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자본주의 - 개정판
윤루카스 지음 / RISE(떠오름)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본주의(capitalism, 資本主義)란 사유재산제에 바탕을 두고 이윤 획득을 위해 상품의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지는 경제체제를 일컫는다. 현재 서유럽과 미국, 대한민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의 국민들은 ‘자본주의체제’라는 경제체제 아래서 경제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이와 같은 체제가 발생한 것은 인류의 유구한 역사에서 볼 때 비교적 오래지 않은 일이다. 이 경제체제는 16세기 무렵부터 점차로 봉건제도 속에서 싹트기 시작했는데, 18세기 중엽부터 영국과 프랑스 등을 중심으로 점차 발달해 산업혁명에 의해서 확립되었다고 경제학자들은 보고 있다. 19세기에 들어와 독일과 미국 등으로 파급되었다. 그런데 ‘자본주의’라는 말은 처음에 사회주의자가 쓰기 시작하여 점차 보급된 용어라고 한다. 자본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하여는 명확한 정의(定義)가 있는 것이 아니다.

두산백과사전에 따르면 자본주의란 말은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뜻으로 쓰이고 있다. 예를 들면 이윤획득을 위한 상품생산이라는 정도의 뜻으로도, 단순히 화폐경제와 동의어로도 쓰이며(이 경우 부분적으로는 고대와 중세에도 자본주의가 존재하였다고 가정), 사회주의적 계획경제에 대하여 사유재산제에 바탕을 둔 자유주의 경제라는 뜻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카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특징을 ‘이윤획득을 목적으로 상품생산이 이루어진다는 점, 노동력이 상품화된다는 점, 생산이 무계획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 등으로 보았다. 독일의 역사경제학자 베르너 좀바르트는 자본주의체제란 ‘서로 다른 두 인구군, 즉 지배권을 가지며 동시에 경제주체인 생산수단의 소유자와,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않은 노동자가 시장에서 결합되어 함께 활동하는, 그리고 영리주의와 경제적 합리주의에 의해서 지배되는 하나의 유통경제적 조직이다’라고 정의했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근대자본주의는 ‘직업으로서 합법적 이윤을 조직적 ·합리적으로 추구하는 정신적 태도’라고 정의했다. 요약하면 자본주의란 상품생산에 의해서 이윤을 획득하려고 하는 정신적 태도를 말하며, 자본주의체제 또는 자본주의경제란, 이와 같은 태도하에서 상품생산이 이루어지는 유통경제조직을 말한다. 자본주의의 특징은 ① 사유재산제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 ② 모든 재화에 가격이 성립되어 있다는 것, ③ 이윤획득을 목적으로 하여 상품생산이 이루어진다는 것, ④ 노동력이 상품화된다는 것, ⑤ 생산은 전체로서 볼 때 무계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이 책 『차가운 자본주의』는 저자 윤루카스가 '자본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설명서다. 단순한 사전식 설명이 아니라 자본주의체제에서 '돈을 버는 일'에 대한 자신의 신념과 가치평가를 바탕으로 하는 '자본주의 사용설명서'로 봐야 할 것 같다는 것은 독자의 생각이다.

저자에 따르면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누구나 부자를 꿈꾼다. 돈이 인생의 전부까지는 아니어도 인생에서 중요한 건 돈이라는 걸 부정하는 사람도 없다. 그런데도 돈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또 ‘있는 놈’을 욕하고 돈 벌려는 사람을 속물 취급하지만, 정작 자신도 많은 돈을 원하며 ‘있는 놈’처럼 보이려고 한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현실인가? 돈을 벌려는 욕망과 속물근성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돈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주장한다. “인간의 원천적 감정인 욕망은 나쁜 게 아니다. ‘자본주의’는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이 바라는 것을 움켜쥘 기회를 제공한다. 자신에게 어마어마한 기회가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주어진 환경을 전부라 여기며 세상을 표독하게 바라보는 이들을 나는 혐오한다.”

 

 

이 정도 되면 설명서라기보다 찬양서에 가깝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자본주의를 곁눈으로 흘겨보는 사람은 부자에 대한 시기심일 뿐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부자에 대해 부도덕한 사람이라고 비난한다는 것은 저자의 말처럼 부러운 대상에 대한 질투와 비난이 아닌 솔직한 심정을 받아들일 것을 강조한다. 또 자본주의 경제체제 아래서 자기 이상을 이룰 수 있는 원동력이 ‘자본주의’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를 혐오하거나 비난하는 사람은 능력 부족이라는 주장으로 읽힌다. 논리적으로도 하자가 없는 주장이다. 저자는 이를 위해 자본주의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덧붙여 자본주의 체제에서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도 슬그머니 꺼내 놓는다. 자본주의나 시장경제 등에 대한 이해 없이 돈 벌기만을 목적으로 열심히 하는 것은 그저 노동력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 일일 뿐이라는 각성을 주기 위해서다.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또 시장경제는 무엇인지 반드시 알아야 한다는 것.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경제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본주의의 속성과 시장경제의 진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 또 사람들이 안다고 믿는 것은 과연 진짜일까? 저자가 이 책을 통해 하나씩 설명하며 풀어간다.

저자가 이 책을 쓰는 이유이자 대전제가 되는 말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늘 욕망과 가치의 조화를 비범하게 이뤄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란 경제체제를 설명하는 책의 제목에 '차가운'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왜 자본주의를 차갑다고 하는 것인가? '냉정하고 잔혹하다'는 이유이다. 아니 좀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살기 위해선 돈을 벌어야 하고,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제공하고 화폐로 바꾸어 되돌려받는 일이기 때문에 자본주의 경제의 잔혹스러움을 강조하기도 한다. 이 책은 10일 만에 10만, 반년 만에 30만 경제 유튜버가 된 윤루카스 저자의 첫 책이라고 한다. 저자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지식과 통찰로 수많은 이들에게 시장경제의 진실을 전하며 수많은 공감과 지지를 받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진실을 알고 싶고, 불안한 경제 상황 속에서 자기 역량을 키워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고 싶다면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저자는 역설한다. 잔혹하지만 자본주의가 최선이며, 경제에 대한 이해는 삶의 근간이다. 이 책을 통해 차가운 세상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진실은 물론 당연한 이익 추구를 적폐로 만드는 수법에서 벗어나 삶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으로 저자는 믿고 있다. 이 책은 210페이지에 불과한 적은 분량의 책이다. 흔히 경제학 관련 서적은 두께(분량)에 있어서 다른 어느 서적보다 많은 편이다. 그런데도 이 책은 왜 분량이 적을까? 자본주의의 속성과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부자가 되는 길을 안내하는 데는 자본주의 무엇이며, 자본주의의 속성을 제대로 말해주면 그것이 곧 부자되는 방법에 해당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 다음은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고, 각자가 처해진 환경이나 선택에 따라 최선을 다할 뿐 다른 방법은 없다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돈 버는 방법'이나 '부자 되는 비결'을 가르쳐준다는 말이나 글은 모두 '사기다'는 극단적 표현도 주저하지 않는다.

저자는 「자본주의 시장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이란 제목의 '프롤로그'를 통해 "욕망은 인간의 가장 원천척인 감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에 대한 욕망만은 업신여기는 것이 우리의 풍토다"고 말하며 "욕망은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인간 개인에게 삶의 원동력을 준다고 믿는다."고 잘라 말한다. 우리나라 사람은 유독 돈에 대해 역겨울 정도로 이중적이라고 지적한다. 이른바 '있는 놈'들을 욕하지만, 욕하는 그들의 SNS를 보면 너도나도 '있는 놈'처럼 보이려고 발광한다고 말한다.(지나친 표현이라 주저되지만 저자의 의사를 존중하는 입장에서 그대로 옮겼다.)

저자의 뜻은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한 것이 세상의 이치라고 하지만, 이처럼 돈을 벌고자 하는 사람을 '돈만 밝히는 속물' 취급하면서 정작 자신 또한 자신이 비난하고 있는 그 부류가 되고 싶어 하는 모습이 우습기에 다소 과한 표현을 쓴 것으로 보인다.

 


 

그럼 남은 문제는 무엇인가? 「자본주의를 내 편으로 만들어라」이다. 돈은 자본주의 시대에나, 자본주의 이전 시대나 최고의 가치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자본주의가 인간 중심의 문화가 지양되고 생겼다며 '황금만능주의'와 같은 단어들로 사람들을 오해시키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지만 저자는 자본주의 경제는 오히려 인간이 존중되면서 생겨나 발전해왔다고 주장한다. 물질보다 인간의 가치를 더 위에 두기 시작한 때부터 생겨났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욕망을 좇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인간 가능성의 토대 위에 쌓였기 때문이다. 독자로서는 100% 동의하기는 어렵다. 자본주의 경제는 물론 경제학 공부를 해본 적도 없고 그저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교과서 이야기만 배웠기 때문이다. 그 경제도 원칙이나 용어 등 대학 입시를 위한 것이지 경제의 흐름이나 순환, 원리 등에 대해서는 문외한일 수밖에 없다. 저자의 주장에 논리적 하자가 없어 설득되기는 하지만 자본주의에 빠져야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는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다.

저자의 설명은 계속된다. 저자는 돈을 위해 일하는 인간들이 일류다. 그들이 지금의 인류를 일류로 만들었다고도 말한다. 이유로는 우리가 익히 아는 삼성의 이건희, 현대의 정주영, SK의 최태원, LG의 구본무. 이들을 사례로 제시하니 반론에 자신이 없다. 약간은 망설이는 독자들 저자는 거칠게 몰아세운다. 기꺼이 납득시키고, 그 이상의 가치를 주어 독자들의 삶을 개혁할 테니 이 책에 집중해 달라고 요청한다. 자신을 위해, 독자들을 위해서라도. 인간은 나약한 동물이어서 지금 현 상황을 유지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는 말도 인용한다. 그 변화가 긍정적인 방향을 향하는 변화라고 해도 말이다. 두 갈래 길이 있다. 왼쪽으로 가는 길은 반드시 불행한 길이고, 오른쪽으로 가는 길은 불행할 수도 있지만 더 행복해질 가능성이 있는 길이다. 어디를 택하겠는가?라고 독자들에게 답을 요청한다. 당연히 행복해질 가능성이 있는 오른쪽 길이 아니겠냐고 하겠지만 틀렸다고 판정한다. 보통은 왼쪽 길을 택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불행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불확실함'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모두 4개의 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잔혹하지만 자본주의가 최선이다」, 2장 「본질을 읽는 눈을 가져라」, 3장 「경제의 흐름을 읽는 눈을 키워라」, 4장 「사탕 발린 말에 속지 말라」 등이다. 저자는 이 4개의 장으로 나뉘어진 각 부분을 다음과 같은 주장을 이 책에서 펼치고 있다. "인간은 악하다. 동시에 욕망으로 가득 찬 존재다. 그 욕망을 잘 건드리면 세상을 위해 헌신하기도 하고, 인류를 더 발전시킬 엄청난 발견을 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아름다움이다. 인간이 좋은 일을 하도록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인간 본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돈’으로 유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따뜻하며 인간은 선한 존재라 믿고 법을 만든다면 분명 망할 수밖에 없다. 차라리 ‘인간은 악하고 돈을 사랑하는 존재’라는 걸 인정하고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 세상은 잔혹하며 자본주의의 속성은 얼음처럼 차갑고 잔혹하다. 인간은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열망이 있으면서도 돈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돈을 벌려는 사람을 ‘돈만 밝히는 속물’ 취급하면서 자신은 더 강한 욕망을 품고 있다. 인간의 욕망은 원천적인 감정이며, 자본주의에서 ‘이익 추구’는 너무나 당연하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 적폐로 몰아간다면 자신의 기회와 가능성을 스스로 날리는 결과를 맞이할 것이다."

 

세상에 도박성이 없는 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가짜를 한두 명 만나봤겠는가? (…) 속지 말라. 존재하지도 않는 ‘구루’를 찾지도 말라. 당신이 공부하고, 당신이 판단해서, 당신이 확신을 만들고, 당신이 도박성을 안고 베팅하라.(p.197~199)

- 「Chapter 4. 〈06. 투자와 도박성〉」 중에서

 

저자 : 윤루카스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SAC) 무용과를 자퇴한 30만 경제 유튜버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명화로 읽는 독일 프로이센 역사 역사가 흐르는 미술관 5
나카노 교코 지음, 조사연 옮김 / 한경arte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독일의 이전 명칭이 '프로이센'이었다는 사실은 독자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프로이센이 가문의 명칭인 줄은 이 책 『명화로 읽는 독일 프로이센 역사』를 통해 처음 알았다. 이 책은 명화를 통해 유럽 왕조의 역사를 소개하는 ‘역사가 흐르는 미술관 시리즈’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책이다. 이 책은 『~ 합스부르크 역사』, 『~ 부르봉 역사』, 『~ 영국 역사』, 『~ 러시아 로마노프 역사』에 이어 완결작이라고 한다. 저자 나카노 교코는 일본의 와세다 대학에서 독일 문학을 가르치는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에서 시작해 독일 통일의 주역이 된 프로이센 호엔촐레른 왕가의 역사를 살펴본다.

저자에 따르면 프로이센의 호엔촐레른(Hohen Zollern) 왕가는 현대 유럽 지도의 원형을 만든 주인공이다. 몇 세기나 신성로마제국 아래 있으면서 300개나 되는 중소 주권국가로 분열돼 있었던 독일은 호엔촐레른가 역대 가주들의 분투 덕분에 19세기에 마침내 하나로 통합된다. 더욱이 이때 같은 게르만 민족이었던 합스부르크가를 배제하는 형태로 독립해 세계 최강국의 한 모퉁이를 차지하며 유럽 역사의 주목받는 나라로 탈바꿈한다. 이후 합스부르크 왕조와 함께 제1차 세계대전으로 왕조가 와해되기 전까지 프로이센 왕조의 찬란한 역사는 지속된다. 저자는 이 책에서 프로이센 호엔촐레른 왕가를 대표하는 인물이 그려진 명화를 선정해 소개하고, 명화 속 인물에 얽힌 사건과 시대 배경을 알려준다. 그리고 왕가 계보도와 연표를 함께 실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프로이센을 잘 모르는 독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재미있고 친근한 스토리텔링을 선보인다. 읽다 보면 자연스레 독일 근대 역사와 함께 명화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프로이센 호엔촐레른 가문은 합스부르크가가 스위스에서 탄생 후 빈으로 이주해 찬란한 꽃을 피웠듯이, 처음부터 프로이센이 본거지는 아니었다. 처음은 독일 남서부 슈바벤 지방에서 일어난 호족이었는데, 11세기 중반 이후부터 13세기 어느 시점까지 힘을 기른 후 해발 850미터쯤 되는 호엔촐레른산 정상에 성을 세웠다. 그리고 이때 가문의 이름을 호엔촐레른가로 바꿨다.

13세기 프로이센 지역에 살던 옛 독일인은 고대 토착 프로이센인을 몰아내고 이 지역을 완전히 차지했다. 이유는 종교 문제였다고 전해진다. 기독교 신도인 독일인에게 다신교였던 고대 프로이센인은 정벌해야 하는 이교도 종족에 불과했다. 신성로마제국은 이곳에 종교기사단을 파견한다. 이때 파견된 기사단이 템플기사단, 성요한기사단과 함께 중세 3대 기사단 중 하나인 독일기사단(튜턴기사단)이다. 독일기사단은 수십 년에 걸친 분쟁을 제압하고 프로이센을 지배하며 영토를 차지했다. 이로써 프로이센은 일종의 수도회 국가가 되지만 어디까지나 바티칸과 신성로마제국의 속박 아래 있었고, 수장인 총장은 공화정처럼 선거로 선출했다.

이로부터 250년이 더 지난 1510년. 20대 젊은이가 제37대 총장에 선출된다. 바로 알브레히트 호엔촐레른이다. 그리고 그 덕분에 기사단령이었던 프로이센은 호엔촐레른가의 공국으로 거듭난다. 이후 프리드리히 1세 때 에스파냐 계승전쟁에서 합스부르크가 진영에 가담하기로 약속하면서 중간 규모의 공국에서 작지만 왕국으로 격상하는 데 성공한다. 이에 프리드리히 1세는 프로이센 왕조 초대 왕이 된다. 이후 9명의 왕이 217년 동안 통치하며 부국강병을 이룬다.

 


 

책에 따르면 프로이센 왕조 역사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단연 프리드리히 대왕이다. 18세기 유럽은 절대군주가 계몽사상을 몸에 두르고자 했던 시대다. 각 국왕은 중세적인 강권 일변도에서 벗어나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인식에 기초해 국민을 지도함으로써 국가 근대화를 촉진하고자 했다. 이 이상적인 계몽 전제군주상에 꼭 들어맞은 인물이 프리드리히 대왕이었고, 이 점이 프로이센의 위상을 더욱 드높였다. 철학자 칸트의 말을 빌리자면 “프리드리히 시대”였다. 그 옛날 베르사유에 군림했던 금빛 태양왕 루이 14세 대신, 새 시대를 맞이한 지금은 군복 차림의 지식인 대왕이 슈퍼스타로 부상한 것이다.

스위스 출신의 초상화가 안톤 그라프가 그린 〈프리드리히 대왕〉은 70세를 앞둔 노년의 대왕 프리드리히 2세를 모델로 한 작품으로, 많은 동시대인에게 왕의 특징을 가장 잘 포착한 초상화라고 인정받은 작품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필연적으로 화가의 대표작이 됐으며, 대량의 복제와 판화가 나돌 정도였다. 이 그림은 눈이 전부라고 할 수 있는데, 힘 있고 생기 넘치는 큰 눈이 보는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꿰뚫어 보는 듯한 그의 눈에 걸렸다가는 모든 게 다 들통 나 체념하는 수밖에 없을 듯하다. 비록 세월의 무게에 눌려 등은 굽고 피부는 처지고 이마, 눈가, 볼, 입가를 비롯한 온 얼굴에 주름이 깊지만, 왕의 강인한 정신은 조금도 쇠하지 않아 보인다.

그림 속 앞가슴에 찬 검은 독수리 훈장에는 ‘SUUM CUIQUE’라는 라틴어 문자가 새겨져 있다. ‘각자에게 각자의 것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당시 프로이센에서 “나라를 지탱하고 있는 한 각 개인은 원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라는 의미로 해석됐다. 왕국의 일체감 및 자유주의와 종교적 관용의 기초가 되는 문구이자 프리드리히 대왕이 목표로 삼고 마침내 이뤄낸 나라의 모습이기도 하다.

 


 

3대 왕인 프리드리히 대왕 이후 프로이센은 점차 세력을 키워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 3세, 4세를 거쳐 흰수염왕으로도 불리는 빌헬름 1세 때 이르러 독일 제국을 통일하고 황제 자리에 올랐다. 이는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와 빌헬름 1세라는 이인삼각 시대의 성과였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프로이센 왕조도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소용돌이를 피할 수 없었다. 이로써 호엔촐레른 왕조 217년의 역사는 빌헬름 2세를 끝으로 종언을 맞이했다.

프로이센은 자그마한 공국에서 시작해 왕국으로 성장한 후 독일 통일을 이룬 뒤 제국으로 발돋움했으나,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합스부르크 왕조, 로마노프 왕조들처럼 와해되고 말았다. 그러나 프로이센의 정신이 밑바탕에 있었기에 이후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을 잘 극복하고 지금도 여전히 대국의 자리를 보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근검절약, 실용주의 정신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 책을 통해 그동안 접할 수 없었던 프로이센의 명화와 역사를 명쾌하고 흥미진진하게 풀어내는 저자의 이야기와 함께 따라가다 보면, 프로이센이 더 이상 우리에게 낯선 역사가 아닌 더 알고 싶은 역사로 다가올 것이다.

앞서 언급한 호엔촐레른성은 15세기 중반에 발생한 전란으로 완전히 파괴됐다고 책은 언급하고 있다. 얼마 후 같은 곳에 두 번째 성을 재건하지만 합스부르크가에 빼앗겼고, 18세기 말 합스부르크가가 버리다시피 한 뒤로 폐허가 됐다. 현재 남아 있는 성은 세 번째 성으로, 19세기에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가 폐허가 된 성을 다시 세우고 아름답게 단장했다. 왕태자 시절 이탈리아를 여행하던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가 일족 발상지인 호엔촐레른성이 무참히 파괴된 모습으 보고 재건을 결심했다고 알려져 있다. 북부 프로이센(발트해 연안 지역)이 거점이 된 지 이미 몇 세기가 지났음에도 자손은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프로이센과 독일의 역사는 고등학교 때 세계사를 배울 때 익혔던 것이 전부이지만 〈프리드리히 대왕〉과 〈비스마르크 재상〉은 유독 기억에 남는다. 독일의 중흥기에 뛰어난 활약을 했던 인물들이라고 배웠기에 그렇다. 이 책에는 70세를 앞둔 시절의 '노년의 대왕' 프리드리히 2세를 모델로 한 초상화가 눈에 띈다. 스위스 출신의 초상화가 안톤 그라프가 그렸다고 저자는 언급한다. 많은 동시대인에게 왕의 특징을 가장 잘 포착한 초상화라고 인정받은 작품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필연적으로 화가의 대표작이 됐으며, 대량의 복제와 판화가 나돌았던 사실은 앞서 언급한 대로다. 한 가지 덧붙일 말은 히틀러의 지하 참호 집무실 벽에 걸려 있던 유일한 그림으로도 유명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프리드리히 대왕 노년의 초상화를 그려 이름을 널리 알린 안톤 그라프는 그로부터 약 10년 후 새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재위 1786~1797)에게도 초상화 의뢰를 받는다. 그 작품이 바로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다. 프리드리히 대왕에 이어 42세의 나이로 즉위한 빌헬름 2세는 왕태자 시절이던 21세에 사촌과 결혼해 딸 하나를 낳았지만 3년 만에 이혼 후 같은 해 재혼해 여덟 아이의 아버지가 됐다. 그러나 초혼과 재혼 상대 모두 대왕이 밀어붙인 정략결혼이라서 왕비에게는 아무런 애정도 느끼지 못했다. 결국 죽을 때까지 화려한 엽색가 기질을 발휘해 왕비를 불행에 빠뜨렸다고 전해진다.

빌헬름 2세는 끊임없이 애접과 연인을 만들었는데, 개중에는 비밀 결혼한 여성(물론 중혼이다)도 두 명이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평생 사랑한 여성은 아홉 살 연하인 빌헬미네 엘케뿐이었다. 빌헬미네는 아버지가 궁정악사로 신분은 천했다. 하지만 15세 때 왕태자가 그녀에게 첫눈에 반해 왕태자의 애인이 됐고, 나중에는 리히테나우 여백작 지위를 받아 공식 총회에까지 올랐다. 폴란드인 여류 화가 안나 도로테아 테르부슈가 그린 벨헬미네의 초상이 지금도 남아 있다. 풍성한 핑크빛 새틴 드레서 타조 깃털 장식을 곁들인 맵시 있는 모자에 뺨에 그려 넣은 점까지 완벽한 프랑스 로코코 복장이다. 아름다운 눈썹과 고집 있어 보이는 눈, 두툼한 입술이 특징인 그녀에게 붙여진 별명은 '프로이센의 퐁파두르'였다. 총회 퐁파두르 후작이 루이 15세 대신 정치를 움직였듯이 빌헬미네도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를 뒤에서 정치적으로 조정했을까? 저자도 의문부호를 남긴다.

 


 

이 시기 독일에서 가장 관심을 갖게 한 인물은 아무래도 비스마르크다. 우리에게 '철혈 재상'으로 알려진 비스마르크는 과도한 업무와 폭음, 폭식으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도, 눈빛만은 여전히 상대를 압도할 듯 날카로웠다고 한다. '귀공자 화가'라는 별명을 가진 부유층 출신의 프란츠 폰 렌바흐는 60대부터 만년에 이르는 비스마르크 후작의 정장, 평상복, 군복 차림을 비롯해 모자를 쓰지 않은 모습, 철모나 중절모자를 쓴 모습, 당당히 서 있는 모습, 피곤하게 앉아 있는 모습 등 실로 다양한 모습의 초상화를 그렸다. 이 가운데 〈비스마르크〉는 날카로운 눈빛이 살아 있다. 일어서면 그 거구(190cm, 100kg)에 압도될 듯하다. 더욱이 젊은 시절부터 수십 번이나 결투를 치른 용사라 온몸이 상처투성이다. 그 자신감과 위엄을 당할 자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비스마르크는 자신을 '독일인'이라기보다 '프로이센인'이라고 생각했고, 프로이센 중심의 독일 통일국가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면 오스트리아가 됐든 독일 영방이 됐든 전쟁을 일으키는 데 아무 망설임이 없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비스마르크는 노구에도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은 열정으로 프로이센의 강대국 만들기에 앞장 섰다. 그의 외교력은 물론 국제 감각, 전쟁에서의 승리하는 방식 등 한 나라의 왕으로도 부족함이 없는 정치가였던 비스마르크는 자신의 게획을 실현시키기 위해 오랜 준비와 함께 결코 중단 없는 추진력을 발휘한다. 중간 중간 필요하다면 어느 나라와의 전쟁도 불사한다. 아니 어쩌면 유도했을지도 모를 정도로 전쟁 대비에도 철저했다고 한다. 주위 강대국을 하나씩 하나씩 정복하고 굴복시키는 데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고, 전쟁을 '이길 전쟁'으로 바꾸는 데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주변국의 모든 정세를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이 무렵 비스마르크에게 가장 눈엣가시는 프랑스였다. 프랑스가 독일 통일을 반대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와의 전쟁 불가피 상황을 만들어놓은 비스마르크는 프랑스가 전쟁을 일으키도록 유도했다. 관광객으로 가장한 프로이센의 스파이가 프랑스 각지의 전장이 될 만한 곳을 돌며 몰래 조사했으며, 철도망, 무기와 탄약, 병사, 병참 모두를 파악하고 대비했다. 프랑스는 아무것도 몰랐다고 한다. 스당전투는 불과 하루 반 만에 끝났다. 나폴레옹 3세는 8만3,000명의 장병과 함께 항복했다.

 


 

근심 따위 없는 이 아담한 궁전에서 대왕은 전쟁과 정무 틈틈이 플루트 콘서트를 열고 시 쓰기와 작곡, 독서를 하고 학자들과 의견을 나누며 기력을 충전했다. 선별된 소수만이 이 자리에 초대받을 수 있었는데, 대왕의 누이와 여동생과 그들의 시녀를 빼고는 거의 남성뿐이었다. 당연히 별거 중인 왕비를 초대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불쌍한 왕비는 남편을 존경했다고 하는데, 대왕은 가끔 왕비와 마주칠 때마다 “마담, 조금 살이 찌셨나요?”라고 말을 걸었다고 한다.(p.80) - 「제4장 아돌프 폰 멘첼, 〈상수시궁전의 식탁〉」중에서

 

저자 : 나카노 교코(なかの きょうこ, 中野 京子)

일본 홋카이도에서 태어났다. 와세다대학교에서 독일 문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와세다대학교에서 독일 문학과 서양 문화사를 강의하고 있으며 독문학자이자 작가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무서운 그림》 시리즈, 《나카노 교코와 읽는 명화의 수수께끼》, 《명화와 함께 읽는 예수 그리스도 이야기》, 《다리를 둘러싼 이야기》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하고,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리 앙투아네트》 등을 옮겼다. 월간 〈분게이슌주〉에 ‘나카노 교코의 명화가 말하는 서양사’를 연재했다.

국내에 출간된 저서로는 《무서운 그림》 시리즈, 《명화의 거짓말》 시리즈, 《나카노 교코의 서양기담》, 《욕망의 명화》, 《운명의 그림》, 《처음 가는 루브르》, 《내 생애 마지막 그림》, 《오페라처럼 살다》, 《명화로 보는 남자의 패션》, 《미술관 옆 카페에서 읽는 인상주의》, 《마리 앙투아네트 운명의 24시간》, 《세계의 다리를 읽다》, 《잔혹한 왕과 가련한 왕비》, 《무서운 그림으로 인간을 읽다》, 《나는 꽃과 나비를 그린다》 등이 있다.

 

역자 : 조사연

일본 도쿄가쿠게대학 대학원에서 일본근대문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일본 교도통신의 한국어 번역팀에서 근무했으며, 글밥 아카데미 수료 후 지금은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경영전략으로서의 영업』, 『구독경제는 어떻게 비즈니스가 되는가』, 『나는 낯을 가립니다』, 『질과 골반이 건강해야 여자가 행복하다』 등이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악인의 세계사 -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잘난 척 인문학
이상화 지음 / 노마드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독자는 지금까지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시리즈의 책을 꽤 여러 권 읽었다. 백과사전처럼 돼 있는 책이어서 인내심을 요구했지만 지식욕을 자극하는 책이었기에 여러 권을 읽을 수 있었다. 저자의 이름도 이 책 『악인의 세계사』의 저자 이상화와 『신화와 성서에서 유래한 영어표현사전』의 저자 김대웅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책 자체가 상식사전이나 백과사전처럼 만들어져서 하루에 읽기엔 부담스럽고 분량도 많았다. 그러나 문제는 없었다. 두고두고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날 때마다 '찾아보기'를 하면서 내용을 익힐 수 있도록 편집돼 있었다. 이 책은 기존 시리즈와 조금은 결이 다르다. 아마 이 때문에 〈잘난 척 인문학〉이라는 시리즈명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악인'에 대한 명확한 뜻을 알아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악인'이란 표현은 아무래도 종교로부터 시작된 말이 아닐까 생각된다. 『교회용어사전』에 따르면 악인(惡人, the wicked, evildoer)이란 죄에 사로잡혀 계획적으로 악을 행하는 자를 가리킨다. 성질이 악한 사람이란 뜻으로도 쓰인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이나 태도와 상반되는 삶을 사는 자 곧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어 있고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시1:4),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고 그 말씀을 순종치 않는 모든 존재를 가리킨다(렘30:23). 악인은 ① 교만하고(시10:2-4), ② 가증하며(딛1:16), ③ 완고하고(겔3:7), ④ 영적으로 무지하며(엡4:18), ⑤ 신성을 모독하는(계16:9) 특징을 갖는다. 하나님은 이런 자를 미워하시며(시11:5; 사1:10-15), 마침내 멸하신다(시145:20)고 성경에 기록돼 있다고 적시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악인의 세계사』에 등재될 사람은 인류 역사에 큰 악을 저지른 사람들일 것이다. 죄의 목록도 수없이 많은 데다 종류별로 따져도 각양각색이다. 인류사에서 빼버리고 싶은 생각이 일어날 정도다.

 


 

이 책은 악인의 종류별로 6장(章)으로 이루어졌다. 1장 「학살자들」, 2장 「악녀들」, 3장 「폭군과 제자들」, 4장 「흑인 노예」, 5장 「연쇄살인마」, 6장 「엽기적 악인들」 등이다. 이 가운데 4장은 '흑인 노예'를 악인이라 하는 것이 아니라 흑인 노예 개척자들, 노예 상인, 노예 무역선주 등 노예 무역 관련된 사람들을 총칭하는 것이다. 악인의 등장은 시대나 장소에 따라 무척 다양한 형태를 띠고 나타난다. 또 사람을 죽인 악인 중에는 수백 만 명 이상부터 몇 명을 개인적으로 죽인 사람 등 여러 가지다. 궁금한 점 악인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란 질문이 무색할 정도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Karl Adolf Eichmann)의 재판 과정을 담은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나오는 구절에서 유래한 말이 있다.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유대인 대학살의 주범으로 빼놓을 수 없는 악마 가운데 한 명이다. 그러나 전범재판소에서 본 그의 모습은 냉혹한 악마의 모습이 아닌 너무나도 평범하고 주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중년 남성의 모습이었다. 그는 어떻게 악마가 되었을까? 악이란 타인을 생각하지 않는 태도에서 오는 것이며 그것을 포기하는 순간 누구든 악마가 될 수 있는 건 아닐까? 악의 평범성을 생각하다 보면 우리 사회에서 가끔 나오는 사이코패스 성향의 범죄자를 언론에 이름과 얼굴 공개를 통해 발표된 적이 있다. 물론 관련법에 의한 조치다. 이들 중 상당수는 광신도나 반사회적 성격장애자가 아닌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범죄자 평소 성향을 덧붙이는 경우가 있다. 우리 곁의 평범한 이웃 중의 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범죄나 악인에 대한 경계심을 더욱 높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 말은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가 점점 더 폭력화되고, 선정적인 것에 관심을 주는 범죄성 사회로 변화해 간다는 의미로 들리기도 해 소름이 돋는다.

 


 

첫 번째 장 「학살자들」은 말 그대로 다중의 사람을 이유없이 죽이는 행위다. 이는 대체적으로 정지적·군사적 행위일 가능성이 크다. 잉카 제국을 멸망시킨 스페인 원정대, 정복자들, 난징대학살의 일본 군인들, 캄보디아 킬링필드의 주도자 폴 포트 등이 쉽게 생각난다. 또 인종 싸움이 잦았던 '발칸의 도살자'로 불리웠던 슬로보단 말로셰비치, 600만 유대인 학살의 주범자들, 아프리카 르완다의 후투족과 투치족의 학살 경쟁, 최악의 사이비 교주 짐 존스가 이름을 올리고 있다. 역사적으로 모두 기록된 일이고 인물들이다. 학살의 주범들은 우월한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상대를 아무렇지 않게 죽이는 만행을 저질렀다. 희생자의 수가 수십 만 명에서 수백 만 명이 넘는다. 일부는 처형되기도 했고, 일부는 처형받지 않고 잘 살아 남았다는 점은 우리를 경악케하고 좌절케 하기도 한다. 그런 악인을 법으로 처형하지 못한다면 법이 왜 필요한가?라는 의문을 갖게도 한다.

이 학살자들 가운데 우리와 관계가 있어서인지 유독 증오심이 일어나는 한 사람이 있다. 일본 731부대의 생체실험 사령관으로 그는 전범 재판소에서도 미군에 실험 자료를 건네준다는 조건으로 무죄를 받았다고 한다. 이후 끝까지 살아서 늙어 죽을 때까지 평안한 삶을 누렸다고 한다. 그의 만행은 전쟁 중이라 할지라도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은 있다. 또 적에게는 총을 쏘아도 적대 행위를 하지 않는 민간인에게는 총을 쏘아서도, 살해해서도 안 된다는 국제 규약이 있다. 전범국 일본은 그런 의식도 없었나, 잔혹한 생체실험을 비밀리에 강행했다. 이 사실은 이젠 비밀도 아니지만 당시에는 비밀로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도 많은 사람이 희생당했고, 중국, 동남아인, 러시아인 등 가리지 않았고, 포로나 민간인을 가리지 않았다. 그들의 조건에 맞는 사람이면 무조건 끌어다 생체 실험을 가했다. 무려 3,000여 명이 희생됐다고 한다. 이 가운데 우리의 영원한 시인 윤동주도 실험 대상으로 희생되지 않았을까 하는 이야기를 어느 책에선가 본 적이 있다. 이 피실험자들을 '마루타'라고 했다고 기억한다. 이 책에도 나와 있다. '껍질을 벗긴 통나무'란 뜻의 일본어라고 한다.

 


 

수백 만 명씩 죽인 악인들이 줄줄이 책에 나오는 바람에 겨우 3,000명이냐?고 반박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잔학성은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양심'의 문제로 끌고 가면 달라진다. 독자는 선과 악의 판단은 인간의 양심이 기준이 된다고 본다. 양심에 그르치면 악이고 양심에 따르면 선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한 명을 죽이더라도 악마가 될 수 있고, 그 이상을 죽이더라도 선인이 될 수 있다. 일본의 세균전을 염두에 둔 생체실험은 어떤 말로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범죄 행위고 악마의 짓이다. 또 의학에서도 어떤 실험도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해서는 안 된다는 실험 규정이 있다고 한다. 책에 따르면 731부대의 생체실험은 방대하고 다양했다. 산 사람을 마취도 하지 않고 해부하여 위·장·간·폐 등을 꺼내거나 제거하여 생존 상태를 관찰하는 해부 실험이 자행되었고, 피부를 벗겨서 피부 표본을 얻기도 했다. 이같이 끔찍하고 야만적인 행위를 고스란히 감당할 수밖에 없었던 희생자들의 고통을 어찌 표현할 수 있겠는가.

영하 20~30도의 혹한에 산 사람의 팔에 찬물을 잔뜩 뿌리고 얼마 후 다시 뜨거운 물을 퍼붓는 동상 실험 또는 냉동 실험, 작고 밀폐된 공간에 어머니와 아이를 집어넣은 후 공기(산소)를 빼내 압력을 낮추거나 높여가면서 그들이 각각 얼마나 사는지를 실험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사람 몸에 가스를 주입하거나 페스트균·콜레라균 등을 주입해서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그리고 얼마나 버티는지를 실험했다. 또 남녀에게 매독균을 주입한 후 진행 결과를 지켜보거나, 산 사람에게 총을 쏘거나 칼을 찌르며 죽어가는 과정을 관찰했다. 이런 악독한 실험 과정에서 죽은 희생자는 모두 불태워버렸다. 그뿐만 아니라 페스트균을 배양해서 만주 일대에 일부러 퍼뜨려 감염 경과와 증세를 관찰하는 세균 실험으로 수많은 현지 주민이 희생되기도 했다.

 


 

책의 2장에는 「악녀들」 이야기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덜 폭력적이고, 덜 잔혹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다. 남성에 비해 힘이 약한 대신 그들은 섬세함과 부드러움으로 남성의 폭력성을 완화시키는 것이 대체적이다. 놀랍게도(?) 인류 최초의 악녀로 '살로메'라는 여성이 기독교 성서에 등장한다. 그녀를 묘사한 마태복음(제14장)와 마가복음서(제6장)에는 '헤로디아의 딸' 또는 '소녀'로만 기록되어 있고 이름은 없다. 기독교의 교리·교훈 등이 담긴 성서에는 가상과 상징적 표현이 적지 않아 살로메가 실존 인물인지 가상 인물인지 의문이 든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러나 기독교 성서는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를 담고 있으며 살로메가 살았던 연대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어서 실존 인물이라는 견해에 무게가 실린다. 예컨대 1세기에 활동한 유대인 역사학자 플라비우스 요세푸스가 쓴 『유대 고사기』에 살로메라는 이름과 그녀의 가족에 대한 기록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기원전 7~6년 경에 유대의 왕은 성서에 헤롯와으로 표현된 헤로데 1세였다. 그는 당시 유대를 지배하던 로마제국이 임명한 왕이었다. 오랫동안 권력을 쥐고 있던 그는 장차의 유대 왕이 탄생했다는 소식에 분노하며 예수를 죽이려고 베들레헴과 나사렛 지역의 남자아이를 모조리 죽여 없앴다. 헤로데 1세는 수많은 건축물과 기념물을 세우고 예루살렘을 유대의 성지로 만드는 등 공적도 많았지만, 집권 말기에는 아내와 그녀가 낳은 두 아들, 장모까지 처형했다. 하지만 여섯 번이나 결혼해서 자녀가 많았다. 그중 헤로데 안티파스가 왕위를 이어받았다. 헤로데 안티파스는 이웃 나라의 공주와 결혼했으나 이혼하고 다시 헤로디아와 결혼했다. 그런데 헤로디아는 평범한 여성이 아니었다. 그녀는 헤롯왕의 동생이자 자신의 삼촌인 헤로데 빌립보 1세와 결혼해서 딸 살로메를 낳았고 이혼 후 조카인 헤로데 안티파스와 재혼했다. 고대 사회에서 근친혼은 보편적이었으나, 세례자 요한은 헤로디아의 재혼은 모세의 율법에 벗어나는 불법행위라며 맹렬하게 비난했다. 분노한 헤로디아는 세례자 요한을 처형하라고 헤로데 안티파스를 부추겼다. 요한을 옥에 가두고 어느 날 헤로데 안티파스의 생일 연회를 맞아 살로메가 앞에 나와 춤을 추었다. 살로메가 요염한 자태로 춤을 추자 헤로데 안티파스는 넋을 잃었다. 무엇이든 줄 테니 한 번 더 춤을 추라고 하자 어머니 헤로디아에게 다가가 물었다. 헤로디아는 기다렸다는 듯이 세례자 요한의 목을 잘라 쟁반에 담아서 가져 오라고 지시했다. 어머니 헤로디아는 세례자 요한에게 나름대로 통쾌한 복수를 한 것이다. 기독교 성서에 나타난 살로메의 악행은 그뿐이다. 과연 악녀의 범주에 넣을 만한 악행을 저지른 것인가.

 


 

독자가 보기에 러시아 예카테리나 2세의 악행도 과연 악마, 악인의 범주에 들어갈 것인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18세기 러시아는 유럽의 변방이었다. 러시아가 흑해에서 지중해로 진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길목이자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보스포루스 해협과 크림반도 일대는 강력한 오스칸튀르크 제국의 것이었다. 물론 한때 러시아 부흥의 시기도 있었다. 표트르 대제 때다. 표트르는 강력한 왕권을 발휘하여 스웨덴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발트해에 진출했다. 또한 프랑스와 프로이센 등 서유럽의 신기룻을 배우려 본인이 신분을 속이고 직접 프로이센에 가기도 했었다. 열정적인 표트르 대제 때 러시아의 근대화가 일부 이뤄지면서 국격과 국력이 모두 신장됐으나 아직 서부 유럽 강대국과의 동등한 교류는 어려웠다. 표트르 사후 포트르 2세, 안나 이바노브나, 이반 6세 등을 거쳐 일리자베타 페트로브나가 즉위했다. 그녀는 총명하고 다재다능했다. 평생 결혼하지 않고 러시아 통치에만 몰두하면서 조카 카를 페터 율리히를 자신의 후계자로 정했다. 프로이센에서 나고 자란 카를은 프로이센에 친화적이었고 독일어를 사용했다. 그는 러시아어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으며, 무능하고 정신적으로 미숙했다. 더욱이 그의 종교는 루터교였다. 그러나 정교회로 개종하고 '포트르 포도로비치'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프로이센 공국의 귀족 딸과 결혼했다. 그녀의 본명은 조피 프리데리케 아우그스테 폰 안할트체르프스트다. 집안은 가난했지만 두 살 때부터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했고, 다섯 살 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궁정에 출입하며 귀족으로서의 소양을 배웠다. 어머니는 러시와 황실과 먼 친척이기도 했다.

예카테리나는 표트르와 결혼 생활을 시작했으나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무엇보다 성격 차이가 크고 교양과 소양도 차이가 컸다. 그런데다 표트르에게는 다른 여성이 있었다. 예카테리나와 결혼 뒤에도 그녀를 항상 곁에 두었다고 한다. 각방을 쓰고 별거 상태인 예카테리나도 다른 남성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표트르는 정교회 모든 재산을 몰수하고 국유화했으며, 정교회 성직자에게 전통적으로 길렀던 수염을 깎게 하고 루터교 목사처럼 옷을 입도록 강요했다. 농노 반란도 이어졌다. 즉위한 지 불과 6개월 만에 예카테리나 친위부대와 귀족에 의해 폐위되었다. 표트르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등으로 피신하며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을 모으려고 했지만 8일 만에 피살당했다.

 


 

황제가 된 예카테리나는 러시아 영토를 역사상 가장 크게 확대했다. 크림반도와 캅카스까지 확대하고, 알래스카를 정복하여 아메리카 대륙에도 식민지를 확보했다. '대제'란 칭호까지 받았다. 문화예술 함양에도 적극적이었고, 러시아의 근대화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녀가 악녀로 지적되는 것은 아무래도 '성생활' 때문인 것으로 저자는 풀이하고 있다. 12~22명의 정부가 있었다고 한다. 그들에게 많은 토지를 주고 농노를 비롯한 노예들을 주어 충분히 보상하여 후환이 없었다고 하는데, 그러한 용도로 국가 예산의 10%를 소요했다고 한다. 악녀의 조건을 충분하게 갖췄다고 보기에는 미흡하지 않나 하는 게 저자의 생각이고 독자도 공감하는 부분이다.

 

저자 : 이상화

 

1973년 방송작가로 데뷔하여 30여 년 동안 〈TV 손자병법〉, 〈호랑이 선생님〉 등 수많은 TV 드라마와 라디오 드라마를 집필했다. 특히 1990년대 초 KBS-2TV에서 방영된 〈TV 손자병법〉은 서민과 직장인들의 애환을 해학적이고 심도 있게 다룬 문제작으로 ‘안방 관객’들을 사로잡은 공전의 히트작이다. 경원전문대학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한국방송작가협회 교육원, KBS와 MBC 방송아카데미 등에서 지속적으로 후진들을 양성했으며, 방송작가의 업(業)과 더불어 ‘미래성문화연구소’를 개설해 인간이 지닌 성적 역할과 그 심층적 의미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며 성의 문화와 역사를 탐구, 집필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는 민족의 기원에서부터 오늘에 이르는 한국인의 성의식과 성 행태를 추적해 에로스의 관점에서 본 한국의 역사를 집필하고 있다.

저서로 ‘잘난 척 인문학’ 시리즈인 《설화와 기담사전》, 《사라진 것들》을 비롯해 《아줌마 손자병법》, 《천재를 만드는 엄마, 바보를 만드는 엄마》, 《여자에게 다 줘라》, 《여자의 자격》, 《혼돈의 시대, 당신의 멘토는?》, 《최후의 툰드라》, 《여자의 사생활》, 《류중일 업포스 리더십》, 《호감력》, 《생각의 투망을 던져라》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있는 그대로 튀르키예 나의 첫 다문화 수업 10
알파고 시나씨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 『있는 그대로 튀르키예』는 이름만 들어도 친근감이 드는 나라 '튀르키예'의 모든 것을 담은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쉽게 쓰였다'와 고등학교 때 세계사 교과서을 읽는 듯한 느낌이어서 인상적이다. 터키는 어렸을 때 우리 모두가 아는 한국전쟁 참전국이다. 궁지에 몰렸던 우리를 도왔던 유엔군이었다. 미군에 이어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온 나라다. 우리 입장에서 잊을 수 없는 은혜를 입은 셈이다. 그래서인지 이슬람 국가라고 하면 모두 어색하고 싫어했던 분위기와 다르게 터키(튀르키예)에게는 친근감이 있었던 기억이 있다. 터키는 영어식 발음이고 또 예전에 '터키탕'이라는 정체불명(?)의 목욕탕이 등장해 성행하다가 터키 대사관의 공식 항의를 받은 일도 있다. 매음을 하기 위한 변태 목욕탕을 이른 말이었기에 그랬다. 아직도 독자는 터키탕의 기원은 알지 못하지만 한때 원산지가 터키가 아니었음은 분명한 사실로 밝혀졌다.

튀르키예인들은 동양인 입장에서 보면 이국적인, 즉 서양인의 모습에 가깝다. 얼굴 생김새나 체격 등이 서양인과 더 닮았다. 피부색은 동양인과 서양인이 섞여 있는 듯 백인보다는 검고 흑인에 비해서는 희다. 그렇다고 동양인에 가깝긴 하지만 육안으로 동양인인지 서양인인지 구별하기엔 차이가 약하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이들의 생김새는 서양인에 가깝게 느껴진다. 이 나라가 최근 자신들의 정식 발음대로 나라 이름을 '튀르키예'로 바뀌었다. 다른 점은 모르더라도 나라 이름만 듣게 되면 왠지 모를 친근감이 느껴지는 나라가 바로 ‘튀르키예’다. 흔히 ‘형제의 나라’라고 불리는 튀르키예는 우리나라와의 교류가 한국전쟁부터 시작되었다고 알고 있지만 이 책의 저자 알파고 시나씨는 두 나라의 우호 관계를 맺은 것은 한국전쟁 훨씬 이전인 고대 시대부터라고 말하고 있다.

 


 

저자 알파고 시나씨는 고국 튀르키예에서의 엘리트 코스를 뒤로 하고 한국 국적을 취득할 만큼 한국을 사랑하는 귀화 한국인이다. 그는 튀르키예의 역사뿐 아니라 한국사 나아가 세계사까지 꿰뚫고 있는 역사 덕후이자 국제 문제가 터질 때마다 국제 정세를 통찰력 있게 전해주는 언론인이기도 하다. 청소년 시절을 튀르키예에서 보냈고 19년 동안 한국에서 살면서 튀르키예 홍보 대사로도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그 누구보다도 한국과 튀르키예에 애정을 갖고 있는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튀르키예에 대한 기본 정보뿐 아니라 튀르키예의 역사, 튀르키예 사람들이 현재를 살아가는 모습 그리고 그들이 꿈꾸는 미래까지 생생하게 전달해주고 있다.

저자가 전해주는 ‘형제의 나라’ 튀르키예는 우리의 역사 교과서에 언급된 오스만제국 혹은 이스탄불, 카파도키아 등과 같이 잘 알려진 관광지로서의 모습 정도로만 알고 있다. 저자는 튀르키예와 우리나라와의 비슷한 점을 설명해줌으로써 독자들이 튀르키예의 있는 그대로 모습을 좀더 쉽고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힌다.

책에 따르면 튀르키예에도 우리나라의 단군신화와 같은 건국 신화, 오구즈 카간의 전설과 회색늑대 전설이 있다. 또 우리나라와 같이 뚜렷한 사계절이 존재하며 기후 또한 바다와 산맥의 영향을 받는다. 에게해 지역의 주요 도시 이즈미르는 군산과 비슷한 특성을 지녔으며 흑해 지역은 전라남도 보성과 비슷한 기후로 사람들의 성향 또한 비슷하다. 튀르키예 사람들의 모국어인 튀르키예어는 우랄 알타이어 계통에 속해 있어 한국어와 어법의 구조와 어순이 같아 우리가 배우기 쉽다. 튀르키예 부모의 높은 교육열뿐 아니라 명문 학교 입학을 위해 치열하게 입시 준비를 하고 있다는 튀르키예 청소년들의 모습은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모습과 별반 다를 바 없다.

 

 

튀르키예인이 역사에 정식으로 등장하는 때는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후 3세기까지 흉노족들이 알타이산맥 중심으로 세력을 펼쳐가기 시작했던 시기다. 이 시기에 튀르키예 조상들도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다. 흉노족이 멸망한 후 튀르키예인 조상들이 세운 돌궐 카간국은 200여 년 동안 중앙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했으며 셀주크 제국을 거쳐 오스만 제국에 이르기러서는 200년 넘는 동안 세계 최강국으로 군림했다. 그 시기 세상의 중심은 아시아 대륙의 아나톨리아반도와 유럽 대륙의 트리키아반도를 모두 장악했던 튀르키예였다. 튀르키예는 영토만 동서양에 걸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동서양의 종교와 문화 또한 적극적으로 융화시킨 코스모폴리탄 성격을 지닌 나라이다.

1~2년 전 케이블 TV에서 오스만 제국 시대의 튀르키예의 술탄(황제보다는 이 표현을 사용한다고 했다) 슐레이만 시대의 여인들이 거주하는 궁궐 〈하렘〉에 대한 이야기였다. 슐레이만 술탄은 화면에 자주 등장하지만 노예 출신의 왕비(러시아 출신 포로) 때문이고 실제 원정을 나가거나 궁내에서 정사를 보는 장면은 많지 않다. 그러나 그가 정치를 잘 했다고 역사가 판정하는 것으로는 수많은 원정을 통해 대제국을 건설했고, 따라서 나라의 부도 굉장했으리라 짐작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가끔씩 정사를 보는 장면에도 등장하지만 결코 혼자 독단적으로 정무를 처리하는 일보다는 재상이나 종교 지도자의 충고를 잘 듣고 판단해 명령을 내리는 등 합리적 왕이었다고 드라마는 표현하고 있다.

대항해 시대와 1,2차 세계대전, 냉전 시대를 거치면서 과거의 영광을 잃어버리기는 했으나 튀르키예는 유서 깊은 유적지가 산재해 있는, 나라 자체가 커다란 박물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도 여전히 동서양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유럽의 문화 수도이자 스포츠 수도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튀르키예는 과거의 영광만을 그리워하며 그 속에 머물러 있지 않다. 세계의 패권이 미국 중심으로 이동됨을 파악하고 중립 외교에서 친미 외교로 전환했으며, 위에서부터의 개혁을 통해 민주화와 다당제 채택 및 튀르키예 공화국의 근간이 된 군부의 힘 또한 축소시키며 발 빠른 변화를 이루어나갔다. 미국 달러의 변동 상황에 직격탄을 맞는 환율, 빈번한 쿠데타를 야기하는 진보과 보수 세력의 정치적 충돌,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들과의 복잡한 외교 상황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지만 해외에서 인정받는 건설업과 무역업, 뛰어난 기술력으로 바탕으로 자체 브랜드를 개발하려는 제조업에 대한 지원, 유럽연합 가입을 코앞에 두고 있는 상황 등 전 세계적으로 저성장 시대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튀르키예는 밝은 미래가 기대되는 나라이다.

이 책은 모두 5부로 이뤄져 있다. 1부 〈메르하바! 튀르키예〉, 2부 〈튀르키예 사람들의 이모저모〉, 3부 〈역사로 보는 튀르키예〉, 4부 〈문화로 보는 튀르키예〉, 5부 〈여기를 가면 튀르키예가 보인다〉 등이다. 1부의 제목에 쓰인 '메르하바(Merhaba)'는 우리말로 '안녕하세요'라는 인삿말이다. 1부는 튀르키예의 자기소개서다. 앞서 언급한 국호의 변경, 두 개의 반도로 이뤄진 튀르키예 지형과 지리, 사계절의 기후, 흑해·지중해·에게해를 끼고 있는 천혜의 땅이다. 강수량도 농작물 재배에 부족함이 없으며 로마시대부터 함께 발전을 해온 나라다. 로마시대 유적지도 원형의 모습을 간직한 채 남아 있는 곳도 많고, 이슬람의 최고 문명과 국력을 자랑하는 강대국이었을 때의 각종 건축물도 당시의 모습을 간직한 채 그대로 보존되고 있어 관광에도 부족함이 없다. 뿐만 아니라 특이한 지형이 잘 발달되어 동서양의 만나는 지리적 이점과 더불어 언제나 번성한 도시 이스탄불이 중심이 되어 발전돼 왔고, 1323년 신생 튀르키예공화국이 탄생하면서 수도를 앙카라로 옮겨지면서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로서의 역할만 담당하고 있다. 우리의 부산과 비슷한 모양새의 도시라고 한다.

 


 

튀르키예에서 가장 큰 문제는 종족 문제인 것 같다. 돌궐의 후손인 튀르크족이 70~75%로서 다수이지만 쿠르드족도 15~20%가 살고 있다고 한다. 쿠르드족은 예전부터 오스만 제국 영토 안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1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오스만 제국의 영토가 연합군에 점령당하고 이 과정에서 쿠르드족이 주로 살고 있는 지역이 분단되면서 약 3,000만~4,000만 명의 쿠르드족이 튀르키예를 비롯해 이라크, 시리아, 이란으로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다. 이란계 민족인 쿠르드족은 생김새가 이란 사람과 비슷하지만 산악 지대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성향과 정서는 이란 사람에 비해 좀 더 강한 편이라고 한다. 이라크에 살고 있는 쿠르드족은 한때 튀르키예 정부의 지원을 받아 이라크 독재자인 사담 후세인과 격렬한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이라크의 쿠르드족은 미국이 이라크를 점령하면서 자치권을 얻었다. 사담 후세인과의 전쟁 경험이 있는 이들은 지금도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 IS와 전투를 벌이고 있으며 IS를 후퇴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워 국제적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현재 튀르키예에 사는 쿠르드족은 정치적으로 두 개의 세력으로 분리되어 있으며, 강경파 세력은 쿠르드족만의 자치권이나 독립을 요구하고 있다. 그들은 튀르키예의 지방 자치 행정이 미흡하다고 여기고 쿠르드족만의 언어로 초등학교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실에 정치적으로 불만을 품고 있어 자주 갈등을 빚는다고 한다. 이밖에도 아랍계, 카프카스 지역, 발칸 반도 지역의 민족들이 일부 차지하고 삶을 이어가고 있다.

독자 개인적으로는 3부 튀르키예 역사 중 '오스만 제국의 전성기' 내용이 가장 알고 싶었지만 내용이 다른 나라 교과서처럼 짧게 기술돼 있어 사뭇 아쉽다. 독자가 앞서 언급한 대로 술레이만 1세부터 시작되는 오스만 제국은 드라마(우리 KBS 대하사극처럼 튀르키예 대하사극)를 다루는 데 「오스만 제국의 최전성기」란 제목의 글이 너무 짧아 실감하기 어려웠다. "자신을 하늘 아래 유일한 왕이라고 믿었던 술레이만 1세는 오스만 제국을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로 만들었다. 그의 재위 시절 오스만 제국의 군대는 유럽 연합군을 두 시간 만에 격파시킬 정도로 강력했으며 그 자신은 프랑스나 헝가리 같은 나라의 왕위까지 결정하는 역할을 했다.(p.130)

 


 

독자가 또 하나 관심을 두었던 부분은 러시아와의 관계이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튀르키예는 어떤 스탠스를 취하는지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러시아와 튀르키예 관계를 역사에서 찾아보는 것이 빠를 것이다란 판단에서다. 저자는 튀르키예 동부의 상징이자 러시아 제국이나 카프카스 지역의 영향을 받은 카르스는 '독특하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 "카르스에서 가장 먼저 방문해야 할 곳은 '아니(Ani)'이다. 카르스 외곽에 위치한 역사 유적지인 아니에 가면 어느 순간 시간 개념이 사라지고 몇백 년 전으로 가는 느낌을 받는다. (중략) 카르스 시내에서는 러시아 제국의 흔적을 볼 수 있다. 1800년대 말 오스만 제국과의 전투 끝에 카르스를 함락한 러시아 제국은 이곳에 시청 청사, 도서관, 그리고 성당들을 지었다. 그래서 40여 년 동안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은 카르스 곳곳에는 러시아 건축 스타일의 건물들이 있다. 볼셰비키 혁명 이후 다시 튀르키예 공화국에 합류되었지만 러시아 제국 시절에 지어진 건물을 그대로 사용했다."(p.239~240)

 

저자 : 알파고 시나씨

 

터키에서 가장 높은 산인 아라랏 산은 성서 속 ‘노아의 방주’가 발견된 곳이다. 아라랏 산 인근의 으드르 시에서 태어난 알파고 시나씨는 열네 살이 되던 해 어머니의 품을 떠나 ‘성모 마리아가 마지막 생애를 보낸 고대 도시’ 에페소스에 있는 과학고등학교에서 공부했다. 2004년 기술대학 중 세계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이스탄불 기술대학교에 입학했지만 부처와 공자의 가르침을 따르는 동양에서 공부하고 싶어 한국에 왔다. 충남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외교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0년부터 한국과 아시아 곳곳에서 외신 기자로 활동했으며 현재 [아시아엔AsiaN] 편집장을 맡고 있다. 굵직한 국제 문제가 터질 때마다 언론을 통해 한국인의 눈높이에 맞춰 쉽게 풀어내기도 하고, [소사이어티 게임], [비정상회담],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등과 같은 방송에도 출연하는 등 언론인과 예능인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특히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 출연하여 ‘덕후’에 가까운 한국 사랑과 ‘최고의 한국 역사 가이드’로 극찬받았다. 3.1 운동 100주년 기념 토크퍼포먼스 쇼 [백범 얼라이브]를 촬영했으며, 각종 매체에서 역사 관련 프로그램의 패널로 러브콜을 받고 있다. 본업인 언론 활동뿐만 아니라 방송 및 저작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코미디 공연도 하는 등 다재다능한 만능 재주꾼이다. 저서로는 『누구를 기억할 것인가』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삼국지 기행 2 - 길 위에서 읽는 삼국지, 개정증보판 삼국지 기행 2
허우범 지음 / 책문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사에서는 『삼국지』의 내용을 신뢰할 수 있는 내용으로 본다. 『삼국지연의』는 어디까지나 소설로서 역사서를 바탕으로 하지만, 중국인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한족(漢族)** 중심의 야사(野史) 작품이다. 정사인 『삼국지』는 위서 30권, 촉서 15권, 오서 20권, 합계 65권으로 되어 있으나 표(表)나 지(志)는 포함되지 않았다. 위나라를 정통 왕조로 보고 위서에만 〈제기(帝紀)〉를 세우고, 촉서와 오서는 〈열전(列傳)〉의 체제를 취했으므로 후세의 역사가들로부터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저자 진수는 촉한에서 벼슬을 하다가 촉한이 멸망한 뒤 위나라의 조(祚)를 이은 진나라로 가서 저작랑(著作郞)이 되었으므로 자연 위나라의 역사를 중시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때문에 후에 촉한을 정통으로 한 사서도 나타났다. 그러나 『삼국지』는 찬술한 내용은 매우 근엄하고 간결하여 정사 중의 명저라 일컬어진다. 다만 기사가 간략하고 인용한 사료도 지나치게 간략하여 누락된 것이 많았으므로 남북조시대 남조와 송(宋)의 문제(文帝, 407~453)는 429년에 배송지(裵松之, 372-451)에게 명하여 주(註)를 달게 하였다고 백과사전(두산백과)은 기술하고 있다. 『삼국지』에 함께 포함돼 기술되어 있는 배송지주(裵松之註: 裵註)가 그것이다. 이 배송지의 주는 본문의 말뜻을 주해하기보다는 누락된 사실을 수록하는 데 힘을 기울여, 어환의 『위략(魏略)』을 비롯한 하후담의 『위서(魏書)』 이하 당시의 사서와 제가(諸家)의 계보(系譜)·별전(別傳)·문집(文集) 등 140여 종의 인용문이 기재되어 있다. 이 각 저서는 그 후 대부분 흩어져 사라졌는데, 여기에 인용된 글들이 당시의 사실을 고증하는 데 귀중한 사료가 된다. 그 중에서도 어환의 『위략』은 특히 귀중한 사료가 많이 있어, 이것을 배송지가 인용한 주를 바탕으로 하고, 거기에 다른 문장을 추가하여, 청(淸)나라 때 장붕일(張鵬一)이 『위략집본(魏略輯本)』 25권을 편찬하였다.

 

**한족 : 중국과 타이완의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세계 최대의 민족집단을 말한다.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각지에 진출해 있다. 2000년 기준 총인구 13억에 이르는 세계 최대의 민족집단이다.

 


 

또한 『위서』 〈동이전〉에는 부여·고구려·동옥저·읍루·예·마한·진한·변한·왜인 등의 〈전(傳)〉이 있어, 동방 민족에 관한 최고의 기록으로 동방의 고대사를 연구하는 데 유일한 사료가 된다. 『삼국지』에 관하여는 후세에 많은 참고서가 만들어졌으며, 그 중에서도 청나라 전대소(錢大昭)가 엮은 『삼국지변의』 3권과 양장거(梁章鉅)의 『삼국지방증』 30권 및 항세준(杭世駿)의 『삼국지보주)』 등이 저명하다. 최근의 것으로 1957년 베이징의 고적출판사에서 발간된 노필의 『삼국지집해』 65권, 보권 2권이 『삼국지』의 해설서로는 가장 상세하고 완벽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삼국지연의』는 원래 이름은 『삼국지통속연의』이며, 『수호전』, 『서유기』, 『금병매』와 함께 중국 '4대기서'의 하나로 꼽힌다. 진수의 『삼국지』에 기술된 대로 위·촉·오 3국이 천하의 패권을 둘러싸고 벌이는 힘과 지혜의 다툼이 워낙 치열하게 펼쳐졌기에 일찍부터 중국인들에게 흥미 있는 이야기로 전해져 왔다. 당(唐) 시대에 이미 3국의 이야기가 야담으로 전해진 기록이 있으며, 송(宋) 시대에는 전문적인 이야기꾼인 '설화인'들의 이야기 대본인 '화본'으로 정리되고, 연극으로 공연되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 곽사구(禱四究)의 ‘설삼분’은 매우 유명했으며, 인종(仁宗, 1010~1063) 때에는 3국의 이야기를 공연하는 ‘피영희)’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원(元, 1271∼1368)의 영종(英宗, 재위 1320~1323) 때, 전래되던 화본들을 바탕으로 푸젠성(福建省) 젠양의 출판업자 우씨가 『전상삼국지평화』를 간행하였다. 이 책은 3권으로 되어 있으며 위에 그림, 아래에 글을 넣은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 시대에는 이를 바탕으로 많은 희곡이 만들어져 공연되었는데, 종사성(鍾嗣成)의 『녹귀부』에 따르면 그 수가 30~40종에 이르렀다.

 


 

『삼국지연의』는 한국에서도 조선 시대부터 매우 폭넓게 읽혔다. 『삼국지연의』는 이미 16세기 초에 조선에 전해져 1569년에는 국내에서 원문으로 간행되었다. 인조 때인 1627년(인조 5년)과 숙종 때에도 출간되었다. 『삼국지연의』를 번역하거나 번안한 작품들도 상당수 전해지는데, 이는 사대부만이 아니라 부녀자나 민간에서도 폭넓게 읽혔음을 나타낸다. 그래서 시조나 소설, 속담 등에서도 『삼국지연의』의 영향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렇듯 『삼국지연의』가 널리 읽히고 확산된 것은 이 작품이 충효와 의를 강조하는 조선의 유교적 지배이념과 일치되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근대 이후에도 『삼국지연의』는 수많은 번역본을 낳으며 폭넓게 읽혔는데, 1904년 박문서관에서 최초로 근대적 활자본이 간행되었고, 1929년에는 양백화가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에 연재하였다. 그리고 1945년에 박태원이 ‘모본’을 기초로 현대적 번역본을 출간한 뒤, 박종화, 김구용 등 수많은 작가들이 각기 다양한 번역본을 출간하였다. 현대에 와서 『삼국지연의』는 영화나 컴퓨터게임, 애니메이션 등으로도 활발히 만들어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고우영이 만화로 신문에 연재한 작품이 1979년 단행본으로 출간되었고, 일본에서는 요코야마 미츠테루가 만화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였다. 그리고 일본의 코에이는 1985년 ‘삼국지’라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개발하였다. 그 밖에도 『삼국지연의』의 내용에 바탕을 두고 경영학이나 처세학 등을 논하는 책들도 오늘날까지 폭넓게 출간되고 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중국과 미수교국으로 중국의 방문이 거의 없었기에 오늘날 『삼국지 기행』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여행 방문은 꿈도 꾸지 못할 상태였다. 1990년대 초반 한중 수교로 『삼국지』의 무대, 바로 그곳으로 가는 길이 열렸다.

 


 

이 책을 통해 도원결의의 무대가 되었던 장비의 고향 탁주, 제갈량이 유비의 삼고초려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융중, 조조가 천하를 호령했던 허창, 중원의 고도 낙양, 그리고 촉한과 운명을 함께 한 성도, 제갈량과 맹획의 '칠종칠금(七縱七擒)' 에피소드가 숨 쉬고 있는 대리와 곤명 등 『삼국지』 마니아들에게는 꿈과 같은 장소들이 역사적 고증과 다양한 현장 경험을 통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특히 이 책의 여정이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와 동일한 시간적 흐름에 따라 전개되기 때문에, 누구나 쉽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은 바로 이 동양고전인 『삼국지』의 영웅들이 일세를 풍미한 주요 무대를 발로 뛰고 누비며 그들의 역사적 흔적을 흥미롭게 살핀 '지식기행'이다. 이제 정사 『삼국지』와 팩션(Faction) 『삼국지연의』가 어우러져 찬란한 문화를 꽃 피운 중원에서, 우리들이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영웅들의 흔적을 함께 확인해 볼 수 있다. 저자는 『삼국지』가 팩션이 되는 과정에 개입한 나관중과 모종강, 그리고 그 외 여러 판본과 『배송지주』, 『세설신어』 등 관련 도서들을 탐독하며 열정에 걸맞게 『삼국지』의 현장을 제대로 살피기 위해 철저한 준비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현장에서는 자신의 공부를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고전과 현장이 즐겁게 만나는 공간을 구현해 냈다.

정사(正史)와 연의를 치열하게 비교하며 고증한 이 책을 통해 『삼국지』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감동은 더욱더 커질 것이다. 여러 해 동안 수십 번의 답사를 거치면서 담아낸 수천 장의 사진 가운데 추려낸 사진 자료와 현장 확인을 거쳐 밝혀낸 역사적 진실을 통해 독자들은 시각적인 즐거움을 극대화할 수 있다. 또한 문학과 역사가 함께 만나는 40장의 다채로운 공간에다 역사적 이면에 숨겨져 있던 지식을 맛깔스럽게 발굴해 낸 각 장의 박스를 통해 독자들은 고전의 감동을 두고두고 곱씹을 수 있다. 저자가 오랜 시간 공들여 마련해 놓은 답사루트를 따라 『삼국지』 현장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그토록 알고 싶어 하고 닮으려 했던 영웅들의 발자취를 확인하는 행복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이 책 『삼국지 기행』은 2권 4부로 나뉘어 출간됐다. 앞서 언급한 대로 4부로 구성된 이 책 1, 2권은 역사적 사건(전쟁 연대순)을 따라 움직인다. 책의 구성 역시 연대 순으로 구성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1부 〈중원이 곧 천하다〉, 2부 〈장강은 말없이 흐른다〉, 3부 〈용쟁호투의 역사와 전설〉, 4부 〈천하는 누구의 것인가〉로 나뉘어 있다. 1권 1부에서는 「관우의 등장」, 「도원결의」, 「동탁의 폭정」, 「호뢰관 전투」, 「비팡 여포」, 「조조와 유비의 만남」, 「원소의 관도대전 패배」, 「조조의 중원 통일」 등이 주요 내용을 이루고 이들 전쟁 유적지와 역사의 현장을 찾아 나선다. 2부에는 「조조, 승상이 되다」, 「유비, 천하 경영의 웅지를 펴다」, 「수어지교, 강호를 호령하다」, 「조자룡과 장익덕」, 「주유, 조조의 천하통일을 가로막다」, 「적벽대전」, 「형주, 경국지색」, 「유비, 딸 같은 부인을 얻다」 등으로 이어진다. 2권 3부에서는 「오나라 노숙, 유비와 손잡고 조조를 치다」, 「손권, 수성의 군주로 우뚝 서다」, 「양주의 맹장, 한수」, 「방통의 죽음, 촉한 멸망의 시작」, 「술고래 장비, 지혜로 엄안을 포섭하다」, 「두 영웅의 형주 사랑, 배반의 서곡」, 「유비, 한중왕에 오르다」, 「관우의 교만함에 형주를 잃다」, 「천하도 도원결의 다음일 뿐이다」 등 숨가쁘게 전쟁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며 많은 사건과 많은 기록을 남긴다. 4부에서는 「유비의 유언」, 「조식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촉한 정권의 성립과 신구 세력의 조화」,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 충신이 아니다」, 「읍참마속」, 「제갈량 북벌」, 「촉한의 멸망」, 「제갈량, 삼국지연의 최고의 주인공」, 「손씨 정권의 탄생, 발전 그리고 멸망」 등으로 이어지며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2권에서는 저자의 일정 중 중요한 도시인 시안(西安)으로 향한다. 서안은 옛날의 장안이다. 중국 6대 고도의 하나이며 3,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서안은 1,100년 이상 중국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 도시였다. 모두 11개 왕조의 수도이기도 했는데, 당나라 때 가장 번성하였다. 이때 도시 이름이 장안이었다. 지금은 섬서성의 성도로서 과거의 영예를 이어가고 있다. 고도답게 볼거리가 많은 곳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대충만 본다고 해도 사나흘은 잡아야 한다. 그러나 삼국지 여행에서 서안은 볼 유적이 많지 않다.

 


 

지금의 성곽은 당시의 유적은 아니라고 한다. 명나라 때 다시 증축한 것이다. 10층 정도의 성곽이 아직도 튼튼하다. 그것은 벽돌을 만들 때 사용한 재료에 있었는데, 황토뿐 아니라 찹쌀, 쑥, 석회 등을 섞어서 만들었다고 한다. 다른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찹쌀을 재료로 썼다는 것이 신기하다. 찹쌀 대신 아교풀을 씀직도 한데 말이다. 저자의 서안에서의 발길은 다소 느긋한 감이 있다. 입구를 지나 조금 올라가니 정상이다. 한나라 때의 성곽이 세월의 풍파를 이겨내지 못하고 폐허가 된 채 마지막 호흡을 가다듬고 있다. 폐허뿐인 성곽에 서니 저 멀리 황하가 구비 돌아 들어오는 것이 잘 보인다. 명대에는 황하 가까지로 성광을 중건하였는데, 현재도 약간의 흔적이 남아 있다. 황하 강변에는 옛 시대의 누각을 짓고 있는데 그 크기가 거대하다. 다음에 오면 또 하나의 관광지가 우뚝 서서 사람들을 줄 세우고 있으리라. 중국 당국의 관광 상품화의 방법이나 과정이 못마땅함을 슬그머니 드러내기도 한다. 산 정상의 옛 성곽은 '황성 옛터'가 되어 사람도 잊고 역사도 버린 채 세파에 흩어지고 있는데, 산 아래 황하 강변에는 돈 냄새를 맡은 자본이 새로운 동관을 꿈꾸며 황사 속에서도 분주하다. 원나라 때의 관리로 섬서성에 큰 가뭄이 들자 이재민을 구제하고자 동관을 지나던 장양호가 지었다는 시 「산파양」이 새삼 의미 깊게 다가오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저자의 가슴에도 폐허의 황도가 가슴 아프고 애잔한 백성들의 삶에 지친 모습이 떠오르나 보다.

 

첩첩 산봉우리 모여들고

성난 파도 밀려드는

산 넘어 강 건너 동관 가는 길

장안을 바라보매

떠나지 못하는 마음

슬프도다! 진한의 옛터를 둘러보니

영화롭던 궁궐은 흙더미가 되었구나

잘살아도 백성은 고생이요

못살아도 백성이 고생이라네(2권, p.92)

 


 

저자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제갈량을 『삼국지연의』 최고의 주인공으로 꼽는다. 저자는 제갈량은 현실감각이 뛰어난 재상이었으며 역사가 진수도 이를 인정해서 '천하를 다스리는 이치를 깨달은 뛰어난 인재로서 관중, 소하와 비교할 만하다고 썼다고 전한다. 그러나 매년 대군을 움직였으나 성공하지 못했던 것은 임기응변의 계략이 그의 장점은 될 수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고 평한 것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유비가 이를 잘 알았던 것일까. 천하삼분지계의 필수 과제인 익주를 공략할 때도 제갈량 대신 법정과 방통이 참여했다. 유비가 삼고초려하고 수어지교라며 제갈량을 떠받든 것과 비교하면 왠지 어색하다고 지적한다.

"『삼국지연의』는 일명 '제갈량전'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 전편에 묘사된 제갈량의 다재다능함이 사실을 넘어 신기에 가깝게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촉한 정통론의 입장에서 쓰인 연의는 유비와 제갈량을 최고의 인물로 형상화하였다. 특히 유비 참모로서의 제갈량은 등장부터 관심과 기대를 한몸에 받도록 하였다. 이후 모든 전투와 계략은 신출귀몰한 제갈량에 의해서 진행된다.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병사했을 때 독자들은 소설이 끝났다고 느낀다. 지혜의 화신으로 과장된 제갈량의 마력을 독자들이 푹 빠져 있기 때문이다. 유비는 적벽대전 이후 형주를 차지했을 때나, 익주를 차지하고 나서도 제갈량에게 조세와 군비의 충실에만 전념토록 하였다. 고조 유방의 승상이었던 소하의 일을 맡긴 것이다. 소하는 실무형 경제 관료였다. 유비도 공명을 그렇게 생각하였다. 공명은 유비의 생각을 정확히 읽고 충실히 보필하였다. 송나라 학자 유문표가 이를 정확히 간파하였다. "제갈량은 그가 시무에 뛰어나다고 말하는 것은 맞지만, 대의에 밝다고 하기에는 미흡하다. 또한 유비에게 충성을 다한다고 말하는 것은 맞지만, 한나라 황실에 충성을 다한다고 하기에는 미흡하다."

공명은 자신을 관중과 악의에 견주면서 유비를 모셨다. 이는 공명이 유비를 난세의 패자로 만들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표출한 것이지, 한 황실을 부흥시키겠다는 뜻이 아니라고 저자 역시 판단하는 듯하다. 유비가 내세우는 대의 역시 유비 자신의 정권 창출을 위한 계략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비 또한 제갈량의 이러한 속마음을 꿰뚫고 있었다. 유비는 제갈량과 16년간 동고동락했다.(2권, p.434)

 


 

저자는 〈에필로그〉 「절절한 이야기 서린 장강 삼협을 보다」를 통해 중국에서 보기 드물게 맑은 강물이 흐르는 소삼협에서의 풍광을 보며 북위 때 지리학자인 곽도원이 장강 삼협을 여행하며 남긴 글을 전한다. "삼협에서 장장 칠백리. 양족 언덕에는 준봉이 연이어져 끊긴 곳이 없고, 첩첩 바위산이 하늘과 해를 가려, 한낮이나 한밤중이 아니면 해도 달도 볼 수 없도다." 저자의 회상과 현장에서의 감회가 남다르다. 어찌 역사와 환경이 지도자에 따라 바뀌는 현장에서 의미심장한 생각이 따르지 않겠는가 싶다. "역도원이 삼협을 본 지 1,500년, 삼협댐의 완공으로 수면이 높아졌어도 구당협의 봉우리들은 한 치의 변함도 없이 하늘을 가릴 듯 솟아있다. 기암괴석과 암벽이 그야말로 변화무쌍하다. 강폭이 좁아 강물은 우렛소리 울리며 소용돌이 치니 일만의 기마병이 내달리는 것 같다. 최고의 실력자가 조정하지 않으면 배는 좌초와 전복되기 일쑤라니, 가히 위험천만한 길이 아니고 무엇이랴."(2권, p.456~457)

 

저자 : 허우범(許又範)

 

작가. 인하대 융합고고학과 초빙교수. 독서와 여행을 통해 오늘의 시대와 삶을 반추하는 작업에 힘을 쏟고 있다. 20여 년에 걸쳐 중국 전역의 삼국지 현장을 답사하였다. 또한 실크로드에도 천착하여 서안에서 로마까지의 육로를 답사하였고 몇 년 전부터는 바닷길을 답사하고 있다. 저서로 『삼국지 기행』, 『동서양 문명의 길, 실크로드』, 『황해로드』(공저) 등이 있다.

우리 역사에서의 국경과 강토에 관한 부분은 저자의 주된 연구 분야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된 저서로는 『여말선초의 서북 국경과 위화도』, 『고려 시대 서북계 이해』(공저)가 있으며, 위화도의 실체와 역사적 비밀을 파헤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위화도는 가짜다』를 준비 중에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