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상호부조론 - 자선이 아닌 연대 니케북스 사회과학 시리즈
딘 스페이드 지음, 장석준 옮김 / 니케북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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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는 전쟁과 협력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두 가지를 번갈아 지속해 왔다. 전쟁은 인류가 이뤄낸 모든 것을 파괴하고 죽였고, 협력은 전쟁의 복구나 생존을 위해 집단간 필요해 의해서만 성립했다. 결국 끊임없이 경쟁을 하며 서로를 견제하는 것이 인류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지속될 것이란 암울한 주장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두 가지 상반된 개념은 인류 존속을 위해 불가피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학자들도 있다. 인류의 역사 내내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협력해왔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자본주의와 식민주의가 수립한 임금노동과 사적 소유 구조는 사람들이 서로간의 경쟁을 부추겼을 뿐 서로 연대하고 필요한 자원을 공유해온 방식을 파괴함으로써 부를 소수에 편중되게 했다. 이에 따라 우리는 생존을 위해 경쟁하고, 필요한 것들을 얻기 위해 국가가 운영하는 시스템, 공공 서비스에 의존하게 되었다. 건강 유지가 아니라 이윤을 중심으로 설계된 보건 시스템, 환경을 파괴하는 식량 및 교통 시스템, 폭력적인 치안 시스템하에서 우리는 의지할 곳 없이 고립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정신질환이나 약물남용, 가정폭력이나 학대에 시달리는 사람은 경찰이나 법원이 개입하기 전까지는 어떠한 도움도 얻지 못하는데, 공권력의 개입은 피해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하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공공 서비스가 배제적이고 불충분하며 징벌적인 상황에서, 누구나 돌봄과 좋은 삶을 누리도록 하는 상호부조 활동은 충분히 급진적인 행위가 될 수밖에 없는데도 범죄로 여기기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책에 따르면 재난은 정치의 방향을 좌우하는 요소가 된다. 재난은 시스템의 균열과 허점을 드러내고 대안을 요구한다. 실제로 코로나19 팬데믹 중에 상호부조 단체들이 급증했고, 지난 수십 년간보다 더 많은 이들이 상호부조를 조직하는 방법을 학습하고 있다. 이는 많은 변화를 이뤄낼 커다란 기회라는 것이다. 위기의 절정을 넘기면 사라지는 게 아니라, 꾸준히 더 많은 사람을 활동으로 이끌어 그들을 격분하게 하는 위기와 불평등의 근본 원인을 깊이 이해하며 대담한 집단행동 역량을 구축하도록 지원할 수 있는 상호부조 단체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할 기회라는 것이다. 로빈 켈리(Robin D. G. Kelley, 역사학자, 《자유의 꿈: 흑인 급진파의 상상력Freedom Dreams: The Black Radical Imagination》 저자)는 "표트르 크로포트킨은 상호부조를 가리켜 ‘진화의 한 요인’이라 했으며, 블랙팬서당은 ‘생존을 위한 지속적 혁명’이다"고 말했다. 이 책 『21세기 상호부존론』의 저자 딘 스페이드(Dean Spade)는 상호부조가 지속적 혁명과 연대를 이루기 위한 근본 토대임을 강조한다. 우리 시대의 필수 안내서로 인식되는 이유이다. 이 책은 상호부조 없이는 강력한 사회운동이 있을 수 없음을 가르쳐준다"는 주장으로 추천평을 썼다.

이 책 『21세기 상호부존론』에서 저자는 재난 시기야말로 정치의 방향을 결정하는 시점이라고 주장하며, 지금 그리고 미래의 위기를 대비한 민중의 연대로서 상호부조 단체의 가치와 가능성을 전망하고 그 실행을 위한 매뉴얼을 찾는다. 이 책은 2부 5장으로 이루어졌다 1부 「상호부조란 무엇인가?」는 오늘날 상호부조가 왜 중요하며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설명했으며, 2부 「목적의식을 가지고 협력하기」에서는 상호부조단체가 직면하는 어려운 문제들, 예컨대 집단문화와 의사결정 권한, 구성원 간의 갈등, 돈 관리와 번아웃 등을 다룰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일련의 논의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상호부조를 일상에서 지속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우리 자신에 대한 집단적 돌봄을 조직하고 수천만 민중을 참여시켜 근본적인 변화를 이뤄내는 방법을 상상하도록 돕는 것이 이 책의 골자다.

 


 

저자 딘 스페이드는 이 책에서 좌파 사회운동에 크게 두 가지 과제가 있다고 진단한다. 첫째는 파국적인 상황에서 사람들이 생존하도록 돕기 위한 ‘조직화’, 둘째는 이 위기의 근본 원인을 해결할 수 있도록 수천만 민중이 저항에 참여하도록 하는 ‘확장’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하면서 동시에 저항에 참여하게 이끈다는 두 가지 과제를 해결할 방법이 바로 상호부조 프로젝트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르면 세력화하고 중요한 변화를 이뤄낸 사회운동들은 모두 상호부조를 포함했지만, 이는 운동 안에서 눈에 잘 띄지 않고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부분인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코로나 국면에서 이미 보았듯이, 운동이 구축되면 정부, 대기업, 거대 언론이 접근할 텐데, 이는 부정적인 영향을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우선 일부는 상호부조 활동의 급증을 무시한다. 또 다른 일부는 이를 자원봉사 담론 안에 가둬두려 하며, 상호부조 활동을 영웅적이라 칭하면서 기존 시스템과 대립하기보다는 시스템과 정부의 노력을 보완하는 것으로 묘사하려고 애쓴다. 마지막으로 일부 경찰과 첩보기관은 상호부조 활동을 감시하고 범죄시한다. 문제는 상호부조 단체도 그에 대한 피드백으로 세 가지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도움받을 자격을 위계구조화해 또다시 취약계층을 소외시키거나, 시혜적인 태도로 구세주주의와 온정주의에 빠지거나, 제도권으로 흡수되어 세력이 약화되거나 심지어 시스템을 정당화 또는 확장하는 도구로 쓰이기도 한다.

 


 

저자는 또 지난 50년간 사회운동 역사는 치안 당국, 기금 제공자, 문화의 압력 아래에서 자선 모델이나 사회서비스 모델로 변질되고 변혁적 역량을 상실한 상호부조 단체의 사례로 넘쳐난다고 주장하고 있다. 상호부조 활동의 긴급성으로 인한 한 가지 단점은, 프로젝트의 도움을 받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는 신경 쓰지만, 막상 단체가 강력하고 지속가능하기 위한 훌륭한 내부 관행을 만드는 데는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사결정이 투명하지 않은 단체에서는 지도자가 돈이나 명예에 유혹받고, 일자리를 얻고 보조금을 타거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위해 단체의 핵심 가치를 팔아넘기기가 훨씬 쉽다. 치안 당국이 침투해 파괴하기도 쉽다. 또한 참여자들이 과로에 시달리다 번아웃되기 십상이다.

이 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2부는 저자가 활동가로서 현장을 누빈 경험을 바탕으로 단체를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 다양한 체크리스트와 템플릿을 수록한 실용적인 가이드북이다. 민주적인 집단문화를 구축하고 합의형 의사결정을 도출하는 과정, 권한을 나누어 가지는 지도력 자질, 구성원 개인의 과로와 번아웃을 예방하는 방안, 갈등 상황을 조율하고 즐겁게 활동하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실제로 단체 내에서 자주 겪게 되는 문제들을 진단하고 해결할 수 있는 표와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실려 있다. 수많은 사람이 삶의 일부로서 지속적으로 상호부조에 참여함으로써, 이윤이나 위계에서 벗어나 지구에 파괴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먹고 소통하며 대피하고 이주하며 치유하고 서로를 돌보는 세계를 이 책은 상상한다.

 

 

기후위기,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정부 정책이 위기에 적절하게 대처하기는커녕 오히려 특정 집단을 피해자로 만드는 것을 보면서 지역사회 안에서 대응에 나서야겠다고 느끼는 보통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이들은 자원을 함께 나누고 취약한 이웃을 돕는 대담하고 혁신적인 방식을 만들어내고 있다. 혁명적 변화를 요구하는 사회운동과 연계를 맺으며 벌어지는 구조 활동, 이른바 ‘상호부조(mutual aid)’다. '상호부조는 자선이 아니라 연대!'라는 책의 내용을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이유다.

2012년 허리케인 샌디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음식, 물, 의약품과 기타 필수품을 공급한 것은 정부가 아니라 이전 해 오큐파이 월스트리트 운동에서 태동한 자원활동가 기반 네트워크 오큐파이 샌디였다. 2019년 홍콩에서 반정부시위가 이어지던 당시 코로나 발생 국면임에도 당국이 복면금지법을 내세워 마스크 착용을 막고 국경 폐쇄를 꺼리자, 시위대가 직접 시민들에게 마스크와 손 소독제를 공급했고, 노동조합에 속한 7,000명의 보건의료 노동자들은 국경 폐쇄와 개인보호장비 지급을 요구하며 파업에 나섰다. 그 밖에 구급차 출동이 오래 걸리는 가난한 동네에서 주민들이 서로를 위해 응급 처치를 훈련하거나, 병원비가 없는 이들을 위해 임신중절 비용을 모금하거나, 과도한 경찰폭력이나 이민 단속에 맞서 범죄화된 대상을 숨겨주는 행동이 모두 상호부조 사례다. 상호부조는 지역사회가 사회운동과 연계해 생존과 관련된 필요를 충족하는 다양한 구조 활동을 아우른다.

 


 

변호사이자 법학 교수, 사회운동가인 저자 딘 스페이드는 저소득층 유색 인종 성소수자를 위해 법률구조를 지원하는 단체 ‘실비아 리베라 법률 프로젝트’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으며, 그 자신도 빈곤한 유대인 가정 출신 트랜스젠더로서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성장했다. 미국의 각박한 복지제도, 열악한 서비스산업 비정규직 노동의 현실, 계급·젠더·인종 등 미국 사회의 온갖 모순이 응축된 입양제도 등등… 이 중 어디에서도 저자는 그저 차가운 관찰자의 시선으로만 머물렀던 적이 없다.

"'20세기 후반에 급증한 비영리 부문의 탄생은 1960년대와 1970년대 반인종주의, 반식민지, 페미니스트 운동의 대중적 상호부조 활동이 제기한 위협에 맞선 직접적 대응이었다. 비영리단체는 진정한 변화는 소수의 유급 전문가 집단이 아니라 수백만의 보통 사람들로 이루어진 운동을 통해 실현된다는 진실을 감추고 불의한 시스템을 정당화하며 우리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해 고안되었다. 오늘날 빈곤을 해결한다고 자처하는 비영리단체는 대개 백인 엘리트에 의해 운영된다. 비영리단체와 대학은 석 · 박사 학위 소지자가 사회 문제의 해답을 찾아내는 데 적격이라는 생각을 고취한다. 빈곤 문제가 석·박사 학위 소지자만이 풀 수 있는 일종의 알쏭달쏭한 수학 문제인 양 포장하면서 빈곤의 원인을 신비화한다. 그러나 가난한 이라면 누구나 빈곤의 원인이 사장, 지주, 의료보험회사의 탐욕이고, 백인우월주의와 식민주의 시스템이며, 전쟁과 강제 이주임을 안다. 엘리트적 빈곤 해법은 항상 부의 재분배가 아니라 가난한 이들을 관리하는 것이다."(p52~53)

 


 

이 책의 역자 장석준은 「옮긴이 해제」 '갑자기 왜 21세기 코로나19 팬데믹 논의에서 벗어나 100년도 더 된 책(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 이야기를 꺼내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부족하거나 결핍된 사회적 요소가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 후반부 주제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크로포트킨은 다른 생물 종들과 마찬가지로 인간 역시 상호부조를 통해 생존하고 발전하며 번영했음을 보여주며, 문명 발전에 따라 협력의 양상이 어떻게 변천해왔는지 훑는다. 그러면서 협동과 연대가 개별 인간이 아니라, 그렇다고 국가도 아니라 주로 다양한 연합들을 통해 이뤄졌음을 강조한다. 농업이 주된 산업이던 시기에는 마을 공동체가 이런 역할을 했고, 도시가 등장한 뒤에는 도시 자치조직(코뮌)과 동업조합(길드)이 이 임무를 맡았으며, 근대에 들어서는 노동조합, 협동조합, 공제회 같은 자발적 결사체들이 그 뒤를 이었다. 크로포트킨은 제도화된 종교에 적대적인 아나키스트임에도 여러 종교 공동체 역시 이런 상호부조 조직에 속한다고 인정한다고 밝혔다."고 언급한다. 즉 지금의 한국 사회의 흐름을 보면 급진좌파 사회운동가 크로포트킨의 주장이 생각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 : 딘 스페이드(Dean Spade)

변호사이자 시애틀대학 로스쿨 부교수. 주로 공권력, 감금, 젠더, 인종, 사회운동에 관한 강의를 맡고 있다. 20여 년 동안 감옥, 국경, 빈곤, 전쟁을 철폐하고 민중 생존권 투쟁을 지원하는 사회운동에 종사해왔다. 특히 2002년에는 저소득층, 유색인 트랜스젠더, 인터섹스, 젠더 비순응자에게 무료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며 공동체 방식으로 운영되는 비영리 법률 단체 ‘실비아 리베라 법률 프로젝트Sylvia Rivera Law Project’를 창설했다. 저서로는 《정상적 삶: 행정 폭력, 비판적 트랜스 정치 그리고 법의 한계Normal Life: Administrative Violence, Critical Trans Politics, and the Limits of Law》 등이 있고, 《더 크로니클 오브 하이어 에듀케이션The Chronicle of Higher Education》, 《아웃Out》, 《인 디즈 타임스In These Times》, 《소셜 텍스트Social Text》, 《사이즈Signs》 등에 정기 기고하고 있다.

 

역자 : 장석준

사회학을 공부하고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과 교육 활동에 참여해 왔다. 지금은 출판·연구 집단 산현재 기획 위원으로 일하면서,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이 사회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연구하고 글을 쓴다. 그동안 쓴 어린이책으로 《우리가 몰랐던 현대사》가 있으며, 《세계 진보정당 운동사》,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장석준의 적록서재》 등을 쓰고 《디그로쓰》, 《코로나, 기후, 오래된 비상사태》, 《유럽민중사》, 《도서관과 작업장》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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