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지 - 푸른 눈의 청소부
최문정 지음 / 창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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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어벤지 : 푸른 눈의 청소부』는 휴머니즘(인간애)를 바탕으로 여성과 가족애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해온 작가 최문정의 신작이다. 표지에 푸른색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인지 '어벤지'보다는 '푸른 눈의 청소부'라는 제목이 먼저 눈에 띈다. 저자의 성향대로 푸른 눈의 청소부는 가족을 위해 청소 일을 하는 감동적 소설으로 생각됐다. 그러나 ‘어벤지(avenge)’란 단어가 왜 붙어 있는지 이 책을 펼치기 전까지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책을 펼치자마자 등장하는 차례에는 분위기가 다르다. '괴물', '생존자' 등 삶과 죽음을 다루는 작품으로 여겨진다. 거기에 '눈먼 자들의 도시', '죽은 자를 위해 울지 말라'는 등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섬뜩하기까지 하다. 첫 장의 제목 '괴물(Ungeheuer)'부터 모든 장의 제목에는 영어가 따라 붙어 있다.

대부분 쉬운 단어이고 생소하더라도 어디선가 본 단어들이란 친근감(?)마저 든다. 신화였던가, 아니면 철학서였던가··· 괴물에 대한 설명을 붙여놓았다. "누구든 괴물과 싸우는 자는 그 과정에서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당신이 오래도록 나락을 들여다보면 나락 또한 당신을 들여다보는 법이다." 그리고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선악의 저편 : 미래 철학의 전주곡〉에서 한 말임을 원전을 밝히고 있다. "괴물과 싸우는 자는 괴물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범죄 영화나 드라마에서 형사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아, 이 소설이 흉악 범죄를 다루는 작품이구나' 하고 비로소 깨닫는다. ‘어벤지(avenge)’의 뜻은 “복수·악·부정에 대하여 정의감 등에서 보복하다.”이며, 주로 피해자가 아닌 사람을 주어로 하여 피해자를 대신하여 보복하는 꼴로 쓰인다는 풀이는 뒤늦게 알았다. 저자가 이 책의 집필 동기에서 밝힌 것처럼, 이 소설은 ‘진정한 정의실현의 가능성’, ‘용서와 복수의 의미’ 등에 대해 아프게 묻고 있다.

 


 

이 소설은 해괴하다고 할까, 흉악하다 할까 하는 범죄 행위부터 시작한다. 좀처럼 볼 수 없는 극악하고 잔인한 범죄 행위에 대해 경찰이 수사에 나선다. 피해자는 친딸을 임신시키고도, 여섯 살 여아를 성폭행해 교도소를 갔다와서도 반성은커녕 더욱 잔혹한 행위를 일삼는 60대 남성 한인걸이다.

 

“한인걸이 오늘 새벽 03시 16분, 119에 전화를 걸어 구급차를 요청했습니다.”

“한인걸? 여섯 살 여아를 성폭행해서 12년 살다가 지난달 출소한 그 한인걸 말입니까?”

철규의 질문에 강력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특별초소 야간근무 경찰에 따르면 한인걸은 고환 2개와 항문이 손상돼 안곡 S대병원으로 이송되었으며, 현재 목숨에 지장은 없는 상태입니다.”

순간, 형사들이 참지 못하고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우와, 범인 대단한데요? 경찰관 열두 명이 번갈아 지키고 있는데 어떻게 거길 잠입했데?”

“손상이면 잘랐다는 거예요? 인터넷에서 한인걸 기사마다 그런 놈은 거시기를 잘라야 한다는 댓글이 있었는데, 그걸 진짜 실행하는 사람이 나올 줄이야! 대단한 범인, 아니 의인이시네.”

“속이 다 후련하네. 세금으로 그런 개새끼 신변 보호를 해주는 게 못마땅했는데.”(p.33)

 


 

한일걸은 용서하지 못할 극악한 범죄자다. 형사들이 범죄 보고를 받는 수사관 회의에서 보인 반응은 동정보다 법으로도 어쩔 수 없는 인간에 대한 '시원한 보복'이란 생각을 드러낸다. 그만큼 피해자 한인걸이 악마 같은 범죄 행위를 서슴없이 저지른 인간이기 때문이다. 친딸을 임신시키고도, 여섯 살 여아를 성폭행하고도, 친딸을 살인교사하고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는 이유다. 법은 악마 같은 존재에도 전관예우, 심신미약, 자녀 양육 등의 이유로 다양하게 감형해준다. 그런데도 권력층은 법을 수정하거나 보완하지 않는다. 자신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법칙이 깨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부활절, 친딸을 절름발이로 만들고 임신시켰던 안도현은 고환과 아킬레스건이 잘린 채 병원으로 옮겨진다. 범인은 친딸 유효리가 당한 그대로 갚아주었다. 잔인하고 끔찍한 복수의 시작이었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과거 성폭행사건의 피해자인 친딸 유효리였다. 하지만 증거도 증인도 없었다.

한 달 뒤, 여섯 살 여아를 성폭행해 자궁과 항문, 대장까지 망가뜨린 한인걸이 고환이 잘리고 항문이 오려진 채 발견된다. 연쇄범이었다. 하지만 형사들은 대부분 수사를 거부했다. 범행 동기는 충분히 공감할 만했다. 선악이 교차하고 시비가 엇갈리는 사건은 수사 의욕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용의자가 된 과거 성폭행 피해자를 동정하고, 범죄의 피해자가 된 성폭행범을 경멸했다. 그리고 범인을 ‘청소부’라 부르며 추앙했다. 청소부에 대한 수사를 중단하라는 진정서가 쌓이고, 청소부를 잡는 형사를 죽이겠다는 협박이 심심찮게 들려왔다.

 

 

저자는 이유나 핑계에 의해 변하는 것은 더 이상 정의라 부를 수 없다는 점을 강하게 어필하고자 한다. 물론 악을 벌한다고 선은 아니다. 오히려 더 큰 악일 수도 있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가 아니라면 복수도 범죄일 뿐이다. 형사 민수는 그렇게 믿으며 버텼다. 그 믿음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청소부를 잡아야만 했다. 하지만 민수의 파트너인 희성은 청소부 검거에 점점 회의적이 되어간다. 거대한 악과 마주해 그저 살아남기 위해 악이 될 수도 있었다. 권총강도에게 반항하다 강도를 찔러 죽인 집주인을 악이라 단정할 수는 없었다. 민수와 희성은 서로의 의견을 굽히지 않는다.

“살아남기 위해서 악이 되었다?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청소부 편을 들 수는 없어. 악과 마주한다고 해서 모두가 악에 물들지는 않아. 극한상황에 몰린다고 해서 모두가 범죄를 선택하지 않듯이. 너무 가난해 굶어죽기 직전이라고 해서 강도짓을 무조건 용서할 수는 없어. 강도라는 불법적이고 비윤리적인 방법을 쓰기 싫어 그냥 굶어죽는 사람이 옳은 거야. 법과 질서에 동정과 연민이라는 감정을 더하면 정의는 결코 실현되지 않아. 과거에 상처를 받았다고 해서 현재의 나쁜 행동을 이해받고 용서받기를 바라는 건 피해자증후군일 뿐이야.”(p.196)

그리고 청소부는 점점 대담해진다. 자신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기도 하고, 범행 현장에 되돌아오기도 한다. 20대 여자, 푸른 눈, 가냘픈 몸매, 문신 기술, 의학적 지식······. 청소부가 일부러 놔두고 간 증거들은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했다. 청소부의 범행이 늘어날수록 용의자의 수도 늘어났다. 성폭행 피해자, 피해자의 가족과 친구, 담당 정신과 의사, 담당 경찰, 그 누구라도 범인일 수 있었다. 아니, 어쩌면 모두가 범인일 수 있었다.

 


 

이 소설은 범죄, 특히 성폭행, 아동학대, 흉악범죄, 연쇄살인범 등 사회의 범죄가 흉포화하고 대상이 가족에게도 향한다는 사회 현상에 대해 법의 심판으로 제대로 처벌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분석하는 소고(小考)처럼 읽힌다. 저자는 출판사 측이 내놓은 집필 동기를 밝혔다.

“용서는 복수보다 위대하다는 건 대중을 쉽게 통제하려는 지배층의 세뇌일 뿐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받은 만큼만 돌려주는 ‘동해복수법(同害復讐法)’은 엄연히 정의실현의 방법 중 하나였다. 하지만 현재 개인의 복수는 범죄가 되었다. 대신 국가가 법에 의해 가해자를 처벌해준다. 일종의 대리 복수이다. 국가가 행하는 대리복수는 완벽한 정의실현을 하지 못한다. 언제나 교묘하게 법의 약점과 맹점을 이용하는 가해자가 있기 마련이다. 청소부는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간 범죄자를 찾아내 복수를 한다. 복수의 순간, 피해자와 가해자는 뒤바뀐다. 형사들은 시비와 선악이 교차하는 범죄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복수와 용서, 그리고 정의실현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혼란스러워한다. 그런 형사들의 복잡한 심리변화를 통해 진정한 정의실현의 가능성, 용서와 복수의 의미 등에 대해 고찰해보고자 하였다.”

 

“왜? 너도 청소부 잡기 싫어졌냐?”

“솔직히 원한에 의한 범죄를 수사할 때면 가끔 범행 동기가 이해되기도 해요. 사기를 당해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집안이 망해버린 남자가 사기꾼을 잡아 두들겨 팬다든지, 부인이 몇 번이나 바람을 피워도 자식을 위해 이혼하지 않던 남편이 자기 안방에서 상간남과 부인의 간통 현장을 목격하고 부엌칼을 휘두른다든지······. 하지만 범행 동기에 공감한다고 해도 흔들린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그런데 이번 사건은 이상하게도 마음이 복잡하네요. 과연 청소부를 잡는 게 옳은 일인가 의문이 들고······.”(p.277)

 


 

저자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죄와 벌, 법의 정의, 치외법권의 세계, 사회와 법 등에 충분한 고찰을 거듭했으리라는 단서를 제공한다. 각종 철학서나 성경 등에 나오는 문구 등을 자주 인용하고, 거기서 나온 용어에도 주목한다. 범죄와 복수의 개념에 대한 의혹도 제기한다. 또 사회의 근본이자 마지막 안전판인 가족마저 범죄에 무너져 내리는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자 한다. 이 책의 각 장마다 쓰인 용어나 밑에 해석은 인용이든 저자의 주석이든 피해자 입장에서 처벌하지 않고 법에 의한 처벌 만으로 끝내는 데 대한 원천적 의문을 제기한다. 즉 사회나 국가의 고위층, 돈이 많은 사람, 법에 관련된 사람들을 벌 주는 정의로운 법에 대해 필요하다면 수정을 요구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왜 우리 사회에 '유전무죄 무전유죄'란 단어가 유행한 지 40년 가까이 됐는데도 법과 법의 행사는 그대로인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명 청소부라 불리는 범인이 나타난 뒤, 성폭력 출소자들의 재범률이 갑자기 감소하기 시작했습니다. 강력한 처벌이 얼마나 범죄 예방효과가 높은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청소부는 피해자의 신체 일부를 훼손하거나 눈을 멀게 하는 등 잔인한 범행을 저질렀지만, 그 피해자가 과거에 제대로 처벌받지 않은 범죄자였으며, 청소부가 나타난 뒤 범죄율이 감소했다는 사실 때문에 비난보다는 호감을 얻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범죄 없는 사회를 위해서는 정말 강력한 처벌만이 답일까요? 전문가의 의견 들어보겠습니다.”(p.319)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와 대적하지 말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p.352)

 


 

제1장. 괴물 Ungeheuer

제2장. 악마의 눈 Nazar boncu?u

제3장. 네메시스 Ν?μεσι?

제4장. 루시퍼 Lucifer

제5장. 릴리트 Lilit

제6장. 생존자 Survivor

제7장.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Homo sapiens sapiens

제8장. 눈먼 자들의 도시 Ensaio sobre a cegueira

제9장. 창조자의 길 Vom Wege des Schaffenden

제10장. 죽은 자를 위해 울지 말라 Don’t cry for the dead.

 

저자 : 최문정 (崔文精, 본명 : 유경)

 

최문정 작가는 여성과 가족애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해왔다. 주요 작품으로는 삼대에 걸쳐 세 여자의 사랑과 용서, 화해의 과정을 통해 애절한 모성애를 그린 《바보엄마 1, 2》(SBS-TV 주말드라마로 방영)와 발레리나 딸과 군인 아버지의 오래된 갈등과 뜨거운 화해를 그린 《아빠의 별》, 불우한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네 자매의 뜨거운 우애를 다룬 《허스토리》(2014년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도서)가 있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백제의 딸이 일본의 태양신이 되었다는 도발적 팩션소설 《태양의 여신 1, 2》(원제 《아마테라스 오미카미》)가 있으며, 최근에는 《소설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 나쁜 남자 편》을 펴냈다. 또한 지치지 않고 사랑을 위해 싸웠던 세기(世紀)의 연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사랑, 역사가 되다》, 《나를 찾아 떠난 스페인》(2015년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도서) 등 10여 권이 있다. 최문정(본명 유경愈景) 작가는 경남 진해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과학교육과를 조기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기도의 한 중학교에서 과학교사로 재직 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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