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여정 - 부와 불평등의 기원 그리고 우리의 미래
오데드 갤로어 지음, 장경덕 옮김 / 시공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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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인류의 여정』을 읽고 난 다음 한참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여느 때와 다른 감동과 저자 오데드 갤로어의 깊은 사유에 대한 외경심 때문이다. 그가 쓴 이 책이 우리 인류 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할 것이라는 감동은 독후감 정도를 벗어난 것이기에 독후감을 어떻게 써야 할지도 막막했다. 그는 인류 발전의 과정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란 질문을 해보니 한마디로 정리하기도 힘들었다. 그가 『인류의 여정』이라는 평이한 표제어에 담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인지 짧게 표현할 능력이 독자 자신에게는 없는 것 같은 막막함에 약간의 두려움마저 들었던 것이다. 한참 만에 정신을 추스리고 책 표지를 만지작만지작하다가 부제에 다시 눈길이 갔다. 「부와 불평등의 기원 그리고 우리의 미래」라는 부제는 무척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저자는 현생 인류 호모 사피엔스 출현 이후 약 30만년 간의 인류가 걸어온 길을 쓰고자 했다. 그것을 전체적으로 조명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인류는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를 지금 시점에서 조망한다는 것은 말이 그렇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거기에 우리는 지구에서의 생명의 기원도 아직 정확하게 알지 못한 상태다. 각종 이론이 많이 등장했지만 수많은 과학자들, 특히 생물학자들이 밝힌 이론 중 가장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은 『종의 기원』을 통해 밝혀낸 진화론이다. 그러나 그 진화론마저 생명의 기원에 대해선 제대로 밝히지 못했다. 기독교와의 부조화로 밝히지 못한 것이 아니라 명백한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이론만 무성한 탓이다.

호모사피엔스 등장 후 30만 년, 현재 인류가 풍요를 누린 시간은 200년에 불과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나머지 29만 년이 넘는 시간은 배고픔과 질병과의 싸움이었다고 저자는 단언한다. 물론 질병, 배고픔과의 싸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인류가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는 한 영원한 숙명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 해답은 지난 29만년의 시간 안에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언급한다.

 


 

이 책을 쓰기면 웬만한 학자로서는 혼자의 힘으로 엄두가 나지 않았을 터다. 저자가 이를 해내기 위해서는 인류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담보돼야 한다. 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문화·역사·전쟁·질병·생물학·종교·철학 등 어쩌면 이 세상의 모든 분야의 지식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저자는 책을 통해 가장 최근의 인류에 대한 연구를 통해 참고할 만한 두 명, 두 권의 저서에 대해 언급한다. 이 책을 쓸 때까지 가장 큰 영향을 받은 분들인 듯하다. 그들의 연구와 사유가 더해진 책이라고 봐도 좋을 대목이다. 저자는 멀리 그리스의 플라톤에서 18세기 『인구론』의 맬서스, 20세기에는 재레드 다이아몬드, 21세기는 유발 하라리가 그 해답을 찾으려 시도했다고 밝힌다. 저자의 이 말은 그들의 연구나 저서가 이 책(저자의 박사 학위 논문과 같은 내용인 것 같다. 책에 이에 대한 언급이 있다.)에 영향이 되어 주었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터다. 저자 오데드 갤로어는 2021년 노벨 경제학상 후보로 거론됐다는 점으로 미루어 경제적 관점에서 인류의 발전 과정을 짚어내리라는 짐작은 쉽게 할 수 있다.

저자는 이미 자신의 몸담은 경제학 분야에서 ‘이론’을 정립한 석학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점을 이 책이 뒷받침하고 있다고 독자는 믿는다. 그만큼 이 책은 인류의 발전 과정에 대한 깊은 연구와 사유, 그리고 통찰력을 보여준다. 이 책은 18세기 『인구론』을 쓴 맬서스의 좌절 이후, 인구와 인류 발전의 상관 관계를 규명해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가 인류 발전 과정의 거대 담론을 꺼내 주목할 만한 이론을 정립한 이 책은 독자들에게 큰 감동을 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29만 년을 규명하기 위한 시도의 아쉬움을 보완한 이 책은 탄생 이후 1,500분의 1도 안 되는 평화의 시간을 누리는 인류에게 또 다른 위기와 비관적 전망이 찾아오고 있는 시점이어서 더욱 주목을 끌고 있다. 인류에게 대위기라는 질병·전쟁과 함께 급속도로 변화하는 지구의 기후변화가 한꺼번에 쓰나미처럼 밀려들고 있는 2020년 대 인류 생존 연장을 위한 해답, 위기를 희망을 바꿀 낙관적 근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지구상에 같은 시대 같은 하늘을 보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기쁘다.

 


 

저자는 30만 년 전 호모사피엔스의 등장 이래 인류사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점은, 19세기부터 지금까지 200년의 진화가 나머지 시간의 진화를 아득히 뛰어넘는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흔히들 이 분기점을 19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으로 본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의문을 가져야 한다. 과연 산업혁명만이 발전의 이유일까? 왜 산업혁명은 고대 문명의 발상지가 아닌 영국에서 시작됐을까? 왜 ‘19세기’에 시작됐을까? 증기기관을 발명한 토머스 뉴커먼과 제임스 와트가 다른 나라 사람이었다면 산업혁명은 늦춰졌을까?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가정은 필요하다. 역사적 사건의 시작과 이유에 대한 근거를 밝혀 주기 때문이다.

이제 겨우 먹고사는 걱정에서 해방되자마자, 인류는 다가올 미래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환경오염에 따른 기후변화, 인구 폭발(한국의 경우는 인구절벽), 날로 심화되는 불평등으로 인한 사회적 불안, AI의 일자리 뺏기까지 대다수가 인류에게 부정적인 신호라는 게 저자의 견해다. 그렇다면 정말로 인류의 미래는 어두운 것일까? 어떤 학문보다 데이터를 신봉하고, 증명과 검증에 철저한 경제학은 인류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할까? 경제학자인 저자는 책의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여정 끝에서 나온 전망에 대해 미리 말해 두자면 기본적으로 희망적이다. 지구의 모든 사회를 아우르는 궤도를 봐도 그러하며, 이런 관점은 기술 발전을 진보로 보는 문화적 전통과도 일치한다. 앞으로 명백히 밝히겠지만, 인류의 여정 밑바탕에 있는 거대한 힘이 계속 가차 없이 작동하는 가운데 교육과 관용, 그리고 더 높은 수준의 성 평등이야말로 인류를 향후 몇십 년 또는 몇 세기 동안 번창토록 할 열쇠이다.(p.21)

 


 

이 책은 2부 12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인류의 여정〉, 2부 〈부와 불평등의 기원〉이다. 1부에는 「첫걸음」, 「정체의 시대」, 「보이지 않는 폭풍」, 「전력 질주」, 「대변혁」, 「약속의 땅」 등 6개의 장이 있고 2부에서는 「화려한 삶, 비참한 삶」, 「제도의 지문」, 「문화적 요인」, 「지리의 그늘」, 「농업 혁명의 유산」, 「아웃 오브 아프리카」 등 6개장이 뒤를 잇는다. 저자는 1부 〈인류의 여정〉에서 ‘경제적 활동’의 범위를 저 멀리 30만 년 전으로까지 확대해 인류를 고찰한다. 인류의 몸부림이 산업혁명으로 결실을 맺기까지의 ‘여정’을 인구, 소득 데이터를 바탕으로 설명한다. 2부 〈부와 불평등의 기원〉에서는 아프리카에서의 탈출로 인한 인종과 문화의 분화, 먹고사는 문제와 제도의 다양화, 산업혁명 발생에 시간차가 발생한 이유와, 그 차이가 끼친 영향 등을 지리와 문화의 요소를 더해 설명한다.

인류사를 경제학으로 고찰하기 위해, 30만 년 전 호모사피엔스의 등장과 아프리카에서의 대탈출로부터 연구가 시작돼야 함을 갤로어는 알고 있었다. 경제‘학’은 애덤 스미스로부터 시작됐지만 ‘경제’가 스미스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님을 증명하듯이 말이다. 인류의 과거, 현재, 미래를 한 권의 책으로 설명하기 위한 시도는 학문과 시간의 경계를 넘어 진행 중이다. 20세기에는 생태학자이자 지리학자인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포문을 열었고, 21세기의 포문은 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열었다는 게 중론이다. 그리고 경제학자 갤로어가 등장했다고 출판사 측은 소개한다. 출판사가 이 책 『인류의 여정』이 18세기 맬서스에 이은 경제학의 거대한 담론이라는 점을 뒷받침한다. 특히 인류 문명과 발전의 차이를 경제학을 통해 본격적으로 풀어낸 첫 책이자, 맬서스의 실패, 다이아몬드와 하라리의 주장에서 풀리지 못한 의문과 아쉬움을 모두 보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사실 이 책은 인류의 여정 중 2부의 〈부와 불평등의 기원〉을 쓰기 위해 시작됐다고 독자는 이해한다.

 


 

저자는 인류 발전 과정 30만년을 '뇌와 손'으로 풀어낸다. 30만년 동안 뇌와 손은 합쳐 상승 작용으로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발전 과정을 거쳤다고 말한다. 빠를 때는 인구 밀집 도시의 생성으로 전염병과 전쟁이 뒤따랐으며, 느릴 때는 또한 전염병과 전쟁 후에 인구 팽창으로 노동력이 큰 힘을 발휘해 발전을 거듭해왔다는 설명이다. 이를 설명할 때도 여러 가지 이론 중에서 설득력이 있는 이론을 앞세워 자신의 가설을 증명하기도 한다. 최대한 기존 연구나 이론을 수용하면서 자신의 논리를 펼치는 방식이다. 그렇지만 자신이 세운 가설에 대한 증명 과정은 독창적이고 합리적이다. 인류 발전의 성장 동력은 뇌와 손이라고 말한 부분을 뒷받침하는 이론은 기존 이론이다. 강력한 뇌의 출현은 현재의 이론이다. 즉 인류 뇌의 무게는 체중의 2%에 불과하지만 에너지의 20%를 차지한다는 현대 이론을 역추적해 보면 인류뇌는 다른 종의 뇌보다 '주름 잡혀' 압축됐으며 태아의 머리가 산도를 통과하기 위해 작게 태어나지만 성숙기에 이르는 몇 년 간 미세 조정이 필요한 '반쯤 여문' 뇌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말이다. 다른 종의 포유류보다 훨씬 오랜 기간 걸려 성숙해진다. 또 발달에는 '생태적 가설', '사회적 가설', '문화적 가설'이 있으며, 또 다른 기제로 성선택((sexual selection)을 들고 있다.

또 다른 포유류와 구별해 주는 신체 기관은 바로 손이다. 뇌와 더불어 인류의 손도 부분적으로 기술과 발맞춰 진화했다는 것. 인류사를 보면 비슷한 성격의 상승 작용을 나타내는 되먹임 고리가 계속해서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환경의 변화와 기술 혁신은 인구를 증가시켰고, 달라진 거주지와 새로운 도구에 적응하도록 인류를 자극했다. 그렇게 인류는 환경을 다루고 새로운 기술을 창조하는 능력을 더욱 키웠다. 이 '주기'를 기억하라고 저자는 조언한다. 인류의 여정을 이해하고 성장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한 핵심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또 저자는 수십만 년 동안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작은 수렵·채집인으로 무리 지어 돌아다녔고, 이 과정에서 복잡한 기술과 사회적·인지적 능력을 개발했다고 말한다. 선사시대 인류가 더 능숙한 수렵·채집인이 됨에 따라 아프리카의 비옥한 지역 인구는 상당히 증가했고, 자연스럽게 인류가 이용할 수 있는 공간과 자원이 줄어들었다. 이제 인류는 기후 조건이 갖춰지자 또 다른 비옥한 토지를 찾아 다른 대륙으로 갈라져 나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현재 '아읏 오브 아프리카' 가설에 의하면, 전 세계 해부학상 현생인류 중 대부분의 선조는 다름 아닌 6만~9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대규모로 이주한 호모사피엔스의 후손이다. 그렇게 인류는 두 갈래로 아시아에 몰려갔다.

이후 신석기혁명으로 불리는 농업혁명은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처음 일어났다. 인류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수십만 년간의 기술적·사회적 변화를 거친 후에야 인류는 유목 생활에서 농업사회의 정착 생활로 넘어갔는데 불과 몇천 년 만에 이 변화가 모든 인류에게 퍼져 나갔다. 책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생각 정착지 중 하나인 예리코는 기원전 9,000년 전후에 확장되기 시작했으며 성서 시대가 본격화할 때까지 존속됐다. 예리코에는 각종 도구와 의례 용품을 풍족히 갖춘 집이 줄을 이었다. 예리코는 인구가 1,000~2,000명 수준으로, 돌로 쌓은 3.6미터 높이의 벽에 둘러싸인 구조였다. 또한 8.5미터나 되는 망루가 특징적이었다.

책에 따르면 인류의 여정에서 다시 한 번 전환의 순간이 나타났는데, 그 원동력은 기술 진보였다. 이러한 전환은 다시 기술 발전으로 이어졌다. 이 시기에 갑자기 혁신이 가속화되면서 식물의 작물화와 동물의 가축화가더욱 진전됐으며, 농작물의 재배와 저장, 통신, 운송 기술도 향상됐다. 또 문자로 기록하는 기술이 5,500년 전 메소포타미아 남부 수메르에서 처음 나타났다. 그러나 지시과 기술이 이토록 엄청나게 진보했는데도, 참으로 이상한 건 수명과 삶의 질, 그리고 물질적 안락함과 번영 정도로 가늠하면 인류의 생활 수준은 대체로 정체됐다는 사실이다. 이 수수께끼를 풀려면 우리는 이 정체의 근본 원인인 '빈곤의 덫'을 더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 이처럼 저자는 다음 장을 마련하며 한 장을 끝내는 노련함을 책에서 보여준다.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해 사전에 꽤 깊은 연구가 곁들여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경제 성장은 정말 환경 보존과 양립할 수 없을까? 우리는 둘 중 하나를 꼭 선택해야 할까? (…) 국가 간 분석을 보면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탄소 배출은 인구 증가와 더불어 늘어나며, 그 인구의 물리적 부가 증진될 때도 늘어나는데, 부의 증진보다 인구 증가에 따른 배출량 증가가 훨씬 큰 폭으로 나타난다. (…) 인구변천이 시작된 후 낮아진 출산율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인구가 환경에 가하는 부담을 줄였다.(p.143) - 「6장 “약속의 땅”」 중에서

 

어떤 지역에서는 성장 활력을 높이는 지리적 조건과 다양성 덕분에 문화와 제도의 특성이 환경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고 기술 진보가 가속화됐다. 몇 세기가 지나자 이러한 과정에서 촉발된 변화로 인적자본에 대한 수요가 폭발하고 출산율이 갑자기 낮아졌으며, 그에 따라 더 일찍 현대의 성장 체제로 전환이 이뤄졌다. 다른 곳에서는 이런 상호작용이 사회를 더 느리게 움직였고, 맬서스가 묘사한 야수의 아가리를 벗어나는 시기가 늦어졌다.(p.271) - 「12장 “아웃 오브 아프리카”」 중에서

 

저자 : 오데드 갤로어(Oded Galor)

 

브라운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이자 ‘통합성장 이론’의 창시자이다. 통합성장 이론은 인류사 전체에 걸친 개발, 번영 그리고 불평등의 원인을 밝히고자 하는 시도에서 출발했다. 갤로어는 경제학자로서 일생을 바쳐 얻은 통찰을 세계 각지에 공유했으며, 그렇게 얻은 통찰과 발견을 모아 『인류의 여정』을 썼다. 『인류의 여정』은 대중을 대상으로 한 갤로어의 첫 책으로 전 세계 30개국에 출판됐다.

 

역자 : 장경덕

 

작가 겸 번역가. 33년 동안 저널리스트로서 자본주의 정글을 탐사하며 석학들을 두루 만났다. 매일경제신문 런던 특파원, 금융팀장, 논설실장을 지냈다. 『증권 24시』 『부자클럽 유럽』 『정글노믹스』 『정글경제 특강』을 썼고,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21세기 자본』 『불평등을 넘어』 『좁은 회랑』 등을 옮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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