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있어 참 좋다 - 사람에게 상처받고, 사람에게 위로받는 당신을 위한 책
최윤석 저자 / 포레스트북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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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인사를 드리게 되니 기분이 묘하면서도 좋습니다. 드라마 만들 때보다 더 긴장되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제 첫 책이니만큼 독자분들이 어떻게 읽으실지 기대되기도 하고 또 설레기도 합니다. 『당신이 있어 참 좋다』는 드라마 PD로 13년간 살면서 만났던 수많은 사람에 관한 이야기에요. 남궁민, 최수종 및 유명 배우부터 붕어빵 아줌마, 캐나다 노숙자까지 제가 곁에서 지켜보고 저에게 영감을 줬던 사람들이 등장하는 그런 책입니다. 제가 겪었던 경험을 통해 독자분들이 조금이라도 위안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만큼 또 행복한 것은 없을 것 같습니다."

유명한 드라마 PD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는 저자 최윤석이 첫 책을 내고 한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고, 부딪치고 깨닫고 성장한다. 드라마 감독으로 13년을 살고 조연출 때를 포함하면 40편이 넘는 작품을 한 최윤석 PD의 에세이 『당신이 있어 참 좋다』는 지금의 저자가 있기까지 마주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저자는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기도 하고 자신의 오판으로 누군가를 아프게 한 적도 있으며, 인생의 멘토 연기자를 만나 꿈을 꾸듯 드라마를 찍은 적도 있다고 말한다. 그럴 때마다 거울을 보는 느낌으로 글을 썼다고 털어놓는다.

 


 

이 책에는 다양한 사람이 곳곳에 등장한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유명인부터 누구도 기억하지 못할 거리 위의 사람까지. 수많은 사람을 만나 상처받고, 위로받으며 저자는 조금씩 성장했다고 말한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한 공감과 위로의 메시지가 가득 담긴 이 책은, 주변 사람들과 건강한 관계를 맺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거나 지나치게 타인의 눈치를 보느라 온전히 자기 삶을 살지 못하는 독자들에게 특별한 응원가가 되어줄 것이다.

책에 따르면 만날 때마다 끊임없이 에너지를 빼앗아 가는 사람들이 있다. 저자는 그런 사람들을 ‘에너지 도둑’이라고 말한다. 주로 자신의 가치관을 일방적으로 주입하려는 사람들, 남을 함부로 험담하고 다니는 사람들, 끝도 없이 우울한 사람들이 그에 해당한다. 그런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나면 마음이 고달프고 지친다. 집으로 가는 버스 차창에 비친 모습도 다섯 살은 더 늙어 보인다.

일상에 마주치는 에너지 도둑들에게서 내 에너지를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까? 저자는 그 해답을 한 연출 선배에게서 찾았다. 촬영 후 가진 회식 자리에서 연기자 한 분이 취해서 그 자리에 없는 누군가를 험담하기 시작했고 다른 사람들도 눈치를 보며 한마디씩 거들던 그 순간, 가방을 들고 먼저 일어난 연출 선배는 뒤따라간 저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렵게 지키고 있는 내 에너지를 왜 남이 가져가게 해?”

 


 

우리의 무의식은 자신에게 에너지를 가져다주는 사람과 빼앗아 가는 사람을 단번에 알아본다. 바꿔말하면 다양한 사람 중에서 좋은 사람을 가려 만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비즈니스가 아닌 사적인 만남에서까지 굳이 에너지를 뺏어가는 사람을 만날 필요가 있을까? 저자는 독자들에게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말고 자신의 소중한 에너지는 자신이 적극적으로 지켜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길 때, 자신의 곁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 있길 바라듯 자신도 다른 사람에게 좋은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 되고자 다짐하게 될 것이다. 저자는 이 내용을 인터뷰에서도 밝혔다.

"매사에 부정적인 사람들이 있어요. 남의 말을 함부로 끊고 무시하고 또 자기 생각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런 사람과는 굳이 자신의 에너지를 희생하면서까지 만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물론, 일로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되는 상황이 생기죠. 그럴 때 저는 데드라인을 정해놓아요. 업무의 데드라인도 있겠지만 감정의 데드라인 역시 중요하거든요. 내가 참을 수 있는 선을 정해놓고, 이 이상 상대방이 침범하지 않게 하는 거죠. 드라마를 만들다 보면 수많은 위기 상황이 와요. 하루하루 제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죠. 제 에너지를 제일 많이 뺏어간 사람은 '남의 아이디어를 무시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본인이 아이디어가 있다면 상관없겠지만 그렇지도 않으면서 "그거 되겠어?"라고 확신을 하고 부정적으로 말하거든요. 그런 분들에게는 저는 꼭 대안을 물어봅니다. 대안이 없으면서 무조건 부정하는 건 입을 다물고 있는 것보다 못하거든요."

 

 

“인생은 초콜릿 상자 같아. 무엇이 나올지 전혀 알 수 없으니까”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 나오는 대사처럼 우리는 앞으로의 인생을 미리 내다볼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과 우리는 크고 작은 영향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인생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을 소중히 하고, 일상의 사소한 것들을 소중히 해야 한다. 그것이 삶을 이루는 버팀목이므로. 저자의 깊은 사유와 경험에서 나온 생각이다. 그리고 그 생각은 삶의 바탕이 되었다. 저자는 자신이 직접 쓴 대본으로 〈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드라마 스페셜을 만들었다. 정말 부담이 컸다는 저자는 연출로 입봉한 사람이 직접 대본까지 썼다. 자신으로는 첫 번째 도전인 셈이다. 거기에다 장르가 국내 최초 사이보그 멜로물이었다. 단돈 1억으로 드라마 한 편 만들려고 하니 하루하루가 힘들었다고 회고한다. 그런 어려움을 감내하고 시도한 드라마인데 한 선배가 '이건 드라마가 아니'라면서 제가 쓴 대본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기도 했다고 말한다.

그때 드라마의 주인공이 '손여은' 배우였는데, 대본 리딩 끝나고 그분이 제게 와서 "감독님. 대본 너무 재미있어요. 감독님은 드라마를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아요." 이렇게 얘기해주시는 거예요. 그때 눈물이 핑 돌았네요. 빈말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때는 그 달콤한 한 마디가 제게 너무 큰 힘이 되었어요. 덕분에 정말 열심히 찍을 수 있었고, 제 입봉작은 그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할 수 있었다는 경험담을 들려준다. 이 부분은 독자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선입견이나 편견으로 불행한 미래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도전하고 불행하다고 판단되면 그때 가서 해결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이 책은 제목부터 포근하면서도 위로가 되는 느낌이다. 제목처럼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한 줄도 버릴 것 없는 우리 삶의 한 부분이 오롯이 배어 있다. 어쩌면 그런 점 때문에 공감이 되고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에세이가 '무한대로'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쏟아지고 있다. 대부분은 독자들의 공감을 사고, 독자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전하는 책들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에세이는 더 많이 쏟아져 나온다. 아마도 코로나로 인한 여러 가지 어려움, 그 중에서도 소통의 부재로 인한 인간적 외로움이나 사고의 결핍 등이 이런 류의 에세이를 더 읽게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책 『당신이 있어 참 좋다』처럼 가슴에 직접적으로 닿는 느낌의 에세이는 그리 많지 않다.

이 에세이는 제목처럼 소통의 대상과 위로 격려의 대상이 매우 구체적이다. 우리가 생활하면서 만나는 일상 속의 사람들이다. 그래서 더욱 실감나고 공감하게 되는지 모르지만 한 줄 한 줄이 가슴과 머릿속에 콕콕 박힌다. "나에게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는 나 역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 얼마나 간략하고 직접적이며 구체적인가? 물론 읽는 독자 입장에서는 다른 사람이 떠오를 수 있다. 각자의 일상이 다르고 삶의 목적이 다르니까. 또 어제와 오늘 다른 대답을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문장만 보더라도 구체적이라는 것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독자 개인적으로는 '아내'가 되지만, 누군가에게는 아들,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가 될 수도 있다. 대상이 사람마다 달라도 저자가 내세운 "나에게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는 나 역시 최선을 다해야 한다."란 명제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구체적이고 일상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말이 이 책에는 군데군데 가득 차 있다. 독자들이 읽고 어찌 공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책을 처음으로 낸다는 저자의 말은 이 책을 읽는 동안 신선함과 신뢰감을 더해 간다. 표현이 노련한 작가들에 비해 덜 세련된 느낌은 있다. 다소 거칠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도 두어 곳 눈에 띈다. 그러나 거칠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은 신선한 소재이고 덜 세련된 느낌의 문장은 평소 방송계에서 일하니 쉽게 표현해야 한다는 습관 때문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그 글은 오히려 쉽게 가슴에 와 닿는다. 올바른 판단의 남에게 전할 때는 쉽고 간결하게 전해야 한다.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에 쉽고 간결하지 않으면 받아들이는 사람의 개인적 감정이 개입할 소지가 크다. 저자가 인터뷰에서 밝힌 과거의 경험 내용이 더욱 가슴에 와 닿고, 이 책의 진정성이나 설득력을 키우는 데 한몫을 한다.

"저는 사극 엑스트라부터 시작해서 대하 드라마 왕으로 직접 출연까지 사람이에요.(웃음) 다시 말하자면 밑에서부터 차곡차곡 올라온 인물이죠. 대학교 다닐 때 학비 벌려고 엑스트라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말 그대로 소품 취급받았었어요. "이리 가라! 저리 가라!" 욕이란 욕은 다 먹고 또 고생은 고생대로 했지요. 그때 느꼈어요. 내가 연출하게 되면 저렇게 하지 않겠다고. 지금도 드라마 촬영하면 그때 생각이 나서 보조 출연자분들에게 잘 대해드리려고 노력해요. 왜냐면 불과 10년 전에 제가 그중 한 사람이었거든요. 이렇듯 인간관계는 어떻게 보면 간단한 것 같기도 해요.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금방 답이 나오거든요. 내가 그 사람이라면, 아니면 내가 그 자리에 섰다면 그래도 똑같이 행동했을까? 한마디라도 더 좋은 이야기 하는 게 더 낫잖아요. 인생은 그렇게 길지 않으니까요."

 


 

"생각해보면 그동안 타인의 눈치를 보느라 인생을 둘러가는 경우가 허다했다. 너무 튀면 어쩌지? 아니면 너무 단순한가? 이러면 없어 보일 텐데. 이러면 미움받을 텐데. 자꾸 내가 생각하는 ‘남이 날 바라보는 시선’에 기준을 맞추다 보니 점점 위축되고 가야 할 길을 잃어버렸다. 그럴 필요 없는데. 남들이 뭐라건 조금 더 자신을 믿어야 했는데. 뒤돌아보니 후회와 아쉬움이 남는다."(p.198)

 

"인생을 앞질러 갈 필요 없다. 앞으로 어떤 인생이 펼쳐질지 미리 아는 것도 재미없다. 달콤하든 쓰디쓰든, 언젠가는 먹어야 하는 초콜릿이니까. 겸허히 받아들이며 뚜벅뚜벅 걸어가련다."(p.221)

 

저자 : 최윤석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KBS 드라마 PD로 입사했다. 그동안 〈추리의 여왕 2〉, 〈김과장〉, 〈그놈이 그놈이다〉, 〈정도전〉, 〈어셈블리〉, 〈즐거운 나의 집〉 등 열 편이 넘는 드라마를 연출했고, 미국에서 세 번째로 오랜 역사를 가진 휴스턴 국제영화제에서 대상과 금상을 한 차례씩 받았다. 인생에서 실패하고 쓰디쓴 맛을 본 사람들이 서로에게 의지하며 희망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를 특히 좋아한다. 앞으로 그런 이야기를 쓰고, 또 만들고 싶다.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 나온 '실버라이닝'이라는 단어처럼, 먹구름 속에서 힘겹게 거닐고 있는 우리의 삶에도 언젠가는 거짓말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희망이 찾아올 거라 굳게 믿는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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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지 - 푸른 눈의 청소부
최문정 지음 / 창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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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법칙을 깨는 푸른 눈의 한 청소부 이야기. 인간쓰레기인 아동 성착취자를 응징하는 푸른 눈의 청소부, 그는 무엇 때문에 어벤지를 실천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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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지 - 푸른 눈의 청소부
최문정 지음 / 창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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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어벤지 : 푸른 눈의 청소부』는 휴머니즘(인간애)를 바탕으로 여성과 가족애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해온 작가 최문정의 신작이다. 표지에 푸른색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인지 '어벤지'보다는 '푸른 눈의 청소부'라는 제목이 먼저 눈에 띈다. 저자의 성향대로 푸른 눈의 청소부는 가족을 위해 청소 일을 하는 감동적 소설으로 생각됐다. 그러나 ‘어벤지(avenge)’란 단어가 왜 붙어 있는지 이 책을 펼치기 전까지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책을 펼치자마자 등장하는 차례에는 분위기가 다르다. '괴물', '생존자' 등 삶과 죽음을 다루는 작품으로 여겨진다. 거기에 '눈먼 자들의 도시', '죽은 자를 위해 울지 말라'는 등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섬뜩하기까지 하다. 첫 장의 제목 '괴물(Ungeheuer)'부터 모든 장의 제목에는 영어가 따라 붙어 있다.

대부분 쉬운 단어이고 생소하더라도 어디선가 본 단어들이란 친근감(?)마저 든다. 신화였던가, 아니면 철학서였던가··· 괴물에 대한 설명을 붙여놓았다. "누구든 괴물과 싸우는 자는 그 과정에서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당신이 오래도록 나락을 들여다보면 나락 또한 당신을 들여다보는 법이다." 그리고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선악의 저편 : 미래 철학의 전주곡〉에서 한 말임을 원전을 밝히고 있다. "괴물과 싸우는 자는 괴물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범죄 영화나 드라마에서 형사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아, 이 소설이 흉악 범죄를 다루는 작품이구나' 하고 비로소 깨닫는다. ‘어벤지(avenge)’의 뜻은 “복수·악·부정에 대하여 정의감 등에서 보복하다.”이며, 주로 피해자가 아닌 사람을 주어로 하여 피해자를 대신하여 보복하는 꼴로 쓰인다는 풀이는 뒤늦게 알았다. 저자가 이 책의 집필 동기에서 밝힌 것처럼, 이 소설은 ‘진정한 정의실현의 가능성’, ‘용서와 복수의 의미’ 등에 대해 아프게 묻고 있다.

 


 

이 소설은 해괴하다고 할까, 흉악하다 할까 하는 범죄 행위부터 시작한다. 좀처럼 볼 수 없는 극악하고 잔인한 범죄 행위에 대해 경찰이 수사에 나선다. 피해자는 친딸을 임신시키고도, 여섯 살 여아를 성폭행해 교도소를 갔다와서도 반성은커녕 더욱 잔혹한 행위를 일삼는 60대 남성 한인걸이다.

 

“한인걸이 오늘 새벽 03시 16분, 119에 전화를 걸어 구급차를 요청했습니다.”

“한인걸? 여섯 살 여아를 성폭행해서 12년 살다가 지난달 출소한 그 한인걸 말입니까?”

철규의 질문에 강력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특별초소 야간근무 경찰에 따르면 한인걸은 고환 2개와 항문이 손상돼 안곡 S대병원으로 이송되었으며, 현재 목숨에 지장은 없는 상태입니다.”

순간, 형사들이 참지 못하고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우와, 범인 대단한데요? 경찰관 열두 명이 번갈아 지키고 있는데 어떻게 거길 잠입했데?”

“손상이면 잘랐다는 거예요? 인터넷에서 한인걸 기사마다 그런 놈은 거시기를 잘라야 한다는 댓글이 있었는데, 그걸 진짜 실행하는 사람이 나올 줄이야! 대단한 범인, 아니 의인이시네.”

“속이 다 후련하네. 세금으로 그런 개새끼 신변 보호를 해주는 게 못마땅했는데.”(p.33)

 


 

한일걸은 용서하지 못할 극악한 범죄자다. 형사들이 범죄 보고를 받는 수사관 회의에서 보인 반응은 동정보다 법으로도 어쩔 수 없는 인간에 대한 '시원한 보복'이란 생각을 드러낸다. 그만큼 피해자 한인걸이 악마 같은 범죄 행위를 서슴없이 저지른 인간이기 때문이다. 친딸을 임신시키고도, 여섯 살 여아를 성폭행하고도, 친딸을 살인교사하고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는 이유다. 법은 악마 같은 존재에도 전관예우, 심신미약, 자녀 양육 등의 이유로 다양하게 감형해준다. 그런데도 권력층은 법을 수정하거나 보완하지 않는다. 자신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법칙이 깨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부활절, 친딸을 절름발이로 만들고 임신시켰던 안도현은 고환과 아킬레스건이 잘린 채 병원으로 옮겨진다. 범인은 친딸 유효리가 당한 그대로 갚아주었다. 잔인하고 끔찍한 복수의 시작이었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과거 성폭행사건의 피해자인 친딸 유효리였다. 하지만 증거도 증인도 없었다.

한 달 뒤, 여섯 살 여아를 성폭행해 자궁과 항문, 대장까지 망가뜨린 한인걸이 고환이 잘리고 항문이 오려진 채 발견된다. 연쇄범이었다. 하지만 형사들은 대부분 수사를 거부했다. 범행 동기는 충분히 공감할 만했다. 선악이 교차하고 시비가 엇갈리는 사건은 수사 의욕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용의자가 된 과거 성폭행 피해자를 동정하고, 범죄의 피해자가 된 성폭행범을 경멸했다. 그리고 범인을 ‘청소부’라 부르며 추앙했다. 청소부에 대한 수사를 중단하라는 진정서가 쌓이고, 청소부를 잡는 형사를 죽이겠다는 협박이 심심찮게 들려왔다.

 

 

저자는 이유나 핑계에 의해 변하는 것은 더 이상 정의라 부를 수 없다는 점을 강하게 어필하고자 한다. 물론 악을 벌한다고 선은 아니다. 오히려 더 큰 악일 수도 있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가 아니라면 복수도 범죄일 뿐이다. 형사 민수는 그렇게 믿으며 버텼다. 그 믿음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청소부를 잡아야만 했다. 하지만 민수의 파트너인 희성은 청소부 검거에 점점 회의적이 되어간다. 거대한 악과 마주해 그저 살아남기 위해 악이 될 수도 있었다. 권총강도에게 반항하다 강도를 찔러 죽인 집주인을 악이라 단정할 수는 없었다. 민수와 희성은 서로의 의견을 굽히지 않는다.

“살아남기 위해서 악이 되었다?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청소부 편을 들 수는 없어. 악과 마주한다고 해서 모두가 악에 물들지는 않아. 극한상황에 몰린다고 해서 모두가 범죄를 선택하지 않듯이. 너무 가난해 굶어죽기 직전이라고 해서 강도짓을 무조건 용서할 수는 없어. 강도라는 불법적이고 비윤리적인 방법을 쓰기 싫어 그냥 굶어죽는 사람이 옳은 거야. 법과 질서에 동정과 연민이라는 감정을 더하면 정의는 결코 실현되지 않아. 과거에 상처를 받았다고 해서 현재의 나쁜 행동을 이해받고 용서받기를 바라는 건 피해자증후군일 뿐이야.”(p.196)

그리고 청소부는 점점 대담해진다. 자신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기도 하고, 범행 현장에 되돌아오기도 한다. 20대 여자, 푸른 눈, 가냘픈 몸매, 문신 기술, 의학적 지식······. 청소부가 일부러 놔두고 간 증거들은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했다. 청소부의 범행이 늘어날수록 용의자의 수도 늘어났다. 성폭행 피해자, 피해자의 가족과 친구, 담당 정신과 의사, 담당 경찰, 그 누구라도 범인일 수 있었다. 아니, 어쩌면 모두가 범인일 수 있었다.

 


 

이 소설은 범죄, 특히 성폭행, 아동학대, 흉악범죄, 연쇄살인범 등 사회의 범죄가 흉포화하고 대상이 가족에게도 향한다는 사회 현상에 대해 법의 심판으로 제대로 처벌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분석하는 소고(小考)처럼 읽힌다. 저자는 출판사 측이 내놓은 집필 동기를 밝혔다.

“용서는 복수보다 위대하다는 건 대중을 쉽게 통제하려는 지배층의 세뇌일 뿐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받은 만큼만 돌려주는 ‘동해복수법(同害復讐法)’은 엄연히 정의실현의 방법 중 하나였다. 하지만 현재 개인의 복수는 범죄가 되었다. 대신 국가가 법에 의해 가해자를 처벌해준다. 일종의 대리 복수이다. 국가가 행하는 대리복수는 완벽한 정의실현을 하지 못한다. 언제나 교묘하게 법의 약점과 맹점을 이용하는 가해자가 있기 마련이다. 청소부는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간 범죄자를 찾아내 복수를 한다. 복수의 순간, 피해자와 가해자는 뒤바뀐다. 형사들은 시비와 선악이 교차하는 범죄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복수와 용서, 그리고 정의실현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혼란스러워한다. 그런 형사들의 복잡한 심리변화를 통해 진정한 정의실현의 가능성, 용서와 복수의 의미 등에 대해 고찰해보고자 하였다.”

 

“왜? 너도 청소부 잡기 싫어졌냐?”

“솔직히 원한에 의한 범죄를 수사할 때면 가끔 범행 동기가 이해되기도 해요. 사기를 당해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집안이 망해버린 남자가 사기꾼을 잡아 두들겨 팬다든지, 부인이 몇 번이나 바람을 피워도 자식을 위해 이혼하지 않던 남편이 자기 안방에서 상간남과 부인의 간통 현장을 목격하고 부엌칼을 휘두른다든지······. 하지만 범행 동기에 공감한다고 해도 흔들린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그런데 이번 사건은 이상하게도 마음이 복잡하네요. 과연 청소부를 잡는 게 옳은 일인가 의문이 들고······.”(p.277)

 


 

저자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죄와 벌, 법의 정의, 치외법권의 세계, 사회와 법 등에 충분한 고찰을 거듭했으리라는 단서를 제공한다. 각종 철학서나 성경 등에 나오는 문구 등을 자주 인용하고, 거기서 나온 용어에도 주목한다. 범죄와 복수의 개념에 대한 의혹도 제기한다. 또 사회의 근본이자 마지막 안전판인 가족마저 범죄에 무너져 내리는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자 한다. 이 책의 각 장마다 쓰인 용어나 밑에 해석은 인용이든 저자의 주석이든 피해자 입장에서 처벌하지 않고 법에 의한 처벌 만으로 끝내는 데 대한 원천적 의문을 제기한다. 즉 사회나 국가의 고위층, 돈이 많은 사람, 법에 관련된 사람들을 벌 주는 정의로운 법에 대해 필요하다면 수정을 요구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왜 우리 사회에 '유전무죄 무전유죄'란 단어가 유행한 지 40년 가까이 됐는데도 법과 법의 행사는 그대로인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명 청소부라 불리는 범인이 나타난 뒤, 성폭력 출소자들의 재범률이 갑자기 감소하기 시작했습니다. 강력한 처벌이 얼마나 범죄 예방효과가 높은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청소부는 피해자의 신체 일부를 훼손하거나 눈을 멀게 하는 등 잔인한 범행을 저질렀지만, 그 피해자가 과거에 제대로 처벌받지 않은 범죄자였으며, 청소부가 나타난 뒤 범죄율이 감소했다는 사실 때문에 비난보다는 호감을 얻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범죄 없는 사회를 위해서는 정말 강력한 처벌만이 답일까요? 전문가의 의견 들어보겠습니다.”(p.319)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와 대적하지 말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p.352)

 


 

제1장. 괴물 Ungeheuer

제2장. 악마의 눈 Nazar boncu?u

제3장. 네메시스 Ν?μεσι?

제4장. 루시퍼 Lucifer

제5장. 릴리트 Lilit

제6장. 생존자 Survivor

제7장.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Homo sapiens sapiens

제8장. 눈먼 자들의 도시 Ensaio sobre a cegueira

제9장. 창조자의 길 Vom Wege des Schaffenden

제10장. 죽은 자를 위해 울지 말라 Don’t cry for the dead.

 

저자 : 최문정 (崔文精, 본명 : 유경)

 

최문정 작가는 여성과 가족애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해왔다. 주요 작품으로는 삼대에 걸쳐 세 여자의 사랑과 용서, 화해의 과정을 통해 애절한 모성애를 그린 《바보엄마 1, 2》(SBS-TV 주말드라마로 방영)와 발레리나 딸과 군인 아버지의 오래된 갈등과 뜨거운 화해를 그린 《아빠의 별》, 불우한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네 자매의 뜨거운 우애를 다룬 《허스토리》(2014년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도서)가 있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백제의 딸이 일본의 태양신이 되었다는 도발적 팩션소설 《태양의 여신 1, 2》(원제 《아마테라스 오미카미》)가 있으며, 최근에는 《소설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 나쁜 남자 편》을 펴냈다. 또한 지치지 않고 사랑을 위해 싸웠던 세기(世紀)의 연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사랑, 역사가 되다》, 《나를 찾아 떠난 스페인》(2015년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도서) 등 10여 권이 있다. 최문정(본명 유경愈景) 작가는 경남 진해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과학교육과를 조기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기도의 한 중학교에서 과학교사로 재직 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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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운 게 뭔데 - 잡학다식 에디터의 편식 없는 취향 털이
김정현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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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글을 쓴 사람의 성격과 취향, 그리고 지식과 지혜 등을 모두 드러내는 바로미터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맞는 말일 것으로 독자도 생각한다.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지식의 한계를 드러내기도 하고 성격이나 취향이 반영돼 문자로 나와 기록되기 때문이다. 물론 꼭 그렇지 않은 것도 있을 터다. 수많은 책이 매일 쏟아져 나오는데 필요한 경우가 아니고는 작가와 글을 분석하는 경우가 필요치 않은 이유이다. 특히 인터넷이 인류의 지식 거의 대부분을 저장하고 있는 터에 굳이 작가론이나 작품론은 대작이 아니고서야 거론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에세이는 누구나 쓸 수 있는 분야에다 대단한 연구나 지식도 필요치 않아 신변잡기를 써다 어엿하게 책으로 엮어 나올 수 있는 시대여서 그 많은 책들에 대한 검증은 필요없는 시대다.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책을 문학적 분석을 잘 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어딘가 마음에 들어(예를 들어 제목, 표지 등) 구입한 책이 감동을 준다면 그 저자에 대한 궁금증은 커진다. 누군데 이렇게 글을 잘 썼을까? 뭐하는 분일까? 하는 때가 많다. 독자가 글쓰기를 하기 힘들어 못 쓰고 있는 경우에는 책이 주는 감동과 호감은 훨씬 클 것이다. 이 책 『나다운 게 뭔데』는 독특한 제목과 말하듯이 쓴 글로 독자에게 큰 반향을 준다. 말하듯 쓴다는 것은 작가로서는 만점의 능력이다. 말하듯이 쓰면 독자들이 읽기 쉽고 내용의 이해도 즉각적일 수 있기 때문에 글쓰기를 가르치는 곳에선 필수적인 능력이므로 유의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 책의 저자와 내용을 소개하는 '출판사 책 소개'에 따르면 이 책은 크리에이터 그룹 팀 포지티브제로의 에디터이자 호기심이 특기, 변덕이 적성인 ‘취향 수집가’ 김정현이 자신의 사심을 탈탈 털어 기록한 에세이다. 멋져 보이고 싶다는 원초적인 욕구를 동력 삼아 안목의 저변을 넓히는 그는 나다운 취향에 매달리는 것보다, 타인의 세련된 취향에 솔직한 치기와 이유를 덧붙이는 게 더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촌스러운 것보다 거짓됨을 경계하고, 동경하고 열광하는 일에 진심을 아까워하지 않는 그 솔직함 덕에 유명한 아티스트의 인터뷰를 맡고, 부지런한 마케터가 즐겨 읽는 칼럼을 쓰고, 일 잘하는 에디터가 팔로잉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김정현의 첫 책 《나다운 게 뭔데》는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 좋아하는 일을 멈출 수 없는 이유를 밝히며 허세와 시샘의 유용함을 설파한다.

“우리가 돈이 없지, 취향이 없나?” 제목도 다소 의심스러운 의문형이지만 책 내용 소개는 저자의 신변을 탈탈 털어 기록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책을 만들어 내는 출판사 입장에서는 더 과장되게 쓸 수도 있겠지만 이 정도면 출판사의 책 소개 치고는 꽤 이색적이다. 어떻게 보면 사뭇 제멋대로, 하고 싶은 대로 세상을 사는 '철부지' 같은 느낌도 준다. "삼각김밥에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워도 후식으로는 블렌딩 원두커피를 마셔야 하는 사람이 있고, 억만금이 통장에 쌓여 있어도 힘든 날엔 무조건 소주를 들이켜야만 하는 사람이 있다. 공감하기 어렵다가도, 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마음의 방향. 취향은 수없이 설명해도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이지만, 감탄사 한마디로도 수많은 이를 설득시키는 마력을 가진 존재이기도 하다."

 


 

에세이라 할지라도 이 책의 편집은 독특하다. 글을 읽는 재미보다 페이지를 '보는 재미'에 더 신경을 쓴 듯한 느낌이다. 그렇다고 편집 능력을 앞세워 저자의 글의 내용을 압제하지는 않는다. 제목도 내용과 적합하되 조금은 가볍게 읽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듯하다. 저자의 의도인지 편집자들의 조언이 곁든 것인지 독자로서는 쉽고 재밌는 내용을 무겁고 철학적 용어를 사용하는 제목보다 훨씬 친근감이 든다. 우리는 취향을 묻는 말 앞에서 자주 골똘해진다. 이게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게 맞나? 나다운 취향이라고 설명할 수 있나? 첫 직장이었던 취향관을 시작으로 브랜딩, 잡지, 칼럼, 인터뷰까지 ‘분야 안 가리는 프리랜스 에디터’로 활약해 온 책의 저자 김정현은 답한다. 대체 나다운 게 뭔데? 그는 나다움에 갇혀 내 안에 쌓인 배움과 경험을 경시하지 말자고 말한다. 이어서 ‘김정현다운 취향’을 갖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준 것은 일일이 따져가며 계산한 의도가 아니라, 사랑에 빠지겠다고 작심한 ‘무작정’이라고 덧붙인다.

저자의 고집스러운 취향이 드러나는 답을 한다. "나다운 게 뭔데?"란 질문에 다소 따분해진 사람들은 어느샌가 ‘호불호’ 라는 말을 가져와 쓰기 시작했다. 좋음, 좋지 않음. 이 단순하고도 당연한 감정을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저자는 취향에 진심을 쏟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이야기한다. 운치 있는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소몰이창법 발라드가 싫어 TPO (time·place·occasion)에 맞는 플레이리스트를 만드는 일에 빠졌고, 그럴듯해 보이지만 겉핥기식 말들 뿐인 에세이가 싫어 위로의 말을 고르고 솎아내는 법을 익혔다고. 그러다 보니 호와 불호는 자연스레 경험치가 되어 내공으로 쌓였다고 저자는 털어놓는다. 잦은 변덕과 금세 싫증을 느끼는 성격 또한 저자를 좋은 제너럴리스트로 성장하게 만드는 큰 동력이 되어주었다고도 말한다.

 


 

예전엔 싫었는데 지금은 마음에 드는 것, 더 좋아 보이는 것, 앞으로 더 좋아해 보고 싶은 것 등등. 책에는 색다르고 견고한 취향을 만들어 준 일등 공신인 호불호에 대한 솔직하고 과감한 작가의 고백이 가득하다. 아니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 이야기다. 이제서야 왜 이 책의 제목이 『나다운 게 뭔데』로 붙여졌는지 깨닫는다. “난감하게 정직하고 통쾌하게 솔직한 글들”을 보며 소리 내어 웃었다던 영화평론가 김도훈의 추천평이 공감 가는 이유다. "남자의 에세이란 보통은 힙스터와 문학 청년 사이를 마구 오가다 자기연민으로 빠지며 마무리되곤 한다. 자신을 완전히 까 보이겠다는 결기 없이, 취향만 나열하는 글을 읽는 것은 꽤 고통스러운 일이다."라는 영화평론가 김도훈이 소리 내 웃을 정도로 이 책은 저자의 욕심과 욕망, 실패와 좌절을 늘 긍정으로 바꾸는 재주, '하다보니 그렇게 됐다'는 솔직한 토로 등이 어우러져 저자의 진정성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또 하경화 〈디에디트〉 에디터는 저자의 열정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무언가를 사랑하고 좋아하는 게 얼마나 많은 체력을 필요로 하는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아낌없이 애정을 쏟을 줄 알고, 팬이 될 줄 알고, 동경할 줄 알고, 질투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솔직하다. 그래서 ‘홍대병 걸린 젊은이’가 서른을 목전에 두고 써내린 이 기록은 귀하고 사랑스럽다. 10년 후에는 어떤 책을 내줄지 벌써 기대될 만큼.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어떤 취향으로 변했을까? 여전히 똑같은 질문을 품고 있겠지. 나다운 게 뭔데?"

독자는 아날로그 세대로서 중년의 나이인데, 젊은 저자의 열정과 진취적인 집중력, 몰입도 높은 일에 대한 관심 등이 부럽기만 하다. 질투심에 '꼬투리 잡을 일 없나?' 하고 촘촘히 읽고 속속들이 뒤져도 없다. 민망하기만 하다. "난 젊었을 때 못했는데..."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다. 그래도 솔직한 젊은 저자의 에세이는 독자에게 읽는 보람을 준다. 요즘 젊은이들의 삶에 대한 태도를 읽을 수 있었으니. '꼰대' 소리 안 들으려 억지로 공감을 말하는 게 아니다. 책 곳곳이 그의 열정이 묻어 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 독자의 엄살 같은 주장이 설득력을 가진다.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설명한 저자는, 이제 그걸 왜 좋아하는지 본격적으로 호들갑을 떨기 시작한다. 좋아 죽을 것 같은 존재가 많아도 너무 많아, 목록까지 꾸리는 자신을 작가는 ‘호모 목록쿠스’라고 지칭한다. 그는 인스타그램 책갈피 기능을 본격 활용해 ‘저장됨’을 무한 반복한 뒤, 뒤죽박죽 섞여 있는 애정들을 차곡차곡 서랍에 쌓는다. 공간, 아이템, 스타일, 노래, 음식 등 스크랩북처럼 모아둔 뒤 꺼내 보며 흐뭇해하는 과정을 통해, 넓혀 두었던 애정의 폭을 깊게 파고들어 간다.

열심히 쏘다니다 심장을 저격하는 존재들을 만나면, 저자는 거침없이 달려들어 애정 공세를 퍼붓는다. 일단 다짜고짜 좋아한다고 고백한 뒤, 푹 빠지게 된 이유를 호들갑스럽게 나열하고, 앞으로 건승하기를 바란다는 진심 어린 응원 멘트까지 덧붙인다. 이 책의 차례가 마치 ‘좋아 죽는 것들’의 목록처럼 보이는 것은 그 진심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박찬용의 추천사처럼 독자도 꼭 같은 심정이다. 역사 칼럼니스트이니 표현도 멋지게 잘 해준다. 추천사마저 공감한다. “현대 욕망 실록 같은 이 책”에서, “이 시대의 젊음”을 읽어낼 수 없다면 이 책을 다시 읽을 것을 독자는 권유한다. 타인의 취향과 시대의 트렌드를 탐구하는 에디터인 저자는 아직도 자신의 그릇은 더 넓어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역시 젊은 저자의 패기와 진취적인 열정이 대단하다.

 


 

멋진 중매쟁이가 장래 희망이라는 저자는 좋은 주선자가 되기 위한 노력으로 질투와 시샘을 꼽는다. 잘난 콘텐츠, 부러운 아티스트를 치기 어린 마음에 거들떠보지 않는 것은, 좋은 중매에 방해만 될 뿐이라는 사실을 진작 깨달은 터다. 책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부러움’ 목록은, 김정현 에디터의 비법이 발품 팔아 관찰하고, 편식하지 않고 소비하는 것임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아침〉 잡지와 바통 밀 카페가 만든 찰떡 ‘브런치’ 컬래버레이션, 후가공과 지종으로 장점을 최대 효용으로 끌어낸 사진작가의 엽서책, 차가 없는 사람도 정주행하게 만드는 자동차 리뷰 유튜브 채널. 이처럼 책은 기발한 아이디어와 과감한 실천력, 결과로 도출시키는 집중력까지 세세하게 짚으며 질투와 시샘이 얼마나 유용한지 독자를 일깨운다.

작가는 이렇게 김정현다운 글과 사진을 엮어놓고도 독자에게 질문한다. “나다운 게 뭔데? 나도 나를 모르겠는데 나다운 취향이라뇨? 언제든 고집과 지조를 버리고, 환승과 변심으로 다양한 취향을 존중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요?” 저자가 넓고 다채로운 레퍼런스를 가질 만한 사람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는 ‘나다움’이라는 말에 기죽지 않고, 돈 없어서 취향껏 못 산다고 쫄지 않아도 좋아하는 것들을 마음껏 사랑하며 살 수 있다고 북돋는다. 그 증거가 바로 자기 자신이라 말하면서 말이다.

 


 

개성과 욕심, 질투와 동경,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팡질팡 고민하고 있는가? 힙하고 쿨한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취향 수집가인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 보라. 독자들도 “이 귀하고 사랑스러운 기록”을 읽으며 “그의 또 다른 재미 목록을 기다리게 되는” 한편, 책의 제목처럼 “나다운 게 뭔데?” 하며 취향에 관한 편견을 깨고 건강한 열정과 애정을 품는 방법을 배우게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지적 허영심이 최고조로 달해 있던 이십 대 초반의 나에게, 청춘의 가장 멋진 모습만을 압축해 놓은 듯한 홍대 앞 문화의 전설이 얼마나 매력적으로 다가왔겠는가. 남들보다 특별하고 싶은 나, 더 자유분방하고 싶은 나, 주체할 수 없는 창의적 에너지를 마구 내뿜고 싶은 나. 하지만 현실은 아주 전형적인 모범생 루트를 타온 나. 전혀 파란만장하지 않은 삶을 살아온 샌님 같은 나. 원래 반대가 끌리는 법이라고, 나는 잘 보이지도 않는 내 안의 힙스터를 애타게 소환하고 부르짖었다.(p.176~177)

- 「한 남자가 있어, 홍대를 사랑한」 중에서

 

저자 : 김정현

 

콘텐츠 에디터. 익산에서 나고 자라 동경하던 서울에 상경해 10년째 살고 있다. 수염을 기르고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쓴다. 오프라인 공간 기반의 브랜드를 가꾸는 크리에이티브 그룹 ‘팀포지티브제로TPZ’에서 일한다. 뮤직&라이프스타일 매거진 〈BGM〉 에디터, 디지털 미디어 〈디에디트〉의 객원 필자로도 활동 중이다. 피자와 햄버거가 수두룩한 도시를 사랑하지만 언젠가는 이곳으로부터 도망치지 않을까 생각하며 산다. 할아버지가 되어도 커피와 춤은 끊지 못할 것 같다.

instagram @kimjeonghyeon_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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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손길 페르세포네 × 하데스 1
스칼릿 세인트클레어 지음, 최현지 옮김 / 해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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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세상의 그 무엇보다 모험과 열정을 원하는 페르세포네를 재탄생시켰다. 페르세포네는 절실하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증명하고,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녀가 하데스를 만나 봄의 여신이자 지하 세계의 여왕으로서 자신의 힘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독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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