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 지르게 하라, 불타오르게 하라 - 갈망, 관찰, 거주의 글쓰기
레슬리 제이미슨 지음, 송섬별 옮김 / 반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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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비명 지르게 하라, 불타오르게 하라』를 가벼운 자기계발 책쯤으로 여겼다가 호되게 당한 기분이다. '에세이'라고 해야 맞을지, 인문서라고 해야 옳을지도 가늠이 안 된다. 한마디로 어렵다. 어렵다는 것은 책의 저자 레슬리 제이미슨이 쓴 언어(단어)가 어렵다는 뜻이 아니다. 내용을 소화하기에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당초 이 책을 '글쓰기'에 대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프롤로그」도 없고 「작가의 말」, 「에필로그」도 없다. 「옮긴이의 말」마저 없다. 그저 글쓰기 책이란 소개글에 3장으로 이루어진 책이다. 부제에 「갈망, 관찰, 거주의 글쓰기」란 말이 없다면 정직하게 표현하자면 글을 쓰려면 이 정도는 치열하게 취재하고, 사유하고 거듭 써가며 퇴고하라는 한 권의 텍스트로서 내놓을 읽은 것 같다.

저자의 이력도 보통을 넘어선 것 같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우리 시대를 대변하는 미국의 젊은 작가'다. 저자는 특유의 통찰력과 엄밀한 지성, 독특한 주제와 그것이 지닌 겹겹의 의미를 파헤치는 성실성으로, 전작인 『공감 연습』, 『리커버링』을 발표하여 수전 손택의 글쓰기에 비견되면서 국제적인 독자층을 형성했다. 가장 동시대적인 에세이스트다. 첫 산문집 『공감 연습』에서 직업 경험을 반추하며 고통에의 공감을, 회고록인 『리커버링』에서 알코올중독 경험과 회복 과정을 그려냈다면, 『비명 지르게 하라, 불타오르게 하라』에는 글쓰기라는 예술의 양가적인 측면과 쓰는 이로서의 수행에 대한 내면적인 고찰을 아로새겼다고 말한다. 저자의 전작을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는 독자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3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부제에 언급된 대로 1장 「갈망의 글쓰기」, 2장 「관찰의 글쓰기」, 3장 「거주의 글쓰기」 등이다. 1장에는 〈52블루〉, 〈우리는 다시금 살기 위해 스스로에게 이야기한다〉, 〈레이오버 이야기〉, 〈심 라이프〉란 제목으로 각각의 글이 있다. 2장은 〈저 위 자프나에서〉, 〈그 어떤 혀로도 말할 수 없다〉, 〈비명 지르게 하라, 불타오르게 하라〉, 〈최대노출〉이란 글이 뒤따른다. 마지막 3장엔 〈리허설〉, 〈기나긴 교대〉, 〈진짜 연기〉, 〈유령의 딸〉, 〈실연 박물관〉, 〈태동〉 등 모두 14편의 에피소드에 대한 사유의 글쓰기가 담겨 있다.

다시 출판사 소개글에 눈길이 간다. “갈망의 글쓰기, 관찰의 글쓰기, 거주의 글쓰기”라는 세 가지 부제에서 엿보이듯, 제이미슨은 자신에게 없는 타인의 무엇을 갈망하는 일, 그리고 그것을 관찰하고 응시하는 일, 그리하여 결국 그 안 혹은 그 언저리에 정주하고 거주하는 일에 대하여 치열하게 묻고 탐구해나간다고 설명한다. 이에 더불어 출판사 측은 이 책은 제이미슨을 잘 아는 독자에게는 동시대와 호흡하며 지속적으로 성장해나가는 작가의 현주소를,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는 가장 사적인 경험에서 보편적인 주제를 발견하고 파헤쳐나가는 제이미슨 특유의 경이로운 글쓰기를 체험할 기회가 될 것이라고 덧붙인다.

소설가 한유주가 이 책에 대한 추천사를 썼다고 한다. "이 작가가 어느 층위까지 파고들 수 있을지 알고 싶었다. 나는 감탄했다. 타인에 대해 글을 쓴다는 건 대체 어떤 행위인가? 혹은 타인을 경유하여 결국 나를 글쓰기의 도마에 올려야만 할 때 발생하는 본질적인 의혹을 해소하려면 대체 어떤 행위가 요구되는가? 레슬리 제이미슨은 관찰하고, 대화를 나누고, 첫인상을 지우고, 그 위에 새로운 관념들을 새기며 쓰는 이가 목도하는 세계를 단단한 문장들로 벼려낸다. 이 책은 삶이 간혹 허락하는 경이로운 순간들과 그 기나긴 사이를 살아가는 이들을 이해하려는 통렬하고 아름다운 시도로 가득하다."

 


 

최근 몇 년간 '에세이'는 책을 읽는 사람들 사이에서 국내외를 막론하고 가장 뜨거운 키워드 중 하나였다. 개인의 이야기로부터 출발하는 책들은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며 큰 환영을 받았고, '개인적'이고 '사적'이고 '사소한' 것으로 치부되었던 이야기들을 건져 올려 책이라는 보편의 이야기로 빚어내는 일의 의미에 많은 이들이 주목했다. 그러나 과연, 에세이란 무엇인가? 에세이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에세이를 쓰고 만드는 사람들은 그 과정에서 어떤 곤경에 처하고, 우리는 나 자신의, 그리고 무엇보다 타인의 아주 내밀한 이야기를 어디까지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가?

저자 제이미슨은 단연코 이런 쟁점들을 가장 치열하고 집요하게 파헤치고 있는 작가라고 한다. 우리 나라에 앞서 번역 소개된 『공감 연습』은 고통이라는 경험을 매개로 사람들은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를 파고들었고, 자신의 알코올중독과 회복 경험에 관한 회고록 『리커버링』은 한 젊은 작가가 보편적 이야기가 지닌 가치를 받아들이는, 그럼으로써 에세이스트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이처럼 나-타인의 삶을 기록하는 데 있어 한층 성숙한 작가로서 제이미슨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 저자는 고독한 고래에 천착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25년간 멕시코의 한 가족을 사진 찍은 미국 작가에 관해 다루며, 전생을 믿는 이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면서 우리는 타인의 삶에 어느 정도까지 침해적으로 친밀해질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진실'을 구할 수 있는지, 혹은 그 진실이라는 것은 얼마나 '오염된' 것인지 하는 질문들을 하나씩 탐색해나간다.

 


 

제이미슨은 1부 「갈망의 글쓰기」에서 본질을 알지 못하고 제대로 설명하거나 증명해내지 못하며 갈망하는 이들을 다룬다. 「52 블루」에서는 처음 발견된 음역대의 주파수로 관찰된 한 마리 고래와 그에게 감정이입하는 이들을, 「우리는 다시금 살기 위해 스스로에게 이야기한다」에서는 증명하기 어려운 환생의 경험을 주장하는 이들을, 「레이오버 이야기」에서는 레이오버를 하며 스친 이들의 배경을 알고 나서야 그를 평면 아닌 입체로 이해하기 시작하는 자신을, 「심 라이프」에서는 온라인 환경에 제2의 삶을 꾸린 이들을 소개한다.

「52 블루」는 제 2차 세계대전 때부터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그리고 계속되는 미소 냉전... 1992년 냉전마저 종식됨으로써 위드비섬 해군항공기지에 남아 있는 수중음파탐지망에 12월 어느 날에 해군 병장 벨마 론킬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음향기술자가 다가와 다시 한 번 확인한다. "고래 소리 같은데요." 대왕고래 울음소리와 비슷했지만, 52헤르츠 주파수의 울음소리는 전례 없는 일이지만 적의 잠수함의 이동을 탐지하는 수중음파탐지망에 냉전 후 처음으로 잡힌 것이다. 이후 작가는 이들의 끈질긴 노력을 추적해가며 글쓰기의 소재를 확대해간다.

"고래가 고래일 수 있도록 인정하여 우리가 떠안기는 은유로부터 쉬게 하는 동시에, 우리가 만들어준 두 번째 자아의 윤곽선도 포용해 그가 우리에게 해준 일들을 인정한다면 어떨까? 그 고래가 자신의 실제 형상과 우리가 그에게서 필요로 한 형상 둘로 쪼개지게, 그 둘이 따로따로 헤엄치게 한다면. 우리는 그 둘을 서로의 그림자에서 해방한다. 그리고 두 개의 다른 길을 따라 바다를 건너가는 모습을 지켜본"다.(p.44) 33페이지에 달한 긴 글을 한두 문장으로 압축할 능력이 독자에게는 없다. 글쓰기를 해보려는 의지만 불태울 뿐 한 번도 제대로 글쓰기를 시도해 본 적이 없는 독자에게 내리는 질타로 느껴지는 것은 피해의식 때문일까?

 

 

2부 「관찰의 글쓰기」는 타인의 삶을 쓸 때, 타인의 삶으로 예술을 할 때, 타인을 경유해 나에 관해 쓸 때 우리는 곤경을 맞닥뜨린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실 우리는 타인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없으며, 그것은 자신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여서, 기껏 그려낸다 하더라도 그 윤곽은 완벽하거나 단일하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관점이다. 저자는 2장에서 이 주제를 치열하게 파고든다. 「저 위 자프나에서」에서는 역사적 재난의 현장을 관광하고 무지를 진정성으로 포장하는 취재에 관하여, 「그 어떤 혀로도 말할 수 없다」에서는 남북전쟁의 참상을 찍고 전시하는 일에 관하여, 「비명 지르게 하라, 불타오르게 하라」에서는 작가 제임스 에이지가 앨라배마의 소작농 가족과 머물며 다른 방식으로 두 차례에 걸쳐 쓴 결과물에 관하여, 「최대노출」에서는 사반세기에 걸쳐 한 가족을 담은 사진가의 프로젝트에 관하여 쓴다.

특히 표제작 「비명 지르게 하라, 불타오르게 하라」에서 저자는 에이지의 글을 두고 “그는 매개나 변형 없이 진실을 전달한다는 리얼리즘의 환상을 폐기한 뒤 그 대신 모든 매개, 모든 조작, 모든 기교와 주관성, 그리고 이 기록을 하는 사람, 즉 자기 자신이 일으키는 불가피한 오염을 고백한다.”고 말하면서 본인 작업에 앞선 자취를, 또 본인이 뒤따를 길을 모색하는 듯하다. 마지막 장 「거주의 글쓰기」는 작가의 주무기인 자기고백과 감정의 농도가 짙은 파트다. 「리허설」에서는 친구와 부모의 결혼식 풍경을 회상하고, 「기나긴 교대」에서는 아빠의 아버지로서의 할아버지를 추억하며, 「진짜 연기」에서는 시뮬레이션 체험과도 같은 라스베이거스 방문과 거기에서의 짧은 연애를 복기하고, 「유령의 딸」에서는 계모라는 자신의 새로운 삶을 기술하며, 「실연 박물관」에서는 이별과 연애의 잔해를 들여다보고, 「태동」에서는 식이장애를 겪던 동일한 몸이 동일하지 않게 느껴지는 출산의 경험을 현재형으로 순차한다.

 


 

이 책의 마지막 글 「태동」은 '어원 자체가 임신에서 비롯'된 갈망(longing)이라는 낱말을 다시 한번 끄집어내며, 이번에는 이를 '부재를 암시하지 않는 갈망', 자신에게 속한 갈망으로 갱신한다. 출산 과정에서 무너진 자신의 이야기, 무너진 자신의 몸을 바라보며 윤곽을 무너뜨리는 일의 경이를 포착하기를 작가는 잊지 않는다. 「52 블루」에서 두 개의 윤곽을 허용하자던 작가가 윤곽 없음마저 긍정하는 「태동」은 각별한 울림을 준다.

포르투갈어 사우다지(saudade)는 번역할 수 없는 단어로 악명이 높지만, 나는 순전한 노스탤지어보다 더 수수께끼 같은 감정을 일컫는 이 단어가 항상 좋았다. 사우다지는 내가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가진 적 없는 것에 대한 그리움이다. 노스탤지어와 비슷하지만, 사우다지는 가본 적 없는 장소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뜻할 수도 있다. 마셜 할아버지가 가족 없이 살던 브라질에서 자연스레 쓰는 이 단어는 주로 소유나 동반을 나타내는 문법적 구조를 취한다. 사우다지를 가진다, 또는 사우다지와 함께 있다는 식으로. 그리움이 일종의 동반자가 될 수 있다는 듯이. 그것이 부재의 자리를 채울 수 있다는 듯이.(p.231)

이 책의 표제어인 『비명 지르게 하라, 불타오르게 하라』는 시인이자 비평가인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가 워커 에번스를 두고 한 말(“예술가가 하는 일은 모든 일, 모든 날, 모든 곳에서 적용되어 제 삶을 재촉하고, 해명하고, 강화하고, 확대하며 이를 유려하게 만든다. 에번스가 하는 것처럼, 비명 지르게 한다.”)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제이미슨의 의도는 분명하다. 「비명 지르게 하라, 불타오르게 하라」는 노스탤지어보다 ‘사우다지’에 가까운 글쓰기를 보여준다. 가진 적 없는 것에 대한 그리움과 갈망이, 가진 것보다도 그 존재를 더 잘 설명할 수 있다면, 우리는 타인에 관해서 그리고 자신에 관해서 쓸 수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마침내 써낸다면, 쓰인 그것은 비로소 비명 지르고 불타오를 것이다.

 


 

나는 소통을 향한 그의 가차 없는 추진력, 그리고 자신을 취약한 존재로 만들고자 하는, 전적으로 소통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기록하고자 하는, 모든 뉘앙스와 모든 복잡성을 포착하고자 하는 그의 충동을 지켜주고 싶어졌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애니의 집착에 대한 나의 끊임없는 집착이 부분적으로는 나 자신의 구원자 콤플렉스에서 기인한다고 느꼈다. 방법론과 정서에 있어 고집스러울 만치 냉정하지 못한, 눈부실 만치 거리낌 없고 센티멘털한, 제 열의에 관해 양해를 구하지 않는 어느 아웃사이더 예술가를 옹호하려는 나의 시도 말이다. 때로 예술가와 대상의 관계는 망가지고 부담스러워진다. 에이지는 그 사실을 알았고, 애니도 알았으며, 나도 마찬가지다.(p.210)

 

저자 : 레슬리 제이미슨(Leslie Jamison)

 

워싱턴 D.C.에서 태어나 로스앤젤레스에서 성장했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아이오와 작가 워크숍에서 글쓰기를 공부했고 예일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제빵사, 임시 사무직, 여관 관리인, 학교 교사, 의료 배우 등으로 일했다. 최근에는 컬럼비아 대학교 예술대학에서 논픽션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뉴욕 타임스』 『하퍼스』 『옥스퍼드 아메리칸』 『퍼블릭 스페이스』 등에 에세이를 기고했으며, 『뉴욕 타임스 북 리뷰』의 칼럼니스트로 수년간 활동했다. 지은 책으로 『진 벽장The Gin Closet』 『리커버링The Recovering』 등이 있다. 『공감 연습』으로 PEN 문학상 에세이 부문 다이아먼스타인-스필보겔 상 후보에 올랐다.

 

역자 : 송섬별

 

이화여자대학교 학부와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더 잘 읽고 쓰기 위해 번역을 시작했고, 출판 번역을 시작한 이래 주로 여성, 성소수자, 노인과 청소년을 다루는 책에 관심을 가졌다. 앞으로 소수자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글을 더 많이 소개하고 싶다. 고양이 물루와 올리버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며, 매달 쓴 글을 《파워북》이라는 지면으로 묶어내고 있다. 번역을 하지 않을 때는 수영을 하는 짬짬이 밀린 독서를 한다. 옮긴 책으로는 『패시지』, 『크루얼티』, 『당신 엄마 맞아?』, 『애너벨』, 『다크 챕터』, 『너를 비밀로』, 『사라지지 않는 여름 1, 2』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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