좁은 논배미와 버려진 집, 멋대로 자란 나무들만이 가득한 작은 고장이다. 이날 바로 현직 검사가 이곳으로 향한 뒤 실종된다. 설상가상으로 얼마 후에는 그의 피 묻은 신분증이 발견되었다는 소식마저 전해진다. 사건을 추적할수록 거액의 비트코인이 엮인 추악한 범죄의 실마리가 서서히 드러난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곤히 잠들고 죽은 자는 말없이 잊힌 밤. 과연 검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진실은 모습을 드러낼 것인가.
이 작품의 저자 김설단은 이 책이 그의 첫 소설이다. 처음 소설을 쓴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탄탄하고 정교한 서사로 글솜씨와 스토리 구성에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거기에 입체적이고 매력적인 등장인물,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치밀한 반전 등을 쉴 새 없이 몰아치며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또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인물들의 심리와 자칫 장황하게 흘러갈 수 있을 법한 배경이나 상황들을 섬세하면서도 감각적인 묘사로 깔끔하게 풀어낸 점도 주목할 만하다.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압도적인 흡인력으로 이끌며 묵직한 존재감을 선보임으로써 우리 문단에 분명한 족적을 남길 것으로 예상된다.
소설 속 사건이 일어난 곳은 인구 팔만 명 남짓의 작은 고장, 무령이다. 현직 부장검사의 실종사건이 발생한다. 현직 검사가 무령에는 왜 왔으며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는 무령경찰서 경장 진태수다. 작은 마을이라 마을 사람이 실종되더라도 큰 사건일진대 현직 부장검사의 실종은 어마어마한 사건으로 온 마을을 발칵 뒤집어놓기에 부족함이 없다. 태수는 사건 발생 시점부터 등장한다. "태수는 빛의 강물을 거스르며 약동하는 노란 생명체(전등에 반짝이는 눈송이)들을 쳐다보았다. 한순간 바람이 잦아들자 레몬색 눈송이들이 공중에 뜬 채 그대로 멈추었다. 마치 누군가 버튼을 눌러 시간을 멈춘 듯 세상이 단 하나의 장면으로 얼어붙었다. 태수 역시 숨을 멈췄다."
태수는 뒤에 더 큰 범죄가 엮여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다. 정의를 위해 진실을 파헤쳐야 하는가. 모두의 안위를 위해 이대로 묻어 두어야 하는가. 이러한 태수의 물음에 정길은 ‘적당히 정의롭게 살라’며 넌지시 고개를 젓는다. 태수는 결혼할 여자 유지나와 경찰서 동료다. 이날 당직실 근무자인 유지나 경장과 치킨을 함께 먹자고 선배 강모 형사가 둘 사이에 끼어들어 다리를 놔준 것이다. 시골 경찰서 사건 없는 밤 풍경 그대로다. 드디어 셋이 합석해 치킨을 먹으려는 찰나 당직실 전화벨이 울린다. "무령경찰서입니다. ······네?" 수화기를 뺨에 붙인 지나의 미간에 부챗살처럼 주름이 잡혔다. 여기 경찰서예요. ······여보세요. 여기 경찰서라고요." "왜? 무슨 일인데?" 강모가 물었다. 송화구를 손으로 막으며 지나가 어깨를 으쓱했다. "반반 한 마리 갖다 달라는데요."
순간 강모의 육중한 몸이 어울리지 않을 만큼 빠르게 움직였다. 전화기 쪽으로 내달리는 강모의 옆구리가 책상에 부딪히면서 종이 한 장이 팔랑거리며 땅으로 떨어졌다. 강모는 팔을 뻗어 신고접수용 전화기의 스피커폰 버튼을 눌렀다. 전화기에서 여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반반 말이에요.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이요.' "여기 경찰서인 거 알아요?" 강모가 물었다. '네, 알아요, 안다고요.' 핀볼 기계의 범퍼 사이에서 튀는 쇠공처럼, 세 사람은 빠르게 눈빛을 교환했다. 태수는 굳은 표정으로 치킨을 책상에 내려놓았다. 지나가 벽에 있는 관내 지도의 한 지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무지개 아파트예요, 라고 속삭였다. 혹시 지금 위험한 상황이면 콜라 큰 거로 달라 카소, 하고 강모가 말했다. '······콜라 큰 거로 주세요.' "본인 외에 다른 인질도 있어요?" '얼마나 걸려요?' 태수가 벽의 지도와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빠르면 십 분, 이십 분." '최대한 빨리 좀 부탁해요.' 태수가 강모에게 물었다. "권총도 챙길까요?" "그래."
자칫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사건 발단 부분만 요약했다. 모두 40장(章)으로 이 소설의 1장만 독자가 내용만을 임의로 편집한 것이다. 다음 부분은 소설의 중간 중간 이야기의 핵심이 될 만한 내용이 들어 있는 부분을 발췌해 일부만 공개한다.
"차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태수는 눈을 떴다. 상체를 일으키고 창문을 여니 두꺼운 외투를 껴입은 강모가 콧김을 뿜으며 밖에 서 있었다. 그리고 강모 옆에는 젊고 아담한 여자가 서서 검붉은 체크무늬 담요로 어깨를 감싼 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여자의 눈가에는 마스카라가 번져 있었다. 투명한 피부에 작고 빨간 코. 얼어붙은 실핏줄이 여자의 양쪽 뺨에 빨간 동그라미를 그렸다."(p.68)
"여러분의 도움이 좀 필요합니다.
어떤 도움을 말씀하시는지?
유림은 입술을 다물고 눈을 내리깔았다. 손깍지를 낀 유림의 양손이 배꼽 부근으로 내려오더니 위로 벌어지며 무언가를 떠받치는 듯한 모양을 만들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직 부장검사 한 사람이 사라졌습니다."(p.104)
"그거 루미놀 아니가?
뒤로 좀 물러나이소.
태수는 정길과 함께 한 걸음 뒤로 물러선 다음 왼쪽 소매로 입과 코를 가리고 오른팔을 쭉 뻗어 신분증 위에 용액을 분사했다. 정길도 파카 목깃을 들어 올려 호흡기를 가리고 눈을 가늘게 떴다. 태수는 분무기를 근처 책상에 내려놓은 후 출입구 옆으로 가서 스위치를 눌렀다. 사무실의 불이 모두 꺼지자 순식간에 눈앞이 암흑으로 변했다. 이윽고 일그러진 빛의 고리가 마치 어둠 속에서 형광 막대를 휘저은 잔상처럼 선명히 떠올랐다."(pp.173~174)
어쩌면 이 소설은 지금 우리가 발 디디고 서 있는 현실의 축약판이다. 검사나 경찰, 군수 같은 그럴듯한 허울 뒤 탐욕과 비리로 물든 그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씁쓸함과 차가운 무력감을 안겨준다. 저자 김설단은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분이다. 지금 직업은 뭔지 모르겠지만 검사나 변호사, 판사 등의 법조와 시장, 군수의 행정직 지도자들의 일부 비리 공무원들의 어두운 부분을 잘 아는 것 같다. 그들의 비리 행태나 뒷돈을 챙기는 수법 등에 대해 나름 잘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을 것으로 독자는 판단한다. 단순히 저자의 상상력만으로 이 책처럼 자세하게 비리 수법을 파헤치지는 못할 것이란 예상에서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저마다의 이해와 목적을 앞세워 공조와 배신을 넘나드는 인물들이 여전히 공직의 높은 자리에 앉아 있다. 저자는 ‘적당히’ 눈감아 줄 것을 종용하는 현실, 늘 그렇게 흘러왔듯 결국 변하는 것 하나 없는 결말 등을 통해 “거짓을 한 겹 더 벗겨낸다고 진실을 볼 수 있는 건 아니”(p.349)라거나 “우리가 흔히 진실이라고 부르는 건 서로 합의된 이야기에 불과”(p.366)하다고 이야기하며 묵직한 한 방을 던진다.
이 소설은 우리 사회의 일부이거나 전부일지 모를(?), 얼룩지고 일그러진 민낯을 그린 하드보일드 스릴러다. 독자의 마음 한구석에 쉬이 지워지지 않을 날카로운 흔적을 남길 것이다. 자긍심과 사명감으로 경찰을 꿈꾸고 형사 생활을 해왔던 태수다. 태수는 고민 끝에 자신이 믿는 정의를 위해 나아가기로 마음먹지만 수사를 계속할수록 거대한 권력 앞에 좌절감만 맛보게 될 뿐이다. 그렇게 사건이 흐지부지 마무리된 후 군수는 그에게 “한 번 물속에 잠기면 다시 떠오르지 않는 것들도 있는 법”(p.349)이라며 의미심장한 말을 건넨다. 결국 태수는 경찰을 그만 두고 무령을 떠난다.
"태수야, 경찰 생활을 하다 보면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회의감이 들 때가 있다. 다들 자기 능력에 맞춰서 최대한 악하게 사는 게 사람이지 싶을 때가 있거든."
"저는 잘 모르겠습니더. 그래도 원칙이라는 게 있어야 한다 아닙니꺼."
"원칙이 밥 먹여주더나."(p.179)
좀 더 어려운 이야기를 하자면, 비트코인은 법의 테두리 밖에 있어요. 어떤 전자지갑에 거액의 비트코인이 들어 있다고 해보죠. 그리고 그 사실을 세상 사람들이 다 알아요. (중략) 그걸 실제로 회수하려고 들면 문제가 생기죠. 비트코인은 실체가 존재하지 않으니까. 누군가 자신의 전자 지갑에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다면 개인 암호키를 알아야 그 비트코인을 이체할 수 있어요. 지갑 주인이 암호키를 외운 다음 어디에도 흔적을 남겨두지 않는다고 가정해 봐요. 어떻게 할 방도가 없죠. 그러니까 순수하게 이론적으로 따지면, 비트코인은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고 완벽하게 지킬 수 있어요. 기억력만 좋다면.(pp.241~242)
저자 : 김설단
1981년생. 경희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