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서 행복하기 - 너무 먼 곳만 보느라 가까운 행복을 잃어버린 당신에게
조연경 지음 / 미래북(MiraeBook)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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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행복'을 이야기하는 에세이나 자기계발서, 심리학 혹은 인문학 책까지 천천히 살펴보면 우리는 행복과 너무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사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평생 돈만 쫓다가 행복과 거리가 멀어진 경우도 있고, 또 자신의 사회적 지위나 권력 등만을 위해 치열하게 도전만 거듭하던 사람도 많다. 옛말에 재물이나 명예는 자신의 건강한 몸 이후에 할 것을 경계하는 말이 있다. 원전이 어딘지 모르고 독자가 자주 쓰는 말 중에도 "재물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요,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는 것이고,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 것"이란 말도 고전을 읽다 알게 된 격언인데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닥치면 반대로 쫓아다닌다. 지금이야 예전처럼은 아니지만 아직도 명예욕은 남아 가슴속에서 꿈틀대고 있는 느낌이 든다. 다행히 나이가 들면서 재물욕은 거의 없어진 것만이라도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다.

몇 년 전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야 할 중주척인 젊은 청년들 사이에서 '오포 세대'란 말이 유행어처럼 퍼졌다. 이것은 '삼포'에서 진전된 것이다. 이들이 포기한 것은 직장, 연애, 결혼 등 많은 것이 포함되어 있다. 이 같은 사회 분위기가 지속된다면 그 사회의 미래는 암담하다. 이는 우리 사회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심적 고통으로 이어지면서 '수저 계급론'으로 확산됐다. 그 암담한 미래에 우울감이 더해진다면 사회를 끌어가는 동력을 잃을 것이고, 사라진 동력 이후에는 삶의 포기로까지 이어질 위험이 내재되어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이 점을 인식한 기성 세대가 나서지도 않고, 올바른 인식으로 전환시킬 노력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달리 방법이 었는 것인지, 그냥 '주어진 대로 살 것'을 강요하는 듯하다.

 


 

신채호 선생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빌어 쓰자면 "희망을 잃은 사람에게 미래는 없다"가 딱 지금 우리 사회 분위기가 아닌가 우려스럽다. 그러나 걱정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나마 재능을 가진 예술인들은 크든 작든 청년 세대에게 희망마저 잃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달하고 또 격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에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해보고 사라질 우리가 아니다'란 위로를 받고 활력을 얻기도 한다. 이 가운데 가장 강력한 힘을 주는 메시지는 '행복'을 담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행복을 목표로 살아야지, 결코 부나 권력을 좇아서는 행복에 이를 수 없다는 제언이다. 사실 이런 말은 이전 사회부터 있었던 말이다. 우리가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열정적으로 일하고 노력하면서 잃어왔다는 뜻이다. 다산 정약용의 책에도 다산을 연구하는 모임의 책에도 '행복'은 삶의 가장 최고의 목표이자 후손들에게 우선적으로 물려줘야 할 최고의 유산이라는 삶의 가르침이 나와 있다.

우리가 가난을 벗기 위해 들인 피와 땀이 행복으로 결실을 맺기 위한 것 아닌가? 선진국 대열에 올라서서 되돌아보면 돈을 좇는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행복과 맞바꾼 것이었다는 자괴감이 든다. 그리스 신화에는 판도라의 상자에서 마지막 튀어나온 것은 '희망'이라는 말도 있고, '망각'이란 말도 있다. 그만큼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희망'이라는 말일 것이다. 이 책 『지금, 여기서 행복하기』의 저자 조연경은 행복은 우리 곁에 있으니 멀리까지 가서 찾지 말고, 먼 훗날의 행복을 기약한다고 오늘의 삶을 희생하지 말 것을 주문한다. 저자는 저 멀리에 있어서 잡히지 않는, 언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미래의 행복을 찾아 지금, 여기서의 행복을 놓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인생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명제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해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드라마 한 편을 써 내려가듯 우리 일상의 행복한 순간을 주워 글로 엮은 이 책에서 저자는 행복할 마음이 있는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면을 찾고, 생각보다 우리의 인생은 훨씬 더 달달하고 고소하고 말랑말랑할지 모른다고 말한다. 이 책에는 행복한 사람들이 가진 사소한 습관부터 사람과 사랑을 통해서 오는 행복의 순간, 지금 바로 우리가 행복해져야 할 이유, 비울수록 더 풍성해지는 마음 작용법 등 저자의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다. 우리가 행복을 느꼈던 순간을 떠올리면 사실 그렇게 대단하고 거창하지 않다. 이 책에는 아침에 커튼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앉아 있을 때, 아메리카노 한잔과 달콤 쌉싸름한 티라미수 한 조각을 입에 넣었을 때, 재래시장 한구석에 쌓여 있는 싱싱한 과일과 야채를 바라볼 때, 피곤에 지친 퇴근길에 문득 걸음을 멈추고 올려다본 밤하늘에 빛나는 별을 발견했을 때와 같이 아주 사소하고 가벼운 순간들이 담겨 있다.

행복은 어디에나 있는데 우리는 왜 항상 저 멀리에 있다고 착각하는 것일까? 어디에서나 행복을 발견하는 방법을 안다면 우리는 매일매일 행복해질 수 있다. 이 책은 그 방법을 가장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한 편 한 편 읽다 보면 내 이야기 같고, 또 내 주변의 이야기 같은 이 책이 너무 먼 곳만 보느라 가까운 행복을 잃어버린 당신에게 소곤소곤 말해줄 것이다. 지금, 여기 있는 행복을 누리라고. 아마 이 책을 덮고 나면 누구든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는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행복은 어디에나 있고, 행복의 문은 사방에 열려 있다.

 

"돈이 많다고 행복이 보장될까? 돈으로 좋은 물건을 많이 사는 게 행복은 아니다. 좋은 집도 멋진 차도 시간이 지나면 평범함으로 바뀐다. 그래서 처음 감격이 사라질 때 즈음이면 더 크고 좋은 것을 소유하고 싶어진다. 소유할수록 욕심이 커지고 행복은 곁을 떠난다. 매 순간 행복을 느끼며 사는 사람이 매 순간 돈을 버는 사람보다 더 부자다.(p.244)

 


 

이 책은 모두 5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행복은 의외로 쉽고 단순하다」, 2장 「행복한 사람이 행복한 사람을 만든다」, 3장 「행복과 사랑은 단짝이다」, 4장 「행복은 적금이 아니라 신용카드다」, 5장 「행복의 기준과 부자의 기준은 다르다」 등이다. 각 장의 제목은 저자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어떤 말을 하려는지를 쉽게 알 수 있도록 명확한 단문으로 구성돼 있다. 한눈에 그 뜻이 가슴으로 파고 든다. 혹시 독자들의 혼란으로 바로 이해되지 않을지 몰라 각 장의 제목에는 친절한 부제가 붙어 있다. 저자의 따뜻한 감성이 드러난다. 1장의 부제는 '행복한 사람들의 사소한 습관'이다. 1장은 〈사소한 습관〉 14개의 소항목을 두어 주제를 부각시키고 있다. 2장은 '행복은 사람을 통해서 온다'란 부제를 갖고 있다. 행복은 물질이나 돈, 권력, 명예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부터 온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3장엔 '행복은 사랑이 있는 곳에 찾아온다'란 부제로써 〈사랑〉을 강조한다. 또 4장은 '바로 지금이 행복해야 할 시간이다'라며 〈바로 지금〉을 부각시킨다. 5장은 '비울수록 더 많이 채워지는 이상한 공식'이란 부제로 〈비움〉이 핵심어로 등장한다. 제목으로 살펴본다면 행복의 조건은 사소한 습관, 사람, 사랑, 지금, 비움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1장에는 영화 〈바그다드 카페〉의 이야기다. 영화의 시작은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자리 잡은 초라한 카페가 나온다. 책에 따르면 여행 중 남편과 싸우고 혼자 떨어져 나온 여주인공 '야스민'은 우연히 황량한 사막에 세워진 카페를 발견한다. 야스민은 그 카페에서 잠시 머무르기로 한다. 카페의 여주인 '브렌다'는 생활력이 강하지만 무능한 남편과 말썽만 피우는 아이들 때문에 조금도 행복하지 않은 여자다. 쌈닭처럼 매일매일 소리 지르며 삶의 생기를 잊은 지 오래다. 커피가 없는 카페, 음악이 사라진 카페, 이러니 손님이 오는 게 이상할 정도다. 남편은 집을 나가고 피아노를 꿈으로 삼고 있는 아들은 피아노를 칠 때마다 그만두라고 소리치는 엄마 때문에 인생이 모래알처럼 쓰라리다. 두 딸도 사는 게 지겹다. 이런 카페 안에 뛰어든 야스민, 그 여자의 눈부신 긍정의 힘과 밝음 덕분에 마법 같은 일이 생긴다. 브렌다의 남편이 돌아오고, 아이들은 표정이 환해지고, 카페에는 춤과 노래 그리고 손님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무엇보다 여주인 브렌다는 행복을 찾는다.

 


 

카페를 멋지게 리모델링한 것도 아니고 게으른 남편과 말썽꾸러기 아이들도 달라진 게 없다. 도대체 무엇이 브렌다를 그렇게 변화시켰을까? 저자는 브렌다의 마음가짐이 달라진 것을 이유로 꼽는다. 브렌다는 긍정적인 야스민으로 인해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을 달리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무능한 남편은 착하고, 집안일은 나몰라라 피아노만 두드리는 한심한 아들은 피아노 연주로 사람들을 감동시킬 줄 아는 예술적 재능이 뛰어난 멋진 청년이고, 사사건건 엄마와 부딪치는 큰딸은 아름답고 건강하다. 참 이상한 일이다. 어제까지는 브렌다를 불행하게 한 가족이 오늘은 브렌다를 미소 짓게 만든 것이다. 저자는 "세상은 생각하기 나름이고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이와 같이 행복은 우리의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그런데 우리는 돈, 건강, 풍요로운 식탁, 좋은 직장 등 행복의 조건을 만들어 놓고 스스로 그 속에 갇혀 살면서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고 억울해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조금만 시각을 달리한다면 삶은 눈부시게 아름답고 우리는 행복해진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해인 수녀의 〈1%의 행복〉이라는 시를 인용한다.

 

저울에 행복을 달면

불행과 행복이 반반이면

저울이 움직이지 않지만

불행 49% 행복 51%면

저울이 행복 쪽으로 기울게 됩니다.

행복의 조건엔 이처럼 많은 것이 필요 없습니다.

우리 삶에서 단 1%만 더 가지면 행복한 것입니다.

 


 

2장의 '정직한 법칙'에서 저자는 노벨평화상 시상식에 참여하기 위해 아프리카를 떠나 파리까지 가서 거기서 다시 기차를 타고 덴마크로 갈 계획인 슈바이처 박사의 일화를 소개한다.

"선생님, 어떻게 3등 칸에 타셨습니까?"

"예, 이 기차는 4등 칸이 없어서요."

그가 파리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신문기자들이 취재를 하려고 그가 탄 기차 특등실로 몰려들었다. 그는 영국 황실로부터 백작 칭호를 받은 귀족이다. 당연히 특등실에 탔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는 그곳에 없었다. 그는 병원을 세우고 당시 비참한 상태에 있던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평생 헌신적으로 의료봉사를 한 분이다. 그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의사라는 직업이 아니더라도 평생 안락하게 살 수 있었지만 그는 특등실처럼 편한 곳보다 3등 칸처럼 자신을 필요로 하는 가난한 곳에 늘 있었다. 그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저자는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의 말을 인용하며 행복해지기 위한 방법을 하나 추가한다. "행복은 다른 사람들도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데 자신을 비치는 것이다."란 러셀의 말이다. 저자는 물론 누구나 슈바이처 박사처럼 될 수는 없다. 나를 헌신하면서 오직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살기란 매우 어렵다는 점도 지적한다. 하지만 생활 속에서 나의 말 한마디 또는 작은 행동이 타인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면 어떨까?라고 언급한다.

여기에 취업이 어려운 청년의 에피소드 하나를 덧붙인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던 청년이 창밖을 보며 한숨을 쉬고 있다. 그때 편의점 주인이 우유와 빵을 앞에 놔 주고 청년의 어깨를 몇 번 토닥인다. 청년 앞에 놓인 건 우유와 빵이 아니라 따뜻한 격려다. 청년을 허기를 채우면서 다시 희망을 본다.

 


 

책 출간 당시 계절은 아직 봄이 오지 않은 3월 어느 날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저자는 슈바이처를 소개한 항목 마지막 단락에서 슬그머니 내놓는다. 이에 따르면 내 자신을 다 던지지 않아도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 겨우내 언 땅을 뚫고 연둣빛 새싹이 올라온 3월, 봄은 새로운 계절의 시작이다. 입학, 취직, 결혼 등 설렘과 기대가 있지만 두려움과 긴장도 있다. 낯선 곳, 새로운 사람들 틈에서 과연 내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심할 필요가 없다. 행복의 법칙은 의외로 정직하고 단순하다. 내가 원하는 걸, 내가 받고 싶은 걸 내가 먼저 상대방에게 주면 된다. 우리 모두 '자신 있게 행복하기'로 봄을 열어보자.

 

저자 : 조연경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하고, 1983년 MBC에서 희곡 [딩동댕]이 당선되어 MBC 드라마 [제3교실], KBS 드라마 [금방울 은방울], CBS 라디오 드라마 [우리 집은요] 등 다수의 드라마 작품을 썼다. 1991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 1992년 CBS 방송문화대상, KBS 코미디 시트콤 대상, 라디오 방송 PD 주최 ‘따뜻한 작가상’을 수상했다.

공주영상정보대학 겸임교수와 조선일보 메트로 여성위원을 역임했다. 현재는 신문 컬럼니스트, 문화센터 및 기업체 강의, TV 드라마 작가로 활동 중이다. 평온한 일상을 뒤흔들어 놓은 코로나 19와 불안정한 경제 상황으로 지치고 황폐해진 많은 사람에게 따뜻한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마음에 이 책을 펴내게 되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덮는 순간, 슈퍼마켓에 상품이 진열되어 있듯 우리 주변에 행복이 진열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길 바란다. 행복은 공짜이고, 내가 집어 들기만 하면 된다. 이런 상상이 현실에서 일어나는 마법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행복은 의외로 쉽고 간단하다.

대표작으로는 미니시리즈 [아내가 있는 풍경], [사랑의 조건], [레테의 연가], [사랑과 전쟁] 등 30여 편의 TV 드라마와 [여인극장 술래잡기] 등 50여 편의 라디오 드라마가 있으며, 저서로는 장편소설 『첼로』, 『사랑을 위한 몇 가지 변명』 등 22권의 작품집이 있다. 특히 『준비된 신혼이 아름답다』와 어른들을 위한 행복동화 『행복 줍기』가 독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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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선 단 한 끼도 대충 먹을 수 없어
바이구이(by92)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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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먹을 것을 탐낸 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너무 많이 먹는 것은 반대하는 입장이다. 먹는 것에 대한 독자의 신조다. 그래서인지 아직 성인병을 염려한 적이 없다. 여러 가지 이유가 합쳐진 것이겠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성인병 걱정보다는 오히려 너무 안 먹어 건강이 걱정된다는 말을 들을 정도다. 그렇다고 어렸을 때처럼 편식을 하는 편도 아니다. 음식의 맛에 대해서는 누구에게 만들어줄 능력은 없어도 만들어진 음식의 맛에 대한 표현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 독자가 음식으로 먹고 사는 일을 하지 않는 이상, 지금보다 음식을 탐하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엔 변함이 없다. 음식에서 '미식'과 '절제'는 다른 의미라는 것을 안다. 세계 3대 미항도, 세계 3대 요리도 듣고 가보고 먹어보았다. 이 정도면 한 세상 충분히 잘산 편이라고 생각한다. 이 때문인지 미식가(美食家)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먹는 것에 진심인 사람들을 위한 이 책 『도쿄에선 단 한 끼도 대충 먹을 수 없어』를 읽고 생각이 변했다. 탐식이 아닌 만큼 미식을 탓할 필요도 없고, 나쁘다고 말할 것도 아니다란 확실한 인식을 주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요리는 세계 3대 요리로 꼽히고 있다. 중국·프랑스와 함께 일본의 음식 문화는 그만큼 발전됐다고 봐야 하는 걸까?

이 책은 도쿄에서 유년기를 보낸 저자 바이구이가 도쿄 음식의 진가를 고급 요리가 아닌 가장 평범한 도쿄 사람들이 먹는 한 끼, ‘도쿄식 와쇼쿠’에서 찾는다. 사실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다. 가볍게 아침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깃사텐 모닝세트’, 도쿄 직장인의 점심 메뉴 1순위 ‘라멘’, 흰밥에 제철 사시미를 올린 ‘가이센동’, 세계 어느 중화요리보다 독보적인 맛을 자랑하는 ‘도쿄 차이니스’, 일본인 입맛에 맞게 진화한 ‘와후 파스타’, 일본의 국민 케이크 ‘쇼트케이크’ 등 도쿄식 와쇼쿠를 충분히 경험해 볼 수 있는 85곳의 맛집 정보를 소개한다.

 


 

책에 따르면 도쿄는 2008년 미쉐린 가이드 평가에서 파리를 제치고 세계 1위를 획득한 이래 16년 연속 세계 1위를 유지하며 세계 제일의 미식 도시라는 타이틀을 장기간 거머쥐고 있다. 2013년에는 도쿄 사람들의 가장 평범한 한 끼인 ‘와쇼쿠(Washoku)’가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미식의 세계에서 도쿄 음식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이 책에서 소개된 도쿄 미식의 세계 역시 익히 알려진 것보다 훨씬 넓고 다양하다고 저자는 밝힌다. 스시나 우동과 같은 일본 전통 요리는 물론, 탄탄멘, 마파두부, 파스타, 카레 등 외국에서 들어와 일본인의 입맛에 맞게 변신하며 와쇼쿠로 자리 잡은 음식들 역시 일본만의 ‘결’이 살아 있는 독보적인 맛을 자랑한다. 심지어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는 편의점 샌드위치나 맥도날드 등 세계 어느 도시에나 있는 프랜차이즈 식당의 공통 메뉴조차 도쿄에서는 특별한 맛으로 만날 수 있다.

저자는 방대한 도쿄 미식 정보를 집밥, 현지인만 아는 로컬 메뉴, 계절 음식, 주류, 면 요리, 수프, 외국 요리, 디저트 등 9가지 파트로 나누어, 각 음식에 담긴 이야기와 엄선한 이 책은 모두 85군데의 맛집 정보를 함께 소개한다. 규격화된 메뉴를 만드는 프랜차이즈 식당조차 완벽한 맛을 내는 이유, 인도의 커리가 와쇼쿠로 자리 잡은 이야기, 관광객에게는 덜 알려졌지만 도쿄 현지인에게 인정받는 스시 맛집 등을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지금 당장 도쿄로 떠날 계획이 없는 독자처럼 이 책을 통해 도쿄 음식을 상상하며 느낄 수 있도록 책을 썼다. 이 책의 출간 취지와도 맞닿아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특정 음식 페이지만 펼쳐 그 음식의 역사와 문화, 맛집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음식은 ‘한 끼 때우는 것’이 아니라 ‘누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미식가라면, 또 도쿄 여행에서 최소 하루 한 끼는 제대로 먹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진정한 미식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것으로 저자는 기대한다.

 


 

저자는 「일본인의 식탁을 엿보다」란 소제목의 '프롤로그'를 통해 일본요리의 특성, 도쿄의 전통 요리와 도쿄 시민들이 즐겨 찾는 음식점의 요리의 특성을 설명한다. 가능한 범위 내에서 저자는 요리 맛의 비결이 될 수도 있는 재료와 첨가제, 접대 방식, 음식 예절 등도 세세하게 담았다. 일본에서 오래 산 탓인지 저자의 글 솜씨는 간결한 것이 일본인들을 닮았다. 아니 어쩌면 글을 많이 써서 글 쓰는 요령이 좋다는 평가도 있을 듯하다. 독자가 느끼기에는 문체는 우리와 많이 닮았는데 글의 특성은 세밀한 것이 일본인의 특성(장점)과 비슷하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일본인의 식탁이 아무리 서구화되었다 하더라도 일본 고유의 요리가 '와쇼쿠(和食, 일본 요리)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라고 전제하고, "와쇼쿠는 좁은 의미로는 가이세키 요리(懷石料理), 쇼진 요리(精進料理) 등 일본 전통 요리를 뜻하지만, 넓은 의미로는 오래전 일본으로 건너와 토착화된 외국 요리까지 전부 포함하는 말"이라고 밝힌다.

저자는 또 일본 고유 요리는 세월과 함께 점점 영역을 넓혀왔지만 변하지 않는 와쇼쿠의 본질이 있다고 말한다. 바로 재료의 맛을 최대한 살린 조리법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는 독자의 문해력으로는 일본 요리는 재료의 맛을 살리는 데 최대 목표가 있다는 말로도 들린다. 이 원칙은 돈부리모노(덮밥), 뎀뿌라(튀김), 가마메시(솥밥), 야키자카나(생선구이), 사시미(회), 스시(초밥) 등 모든 음식에 적용된다고 설명한다. 이 때문에 수많은 와쇼쿠 레시피에는 '재료의 맛과 우아미(천연의 재료에서 얻는 깊은 감칠맛)를 살린다'는 관용구적으로 따라 붙는다고 덧붙인다. 일부 사람들은 와쇼쿠를 두고 '뺄셈의 요리'라는 말도 넌지시 내놓는다. 이런저런 양념의 맛을 살리기 위해 기타 불필요한 맛을 최대한 배제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원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기 위해 불필요한 맛을 최대한 배제하기 때문이라는 것. 좋은 맛의 원천을 한 수 배운 느낌이다.

 

 

일본은 지형 탓에 지역별로 기후와 풍토 차이가 매우 크다는 것도 음식의 맛을 결정하는 이유가 된다는 점도 부각한다. 계절마다 지역마다 다채로운 채소와 과일, 육류를 얻을 수 있는 환경이란 점도 맛을 내는 좋은 조건이라는 말이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으니 싱싱한 해산물을 거의 실시간으로 공급 받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자연 환경이 일본인이 중시하는 '원재료 맛을 살린' 산해진미의 바탕이 됐다는 분석이다. 일본의 지구과학자인 다쓰미 요시유키(고베대학 객원교수)의 책은 지구과학과 미식을 연계해서 일본의 맛을 설명했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와쇼쿠의 핵심인 재료의 맛은 지진 및 분화와 맞바꾼 결과다. 화산 분화로 생긴 화산재가 스민 땅은 비옥해서 농작에 유리하다. 화산재가 쌓여 형성된 화산재토는 특히 배수성이 뛰어난다. 양배추, 파, 무 등의 농작물이 자라기에 최상의 토지이다. 실제로 화산재토가 대부분인 간토(關東) 평야(도쿄 및 주변 6개현에 걸친 일본 최대의 평야로 일본 농지의 4분의 1을 차지함)의 작물은 그 풍미가 유난히 좋다. 또한 근채류 농사에 적합한 적황색토가 있고, 수박, 토마토, 우엉, 시금치, 콩, 감자 등의 야채 농사에 최저인 사질토가 해안선을 따라 분포하는 등 다양한 성질의 토양을 두루 갖추고 있다.

저자는 와쇼쿠의 맛을 좌지우지하는 또 하나의 요소는 앞서 언급한 우아미라고 강조한다. 이 우아미의 원재료가 바로 다시(맛국물), 다시에는 다시마(곰부)로만 우린 곰부다시, 다시마와 가쓰오부시(가다랑어 살을 쪄서 말린 후 발효시킨 것)로 우린 다시, 다시마와 건표고 등으로 우린 다시가 있다. 이 다시마 베이스의 다시가 양념, 국물, 소스,가쿠시아지(숨겨진 밑간) 등 거의 모든 와쇼쿠의 맛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란다. 이 다시마에서 최상의 우아미를 우려낼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일본 물에 있다고 귀띔한다. 다시마의 성분을 추출하기에 가장 좋은 물이 연수인데, 일본의 물은 대부분 연수라는 것. 어찌 보면 우아미는 주어진 자연 조건에 순응하며 자연스럽게 얻게 된 맛이라는 설명이다.

 


 

이 책은 프롤로그를 밑바탕에 깔고 모두 9개 파트로 이뤄져 있다. 1부 〈도쿄 뒷골목에서 찾은 집밥〉, 2부 〈로컬들만 아는 도쿄의 소확행〉, 3부 〈진정한 미식가라면 놓치면 안 되는 계절 음식〉, 4부 〈도쿄에서는 이렇게 마십니다〉, 5부 〈면을 사랑하는 당신이라면 반드시!〉, 6부 〈내 영혼을 위한 도쿄 수프〉, 7부 〈한 그릇에 담긴 맛의 소우주〉, 8부 〈이국에서 맛보는 또 다른 이국의 맛〉, 9부 〈섬세함에서 만나는 가장 달콤한 위로〉 등이다. 1부에서는 생선구이 집밥, 뎀뿌라, 카레라이스, 돈카츠, 햄버그스테이크, 마파두부 등을 잘하는 음식점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이 가운데 댐뿌라는 독자의 귀에도 매우 익숙한 발음이다. 어렸을 때 많이 들었던 '튀김'을 이르는 일본 말이라고 알고 있다. 아주 어렸을 때 동네에서 조금만 튀김 집에서 '덴뿌라'라고 써놓은 걸 기억하고 있다. 이 책에서 뎀뿌라는 독자가 알고 있는 튀김의 일본 말 정도가 아닌 듯하다. 뎀뿌라는 도쿄의 향토 요리이자 소바, 스시와 함께 '데도 노 산미(도쿄를 대표하는 세 가지 요리) 가운데 하나로 불리는 족보 있는 음식 명칭이라 한다.

거의 주식으로 먹고, 간식으로도 빠지지 않는 이 뎀뿌라를 일본인이 언제부터 먹었느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는 저자는 전한다. 나라(奈良) 시대라는 설도 있고 16세기 즈음 포르투갈인 선교사가 서구의 프리터(Fritter, 걸쭉한 반죽에 저민 음식을 결합시키거나 걸쭉한 반죽을 입혀서 튀긴 것) 조리법을 일본에 전한 것이 처음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뎀뿌라라는 이름은 포르투갈 템페로(Tempero, 양념·조미라는 뜻)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정설이라는 설명이다. 아무튼 지금의 가장 보편적인 형태의 뎀뿌라가 확산되기 시작한 시기는 에도 시대(1603~1867) 중기쯤으로 본다고 저자는 단언하고 있다. 기름이 귀했던 시절 나라 시대까지만 해도 상류층 음식이었던 뎀뿌라는 에도 중기부터 대중에게 확산되었다는 가장 설득력 있는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말이다. 물류가 원활해짐에 따라 각지의 생산물이 에도로 집중되었고, 재료과 기름을 쉽게 확보할 수 있게 되면서 스시, 소바, 우나기(장어)처럼 뎀뿌라도 야타이(본래는 서서 먹는 이동식 작은 가게, 포장마차와 유사)에서 파는 대중음식이 되었기 때문이란 주장이다.

 


 

독자는 일본에 가본 적은 없지만 일식은 많이 먹었다.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서양에서도 일식은 '비싸다'는 생각이 앞선다. 독자가 '많이 먹었다'는 표현도 엄밀하게 말하면 굳이 숫자를 세지 않았기에 대충 말한 것이다. 일본 음식에 대한 저자의 표현대로 '한 끼도 대충 먹을 수 없다면' 백 번은 넘은 것 같고, 천 번은 안 된 것 같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것도 대부분은 일본 요리집이라는 표현보다는 우리 서울 등에서 흔히 표현하는 대로 '일식집'이 대부분이다. 이곳에는 식사하러 간 것보다 술 마시러 간 횟수가 대부분이어서 굳이 횟수를 셀 필요도, 셀 수도 없는 것이어서 제대로 짚기 어려워서 그냥 '많다'로 말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일식집이라면 어디까지나 식사 예절 같은 것을 포함한 먹는 법 등이 있을 텐데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그런 것 따지지 않는 게 상례기에 처음에는 같이 간 사람을 따라하고, 10번쯤 넘어가면 '내 멋대로' 먹는 게 일반적이어서 일식 먹는 법(예절)을 익힐 필요도, 기회도 없었다. 저자가 독자의 고충을 알고 있다는 듯 책 중간중간에 〈더 알아보기〉를 통해 「스시 먹는 법」과 「스시 예절」을 명기해 놓았다. 먼저 「스시 먹는 법」 가운데 가장 궁금했던 순서다. 일식집에 가면 그걸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도 잘못 알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책에 따르면 스시의 구성과 순서를 전적으로 스시 장인에게 맡기는 '오마카세'가 아니라 하나하나 스스로 주문해야 하는 경우 무엇을 주문해야 할지, 어떤 순서로 먹을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것. 즉 정해진 순서가 없다는 말이다. 무엇을 먼저 먹고 무엇을 나중에 먹을지는 순전히 먹는 사람 마음이다. 단, 스시 장인들이 권하는 순서는 있다. 이 순서는 담백한 맛(광어, 도미 등 흰살생선)으로 시작해서 삶은 재로, 진한 맛(성게알 등) 순으로 먹고 마키즈시(김으로 만 초밥)로 마무리하는 것이 좋다. 오오토로(참치뱃살)같이 기름진 맛으로 시작하면 기름기가 입안에 남아 미각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마키즈시는 입안을 개운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흰살생선-참지-등 푸른 생선-오징어-달걀말이-조개류-새우-붕장어-마키즈시의 순서를 기억하면 좋다. 또한 맛이 진한 스시를 먹으면 반드시 오차, 가리(생강 초절임) 등으로 입안을 한 번 진정시켜 줘야 다음 스시의 풍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스시 예절」의 경우 저자가 책에 적시한 10개 항목을 독자 임의로 간추려 여기에 적는다. 특히 스스쇼쿠닌이 스시를 직접 쥐어 내주는, 카운터가 있는 스시야에서 알아두어야 할 예절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① 갈 때 진한 향수를 사용하지 않는다.

② 대화 도중에라도 스시는 스시쇼쿠닌이 쥐여 준 즉시 먹는다.

③ 젓가락이 엇나가서 네타(재료)와 샤리(밥)가 분리될 경우 따로따로 먹으면 실례이다. 이럴 때는 손으로 네타와 샤리를 합쳐 먹는 것이 좋다.

④ 스시 하나는 한 입에 다 먹는다.

⑤ 집시에 2관(貫, 스시를 세는 단위)을 담아 준 경우에도 일행과 나눠 먹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

⑥ 간장은 샤리 위에 올려진 재료에 묻혀야 한다.

⑦ 군칸마키(초밥을 김으로 싸고 꼭대기에 성게나 연어 알 등을 얹은 것)에는 직접 간장으 묻히면 재료가 흩어지므로, 먼저 가리에 간장을 넉넉히 묻힌 다음 가레에 묻은 간장을 재료 위에 떨어뜨려 먹는다.

⑧ 간장에 와시비를 지나치게 푸는 것은 금물.

⑨ 젓가락 받침대가 없을 때는 젓가락을 간장 접시 위해 살짝 걸쳐 놓는다.

⑩ 식당에 지나치게 오래 머무는 것은 금물. 고급 스시라 해도 술을 마시면 2시간, 마시지 않으면 1시간 30분 정도 머무는 것이 예의다.

 

저자 : 바이구이(by92)

 

외신 기자, 보도국 소속 동시통역사, 인테리어 컨설턴트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쳤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은 언제나 함께했다. 출장, 여행에서도 미식은 빠뜨리지 않았다. 특히 청소년기를 도쿄에서 보낸 도쿄 디저트 마니아로서 언젠가 디저트 전문 숍을 차려, 일본 디저트 특유의 ‘결’을 가감 없이 서울에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파리와 밀라노, 뉴욕 등지의 디저트도 훌륭했지만, 일본 디저트, 더 나아가 일본 음식은 그 내면의 결이 확실히 달랐기 때문이다. 일본 음식이 품고 있는 내면과 이면의 이야기를 미식에 관심 있는 이들과 나누고, 또 같이 느끼고 싶었다. 수년 전 디저트 전문 숍 운영의 꿈이 실현되었고, 이제는 이야기를 전할 차례가 되었다. 모쪼록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맛의 즐거움을 깨닫고, 미식의 지평을 넓혀 가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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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쟴 2023-06-28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미가 아니라 우마미예요~ 감칠맛
 
가슴 뛰는 대로 가면 돼 일단 떠나라 - 나 홀로 내 맘대로 세계여행
김별 지음 / 에이블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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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해외여행이라면 으레 패키지여행을 뜻했다. 불과 30여년 전 일이다. 그때는 세계화 시대에 맞춘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로 너도나도 해외여행이 꿈이었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해외여행 경험이 없어서 정보도 부족하고 언어 문제로 해외여행에 대한 두려움마저 갖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패키지 여행이 거의 없어지다시피 됐다. 독자도 90년대 중반에 첫 해외여행을 갔었다. 유럽이었다. 처음 간 일이고, 지금처럼 해외여행 경험자마저 없으니 마땅히 계획을 세우긱도 어려운 실정이었다. 다들 선호하는 패키지 여행 이외에는 달리 대안이 없었다. 혼자 가는 게 아니라는 게 유일한 위안거리였을 정도다. 이때의 경험은 '빨리빨리'의 습관을 여전히 해외에서도 계속했다는 게 가장 기억에 남아 있었다. 유렵 여러 나라를 한 번 여행에 묶으려다보니 도시서 도시로 이동하는 시간 외에는 해가 있을 시간에는 밥 먹을 시간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패키지 여행은 다른 경험을 개인적으로 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함께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라는 관광 가이드들은 하나같이 식사 시간도 아껴야 할 정도로 급박하게 스케줄에 따라 움직여야 했다. 적지 않은 여행비에 처음 간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될수록 많은 곳을 들러 많은 것을 본다는 것이 우선 순위에 두었다. 여행사도 모객을 위해 그렇게 계획을 짤 수밖에 없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은 해외여행 문화가 바뀌어도 엄청 바뀌었다. 그러나 지금도 중장년층 이상은 자유여행보다는 패키지여행을 선호한다고 한다. 영어라는 거대한 장벽과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은 모양이다. 게다가 웬만한 여행 고수가 아니면 장기 자유여행 스케줄 짜기가 만만치 않고 인터넷 등에서의 정보 수집도 아무래도 젊은 층에 비해 훨씬 뒤질 터이니 아예 패키지 여행을 좋아하는 원인일 것이다. 이에 비해 젊은 학생들이나 직장인들은 배낭여행이나 자유여행을 더 좋아하는 것이다. 언어도 되고 정보 수집도 언제 어디서나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인터넷이란 강력한 무기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어 두려움 자체가 거의 없는 것 같다.

 


 

이 책 『일단 떠나라』의 저자 김별은 촘촘하게 스케줄을 짜지도 않고, 철저한 준비도 없이 첫 번째 목적지만 정한 채 항공권부터 끊는 과감한 행보를 보인다. 여행 전문가도 아니고, 장기 자유여행을 다녀본 적도 없는데도 말이다. 더욱이 환갑이 다 된 나이인 데다 여성이라니 조금 속된 표현으로 '무모한 여행' 아닌가 싶다. 장기 여행을 갈 경우 언어는 물론 체력, 경비, 두려움이 있을 텐데 '마음대로 청춘' 흉내를 내다니 책을 읽기 앞서 걱정부터 앞선다. 그러나 저자는 5개월 반 동안 마음 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움직였다. 유일하게 목적지를 정하고 간 곳이 처음 출발지인 다합이었는데 다합으로 간 이유도 남다르다. 물가 싸고 한국인 많은 그곳에서 적응기를 갖기 위함이었다. 20대 젊은이들조차 이런 방식의 여행을 시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대신 준비 없이 떠난 여행은 더 많은 즐거움과 깨달음을 준다는 점을 저자의 무모한 여행은 보여준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았으니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다른 사람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 머무르고 싶은 곳에서 느긋하게 풍경과 사람을 보고, 지루하면 언제든지 떠나는 ‘내 맘대로 여행’이다.
저자의 여정을 따라 북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18개국 48개 도시 곳곳을 누비다 보면 ‘아, 이런 여행도 가능하구나’ ‘예습 없는 여행이 주는 즐거움이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가고 싶다는 간절함이 있다면 걱정일랑 접어두고 일단 떠나라고 말하고 싶다. 힘들면 '놀멍쉬멍' 천천히 가면 된다. 그래도 두려움이 앞선다면 이 책의 부록 ‘어설프지만 따라해보면 여행이 엄청 쉬워지는 8가지 팁’을 읽어보기 바란다. 여행을 떠날 용기가 불끈 솟아오를 것 같은 저자의 서비스 부록이다.

 


 

장기 여행자보험 하나 들고 촘촘한 계획도 없이 나 홀로 떠난 여행이었지만 저자는 5개월 반 동안 세계 곳곳을 다니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즐겁게 지내며 건강하게 잘 다녀왔다고 말한다. 30년간의 직장생활을 마치고 버킷리스트 첫 번째 자리했던 세계여행을 떠나고 싶었기에 떠났고, 무리하지 않고 어슬렁어슬렁 동네 산책하듯 매일매일 1만 보 이상 걸으며 내 몸에 맞게 즐긴 덕분이다. “어떤 매력적인 목적지가 나를 끌어당긴 게 아니라 떠날 때 되었기에 떠나야 한다는 당위성이 나를 움직였다”는 저자는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얘기한다. 타이밍이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과감하게 떠나보는 것도 새출발 인생의 멋진 한 장면이다.

저자는 「프롤로그」를 통해 데인 셔우드를 인용한다. 셔우드는 '죽기 전에 꼭 해볼 일들'이란 시 속에서 "혼자 갑자기 여행을 떠난다"를 가장 먼저 꼽았다. 혼자 가면 전부를 보고, 둘이 가면 절반을 보고, 셋이 가면 더 적게 보고 온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혼자 가면 외롭고 힘들 것 같지만, 누군가와 함께 가는 것보다 시간의 밀도가 높다. 풍경을 봐도 더 몰입해서 보고, 음식을 먹을 때도 먹는 음식에 더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도움이 필요할 때 사람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준다고 응수한다. 무엇보다 혼자서 여행 계획을 짜고 실행하다 보면 여행 기술이 빠른 속도로 좋아진다고 강조한다.

혼자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실수를 하고 부족함도 생기게 마련이다. 하지만 저자는 여행이 남들에게 인정받을 만큼 성공적이고 멋지며 폼 나야 할 이유는 없지 않느냐는 반문으로 대신한다. '내 눈에 안경이요, 내 발에 맞는 신발'처럼 하면 된다는 것. 맞는 말이다. 사람마다 여행하는 목적과 이유가 다를 수 있으니 어차피 여행의 정석이나 모범답안은 없을 터, 가장 좋은 여행은 자신에게 맞는 여행일 것이다.

 


 

혼자 하는 여행은 뭐든 내 마음대로 하면 되니 깊이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실수나 한계를 받아들이고 편하게 가다 보면 어느새 한 뼘 더 성장하게 된다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21일간 크루즈를 타고 지중해 투어를 한 덕분에 편안하게 장기간 여행을 할 수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장기 첫 해외여행이라면 크루즈를 이용하는 것도 좋겠다고 제안한다. 저자는 여행 기간 중 크루즈를 타고 지중해를 한 바퀴 돌았다. 스페인 바르셀로나항에서 출발해 되돌아 이탈리아 시칠리아까지 왔다. 유럽 여행의 대부분 지중해 연안 도시를 돌았다는 이야기다. 유럽 여행을 하다 보면 더 절실하게 느끼는 가장 큰 수확은 '바다'가 도시를 발전시키고 나라를 발전시키는 가장 큰 몫을 차지한다는 사실이다. 굳이 대항해 시대를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잘 아는 지중해는 그리스·로마를 탄생시킨 주 무대다. 이곳이 유럽 문명의 오늘을 만든, 가장 발전된 문화를 가진 서양의 자부심이다. 조금만 세부적으로 돌아가면 그리스는 도시국가라는 도시별로 작은 국가를 이루면서 시작됐다. 풍부한 자원을 갖고 있고 교통이 편리하기 때문에 문명이 발달한 것으로 문화사는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가 한참 전성기일 때 이웃 이탈리아에도 식민지 도시 건설을 확대했다. 이탈리아의 많은 도시들이 그리스 문화 영향권 안에 있었다. 로마가 제국으로 확대하기까지에도 가장 큰 힘은 지중해에서 출발한다.

저자가 크루즈 여행을 마치고 배에서 내리듯 언젠가는 이 지구별에서 내릴 것이라는 단상을 남겼다. 상당히 인상적인 말을 남겨 잠깐 인용한다. "황금보다 비싼 지금으로 현재를 살며 '현존'하기, 그리고 시간은 개념일 뿐 어차피 없다라고 보며 '항상 여기'를 살다 가려 한다.(p.253) 저자는 여행 중간쯤 지치고 힘들 무렵 삼시세끼 먹여주고 재워주는 크루즈에 몸을 싣고 편안하게 기항지 투어를 해보라고 슬며시 제안한다. 힘도 비축하고 세계 각국의 친구를 사귈 수도 있다는 장점도 제시한다. 그리고 재미있는 프로그램들이 많아 지루할 새가 없다는 것도 한몫 하는 것 같다. 크루즈 비용은 객실에 따라 가격대가 다양하니 잘 고르면 생각보다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다. 지중해의 경우 크루즈가 아니면 다니기 힘든 섬들이 많다.

 


 

앞서 언급한 대로 저자는 5개월 반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을 '나홀로 세계여행'을 한 셈이다. 저자는 다닌 여행지를 중심으로 이 책에서 사진과 글로 소개한다. 물론 세계 여행 특히 유럽 여행을 한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공감하는 부분이 많을 것으로 기대된다. 저자는 크루즈 여행을 포함한 이 책의 내용을 지중해를 포함한 유럽의 여러 국가와 쌀국수로 대표되는 베트남, 타이 등 동남아시아 국가를 마지막으로 '대장정'을 마친다. 그간의 기록을 6개 파트로 나눠 이 책에 담았다. 각 파트에는 지역별, 도시별, 문화별, 특징적인 내용을 주로 기록했다. 6개 파트는 한 파트에 10여개 장(章)으로 나눠 제목과 함께 차례에 담았다. 각 장의 제목만 읽어도 독자들은 해당 지역과 도시 특징 등이 머리에 떠오를 것이다. 이 책을 더욱 재밌게 읽는 방법은 아마 자신의 경험과 비교해가며 읽는 것이다. 만일 저자의 여행 경로와 겹치지 않는다면 TV나 책, 신문 등에서 얻은 지식과 비교해보는 것도 즐거움을 더하는 방법이라고 독자는 믿는다.

수많은 사진은 오히려 글맛을 축소시키는 안타까움이 있지만 좋은 사진만 골라 실은 것으로 보여 나쁘지는 않다. PART1 〈보다 멀리 북아프리카로〉, PART2 〈매력적인 남동유럽〉, PART3 〈추억의 프랑스, 이베리아반도〉, PART4 〈크루즈 타고 지중해 한 바퀴〉, PART5 〈신비하고 애틋한 모로코〉, PART6 〈쌀국수와 가족 상봉〉 등으로 니뉘어 있다.

독자는 유럽 지역에 위치한 〈조지아〉란 나라에 관심이 갔다. 최근에 본 TV 세계여행 프로그램에서 조지아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 나라는 1990년 구 소련이 붕괴되면서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신생국가 중 하나로 유럽 대륙과 아시아 경계에 위치해 있다. 예전에는 러시아명인 〈그루지야〉로 불렸었다. 인구 약 400만 명의 작은 나라지만 기록에는 구약성경에도 언급이 있을 정도로 오래된 나라다. "물보다 와인에 빠져 죽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속담이다. '김치' 하면 우리나라이듯이, 와인 하면 조지아라고 한단다. 수메르 점토판 기록으로도 남아 있다니 지금으로부터 능히 5,000년 이상된 기록이다. 성경에서 노아가 포도나무를 심은 지역이 아라라트 산 근처이고 아라라트산은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로 알려지니 조지아의 지정학적 위치와 일치한다.

 


 

조지아주에 많은 이야기가 쓰여 있지만 모두 소개하기에 어려워 국경을 맞댄 이웃 국가 아르메니아에서 글로 소개한 장(章)의 제목 몇 개만 예로 든다. 「성경에도 기록된 조지아 와인」, 「그을린 촛불 자국 가득한 교회」 「돈, 잘 쓰자」, 「절변과 유황온천을 갖춘 천연 요새」, 「편안함으로 맞이해준 아르메니아」, 「세반 호수에서 매운탕을 맛보다」, 「프랑스도 인정한 아르메니아 코냑」 등이다. 조지아에서의 저자가 좋은 와인 고르는 법에 대해 대답해준 말도 재밌다. "가장 좋은 와인은 내게 맞는 와인이고 가장 이쁜 여자는 내가 사랑하는 여인이죠." 예수님도 물론 포도주를 만드는 기적을 행했을 정도로, 와인은 인류가 만든 문명의 걸작품이 아닐까 싶다. 조지아인은 대부분 조지아 정교를 믿는다. 예수의 12사도 중 5명이 직접 조지아 땅에서 기독교를 포교했으며, 캅카스(영어명 코카서스) 지역에서는 아르메니아(301년)에 이어 두 번째로 326년에 기독교를 국교로 채택했다. 이 나라에서는 종교가 국민들에게 단순한 신앙 그 이상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고 있다고 저자는 전한다.

조지아는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위치한 유럽과 중앙아시아의 교역지이자 교차로이다 보니 강대국에 에워싸인 각축장이었다. 기원전부터 그리스, 로마, 페르시아, 몽골, 오스만튀르크까지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강국들에 차례로 지배당해왔다. 그런 가운데 수많은 순교자들을 배출하면서 신앙을 중심으로 뭉쳤다. 근세 역사로 100년 넘게 러시아제국의 지배하에 있다가 1918년 공화국을 수립했지만 불과 4년 만에 1922 소비에트연방에 편입됐다. 그후 70년간 끈질기게 분투해 결국 1991년에 독립했다. 듣고 보니 한반도 못지않게 수난의 역사를 갖고 있다. 이 작은 나라가 '유럽의 보석'이라고 불리며 매년 800만 명이나 되는 여행객이 찾아드는 비결은 무엇일까를 저자는 생각해본다. 역사상 여러 강국에 지배당했으나 그들의 정체성을 고수해온 정신력과 그를 보듬어 온 문화유산일까 아닐까 싶다. 이웃 나라 아르메니아도 비슷한 역사적 수난을 함께했다. 아르메니아는 우리나라 세종대왕처럼 아르메니아 알파벳을 만든 '마슈토즈'란 사람이 유명한 분이라고 한다. 마테나다란 고문서 박물관이 있는데 '마슈토츠 고문서관'이라고도 불리운다고 저자는 설명해준다. 조지아와 마찬가지로 강대국들의 지해를 여러 차례 겪으며 1920년 세르브 조약에 의해 독립이 인정되었지만 다시 1936년 12월 구 소련을 구성하는 연방공화국의 하나가 되었다. 구 소련의 해체에 따라 1991년 독립한 나라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 파트에 가면 "장기 해외여행을 하다 보면 아무리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 편안한 내 집과 따뜻한 가족이 그리워지게 마련"이라고 언급한다. 저자는 마지막 여정인 베트남에서 가족과 상봉해 2주간 베트남 곳곳을 함께 여행했다. 타국에서 만나니 더욱 반가웠고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뜻깊은 시간이었다고 고백한다. 덕분에 나만의 여행이 아닌 가족과 함께 마지막을 꽉 채운 따뜻한 여행이 되었다고도 말한다. 어쩌면 저자의 여행이 이번이 마지막이 아닐 것이란 예감이 든다. 알차고 비교적 수월하게(?) 마친 해외여행에서 그의 무모한 여행은 계속될 것이란 느낌을 받는다. 그가 책의 뒷 부분에 남긴 「감사의 글」에서 그 느낌이 더욱 강해진다.

 

'인생은 그냥 봄(Seeing)이다.

그래서 나는 이 봄, 저 봄 다 좋아한다.

지구별로 여행 온 우리 모두는 그렇게

일상이든 낯선 공간이든

그 속에서 해마다 봄을 맞이하며,

날마다 봄으로써 성장해간다.(p.350)

 

저자 : 김별

 

어렸을 적부터 꿈이 세계일주였다. 30년간의 직장생활을 마친 후 이제는 허락된 내 시간이 되어 떠났다. 철저한 준비와 촘촘한 계획 없이 일단 떠나온 나 홀로 여행이었지만, 늘 예상 밖의 즐거움과 발견의 기쁨을 얻었다. 기대 없는 곳에 더 큰 놀라움이 있다는 것처럼 그러한 경험들이 더욱 기억에 남는 추억이 되었다. 5개월 반 동안 북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18개국 48개 도시를 뚜벅이 걸음으로 채우며, 떠나기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었던 내 인생 2막 모험 여행을 두루 다채롭게 했다. 느긋하게 무심한 듯 바라보는 이국의 풍경들과 낯선 길 위에서 다른 세상을 만나고 또 다른 나를 만났다. 1963년에 태어났다. 1985년 경북대학교 불어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5년간 프랑스 툴루즈 대학에서 공부하며 석사학위(DEA)를 취득하고 박사과정을 마쳤다. 2020년에 30년간 몸담았던 교직에서 명예퇴직한 후 하고 싶은 일하며 세상 구경을 다니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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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1페이지 경제사 365 - 읽기만 해도 내 것이 되는 경제 입문서
강준형 지음 / 다온북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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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1일 1페이지 경제사 365』는 경제의 역사를 다뤘다. 다만 지난 300년 간 경제 이론과 경제학 분야에서 인물, 사건, 정책 등을 모았다.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부분이 우리나라 경제사이다. 우리는 경제사라고 따로 논의할 정도로 오랜 기간이 아닌 근현대사 부분에서도 1945 해방 이후부터의 현대 경제사를 담았다. 자본주의·공산주의·보호무역주의 등 이념적인 부분보다는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경제와 그 역사를 사건, 인물, 장소, 일화 등 12개의 카테고리로 나눠 하나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우리나라 경제사를 시작으로 경제 호황기부터 ‘그때 그 사건들’, ‘경제 속 인물’ 등 누구나 부담 없이 쉽게 읽을 수 있는 경제 상식을 담았다. 그리고 각 장에 경제인들의 명언을 넣어 해당 카테고리의 특징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경제사’라는 주제가 다소 무거워 보일 수 있지만, 이 책은 과거 우리의 일상을 이야기한다. 한국 현대사 속 우리 경제사에 어떤 이슈들이 지금 시대까지 발전시켰으며 무엇을 변화하게 했는지 등을 알 수 있다. 과거와 현재 어느 한쪽을 우위에 두지 않고서 현재의 눈으로 과거 경제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 있듯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과거를 통해 미래를 대비할 줄 알아야 한다. 경제는 우리 일상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IT강국 대한민국’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최근 챗GPT의 등장으로 관련 산업은 물론이고 그로 인한 경제는 또 어떻게 변화할지 고민하고 있다. 또 코로나19가 종식되고, 닫혔던 하늘길이 열리고 여행객으로 인해 다시 돈이 흐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준 금리 인상과 공공요금 인상으로 다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지금을 겪고 있지 않는가? 그러나 그 반면에 ‘K-반도체 이차전지’가 우리 산업 경제의 새로운 빛을 내며 우리 경제 성장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렇듯 경제는 우리 삶 곳곳에 직면해 있고 부정적인 면이 있는가 하면 그보다 더 미래를 내다 볼 수 있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경쟁국의 거센 충격에 당하지 않고 경쟁 우위를 확보해 지속할 수 있는 경제성장을 도모하는 혜안이 필요하다.

 


 

불과 70여 년밖에 되지 않은 대한민국 역사. 하지만 그 세월을 절대 짧다고 할 수 없다. 지금도 자고 일어나면 매일 경제 상황이 바뀌고 있지 않은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가 지나고 나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금리 인상으로 세계 경제가 다소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이런 경제 상황은 단연 지금 ‘현재’의 일일까? 우리나라는 1950~60년대에 산업화를 이끈 베이비붐 세대가 흘린 땀과 노고 덕분에 이후에 경제 호황기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우리나라 역사 최대 경제위기를 겪기도 했다. 이처럼 경제의 황금기와 불황기는 과거 곳곳에 존재했다. 흔히들 “지금이 제일 어렵다.”, “유례없는 경제 불황이다.”라고 말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래서 책 『1일 1페이지 경제사 365』는 그때 그 시절에는 어떤 환경에서 살았으며 무슨 일을 겪었는지, 그리고 거기서 더 시간이 지난 후의 경제는 어땠는지를 한 페이지마다 하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당시 경제 상황을 흐름 순으로 지켜보며 그것이 오늘날 세계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 알 수 있다. 책 『1일 1페이지 경제사 365』는 사건과 일화, 인물, 장소 등 서로 다른 영역의 경제 순간들이 하나의 장을 이뤘다. 1. 역대 정부의 주요 정책과 성과, 한계를 정리 / 2. 60년대에 추진하고 70~80년대에 본격화한 우리 경제의 성과 / 3~4. 3장 ‘그때 그 사건들’, 4장 ‘경제 속 인물’도 비슷한 구성을 따른다. 1, 2장의 내용을 접해본 만큼 여기서부터는 큰 부담 없이 읽어갈 수 있을 것 / 중반 이후부터는 세계 경제사 일부 포함. / 12. 주변국 및 세계 경제사까지 누구나 부담 없이 하루 한 장 읽음으로써 과거와 현재를 함께 살펴볼 수 있다. 그 시절을 살았던 누군가에게는 추억을, 몰랐던 이에게는 새로운 경제 상식을 전달할 것이다.

 


 

이 책은 앞서 언급한 대로 12장(章)에 걸쳐 우리 현대사 속 경제사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이후 7장부터는 「경제학자와 경제사상」부터는 세계 경제사 쪽도 함께 담았다. 1장 「해방 후 경제 70년」, 2장 「고도 경제성장의 명과 암」, 3장 「그때 그 사건들」, 4장 「경제 속 인물」, 5장 「기업과 산업 이야기」, 6장 「기억 속 경제」, 7장 「공간과 장소」, 8장 「새로운 등장」, 9장 「경제학자와 경제사상」, 10장 「그 밖의 경제 교양」, 11장 「세계경제의 주요 사건」, 12장 「주변국 및 세계경제사」 등이다. 대체로 "경제사라고 하면 원시시대부터 시작해 화폐경제의 출현, 봉건제와 중상주의, 그밖에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같은 내용을 떠올리기 쉽다. 동시에 그 변화를 이끈 정책이나 인물을 주로 다루곤 한다. 이러한 경제사는 인류 역사 전반에 역향을 미칠 정도의 큰 사건인 만큼 꼭 알아둘 필요가 있는 것들이다."고 저자 강준형은 「프롤로그」를 통해 한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우리 경제, 대한민국 경제사를 출발점으로 본다. 이마저도 해방 후 분단과 전쟁을 거치며 수립된 1948년 기준이라 시간상으로는 기껏해야 70년에 불과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경제사의 주제가 되기엔 턱없이 짧은 게 사실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러나 우리 경제는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고도성장을 일궈냈다. 이에 따라 이 책은 마치 주마등처럼 스쳐 간 우리 경제 속 수많은 이야기를 재조명하고자 출간된 것이다.

저자가 "사실 대한민국은 누군가의 말처럼, 뭔가 준비해서 제대로 한 일이 그리 없는 나라다. 준비할 여건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고 말해 사실 그간 우리 국민의 노력을 폄훼하는 발언이라고 생각해 조금은 불편했다. 그러나 저자의 뜻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로를 깔고, 제철소를 지었으며 조선소를 설립해 세계 1위의 조선산업으로 우뚝 섰다는 점 등을 강조하기 위해 쓴 말이라는 사실에 약간 흥분됐던 마음이 가라앉는다. 어쩌면 저자가 의도적으로 한국 현대 경제사의 짧은 기간에 압축적으로 고도 성장을 이뤄낸 국민들에게 위로와 자긍심을 키워주는 발언을 위한 전제로 한 내용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으로 바뀌어 다시 주목하게 됐다.

 

 

이 책은 한 페이지마다 하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다소 짧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하나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에는 충분한 분량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사건과 일화, 인물, 장소 등 서로 다른 영역이지만 각각의 이야기로 제기능을 하도록 저자가 짧게 풀어냈다. 특히 자칫 '경제' 하면 골치 아프고 답도 없는 분야에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독자들의 심리도 읽어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일반인들도 충분히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되도록 쉽고 짧게 풀어내는 데에도 쉽지 않았을 것이란 점에서 저자의 노력은 우리의 경제 지식을 더 높여 줄 것으로 기대된다.

1장에서는 이승만 정부에서부터 시작해 최근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역대 정부의 주요 정책과 성과, 한계를 정리했다. 거대 두 정당 간의 정책 노선 차가 뚜렷한 우리나라에서 특정 정부의 정책을 평가한다는 말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는 저자의 말은 설득력을 갖고 있다. 따라서 평가에 이견이 따른다는 점을 미리 밝히고, 이 부분을 독자의 영역으로 남겨둔다.

2장에는 60년대 추진하고 70~80년대에 본격화한 우리 경제의 성과를 담았다. 앞서 언급한 대로 우리 경제사는 결코 성장만 이어져 온 것은 아니기에 정경유착과 노동탄압 등 부조리한 측면도 매우 잦았다는 점도 이해할 만하다. 그런 와중에도 경제가 성장하면서 새로이 제도를 도입하고 또 개편했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3장과 4장도 비슷한 구조를 따르고 있다. 1, 2장의 내용을 접해본 독자들도 압축된 글의 이해에 큰 부담이 생기지 않을 것으로 저자는 내다본다.

세계 경제사 일부는 중반 이후 포함했고, 특히 12장에서는 「주변국 및 세계경제사」를 배치해 경제사의 마지막 이야기로 최근 신냉전 동향과 그 시사점을 짚어가면서 독자들을 핵심으로 안내한다. 중언부언이 될 것이지만 저자의 말에 따르면 우리 경제의 과거란 곧 이전 세대, 특히 1950~60년대에 태어나 산업화를 이끈 베이비 붐 세대의 현재이기도 하다. 이들은 유년 시절 보릿고개를 경험할 정도로 빈곤했음에도 경제·사회적 변화를 주도했으며 일에 대한 강한 의욕으로 지금의 경제성장을 견인했다.

 


 

독자는 박정희 대통령 및 이후의 대통령 정부의 경제 정책과 결과 등에 대해서는 책을 읽고 조금의 지식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 때에는 독재와 정적 제거, 그리고 한국전쟁의 이야기만 들어서인지 그의 경제 정책은 전쟁 후 복구사업에 가려 아무것도 알지 못한 상태였으나 이 책에서 농지개혁에 대한 정책 실시를 알 수 있었다. 놀랍게도 초대 농림부 장관으로 좌익 세력의 조봉암을 파격 임명해 전쟁 속에서도 농지 개혁은 이뤄지고 현재에 이르러서는 성공적이란 평가를 받았다 저자는 밝힌다. 이승만을 믿었던 지주 계층은 뒤통수를 맞은 격이었고 이는 북한의 토지 개혁에 따른 정치적 불안과 미국의 압력 등이 작용했다는 해석이 있다고 전한다. 분단이 고착화되고 4·19를 거쳐 장면 내각이 출범하면서 제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했다는 사실도 이 책을 통해 있다. 지금까지 장면 내각은 짧은 기간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박정희 정부에도 이어져 우리 산업화에도 큰 기여를 했다. 다만 이 계획이 박정희 시대 자제척 정책 추진인 줄 잘못 알고 있는 것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 박정희 정부는 강력한 통치력을 발단으로 민주주의는 오점을 남겼지만 경제 정책 추진에는 성공적이었다는 평가가 있다. 지금까지 이 점은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민주주의와 경제 정책을 함께 추진했다면 지금의 우리 경제 규모에 다다를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점은 '역사에 가정은 없다'는 격언에 아무 의미가 없을 듯하다. 공과 과는 모든 대통령에게 있을 터 박정희 대통령도 공과 과에 대한 구분은 지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독자의 생각을 덧대본다.

전두환 정권은 의외로 고도 경제 성장과 물가 안정이라는 성과를 냈다는 평가다. 이는 전두환 대통령의 능력이기보다 경제 내각과 '3저 호황'이라는 호기로 이뤄진 것이라는 점은 확인된 평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3저'란 저물가(저유가)와 저금리, 저환율(저달러)를 말하는 것으로 경제가 안정세에 들어설 때 나타나는 반가운 일이라고 한다는 점에서 대통령 개인의 특별한 경제 비전이나 경제관이 바탕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는 확실한 것이라고 판단된다. 이후 대통령들도 모두 공과 과가 있으며, 각각의 국정 운영에 따라 평가를 받고 있거나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이견은 없는 듯하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은 제 12장에서 우리나라 경제의 현황과 미래 경제 정책에 크게 영향을 미칠 이야기들이 많아 관심이 간다. 주변국이란 중국과 일본 등이 우리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이므로 이들의 지난 반 세기의 경제 정책 등에 관한 이야기가 당연할 것이다. 또 현재 '미·중 무역전쟁'이란 엄중한 상태에서 우리의 경제가 미국의 외교, 군사안보동맹 관계와 중국의 세계 패권국 도전의 사이에서 우리의 정치적, 경제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게 됨으로써 어느 때보다 미래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어 이에 대처해 준비해 나가야 할 당위성이 충분하다고 책을 통해 배운다. 특히 중국의 경제적 약진과 미국의 패권국으로서의 지위 등이 충돌하는 것을 어느 쪽이 유리한가, 어디가 더 센가에 대한 논의보다 만일 전쟁이 나면 인류 종말이라는 비장한 상태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독자는 본다. 미중이 패권다툼을 해도 여기까지야 가지는 않을 것이란 학자와 전문가들의 판단이 옳기를 바랄 뿐이다.

다른 문제는 어떤 일이 벌어져도 대처해 나갈 우리 대한민국이지만 미·중 간 전쟁은 끔찍한 핵 전쟁을 유발할 위험성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미국도 패권국이 되고 난 후 채 100년이 되지 않았지만 냉전이 끝났음에도 오히려 더 힘을 잃어가는 느낌이고, 중국은 그 틈을 노리지만 아직 군사적 대결에서 핵으로까지 치달을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미국으로서는 이라크 전쟁은 상처뿐인 영광이었고, 아프가니스탄 대테러 전쟁에는 결국 패전으로 물러선 것 같은 느낌이어서 더 힘을 잃은 모습으로 비춰진다. 그러나 중국의 군사적 역량이 미국을 압도하지 않는 한 핵 전쟁까지 감수할 위험을 안고 감행하지는 않을 것이란 예상이 적절할 것 같다. 이렇게 이 책은 독자에게 잘못된 지식을 바로잡아주고, 모르던 우리 경제의 정책이나 사건 인물 등에 대한 상식을 크게 늘려 주었다.

 

저자 : 강준형

 

현재 ‘카난kaironan’이라는 닉네임으로 경제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 중인 저자는, 경제학을 전공한 후 다양한 경제 이슈와 정책 등을 쉽고 재미있게 재해석해 많은 독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또 경제 원론 및 경제사, 경제상식에 관한 대학 특강 등 다양한 교육을 진행 중이다. 그래서 경제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나 경제기사를 처음 접하는 독자를 대상으로, 경제지식을 갖추는 것보다 경제기사에 대한 관점을 길러주고자 《경제시장 흐름을 읽는 눈, 경제기사 똑똑하게 읽기》를 썼다. 저자가 쓴 다른 책으로는 《딱 이만큼의 경제학》이 있으며, ‘2018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된 적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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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인 그림 읽기 - 고요히 치열했던
이가은 지음 / 아트북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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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사적인 그림 읽기』는 독자에게 두 가지의 지식을 더하게 해주었다. 하나는 새로운 그림 감상법에 대한 영감을 주었다. 그림에 대해 배운 적도, 직접 그린 적도 없는 독자는 미술 관련 책이나 유명 도슨트의 그림 감상법을 읽고 감상의 도움을 받았다. 그렇게 그림 감상에 입문한 뒤로 될수록 많은 전시회에 직접 가서 보고 느끼는 점을 하나씩 쌓아가는 식이다. 그림의 제목이나 화풍을 보고 누구의 그림인지를 아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여전히 그림에 대한 지식이 많다고 말하기는커녕 그림을 누군가에게 설명해주기에는 어려웠다. 그렇게 쌓은 지식은 그림이나 화가의 일부분만 알기 때문이다. 저자 이가은은 여기에 그림 감상을 위한 또 하나의 중요한 방법을 독자에게 알려준 것이다. 먼저 공감하는 그림을 발견하고, 그 그림의 배경이 되는 역사적 사실과 화가의 당시 활동에 대한 지식을 얹으면 풍요롭고 수준 높은 그림 감상법을 익힐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은 그림 문외한의 독자를 꽤 지식이 있는 것처럼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기도 했다.

또 다른 하나는 클래식 음악도 마찬가지지만, 왜 문학과 달리 그림을 그리는 여성은 없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이 책이 그 점을 일깨워 주었다. 독자는 없는 게 아니고, 몰랐던 것이다. 그만큼 그림에 대해 몰랐다는 자각을 하게 됐다. 저자는 미술 공부를 하다 역사학으로 전환해 공부한 역사와 자신의 일상을 통해 그림을 치밀하게 들여다보고 이 책을 재미와 깊이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책이라고 이 책의 출간 취지를 밝혔다. 저자는 언론학과 서양사를 공부한 새내기 연구자이자 세상의 여러 기준에 맞춰 자신을 돌아볼 수밖에 없는 30대의 한 개인으로서, 하나의 그림을 다양한 관점에서 조명하는 독특한 미술 에세이를 썼다. 바로 이 책이다.

 


 

“역사를 공부하기 전에는 그림이 나의 글감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역사학에 뛰어들면서부터 미술 감상을 즐겼다. 처음에 그림은 내게 유용한 사료였다. 역사서의 한 페이지를 연구하듯 그림을 읽었다. 아는 만큼 보였고, 보이는 만큼 그 안에 나의 경험과 사유를 담아 ‘내 것’으로 사랑하게 되었다.”(p.8)

 

이젠 저자에게 그림은 감상의 대상을 넘어 역사 연구의 재료다. 파리 기념엽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 베로의 그림에서 가정에 귀속되었던 19세기 여성들의 활동 반경이 어떤 과정을 거쳐 공적 공간으로 확대되었는지 돌아보고, 안토넬로 다메시나의 「서재의 성 제롬」을 보며 중세에서 근대로 이어진 ‘읽기’의 역사를 살폈다. 또 얀 마테이코가 그린 코페르니쿠스 그림에서 신성과 과학이 어색하게 공존하던 시기, 태양중심설이 촉발한 ‘세대 갈등’을 흥미롭게 짚어낸다. 그러나 각 이야기는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고민에 대한 작은 해답을 이끌어내는 과정과 매끄럽게 얽힌다.

먼 나라와 여기,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역사적 흐름 속에서 미술작품을 살펴봄으로써 저자가 궁극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바로 ‘삶의 의미’라고 말한다. 마차 운전석에 앉아 파리의 신작로를 내달리는 여성, 책에 몰입하는 성 제롬, 프톨레마이오스에서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 그리고 뉴턴으로 이어진 세계관을 바꾼 과학자들 등, 저자는 그림 속 인물과 상황에 자신을 대입해 ‘고요히 치열했던’ 시간의 의미를 길어올린다. 이 책에는 우정, 경쟁, 다이어트, 관종, 세대 차이 등 공감을 불러일으킬 만한 주제로 쓴 개인적이고 역사적인 열다섯 편의 글이 실려 있다. 일상의 균형추가 되어준 그림과 과거의 이야기가 적재적소에서 글에 힘을 실어준다.

 


 

1부 「외롭지 않은 고독」에서는 외로움을 순순히 인정하면서도 자신을 오롯이 세우는 태도를 보여주고, 2부 「아름답게 치열할 것」에서는 매일 치열하게 경쟁하면서도 숭고함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을 미술작품을 통해 전한다. 3부 「고요하게 바라보는 시간」에서는 어쩔 수 없는 변화 앞에서 지나간 것과 다가올 것을 가만히 생각해보는 시간에 대해 풀어냈다. 1부 1장(章)에서 저자는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우산〉을 통해 스스로 예민해지고 자신이 전공을 바꾼 데 대한 회의감도 들었던 것 같다. '왜 사서 고생일까?, 내 미래는 어떻게 될까?' 등 불안하고 우울한 감정에서 벗어나는 의지를 〈우산〉을 통해 스스로 일깨운 듯하다. 저자는 여성들이 사용하는 '우산'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더한다. 르누아르가 〈우산〉을 그린 시절은 우산의 대중화가 실현되어 귀족과 부르주아뿐만 아니라 파리 시민 다수가 값싸고 가벼운 우산을 사용하기 시작한 대라는 점을 알아낸다. 이에 따라 르누아르가 〈우산〉을 그릴 무렵 파리 시민들은 내심 비가 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새로 구입한 우산을 챙겨 다니다가,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우산을 사용할 수 있다는 소소한 기쁨을 안고 우산을 펼쳐들었을 것이라고 연상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르누아르가 그때 저자의 삶을 관찰하고 그린다면 아예 다른 작품이 되리라고 확신하다고 말한다. 르누아르는 분명 비 오는 날에도 의외의 설렘과 즐거움을 찾아내 그것을 더 신경써서 그릴 테고, 완성된 그림을 보여주며 "봐, 네 시간이 그렇게 울적하지만은 않았다니까?라고 말할 것으로 저자는 단언한다. 그러면 그제야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저자가 놓쳤던 순간, 배우고 얻은 것, 소소한 기쁨 들을 기억해내고 그 나날을 좀더 소중히 여기게 되리라고 설명한다. 저자와 화가, 작품에 대한 연결성을 말하는 것이다. 저자가 르누아르 〈우산〉을 보면서 '우산'의 역사, 당시 화가의 화풍, 시민들의 유행하던 것, 시민들의 일상을 세세한 것까지 모아 분석한 후 자신을 대입시켜 비 오는 날의 고독을 씻어내고 좀더 활동적이고 즐거운 일상을 살 수 있다는 저자 자신의 마음 치유를 드러낸 감상을 독자들에게 슬며시 내놓는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전시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은 거리가 텅 빈 늦은 밤, 잠들지 않는 뉴욕을 그린 작품이다. 한낮 도시의 불빛과 소음은 소거되고, 정적이 드리운 배경에 한 심야식당의 조명만 밝히고 있다. 바의 손님들은 과묵하고 무심한 얼굴로, 어떤 교류나 대화 없이 그저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모습이 멍때리는 것 같기도 피곤한 듯하기도 한데, 분명 일말의 열심이나 역동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호퍼의 다른 작품에서도 작중 인물들은 대개 이와 흡사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로 인해 그들의 내면은 항상 쓸쓸함, 외로움, 우울 등의 멜랑콜리한 정서들로 해석되어 왔다고 저자는 언급한다. 20세기 도시인들의 불안과 공허를 사실적으로 그려냈다는 평가가 호퍼를 향한 가장 흔한 찬사였다는 말을 덧붙인다.

그러나 저자는 자신의 입장에서 다시 이 그림을 생각한다. 다른 시선으로 감상하는 것이다.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을 처음 마주했을 때, 마치 그림 속 거리의 행인이 된 듯 유리창 너머를 오래 주시했다. 작품은 그만큼 흡입력이 컸다. 그러나 그 안에서 내가 느낀 감정은 흔히 말하듯 단지 외로움과 쓸쓸함만은 아니었다. 작품에 대한 정보가 전무했던 덕분인지 지극해 개인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니, 작품에 흘러넘치는 단절과 적막에서 외로움보다는 편안함이 느껴졌다.

호퍼의 피사체들은 늦은 밤 드디어 찾아온 고요한 시간을 가장 익숙하고 편한 장소에서 휴식하며 보내고 있었다. 아마도 관계에 지쳐 있던 때, 내가 갈구하던 시간을 그들이 누리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p.54~55)

특히 홀로 앉은 남자의 뒷모습에 좋아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는 저자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다고 말한다. 퇴근 후 아늑한 카페에서 휴식하기, 멍하니 산책로를 거닐기, 늦은 밤 영화관에서 감성에 젖어 훌쩍이기, 집에서의 휴식도 좋지만, 가끔은 이렇게 낯선 이들 사이에서 익명성의 투명 망토를 입고 다채로운 고독을 즐긴다. 그림 속 남자도 그러한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을까? 투영된 저자의 마음은 할걸음 더 나아가 어떤 방식으로 적막을 깨뜨리는 행위는 그의 고독을 존중하지 않는 실례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2부 「아름답게 치열할 것」 첫 장에서는 주세페 카데스의 〈아이아스의 자살〉을 다룬다. 여성 댄스 서바이벌 프로그램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이하 〈스우파〉)의 인기가 절정일 때인 2021년 겨울, "그게 그렇게 재밌냐?"는 친구의 물음에 "스우파에서 인생을 배워"라고 답했다고 한다. 난생 처음 보는 댄서들. 그들이 선보이는 춤과 무대도 저자의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화려한 공연이 전부였다면 그렇게까지 과몰입을 하지는 않았을 것인데, 〈스우파〉에서 댄서들의 내공과 사연이 빚어내는 강력한 드라마를 읽었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그들이 펼치는 도전, 갈등, 좌절, 우정, 꿈, 자존감의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한번쯤 찾아오는 보편적 이야기이다. 춤과는 서먹한 저자는 그 안에서 현실을 발견했고, 저자가 실제로 맞닥뜨린 삶의 과제들을 너무나 멋있게 풀어가는 댄서들의 매력에 빠져들게 됐다는 것. 승자와 패자, 강자와 약자, 합격과 불합격이 갈리는 경쟁에서 우리는 후자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기꺼이 경주마가 되어 달린다. 승리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고, 모든 수고는 허사가 된다. 그저 도태되지 않기 위한 몸부림 속에서 패자의 존엄은 고사하고 승자의 존엄도 기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러니 '아름다운 경쟁'이라는 말만큼 비현실적이고 위선적인 자기 위로가 있을까?라고 반문한다.

그러나 〈스우파〉가 보여준 것은 다름 아닌 이기지 못한 경쟁에도 의미가 있고, 도전 자체로 감동을 줄 수 있으며, 승자와 패자 모두가 빛날 수 있다는 아름다운 경쟁의 가능성이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물론 그들에게 결과는 중요했다. 심사위원과 대중의 선택이 공개될 때마다 희비가 엇갈렸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에게는 하고 싶은 무대를 했는지, 진심을 다했는지, 스스로에게 만족한지가 더 중요해 보였다고 저자는 술회한다. 이에 따라 저마다 멋진 무대를 만들어냈고, 패배가 예견된 경쟁이라도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하더라고 말한다. 여기에 저자는 주세패 카데스의 그림 〈아이아스의 자살〉을 비유한다. 고대 그리스 비극 『아이아스』의 한 장면을 묘사한 작품으로 중앙에 자살을 감행하는 남자가 극의 주인공 아이아스다. 한눈에 봐도 작품 전반을 지배하는 비극적 정서가 느껴진다. 아이아스는 그리스 최고의 전사였으나 어떤 한 경쟁에서 패배한 후 수치심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다는 비극이다. 저자는 공연과 연극, 그림이 표현하는 그 무엇이 공정한 경쟁과 패자에게도 박수를 보내는 현실 세계를 펼치지 못하는 인간에 대한 자성의 의미를 드러내고 있다. 저자는 현재와 고대의 시점에서 '경쟁'에 대한 우리들의 깨우침을 주려는 듯하다.

 


 

2부 세 번째 장 〈관종 시대의 자기표현법〉에서 독자의 여성 화가에 대한 의문점이 풀렸다. 저자는 이 장에서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크의 〈자화상〉을 들고 있다. 저자는 젠틸레스키의 그림을 볼 때면 작가의자기표현과 관련해 많은 귀감을 얻는다고 고백한다. 물론 이미 '관종'에 대해 저자는 "관심을 원하지만, 지나친 관심은 원치 않는다"라고 적절한 거리를 둔다고 말한 바 있다. 젠틸레스키는 17세기 초중반 바로크 시대에 활동한 흔치 않은 이탈리아 여성 화가란 설명을 앞세운다. 예술가 길드인 아카데미아 디 아르테 텔 디세뇨의 높은 성별의 벽을 넘은 첫 여성 회원이라고 젠틸레스키를 꼽는다. 여성은 정식 교육을 받을 수 없던 시절, 예술의 중심지 피렌체에서 미술가로 인정받을 만큼 그녀는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그리고 젠틸레스키는 본인 작품에 자기 얼굴을 자주 등장시키는 화가였다. 성경·역사·신화의 장면이 그녀 작품의 주 소재였는데, 그녀는 종종 그림 속 여주인공의 외모에 거침없이 자기 모습을 그려넣은 화가다. 당시 대부분의 작가가 남성이었기에 그들이 자신의 모습을 덧입히는 인물도 남성에 한정되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혜성처럼 나타난 한 여성 작가가 상징적인 여성 캐릭터들을 자신의 얼굴로, 그것도 빼어난 실력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그녀는 독특한 위치를 차지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젠틸레스키는 단지 자신의 외양을 알리기 위함만은 아니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책에 따르면 젤틸레스키는 주로 여성을 소재로 한 그림을 그렸다. 우리에게 알려진 57점의 작품ㅈ 중 49점이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거나 남성과 동등하게 묘사하고 있다. 젠틸레스키가 반복해 그린 여성 중에는 구약성서 외경 『유디트서』의 주인공 유디트가 있다. 유디트는 조국을 정복한 아시리아이 적장 홀로페르네스를 미인계로 유혹하고, 그의 목을 칼로 베어버린 신화적 여성이며, 카라바조를 비롯한 저명한 화가들의 오랜 사람을 받아온 주제이다. 그 중에서도 젠틸레스키의 유디트는 가장 강렬하고 극적인 연출로 유명하다. 당대인들은 이 작품을 보며 세 가지에 놀랐다. 첫째로 여성의 실력이 이렇게 훌륭할 수 있다는 사실에, 둘째로는 그림의 과격성과 강인함에, 마지막으로 유디트의 모습이 화가를 너무 닮아서였다.

 


 

젠틸레스키의 인생에서 관심은 꼭 필요하면서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관심은 양날의 검이 되어 그녀에게 명예도 주고 상처도 입혔다. 그 가운데 그녀는 항상 할 수 있는 최선으로 목소리를 냈고, 작품을 통해 자신의 진심이 사람들에게 닿기를 바랐다. 물론 작품으로 그녀의 전부를 알 수는 없다. 누구나 자기에게 유리하게 자기를 해석하고 드러내기 마련이니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녀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 그래서 애써 기록으로 남긴 그 말들을 지금 우리가 400년의 시차를 극복하고 듣고 있다는 사실이다.(p.171)

 

죽음을 기억하고 죽음에 대비하며 살다보면 어느 날 불현듯 죽음이 찾아온다. 이 마지막 순간을 포착하는 중세 예술의 알레고리가 ‘죽음의 무도’다. 이때 죽음은 ‘죽음의 승리’에서와 같은 냉혈하고 비인격적인 살육자가 아니다. 그보다는 익살스러운 악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죽음은 잔뜩 신명 난 표정과 몸짓으로 풍악을 울리며 이제 막 삶을 마친 인간에게 다가온다. 이들의 역할은 아직 죽음을 실감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채 서 있는 인간을 죽음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다.(p.295)

 

저자 : 이가은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인지 어릴 적부터 소통의 도구인 언어와 미디어에 관심이 많았다. 점차 ‘무엇’이 의미 있는 메시지인지 고민하기 시작했고, 이는 곧 ‘의미 있는 삶’에 대한 고민으로 확장되었다. 그때부터 지나간 인생들이 남긴 흔적을 즐겨 좇았다. 역사와 미술을 향한 애정은 그 여정 가운데 탄생했고, 깊어졌다. 축적된 시간 속에서 다양한 삶을 탐색하고, 감정과 철학을 읽어내는 작업이 좋다. 어제의 정답이 오늘의 오답이 되는 일이 반복되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 자체를 가치 있게 여긴다.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동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쳤고,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쓰고, 인문학지도사로서 온·오프라인 역사 강의를 진행해왔다. 현재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서 일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leeegenna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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