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뼘의 계절에서 배운 것
가랑비메이커 지음 / 문장과장면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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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애정도 옅은 질투도 모두 한 뼘의 계절에서 배웠다. 사계절의 전환이 없었더라면 내 몫의 문장은 절반도 되지 않았을 거다." 저자가 계절에서 배운 것, 생각한 것 등이 이 한 문장으로 오롯이 전해져 오는 순간 전율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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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뼘의 계절에서 배운 것
가랑비메이커 지음 / 문장과장면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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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한 뼘의 계절에서 배운 것』은 저자 가랑비메이커가 2018년부터 2022년간 계절을 산책하며 마주한 사유와 서사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에세이다. 이 책에는 제목처럼 겨울의 촉감과 봄의 색, 여름의 맛, 가을의 냄새가 짙게 남아 있다. 저자 가랑비메이커의 섬세한 문체와 예리한 시선은 어느 계절에 펼쳐보아도 ‘그 계절’의 장면 속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사랑하고 미워하는 계절이 있는 사람이라면, 계절 산책자 가랑비가 안내하는 길목에서 수많은 이름들과 마주하고 헤어지게 될 것이다. 페이지를 넘겨 갈수록 한 뼘의 계절에서 배운 것이 늘어갈 책 속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저자가 마음껏 산책하고 마주했던 사람과 장면들에 대한 것들에 대한 깊은 사유로 들어가기 전 독자로서는 그만 만난 사람과 장면이 어떤 것일까 궁금하다. 계절에 대한 것만 썼을까도 궁금하고, 그가 만난 사람이 등장한다면 어떤 사람일까도 사뭇 궁금하다. 저자의 속내를 알 수 있는 단초가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의 '프롤로그' 격의 글에 '초대장'이라고 쓰고, 「사계절이라는, 축복」이라는 제목으로 독자들을 자신의 사유 세계로 초청한다. "언 땅에 부서진 재처럼 남은 메마른 풀과 잔뿌리를 밟으며 고요한 겨울을 지나면, 마른 나뭇가지와 컴컴하던 땅에도 푸른 새순이 돋는 봄이 내려앉는다. 겨우내 발등만 보며 걷던 습관은 해가 깊숙이 드는 봄이 오면 자연히 사라진다. 푸른 잔디와 굵어진 나무, 그 위에 내려앉은 작은 새들을 올려다보며 걷는 걸음은 나른한 봄기운에 취해 왈츠처럼 우아해지곤 한다."

 


 

책의 제목과 주제가 암시하듯 이 책은 '계절 예찬'이 먼저다. 저자의 사유의 세계가 계절 속이기도 하고, 계절에 따라 변화하기도 한다. 누구나 그렇듯이. '초대장'에서는 겨울에 이어 봄에 대한 축복의 메시지도 전한다. "겨울에서 봄, 움츠렸던 몸이 활처럼 펴지는 계절의 전환 앞에서 공연히 게을러진 나를 마주한다. 여전히 정리하지 못한 무채색의 겨울옷, 제때 먹지 못해 곪은 고구마와 귤, 대충 눌러쓴 모자 속 무성하게 자라난 머리······. 언제까지고 모르는 체하며 덮어둘 수 있을 줄 알았던 것들이 손기를 갈구하는 계절, 무거워진 몸을 일으키며 구석구석 나의 쓸모를 발견하는 일은 새 계절을 여는 첫 번째 스텝이다."

여름은 더위 속에서 게으른 저자에게 먹을 것을 스스로 마련해 요리하는 즐거움도 준다. "나른하던 공기가 후끈하게 달아오르는 여름에는 종일 무얼 먹을까 궁리한다. 먹지 못해 안달난 사람의 허기가 아닌, 도처에 널려 있는 탐스런 제철 과일과 채소를 어떻게 요리하면 좋을지 고심하는 세프의 마음이다." 또 주방일보다 청소를 좋아하는, 요리보다는 설거지를 좋아하는 저자에게도 여름은 제 손으로 맛을 내고 싶어지는 계절이라고 말한다. "불을 쓰지 않고도 툭툭 썰어낸 과일과 채소로 채운 접시를 비우고 주전자에 담긴 보리차를 쪼르륵 따라 마신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소매 끝으로 훔치는 일까지 건강한 식사가 되는 계절에는 유난히 다양한 표정을 짓는다. 타는 듯한 더위에 잔뜩 찡그렸다가도, 곁을 머무는 한 줌의 바람과 한 뼘의 그늘에 옅은 웃음이 번진다."

 


 

여름 한낮의 대화와 한밤의 산책으로 활기 넘치는 여름이 지나면 저자의 가을이 궁금해진다. 소리 없이 드리워진 사색의 시간, 여럿보다는 홀로 보내는 시간이 긴 가을은 냄새라는 짙은 흔적을 남긴다는 저자의 독백처럼 마음도 냄새로 가을을 맞이한다. 건조한 공기를 타고 선명하게 실려오는 흙과 나무 냄새, 갓 내린 커피 냄새, 섬유 유연제 냄새. 홀로 길을 거닐어도 가을의 냄새는 지난 시절과 사람들 속으로 저자를 당겨낸다고 한다.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대화를 주고받고 맞닿지 않아도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사색의 계절은 언제나 아쉬움을 남기고 금방 돌어서버린다고 쓸쓸한 마음을 달랜다. 어쩌면 다음 기다리는 계절에 더 마음이 쏠려 있는 것일까?

저자는 겨울을 한 해의 시작과 끝을 차지하는 욕심 많은 계절로 표현한다. 두꺼운 외투에 목도리를 두르고 모자를 눌러써도 코끝과 손끝으로 전해지는 촉감은 그 어느 때보다 생생하다. 여린 살갗을 훑고 지나가는 찬바람, 우연히 스친 손끝에 스파크처럼 이는 정전기, 따듯한 머그잔을 뭄켜쥐었을 때 지문이 녹는 듯한 느낌.

"둔한 옷차림으로 종종거리는 계절이지만, 나에게 겨울은 그 어느 때보다도 생의 감각이 민감하게 되살아나는 계절이다. 얼어붙은 핸드크림을 힘껏 짜고 문지르는 일, 밤새 한 땀 한 땀 짠 목도리를 마침내 목에 두르는 일, 차가운 귀를 감싸며 바보처럼 웃는 일, 주머니 밖에서 서로의 손을 잡고 흔들며 걷는 일. 우리가 겨우내 하는 모든 일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확인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지독한 추위로부터 지지 않고 한 해의 끝부터 시작까지, 여기 생동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그리하여 겨울이 오면, 습관처럼 해오던 모든 일들이 살기 위한 것처럼 필사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고 저자는 치열한 삶의 온기를 느낀다. 느슨해졌던 일상을 조이는 차가운 생의 감각은 매일 홀로 쓰고 펴내는 저자에게는 유일한 감시자이자 동료라는 말에 독자는 공감할 수밖에 없다.

 


 

저자의 계절 맞이는 끝난 게 아니다. 매 해 순환하는 한 해의 느낌만 나열하고 있을 뿐이다. 이 책에는 다시 봄으로 가면서 더 구체적인 저자의 계절이 풍요로워진다. 나름대로 사계절이 분명한 곳에서 나고 자라며 당연하게 마주했던 변덕스러운 계절이 가난한 예술가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영감이 된다는 저자의 진술은 큰 공감을 준다. 낮에는 산책을 하고 밤에는 문장을 쓰는 단조로운 삶에 색과 향을 가미해준 계절의 목소리와 환절기는 어떻게 저자의 마음을 끌어당기고, 또 멀어지게 했을가. 읽을수록 저자의 사유는 깊어지는 것 같아, 결국 저자의 속내를 알아내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하지만 인내로써 읽는다면 삶의 새로운 방법에 대한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거란 자신감에 페이지를 연속 넘기게 한다.

이 책은 장(章)의 구분을 계절로 나누었다. 「겨울」로 시작해 「봄」, 「여름」, 「가을」을 거쳐 다시 「겨울」이 된다. 계절에 순응하며 사는 저자이지만 계절의 순환에서 뭔가가 달라짐을 느끼고, 깊은 사유를 통해 예리한 필체로 담아낸다. "내리는 눈을 가만히 바라볼 때면 눈이 지닌 힘에 대해 생각해보고는 한다. 오래된 동네를 동화 속처럼 만들어버리는 로맨틱한 둔갑술에 대하여. 저 높은 하늘에서 대지 위로 안착하기 위해 지나와야 했을 긴 여정과 인내에 대하여. 미지근한 손바닥 위헤서 소리 없이 사라지는 눈의 모습에서는 겸손을 배우기도 한다.

 


 

겨울부터 또 겨울까지, 한 해 동안 저자가 마주한 계절과 만난 사람과, 계절의 사유를 각 계절에 맞춰 한 문장씩만 여기에 옮긴다. 저자의 마음과 사유를 잘 표현해놓았다고 독자가 느낀 것이니 다른 독자들과, 또 저자와 다른 의미로 다가왔을지 모른다. 그러나 2022년 겨울의 문턱에서 지난 해 저자가 경험하고 느낀 감정의 순간들과 비슷한 문장을 골랐다.

 

그리운 적 없던 그를 떠올린 것은 틀림없이 눈 때문이었을 거다. 해묵은 기억들이 하얀 눈에 둘러싸여 둥글둥글 뭉툭해져서 마음 속으로 굴러들어왔을 거다. 지난 시절을 떠올려 보다 가만히 속으로 안부를 묻는다. 눈이 오는 날이면 여전히 그 노래와 그 영화를 보는지. - 「눈이 오면」 중에서

이방인과 주변인 사이를 오다가 보면 언젠가는 이름을 새기지 않아도 내 것인 것들이 늘어 있을지도 모른다. 이 낙관적인 마음은, 오늘 아침 산책에서 입은 것이다. 목적 없는 아침 산책은 작고 나약한 고민의 터널을 지나며 몇 줄의 선명한 문장이 된다. 삐뚤빼뚤하게 쓰인 문장을 조용히 웅얼거리고 나서야 나의 긴 산책은 끝이 난다. - 「깨끗한 마음으로 쓰는 산책」 중에서

함께 웃고 울고 떠들던 여덟 번의 여름은 선명한데 마지막 메일과 문자를 나누었던 아홉 번째 여름은 희미하다. 마치 누군가 필름을 뚝 자른 것처럼 맺음 없이 남겨진 마지막 여름 끝에는 옅은 감정만이 잔부스러기처럼 남겨져 있다. 소란하던 여름이 지나고 어느덧 네 번째 여름을 맞았다. H는 지금 어떤 여름을 지나고 있을까. - 「소란하던 여름이 지나고」 중에서

하나의 책을 함께 읽는 일이, 어릴 적 교실 안에서 하나의 교과서를 짝과 나누어 보면 순간에만 가능한 게 아니라는 걸 낡은 책들과 함께하는 계절에서 배웠다. (중략) 새 책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사적인 흔적을 읽는 일의 기쁨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나로 하여금 더 많은 문장을 쓰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하다. - 「흔적을 읽는 계절」 중에서

 


 

사계절의 순환이 없었더라면, 작업과 삶에는 긴장과 이완이라는 밀고 당기기도 없었을 것이란 저자의 말에 수긍한다. 무한정 늘어진 삶을 살거나 매초 스스로를 다그치기만 하며 현재의 기쁨과 슬픔의 맛을 알지 못했으리라고 혼잣말하는 이유도 알아챌 것 같다. 그리하여, 저자는 날마다 새로운 배움을 전해준 계절들을 지나며 문장들을 엮었다. 계절의 테두리가 아닌 계절의 한가운데를 거닐며 느꼈던 민낯의 감정과 감각을, 새로운 계절 속에 서있는 독자들에게 전한다. 가난한 애정도, 짙은 질투도 겨우 한 뼘의 계절에서 왔다. 못난 모습도, 가끔은 모두 계절의 몫으로 두어도 좋다. 조금 모자란 듯한 계절이 지나고 다시 새 계절이 오면 지금의 휘청이는 걸음은 단단한 지도가 될 것이다. 그제야 지난 계절을 돌아보며 헤아릴 수 있을 거다. 한 뼘의 계절에서 배운 것들을.

 

저자 : 가랑비메이커

 

프리라이터(2015-)이자 출판사 문장과장면들 디렉터(2019-). 그럴듯한 이야기보다 삶으로 읽히기를 바란다. 모두가 사랑할 만한 것들을 사랑한다면, 나 하나쯤은 그렇지 않은 것들을 사랑해야만 한다고 믿는다. 낮고 고요한 공간과 평범한 사람들에 이끌린다. 작은 연못에서도 커다란 파도에 부딪히는 사람, 그리하여 세밀하고도 격정적인 내면과 시대적 흐름을 쓰고야 마는 사람이다.

단상집 시리즈 『지금, 여기를 놓친 채 그때, 거기를 말한들』(2015.독립출판), 『숱한 사람들 속을 헤집고 나왔어도』(2018.독립출판), 장면집 『언젠가 머물렀고 어느 틈에 놓쳐버린』(2019 개정), 고백집 『고요한 세계에 독백을 남길 때』(2019.독립출판)를 기획, 집필했다. 가족 에세이 『거울 같은 당신께 겨울 같던 우리가』(2020)를 기획, 공동집필 했다. 책장과 극장사이를 머물기를 좋아하며 이따금 사진을 찍는다. 다양한 사람들과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는 프라이빗한 모임을 진행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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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상상하라 -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몸이 바로 서는 기적의 10문장
오하시 신 지음, 안선주 옮김 / 쌤앤파커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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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잘 모르겠지만 독자가 어린 시절 학교에서는 체조(맨손체조)를 가르쳤었다. 맨손체조라고도 했고, 도수체조라고도 했다. 5~10분간에 걸쳐 자리에 참석한 어린이들이 모두 함께 동작을 반복하는 맨손체조다. 그것은 독자가 군대 갈 때도 있었다. 매일 아침 6시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도수체조(맨손체조)다. 그 효과는 사실 컸다. 다만 그 체조 동작을 하는 사람들은 별로 느끼지 못할 뿐이다. 전신운동인 데다 각종 동작을 2회 반복함으로써 굳어질 몸을 풀어주고 유연하게 해주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관계자들과 학계, 의사들까지 동원되어 만들어진 체조라는 사실은 뒤에 가서야 알았다.

맨손체조가 그렇듯 이 책 『몸을 상상하라』도 특별한 문장으로 만들어 실천함으로써 몸 전체의 건강한 흐름을 강조하고 있다. 저자인 일본의 ‘특급 물리치료사’ 오하시 신은 ‘알렉산더 테크닉’, 태극권의 ‘호흡’, 서양의학의 ‘물리치료’를 기반으로 손쉽게 자세를 교정할 수 있는 ‘기적의 문장’을 만들었다고 밝힌다. “문장이라고?” 의아할 수 있겠지만 실제 ‘문장(文章, sentence)’이다. 무려 스트레칭이나 운동 없이, 상상하기만 해도 몸이 바로 서는 문장이다. ‘기적의 문장’ 덕분일까? 그에게 재활치료를 받으면 심각한 병도 낫는다는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는데, 대부분 일반적인 치료로는 차도가 없어 이 병원 저 병원 옮겨 다니던 이들이었다.

 


 

저자는 그 환자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뒤틀린 자세’다. 오하시 신은 ‘기적의 문장’으로 그들의 자세 개선부터 시작했다. 자세가 바르지 않으면 몸의 하중 균형이 무너져 관절과 근육 기능이 저하되고 장기와 신경, 혈관 등을 압박한다. 그 결과 어깨 결림, 목 통증, 두통, 피로감, 요통, 불면증 등 다양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자세만 바로잡으면 이 모든 질병을 해소할 수 있는 셈이다. 하루 60초, 딱 1분이면 충분하다. 오하시 신의 ‘기적의 문장’은 당신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꿀 것이다.

자세를 바르게 하는 데 스트레칭이나 운동이 필요 없다,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잘못된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자세 개선을 위해 여러 가지를 시도해봤다면 의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게 세상에 ‘바른 자세’를 이야기하는 책이 얼마나 많은가. 그중 대부분은 스트레칭이나 운동을 권한다. 물론 자세를 유지하려면 근육이 필요하니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아주 중요한 관점이 빠져 있다. 바로 몸을 ‘부드럽게’ 하는 것이다. 바른 자세를 위해선 자세가 틀어진 원인부터 알아야 하는데, 그 근본적 원인은 심신의 긴장이라고 저자는 생각했다. 안 그래도 긴장해서 굳은 몸을 더욱 긴장시켜 바른 자세로 만들려고 하니 좋아지지 않는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기적의 문장’은 몸에 힘을 빼고, 부드럽게 하는 것에 집중한다. 쉽게 설명하자면 마치 물에 빠진 상황과 비슷하다. ‘이러다 빠지겠어!’라고 생각한 순간 죽을힘을 다해 버둥거리면 몸은 더 가라앉는다. 반대로 힘을 빼고 물 위에 몸을 둥둥 띄우면 어떨까? 체온만 유지한다면 무사히 구조될 가능성이 크다. 자세도 마찬가지다. 보통 자세를 ‘반듯하게’ 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가슴을 펴거나 젖힌다. 하지만 ‘부드럽게’ 하는 지점이 양립되지 않으면, 자세를 악화시킬 뿐이다. ‘기적의 문장’으로 자세를 개선하려면, 몸에 힘을 빼고 부드럽게 한다는 원칙을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애쓰지 않고, 별다른 준비 없이, 그저 힘을 빼고 상상하기만 하면 된다. 귀찮고 신경 쓸 일 천지인 현대인들에게 안성맞춤 아닌가!

저자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생각보다 유연해서 상상하는 이미지를 실현하려고 노력한다. ‘기적의 문장’은 그 실현 과정에서 몸의 경직된 곳이 흔들리는 원리다. 문장을 읽고, 그 이미지를 상상함으로써 나도 모르게 자세가 변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주 신 레몬을 먹는다고 상상해보자. 자연스럽게 입가 근육이 긴장되면서 침이 나온다. 실제로 레몬을 먹지 않고도 상상만으로 뇌가 착각을 일으킨 것이다. ‘기적의 문장’은 이러한 원리를 자세에 응용해 만들어졌다. ‘기적의 문장’ 1번 ‘머릿속에서 조각배가 조용히 흔들립니다’는 두통에 효과적이다. 우리는 고민거리를 생각할 때 미간을 찌푸리곤 하는데, 그 순간 머리와 목 주변에 힘이 들어가 두통을 유발한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될까?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우선 ‘기적의 문장’ 1번을 읽으며, 머릿속에 호수를 떠올려보자. 그리고 그 위에 조각배가 흔들흔들 떠다닌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머리가 둥둥 뜬 것 같은 기분이 들면 자연스럽게 목 근육이 풀어져 두통이 완화된다. 오하시 신은 이렇게 간단한 문장들로 수많은 환자들의 자세를 개선하고, 온몸의 통증 해소를 도왔다.

저자는 속는 셈 치고 시도해보기를 권유한다. 하루 60초, 단 1분의 간단한 생활 습관이 당신의 인생을 바꿀 것이다. ‘그게 가능할까?’ 싶겠지만 실제 개선율은 무려 94%에 달한다고 단언한다. “걷지 못할 정도로 심하던 허리통증이 사라졌어요!”, “굽은 등이 쫙 펴졌어요!”, “삐걱거리던 관절이 말끔하게 나았어요!”, “몸이 가벼워져 회춘한 기분이에요!” 상상하는 것만으로 자세가 달라진다니 믿기지 않겠지만, 이미 많은 이들이 기적의 문장을 먼저 체험하고 증명했다고 밝힌다. 책 속에 수록된 ‘생생 경험담’은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경우들이다. 심지어 그중에는 단 한 번의 시도로 그 자리에서 곧바로 새우등을 교정한 사례도 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도, 노력과 의지조차 없어도 괜찮다. 『몸을 상상하라』에서 제안하는 ‘기적의 문장’은 전 세계 누구에게나 맞춤형이다.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되면 자세뿐 아니라 자연스러운 삶을 사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제부터 딱 하루 1분! ‘기적의 문장’으로 기적 같은 변화를 경험해보자. 누구든지 가능하다.

 


 

저자는 이 책 「프롤로그」는 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책에서 말하려는 것과 시도하는 모든 것이 이 한 문장에 담겼다. "이 책은 '한 문장'으로 자세를 바르게 만드는 책입니다." 자세를 바로잡는 일에 대해 너무나 쉽게 말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바른 자세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딱 10분 정도라고 저자는 말한다. 금방 평소의 잘못된 자세로 되돌아간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은 자세가 더 무너져버리는 악순환을 겪을 수도 있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에 집중하고 원인을 찾기에 골몰했다. 저자가 찾아낸 답은 "스스로 무의식중에 심신을 긴장시켜 몸을 굳게 했기 때문"이라고 확언한다. '심신의 긴장'이 잘못된 자세의 근본적 원인인데, 더욱 긴장시켜 바른 자세를 만들려고 하니 심해진 것으로 결론 짓는다. 이러한 시도는 부작용, 역효과만 불러온 셈이라고 강조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자세는 반듯하긴 하지만, 부드럽진 않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저자는 이 책의 주제이자 강조하는 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세상에 '바른 자세'를 이야기하는 책은 정말 많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운동이나 스트레칭을 권합니다. 물론 자세를 유지하려면 근육이 필요하니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아주 중요한 관점이 빠져 있습니다. 바로 몸을 '부드럽게' 하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 제시한 기적의 문장으로 자세를 개선하려면, '몸에 힘을 빼고 부드럽게 하면 자세가 반듯해진다.'라는 원칙을 반드시 이해할 것을 저자는 주문하고 있다.

 


 

저자가 제시한 열 문장은 너무 중요해 여기에 다시 한 번 적는다. 저자가 말하는 기적의 치료법 핵심어다. '자세의 급소'는 이 책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곳이며, 전문 용어로 환추후두관절이라고 한다. 이 부분이 긴장하지 않고 자유로워야 흩어져 있던 머리, 목, 근육, 척추 등이 하나로 연결되어 편안하게 뼈대로 설 수 있게 된다는 게 저자의 치료법의 골자다.

① 머리 : 머릿속에서 조각배가 조용히 흔들립니다

② 척주 : 척주가 사슬처럼 흔들립니다

③ 눈 : 눈알은 늘 물속을 떠다닙니다

④ 입안 : 잇몸에 피가 돌고 혀는 떡처럼 말랑말랑합니다

⑤ 목과 어깨 : 산기슭의 눈이 녹아내리듯 양쪽 어깨가 멀어집니다

⑥ 가슴과 등 : 가슴과 등이 펴지며 호흡이 잔물결처럼 드나듭니다

⑦ 몸통 : 몸 안에 쏟아지는 폭포를 잉어가 힘차게 거슬러 오릅니다

⑧ 골반 : 골반은 와인잔 바닥처럼 늘 조용히 흔들립니다

⑨ 다리 : 모래시계 속 모래가 다리를 타고 똑바로 떨어집니다

⑩ 전신 : 날숨에 몸이 이완되고 들숨에 척주가 세워집니다

 


 

저자는 책에서 자세하게 가능한 한 간단하게 핵심 용어로 설명을 했기 때문에 따로 필요없는 듯하지만 「에필로그」를 통해 한 가지를 강조한다. "긴장에서 해방되면 몸은 저절로 바르게 될 것입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긴장을 푸세요. 조건만 갖춰지면 사람은 자연스레 아름다워집니다."(p.143)

 

저자 : 오하시 신

 

독일 유학 시절 알렉산더 테크닉을 통해 통증이 해소됐던 경험을 계기로, 알렉산더 테크닉 국제교사가 됐다. 이후 물리치료사 자격도 취득하여 재활치료에 알렉산더 테크닉을 접목했다. 일명 ‘특급 물리치료사’로 불리며 다른 병원에서 포기한 환자들을 도왔는데, “저 클리닉에 가면 심각한 병도 낫는다”라는 입소문이 퍼져 몇 년 치 예약이 꽉 찰 정도다. 2020년 독립해 재활훈련을 중심으로 한 ㈜플로에식스를 설립했다. 꾸준히 자세 개선 연구 성과를 학회에 발표하고 있으며, 의료에만 의지하지 않는 건강과 케어 본연의 자세를 제안한다.

 

역자 : 안선주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일통역과를 졸업했다. 2년 동안 일본에 거주했으며, 방송, 영화. 금융 등 여러 곳에서 통번역가로 근무했다. 현재 엔터스코리아에서 일본어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주요 역서로는 『탐닉의 설계자들』, 『가볍게 읽는 금융공학』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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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 - 노래 불러요, 춤출게요
김기우 지음 / 창해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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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인간이 된 한 작곡가가 자기만 알고 있는 선율을 밖으로 끄집어 내려 안간힘을 쓴다. 마치 귀가 안 들리는데도 작곡을 하려는 베토벤을 떠올린다. 예술가의 혼이 담긴 모습이 지금 우리를 은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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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 - 노래 불러요, 춤출게요
김기우 지음 / 창해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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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리듬, Rhythm』은 ‘예술가 소설’이다. 저자인 김기우가 「감사의 말」을 통해 "영상 시대에 '소리'에 관한 소설 작업을 하려는 시도가 눈치 없어 보일 수 있겠다"면서도 눈앞의 수많은 이미지로 우리는 피로하다고 말한다. 음악에 대한 소설임을 짐작케하는 말이기도 하다. "눈을 감으면 소리가 들린다. 이 소설은 소리에 관한 이야기다. 많은 사람이 내면의 소리를 들으려 조용한 시공간을 찾듯, 나도 글을 쓰려 할 때 일찍 일어났다. 새벽, 네 시부터 일곱 시까지 모니터를 들여다봤다. 커서가 깜빡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주변 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고 이 소설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이 소설은 자기 소리를 밖으로 표현 못하는 사람과,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임을 밝힌다. 식물인간이 된 작곡가가 자기만 알고 있는 선율을 밖으로 끄집어 내려 안간힘을 쓰는 데, 그 모습이 지금 우리를 은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작업의 동기였다고 고백한다. 저자가 그렇든 저자가 그려내는 주인공이 그렇든 작곡가는 식물인간 상태임도 밝히고 있다. 저자는 소설의 창작 과정을 독자들에게 이해시키려는 노력을 계속한다. "음악이 부추기는 감정은 거의 슬픔에 관련한 것이다. 즐거운 음악도 서럽게 들리는 것은 음악이 언젠가 끝남을 알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우리는 개인에게 주어진 시간의 한계를 알면서부터 슬픔을 알게 되지 않았을까"라며 독백한다.

 


 

저자와 주인공이 같다면, 소설 속 화자가 저자와 같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우리의 노래와 음악에 관한 성찰을 이 소설을 통해 독자들과 나누기 위해 썼다"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에 따르면 슬퍼할 준비가 된 우리에게 음악은 슬픔의 즐거움도 준다. 음악을 듣는 시간 밖의 시간만큼은 멈춰 있기에 그럴 것이다. 그렇게 소리와 함께하며 일 년을 보내니 소설이 완성됐다. 소설은 음악처럼 순식간에 슬픔에 젖게 하지 않는다. 이성의 도구로 감성을 전하겠다는 의도 자체가 무리다. 그를 무릅쓴 채 책을 내는 부끄러움을 살펴 주기를 독자들에게 바라고 있다.

이 소설은 이처럼 현재, 과거, 미래의 의식에서 헤매는 세 인물을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조망해 독자에게 여러 겹의 독서 체험을 준다. 조실부모하여 힘든 형편 속에서도 가수의 꿈을 이루고자 열망하는 ‘나(윤주)’와, 부단한 노력으로 실력을 키워 한 시대의 국민가수의 위업을 달성한 ‘나(현우)’, 그런 스승을 수십 년 모시며 음악 세계를 키워왔지만, 스승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성재)’가 각기의 사건을 겪어나간다. 그들은 서로 제자와 스승, 그리고 연인의 관계로 묶여 있다. 모두 ‘음악’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니고, 서로 ‘사랑’의 그물망에 얽혀 서사가 진행된다.

소설의 시작은 슬픈 광경과 함께 비장미까지 보여준다. 첫 장(章) 「나 없는 내 몸」은 작곡가 현우의 시점이다. "쓸모없는 몸이 됐다. 몸은 있는데 나는 없게 돼 버렸다. 주치의는 내 증상을 '감금증후군'이라 불렀다. 육체 안에 갇혀 있다는 뜻이다. (중략) 수술 직후 두 달 동안 미라 상태였단다. 그동안 어디 있었나. 몸은 이대로 누워 있었을 텐데, 나는 어디서 무얼 했나. 나라고 할 만한 어떤 것이 내 몸뚱이에 있기나 했나. 지금 떠오르는 풍경 중 가장 선명한 것이 있다. 관광지에서 파는 그림엽서 같은 것이 방 안 여기저기 붙어 있는데, 그중 몇 장이 선연하다. 택배 상자가 열려 있는 채로 엎어져 있는 그림이다. 박스에서 삐어져나온 아기의 손이 유난히 희다. 베란다에 있는 관음죽 화분이 들어앉은 그림도 있다. 관음죽 초록 잎들 사이에 꽃이 붉게 올라왔다. 마치 홍역 앓는 아이의 얼굴처럼 작은 돌기가 붙어 있다."(p.7~8)

 


 

식물인간 상태로 작곡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과 해답이 장편소설 『리듬, Rhythm』의 주요 메시지다. 육체와 의식의 관계, 바깥세상과 그를 인식하는 의식이 예술창작과 감상의 상황과 다르지 않음을 독자에게 리드미컬한 문장으로 이끈다. 음악가가 최후의 작품을 탄생시키는 과정은 생명과 자연, 그리고 인간과 예술에 대한 인식을 넓혀 줄 것이다. 저자가 이 소설을 '예술가 소설'이라 굳이 이름 붙이는 이유이다.

이 소설의 작품 해설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본다」에서 주철환(전 MBC PD, 이화여대 교수)은 "김기우의 소설은 흥미로운 고통이 책장마다 휘감기고 문장마다 스며들다, 마침내 심장마저 저며든다. 리듬은 호흡이고 호흡은 생명이다. 생명보다 소중한 게 없으니 이번에 작가는 살면서 가장 소중한 걸 소설에 담고 싶었나 보다. …소설 속에서 윤리, 의리, 도리 사이를 오가며 갈팡질팡하는 세 사람의 얽히고설킨 애증 관계는 에덴동산의 욕망과 절망마저 환기시킨다. 주인공이 찾으려는 ‘멜로디가 밀려날 정도의 리듬감’이란 결국 인간의 회복이자 자연의 리듬(순리)과 신의 리듬(섭리)을 되살리려는 구도자의 갈망이다"고 말했다. 주철환은 이어 "책을 읽는 내내 들려 오던 선율도 그와 같은 사연이 담긴 노래일까? 작가의 음악적인 영감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 『리듬, Rhythm』의 다층적인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 삶 속에 그 흐름이 있음을 알게 된다. 『리듬, Rhythm』을 통한 삶의 리듬이 사박자 슬로우로, 삼박자 월츠로, 그리고 우리의 푸념과 넋두리, 후회와 원망을 넘어서는 흥 넘치는 세마치장단으로 제2, 제3의 리듬으로 계속 울려 퍼지길 기대한다."고 기대감을 덧붙였다.

 


 

두 번째 장 「인형 울음소리」는 가수인 윤주 시점이다. 자신이 하는 일, 만나는 사람, 그리고 다른 두 주인공 '현우'와 '성재'의 관계가 조명된다. "피디는 내가 신인이라고 이것저것 주문이 많았습니다. 기준도 없어 보였어요. 그는 내게 모차르트의 〈밤의 여왕 아리아〉처럼 부르라고 권했습니다. 대중가요가 왜 그런 창법이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녹음은 내 생애 첫 기회였어요. 비록 유행 지난 유명가수들의 대표곡 옴니버스 음반이지만, 내 존재를 드러낼 절호의 찬스였습니다. (중략) 임신인 줄도 몰랐습니다. 녹음 계약 뒤 몸이 불었다는 느낌만 있었을 뿐, 산달이 가까웠는데도 나는 임신을 몰랐습니다. (중략) 아기는 인형이었습니다. 내가 어릴 때 갖고 놀던 베렝구어 인형이었어요. 눈을 감고 숨을 쉬지 않는 인형. 나는 허겁지겁 아기를 들어 올려 화장지에 쌌어요. 두루마리 휴지 한 통을 둘러쓴 아이는 누에고치 같았습니다. 휴지통을 비우고 아이 고치를 비닐에 넣으려는데, 끈에 걸려 휴지통이 쓰러졌습니다. 끈이 아니라 탯줄이었어요. 아기와 내가 줄로 연결돼 있다는 것을 나는 미처 깨닫지 못했어요. 아이가 갑자기 첫울음을 터뜨렸어요. 갑작스런 울음에 놀라 나는 아기 두루마리를 내팽개쳤습니다. 울음은 더 커졌습니다. 아기 울음소리가 천장을 찢고 건물을 무너뜨리는 듯싶더니 내 온몸을 쑤셔댔어요(p.20~23)

윤주와 현우는 가수와 작곡가이자 연인 관계였음이 여기서 드러난다. 그리고 아기... 두 사람은 사제지간이지만 사랑하는 연인이기도 하다. 다만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에 대한 윤주는 너무나 안일한 생각이었고, 현우는 지나치리만큼 아기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모습을 보인다. 세 번째 장 「토막 난 멜로디」에서는 성재의 시점으로 기술된다. 현우와 성재도 사제지간이다. 성재는 윤주와 학교 친구로서, 나중엔 연인으로 발전한 인물로 삼각 관계에 대해 선뜻 나서지도 못하는 입장이다.

 


 

"나는 서울예고 뒷길을 힘껏 뛰어간다. 빌라 단지 안으로 푹 들어간 쉼터다. 주민을 위한 공원이지만 주민보다 공익근무요원이나 의무경찰이 주로 쉬는 곳이다. 나도 스승 집에서 나오면 여기 벤치에 늘 앉았다 내려간다. 내 상황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그러다가 컴컴해진 내 주변을 털어내고 세검정 불빛 속으로 빠져들기 전의, 그런 자리다.

야경에서 시선을 돌려 뒤를 보니 어느새 어둠이 짙다. 나는 그네에 올라앉아 어둠을 밀어내본다. 발끝에 걸리는 몇 가닥 멜로디, 스승이 티슈에 적은 멜로디가 그네의 흔들림에 맞춰 연주된다. 에릭사티의 〈짐노페디〉를 해금으로 연주하면 이런 소리가 되지 않을까. 혹은 아쟁으로 반주 깔고 비나리를 부르는 민요 가수의 흥얼거림 같기도 하다. 또는 호곡성으로도 들려온다.

나는 발끝에서 밀리고 끌리는 선율을 기록하려고 주머니에서 볼펜을 꺼낸다. 아까 받았던 수표 봉투에 스승의 주제를 좀 더 진행해본다.

호곡성이 짓누르는지, 어둠 속을 헤매기만 할 뿐, 나는 이후를 한마디도 적지 못한다. 소리는 온몸에 달라붙는데 기록하지 못하겠다. 선율이 너무 많이 생겨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다. 토막 난 멜로디들은 내게 달라붙었다가 금세 사라지기를 되풀이한다. 소리는 희미해지고 누에고치처럼 휠체어에 누워 있는 스승의 모습만 아른거린다. 윤주의 얼굴도 떠오른다. 그녀의 코맹맹이 음성이 아련히 들려온다. 호곡성에 뒤섞인 윤주의 목소리가 선명하다."(p.39~40)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소설은 세 인물이 일인칭 ‘나’ 시점으로 교차하며 자신의 서사를 끌어간다. ① 윤주 : 고아와 같은 어린 시절을 보내고 일류가수가 되고자 안간힘을 쏟는 ‘나’. ② 현우 : 천부의 재능과 부단한 노력으로 대중음악계에서 살아 있는 전설이 된 ‘나’. ③ 성재 : 현우를 스승으로 모시고 음악을 배워 실력이 있지만 무명의 세월을 보내는 ‘나’다. 셋의 관계는 스승과 제자, 동료, 연인 등으로 얽힌다.

현우는 윤주를 만나면서 자신의 음악생활에서 최고라 여겨지는 곡을 만들었다. 그러나 곡은 두 마디 선율만 채보된 채였고, 그는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는 ‘감금증후군’ 상태가 됐다. 현우는 의식을 간신히 되찾았지만 눈만 깜박일 수 있다. 현우는 자신의 머릿속에만 있는 곡을 자신의 수제자인 성재가 완성해 주기를 희망한다. 윤주와 성재가 서로 교류하고 있음을 알았고 그녀가 자신의 작곡을 그에게 들려주었으리라 추측했다. 성재는 스승으로부터 곡의 완성을 의뢰받고 두 마디 이후의 선율을 완성시키려 노력한다. 그는 오랜 시간 스승의 곁에서 궂은 일을 마다않고 도우며 음악 공부를 해왔다. 스승의 도움을 조금이라도 받아 세상에 나가고 싶었지만 희망일 뿐, 무명으로 고난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윤주는 현우와 성재 두 사람 모두를 사랑하게 되었다. 현우로부터는 아버지와 같은 정을, 성재에게는 난생처음 이성의 끌림이었다. 그들로부터 음악의 성장과 일류가수의 꿈을 이루려는 의도도 없지 않았다. 일류가수의 꿈과 노래에의 열정에 비하면 임신거부증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 방황하는 윤주, 예술을 향해 온 힘을? 다하는 그녀에게 사랑은 종교였다. 현우와 성재도 그런 마음이었다. 최고의 음과 향기를 찾아 창작 혼을 불태우는 그들에게 성(性, sex)은 성(聖, st.)이었다. 현우의 곡은 눈 깜박임만으로 완성되고 윤주와 성재의 꿈은 이뤄질까.

 


 

윤주가 무대에서 뛰어내려 물웅덩이 쪽으로 달려간다. 그녀는 인형을 집어들고 자기 웃옷을 벗어 인형에 들씌운 채 물에 엎어진다. 물이 깊다. 어느새 성재가 달려와 윤주를 쫓아 물웅덩이에 풍덩 빠진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현우도 벌떡 일어나 차에서 내려 겅중겅중 걸어간다. 현우는 물웅덩이 앞에 서더니 풀쩍, 다이빙한다. 세 사람 모두 윗옷을 벗어 인형에 덮어씌운다. (중략)

우리는 알몸으로 인형 주위를 맴돌며 헤엄친다. 우리에게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수압만 묵직하게 느껴올 뿐 주위는 고요하다. 우리는 숨이 막혀 가슴이 터질 듯, 아프다. 멀리서 작은 진동이 시작되면서 하나의 음정으로 피어오르려 한다. 물속의 숨 막힘 안에서 생겨난 하나의 음은 우리의 주위를 감싸고돈다. 어느새 숨 막힘은 한 호흡에 사라지고 조여들던 가슴도 풀어진다. 우리는 서로 얼싸안고 하나의 음정을 따라 물속을 흐른다. 여유롭고 평화롭다.(p.241~242)

 

저자 : 김기우

 

서울에서 태어났어도 마음은 본적지 충북 음성에 마음이 머물러 있는 작가는, 한국어로 말하고 글을 쓰고 있어 행복한 사람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누님과 형님들이 보던 소설책을 읽어가면서 한글 감성과 상상력을 키워나갔다. 동북고등학교 때 관악부 활동을 하던 경험으로 음악과 노래가 늘 곁에 있었다.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소설가로 등단했다. 서사 이론 공부에도 관심이 깊어 수원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거쳐 동국대학교에서 석사를, 한림대학교에서 <최인훈 소설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소설을 쓴 지 서른 해가 넘었다. 이번이 소설로는 다섯 번째 작품집이어서 웬만큼 우리 말 좀 안다고 자평하지만,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우리 문화가 세계에 알려지고 여러 나라에서 한글에 사랑을 보내는 이때, 한국의 작가로 우리 문화를 더 깊이 탐구하고 우리 말을 갈고 닦아야겠다는 마음이 커지는 요즘이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장편 《바다를 노래하고 싶을 때》, 중단편 《봄으로 가는 취주》, 《달의 무늬》, 《가족에겐 가족이 없다》 등의 창작소설집이 있다. 창작이론서 《아이덴티티 이론의 구조》, 장편동화집 《봉황에 숨겨진 발해의 비밀》, 글짓기 지도서 《글쓰기 왕》 등도 펴냈다. 현재 한림대학교에 출강 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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