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작은 책방에 갑니다 - 일본 독립서점 탐방기
와키 마사유키 지음, 정지영 옮김 / 그린페이퍼 / 2023년 2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매우 흥미롭다. 특히 독립출판과 독립서점으로 존재하는 이른바 '동네 책방'이 우리나라에서 성행하는 데 앞서 일본에서 수십 년 전부터 독립서점이 존재해오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책 『오늘도 작은 책방에 갑니다』는 일본 전역의 책방을 직접 취재하여, 개성과 매력을 뽐내는 23군데 독립서점을 생생하게 소개한 서점 탐방 에세이다. 이 책은 작은 책방의 매력을 고스란히 전달하기 위해, 책방 구석구석을 향한 따스한 시선이 담긴 사진을 풍부하게 실었다. 또한 책방 대표나 직원을 인터뷰하여 각 책방이 탄생한 비화나 운영 철학, 책을 선별하는 기준 등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23개의 ‘소우주’가 들려주는 각양각색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작은 책방의 매력에 푹 빠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도 독립서점을 운영하며 살고 싶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대부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거나 책을 읽으며 노년을 보내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다. 독자 지인 중에도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책을 읽고 직장 생활을 성실하게 하는 사람이 있어 하는 말이다.

이 책의 저자 와키 마사유키는 책과 책방을 무척 좋아해서 관련한 일이라면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뛰어든다고 한다. 작은 책방의 매력을 널리 알리는 활동도 오랫동안 해 오고 있으며, 이 책의 출간 역시 그런 활동의 연장인 셈이다. 최근 독립서점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높아지고 전국적으로 매장이 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이 책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이 책을 번역 출판한 그린페이퍼 측은 출판사의 소개글에 한마디도 보태지 않고 저자의 목소리만을 책에 담았다. “작은 목소리야말로 진실을 담고 있다.”는 이 책의 포인트가 동네 책방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살 것으로 믿는다는 의미로 읽힌다.

 


 

독자도 책을 좋아하지만 서점을 운영하고 싶다는 꿈은 가져본 적이 없다. 책이 많아져 집안이 어지러운 점이 싫기도 하지만 책 보관에 대한 열정은 없는 편이어서 많은 책을 가져본 적이 없어 그럴지도 모른다. 많은 책을 소장한 분들은 "많은 책이 옆에 있으면 명상할 때처럼 마음이 맑아진다"거나 "책과 함께 있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말처럼 많은 책을 소장해본 적이 없어서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일본 간토, 주부, 간사이, 주고쿠, 그리고 규슈까지 5개 지역으로 나누어 모두 23군데 작은 책방을 소개한다. 책방을 열게 된 사연이나 운영하는 방식, 대표의 관심사와 주력 분야가 모두 달라 흥미롭다. 직접 발로 찾아다닌 저자가 미리 계획을 세워 탐방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유다. 당연히 이들 서점은 운영자의 취향에 따라 매장의 분위기 또한 제각각이다. 저자에 따르면 책방에는 책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책방 주인이 그곳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음악이든, 피어나는 향기든, 공간 자체이든 그런 것들이 모여 책방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가장 먼저 소개된 도쿄에 있는 〈스노 셔블링〉은 서점 대표가 좋아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에서 따온 ‘문화적 눈 치우기’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동네 서점이 흔히 그렇듯이 이 책방도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이리 돌고, 저리 꺾어 모퉁이 안쪽으로 난 어둑한 길을 어렵게 찾아들면 계단이 나타나는 등 미로찾기가 따로 없다. 그러나 일단 들어가 보면 별천지가 펼쳐진다. 본래 창고였던 휑뎅그렁한 공간에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엔티크 책상과 잭장이 나열되어 있고, 여기저기 어수선하게 책이 놓여 있다. 난방 기구와 사슴 박제까지 장식되어 있어 일본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부분도 엿보인다. "책방을 하려고 마음먹고 세계 각지의 책방을 돌아다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35살이 되었더군요"라는 서점 주인 나카무라씨의 웃음엔 세상의 모든 책방에서 얻은 영감이 떠오르는 듯하다.

 


 

JR 우에노역, 이리야 출구로 나와서 국도 4호선을 건너면 이어지는 뒷골목에 책방 〈루트 북스〉가 자리하고 있다. ㅇ에노역의 시노바즈 출구나 히로코지 출구와는 달리 이 지역은 비교적 조용한 분위기를 띤다. 책방의 입구에는 선인장과 다육 식물이 옹기종기 모여 초록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투박하지만 운치 있는 공간이 펼쳐진다. 독특한 감초그이 테이블과 책장, 곳곳에 비치된 식물들이 책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이 책방은 주택이나 상점을 리모델링하는 건축 회사 유쿠이도가 운영하고 있다고 저자는 소개한다. 대표 마루노 신지로 씨는 원래 책방을 열 마음이 없었다고도 한다. 이전의 사무실이 비좁아져서 옮길 곳을 찾다가 현재 책방의 바로 앞에 있는 건물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1, 2층만 빌리려 했지만, 그 위층도 공실이어서 건물 전체를 빌리기로 결정했다. 위층을 어떻게 활용할지 몇 가지 방안을 생각하다가 책방이라는 형태에 마음이 쏠렸다는 게 대표의 말이다. 만남과 배움이 공존하는 자세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란다. 영어나 도예 선생님을 초빙해서 다양한 지식을 배우며 친구도 만나는 공간, 선생님이 없을 때도 이곳에 오면 언제든지 책이 선생님이 되어 주는 공간으로 루트 북스의 문을 연 것이다.

지금은 두 건물을 합쳐 〈루트 커먼〉이라고 부르고 있다고 했다. 두 건물이 어우러져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낸다고 표현한 것이라는 대표의 설명이다. 저자가 〈루트 박스〉에 와서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자유로움'이라고 한다. 마루노 씨는 예전에 책방이나 출판과 관련된 일을 한 적이 없었기에 업계의 관습이나 상식에 얽매이지 않는 참신한 시도를 할 수 있는 이유이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습기에 취약한 책과 식물을 함께 두는 등 일반적인 책방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일에 도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방을 다음과 같이 평한다. "책방이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았기에 책이 살아났다."(p.25)

 


 

나가노현 마쓰모토시, 마쓰모토역에서 나와 국도 143호선을 따라 동쪽으로 10분 정도 걸으면 관광지 마쓰모토에서 여행의 근거지로 삼고 싶은 책방, 〈시오리비〉가 자리하고 있다. 시오리비를 단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렵다고 저자는 말한다. 책방이지만 진(ZINE)이나 리틀프레스(little press)라고 부리는 독립출판물이 있고, 일반적인 책방에서는 파는 책의 거의 두지 않는다고 한다. 게대가 활판 인쇄기까지 있다. 도대체 〈시오리비〉는 어떤 곳일까? 책방 주인의 설명에서 호기심을 충족시킬지는 모르지만 "사실 책방이 아니어도 됐어요. 학생 시절에 카페에서 일하면서 느낀 건데요. 손님에게 커피를 내어 드리고, 거기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생긱고, 저는 돈을 받는 하나의 흐름 속에는 불행이 한 줌도 없었어요. 그때부터 지역 주민들이 집과 일터 말고도 안락하게 보낼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지요."

그런 생각을 품은 채 대학을 졸없한 후에는 마쓰모토에 있는 료칸(일본의 전통 숙박시설)에서 일했다. 그 후 나가노현 가루이자와에 있는 베이커리에서 수업을 받았지만, 다시 마스모토로 돌아와서 책방을 열게 되었다고 말한다. 독립출판물에 마음을 쏟았던 경험을 되살려 마스모토에는 개인이 고른 책을 파는 매장이 없다는 사실에 착안, 독립출판물을 진열하고 커피를 판매하는 현재의 스타일에 이르렀다고 진행 상황 설명에 고개를 주억거린다. 예전 매장을 열면서 얼마 안 되어 손님 중 한 분이 활판 인쇄기를 맡아 달라는 제안을 해서 과거 매장으로는 들여놓을 수 없어 지금의 매장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현재 매장은 예전과 비교해서 훨씬 넓고, 좌석 수도 많으며, 진열된 책도 만핟. 안쪽이 훤히 비치는 입구에서 안을 들여다보면 얼핏 카페 같지만, 2증에 가면 한쪽 벽면을 꽉 채운 책장이 기다리고 있다. 적당한 위치에 난 창문에서 지나치게 밝지 않은 자연광이 들어와 기분을 좋게 한다. 그렇게 책장을 보고 있으면 어느새 시간이 흘러간다. 기쿠치 씨가 "작은 목소리, 작은 규모의 책이야말로 진실을 담고 있어요"라고 말하며 책의 배경과 스토리를 이야기해 주었다.

 


 

〈유레키 쇼보〉 책방에서 저자는 여행을 테마로 한 책방은 일본에 여러 곳 있지만, 〈유레키 쇼보〉는 그 어느 곳과도 다르다고 말한다. 이 책방은 나가노현 나가노시, 일본을 대표하는 사찰 젠코지의 참배길에서 조금 안으로 들어간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 책방의 목적이 여행을 떠나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면? 여행은 이 책방 안에 있으면 할 수 있단다. 이곳에는 전 세계가 한데 모여 있으므로 세상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것. 무슨 '말장난'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저자의 의도는 이곳 책장을 보면 확실히 알게 된다고. 대만, 중국, 인도, 영국, 미국 등 전 세계 여러 나라에 관련된 책이 지역과 나라별로 빼곡히 진열되어 있다. 그야말로 책으로 여행을 떠나는 공간이다. 이런 책장을 보고 있기만 해도 마음이 끌리는데, 미야지마 씨(주인)는 한 세대를 풍미한 전설의 책방 직원이 스승이었다고 털어놓는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 서점 직원으로 7~8년 일했어요. 그때 스승 같은 분이 계셨는데 1980년대 도쿄 이케부쿠로의 〈리브로〉 서점을 책 마니아들의 성지로 만든 이마이즈미 마사미쓰 씨였다고 한다. 어떤 책과 어떤 책을 함께 놓을 것인지, 어떻게 해야 책장을 매력적으로 꾸밀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요즘 말하는 '문맥 책장' 같은 것이지요."(p.63) 그때 그 기술을 철저히 배워 오느날 이 책방에서 곳곳에 살아 숨쉬고 있을 거라고 말한다.

책장에는 인문서와 해외 문학이 많지만, 한편으론 만화나 문고본처럼 읽기 편한 책도 빠뜨리지 않고 갖추었다고 저자는 전한다. "사람들이 책을 접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 싶어요. 책방에 가끔 오는 사람이 집어 들기 쉬운 책을 놓아두는 것은 그 때문이에요. 중고 책방이니까 중고 가격이 높을 두는 게 나을 수도 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온라인 서점에서 1엔에 살 수 있는 책이라도 훌륭한 책들이 많아요. 여기에서 그런 책과 만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서점 주인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하다.

 


 

효고현의 〈북스+고토바노이에〉는 한 달에 두 번만 여는 독특한 책방이다. 운영 방식도 독특하지만, 살고 있는 집의 일부분을 책방으로 만든 것도 특이하다. 게다가 벽 대신 책장으로 공간을 나눈 건축 방식도 색다르다. 책방을 열고 나니 이웃이나 친구들이 책방 방문을 핑계 삼아 더 자주 드나든다고 한다. 책을 매개로 이야기꽃이 쉬지 않고 이어지는 곳이다. 한밤중에만 문을 여는 심야 책방도 있다. 책방 대표는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했는데, 낮에는 다른 일로 생계를 유지하고, 밤에는 책방을 운영하며 문학의 꿈을 펼친다. 책방 이름 〈니주dB〉(20데시벨)은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처럼 보통은 들리지 않지만 귀를 기울이면 들리는 소리라고 한다. 깊은 밤, 불빛에 이끌려 들어온 손님들은 소파에서 잠을 자고 가기도 한다. 미노우 북스 & 카페는 후쿠오카의 우키하라는 산기슭 작은 마을에 있다. 인구가 적은 지역이니 상업 활동을 하기에는 불리한 곳이지만, 대표는 지역의 문화적 인프라를 만든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잡지, 요리, 의식주 등 생활에 관련된 책이 주요 테마지만, 지역민들이 일상에서 아트와 관계를 맺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진집 같은 아트북도 소개하고 있다.

운영을 중단한 역사에 차린 독특한 책방도 있다. 히나타 문고는 아소산의 웅대한 자연이 함께하는 구마모토의 미나미아소미즈노우마레루사토하쿠스이코겐역 안에 있는 책방이다. 일본에서 가장 이름이 긴 역 안에 일본에서 가장 행복한 책의 공간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광산에서 광물을 운반하던 열차가 운행을 멈추며 역사도 필요 없게 되었지만, 책방과 카페가 운영되면서 다시 사람들이 찾는 지역의 명소로 자리잡은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23개의 서점은 대표의 이력이나 성격도 모두 다르고, 판매하고 있는 책의 주요 테마나 분야도 저마다 개성이 있다. 운영 방식이나 매장 형태도 하나하나가 특색이 있다. 건축 회사에서 운영하거나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해 외관이 독특하고 세련된 곳도 있지만, 100년 가까이 된 낡은 주택을 리모델링하거나 그대로 사용하여 따뜻하고 정겨운 느낌을 주는 공간도 있다. 저자의 다정한 취재와 책에 실린 풍부한 사진이 23개의 각 책방이 가진 표정과 속살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책이 진열된 모습, 책등의 감촉, 흐르는 배경 음악, 감도는 향기까지, 마치 그 장소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어떤 틀에 얽매이지 않고 저마다가 이렇게 다양하고 특색 있다는 점은 동네 책방, 작은 책방만의 매력일 것이다. 우리보다 한발 앞서 지역의 독립서점 문화를 만든 일본의 책방을 탐방하면서, 책방을 만든 이와 드나드는 이들의 목소리는 우리 서점 문화 발전에도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들이 분명히 있다.

 

저자 : 와키 마사유키

와세다 대학 문학부를 졸업했다. 2010년부터 작은 책방의 매력을 전달하는 ‘BOOK SHOP LOVER’ 활동을 시작했다. 책과 책방과 관련한 일이라면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다각적으로 도모하고 있다. 펴낸 책으로 『일부러 가고 싶은 도쿄 거리의 책방』이 있다.

 

역자 : 정지영

대진대학교 일본학과를 졸업하고 출판사에서 수년간 일본 도서 기획 및 번역, 편집 업무를 담당하다보니 어느새 번역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현재 일본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주요 역서로는 『생각 정리를 위한 업무의 기술』,『생각 정리를 위한 프레젠테이션의 기술』,『영업은 대본이 9할』,『더 모델: IT 솔루션 영업 프로세스』,『제대로 생각하는 기술』,『일등 영업맨 꼴등 영업맨』,『돈이 쌓이는 가게의 시간 사용법』,『습관 디자인 45』,『시간의 기술』,『유능한 상사 무능한 상사』 외 다수가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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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이 불안을 말한다 - 몸으로 드러나는 마음의 징후에 귀 기울이고 대처하는 법
엘런 보라 지음, 신유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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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과연 오롯이 마음의 문제이기만 한 걸까? 이 책 『내 몸이 불안을 말한다』는 마음의 병이라 일컫는 '불안'에 대한 경험과 연구 결과 상당 부분 신체적 결함으로부터 오는 정신적 훼손이라는 점을 찾아낸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주장을 담아낸다. 저자 엘런 보라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서 실제 임상 경험을 통해 불안이 신체 내 불균형에서 비롯된 사례를 반복적으로 확인했다. 불면, 배앓이, 초조함, 비관적인 생각 등 우리가 느끼는 감정적, 신체적 불편함은 인체의 스트레스반응에 의한 결과일 때가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다. 이렇듯 신체의 균형이 깨져서 생기는 불안(‘가짜 불안’)은 비교적 쉽게 회복될 수 있다. 저자는 ‘가짜 불안’에 곧바로 대처하는 다양한 실천 방안을 가르쳐줌으로써 사람들이 스스로 불안에 잘 대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리고 이런 생리적 욕구를 다스리고 난 후에 남는 증상, 즉 내면의 긴급하고 간절한 목소리(‘진짜 불안’)에 차분히 귀 기울이면 우리 삶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나침반을 찾아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실용적이고 유익하며 깊이 있는 희망을 선사하는 『내 몸이 불안을 말한다』는 불안의 근원을 온전히 설명하고 치유와 성숙을 위한 로드맵을 상세히 제공한다. 저자 엘런 보라도 불안으로 고통스러웠던 순간들을 겪었다고 밝힌다. 컬럼비아대학원 의학대학원과 마운트시나이병원에서 정신과 레지던트로 일할 당시 저자는 “전혀 평온하지 않았다”라고 고백한다. 수년 동안 자신의 불안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다방면으로 고민하고 대안적 접근들을 두루 연구하고 시도한 끝에 마침내 저자가 찾아낸 방법은 몸의 상태와 일상의 습관부터 먼저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불안은 단순히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몸 전체의 문제라는 새로운 관점에 착안했다.

 


 

저자에 따르면 불안은, 그것이 생활 습관의 결과든 아니면 자신의 내면이 보내는 메시지든 상관없이 최종 진단이라기보다는 탐구의 시작에 가깝다. 즉 불안 자체는 문제가 아니며, 그저 우리 삶에서 다른 뭔가가 잘못됐음을 알리기 위해 우리 몸과 마음이 보내는 경고의 방식이다. 이는 우리의 몸, 마음, 생활, 또는 환경에서 뭔가 균형이 깨졌다는 증거이며, 우리는 호기심을 품고 다양한 시도를 함으로써 이러한 요소들을 다시 균형 잡힌 상태로 되돌리려고 노력할 수 있다.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길은 제일 먼저 그 근원이 일상적인 습관의 결과인지 아니면 좀 더 깊은 불안의 발현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를 파악하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저자 역시 소화, 호르몬, 염증 문제로 고군분투할 당시 주류 의학만으로 자신의 문제를 다루기 어렵다는 것을 잘 몰랐다. 여러 가지 대체 의학이나 대안 의학을 공부하고 시도한 끝에 몸과 생활에 균형을 되찾았다고 한다. 이에 수년의 시간이 걸렸다는 점도 밝히고 있다. 레지던트 마지막 해에 자신의 일에서 좀 더 의미를 갖고 스스로를 치료할 길도 찾기를 원했다. 이때 병원 근무 외에 대안적 접근법으로 시작한 것이 침술법이었다. 이를 마치고 또 브롱크스에 있는 중독클리닉에서 환자들에게 침 놓는 일을 했다. 선택과목 시간에는 애리조나대학교 앤드루 웨일 센터에서 통합의학 훈련을 이수했고, 뉴욕에 돌아와서는 통합의학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에게 멘토링을 받았다. 최면 치료사 밑에서 견습 생활을 했으며, 발리에서는 요가 강사가 되기 위한 집중교육 프로그램을 수강하고 아유르베다(인도의 전통의학)를 처음 접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기능의학을 연구하고 사이키델릭 의학과 그것이 정신건강의학에 미칠 수 있는 잠재적 영향을 탐구하는 쪽으로 넘어갔다. 저자는 만약 자신을 위해 이처럼 특별한 시도를 해보지 않았더라면 불안을 치유하는 방식이 이토록 다양하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후 10년간 주변 환경과 불안의 정도가 각기 다른 환자들을 만나왔다. 그 중 대부분은 일상적인 습관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크게 나아졌고, 이후 필요한 경우에는 감정적인 부분까지 좀 더 깊이 다루었다. 아주 약간의 도움만으로 좋아지는 사례도 많았다. 오랫동안 불안과 소화불량, 원인 불명의 발진을 겪어온 스물다섯 살 여성 환자가 그랬다. 그녀의 식습관을 샅샅이 검토했고 염증을 일으킬 수 있는 음식을 파악하여 금지했다. 한 달 만에 그녀는 소화 기능을 되찾았고 발진이 사라졌으며 불안도 누그러졌다.

정반대로 수년간 내게 치료를 받았던 저넬이라는 여성은 조증 발작으로 원치 않게 병원에 입원했따가 30대 중반에 처음 저자를 찾아왔다고 한다. 당시 그녀는 양극성장애(조울증) 진단을 받았고 많은 약물을 복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저자와 치료진은 저넬이 양극성장애가 아닌, 하시모토 갑상샘염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자신의 면역체계가 갑상샘을 공격해서 조울증 증상과 비슷하게 우울 상태와 흥분한 상태가 번갈아 나타나는 질병이다. 치료진은 그녀의 갑상샘을 치료하기 위해 식단과 생활 방식을 바꾸는 데 집중했고 신경안정제를 서서히 줄여나갔다. 지넬의 불안은 눈에 띄게 감소했고 이후 다시는 조증 발작이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도 불안장애는 더 이상 드문 병증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나라 불안장애 환자가 86만 명이 넘는다는 통계가 있는데, 2020년 대비 32.3퍼센트 늘어난 수치라고 한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 2021년 진료 통계 기준). 불안해서 병원을 찾는 이들만 해도 이토록 많은데, 평소에 크고 작은 불안을 떠안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 짐작조차 안 될 정도다.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이 일상적으로 불안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불안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현실적이고 실천 가능한 방법을 제시한다. 환자는 물론 일반인 모두는 이 책의 내용을 읽고 이해한다면 질병으로부터 벗어나고 예방 차원의 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들을 숙지할 수 있다.

 

 

책에 따르면 인간은 위협적인 포식자의 등장처럼 일상적으로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수백만 년에 걸쳐 진화를 거듭하며 스트레스반응을 체내에 프로그램화한 상태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맞서야 하는 세상은 예전과 무척 다르다. 자극적인 음식, 수면부족, 끊임없이 쏟아지는 알림 등등 만성적인 스트레스요인에 시달린다. 단것을 먹은 후에 혈당이 뚝 떨어져도, 핸드폰을 보느라 늦게까지 깨어 있어도, 소화가 잘 안 되는 음식을 먹어도,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며 타인의 삶을 신경 써도, 우리 몸은 위험에 둘러싸여 안전하지 않다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불안’하다는 느낌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처럼 다양한 외부 위협으로 인해 인체 내부에서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겪는 스트레스와 불안은 비교적 쉽게 예방이 가능하며 아주 약간의 도움으로 좋아지기도 한다.

저자는 신체의 불균형 때문에 비롯된 불안을 ‘가짜 불안’이라 칭하며, 이 가짜 불안의 다양한 증상과 대응 방안을 가르쳐준다. 이는 수면 습관, 과학기술과의 관계, 식단, 그리고 소화기관·면역체계·호르몬 상태에 유의미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전략들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방법의 상당수는 비용이 저렴하고 스스로(물론 전문의를 만나기도 했다면 그의 조언과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동안 저자가 경험한 사례를 바탕으로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방법들을 제시하지만, 그중에서 자신에게 잘 맞는다고 느끼는 방법을 고르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 될 터이다.

독자들은 자신의 상황에서 가장 적절하고 제일 쉽고 편하게 실천할 수 있을 것 같은 방법은 무엇인가? 책을 읽다가 너무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면 그냥 넘겨도 되고 그러다가 나중에 다시 돌아와서 읽어봐도 된다. 쉬워 보이는 것부터, 그런 게 없다면 적어도 내가 할 수 있을 듯한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는 조언을 덧붙인다.

 


 

불안이 나를 괴롭힐 때, 뜻대로 안 되는 자신의 마음과 주변 상황만 탓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이 책을 읽으며 불안을 대하는 태도를 재고해보자. 내 몸이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는지 찬찬히 들여다보는 과정을 통해 의외로 쉽게 해결책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환자들을 만나고 치료 과정을 함께하며 저자는 불안이 신체 내 불균형에서 비롯된 사례를 반복적으로 확인했다. 불면, 배앓이, 초조함, 비관적인 생각 등 우리가 느끼는 감정적, 신체적 불편함은 인체의 스트레스반응에 의한 결과일 때가 생각보다 많다. 정신적으로 힘든 일을 겪으면서 발생한 증상일 수도 있지만, 당분, 카페인, 핸드폰 등 전혀 무관하게만 생각했던 요인들이 그 원인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 몸과 삶에서 균형이 깨진 부분을 살펴보라고 조언하는 편지처럼 불안을 받아들이는 태도다. 저자는 불안이 전하려는 메시지를 독자들이 좀 더 잘 이해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썼다. 물론 그 일이 단순하고 쉽지는 않을 것이다. 몸과 삶은 복잡하고, 변화는 어렵다. 그러나 이제는 정신건강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기회가 널려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핵심은 우리 모두 자기만의 안정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완벽한 건강이 아니다. 기분 좋게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 목표다. 만약 내가 삶을 충만하게 만드는 데 건강이 걸림돌이 된다면 소매를 걷어붙이고 문제를 바로잡자. 만약 내 몸을 건강하게 만들려는 노력 자체가 나를 힘들게 한다면 이번에는 힘을 좀 뺄 차례다. 이러한 균형을 염두에 둔 채 이제부터 어쩌면 당신이 겪지 않아도 될 불안을 일으키고 있을 삶의 측면들을 하나씩 들여다보자."(p.62~63)

 


 

독자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받은 것은 '가짜 불안'이라는 실체적 인지다. 독자는 사실 이 '가짜 불안'이란 단어가 정신의학에서 사용되는 단어인지는 잘 몰랐다. 이 책을 통해 '가짜 불안'을 이해하고, 실체를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저자의 치유책에 다가서고 싶은 생각을 많이 했다. 저자는 기존 정신의학에 의한 치료법보다는 우선 식습관이나 생활습관의 변화를 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대안의학 자세로 치유에 임한다는 사실이 인상적이다. 그러나 커피나 술을 끊어도, 식단관리를 통해 장이 튼튼해져도, 자연의 이치에 따르며 잠을 푹 자게 되어도, 불안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삶을 살 수는 없다. 그렇게 가짜 불안을 어느 정도 다스리고 난 후에 맞닥뜨리는 불안이 바로 내면의 긴급하고 간절한 목소리, 즉 ‘진짜 불안’이다. 단순히 위협으로 느껴지는 가짜 불안과 달리 진짜 불안은 명료함과 연민에서 나온다.

저자는 이런 감정을 억누르거나 피하기보다는 끌어안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어떻게 해야 불안을 멈출 수 있지?’라고 묻기보다 ‘내 불안이 말하려는 것이 무엇일까?’라고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불안을 저항이나 극복의 대상으로 인식하게끔 강요받아왔지만, 그러면 오히려 중요한 목소리를 놓칠 수 있다. 그러니 진짜 불안을 받아들이고 불안이 전하는 말을 경청해야 한다. 진짜 불안은 삶에 뭔가 궤도 수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중요한 지표 역할을 한다. 진짜 불안에 차분히 귀 기울이는 과정을 통해 삶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나침반을 찾아낼 수 있다.

저자는 가짜 불안과 진짜 불안은 얼핏 보면 상충하거나 모순되는 것 같지만 불안은 ‘둘 다/그리고(both/and)’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불안은 신체적이다. 세로토닌, 감마아미노부티르산(GABA), 장 염증, 코르티솔, 과민한 편도체와 관련이 있다. 한편으로 불안은 심리(psychology)와 정신적 욕구(spiritual needs)의 교차점에 존재하는 심리·정신적(psychospiritual)인 것이기도 하다. 목적과의 단절, 타인과의 단절, 나 자신과의 단절에 대한 문제다. 아무리 장을 치유하고 디카페인 커피를 마셔도 이런 문제까지 고쳐지지는 않는다. 그러니 우리는 이 두 가지 형태의 불안을 동시에 파악하고 대처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기억해라. 당신의 상사, 회사, 그리고 평생에 걸쳐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 훈련들은 휴식을 장려하지 않는다. 의식적으로, 주도적으로 여가를 위한 시간을 지정하고 그것을 기필코 지키는 책임은 온전히 나에게 있다. 먼저 자기 자신을 위한 톤을 설정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해라.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핸드폰을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지 말라는 뜻이다. 핸드폰과 거기에 가득 쌓인 알림들이 당신의 기분을 결정하게 하지 마라. 침대에서 일어나 그날의 목적과 분위기를 결정할 수 있을 때까지 충분히 자기 자신과 함께해라. 그다음에는 단 2분이라도, 잠옷 차림으로 베란다에만 서 있어도 좋으니, 밖으로 나가서 진짜 햇빛을 한 움큼 느껴라. 이는 일주기 리듬을 깨우고 호르몬 교향곡을 틀어줌으로써, 이제 아침이 되었으니 정신을 차리고 주의를 환기하고 움직이기 시작할 때임을 우리 몸에 알리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생체 타이머를 작동시켜서 밤이 되면 잠이 오게 하는 효과도 있다. 이처럼 밖에서 몇 분간 시간을 보내는 행위는 업무와 일상을 분리하고 하루에 약간의 여유를 만들어준다."(pp.280~281)

 

저자 : 엘런 보라(Ellen Vora)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홀리스틱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침술사이자 요가 강사이기도 하다. 예일대학교에서 영문학 학사학위를 받고 컬럼비아대학교 의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정신 건강에 기능의학적으로 접근하며, 환자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불균형을 뿌리부터 다룬다. 《내 몸이 불안을 말한다》는 저자의 첫 책이다.

 

역자 : 신유희

 

텍사스주립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다가 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오랜 꿈으로 번역가가 되었다. 현재는 글밥아카데미 수료 후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시간도둑에 당하지 않는 기술』, 『식탁 위의 미생물』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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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 지르게 하라, 불타오르게 하라 - 갈망, 관찰, 거주의 글쓰기
레슬리 제이미슨 지음, 송섬별 옮김 / 반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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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비명 지르게 하라, 불타오르게 하라』를 가벼운 자기계발 책쯤으로 여겼다가 호되게 당한 기분이다. '에세이'라고 해야 맞을지, 인문서라고 해야 옳을지도 가늠이 안 된다. 한마디로 어렵다. 어렵다는 것은 책의 저자 레슬리 제이미슨이 쓴 언어(단어)가 어렵다는 뜻이 아니다. 내용을 소화하기에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당초 이 책을 '글쓰기'에 대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프롤로그」도 없고 「작가의 말」, 「에필로그」도 없다. 「옮긴이의 말」마저 없다. 그저 글쓰기 책이란 소개글에 3장으로 이루어진 책이다. 부제에 「갈망, 관찰, 거주의 글쓰기」란 말이 없다면 정직하게 표현하자면 글을 쓰려면 이 정도는 치열하게 취재하고, 사유하고 거듭 써가며 퇴고하라는 한 권의 텍스트로서 내놓을 읽은 것 같다.

저자의 이력도 보통을 넘어선 것 같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우리 시대를 대변하는 미국의 젊은 작가'다. 저자는 특유의 통찰력과 엄밀한 지성, 독특한 주제와 그것이 지닌 겹겹의 의미를 파헤치는 성실성으로, 전작인 『공감 연습』, 『리커버링』을 발표하여 수전 손택의 글쓰기에 비견되면서 국제적인 독자층을 형성했다. 가장 동시대적인 에세이스트다. 첫 산문집 『공감 연습』에서 직업 경험을 반추하며 고통에의 공감을, 회고록인 『리커버링』에서 알코올중독 경험과 회복 과정을 그려냈다면, 『비명 지르게 하라, 불타오르게 하라』에는 글쓰기라는 예술의 양가적인 측면과 쓰는 이로서의 수행에 대한 내면적인 고찰을 아로새겼다고 말한다. 저자의 전작을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는 독자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3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부제에 언급된 대로 1장 「갈망의 글쓰기」, 2장 「관찰의 글쓰기」, 3장 「거주의 글쓰기」 등이다. 1장에는 〈52블루〉, 〈우리는 다시금 살기 위해 스스로에게 이야기한다〉, 〈레이오버 이야기〉, 〈심 라이프〉란 제목으로 각각의 글이 있다. 2장은 〈저 위 자프나에서〉, 〈그 어떤 혀로도 말할 수 없다〉, 〈비명 지르게 하라, 불타오르게 하라〉, 〈최대노출〉이란 글이 뒤따른다. 마지막 3장엔 〈리허설〉, 〈기나긴 교대〉, 〈진짜 연기〉, 〈유령의 딸〉, 〈실연 박물관〉, 〈태동〉 등 모두 14편의 에피소드에 대한 사유의 글쓰기가 담겨 있다.

다시 출판사 소개글에 눈길이 간다. “갈망의 글쓰기, 관찰의 글쓰기, 거주의 글쓰기”라는 세 가지 부제에서 엿보이듯, 제이미슨은 자신에게 없는 타인의 무엇을 갈망하는 일, 그리고 그것을 관찰하고 응시하는 일, 그리하여 결국 그 안 혹은 그 언저리에 정주하고 거주하는 일에 대하여 치열하게 묻고 탐구해나간다고 설명한다. 이에 더불어 출판사 측은 이 책은 제이미슨을 잘 아는 독자에게는 동시대와 호흡하며 지속적으로 성장해나가는 작가의 현주소를,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는 가장 사적인 경험에서 보편적인 주제를 발견하고 파헤쳐나가는 제이미슨 특유의 경이로운 글쓰기를 체험할 기회가 될 것이라고 덧붙인다.

소설가 한유주가 이 책에 대한 추천사를 썼다고 한다. "이 작가가 어느 층위까지 파고들 수 있을지 알고 싶었다. 나는 감탄했다. 타인에 대해 글을 쓴다는 건 대체 어떤 행위인가? 혹은 타인을 경유하여 결국 나를 글쓰기의 도마에 올려야만 할 때 발생하는 본질적인 의혹을 해소하려면 대체 어떤 행위가 요구되는가? 레슬리 제이미슨은 관찰하고, 대화를 나누고, 첫인상을 지우고, 그 위에 새로운 관념들을 새기며 쓰는 이가 목도하는 세계를 단단한 문장들로 벼려낸다. 이 책은 삶이 간혹 허락하는 경이로운 순간들과 그 기나긴 사이를 살아가는 이들을 이해하려는 통렬하고 아름다운 시도로 가득하다."

 


 

최근 몇 년간 '에세이'는 책을 읽는 사람들 사이에서 국내외를 막론하고 가장 뜨거운 키워드 중 하나였다. 개인의 이야기로부터 출발하는 책들은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며 큰 환영을 받았고, '개인적'이고 '사적'이고 '사소한' 것으로 치부되었던 이야기들을 건져 올려 책이라는 보편의 이야기로 빚어내는 일의 의미에 많은 이들이 주목했다. 그러나 과연, 에세이란 무엇인가? 에세이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에세이를 쓰고 만드는 사람들은 그 과정에서 어떤 곤경에 처하고, 우리는 나 자신의, 그리고 무엇보다 타인의 아주 내밀한 이야기를 어디까지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가?

저자 제이미슨은 단연코 이런 쟁점들을 가장 치열하고 집요하게 파헤치고 있는 작가라고 한다. 우리 나라에 앞서 번역 소개된 『공감 연습』은 고통이라는 경험을 매개로 사람들은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를 파고들었고, 자신의 알코올중독과 회복 경험에 관한 회고록 『리커버링』은 한 젊은 작가가 보편적 이야기가 지닌 가치를 받아들이는, 그럼으로써 에세이스트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이처럼 나-타인의 삶을 기록하는 데 있어 한층 성숙한 작가로서 제이미슨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 저자는 고독한 고래에 천착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25년간 멕시코의 한 가족을 사진 찍은 미국 작가에 관해 다루며, 전생을 믿는 이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면서 우리는 타인의 삶에 어느 정도까지 침해적으로 친밀해질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진실'을 구할 수 있는지, 혹은 그 진실이라는 것은 얼마나 '오염된' 것인지 하는 질문들을 하나씩 탐색해나간다.

 


 

제이미슨은 1부 「갈망의 글쓰기」에서 본질을 알지 못하고 제대로 설명하거나 증명해내지 못하며 갈망하는 이들을 다룬다. 「52 블루」에서는 처음 발견된 음역대의 주파수로 관찰된 한 마리 고래와 그에게 감정이입하는 이들을, 「우리는 다시금 살기 위해 스스로에게 이야기한다」에서는 증명하기 어려운 환생의 경험을 주장하는 이들을, 「레이오버 이야기」에서는 레이오버를 하며 스친 이들의 배경을 알고 나서야 그를 평면 아닌 입체로 이해하기 시작하는 자신을, 「심 라이프」에서는 온라인 환경에 제2의 삶을 꾸린 이들을 소개한다.

「52 블루」는 제 2차 세계대전 때부터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그리고 계속되는 미소 냉전... 1992년 냉전마저 종식됨으로써 위드비섬 해군항공기지에 남아 있는 수중음파탐지망에 12월 어느 날에 해군 병장 벨마 론킬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음향기술자가 다가와 다시 한 번 확인한다. "고래 소리 같은데요." 대왕고래 울음소리와 비슷했지만, 52헤르츠 주파수의 울음소리는 전례 없는 일이지만 적의 잠수함의 이동을 탐지하는 수중음파탐지망에 냉전 후 처음으로 잡힌 것이다. 이후 작가는 이들의 끈질긴 노력을 추적해가며 글쓰기의 소재를 확대해간다.

"고래가 고래일 수 있도록 인정하여 우리가 떠안기는 은유로부터 쉬게 하는 동시에, 우리가 만들어준 두 번째 자아의 윤곽선도 포용해 그가 우리에게 해준 일들을 인정한다면 어떨까? 그 고래가 자신의 실제 형상과 우리가 그에게서 필요로 한 형상 둘로 쪼개지게, 그 둘이 따로따로 헤엄치게 한다면. 우리는 그 둘을 서로의 그림자에서 해방한다. 그리고 두 개의 다른 길을 따라 바다를 건너가는 모습을 지켜본"다.(p.44) 33페이지에 달한 긴 글을 한두 문장으로 압축할 능력이 독자에게는 없다. 글쓰기를 해보려는 의지만 불태울 뿐 한 번도 제대로 글쓰기를 시도해 본 적이 없는 독자에게 내리는 질타로 느껴지는 것은 피해의식 때문일까?

 

 

2부 「관찰의 글쓰기」는 타인의 삶을 쓸 때, 타인의 삶으로 예술을 할 때, 타인을 경유해 나에 관해 쓸 때 우리는 곤경을 맞닥뜨린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실 우리는 타인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없으며, 그것은 자신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여서, 기껏 그려낸다 하더라도 그 윤곽은 완벽하거나 단일하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관점이다. 저자는 2장에서 이 주제를 치열하게 파고든다. 「저 위 자프나에서」에서는 역사적 재난의 현장을 관광하고 무지를 진정성으로 포장하는 취재에 관하여, 「그 어떤 혀로도 말할 수 없다」에서는 남북전쟁의 참상을 찍고 전시하는 일에 관하여, 「비명 지르게 하라, 불타오르게 하라」에서는 작가 제임스 에이지가 앨라배마의 소작농 가족과 머물며 다른 방식으로 두 차례에 걸쳐 쓴 결과물에 관하여, 「최대노출」에서는 사반세기에 걸쳐 한 가족을 담은 사진가의 프로젝트에 관하여 쓴다.

특히 표제작 「비명 지르게 하라, 불타오르게 하라」에서 저자는 에이지의 글을 두고 “그는 매개나 변형 없이 진실을 전달한다는 리얼리즘의 환상을 폐기한 뒤 그 대신 모든 매개, 모든 조작, 모든 기교와 주관성, 그리고 이 기록을 하는 사람, 즉 자기 자신이 일으키는 불가피한 오염을 고백한다.”고 말하면서 본인 작업에 앞선 자취를, 또 본인이 뒤따를 길을 모색하는 듯하다. 마지막 장 「거주의 글쓰기」는 작가의 주무기인 자기고백과 감정의 농도가 짙은 파트다. 「리허설」에서는 친구와 부모의 결혼식 풍경을 회상하고, 「기나긴 교대」에서는 아빠의 아버지로서의 할아버지를 추억하며, 「진짜 연기」에서는 시뮬레이션 체험과도 같은 라스베이거스 방문과 거기에서의 짧은 연애를 복기하고, 「유령의 딸」에서는 계모라는 자신의 새로운 삶을 기술하며, 「실연 박물관」에서는 이별과 연애의 잔해를 들여다보고, 「태동」에서는 식이장애를 겪던 동일한 몸이 동일하지 않게 느껴지는 출산의 경험을 현재형으로 순차한다.

 


 

이 책의 마지막 글 「태동」은 '어원 자체가 임신에서 비롯'된 갈망(longing)이라는 낱말을 다시 한번 끄집어내며, 이번에는 이를 '부재를 암시하지 않는 갈망', 자신에게 속한 갈망으로 갱신한다. 출산 과정에서 무너진 자신의 이야기, 무너진 자신의 몸을 바라보며 윤곽을 무너뜨리는 일의 경이를 포착하기를 작가는 잊지 않는다. 「52 블루」에서 두 개의 윤곽을 허용하자던 작가가 윤곽 없음마저 긍정하는 「태동」은 각별한 울림을 준다.

포르투갈어 사우다지(saudade)는 번역할 수 없는 단어로 악명이 높지만, 나는 순전한 노스탤지어보다 더 수수께끼 같은 감정을 일컫는 이 단어가 항상 좋았다. 사우다지는 내가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가진 적 없는 것에 대한 그리움이다. 노스탤지어와 비슷하지만, 사우다지는 가본 적 없는 장소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뜻할 수도 있다. 마셜 할아버지가 가족 없이 살던 브라질에서 자연스레 쓰는 이 단어는 주로 소유나 동반을 나타내는 문법적 구조를 취한다. 사우다지를 가진다, 또는 사우다지와 함께 있다는 식으로. 그리움이 일종의 동반자가 될 수 있다는 듯이. 그것이 부재의 자리를 채울 수 있다는 듯이.(p.231)

이 책의 표제어인 『비명 지르게 하라, 불타오르게 하라』는 시인이자 비평가인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가 워커 에번스를 두고 한 말(“예술가가 하는 일은 모든 일, 모든 날, 모든 곳에서 적용되어 제 삶을 재촉하고, 해명하고, 강화하고, 확대하며 이를 유려하게 만든다. 에번스가 하는 것처럼, 비명 지르게 한다.”)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제이미슨의 의도는 분명하다. 「비명 지르게 하라, 불타오르게 하라」는 노스탤지어보다 ‘사우다지’에 가까운 글쓰기를 보여준다. 가진 적 없는 것에 대한 그리움과 갈망이, 가진 것보다도 그 존재를 더 잘 설명할 수 있다면, 우리는 타인에 관해서 그리고 자신에 관해서 쓸 수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마침내 써낸다면, 쓰인 그것은 비로소 비명 지르고 불타오를 것이다.

 


 

나는 소통을 향한 그의 가차 없는 추진력, 그리고 자신을 취약한 존재로 만들고자 하는, 전적으로 소통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기록하고자 하는, 모든 뉘앙스와 모든 복잡성을 포착하고자 하는 그의 충동을 지켜주고 싶어졌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애니의 집착에 대한 나의 끊임없는 집착이 부분적으로는 나 자신의 구원자 콤플렉스에서 기인한다고 느꼈다. 방법론과 정서에 있어 고집스러울 만치 냉정하지 못한, 눈부실 만치 거리낌 없고 센티멘털한, 제 열의에 관해 양해를 구하지 않는 어느 아웃사이더 예술가를 옹호하려는 나의 시도 말이다. 때로 예술가와 대상의 관계는 망가지고 부담스러워진다. 에이지는 그 사실을 알았고, 애니도 알았으며, 나도 마찬가지다.(p.210)

 

저자 : 레슬리 제이미슨(Leslie Jamison)

 

워싱턴 D.C.에서 태어나 로스앤젤레스에서 성장했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아이오와 작가 워크숍에서 글쓰기를 공부했고 예일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제빵사, 임시 사무직, 여관 관리인, 학교 교사, 의료 배우 등으로 일했다. 최근에는 컬럼비아 대학교 예술대학에서 논픽션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뉴욕 타임스』 『하퍼스』 『옥스퍼드 아메리칸』 『퍼블릭 스페이스』 등에 에세이를 기고했으며, 『뉴욕 타임스 북 리뷰』의 칼럼니스트로 수년간 활동했다. 지은 책으로 『진 벽장The Gin Closet』 『리커버링The Recovering』 등이 있다. 『공감 연습』으로 PEN 문학상 에세이 부문 다이아먼스타인-스필보겔 상 후보에 올랐다.

 

역자 : 송섬별

 

이화여자대학교 학부와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더 잘 읽고 쓰기 위해 번역을 시작했고, 출판 번역을 시작한 이래 주로 여성, 성소수자, 노인과 청소년을 다루는 책에 관심을 가졌다. 앞으로 소수자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글을 더 많이 소개하고 싶다. 고양이 물루와 올리버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며, 매달 쓴 글을 《파워북》이라는 지면으로 묶어내고 있다. 번역을 하지 않을 때는 수영을 하는 짬짬이 밀린 독서를 한다. 옮긴 책으로는 『패시지』, 『크루얼티』, 『당신 엄마 맞아?』, 『애너벨』, 『다크 챕터』, 『너를 비밀로』, 『사라지지 않는 여름 1, 2』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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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없이 농촌 출근 - 워라밸 귀농귀촌 4.0
김규남 지음 / 라온북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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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귀촌은 ‘어떻게 삶의 조화를 통해 행복한 전원생활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주민들과 함께 생할하며 정착하는 일은 정착의 기본이고 성공적 정착의 필수요인이다. 이 점을 간과한다면 융화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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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없이 농촌 출근 - 워라밸 귀농귀촌 4.0
김규남 지음 / 라온북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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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실천에 옮겨 성공적으로 정착한 사람은 적다. 왜 그럴까. 지금까지 전원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정착했을까. 독자도 은퇴 후 전원생활을 여러 번 생각했으나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흔히 말하는 '돈' 때문이 아니다. 농사를 한 번도 지어본 적이 없어 과연 농촌에 적응하면서 노후를 보낼 수 있을까? 자신감도 생기지 않고, 결정하기에는 많은 관문이 기다리고 있어 미루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 책 『은퇴 없이 농촌 출근』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사실 정착하지 못하는 이유가 많을 것이다.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우리 농촌이 전원생활하려는 사람들의 노후를 위해 존재해 왔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즉 도시생활자들은 돈 좀 쥐고 있으면 공기 좋고, 경치 좋은 여유로운 생활을 하기에는 가장 좋은 곳으로 농촌을 꼽는다. 문제는 거기서부터 발생한다고 보면 된다. 이 책은 귀농이든 귀촌이든 철저한 준비가 있어야 성공적으로 정착해 농촌 사람들과 어울려 노후를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이 책은 저자 김규남이 귀농귀촌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사전 준비, 적응 과정, 성공적 정착에는 차근차근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필요한 것들과 준비 작업과 시간 등 돈 이외에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거기에 실패한 사람들의 경험을 분석해 결점을 지적해 주면서 올바르고도 성공적인 귀농귀촌 희망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저자는 귀농귀촌이 어렵긴 하지만 못해 낼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4.0시대 라이프스타일, 당신은 은퇴 후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는가」란 제목의 프롤로그에서 "은퇴를 앞둔 이들은 누구나 한 번씩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내려가 농촌에서 편안하게 살기를 꿈꾼다. 그러나 철저한 생각과 준비 없이 내려간다면, 분명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도시로 올라오게 될 것이다."고 말한다. 이 책은 앞서 언급한 대로 실제 귀농귀촌을 한 저자의 다양한 경험들을 담고 있다. 막연히 전원생활을 꿈꾸었던 독자에게 따끔한 일침을 놓는다. 땅에 대한 문제, 특수작물을 시도하다 깨달은 것, 지역 주민들과의 관계, 공무원과의 관계 등을 직접 경험하며 비싼 수강료를 치르면서 배운 ‘리얼한’ 귀농귀촌의 삶을 하나씩 하나씩 소개한다.

그리고 정부에서 제공하는 귀농귀촌에 대한 정보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설명한다. 농촌 생활에는 항상 소소한 일거리와 행복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제 은퇴 후 남은 삶을 준비하면서 귀농귀촌을 꿈꾼다면 이 책을 펼쳐, 저자가 귀농귀촌의 삶을 어떻게 정의 내리고 있는지 그의 경험을 들어보길 바란다. 자신이 귀농귀촌을 어떤 마음으로 준비하고 떠나야 하는지 생각을 정리하는 데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사실 농촌이란 곳이 도시생활자에게는 꿈의 전원생활을 그리워하게 하지만, 그곳 주민들에는 삶의 현장이다. 자신을 중심으로 전원생활을 꿈꾼다면 그곳 주민들과의 융합은 이미 물 건너 간 것이다. 그곳 주민들과의 불화가 생긴다면 이미 실패한 것이다. 준비에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저자의 말에 '내가 이사가서 살 곳'이라면 당연히 그들의 삶의 방식을 존중해야 할 것이다. 자신이 도시생활하면서 돈을 조금 벌었다고 농촌은 누리려고 간다면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은 자명하다.

 


 

이 책은 만약 실패할 경우를 대비한 마음의 준비까지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은퇴 후 자신의 욜드(YOLD, Young Old) 인생도 생각했던 방향이 아니라면 언제든지 되돌아갈 방안이 있어야 꿈꾸던 생활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말이다.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배우자와 자녀들과의 의견도 나눠야 할 것이다. 물론 자녀들이 분가할 경우엔 배우자와의 의견만 조율한다면 큰 문제는 해결한 셈이다. 그러나 세상 일이 그렇게 마음대로 술술 풀리지는 않을 터 아무래도 스스로 경험하고, 실패한 사람도 겪어보고, 성공적 정착이라고 해도 좋을 저자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은 귀농귀촌을 위한 첫걸음을 뗀 것이라 생각해도 좋을 듯하다.

저자는 이 책을 모두 5개의 장으로 나누어 기술하고 있다. 1장 「멀티 해비테이션 시대가 열렸다」, 2장 「귀농귀촌, 이 마음만큼은 가져가자」, 3장 「농촌공동체와 같이 사는 방식」, 4장 「성공적인 귀농귀촌을 위해 알아야 할 실전 노하우 12」, 5장 「나는 치유농장을 꿈꾼다」 등이다. 독자들은 저자의 주장이나 의견에 귀 기울이고, 자신의 환경과 방식을 대입해 가능한 일인지, 불가능한 일인지에 대한 판단을 내리면 된다. 실제 이 책은 귀농귀촌 안내 가이드처럼 쓰였지만 '성공적인'이라는 형용사를 붙여도 좋을 듯하다. 이렇게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책은 아직 못 읽었기 때문이다. 저자의 한마디 한마디는 귀농귀촌을 마음먹거나 꿈꾸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야 책이란 생각이다.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 꽤 많이 다가온다. 그것은 저자가 꼼꼼히 준비하지 않으면 실패할 수도 있다는 노파심도 있겠지만 사전 필수적으로 준비해야 성공적인 정착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경험에서 얻은 지혜일 것이다.

 

 

이 책의 1장은 귀농귀촌의 생활의 변화와 일상의 변화에 따른 자연적인 현상으로 이해하지만 세밀하게 따진다면 농촌으로 가려는 사람들의 마음의 준비가 훨씬 더 철저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책에 따르면 사람들은 대부분 귀농과 귀촌을 비슷한 말로 쓰고 있지만 이 둘은 확연히 의미가 다르다. 귀농은 농촌 이외의 지역에서 농촌으로 이주해 농업을 주업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귀촌이란 다양한 이유로 인해 농촌에 주거지를 마련하되 농업 이외의 소득원으로 생활하는 것이다. 귀농과 귀촌은 농촌을 터전으로 생활한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수입원의 차이가 극명하게 구분된다. 통계에 의하면 귀농인이 다른 수입원으로 귀촌인이 되기도 하고, 귀촌인이 텃밭을 가꾸다 범위를 확대해 귀농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세밀한 구분보다 ‘어떻게 삶의 조화를 통해 행복한 전원생활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귀농과 귀촌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내가 ‘이 일’을 잘할 수 있으며, 그 일을 통해 재미를 느끼고 행복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만 있다면 용어의 차이는 큰 의미가 없다.

귀농귀촌을 통한 전원생활은 누리기 이전에 가꿔야 하고 날마다 관리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귀농귀촌 생활을 그저 삶의 정글에서 살아남은 자가 받는 훈장쯤으로 생각한다면 실제 전원생활은 악몽이 될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로 받아들여 진다. 하지만 일과 삶의 조화를 이루면서 재미와 행복을 느낀다면 덤으로 건강한 삶까지 보장받을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1장이 개괄적인 귀농귀촌에 대해 썼다면 2장부터 5장까지 귀농귀촌을 하려는 사람에게 실질적인 주의와 당부, 꼭 준비해야 할 물적·심적 과정을 세세하게 지적하고 주의를 해서 필수적으로 챙겨야 할 문제들로 가득 차 있다. 읽다보면 어떻게 "내 이쪽에서 저 쪽으로 가려는데 거쳐야 할 것이 이리 복잡하고 어려운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과정을 빼놓는다면 귀농귀촌이 준비가 덜 됐다고 봐야 할 정도로 세밀한 사항까지 챙겨주는 저자에게 오히려 감사해야 할 일들이다. 2장에 쓰인 말은 대부분 제목만 보아도 무슨 뜻인지 한 번쯤 전원생활을 꿈꾼 사람들이면 쉽게 이해가 되고 무슨 의도인지도 알 수 있도록 잘 정리된 제목들이다. 〈도시에 집은 두고, 마음은 가지고 가라〉, 〈목숨 걸지 않는 힐링이 되는 귀농귀촌〉, 〈수익 낼 생각부터 하지 마라〉, 〈오늘 하루만 자연인이 되어라〉, 〈맥가이버가 되기로 마음먹자〉, 〈처음부터 욕심 없이 준비하라〉, 〈창업보다 어려운 게 농업, 농사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등이다.

전원생활을 꿈꾼다면 농촌공동체와 같이 사는 방식을 받아들이고 함께하겠다는 생각을 굳혀야 한다는 점을 말한다고 저자는 생각한다. 제 3장에 이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귀농귀촌해서 생긴 갈등은 한번 속상해하고 웃어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두 사람만의 갈등으로 끝나지 않는 문제가 있다. 현지인들보다 좀 더 합리적인 귀농귀촌인들은 문제가 발생하면 ‘법대로 하자’고 하거나 행정민원으로 해결하려고 하는데 이것은 최악의 방법이다. 법이나 민원으로 해결하는 것은 숙고해야 한다. 현재 대부분의 농촌에서 갈등은 민원 문제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민원이란 주민이 행정기관에 원하는 바를 요구하는 것이다. 통상 농촌에서는 개인적 애로 사항을 요청하기도 하지만 갈등 관계에 있는 사람의 잘못을 들춰 시청 민원실이나 군과 읍의 행정복지센터에 상대의 잘못을 시정 조치해 줄 것을 요구한다. 민원을 접수한 공무원은 절차에 따라 처분을 이행할 수밖에 없다."(p.145)

 


 

4장은 실전 노하우 12가지를 적었다. 농촌에서 직접 살지 않으면 제대로 모를 수밖에 없는 일들을 세심하게 조목조목 설명해주고 있다. 빼놓지 않고 읽어야 할 부분이다. 아마 저자도 경험을 통해 깨우치게 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싶다. 저자는 하루를 정리하며 농장에서 바라보는 저녁놀이 일품이라고 적었지만, 사실 성공적으로 정착했다면 아침부터 밤까지 행복감을 느낄 정도로 모든 게 좋아 보이지 않겠는가? 귀농귀촌의 전원생활도 언제나 떠날 준비를 하는 것이 좋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또 농촌 생활에는 항상 소소한 일거리와 행복이 있다. 계절별로 다른 햇볕과 바람결 그리고 텃밭에서 가꾼 채소로 차린 밥상이 그렇다. 소박하지만 저녁상에 빙 둘러앉은 가족들의 웃음소리와 그들에게 행복을 주는 삶이 바로은퇴 이후 우리가 살아야 할 일상이 아닐까?라고 반문한다.

4장에 쓴 세세한 주의사항 하나만 살펴보자. "영농과 관련된 공사대금과 자재, 농약과 비료 씨앗, 묘목 등 각종 영수증은 반드시 보관해야 한다. 당연히 농협 조합원이 되면 발급 가능한 신용카드로 결제하지만, 영수증의 용도는 따로 있다. 구매를 취소하거나 농업경영체 등록, 천재지변에 의한 피해 보상 등에 반드시 필요하므로 사진을 찍어 보관하는 습관을 들이자. 농촌에서 건축이나 공사를 한다면 스스로 초보임을 자인하고 공부해가면서 진행해야 한다. 돈만 주면 알아서 해주겠지 한다거나 추진 과정에서 달콤하고 그럴듯한 말에 귀가 솔깃해지면 안 된다. 그 일과 그 분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 나중에 비싼 수업료를 치르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자."(p.195)

 

저자 : 김규남

 

농부이자 시인·시조시인, 응용식물과학박사. 평생을 군(軍)에서 앞만 보고 달려왔다. 은퇴를 하면 가족들에게 이것저것 다 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늘 일이 우선인 삶이었기에 지키지 못했다. 퇴임 이후에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신문 칼럼과 시를 쓰고, 방송 출연과 SNS를 하면서 오히려 더 바쁘게 살다 보니 바쁜 건 타고났다는 생각뿐 일을 줄여야겠다는 각오는 생기지 않았다. 건강에 한계를 느끼고 치유농업을 위해 귀농을 결심하고 농장을 일궜다. 내가 좋아하는 땅에서 나무를 심고 풀을 뽑고, 밤이면 시를 썼다. 또 오롯이 은퇴 전과 후 모두가 나를 위한 삶이었고 여전히 바빴다. 그러던 중 살아온 날들과 살아가야 할 날들에 대한 성찰의 계기가 찾아왔다. 아내에게도 은퇴가 필요하다는 것과, 은퇴 이후에 삶의 반은 지금까지 소홀했던 가족과 행복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사건을 겪으면서 나 혼자의 행복보다 남들에게 행복을 전하는 일상의 가치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다. 특히 귀농에 대한 나의 좌충우돌 경험을 통해, 귀농귀촌을 생각하는 다른 이들이 실수는 건너뛰고 행복은 가져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내게 되었다.

인스타그램 @haegang_writer

유튜브 시카페 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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