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한복판의 유력 용의자
고호 지음 / 델피노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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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강제징용을 둘러싼 피해자 배상 문제는 해방 88년이 지나는 현 시점에서 또 한번의 방향 전환이 예상되고 있다. 이와 관련한 가장 최근의 신문 기사가 보도됐다.

재일(在日)경제인들을 중심으로 한 재일교포들이 정부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해법을 환영하며 피해자들의 제3자 변제를 맡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 기여하겠다고 10일(2023년 3월) 밝혔다. ‘자이니치(재일 한국인)’ 차원에서 일본의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 대신 배상금을 변제하는 재단의 기금조성에 참여하겠다고 밝히는 것은 처음이다. 이들은 17일 한일정상회담 후 일본 도쿄(東京) 모처에서 기여 의사를 공식 발표할 계획이다. 재일교포 2세인 김덕길 카네다(金田)홀딩스 회장(77)은 10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신오쿠보(도쿄 내 코리아타운)에서 사업하는 재일동포들이 ‘한일관계가 개선되는 것에 대해 우리도 기부하고 움직여야 하지 않겠냐’고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현재 여건이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회장이 집계한 바에 따르면 11~12명이 참여 의사를 밝혔고 17일 공식 발표 후 그 규모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김 회장은 “2018년 대법원에서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난 이후 한일관계가 악화돼서 많은 기업인들과 교민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면서 “해법 발표로 양국 관계가 좋아지면 혜택도 입게 될 텐데 배상 문제에 기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다. 이어 “한국 내 일부 여론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당초 27일쯤 발표하려고 했는데 한일 관계 개선에 보탬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 날짜를 앞당겼다”고 전했다. 앞서 민단은 7일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재단이 대신 판결금을 지급한다는 해법을 발표한 데 대해 담화문을 내고 환영의 뜻을 밝힌 바 있다.

민단은 “양국 최대의 현안이 된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한국 주도로 해결하겠다는 결단으로 악화한 한일 관계 개선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일본 정부도 이에 호응해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 구축에 성의 있는 대응에 나서달라고 주문했다.(동아일보 2023-03-10)

 


 

이에 앞서 지난 3월 6일 (한국) 정부가‘제3자 병존적 채무 인수’(3자 변제) 방식의 강제징용 피해배상 해법을 발표한 가운데 시민들은 “전범 국가와 기업에 면죄부를 주려고 한다”며 “피해자를 무시하는 굴욕적인 협상”이라고 규탄했다고 한 인터넷 신문이 보도했다. 정의기억연대, 민족문제연구소, 민주노총 등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한일역사정의공동행동(공동행동)은 이날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강제징용 피해배상에 대한 ‘제3자 변제’ 방안 발표를 규탄하는 촛불집회를 열었다. 참석자들은 ‘윤석열 굴욕외교 OUT’, ‘강제동원 정부해법 철회’, ‘윤석열 퇴진’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과 촛불을 들고 “3월 6일은 ‘제2의 국치일’”이라고 비판했다.

공동행동 측은 “윤석열 정부가 일본의 사죄배상이 빠진 굴욕적인 강제동원 해법안을 기어이 공식 발표했다”며 “전범 기업은 한 푼도 안 내는 일본 정부의 완승이며 최악의 외교참사”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해법안에 대해 이미 수차례 강제동원 피해자와 대리인단, 시민사회단체, 야당 국회의원들까지 반대 입장을 밝혀왔다. 그럼에도 윤석열 대통령은 해법안을 강행 발표해 ‘1엔도 낼 수 없다’는 일본에 면죄부를 부여하려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피고기업의 배상 대신 한일 경제단체가 기금을 조성해 미래세대에 장학금을 지급하겠다는 것은 그야말로 역사를 우롱하고 기만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윤 대통령과 박진 외교부 장관,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 서민정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을 ‘강제동원 계묘5적’으로 규정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과 관련 우리 대법원은 2018년 일제 강점기 당시 강제 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 1인당 1억 원씩을 배상하라고 최종 확정 판결한 바 있다. 일본은 그동안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 피해에 대해 개인에게 배상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해 왔으나 대법원은 2018년 10월 30일 이 협정은 정치적인 해석이며 개인의 청구권에 적용될 수 없다고 최종 판단한 것이다.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는 위안부 문제와 함께 일제 강점기 우리 국민의 인권을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법이 아닌 정부의 권력으로 자의로 이용한 데 따른 문제이다. 이 문제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일본제국이 전쟁수행을 위하여 국민생활의 말단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지배체제를 확립하였다. 노동자에 대하여는 노무수급조정령(勞務需給調整令)과 중요 사업장 노무관리령에 의하여 국가의 직접지배시책을 시행하여 징용제도로써 노동력 부족을 보충하면서 발생된 문제인 것이다. 이 징용령에 의하여 강제노동에 끌려간 사람의 수는 1941년에 26만(한국인 5만), 1942년에 31만(한국인 11만), 1943년에는 70만(한국인 12만)에 이르렀고, 1944년에는 종군위안부를 포함하여 약 200만 명의 학도동원까지 실시한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이렇게 징용으로 끌려나간 사람들 중에 희생된 자의 수가 적지 않았으며, 현지에 눌러앉은 채 귀국을 하지 못하고, 사할린 동포의 경우처럼 아직도 고생을 하며 귀국을 희망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독자가 강제 징용 문제를 갑자기 들먹이는 이유는 이 책 『도쿄 한복판의 유력 용의자』의 주인공인 준기가 태평양전쟁 강제동원희생자인 할아버지의 유골을 찾아 떠나는 손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특히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첫 삼일절 기념식에서 대통령의 발언이 일제 강제징용 문제와 맞물려 있어 대일 외교는 물론 민족적 정서에도 벗어나는 정부의 외교 문제가 연일 지상이나 방송에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소설 속 준기는 할아버지의 흔적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차츰 드러나는 불행한 과거사에 접근하면서 다른 사건에 접하게 되고, 막상 찾아간 곳에서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그때 받은 뜻밖의 문자. '할아버지의 유골을 찾고 싶다면 먼저 1986년에 실종된 유리코를 찾아내야만 한다'. 할아버지의 유골을 찾는 것과 실종된 유리코를 찾는 것은 무슨 관련이 있을까? 상상할 수조차 없던 ‘그곳’에서 메시지를 보낸 상대를 마침내 마주한 순간 깨닫는다.

 

 

전혀 상관없어 보이던 두 사건의 접점을 깨닫는 준기가 어떻게 이 소설을 끌고 가는지에 따라 저자가 최근 일본과의 강제 징용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정부의 외교 방향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때맞춰 발표된 소설이라 더욱 관심이 간다. 이 작품의 저자는 탄탄한 구성력으로 이미 인정받은 고호 작가로서, 이 작품에서도 예상을 뒤엎는 반전에 독자들은 또 한 번 놀라고 감탄하며 읽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일본을 꾸짖는 것보다 우리에게 진정한 반성과 용서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는 작품이다. 배경은 2025년 일본이다. 아이코 공주가 납치됐다. 자신의 할아버지가 태평양전쟁의 강제동원희생자라고 알고 있던 손자인 준기는 우연한 기회에 기밀 해제된 외무부의 문건을 접한다. 그 안엔 일본 홋카이도에 끌려갔다는 얼굴도 모르는 할아버지의 비밀이 담겨 있었고, 준기는 할아버지의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 계획을 세운다. 그것은 바로 일본 왕실의 유일한 적통인 아이코 공주를 납치하는 것. 전 세계 언론을 집중시켜 문제를 해결하려던 당초의 계획은 갑작스레 날아온 익명의 메시지 한 통으로 제동이 걸리고 만다.

이 작품은 한국, 일본, 북한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제국주의와 냉전 시기에 동북아에 만연했던 첩보와 납치, 실종을 실감 나게 다룬 미스터리 추리소설이다. 굴곡진 역사의 격랑을 겪으며 가족을 잃어야 했던 이들의 아픔을 국적과 이념을 초월하여 그려냈다. 늘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포착해 탄탄한 스토리로 풀어내는 고호의 작품은 우리의 역사, 특히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근현대사의 중요 사건의 장면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점이 독특하다. 지금껏 발표한 『평양에서 걸려온 전화』, 『악플러 수용소』, 『노비 종친회』 등의 작품도 우리 사회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에서 시작해 그간 묻혀있던 사건들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고호 작가가 이번에는 태평양전쟁 강제동원희생자 문제와 납북 일본인 문제를 화려한 미스터리로 포장하여 가지고 돌아온 것이다. 독자들의 큰 관심을 모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독자가 이 책을 읽으며 놀랐던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지만 마치 올해 삼일절 기념행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기념사가 나라 안팎의 온갖 행태와 소문이 퍼질 것이란 사실을 미리 알기라도 한 듯 작품 속에 은근히 비슷한 사태를 예견하고 있다.

 

"세월이 상처를 덮어줄 순 있어도 죄까지 덮지는 않는단다."

부왕이 나루히토가 어린 시절 학교에서 이지메를 당하고 울며 돌아온 자신에게 해준 말이 귀에 맴돌았다.

굳이 가해자들을 응징하려 애쓰지 마라, 시간이 피해자의 상처를 덮을지언정 가해자들의 죄는 덮지 않노라고. 언제고 대가는 치르게 된다고. 아이코는 뒤로 고개를 푹 기댔다. 고통스러운 듯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아이코 그거 알아?"

"응?"

"우리 할아버지와 함께 일본으로 끌려갔던 몇몇 분은 돌아오셨어. 살아오신 것만으로도 기적이었지. 하지만 사람 마음이 그렇잖아. 그곳에서 고생만 했지 제대로 된 품삯을 받지 못했으니 억울할 수밖에."(p.118)

 


 

이 책은 모두 11장으로 구성되었다. 평범한 제목이긴 하지만 장의 구분을 나누는 것은 시간과 공간의 초월을 위한 것이고, 또 사건의 반전의 주체가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장 눈에 띈 것은 각 장의 제목 아래 장의 성격을 미리 암시하는 듯한 내용의 인용문을 적어 놓은 점이다. 이름을 말하면 누구나 알 만한 인물의 유명한 말이나 문장들이다. 1장 「1991년」, 2장 「받은 메일함」, 3장 「재팬 넘버 투」, 4장 「문수용」, 5장 「유리코」, 6장 「문수용」, 7장 「유리코」, 8장 「문수용」, 9장 「기다리는 마음」, 10장 「신이 되기를 거부하다」, 11장 「다시, 1991년」으로 이어진다.

1장의 제목 아래에는 "그 사람이 바로 나였다."는 말이 있다. 톨스토이의 『사랑이 있는 곳에 신도 있다』에서 나오는 문장이란다. 이 장의 내용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유심히 읽어가면 더 재미가 있을 듯하다. 2장에는 일본의 유명한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인격 실격』에 나오는 문장이다. "편파적일 것이 뻔하므로 인간에게 호소해봐야 소용없다고 생각했습니다." 3장에는 제목 아래를 읽기 전에 방송 보도문이 먼저 적혀 있다. "방금 들어온 속보입니다. 도쿄 경시청은 3월 21일 오늘 오후, 가쿠슈인에 재학 중인 아이코 공주가 실종되었음을 밝혔습니다. 다시 알려드립니다. 오늘 오후···" 그리고 제목 「재팬 넘버 투」 아래에 같은 형식으로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1888년 동생 테오에게 쓴 편중 중에서 인용한 "지금 이곳은 바람이 불고 비가 온다. 혼자가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구나."가 쓰여 있다. 4장엔 에밀 졸라의 『패주』의 문장 "전쟁이란 죽음 없이 존재할 수 없는 생명이야."라고 적었다. 5장엔 "서글픈 건 나는 진리를 알고 있는데, 사람들은 모른다는 것이다. 아, 혼자만 진리를 알고 있다는 건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우스운 자의 꿈』의 문장을 인용했다. 6장엔 마크 모펫의 『인간 무리』에서 "한 사람에게 국가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정신장애 트라우마, 비극을 불러온다."는 문구를 게재했다.

 


 

7장에는 제임스 볼드윈(미국의 저명한 흑인 소설가)가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는다. 좀 더 정확히 말해, 그들이 내 말을 믿지 않는 건 내 말이 사실이기 때문이다."라고 한 말을 인용해 적었다. 8장엔 한나 아렌트의 『정치에서의 거짓말』 중의 "진실이 정치적 덕목으로 간주된 적이 있었으며, 거짓말은 정치적 거래에서 정당화가 가능한 도구로 늘 거래되어 왔다."는 문장을 인용 기록했다. 9장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서 인용한 말이다. "별 하나하나가 누군가에게는 태양일 수 있다." 10장엔 알렉산드로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 중의 "우리는 일부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억압할 권리를 가진다는 그 「관념자체」를 공개적으로 탄핵할 의무가 있다."는 말을 썼다. 마지막 11장엔 『신당서(新唐書) 원행충전(元行沖傳)』 중의 "바둑을 두는 사람은 길을 잃기 쉬우나 도리어 곁에서 보는 사람은 형세를 읽을 줄 안다.(當局者迷 傍觀必審, 당국자미 방관필심)"는 말을 적었다.

 

늘 그렇듯이 인간은 그래서 재밌다. 가르침을 받으며 자랐음에도 가르침대로 살지 않는다.(p.258)

 

저자 : 고호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데는 자음과 모음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 평소 지론이다. 그런 고민이 만들어낸 세계로는 『평양에서 걸려온 전화』와 『악플러 수용소』, 『과거여행사 히라이스』, 『기다렸던 먹잇감이 제 발로 왔구나』, 『노비 종친회』 등이 있으며, 사회적 이슈를 문학적으로 녹이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지금도 꾸준히 또 다른 세계를 만들기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단법인 이효석문학선양회와 황토현 문학상, 의정부전국문학상, DMZ문학상 등에서 수상한 바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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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 - 유럽에서 아시아 바이킹에서 소말리아 해적까지
피터 레어 지음, 홍우정 옮김 / 레드리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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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Pirate, 海賊)이란 해상에서 배를 습격하여 재화를 강탈하는 도둑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갖고 있다. 오늘날의 국제법에서는 공해상에서 국가 또는 정치단체의 명령 내지 위임에 의하지 않고, 사적 목적을 위해 선박에 대한 약탈과 폭행을 자행하여 해상 항행을 위험하게 하는 자를 해적이라 하고, 그 약탈과 폭행을 해적행위로 규정짓고 있다고 한다. 해적은 '인류의 공적'으로 간주되어 어느 나라의 군함도 이를 나포하고 자국의 국내법에 의거하여 처벌할 수 있다. 근대 국제법이 확립되어 해적에 관한 이와 같은 규정이 일반화한 것은 최근의 일이고, 국제법상의 해적에 관해서도 이 정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점이 있다고 지적되고 있다. 또한, 국내법상의 해적은 국제법상의 그것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아 나라에 따라 해석이 다르다고 한다.

해적의 발생은 인류의 해상교통의 역사만큼이나 오래 된다는 게 오늘날의 공통된 의견이다. 해상에서의 약탈행위로 해서 예로부터 해적의 이름으로 불린 자들 가운데는 단순한 상습적 해적 외에 시대나 해역에 따라 다종다양한 해적집단이 있어, 오늘날의 해적개념만으로는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렵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로부터 해적의 큰 세력이 발생한 곳은 해상무역의 주요로였다. 해적은 노획·출격·퇴피에 편리하고, 약탈물을 처분하기 쉬운 좁은 해협지대나 반도·항만이 많은 도서군 등을 거점으로 하여, 해군력이 발달하지 못하였거나 약체인 것을 틈타 상선을 습격하고 해상질서를 어지럽혀 역사의 진행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중세 말에서 근세 초기에는 이 해적의 기동력과 해상 무장이 국가권력에 의해 이용된 예도 있어 어떤 의미에서는 해군의 선구적 형태였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해적의 사전 상의 뜻 말고는 역사 상 해적이라고는 일본의 왜구만을 배워 알고 있다. 해적은 바닷길을 잘 알겠지만 1500년 이전까지는 먼 바다로 통하는 바닷길은 어느 누구도 몰랐고 멀리 나가면 떨어져 죽는다고 생각했으니까. 동북아시아에서의 해적은 대부분 중국의 남쪽 지금의 동남아시아 쪽에서 활동한 왜구 등 동남아 일부 지역이 활동 무대였던 듯하다. 그러나 해적은 아시아보다는 오히려 유럽 등 서구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던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이 책 『해적』의 저자 피터 레어는 서양의 해적에 대해 주로 기술하고 있지만 중국의 남쪽 해상에서 노략질을 일삼는 해적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책의 서문 「해적의 느닷없는 귀환」에서 이른바 '해적의 황금기'라고 불리던 17~18세기에도 공해상에서 이보다 더 잔인한고 냉혹한 살인 행위가 일어난 사례가 없는' 사건을 들춰낸다.

"11월의 어느 흐린 날이었다. 상하이에서 출발한 배 한 척이 말레이시아 항구도시 클랑을 향해 남중국해의 파도를 가르며 나아가고 있었다. 선원 23명은 근처에 떠다니는 작은 어선 수십 척에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제 할 일을 하느라 바빴다. 그 순간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중무장한 패거리가 느닷없이 배 위로 올라와 긴 칼을 휘두르고 총을 쏴댔다. 패거리는 놀란 선원들을 순식간에 제압하고 짐칸에 가뒀다. 얼마 후 선원들은 다시 갑판으로 끌려 나왔다. 그들은 선원들을 난간에 나란히 세우고 눈을 가리는가 싶더니 몽둥이로 때리고, 칼로 찌르고, 총을 쐈다. 선원들은 동일한 최후를 맞았다. 23명 모두 바다에 던져지면서 끔찍한 범죄의 흔적도 사라졌다. 일부는 여전히 숨이 붙어있었다. 이 끔찍하고 처참한 사건은 과거의 일이 아니다. 바로 1998년 11월 16일 벌크화물선 창셍(長?)호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p.6)

 


 

해적은 서기 700년 무렵 나타나기 시작해 최근에 이르기까지 바다 어디에서든 활동해왔으나 근대에 들어오면서 겨우 '도적질'에 불과한 강탈 행위였으나 20세기 후반 들어 행위가 더 폭력적이고 끔찍한 인명 피해까지 유발하는 해상 안전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어 다시 대책을 세우고 원칙적으로 제거하고 있지만 완전히 뿌리뽑지는 못하는 게 현재의 국제 정세와 맞물려 들어가는 느낌을 준다. 해적질이 일어난 바다는 그곳 영해 관할권을 가진 국가 차원에서 해결해야 하지만 사실상 피해국이 여러 나라인 경우가 많고 해적들의 신분도 뚜렷하지 않아 발본색원에는 크게 힘을 보태지 않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의 기억에도 생생한 소말리아 해적에 의한 아덴만 사건도 우리 해군이 직접 현장까지 가서 군사작전을 펼친 후 끝을 맺었다는 사실을 보더라도 피해 당사국이 아닌 경우 국제적 공조를 바라기는 어려운 것 같다. 해적은 분명 바다에서 도적질을 하는 집단을 이르는데도 왜 근절되지 않는 것인가. 정치·외교적 분란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국제적 공조가 어려워서일까. 이 책은 해적의 발생과 전성기, 그리고 쇠퇴에서 다시 고개를 드는 최근의 해적까지의 역사를 통해 진실에 다가간다.

우리의 기억 속의 해적은 매우 '낭만적'이다. 어렸을 때 읽은 소설 『보물섬』이나 소설 『로빈슨 크루소』(이 소설은 해적이 주인공은 아니지만) 등에 의해 동경의 대상이었던 외국의 삶을 조금이라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더욱이 번역 작품이란 점을 감안할 때 어린이 명작전집에 속한 이 작품들이 굉장히 순화된 용어를 사용했을 것이다. 또 잔인하거나 폭력적인 묘사도 될수록 줄였을 것이란 점을 이제서야 느끼지만, 아무튼 책을 통해 외국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시대였기에 대부분 동심에 새겨진 해적은 어찌 보면 '의적'에 가까운 모습으로 각인돼 있을 것이다. 독자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점도 책의 저자 피터 레어는 놓치지 않고 있다. 책에 따르면 창셍호 사건과 더불어 1990년대 비슷한 여러 사건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끔찍한 참사였음에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해적은 대개 소설이나 영화로 각색된 이야기를 통해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보물섬』(1883), 영화로는 더글러스 페어뱅크스가 주연을 맡은 〈검은 해적〉(1926), 에를 플린의 〈캡틴 블러드〉(1935), 그리고 더 최근에는 배우 조니 뎁이 출연해 대흥행한 〈캐리비안의 해적〉(2003년부터) 시리즈 같은 할리우드 영화들을 떠올려 보라. 이런 가공된 이야기들 속에서 해적은 자신감이 넘치는 전형적인 낭만적 인물로 그려진다. 물론 현실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 일부 관련되는 일 종사자를 제외하고는 대중에게 해적질은 한참 과거에 일어났던 일일 뿐이다. 즉, 위협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고려말쯤에 기승을 부려 한반도 해안에 살던 국민들은 매일매일이 불안과 공포의 밤이었을 것이지만 옛날 일이라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저자가 표현한 한 마디 문장이 딱 맞을 정도의 해적에 대한 위기감에서 쓰이기 시작했다. "해적이 되돌아왔다." 저자에 따르면 뉴스 헤드라인이나 거대 오락 산업체뿐 아니라 다큐멘터리, 기고문, 책, 그리고 전 세게에서 열리는 학술회의 등에서도 해적과 관련된 주체가 다루어지고 있다. 이들은 1980년대부터 해적에 의한 피습 사건 빈도가 극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 함께 노력했다. 1970년대 후반에 세계화와 무역자유화가 이루어지면서 해상 교통량이 엄청나게 증가했다. 그로부터 10여년 후 소련이 붕괴하고 냉전이 종식되면서 이전엔 군함이 순찰했던 많은 지역에서 더이상 군함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해적 입장에서 생각하면 먹잇감은 더 많아지고 잡힐 위험은 훨씬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많은 연구자가 '무엇이 해적을 움직이는가?라는 주제로 여러 심층적인 연구를 발표했다.

 


 

이 책은 해적이 발생한 700년경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1,320여년 간의 해적의 활동을 중심으로 연대기순으로 나누어 안내한다. 모두 3부로 이루어져 있고 각 부에는 10~20개의 장(章)으로 구분해 설명하고 있다. 최근 소말리아 해적 관련 사건이 가장 극심했던 시기는 2008년에서 2010년 사이로 리만브라더스발 금융위기로 인해 전 세계 경기가 침체되어 있을 때였다. 소말리아 해적은 2020년을 기점으로 거의 사라졌으나, 세계 경제가 휘청이자마자 이제는 기니만에서 나이지리아 해적이 세를 확장하고 있다(최근 이 해적 집단에게 억류됐던 선박에 한국인이 탑승해있기도 했다). 이렇듯 해적과 해적들의 활동은 기본적으로 경제와 빈곤과 깊게 연관되어 있다.

저자는 고대 북해의 바이킹부터 현대 소말리아 해적까지 전 세계, 전 시대 해적을 분석하면서 ‘빈곤’과 ‘탐욕’을 핵심이라 설명했다. 저자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해적은 “주류 사회가 외면하는 사람들”이 “비참한 생활에서 벗어날 방도를 강구한” 결과였다.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특정 공동체들, 특히 해양 근처에서 활동하는 공동체들이 주로 본인들의 기술을 활용하여 해적이 되었다. 한 에로 북유럽 바다에서 활동했던 해적인 ‘양식형제단(이후 평등공유단)’은 그 이름처럼 전시에 적군을 뚫고 음식을 보급하는 임무로 시작했다. 이런 집단은 현재에도 존재하며 동남아시아의 해상민족인 오랑라우트족이 한 예다. 하지만 저자는 그 근저에 ‘탐욕’, 즉 “손쉬운 돈벌이의 유혹”이 있음도 지적한다. 처음에는 아니었어도 해적질을 하며 약탈품을 챙기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그렇게 변해 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한 예로, 현대 소말리아 해적은 원래 불법 조업의 피해에 불만을 가져서 생긴 해적이었다. 하지만 이후 호화 요트를 납치해 몸값으로 200만 달러를 벌어들인 후, 해적행위가 일종의 ‘골드러시’로 변질되었다.

 


 

해적의 재출현은 국제적으로나 각 나라별로도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다. 중세나 근대와는 달리 국가에 대항해 조직적 범죄 집단이 발생한다는 것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안전하게 지켜야 하는 국가 입장에서는 실만 있지 득은 전혀 없는 현대 국가 체제로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쓴 저자의 이력이 금세 눈에 띄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저자는는 세인트앤드루스대학 테러학 교수로 해적 활동을 예방하기 위해 해적을 연구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해적의 순환 주기’라는 개념을 주장한다. 전 세계, 전 시기의 해적에 적용할 수 있는 이 순환 주기에 따르면 대부분의 해적은 소규모로 시작해 약탈, 국가의 공인 등 적당한 기회를 만나 힘을 키운다. 이후 큰 조직을 이루면 한 국가나 지역을 조직적으로 약탈하기 시작한다. 북해에서 활동한 바이킹의 경우, 이 단계를 넘어 국가를 무너뜨리고 자신들의 제국을 건설하기도 했다. 만약 국가가 강하게 반격하면 해적은 다시 바다로 퇴각해 힘을 키울 적당한 기회를 기다린다. 저자는 이런 악순환의 주기를 끊으려면 무엇보다 ‘의지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과거에 해적을 박멸할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역 이권 다툼으로 인해 해적과 관련된 모든 국가가 동맹을 맺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많은 국가연합체에서 해적행위를 테러리즘의 하나로 보기 시작했고, 동맹을 맺고 해군력을 투입하기 시작했다.

또한 해적을 완전히 없애기 위해서는 ‘육지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다. 현대 해적 문제 대부분이 국가의 통제력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해적으로 유명한 소말리아 등 아프리카 국가들은 국가가 약하고 불안정해 해적행위를 통제하지 못한다. 또한 통제력이 부족하면 다른 국가에서 온 불법 조업을 막지 못해, 어민들이 더욱 가난해져 결국 해적이 되는 효과도 있다. 국가 간의 연대, 국가 통제력 문제 해결, 이 두 가지를 해결해야 해적을 완전히 없앨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기대대로 우리에게 더 이상의 낭만을 주지 않는, 동정의 여지가 없는 해적의 출현은 우리에게도 백해무익의 테러집단이나 다름없다.

 


 

"각국이 정말로 해적행위가 초래하는 재앙을 끝내겠다면 육지부터 시작하는 것이 옳다. “다른 모든 사람처럼 해적도 육지에서 살아야 한다. 따라서 그들을 육지에서 저지해야 한다. 해군력만으로는 해적을 진압할 수 없다.” 육지에서 법질서를 회복하는 일이 논리적인 첫 수순이다.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 같은 ‘약소국’은 법질서를 세워야 하고, 소말리아 같은 ‘실패한 국가’는 법질서를 회복해야 한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소말리아에는 어렴풋이 희망이 보인다. 본토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소말릴란드와 준자치주인 푼틀란드는 법질서를 상당한 수준까지 회복했고, 그 덕분에 두 지역을 본거지로 하던 해적행위를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었다."(p.280) - 「결론: 거대한 역풍」 중에서

 

저자 : 피터 레어(Peter Lehr)

 

세인트앤드루스대학 테러학 교수. 국제관계학부에서 해적과 해양 테러의 연관성을 탐구하는 연구원으로도 활동했다. 중국 삼합회, 해적과 같은 범죄조직은 물론, 태국 사찰의 금욕 수도사까지 찾아가 인터뷰하는 등 참가 관찰을 주로 진행했다. 인간의 행동을 그들이 처한 맥락을 통해 설명하는 ‘두꺼운 묘사’를 연구 방법으로 삼고 있다.

 

역자 : 홍우정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를 졸업했으며, 한국산업기술진흥원에서 다년간 근무하였다. 현재 번역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주요 역서로는 《러시아 히스토리: 제국의 신화와 현실》, 《러시아 이야기(출간 예정)》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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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먼 바이블 - 인류 문명과 종교의 기원을 찾아서
김정민 지음 / 글로벌콘텐츠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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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역사로서의 고대사를 빼놓을 수 없다. 시대적 분류에서 고대는 인류 문명의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말하는 고대사는 인간 문명의 시작이요, 놀라운 변화의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종교와 우리의 고대사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또 우리는 고대사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고대 인류는 어디에서 살았는지, 문명은 어떻게 탄생했는지, 전 세계에 분포한 종교들은 어디에서 기원했는지 등 고대사에 관해서 끊임없는 질문이 나온다. 그건 교과 과정에서 다루는 고대사의 영역이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의문을 시원하게 해소할 만한 책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책 『샤먼 바이블 : 인류 문명과 종교의 기원을 찾아서』의 저자 김정민은 직접 현장에서 마주한 역사의 흔적에 다양한 자료들을 종합하여 고대 민족들의 생활상, 문화, 종교 등을 되짚어보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힌다.

역사 연구에 있어 사료를 중심으로 하는 것은 기본이지만 사료 중심만으로는 역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 역사가들의 평이다. 이에 따라 이 책은 사료는 물론 민속학, 풍습, 구전, 천문현상 등의 기록을 참고하여 썼다. 저자는 이 책에서 미개한 종교로 취급받는 ‘샤머니즘’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고, 정치·종교적 의도에 의해 왜곡되고 숨겨진 역사를 파헤친다. 저자는 고대 민족의 발자취를 직접 좇으며 확인한 사실을 바탕으로 사료만으로는 알 수 없던 역사의 이면도 들춰낸다. 이 책을 통해 기독교, 불교, 이슬람, 힌두교 등 현존하는 전 세계 모든 종교가 샤머니즘이라는 하나의 뿌리에서 기원했음을 알 수 있다.

 


 

샤머니즘(shamanism)이란 초자연적인 존재와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샤먼을 중심으로 하는 주술이나 종교를 말한다. 엑스터시와 같은 이상심리 상태에서 초자연적 존재와 직접 접촉·교섭하여, 이 과정 중에 점복·예언·치병·제의·사령의 인도 등을 행하는 주술·종교적 직능자인 샤먼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현상을 의미한다. 북아시아의 샤머니즘이 가장 고전적·전형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지역에 따라 여러 샤머니즘의 형태가 있으며, 다른 종교현상과 복합되어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두산백과 사전은 밝히고 있다. 샤먼이란 말은 17세기 후반 트란스바이칼 지방과 예니세이강가에서 퉁구스인(人)을 접했던 한 러시아인에 의하여 알려졌는데, 이 말의 어원에 대하여 19세기의 동양학자들은 샤먼의 관념 내용과 병행해 산스크리트의 승려를 뜻하는 시라마나(?rama), 팔리어(語)의 사마나(sama)에서 샤먼의 어원을 찾는 수입어설을 주장했고, 20세기에 들어와서 J.네메스와 B.라우퍼 등은 퉁구스계 제종족 사이에서 주술사의 일종을 지칭하는 ?aman, saman, s'aman 등에서 유래하였다는 퉁구스 토착어설을 주장하였다. 이같이 샤먼의 어원에 대한 해설은 구구하나, 대체로 퉁구스 토착어설이 유력하다. 그러나 실제로 샤먼이란 말은 퉁구스·부랴트·야쿠트족에서만 쓰이는 말이며, 또한 샤먼의 역할이 북아시아 제종족 사이에서는 매우 중요하고 유사하지만 샤먼을 지칭하는 명칭은 여러 가지이고, 그 의미도 다양하다.

루마니아 출신의 미국 종교학자인 미르체아 엘리아데는 중앙·북동 아시아의 예로서 샤먼이 되는 방법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가 있다고 파악했다. ① 샤먼적 직능의 세습적 전달에 의한 샤먼, 즉 세습무 ② 신 ·정령의 소명에 의한 샤먼, 즉 강신무 ③ 자유의지 또는 씨족의 의지에 의한 개인적 샤먼이 있다고 하는데, 이 가운데 세습무와 강신무가 전형적이다. 세습무이든 강신무이든, 장래의 샤먼 후보자는 어릴 때부터 그 소질을 보여 매우 신경질적이고 우울하며, 민감하고 몽롱하여 환각과 황홀상태에 빠지기 쉽다. 샤먼은 성별에 구애 없이 남자가 되기도 하고 또 여자가 되기도 하나, 일반적으로 입무과정에서는 무병(巫病)을 심하게 앓거나 환상 경험이라는 특수한 체험을 거치게 된다고 한다.

 


 

이 책은 모두 3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장 〈문명의 새벽〉에서는 문명이 탄생하기 전 인류가 어떻게 환경에 적응하고 극복했는지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샤먼을 중심으로 발전하게 된 문명과 종교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제2장 〈천문을 이용한 문명의 탄생〉에서는 북극성 신앙을 숭배하던 고대 민족이 별자리를 따라 도시를 건설한 내용을 펼친다. 또 언어 비교를 통해 한국과 유대인, 엘람족, 드라비다족, 스키타이족의 연결고리를 찾아 간다. 제3장 〈천문을 이용한 종교의 발전〉에서는 재세이화와 천손강림 사상을 바탕으로 발전한 종교와 그 기원의 공통점을 밝힌다.

“샤머니즘은 미개한 종교가 아니었다.” 이 책을 쓴 이유고 주제이기도 하다. 전 세계에 전해져 내려오는 신화들과 구전, 유물 등은 그동안 고대 인류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부족했는지 분명히 보여 준다. 15년간 카자흐스탄, 몽골 등지에서 발로 뛰며,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한 저자는 고대 인류가 얼마나 발전된 문명을 이룩했는지 하나씩 짚어가며 우리의 인식을 바꾼다. 이를 테면 금속 제련술이나 천문학 같은 고도화된 기술을 가졌던 선진 문명 집단의 존재라든지 민주적인 방식으로 삶의 터전을 공유했던 유목민족이 있다. 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체계화된 국가를 세우고 다스렸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샤머니즘이 있었다. 이 책은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을 통해 현재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데 목적이 있다. 현대의 종교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 짚어주고, 전 지구적 통합의 흐름 속에서 대한민국은 어떤 변화를 꾀해야 할지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샤머니즘은 결코 미개한 종교가 아니었다. 샤머니즘이 미개한 종교로 취급받는 이유는 현재 기득권을 쥐고 있는 종교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거짓 정치 선동으로 만들어낸 결과라며 저자는 포문을 연다. 샤머니즘이 믿는 이들이 미개했다면 어떻게 피라미드를 만들고 알렉산더 도서관에 수만 권의 책이 있을 수 있었으며, 오늘날에도 놀랄 만한 과학적 장치가 존재했단 말인가? 그러면서 우주를 7일 만에 창조하였다는 말을 믿으라면 어느 쪽이 더 미개한 종교인가?라고 저자는 반문한다. 저자에 따르면 종교가 정치권력화 되면 그때부터 부패의 속도가 그 어느 경우보다도 급속하게 빨라진다. 샤머니즘 역시 종교와 정치권력이 결합하여 혹세무민을 하고 부패했기 때문에 다른 종교에 의해 무너졌다는 것이 저자의 논리다. 현재 우리는 종교가 얼마나 인간의 삶에 간섭하고 영향을 끼치는지 실감하며 살고 있다.

독자는 저자의 논리에 공감은 하지만 종교인도 아닌 데다 종교를 공부해 본 적이 없어 지식이 짧아 저자의 주장에 오류가 있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샤머니즘이 정치권력과 결합하여 부패했기 때문에 다른 종교에 의해 무너졌다는 주장엔 공감하지만 현재 대세의 종교가 권력화되고 있는지에 대한 판단이 서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종교를 이용한 자원약탈 전쟁, 성전(聖戰)을 빙자한 살인 행위, 신의 이름으로 거대한 성전(聖殿)을 짓는 종교 지도자 등 권력 샤먼 사회의 말기에 일어났던 것과 동일한 현상을 오늘날 소위 개혁 종교로 등장했던 대안 종교들이 벌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에 따라 범알타이 연방을 초월해 그동안 인류가 이룩한 과학혁명을 토대로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고 강조한다. 현재 전 세계 분쟁의 80%가 종교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종교가 부패하면 인간을 풍요롭게 하기보다는 특권층을 위해 헌신하게 된다며 종교 권력에 경종을 울린다.

 


 

이 책은 〈문명의 새벽〉, 〈천문을 이용한 문명의 탄생〉, 〈천문을 이용한 종교의 발전〉 등 3개 장(章)으로 나눠 전개된다. 종교의 기원을 따져 들어가고, 종교가 어떻게 우리 인류 문명에 이바지하고 발전되어 왔는지에 대해 탐구한다. 우리가 어렸을 때 책(교과서)를 통해 배운 종교의 기원은 아주 짧게 기술할 수밖에 없어 충분히 배우지 못했다. 또 조금 더 배웠다고 해도 이미 한 종교에 의해 성장한 국가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기에 그들의 논리나 주장으로 본 종교를 배웠다. 이는 편파적 해석될 수밖에 없으며 종교 발전이나 인류 문화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저자의 주장을 선뜻 받아들이기에 어려운 점이 있다. 그렇다고 샤먼으로부터 시작되는 종교의 기원을 무시할 수도 없다. 지구상 어느 지역에서나 현재의 우세 종교들은 샤머니즘을 똟고 올라섰다. 샤머니즘이 인류를 풍요롭게 하고 문명을 발전시키는 데 장애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수하고 인류에 더 풍요롭거나 행복한 삶을 보장해서가 아니라는 데는 종교 문외한인 독자로서도 공감할 수밖에 없다.

기독교나 이슬람, 불교 역시 고대문명, 특히 인간의 삶을 위해 우세한 교리가 인간의 마음을 얻어 확장된 것 역시 인정해야 한다. 그것이 그 종교를 죽음으로써 지켜낸 분들에 대한 도의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그런데 왜 종교 전쟁을 벌이고, 다른 종교를 배타적으로 대하고 사이비, 이단으로 몰아가는가? 여기에 대한 답을 주지 못할 경우 여전히 종교를 지키려는 현재의 우세 종교의 모든 행위는 정당성을 얻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 책은 샤머니즘이 올바른 종교고, 현재 우세 종교보다 더 인류 문명에 이바지할 것이란 주장을 쓴 게 아니다. 샤머니즘의 기원과 몰락에 대해 철저한 고증과 기록 분석, 현재에 남아 있는 흔적을 찾아 현재 종교와 비교해야 앞으로 인류가 지향해야 할 종교에 대한 믿음을 확신할 수 있다는 학자적 양심에 따른 것으로 독자는 이해하고 싶다.

 


 

현존 종교 이전의 문명권에서도 각각의 종교는 있었다. 절대 믿음은 신(神)의 권위를 앞세워 절대 권력을 창출했다. 신은 세상 어디에나 있었다. 나무나 하찮은 동물, 심지어는 하늘과 우주 공간에도 있었다. 신은 인간에 눈에 보이는 존재가 아니라 믿는 자의 마음속에 생존한다. 믿지 않는 자에게 신은 없다. 그는 신에게 버림받는다. 즉 처벌을 받게 된다. 지식과 타 지역과의 비교가 어려웠던 많은 지역의 인간은 종교 권력자의 말을 믿고 따랐다. 자연스럽게 지배와 피지배자의 관계가 된다. 고대에서도 가장 뛰어난 문명을 이뤘다는 세계 4대 문명을 우리는 어릴 때 교과서를 통해 배웠다. 문명의 발전은 신에 의해 이뤄졌다는 증거가 되는 셈이다. 그리스와 로마, 중동 지역의 메소포타미아, 그리고 이집트와 중국 황허 유역이다. 이들 지역은 지금 보아도 놀랄 만한 엄청난 문명을 이루어냈다.

현존 종교는 동서양 모두 신의 이미지로 인간이나 동물을 묘사했지만 고대 샤먼은 별자리 신앙의 형태였다고 이 책에서 저자는 보고 있다. 한국에서는 북극성신을 '삼신할매'로 가장 오래된 북극성 신앙을 '마고신앙'이라고 했다. 저자가 인용한 『부도지』에 의하면 파미르 고원에는 마고 대성이 있었고 지상의 모든 것을 관장했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하늘의 별자리인 마고성, 서양은 베가이고 동양은 직녀성이라는 것이다. 슬라브어에서 '마꼬'는 이름이고 뒤에 붙은 '쉬'의 경우 여성을 가리키므로 '마꼬쉬'는 마고가 되었다는 설이 맞을 것으로 저자는 주장한다. 즉 마고신은 삼신할매이고 이것이 바로 북극성의 신으로 연결짓고 있다. 또 저자는 한국의 역사책 『한단고기』에 나오는 백부인과 중동지방 주시자 백색피부에 흰머리 가진 종족은 같은 의미였다. 백부인 분포도와 마고신 전설 지역은 같은 지역으로 밝혀졌다. 고지대에서 살던 사람들이 저지대로 내려와 문물을 전달해주고 지배계층이 되었음을 증거하고 있다. 스키타이 기마민족은 원래는 북극권에서 시작해 순록을 키우고 살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해 저지대로 내려오며 순록을 키울수 없게 되어 말을 키우며 기마민족이 되었을 것으로 저자는 추정하고 있다.

 


 

"(카자흐스탄 한 신문 2011년 1월 14일자) 기사를 보면 카자흐스탄 역시 한국처럼 독립 이후에도 식민지 교육의 영향에 의해 자신들의 역사를 신화화하며 카자흐족의 역사가 AD 15세기에 시작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카자흐스탄 주스제도는 중국에서 온 것이 아닌 기마민족의 전통이었다. 카자흐스탄의 주스제도는 고조선의 제도와 같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두 민족이 가지고 있었던 명칭과 제도의 발음이 상당히 유사하다. 『한단고기』를 보면 카자흐족의 조상이 되는 삭족과 한국의 색족이 같은 민족일 가능성이 있다. 임승국의 『한단고기』를 보면 남북 5만리 동서 2만 리의 거대한 국가였는데 이 지역에 살던 사람들을 색족이라 불렀다."(p.177~178)

 

저자 : 김정민

 

1970년대 중동건설 붐이 불던 시절 부모님을 따라 중동에서 살게 되었다. 그곳에서 10년을 살면서 외국의 다양한 문물과 많은 사람을 처음 접했고 그렇게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후 대부분의 시간을 한국보다는 외국에 머무르면서 취미 삼아 현지의 음악과 문화자료를 수집하였는데, 한국과 유사한 부분이 많다는 점에 흥미를 느껴 자료를 모으기 시작하였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고대사와 유라시아 지역 국가들의 고대사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고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하였다. 고국에서의 안락한 직장생활을 포기하고 2007년 카자흐스탄으로 유학을 결심한 뒤 중앙아시아로 넘어가 9년 동안 현지의 신화, 고대사, 역사책, 문화자료 등을 수집하며 한국과의 연관성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다. 2017년에 몽골국립대학교 국제관계학과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현재 카자흐스탄, 몽골, 터키, 한국 등 세계를 돌아다니며 유라시아 국가들 간 공동역사교과서를 만들기 위해 국제학술대회에서 범알타이-투르크 역사철학을 바탕으로 한 경제공동체 건설의 필요성을 발표하고 있다. 저서로는 『단군의 나라, 카자흐스탄』(2015)이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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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여정 - 부와 불평등의 기원 그리고 우리의 미래
오데드 갤로어 지음, 장경덕 옮김 / 시공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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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찰의 폭과 갤로어의 야망이 다이아몬드와 하라리를 연상시킨다는 평가가 실감나는 저서다. 지난 200년 간 잠깐의 풍요로운 번영을 누렸지만 이젠 또 조금의 망설임없이 새로운 여정에 나설 것이다. 이 책은 인류의 낙관적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이유가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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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여정 - 부와 불평등의 기원 그리고 우리의 미래
오데드 갤로어 지음, 장경덕 옮김 / 시공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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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인류의 여정』을 읽고 난 다음 한참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여느 때와 다른 감동과 저자 오데드 갤로어의 깊은 사유에 대한 외경심 때문이다. 그가 쓴 이 책이 우리 인류 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할 것이라는 감동은 독후감 정도를 벗어난 것이기에 독후감을 어떻게 써야 할지도 막막했다. 그는 인류 발전의 과정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란 질문을 해보니 한마디로 정리하기도 힘들었다. 그가 『인류의 여정』이라는 평이한 표제어에 담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인지 짧게 표현할 능력이 독자 자신에게는 없는 것 같은 막막함에 약간의 두려움마저 들었던 것이다. 한참 만에 정신을 추스리고 책 표지를 만지작만지작하다가 부제에 다시 눈길이 갔다. 「부와 불평등의 기원 그리고 우리의 미래」라는 부제는 무척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저자는 현생 인류 호모 사피엔스 출현 이후 약 30만년 간의 인류가 걸어온 길을 쓰고자 했다. 그것을 전체적으로 조명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인류는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를 지금 시점에서 조망한다는 것은 말이 그렇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거기에 우리는 지구에서의 생명의 기원도 아직 정확하게 알지 못한 상태다. 각종 이론이 많이 등장했지만 수많은 과학자들, 특히 생물학자들이 밝힌 이론 중 가장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은 『종의 기원』을 통해 밝혀낸 진화론이다. 그러나 그 진화론마저 생명의 기원에 대해선 제대로 밝히지 못했다. 기독교와의 부조화로 밝히지 못한 것이 아니라 명백한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이론만 무성한 탓이다.

호모사피엔스 등장 후 30만 년, 현재 인류가 풍요를 누린 시간은 200년에 불과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나머지 29만 년이 넘는 시간은 배고픔과 질병과의 싸움이었다고 저자는 단언한다. 물론 질병, 배고픔과의 싸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인류가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는 한 영원한 숙명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 해답은 지난 29만년의 시간 안에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언급한다.

 


 

이 책을 쓰기면 웬만한 학자로서는 혼자의 힘으로 엄두가 나지 않았을 터다. 저자가 이를 해내기 위해서는 인류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담보돼야 한다. 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문화·역사·전쟁·질병·생물학·종교·철학 등 어쩌면 이 세상의 모든 분야의 지식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저자는 책을 통해 가장 최근의 인류에 대한 연구를 통해 참고할 만한 두 명, 두 권의 저서에 대해 언급한다. 이 책을 쓸 때까지 가장 큰 영향을 받은 분들인 듯하다. 그들의 연구와 사유가 더해진 책이라고 봐도 좋을 대목이다. 저자는 멀리 그리스의 플라톤에서 18세기 『인구론』의 맬서스, 20세기에는 재레드 다이아몬드, 21세기는 유발 하라리가 그 해답을 찾으려 시도했다고 밝힌다. 저자의 이 말은 그들의 연구나 저서가 이 책(저자의 박사 학위 논문과 같은 내용인 것 같다. 책에 이에 대한 언급이 있다.)에 영향이 되어 주었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터다. 저자 오데드 갤로어는 2021년 노벨 경제학상 후보로 거론됐다는 점으로 미루어 경제적 관점에서 인류의 발전 과정을 짚어내리라는 짐작은 쉽게 할 수 있다.

저자는 이미 자신의 몸담은 경제학 분야에서 ‘이론’을 정립한 석학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점을 이 책이 뒷받침하고 있다고 독자는 믿는다. 그만큼 이 책은 인류의 발전 과정에 대한 깊은 연구와 사유, 그리고 통찰력을 보여준다. 이 책은 18세기 『인구론』을 쓴 맬서스의 좌절 이후, 인구와 인류 발전의 상관 관계를 규명해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가 인류 발전 과정의 거대 담론을 꺼내 주목할 만한 이론을 정립한 이 책은 독자들에게 큰 감동을 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29만 년을 규명하기 위한 시도의 아쉬움을 보완한 이 책은 탄생 이후 1,500분의 1도 안 되는 평화의 시간을 누리는 인류에게 또 다른 위기와 비관적 전망이 찾아오고 있는 시점이어서 더욱 주목을 끌고 있다. 인류에게 대위기라는 질병·전쟁과 함께 급속도로 변화하는 지구의 기후변화가 한꺼번에 쓰나미처럼 밀려들고 있는 2020년 대 인류 생존 연장을 위한 해답, 위기를 희망을 바꿀 낙관적 근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지구상에 같은 시대 같은 하늘을 보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기쁘다.

 


 

저자는 30만 년 전 호모사피엔스의 등장 이래 인류사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점은, 19세기부터 지금까지 200년의 진화가 나머지 시간의 진화를 아득히 뛰어넘는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흔히들 이 분기점을 19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으로 본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의문을 가져야 한다. 과연 산업혁명만이 발전의 이유일까? 왜 산업혁명은 고대 문명의 발상지가 아닌 영국에서 시작됐을까? 왜 ‘19세기’에 시작됐을까? 증기기관을 발명한 토머스 뉴커먼과 제임스 와트가 다른 나라 사람이었다면 산업혁명은 늦춰졌을까?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가정은 필요하다. 역사적 사건의 시작과 이유에 대한 근거를 밝혀 주기 때문이다.

이제 겨우 먹고사는 걱정에서 해방되자마자, 인류는 다가올 미래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환경오염에 따른 기후변화, 인구 폭발(한국의 경우는 인구절벽), 날로 심화되는 불평등으로 인한 사회적 불안, AI의 일자리 뺏기까지 대다수가 인류에게 부정적인 신호라는 게 저자의 견해다. 그렇다면 정말로 인류의 미래는 어두운 것일까? 어떤 학문보다 데이터를 신봉하고, 증명과 검증에 철저한 경제학은 인류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할까? 경제학자인 저자는 책의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여정 끝에서 나온 전망에 대해 미리 말해 두자면 기본적으로 희망적이다. 지구의 모든 사회를 아우르는 궤도를 봐도 그러하며, 이런 관점은 기술 발전을 진보로 보는 문화적 전통과도 일치한다. 앞으로 명백히 밝히겠지만, 인류의 여정 밑바탕에 있는 거대한 힘이 계속 가차 없이 작동하는 가운데 교육과 관용, 그리고 더 높은 수준의 성 평등이야말로 인류를 향후 몇십 년 또는 몇 세기 동안 번창토록 할 열쇠이다.(p.21)

 


 

이 책은 2부 12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인류의 여정〉, 2부 〈부와 불평등의 기원〉이다. 1부에는 「첫걸음」, 「정체의 시대」, 「보이지 않는 폭풍」, 「전력 질주」, 「대변혁」, 「약속의 땅」 등 6개의 장이 있고 2부에서는 「화려한 삶, 비참한 삶」, 「제도의 지문」, 「문화적 요인」, 「지리의 그늘」, 「농업 혁명의 유산」, 「아웃 오브 아프리카」 등 6개장이 뒤를 잇는다. 저자는 1부 〈인류의 여정〉에서 ‘경제적 활동’의 범위를 저 멀리 30만 년 전으로까지 확대해 인류를 고찰한다. 인류의 몸부림이 산업혁명으로 결실을 맺기까지의 ‘여정’을 인구, 소득 데이터를 바탕으로 설명한다. 2부 〈부와 불평등의 기원〉에서는 아프리카에서의 탈출로 인한 인종과 문화의 분화, 먹고사는 문제와 제도의 다양화, 산업혁명 발생에 시간차가 발생한 이유와, 그 차이가 끼친 영향 등을 지리와 문화의 요소를 더해 설명한다.

인류사를 경제학으로 고찰하기 위해, 30만 년 전 호모사피엔스의 등장과 아프리카에서의 대탈출로부터 연구가 시작돼야 함을 갤로어는 알고 있었다. 경제‘학’은 애덤 스미스로부터 시작됐지만 ‘경제’가 스미스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님을 증명하듯이 말이다. 인류의 과거, 현재, 미래를 한 권의 책으로 설명하기 위한 시도는 학문과 시간의 경계를 넘어 진행 중이다. 20세기에는 생태학자이자 지리학자인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포문을 열었고, 21세기의 포문은 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열었다는 게 중론이다. 그리고 경제학자 갤로어가 등장했다고 출판사 측은 소개한다. 출판사가 이 책 『인류의 여정』이 18세기 맬서스에 이은 경제학의 거대한 담론이라는 점을 뒷받침한다. 특히 인류 문명과 발전의 차이를 경제학을 통해 본격적으로 풀어낸 첫 책이자, 맬서스의 실패, 다이아몬드와 하라리의 주장에서 풀리지 못한 의문과 아쉬움을 모두 보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사실 이 책은 인류의 여정 중 2부의 〈부와 불평등의 기원〉을 쓰기 위해 시작됐다고 독자는 이해한다.

 


 

저자는 인류 발전 과정 30만년을 '뇌와 손'으로 풀어낸다. 30만년 동안 뇌와 손은 합쳐 상승 작용으로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발전 과정을 거쳤다고 말한다. 빠를 때는 인구 밀집 도시의 생성으로 전염병과 전쟁이 뒤따랐으며, 느릴 때는 또한 전염병과 전쟁 후에 인구 팽창으로 노동력이 큰 힘을 발휘해 발전을 거듭해왔다는 설명이다. 이를 설명할 때도 여러 가지 이론 중에서 설득력이 있는 이론을 앞세워 자신의 가설을 증명하기도 한다. 최대한 기존 연구나 이론을 수용하면서 자신의 논리를 펼치는 방식이다. 그렇지만 자신이 세운 가설에 대한 증명 과정은 독창적이고 합리적이다. 인류 발전의 성장 동력은 뇌와 손이라고 말한 부분을 뒷받침하는 이론은 기존 이론이다. 강력한 뇌의 출현은 현재의 이론이다. 즉 인류 뇌의 무게는 체중의 2%에 불과하지만 에너지의 20%를 차지한다는 현대 이론을 역추적해 보면 인류뇌는 다른 종의 뇌보다 '주름 잡혀' 압축됐으며 태아의 머리가 산도를 통과하기 위해 작게 태어나지만 성숙기에 이르는 몇 년 간 미세 조정이 필요한 '반쯤 여문' 뇌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말이다. 다른 종의 포유류보다 훨씬 오랜 기간 걸려 성숙해진다. 또 발달에는 '생태적 가설', '사회적 가설', '문화적 가설'이 있으며, 또 다른 기제로 성선택((sexual selection)을 들고 있다.

또 다른 포유류와 구별해 주는 신체 기관은 바로 손이다. 뇌와 더불어 인류의 손도 부분적으로 기술과 발맞춰 진화했다는 것. 인류사를 보면 비슷한 성격의 상승 작용을 나타내는 되먹임 고리가 계속해서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환경의 변화와 기술 혁신은 인구를 증가시켰고, 달라진 거주지와 새로운 도구에 적응하도록 인류를 자극했다. 그렇게 인류는 환경을 다루고 새로운 기술을 창조하는 능력을 더욱 키웠다. 이 '주기'를 기억하라고 저자는 조언한다. 인류의 여정을 이해하고 성장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한 핵심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또 저자는 수십만 년 동안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작은 수렵·채집인으로 무리 지어 돌아다녔고, 이 과정에서 복잡한 기술과 사회적·인지적 능력을 개발했다고 말한다. 선사시대 인류가 더 능숙한 수렵·채집인이 됨에 따라 아프리카의 비옥한 지역 인구는 상당히 증가했고, 자연스럽게 인류가 이용할 수 있는 공간과 자원이 줄어들었다. 이제 인류는 기후 조건이 갖춰지자 또 다른 비옥한 토지를 찾아 다른 대륙으로 갈라져 나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현재 '아읏 오브 아프리카' 가설에 의하면, 전 세계 해부학상 현생인류 중 대부분의 선조는 다름 아닌 6만~9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대규모로 이주한 호모사피엔스의 후손이다. 그렇게 인류는 두 갈래로 아시아에 몰려갔다.

이후 신석기혁명으로 불리는 농업혁명은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처음 일어났다. 인류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수십만 년간의 기술적·사회적 변화를 거친 후에야 인류는 유목 생활에서 농업사회의 정착 생활로 넘어갔는데 불과 몇천 년 만에 이 변화가 모든 인류에게 퍼져 나갔다. 책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생각 정착지 중 하나인 예리코는 기원전 9,000년 전후에 확장되기 시작했으며 성서 시대가 본격화할 때까지 존속됐다. 예리코에는 각종 도구와 의례 용품을 풍족히 갖춘 집이 줄을 이었다. 예리코는 인구가 1,000~2,000명 수준으로, 돌로 쌓은 3.6미터 높이의 벽에 둘러싸인 구조였다. 또한 8.5미터나 되는 망루가 특징적이었다.

책에 따르면 인류의 여정에서 다시 한 번 전환의 순간이 나타났는데, 그 원동력은 기술 진보였다. 이러한 전환은 다시 기술 발전으로 이어졌다. 이 시기에 갑자기 혁신이 가속화되면서 식물의 작물화와 동물의 가축화가더욱 진전됐으며, 농작물의 재배와 저장, 통신, 운송 기술도 향상됐다. 또 문자로 기록하는 기술이 5,500년 전 메소포타미아 남부 수메르에서 처음 나타났다. 그러나 지시과 기술이 이토록 엄청나게 진보했는데도, 참으로 이상한 건 수명과 삶의 질, 그리고 물질적 안락함과 번영 정도로 가늠하면 인류의 생활 수준은 대체로 정체됐다는 사실이다. 이 수수께끼를 풀려면 우리는 이 정체의 근본 원인인 '빈곤의 덫'을 더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 이처럼 저자는 다음 장을 마련하며 한 장을 끝내는 노련함을 책에서 보여준다.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해 사전에 꽤 깊은 연구가 곁들여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경제 성장은 정말 환경 보존과 양립할 수 없을까? 우리는 둘 중 하나를 꼭 선택해야 할까? (…) 국가 간 분석을 보면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탄소 배출은 인구 증가와 더불어 늘어나며, 그 인구의 물리적 부가 증진될 때도 늘어나는데, 부의 증진보다 인구 증가에 따른 배출량 증가가 훨씬 큰 폭으로 나타난다. (…) 인구변천이 시작된 후 낮아진 출산율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인구가 환경에 가하는 부담을 줄였다.(p.143) - 「6장 “약속의 땅”」 중에서

 

어떤 지역에서는 성장 활력을 높이는 지리적 조건과 다양성 덕분에 문화와 제도의 특성이 환경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고 기술 진보가 가속화됐다. 몇 세기가 지나자 이러한 과정에서 촉발된 변화로 인적자본에 대한 수요가 폭발하고 출산율이 갑자기 낮아졌으며, 그에 따라 더 일찍 현대의 성장 체제로 전환이 이뤄졌다. 다른 곳에서는 이런 상호작용이 사회를 더 느리게 움직였고, 맬서스가 묘사한 야수의 아가리를 벗어나는 시기가 늦어졌다.(p.271) - 「12장 “아웃 오브 아프리카”」 중에서

 

저자 : 오데드 갤로어(Oded Galor)

 

브라운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이자 ‘통합성장 이론’의 창시자이다. 통합성장 이론은 인류사 전체에 걸친 개발, 번영 그리고 불평등의 원인을 밝히고자 하는 시도에서 출발했다. 갤로어는 경제학자로서 일생을 바쳐 얻은 통찰을 세계 각지에 공유했으며, 그렇게 얻은 통찰과 발견을 모아 『인류의 여정』을 썼다. 『인류의 여정』은 대중을 대상으로 한 갤로어의 첫 책으로 전 세계 30개국에 출판됐다.

 

역자 : 장경덕

 

작가 겸 번역가. 33년 동안 저널리스트로서 자본주의 정글을 탐사하며 석학들을 두루 만났다. 매일경제신문 런던 특파원, 금융팀장, 논설실장을 지냈다. 『증권 24시』 『부자클럽 유럽』 『정글노믹스』 『정글경제 특강』을 썼고,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21세기 자본』 『불평등을 넘어』 『좁은 회랑』 등을 옮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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