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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운 게 뭔데 - 잡학다식 에디터의 편식 없는 취향 털이
김정현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9월
평점 :
책은 글을 쓴 사람의 성격과 취향, 그리고 지식과 지혜 등을 모두 드러내는 바로미터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맞는 말일 것으로 독자도 생각한다.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지식의 한계를 드러내기도 하고 성격이나 취향이 반영돼 문자로 나와 기록되기 때문이다. 물론 꼭 그렇지 않은 것도 있을 터다. 수많은 책이 매일 쏟아져 나오는데 필요한 경우가 아니고는 작가와 글을 분석하는 경우가 필요치 않은 이유이다. 특히 인터넷이 인류의 지식 거의 대부분을 저장하고 있는 터에 굳이 작가론이나 작품론은 대작이 아니고서야 거론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에세이는 누구나 쓸 수 있는 분야에다 대단한 연구나 지식도 필요치 않아 신변잡기를 써다 어엿하게 책으로 엮어 나올 수 있는 시대여서 그 많은 책들에 대한 검증은 필요없는 시대다.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책을 문학적 분석을 잘 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어딘가 마음에 들어(예를 들어 제목, 표지 등) 구입한 책이 감동을 준다면 그 저자에 대한 궁금증은 커진다. 누군데 이렇게 글을 잘 썼을까? 뭐하는 분일까? 하는 때가 많다. 독자가 글쓰기를 하기 힘들어 못 쓰고 있는 경우에는 책이 주는 감동과 호감은 훨씬 클 것이다. 이 책 『나다운 게 뭔데』는 독특한 제목과 말하듯이 쓴 글로 독자에게 큰 반향을 준다. 말하듯 쓴다는 것은 작가로서는 만점의 능력이다. 말하듯이 쓰면 독자들이 읽기 쉽고 내용의 이해도 즉각적일 수 있기 때문에 글쓰기를 가르치는 곳에선 필수적인 능력이므로 유의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 책의 저자와 내용을 소개하는 '출판사 책 소개'에 따르면 이 책은 크리에이터 그룹 팀 포지티브제로의 에디터이자 호기심이 특기, 변덕이 적성인 ‘취향 수집가’ 김정현이 자신의 사심을 탈탈 털어 기록한 에세이다. 멋져 보이고 싶다는 원초적인 욕구를 동력 삼아 안목의 저변을 넓히는 그는 나다운 취향에 매달리는 것보다, 타인의 세련된 취향에 솔직한 치기와 이유를 덧붙이는 게 더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촌스러운 것보다 거짓됨을 경계하고, 동경하고 열광하는 일에 진심을 아까워하지 않는 그 솔직함 덕에 유명한 아티스트의 인터뷰를 맡고, 부지런한 마케터가 즐겨 읽는 칼럼을 쓰고, 일 잘하는 에디터가 팔로잉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김정현의 첫 책 《나다운 게 뭔데》는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 좋아하는 일을 멈출 수 없는 이유를 밝히며 허세와 시샘의 유용함을 설파한다.
“우리가 돈이 없지, 취향이 없나?” 제목도 다소 의심스러운 의문형이지만 책 내용 소개는 저자의 신변을 탈탈 털어 기록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책을 만들어 내는 출판사 입장에서는 더 과장되게 쓸 수도 있겠지만 이 정도면 출판사의 책 소개 치고는 꽤 이색적이다. 어떻게 보면 사뭇 제멋대로, 하고 싶은 대로 세상을 사는 '철부지' 같은 느낌도 준다. "삼각김밥에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워도 후식으로는 블렌딩 원두커피를 마셔야 하는 사람이 있고, 억만금이 통장에 쌓여 있어도 힘든 날엔 무조건 소주를 들이켜야만 하는 사람이 있다. 공감하기 어렵다가도, 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마음의 방향. 취향은 수없이 설명해도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이지만, 감탄사 한마디로도 수많은 이를 설득시키는 마력을 가진 존재이기도 하다."
에세이라 할지라도 이 책의 편집은 독특하다. 글을 읽는 재미보다 페이지를 '보는 재미'에 더 신경을 쓴 듯한 느낌이다. 그렇다고 편집 능력을 앞세워 저자의 글의 내용을 압제하지는 않는다. 제목도 내용과 적합하되 조금은 가볍게 읽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듯하다. 저자의 의도인지 편집자들의 조언이 곁든 것인지 독자로서는 쉽고 재밌는 내용을 무겁고 철학적 용어를 사용하는 제목보다 훨씬 친근감이 든다. 우리는 취향을 묻는 말 앞에서 자주 골똘해진다. 이게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게 맞나? 나다운 취향이라고 설명할 수 있나? 첫 직장이었던 취향관을 시작으로 브랜딩, 잡지, 칼럼, 인터뷰까지 ‘분야 안 가리는 프리랜스 에디터’로 활약해 온 책의 저자 김정현은 답한다. 대체 나다운 게 뭔데? 그는 나다움에 갇혀 내 안에 쌓인 배움과 경험을 경시하지 말자고 말한다. 이어서 ‘김정현다운 취향’을 갖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준 것은 일일이 따져가며 계산한 의도가 아니라, 사랑에 빠지겠다고 작심한 ‘무작정’이라고 덧붙인다.
저자의 고집스러운 취향이 드러나는 답을 한다. "나다운 게 뭔데?"란 질문에 다소 따분해진 사람들은 어느샌가 ‘호불호’ 라는 말을 가져와 쓰기 시작했다. 좋음, 좋지 않음. 이 단순하고도 당연한 감정을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저자는 취향에 진심을 쏟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이야기한다. 운치 있는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소몰이창법 발라드가 싫어 TPO (time·place·occasion)에 맞는 플레이리스트를 만드는 일에 빠졌고, 그럴듯해 보이지만 겉핥기식 말들 뿐인 에세이가 싫어 위로의 말을 고르고 솎아내는 법을 익혔다고. 그러다 보니 호와 불호는 자연스레 경험치가 되어 내공으로 쌓였다고 저자는 털어놓는다. 잦은 변덕과 금세 싫증을 느끼는 성격 또한 저자를 좋은 제너럴리스트로 성장하게 만드는 큰 동력이 되어주었다고도 말한다.
예전엔 싫었는데 지금은 마음에 드는 것, 더 좋아 보이는 것, 앞으로 더 좋아해 보고 싶은 것 등등. 책에는 색다르고 견고한 취향을 만들어 준 일등 공신인 호불호에 대한 솔직하고 과감한 작가의 고백이 가득하다. 아니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 이야기다. 이제서야 왜 이 책의 제목이 『나다운 게 뭔데』로 붙여졌는지 깨닫는다. “난감하게 정직하고 통쾌하게 솔직한 글들”을 보며 소리 내어 웃었다던 영화평론가 김도훈의 추천평이 공감 가는 이유다. "남자의 에세이란 보통은 힙스터와 문학 청년 사이를 마구 오가다 자기연민으로 빠지며 마무리되곤 한다. 자신을 완전히 까 보이겠다는 결기 없이, 취향만 나열하는 글을 읽는 것은 꽤 고통스러운 일이다."라는 영화평론가 김도훈이 소리 내 웃을 정도로 이 책은 저자의 욕심과 욕망, 실패와 좌절을 늘 긍정으로 바꾸는 재주, '하다보니 그렇게 됐다'는 솔직한 토로 등이 어우러져 저자의 진정성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또 하경화 〈디에디트〉 에디터는 저자의 열정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무언가를 사랑하고 좋아하는 게 얼마나 많은 체력을 필요로 하는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아낌없이 애정을 쏟을 줄 알고, 팬이 될 줄 알고, 동경할 줄 알고, 질투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솔직하다. 그래서 ‘홍대병 걸린 젊은이’가 서른을 목전에 두고 써내린 이 기록은 귀하고 사랑스럽다. 10년 후에는 어떤 책을 내줄지 벌써 기대될 만큼.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어떤 취향으로 변했을까? 여전히 똑같은 질문을 품고 있겠지. 나다운 게 뭔데?"
독자는 아날로그 세대로서 중년의 나이인데, 젊은 저자의 열정과 진취적인 집중력, 몰입도 높은 일에 대한 관심 등이 부럽기만 하다. 질투심에 '꼬투리 잡을 일 없나?' 하고 촘촘히 읽고 속속들이 뒤져도 없다. 민망하기만 하다. "난 젊었을 때 못했는데..."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다. 그래도 솔직한 젊은 저자의 에세이는 독자에게 읽는 보람을 준다. 요즘 젊은이들의 삶에 대한 태도를 읽을 수 있었으니. '꼰대' 소리 안 들으려 억지로 공감을 말하는 게 아니다. 책 곳곳이 그의 열정이 묻어 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 독자의 엄살 같은 주장이 설득력을 가진다.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설명한 저자는, 이제 그걸 왜 좋아하는지 본격적으로 호들갑을 떨기 시작한다. 좋아 죽을 것 같은 존재가 많아도 너무 많아, 목록까지 꾸리는 자신을 작가는 ‘호모 목록쿠스’라고 지칭한다. 그는 인스타그램 책갈피 기능을 본격 활용해 ‘저장됨’을 무한 반복한 뒤, 뒤죽박죽 섞여 있는 애정들을 차곡차곡 서랍에 쌓는다. 공간, 아이템, 스타일, 노래, 음식 등 스크랩북처럼 모아둔 뒤 꺼내 보며 흐뭇해하는 과정을 통해, 넓혀 두었던 애정의 폭을 깊게 파고들어 간다.
열심히 쏘다니다 심장을 저격하는 존재들을 만나면, 저자는 거침없이 달려들어 애정 공세를 퍼붓는다. 일단 다짜고짜 좋아한다고 고백한 뒤, 푹 빠지게 된 이유를 호들갑스럽게 나열하고, 앞으로 건승하기를 바란다는 진심 어린 응원 멘트까지 덧붙인다. 이 책의 차례가 마치 ‘좋아 죽는 것들’의 목록처럼 보이는 것은 그 진심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박찬용의 추천사처럼 독자도 꼭 같은 심정이다. 역사 칼럼니스트이니 표현도 멋지게 잘 해준다. 추천사마저 공감한다. “현대 욕망 실록 같은 이 책”에서, “이 시대의 젊음”을 읽어낼 수 없다면 이 책을 다시 읽을 것을 독자는 권유한다. 타인의 취향과 시대의 트렌드를 탐구하는 에디터인 저자는 아직도 자신의 그릇은 더 넓어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역시 젊은 저자의 패기와 진취적인 열정이 대단하다.
멋진 중매쟁이가 장래 희망이라는 저자는 좋은 주선자가 되기 위한 노력으로 질투와 시샘을 꼽는다. 잘난 콘텐츠, 부러운 아티스트를 치기 어린 마음에 거들떠보지 않는 것은, 좋은 중매에 방해만 될 뿐이라는 사실을 진작 깨달은 터다. 책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부러움’ 목록은, 김정현 에디터의 비법이 발품 팔아 관찰하고, 편식하지 않고 소비하는 것임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아침〉 잡지와 바통 밀 카페가 만든 찰떡 ‘브런치’ 컬래버레이션, 후가공과 지종으로 장점을 최대 효용으로 끌어낸 사진작가의 엽서책, 차가 없는 사람도 정주행하게 만드는 자동차 리뷰 유튜브 채널. 이처럼 책은 기발한 아이디어와 과감한 실천력, 결과로 도출시키는 집중력까지 세세하게 짚으며 질투와 시샘이 얼마나 유용한지 독자를 일깨운다.
작가는 이렇게 김정현다운 글과 사진을 엮어놓고도 독자에게 질문한다. “나다운 게 뭔데? 나도 나를 모르겠는데 나다운 취향이라뇨? 언제든 고집과 지조를 버리고, 환승과 변심으로 다양한 취향을 존중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요?” 저자가 넓고 다채로운 레퍼런스를 가질 만한 사람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는 ‘나다움’이라는 말에 기죽지 않고, 돈 없어서 취향껏 못 산다고 쫄지 않아도 좋아하는 것들을 마음껏 사랑하며 살 수 있다고 북돋는다. 그 증거가 바로 자기 자신이라 말하면서 말이다.
개성과 욕심, 질투와 동경,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팡질팡 고민하고 있는가? 힙하고 쿨한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취향 수집가인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 보라. 독자들도 “이 귀하고 사랑스러운 기록”을 읽으며 “그의 또 다른 재미 목록을 기다리게 되는” 한편, 책의 제목처럼 “나다운 게 뭔데?” 하며 취향에 관한 편견을 깨고 건강한 열정과 애정을 품는 방법을 배우게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지적 허영심이 최고조로 달해 있던 이십 대 초반의 나에게, 청춘의 가장 멋진 모습만을 압축해 놓은 듯한 홍대 앞 문화의 전설이 얼마나 매력적으로 다가왔겠는가. 남들보다 특별하고 싶은 나, 더 자유분방하고 싶은 나, 주체할 수 없는 창의적 에너지를 마구 내뿜고 싶은 나. 하지만 현실은 아주 전형적인 모범생 루트를 타온 나. 전혀 파란만장하지 않은 삶을 살아온 샌님 같은 나. 원래 반대가 끌리는 법이라고, 나는 잘 보이지도 않는 내 안의 힙스터를 애타게 소환하고 부르짖었다.(p.176~177)
- 「한 남자가 있어, 홍대를 사랑한」 중에서
저자 : 김정현
콘텐츠 에디터. 익산에서 나고 자라 동경하던 서울에 상경해 10년째 살고 있다. 수염을 기르고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쓴다. 오프라인 공간 기반의 브랜드를 가꾸는 크리에이티브 그룹 ‘팀포지티브제로TPZ’에서 일한다. 뮤직&라이프스타일 매거진 〈BGM〉 에디터, 디지털 미디어 〈디에디트〉의 객원 필자로도 활동 중이다. 피자와 햄버거가 수두룩한 도시를 사랑하지만 언젠가는 이곳으로부터 도망치지 않을까 생각하며 산다. 할아버지가 되어도 커피와 춤은 끊지 못할 것 같다.
instagram @kimjeonghyeon_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