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한복판의 유력 용의자
고호 지음 / 델피노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을 둘러싼 피해자 배상 문제는 해방 88년이 지나는 현 시점에서 또 한번의 방향 전환이 예상되고 있다. 이와 관련한 가장 최근의 신문 기사가 보도됐다.

재일(在日)경제인들을 중심으로 한 재일교포들이 정부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해법을 환영하며 피해자들의 제3자 변제를 맡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 기여하겠다고 10일(2023년 3월) 밝혔다. ‘자이니치(재일 한국인)’ 차원에서 일본의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 대신 배상금을 변제하는 재단의 기금조성에 참여하겠다고 밝히는 것은 처음이다. 이들은 17일 한일정상회담 후 일본 도쿄(東京) 모처에서 기여 의사를 공식 발표할 계획이다. 재일교포 2세인 김덕길 카네다(金田)홀딩스 회장(77)은 10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신오쿠보(도쿄 내 코리아타운)에서 사업하는 재일동포들이 ‘한일관계가 개선되는 것에 대해 우리도 기부하고 움직여야 하지 않겠냐’고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현재 여건이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회장이 집계한 바에 따르면 11~12명이 참여 의사를 밝혔고 17일 공식 발표 후 그 규모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김 회장은 “2018년 대법원에서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난 이후 한일관계가 악화돼서 많은 기업인들과 교민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면서 “해법 발표로 양국 관계가 좋아지면 혜택도 입게 될 텐데 배상 문제에 기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다. 이어 “한국 내 일부 여론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당초 27일쯤 발표하려고 했는데 한일 관계 개선에 보탬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 날짜를 앞당겼다”고 전했다. 앞서 민단은 7일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재단이 대신 판결금을 지급한다는 해법을 발표한 데 대해 담화문을 내고 환영의 뜻을 밝힌 바 있다.

민단은 “양국 최대의 현안이 된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한국 주도로 해결하겠다는 결단으로 악화한 한일 관계 개선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일본 정부도 이에 호응해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 구축에 성의 있는 대응에 나서달라고 주문했다.(동아일보 2023-03-10)

 


 

이에 앞서 지난 3월 6일 (한국) 정부가‘제3자 병존적 채무 인수’(3자 변제) 방식의 강제징용 피해배상 해법을 발표한 가운데 시민들은 “전범 국가와 기업에 면죄부를 주려고 한다”며 “피해자를 무시하는 굴욕적인 협상”이라고 규탄했다고 한 인터넷 신문이 보도했다. 정의기억연대, 민족문제연구소, 민주노총 등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한일역사정의공동행동(공동행동)은 이날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강제징용 피해배상에 대한 ‘제3자 변제’ 방안 발표를 규탄하는 촛불집회를 열었다. 참석자들은 ‘윤석열 굴욕외교 OUT’, ‘강제동원 정부해법 철회’, ‘윤석열 퇴진’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과 촛불을 들고 “3월 6일은 ‘제2의 국치일’”이라고 비판했다.

공동행동 측은 “윤석열 정부가 일본의 사죄배상이 빠진 굴욕적인 강제동원 해법안을 기어이 공식 발표했다”며 “전범 기업은 한 푼도 안 내는 일본 정부의 완승이며 최악의 외교참사”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해법안에 대해 이미 수차례 강제동원 피해자와 대리인단, 시민사회단체, 야당 국회의원들까지 반대 입장을 밝혀왔다. 그럼에도 윤석열 대통령은 해법안을 강행 발표해 ‘1엔도 낼 수 없다’는 일본에 면죄부를 부여하려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피고기업의 배상 대신 한일 경제단체가 기금을 조성해 미래세대에 장학금을 지급하겠다는 것은 그야말로 역사를 우롱하고 기만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윤 대통령과 박진 외교부 장관,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 서민정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을 ‘강제동원 계묘5적’으로 규정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과 관련 우리 대법원은 2018년 일제 강점기 당시 강제 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 1인당 1억 원씩을 배상하라고 최종 확정 판결한 바 있다. 일본은 그동안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 피해에 대해 개인에게 배상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해 왔으나 대법원은 2018년 10월 30일 이 협정은 정치적인 해석이며 개인의 청구권에 적용될 수 없다고 최종 판단한 것이다.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는 위안부 문제와 함께 일제 강점기 우리 국민의 인권을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법이 아닌 정부의 권력으로 자의로 이용한 데 따른 문제이다. 이 문제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일본제국이 전쟁수행을 위하여 국민생활의 말단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지배체제를 확립하였다. 노동자에 대하여는 노무수급조정령(勞務需給調整令)과 중요 사업장 노무관리령에 의하여 국가의 직접지배시책을 시행하여 징용제도로써 노동력 부족을 보충하면서 발생된 문제인 것이다. 이 징용령에 의하여 강제노동에 끌려간 사람의 수는 1941년에 26만(한국인 5만), 1942년에 31만(한국인 11만), 1943년에는 70만(한국인 12만)에 이르렀고, 1944년에는 종군위안부를 포함하여 약 200만 명의 학도동원까지 실시한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이렇게 징용으로 끌려나간 사람들 중에 희생된 자의 수가 적지 않았으며, 현지에 눌러앉은 채 귀국을 하지 못하고, 사할린 동포의 경우처럼 아직도 고생을 하며 귀국을 희망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독자가 강제 징용 문제를 갑자기 들먹이는 이유는 이 책 『도쿄 한복판의 유력 용의자』의 주인공인 준기가 태평양전쟁 강제동원희생자인 할아버지의 유골을 찾아 떠나는 손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특히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첫 삼일절 기념식에서 대통령의 발언이 일제 강제징용 문제와 맞물려 있어 대일 외교는 물론 민족적 정서에도 벗어나는 정부의 외교 문제가 연일 지상이나 방송에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소설 속 준기는 할아버지의 흔적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차츰 드러나는 불행한 과거사에 접근하면서 다른 사건에 접하게 되고, 막상 찾아간 곳에서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그때 받은 뜻밖의 문자. '할아버지의 유골을 찾고 싶다면 먼저 1986년에 실종된 유리코를 찾아내야만 한다'. 할아버지의 유골을 찾는 것과 실종된 유리코를 찾는 것은 무슨 관련이 있을까? 상상할 수조차 없던 ‘그곳’에서 메시지를 보낸 상대를 마침내 마주한 순간 깨닫는다.

 

 

전혀 상관없어 보이던 두 사건의 접점을 깨닫는 준기가 어떻게 이 소설을 끌고 가는지에 따라 저자가 최근 일본과의 강제 징용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정부의 외교 방향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때맞춰 발표된 소설이라 더욱 관심이 간다. 이 작품의 저자는 탄탄한 구성력으로 이미 인정받은 고호 작가로서, 이 작품에서도 예상을 뒤엎는 반전에 독자들은 또 한 번 놀라고 감탄하며 읽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일본을 꾸짖는 것보다 우리에게 진정한 반성과 용서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는 작품이다. 배경은 2025년 일본이다. 아이코 공주가 납치됐다. 자신의 할아버지가 태평양전쟁의 강제동원희생자라고 알고 있던 손자인 준기는 우연한 기회에 기밀 해제된 외무부의 문건을 접한다. 그 안엔 일본 홋카이도에 끌려갔다는 얼굴도 모르는 할아버지의 비밀이 담겨 있었고, 준기는 할아버지의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 계획을 세운다. 그것은 바로 일본 왕실의 유일한 적통인 아이코 공주를 납치하는 것. 전 세계 언론을 집중시켜 문제를 해결하려던 당초의 계획은 갑작스레 날아온 익명의 메시지 한 통으로 제동이 걸리고 만다.

이 작품은 한국, 일본, 북한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제국주의와 냉전 시기에 동북아에 만연했던 첩보와 납치, 실종을 실감 나게 다룬 미스터리 추리소설이다. 굴곡진 역사의 격랑을 겪으며 가족을 잃어야 했던 이들의 아픔을 국적과 이념을 초월하여 그려냈다. 늘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포착해 탄탄한 스토리로 풀어내는 고호의 작품은 우리의 역사, 특히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근현대사의 중요 사건의 장면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점이 독특하다. 지금껏 발표한 『평양에서 걸려온 전화』, 『악플러 수용소』, 『노비 종친회』 등의 작품도 우리 사회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에서 시작해 그간 묻혀있던 사건들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고호 작가가 이번에는 태평양전쟁 강제동원희생자 문제와 납북 일본인 문제를 화려한 미스터리로 포장하여 가지고 돌아온 것이다. 독자들의 큰 관심을 모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독자가 이 책을 읽으며 놀랐던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지만 마치 올해 삼일절 기념행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기념사가 나라 안팎의 온갖 행태와 소문이 퍼질 것이란 사실을 미리 알기라도 한 듯 작품 속에 은근히 비슷한 사태를 예견하고 있다.

 

"세월이 상처를 덮어줄 순 있어도 죄까지 덮지는 않는단다."

부왕이 나루히토가 어린 시절 학교에서 이지메를 당하고 울며 돌아온 자신에게 해준 말이 귀에 맴돌았다.

굳이 가해자들을 응징하려 애쓰지 마라, 시간이 피해자의 상처를 덮을지언정 가해자들의 죄는 덮지 않노라고. 언제고 대가는 치르게 된다고. 아이코는 뒤로 고개를 푹 기댔다. 고통스러운 듯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아이코 그거 알아?"

"응?"

"우리 할아버지와 함께 일본으로 끌려갔던 몇몇 분은 돌아오셨어. 살아오신 것만으로도 기적이었지. 하지만 사람 마음이 그렇잖아. 그곳에서 고생만 했지 제대로 된 품삯을 받지 못했으니 억울할 수밖에."(p.118)

 


 

이 책은 모두 11장으로 구성되었다. 평범한 제목이긴 하지만 장의 구분을 나누는 것은 시간과 공간의 초월을 위한 것이고, 또 사건의 반전의 주체가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장 눈에 띈 것은 각 장의 제목 아래 장의 성격을 미리 암시하는 듯한 내용의 인용문을 적어 놓은 점이다. 이름을 말하면 누구나 알 만한 인물의 유명한 말이나 문장들이다. 1장 「1991년」, 2장 「받은 메일함」, 3장 「재팬 넘버 투」, 4장 「문수용」, 5장 「유리코」, 6장 「문수용」, 7장 「유리코」, 8장 「문수용」, 9장 「기다리는 마음」, 10장 「신이 되기를 거부하다」, 11장 「다시, 1991년」으로 이어진다.

1장의 제목 아래에는 "그 사람이 바로 나였다."는 말이 있다. 톨스토이의 『사랑이 있는 곳에 신도 있다』에서 나오는 문장이란다. 이 장의 내용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유심히 읽어가면 더 재미가 있을 듯하다. 2장에는 일본의 유명한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인격 실격』에 나오는 문장이다. "편파적일 것이 뻔하므로 인간에게 호소해봐야 소용없다고 생각했습니다." 3장에는 제목 아래를 읽기 전에 방송 보도문이 먼저 적혀 있다. "방금 들어온 속보입니다. 도쿄 경시청은 3월 21일 오늘 오후, 가쿠슈인에 재학 중인 아이코 공주가 실종되었음을 밝혔습니다. 다시 알려드립니다. 오늘 오후···" 그리고 제목 「재팬 넘버 투」 아래에 같은 형식으로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1888년 동생 테오에게 쓴 편중 중에서 인용한 "지금 이곳은 바람이 불고 비가 온다. 혼자가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구나."가 쓰여 있다. 4장엔 에밀 졸라의 『패주』의 문장 "전쟁이란 죽음 없이 존재할 수 없는 생명이야."라고 적었다. 5장엔 "서글픈 건 나는 진리를 알고 있는데, 사람들은 모른다는 것이다. 아, 혼자만 진리를 알고 있다는 건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우스운 자의 꿈』의 문장을 인용했다. 6장엔 마크 모펫의 『인간 무리』에서 "한 사람에게 국가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정신장애 트라우마, 비극을 불러온다."는 문구를 게재했다.

 


 

7장에는 제임스 볼드윈(미국의 저명한 흑인 소설가)가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는다. 좀 더 정확히 말해, 그들이 내 말을 믿지 않는 건 내 말이 사실이기 때문이다."라고 한 말을 인용해 적었다. 8장엔 한나 아렌트의 『정치에서의 거짓말』 중의 "진실이 정치적 덕목으로 간주된 적이 있었으며, 거짓말은 정치적 거래에서 정당화가 가능한 도구로 늘 거래되어 왔다."는 문장을 인용 기록했다. 9장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서 인용한 말이다. "별 하나하나가 누군가에게는 태양일 수 있다." 10장엔 알렉산드로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 중의 "우리는 일부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억압할 권리를 가진다는 그 「관념자체」를 공개적으로 탄핵할 의무가 있다."는 말을 썼다. 마지막 11장엔 『신당서(新唐書) 원행충전(元行沖傳)』 중의 "바둑을 두는 사람은 길을 잃기 쉬우나 도리어 곁에서 보는 사람은 형세를 읽을 줄 안다.(當局者迷 傍觀必審, 당국자미 방관필심)"는 말을 적었다.

 

늘 그렇듯이 인간은 그래서 재밌다. 가르침을 받으며 자랐음에도 가르침대로 살지 않는다.(p.258)

 

저자 : 고호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데는 자음과 모음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 평소 지론이다. 그런 고민이 만들어낸 세계로는 『평양에서 걸려온 전화』와 『악플러 수용소』, 『과거여행사 히라이스』, 『기다렸던 먹잇감이 제 발로 왔구나』, 『노비 종친회』 등이 있으며, 사회적 이슈를 문학적으로 녹이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지금도 꾸준히 또 다른 세계를 만들기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단법인 이효석문학선양회와 황토현 문학상, 의정부전국문학상, DMZ문학상 등에서 수상한 바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