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듬 - 노래 불러요, 춤출게요
김기우 지음 / 창해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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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리듬, Rhythm』은 ‘예술가 소설’이다. 저자인 김기우가 「감사의 말」을 통해 "영상 시대에 '소리'에 관한 소설 작업을 하려는 시도가 눈치 없어 보일 수 있겠다"면서도 눈앞의 수많은 이미지로 우리는 피로하다고 말한다. 음악에 대한 소설임을 짐작케하는 말이기도 하다. "눈을 감으면 소리가 들린다. 이 소설은 소리에 관한 이야기다. 많은 사람이 내면의 소리를 들으려 조용한 시공간을 찾듯, 나도 글을 쓰려 할 때 일찍 일어났다. 새벽, 네 시부터 일곱 시까지 모니터를 들여다봤다. 커서가 깜빡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주변 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고 이 소설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이 소설은 자기 소리를 밖으로 표현 못하는 사람과,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임을 밝힌다. 식물인간이 된 작곡가가 자기만 알고 있는 선율을 밖으로 끄집어 내려 안간힘을 쓰는 데, 그 모습이 지금 우리를 은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작업의 동기였다고 고백한다. 저자가 그렇든 저자가 그려내는 주인공이 그렇든 작곡가는 식물인간 상태임도 밝히고 있다. 저자는 소설의 창작 과정을 독자들에게 이해시키려는 노력을 계속한다. "음악이 부추기는 감정은 거의 슬픔에 관련한 것이다. 즐거운 음악도 서럽게 들리는 것은 음악이 언젠가 끝남을 알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우리는 개인에게 주어진 시간의 한계를 알면서부터 슬픔을 알게 되지 않았을까"라며 독백한다.

 


 

저자와 주인공이 같다면, 소설 속 화자가 저자와 같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우리의 노래와 음악에 관한 성찰을 이 소설을 통해 독자들과 나누기 위해 썼다"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에 따르면 슬퍼할 준비가 된 우리에게 음악은 슬픔의 즐거움도 준다. 음악을 듣는 시간 밖의 시간만큼은 멈춰 있기에 그럴 것이다. 그렇게 소리와 함께하며 일 년을 보내니 소설이 완성됐다. 소설은 음악처럼 순식간에 슬픔에 젖게 하지 않는다. 이성의 도구로 감성을 전하겠다는 의도 자체가 무리다. 그를 무릅쓴 채 책을 내는 부끄러움을 살펴 주기를 독자들에게 바라고 있다.

이 소설은 이처럼 현재, 과거, 미래의 의식에서 헤매는 세 인물을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조망해 독자에게 여러 겹의 독서 체험을 준다. 조실부모하여 힘든 형편 속에서도 가수의 꿈을 이루고자 열망하는 ‘나(윤주)’와, 부단한 노력으로 실력을 키워 한 시대의 국민가수의 위업을 달성한 ‘나(현우)’, 그런 스승을 수십 년 모시며 음악 세계를 키워왔지만, 스승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성재)’가 각기의 사건을 겪어나간다. 그들은 서로 제자와 스승, 그리고 연인의 관계로 묶여 있다. 모두 ‘음악’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니고, 서로 ‘사랑’의 그물망에 얽혀 서사가 진행된다.

소설의 시작은 슬픈 광경과 함께 비장미까지 보여준다. 첫 장(章) 「나 없는 내 몸」은 작곡가 현우의 시점이다. "쓸모없는 몸이 됐다. 몸은 있는데 나는 없게 돼 버렸다. 주치의는 내 증상을 '감금증후군'이라 불렀다. 육체 안에 갇혀 있다는 뜻이다. (중략) 수술 직후 두 달 동안 미라 상태였단다. 그동안 어디 있었나. 몸은 이대로 누워 있었을 텐데, 나는 어디서 무얼 했나. 나라고 할 만한 어떤 것이 내 몸뚱이에 있기나 했나. 지금 떠오르는 풍경 중 가장 선명한 것이 있다. 관광지에서 파는 그림엽서 같은 것이 방 안 여기저기 붙어 있는데, 그중 몇 장이 선연하다. 택배 상자가 열려 있는 채로 엎어져 있는 그림이다. 박스에서 삐어져나온 아기의 손이 유난히 희다. 베란다에 있는 관음죽 화분이 들어앉은 그림도 있다. 관음죽 초록 잎들 사이에 꽃이 붉게 올라왔다. 마치 홍역 앓는 아이의 얼굴처럼 작은 돌기가 붙어 있다."(p.7~8)

 


 

식물인간 상태로 작곡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과 해답이 장편소설 『리듬, Rhythm』의 주요 메시지다. 육체와 의식의 관계, 바깥세상과 그를 인식하는 의식이 예술창작과 감상의 상황과 다르지 않음을 독자에게 리드미컬한 문장으로 이끈다. 음악가가 최후의 작품을 탄생시키는 과정은 생명과 자연, 그리고 인간과 예술에 대한 인식을 넓혀 줄 것이다. 저자가 이 소설을 '예술가 소설'이라 굳이 이름 붙이는 이유이다.

이 소설의 작품 해설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본다」에서 주철환(전 MBC PD, 이화여대 교수)은 "김기우의 소설은 흥미로운 고통이 책장마다 휘감기고 문장마다 스며들다, 마침내 심장마저 저며든다. 리듬은 호흡이고 호흡은 생명이다. 생명보다 소중한 게 없으니 이번에 작가는 살면서 가장 소중한 걸 소설에 담고 싶었나 보다. …소설 속에서 윤리, 의리, 도리 사이를 오가며 갈팡질팡하는 세 사람의 얽히고설킨 애증 관계는 에덴동산의 욕망과 절망마저 환기시킨다. 주인공이 찾으려는 ‘멜로디가 밀려날 정도의 리듬감’이란 결국 인간의 회복이자 자연의 리듬(순리)과 신의 리듬(섭리)을 되살리려는 구도자의 갈망이다"고 말했다. 주철환은 이어 "책을 읽는 내내 들려 오던 선율도 그와 같은 사연이 담긴 노래일까? 작가의 음악적인 영감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 『리듬, Rhythm』의 다층적인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 삶 속에 그 흐름이 있음을 알게 된다. 『리듬, Rhythm』을 통한 삶의 리듬이 사박자 슬로우로, 삼박자 월츠로, 그리고 우리의 푸념과 넋두리, 후회와 원망을 넘어서는 흥 넘치는 세마치장단으로 제2, 제3의 리듬으로 계속 울려 퍼지길 기대한다."고 기대감을 덧붙였다.

 


 

두 번째 장 「인형 울음소리」는 가수인 윤주 시점이다. 자신이 하는 일, 만나는 사람, 그리고 다른 두 주인공 '현우'와 '성재'의 관계가 조명된다. "피디는 내가 신인이라고 이것저것 주문이 많았습니다. 기준도 없어 보였어요. 그는 내게 모차르트의 〈밤의 여왕 아리아〉처럼 부르라고 권했습니다. 대중가요가 왜 그런 창법이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녹음은 내 생애 첫 기회였어요. 비록 유행 지난 유명가수들의 대표곡 옴니버스 음반이지만, 내 존재를 드러낼 절호의 찬스였습니다. (중략) 임신인 줄도 몰랐습니다. 녹음 계약 뒤 몸이 불었다는 느낌만 있었을 뿐, 산달이 가까웠는데도 나는 임신을 몰랐습니다. (중략) 아기는 인형이었습니다. 내가 어릴 때 갖고 놀던 베렝구어 인형이었어요. 눈을 감고 숨을 쉬지 않는 인형. 나는 허겁지겁 아기를 들어 올려 화장지에 쌌어요. 두루마리 휴지 한 통을 둘러쓴 아이는 누에고치 같았습니다. 휴지통을 비우고 아이 고치를 비닐에 넣으려는데, 끈에 걸려 휴지통이 쓰러졌습니다. 끈이 아니라 탯줄이었어요. 아기와 내가 줄로 연결돼 있다는 것을 나는 미처 깨닫지 못했어요. 아이가 갑자기 첫울음을 터뜨렸어요. 갑작스런 울음에 놀라 나는 아기 두루마리를 내팽개쳤습니다. 울음은 더 커졌습니다. 아기 울음소리가 천장을 찢고 건물을 무너뜨리는 듯싶더니 내 온몸을 쑤셔댔어요(p.20~23)

윤주와 현우는 가수와 작곡가이자 연인 관계였음이 여기서 드러난다. 그리고 아기... 두 사람은 사제지간이지만 사랑하는 연인이기도 하다. 다만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에 대한 윤주는 너무나 안일한 생각이었고, 현우는 지나치리만큼 아기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모습을 보인다. 세 번째 장 「토막 난 멜로디」에서는 성재의 시점으로 기술된다. 현우와 성재도 사제지간이다. 성재는 윤주와 학교 친구로서, 나중엔 연인으로 발전한 인물로 삼각 관계에 대해 선뜻 나서지도 못하는 입장이다.

 


 

"나는 서울예고 뒷길을 힘껏 뛰어간다. 빌라 단지 안으로 푹 들어간 쉼터다. 주민을 위한 공원이지만 주민보다 공익근무요원이나 의무경찰이 주로 쉬는 곳이다. 나도 스승 집에서 나오면 여기 벤치에 늘 앉았다 내려간다. 내 상황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그러다가 컴컴해진 내 주변을 털어내고 세검정 불빛 속으로 빠져들기 전의, 그런 자리다.

야경에서 시선을 돌려 뒤를 보니 어느새 어둠이 짙다. 나는 그네에 올라앉아 어둠을 밀어내본다. 발끝에 걸리는 몇 가닥 멜로디, 스승이 티슈에 적은 멜로디가 그네의 흔들림에 맞춰 연주된다. 에릭사티의 〈짐노페디〉를 해금으로 연주하면 이런 소리가 되지 않을까. 혹은 아쟁으로 반주 깔고 비나리를 부르는 민요 가수의 흥얼거림 같기도 하다. 또는 호곡성으로도 들려온다.

나는 발끝에서 밀리고 끌리는 선율을 기록하려고 주머니에서 볼펜을 꺼낸다. 아까 받았던 수표 봉투에 스승의 주제를 좀 더 진행해본다.

호곡성이 짓누르는지, 어둠 속을 헤매기만 할 뿐, 나는 이후를 한마디도 적지 못한다. 소리는 온몸에 달라붙는데 기록하지 못하겠다. 선율이 너무 많이 생겨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다. 토막 난 멜로디들은 내게 달라붙었다가 금세 사라지기를 되풀이한다. 소리는 희미해지고 누에고치처럼 휠체어에 누워 있는 스승의 모습만 아른거린다. 윤주의 얼굴도 떠오른다. 그녀의 코맹맹이 음성이 아련히 들려온다. 호곡성에 뒤섞인 윤주의 목소리가 선명하다."(p.39~40)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소설은 세 인물이 일인칭 ‘나’ 시점으로 교차하며 자신의 서사를 끌어간다. ① 윤주 : 고아와 같은 어린 시절을 보내고 일류가수가 되고자 안간힘을 쏟는 ‘나’. ② 현우 : 천부의 재능과 부단한 노력으로 대중음악계에서 살아 있는 전설이 된 ‘나’. ③ 성재 : 현우를 스승으로 모시고 음악을 배워 실력이 있지만 무명의 세월을 보내는 ‘나’다. 셋의 관계는 스승과 제자, 동료, 연인 등으로 얽힌다.

현우는 윤주를 만나면서 자신의 음악생활에서 최고라 여겨지는 곡을 만들었다. 그러나 곡은 두 마디 선율만 채보된 채였고, 그는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는 ‘감금증후군’ 상태가 됐다. 현우는 의식을 간신히 되찾았지만 눈만 깜박일 수 있다. 현우는 자신의 머릿속에만 있는 곡을 자신의 수제자인 성재가 완성해 주기를 희망한다. 윤주와 성재가 서로 교류하고 있음을 알았고 그녀가 자신의 작곡을 그에게 들려주었으리라 추측했다. 성재는 스승으로부터 곡의 완성을 의뢰받고 두 마디 이후의 선율을 완성시키려 노력한다. 그는 오랜 시간 스승의 곁에서 궂은 일을 마다않고 도우며 음악 공부를 해왔다. 스승의 도움을 조금이라도 받아 세상에 나가고 싶었지만 희망일 뿐, 무명으로 고난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윤주는 현우와 성재 두 사람 모두를 사랑하게 되었다. 현우로부터는 아버지와 같은 정을, 성재에게는 난생처음 이성의 끌림이었다. 그들로부터 음악의 성장과 일류가수의 꿈을 이루려는 의도도 없지 않았다. 일류가수의 꿈과 노래에의 열정에 비하면 임신거부증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 방황하는 윤주, 예술을 향해 온 힘을? 다하는 그녀에게 사랑은 종교였다. 현우와 성재도 그런 마음이었다. 최고의 음과 향기를 찾아 창작 혼을 불태우는 그들에게 성(性, sex)은 성(聖, st.)이었다. 현우의 곡은 눈 깜박임만으로 완성되고 윤주와 성재의 꿈은 이뤄질까.

 


 

윤주가 무대에서 뛰어내려 물웅덩이 쪽으로 달려간다. 그녀는 인형을 집어들고 자기 웃옷을 벗어 인형에 들씌운 채 물에 엎어진다. 물이 깊다. 어느새 성재가 달려와 윤주를 쫓아 물웅덩이에 풍덩 빠진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현우도 벌떡 일어나 차에서 내려 겅중겅중 걸어간다. 현우는 물웅덩이 앞에 서더니 풀쩍, 다이빙한다. 세 사람 모두 윗옷을 벗어 인형에 덮어씌운다. (중략)

우리는 알몸으로 인형 주위를 맴돌며 헤엄친다. 우리에게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수압만 묵직하게 느껴올 뿐 주위는 고요하다. 우리는 숨이 막혀 가슴이 터질 듯, 아프다. 멀리서 작은 진동이 시작되면서 하나의 음정으로 피어오르려 한다. 물속의 숨 막힘 안에서 생겨난 하나의 음은 우리의 주위를 감싸고돈다. 어느새 숨 막힘은 한 호흡에 사라지고 조여들던 가슴도 풀어진다. 우리는 서로 얼싸안고 하나의 음정을 따라 물속을 흐른다. 여유롭고 평화롭다.(p.241~242)

 

저자 : 김기우

 

서울에서 태어났어도 마음은 본적지 충북 음성에 마음이 머물러 있는 작가는, 한국어로 말하고 글을 쓰고 있어 행복한 사람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누님과 형님들이 보던 소설책을 읽어가면서 한글 감성과 상상력을 키워나갔다. 동북고등학교 때 관악부 활동을 하던 경험으로 음악과 노래가 늘 곁에 있었다.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소설가로 등단했다. 서사 이론 공부에도 관심이 깊어 수원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거쳐 동국대학교에서 석사를, 한림대학교에서 <최인훈 소설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소설을 쓴 지 서른 해가 넘었다. 이번이 소설로는 다섯 번째 작품집이어서 웬만큼 우리 말 좀 안다고 자평하지만,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우리 문화가 세계에 알려지고 여러 나라에서 한글에 사랑을 보내는 이때, 한국의 작가로 우리 문화를 더 깊이 탐구하고 우리 말을 갈고 닦아야겠다는 마음이 커지는 요즘이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장편 《바다를 노래하고 싶을 때》, 중단편 《봄으로 가는 취주》, 《달의 무늬》, 《가족에겐 가족이 없다》 등의 창작소설집이 있다. 창작이론서 《아이덴티티 이론의 구조》, 장편동화집 《봉황에 숨겨진 발해의 비밀》, 글짓기 지도서 《글쓰기 왕》 등도 펴냈다. 현재 한림대학교에 출강 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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