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으로 과학하기
박재용 지음 / 생각학교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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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의 현상을 과학의 시선으로 살펴보면, 지식을 쌓고 근거 없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이 책은 과학적 상식에 사회와 역사까지 배울 수 있는 1석 3조 과학교양서로서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 지식을 한층 더 높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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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으로 과학하기
박재용 지음 / 생각학교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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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과 과학은 서로 잘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어떤 면에선 정반대의 입장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거나, 한편으론 극복해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 과학은 19세기부터 우리 삶에 깊숙이 관여해 왔다. 어쩌면 그 전 수천 년간 인류가 쌓아온 과학의 지식은 최근 200년 동안 발전해온 과학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산업혁명시부터 과학과 기술은 우리 삶에 크게 기여했다. 과학의 분야는 크고 복잡하기도 해서 많은 분야로 나뉜다. 우주 천제부터 인간의 몸까지 크고 작은 생명 운동에도 과학은 적용된다. 인류는 과학의 힘으로 많은 두려움이 공포를 극복해 왔고, 앞으로도 더 빠른 속도로 과학의 힘을 커질 것이라고 독자는 예상한다. 과학은 괴담뿐만 아니라 종교와도 대립각을 이뤄왔다. 사실 종교와 과학은 서로가 멀게만 느껴질 것이다. 과학적 원리보다는 인간이 가진 감정, 특히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종교는, 결과와 예외 없는 원리 원칙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두 분야가 함께 서로를 인정하기에는 어려울 뿐이다. 과학은 종교가 이룰 수 없는 분석과 결과로 인간의 믿음을 과학 쪽으로 돌려놓았으며, 종교는 인간의 공포심이라 두려움으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역할을 했다. 당초 경쟁 관계가 아니었기에 지금까지는 공존하는 듯하다.

이 책 『괴담으로 과학하기』는 종교와의 대치점에 있는 것을 밝히는 목적이 아니다. 민간에서 전해지는 각종 괴담들-옛날 흡혈귀부터 오늘날 인공지능까지-을 과학적으로 풀어헤치고 분석해 괴담을 과학을 통해 근거없는 낭설임을 밝혀내려 한다.

허구인 괴담에서 과학을 본다는 것은 어불성설인 듯하지만, 저자 박재용은 괴담은 허구이기 때문에 인간의 상상력이 개입할 여지가 생긴다고 말한다. 오히려 과학처럼 자명한 사실일수록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며 그 환한 빛 뒤에 숨은 그림자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을 즐겁게 공부하고 싶은 청소년 독자들, 특히 요새 과학이 어디까지 발전했는지 궁금한 학부모들, 그리고 과학적 이슈로 어떻게 토론(과학페어)을 진행할지 고민하는 선생님들께 이 책은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켜줄 것이라고 저자는 기대한다.

 


 

누구나 살면서 유령, 귀신, 혹은 외계인, 흡혈귀 등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럴 듯한 스토리가 장착되어 있다. 스토리가 없다면 널리 전해지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해도 인간의 호기심은 이야기를 듣는 순간부터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의지도 생긴다. 사실 모든 괴담이나 기묘한 이야기, 믿기 어려운 일은 있었던 일을 과장해서 꾸미거나, 일부러 거짓으로 지어낸 것도 많을 것이다. 특히 과학의 시대라고 일컫는 19세기 이전에는 인간의 두려움을 이용하기 위해 일부러 꾸며낸 괴담들도 많았을 것이다. 상대에게 극도의 두려움을 안겨 주기 위해, 제압하기 위해 공포의 괴담들을 이용하기 위해서이다. 스토리가 있어야 상대의 두려움을 호기심으로 바꾸고 어떻게 극복할지 교훈도 줄 수 있게 꾸미면 되는 일이다. 사실이 아니지만 스토리를 얹어 그럴 듯한 이야기가 된 것 중 11가지를 이 책에서 풀어 설명해 준다. 물론 과학적 방법으로 현상을 여러 각도에서 분석해 결과를 얻은 것들을 말한다. 그러나 모든 학문이 그렇듯이 아직까지 과학 역시 100%는 아니다. 100%로 가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과학의 길로 가는 것임을 알기에 과학자들의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뱀이나 귀신 같은 한국적인 괴담뿐만 아니라 폴터가이스트와 도플갱어 같은 해외의 괴담 소재 11가지를 끌어와 청소년들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한다. 마녀, 흡혈귀를 지나 평행우주와 인공지능 시대의 괴담에 대해 풀어내면서 동시에 우리가 알지 못했던 과학의 발전, 그리고 그 이면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괴담에 나오는 이상한 현상을 과학의 시선으로 살펴보면, 흥미진진한 지식을 쌓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근거 없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우리를 두렵게 만드는 괴담의 소재와 연결된 과학적 개념을 알아보는 일은, 괴담을 읽는 것만큼이나 신기하고 흥미로운 과정이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저자는 이 책에서 괴담의 유형을 세 가지로 분류한다. 책에 따르면 첫 번째 유형은 초인간적 존재에 대한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자연현상을 너무나 궁금해했고, 그 궁금증을 유령, 흡혈귀, 좀비, 도플갱어 등 초인간적 존재를 통해 풀고자 했다.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접하면, 귀신이나 유령이 한 짓이 아닐까 추측했던 것. 논리적으로 설명 가능한 현상들이 이들의 등장으로 설명됐던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미지의 자연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만 필요했던 것은 아니다. 아이들에게 경계심을 갖게 하거나 교훈을 전하려고, 유령이나 흡혈귀 이야기를 이용하기도 했다. 이런 괴담들에는 밤에 돌아다니지 말고, 휘파람도 불지 말고, 묘지에 가지 말라는 가르침이 담겨 있다.

괴담의 두 번째 유형은 동물에 관한 것이다. 이 책에서는 고양이, 뱀과 관련되 괴담만 소개했지만, 개·소·호랑이 등 여러 동물에 대한 괴담이 많다. 신기하게도 지역에 따라 괴담에 등장하는 동물이 다르다. 우리나라 동물 괴담은 고양이·뱀·개·쥐·호랑이 등이 대표적 주인공인데, 아프리카에선 코끼리·사자·하이에나·원숭이 등이 이야깃거리다. 또 유럽에는 박쥐와 늑대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사실 괴담은 과거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들이 대부분 도시에 거주하는 오늘날에는 도시 생활과 관련된 괴담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가 접하는 괴이한 일들이 주로 도시에서 일어난다. 건물에 대한 괴담이 대표적이다. 폐가 이야기, 아무도 없는 밤의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 엘리베이터 괴담 등이 그것이다. 또 이동 수단과 관련된 괴담도 많다. 지하철 괴담, 택시 괴담, 버스 괴담 등. 그리고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일상화된 요즘은 온라인 괴담도 많아지고 있다.

 


 

괴담이 퍼지는 과정도 많이 바뀌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옛날에는 당연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책이 지금처럼 흔하지 않았고, 글자를 아는 사람도 적었으니까. 그리고 사람들의 입을 통해 퍼지는 과정에서 괴담의 변형이 이루어지곤 했다고 저자는 단언한다. 예를 들어 처음에는 호랑이가 주인공이었는데, 괴담이 전파되는 과정에서 어느덧 주인공이 사자로 바뀐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는 17~18세기, 유럽은 16세기 이후 책 출판이 활발해지면서 괴담집이 등장했다고 저자는 전한다. 그리고 20세기에 접어들어 많은 나라에서 괴담집이 인기를 끌면서, 더욱 많은 사람에게 괴담이 퍼져나갔다. 책을 통해 다른 나라의 괴담도 소개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 돌아다니는 괴담들은 그 기원이 일본인 경우가 많은데, 20세기 중후반 일본 괴담을 번역해 소개한 책들이 다수 출판됐기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지금도 책은 괴담을 확산시키는 중요한 매체이다. 여기에 더해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등도 괴담이 퍼지는 데 한몫하고 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에부터는 무엇보다 인터넷이 괴담의 주요 유포 경로가 되었다고 한다.

인터넷의 발달은 괴담의 세계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거의 실시간으로, 여러 나라의 괴담을 접하고 있는 것이다. 독자들이 지금 알고 있는 괴담들도 대부분 인터넷으로 접한 경우가 많을 것이다. 과학의 눈부신 발달은 괴담의 성격을 바꾸기도 한다. 이제 동물이 사람으로 둔갑했다는 이야기는 잘 등장하지 않는다. 유령이나 좀비, 도플갱어에 관한 이야기도 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대신 괴담의 소재는 외계인이나 비밀 조직, 연쇄살인범, 사이토패스, 스마트폰 등으로 옮겨지고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렇듯 괴담의 소재와 주제 등은 시간에 따라, 또 사회의 발전에 따라 계속 바귄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괴담의 존재 그 자체다. 괴담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저자는 잘라 말한다. 과거의 자연 현상처럼 우리의 상식으로 풀 수 없는 것, 또 오늘날의 흉악 범죄처럼 좀처럼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끊임없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의 각각의 항목 뒤에 괴담에 얽힌 과학적 사실이나 근거를 살펴보는 란을 따로 마련했다. 괴담에 나오는 이상한 현상을 과학의 시선으로 살펴보면, 흥미진진한 지식을 쌓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근거 없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우리를 두렵게 만드는 괴담의 소재와 연결된 과학적 개념을 알아보는 일은, 괴담을 읽는 것만큼이나 신기하고 흥미로운 과정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렇다고 과학만 다뤄서는 안 된다. 사회적·역사적 맥락도 따져봐야 한다. 예전에 만들어진 괴담이 아직까지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는 이유는, 사회적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보고 있는 것이다. 즉 대부분의 괴담은 당시 사회상을 담고 있기에, 배경과 의미를 따져보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된다고 저자는 권유한다. 이를 통해 인간과 세상에 대한 이해를 확장시키는 것은, 우리가 괴담을 즐기면서 얻을 수 있는 귀한 수확물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각 항목의 괴담과 관련해 함께 생각해볼 문제를 〈더 알아보자!〉 코너에 실었음을 저자는 미리 밝힌다. 괴담에 담긴 현대적 맥락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면, 재미에 더해 지식과 교양까지 얻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이 책은 괴담의 11개 소재에 각 한 장(章)씩 모두 11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흡혈귀: 피를 빠는 광견병 환자」, 2장 「좀비: 죽었니? 살았니?」, 3장 「폴터가이스트: 우리가 감지하지 못하는 진동」, 4장 「유령: 뇌의 장난 혹은 착각」, 5장 「외계인: 그들이 지구인을 찾지 않는 이유」, 6장 「도플갱어: 겉모습은 닮아도 커넥톰이 다르다」, 7장 「마녀: 가장 약한 사람과 가장 악한 사람」, 8장 「고양이: 너무 귀엽지만 절대 길들여지지 않는」, 9장 「뱀: 지혜와 치유의 상징이자 혐오의 대표」, 10장 「평행우주: 다른 우주에 사는 또 다른 ‘나’」, 11장 「인공지능: 인간을 지배할 수 있을까?」 등이다. 저자는 「만나지 못한 괴담도 생각해보기」란 제목의 〈에필로그〉를 통해 "책에서 언급하지 못한 괴담도 무척 많다면, 괴담을 들으면 흘려버리지 말고 친구나 독서 동아리 등을 통해 '과학적으로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시대적 배경은 어떠했을까?' '사회적 의미는 무엇일까?' 등을 이야기해봄으로써 괴담을 즐기면서 과학적 사고 능력을 배양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이고 있다.

 


 

SF 영화나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상호 교류를 원한다거나, 아니면 우리를 노예로 삼으려는 외계인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친선이 목적이라면 은밀하게 행동할 이유가 없습니다. 게다가 지구를 찾을 정도의 기술이라면 전파를 자유자재로 이용할 테니, 직접 오기보다는 통신을 통하는 게 훨씬 수월할 겁니다.(p.111)

 

우리가 무엇인가를 볼 때, 그 물체의 현재를 본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 우리가 보는 것은 과거입니다. 이상하게 들리나요? 좀더 생각해보면 간단합니다. 빛의 속도가 유한하기 때문이지요. 멀리서 다가오는 친구를 본다고 칩시다. 친구와 나의 거리가 1킬로미터쯤 떨어졌다면, 햇빛이 친구의 몸에서 반사되어 나에게 오기까지는 30만 분의 1초가 걸립니다. 즉 우리는 1킬로미터 떨어진 친구의 30만 분의 1초 전의 모습을 보는 거죠. 하지만우리의 눈과 뇌는 이 정도 차이는 구분할 수 없기 때문에, 과거라고 느끼지 못합니다.(p.210)

 

저자 : 박재용

 

과학과 일상을 연결하는 과학 커뮤니케이터. 책을 쓰고 강연을 한다. 주로 과학과 사회, 과학과 인간이 만나는 경계에 대해 공부하고 글을 쓴다. 주로 과학 분야에 대한 책을 쓰고 있지만, 사회의 불평등에 문제의식을 느껴 자료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 첫 결실이『불평등한 선진국』이다. 근거를 가지고 글을 써야 망해도 남는 게 있다고 생각한다. 자료를 열심히 뒤지고, 통계를 찾아 그 사이의 연관성을 파악하는 것이 자신의 몫이라 여긴다. 안토니오 그람시의“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라”는 구절을 좋아한다. 개별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신뢰와는 별개로 집단으로서의 인류의 미래에 대해 비관하는 회의주의자다. 역사에서의 커다란 몫을 자임할 생각도 능력도 되지 않기에 그저 할 수 있는 역할을 열심히 다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지은 책으로 《녹색성장 말고 기후정의》, 《탄소 중립으로 지구를 살리자고?》, 《1.5도, 생존을 위한 멈춤》 등이 있다. ‘기후 위기의 본질과 대책’, ‘생명 진화 40억 년의 비밀’, ‘과학, 인문에 묻다’ 등의 강연을 진행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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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당신이 원했던 괴담실록 2 : 동아시아 편 - 유튜브 채널 <괴담실록>의 기묘한 이야기 어쩌면 당신이 원했던 시리즈
괴담실록 지음 / 북스고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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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다소 누그러졌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좀비'는 영화뿐만 아니라 각종 문화예술에 등장하는 '아이콘'이나 마찬가지로 문화예술계를 휩쓸었다. 안방의 TV 드라마에서도 거침없이 좀비물의 각종 영상들이 차지했다. 그런가 하면 케이블 TV 역사 다큐 전문채널에서는 외계인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한 연속 다큐멘터리를 기획 방영하기도 했다. 이 가운데 일부는 외계인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규명하려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과학자와 수많은 관련 학자들이 인터뷰나 설명을 곁들여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시청자들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등 꽤 설득력 있는 프로그램을 연속적으로 방영하기도 했다.

이 책 『어쩌면 당신이 원했던 괴담실록 2』는 〈동아시아 편〉은 듣기에도 으스스한 괴담이나 기묘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제목에서 말하는 것처럼 두 번째 책으로 〈동아시아 편〉이다. 전작은 '조선환담'이라는 부제로 우리나라 조선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의 고향’을 보는 듯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괴담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의외로 폭발적 반응이 있어 이젠 무대를 넓혀 〈동아시아 편〉이다. 동아시아는 우리나라를 비롯, 중국과 일본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독자는 전작을 보지 못해 비교할 수는 없지만 중국이나 일본은 우리보다 괴담이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저자 괴담실록도 이 점을 주목했으리라.

괴담실록은 유튜브 채널 이름이기도 하고, 이 책의 저자이다. 흔히 아는 이야기지만 괴담은 시대를 막론하고 늘 흥미를 유발하는 대표적인 이야기다. 비록 괴담이라고 표현을 하였지만, 대부분 옛 기록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전설이나 신화, 야사 등으로 재가공 되어 생생한 재미와 교훈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만큼 괴담은 시대의 반영이라고 할 만큼 우리의 생활을 투영하며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시대의 ‘희노애락’을 담은 사회 현상이자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고단함일 수도 있다. 특히 여름철에 읽는 호러나 공포 소설, 미스테리, 괴담 등은 무더위를 잊을 수 있는 이야기라서 말로 듣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겠지만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겐 상상력을 끌어올릴 수 있어서 책을 더 선호할 것이다.

 


 

독자는 괴담이나 호러, 공포·미스터리 소설을 즐겨 읽지는 않았지만 최근 일본의 미스터리 소설이 굉장한 인기를 얻고 있는 데 대한 호기심으로 몇 권 읽어봤는데 저자들이 워낙 출중해서인지 꽤 재미를 느꼈다. 일본 공포·미스터리 소설은 단연 압도적이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일본 괴담은 6편에 불과하지만 구전돼 온다는 괴담들의 구성과 스토리텔링이 뛰어나다고 느꼈다. 중국이나 조선 괴담처럼 간혹 나오는 '우연'이 거의 없이 작가의 창의력에서 나온 듯한 이야기들이다. 현실을 바탕으로 전해져 내려 온 이야기들이라 실감도 훨씬 더하는 느낌이다. 저자 괴담실록에 따르면 두려움은 인간의 가장 오래된 감정이다. 미지에 대한 공포와그것을 피하고자 하는 본능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공포심은 무자비한 자연으로부터 생존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이 필연적으로 넘어서야 하는 벽이기도 하다. 불을 두려워하던 인간은 그것을 다룰 수 있게 된 후에야 추위와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지옥불이 기다린다는 수평선으로 나아간 후에야 세상의 끝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이 같은 공포심은 오랜 세월 함께해온 만큼 인류 문명에 짙은 흔적을 남겼는데, 바로 '이야기'라고 저자는 말한다. 시대와 문화에 상관없이 인간이사는 곳이라면 초월적이고 기괴한 존재가 등장하는 무서운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는 것이 반증이다. 인간에게 벌을 주고 갈등을 만들어 내는 신이나 인간을 해치고 질투하는 요물이 등장하기도 한다. 단순히 옛사람들의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치부하기엔 그 존재들은 인간을 끈질기게 괴롭혀온 '그것'과 너무나도 닮았다고 오랫동안 이 문제를 다뤄온 저자는 주장한다. 그것은 자연과 질병, 축음, 피할 수 없는 재앙이며 신화와 전설 속 존재들은 옛사람들의 두려움이 투영된 상징이자 정서였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의 주장대로 옛사람들의 두려움은 이야기라는 생명력을 얻어, 어떤 것은 글의 형태로, 어떤 것은 입에서 입으로 수천 년을 살아남았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수많은 콘텐츠의 원형이 되어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기도 한다. 이 이야기가 가진 힘의 원천은 공포가 갖는 매력과 동일하며, 본능에 내재된 공포를 끌어내 몰입을 자아낸다. 이 책이 그 두려움의 유산들을 풀어내 독자들 앞에 풀어낸다. 무섭고 기괴한 이야기에는 단순한 재미 그 이상을 내재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은유와 암시에 가려진 옛사람들의 두려움을 엿볼 수 있고, 베일에 싸인 미스터리한 사건 뒤로 있었을 어떤 일을 상상하기도 한다는 것. 이 책 2권은 동아시아의 이야기를 담아 우리의 조상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았던 옛사람들의 괴이한 이야기들을 모았다. 각국 괴담의 정서와 함께 우려움의 키워드를 담아 이야기를 엮은 것은 저자의 역할이었다. 다만 원전에서 과도하게 짧거나 개연성이 부족한 부분을 각색하고 살을 붙여 '괴담실록'만의 해석을 녹여 냈다고 저자는 밝힌다.

옛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괴담들을 남겼을 것이다. 후대의 사람들에게 그 위험을 전하기 위해서일 수도, 두려움에 맞섰던 이들의 좌절과 성공의 지혜를 남기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죽음과 두려움에 맞서 끝내 패배한 사람들, 영원히 괴물과 피해자로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며 그 어떤 것이든 나름의 감상을 느껴 보길 바란다고 저자는 털어놓는다.

이 책은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신과 인간의 경계〉, 2부 〈한국 괴담: 원한과 인간〉, 3부 〈중국 괴담: 욕심과 인간〉, 4부 〈일본 괴담: 재앙과 인간〉 등이다. 각 부에는 10편 안팎의 장(章)과 괴담 중 대표적인 스토리를 실었으며 이해를 돕기 위한 〈외전〉도 필요할 때마다 덧붙였다. 각 부의 제목에서 느껴지는, 동아시아 3국의 대표적 괴담에는 각 지역의 자연 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듯하다. 한국은 '원한', 중국은 '욕심', 일본은 '재앙'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일본 괴담 중 하나를 먼저 따라가 본다. 「아홉 손가락 하녀」의 이야기다. 일본에서는 '사라야시키 괴담'으로 전해져 내려온다고 저자는 말한다. 책에 따르면 일본 에도시대 하리마스라는 영주에게는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보배가 있었는데, 바로 열 개의 귀한 그릇이었다. 그는 그 그릇들이 자신을 암살로부터 지켜 준다고 믿어 몹시 애지중지하였다. 저택에 아예 그릇을 보관하는 방을 따로 두어 관리할 정도였다. 영주는 소중한 그릇의 관리를 그가 평소에 가장 신뢰하던 하녀에게 맡겼는데, 그녀는 오키쿠라는 여인이었다. 오키쿠는 원래 가난한 농부의 딸이었으나 뛰어난 외모로 영주의 눈에 띄어 저택에서 일하게 된 여인이었다. 그녀는 항상 영주에게 은혜를 입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매일 그릇들을 깨끗이 씻고 정성 들여 관리하였으며, 작은 실수도 일으키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녀의 수려한 용모는 결국 화근이 된다. 많은 젊은이들의 구애를 받았는데, 영주의 가신 중 한 사람이었던 데츠잔이라는 무사는 누구보다 진심으로 그녀를 흠모하였다. 평소 오키쿠를 마음에 두고 있던 데츠잔은 어느 날 영주가 자리를 비운 사이 그릇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 그녀에게 구애했다.

"영주님께 내리신 은혜를 저버릴 수 없으니 나리의 제안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거절 당했지만 데츠잔은 포기하지 않았다. 갖은 선물과 함께 열렬한 구애를 더 적극적으로 계속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매몰찬 거절뿐이었다. 여느 날처럼 오키쿠는 그릇을 씻다가 혼비백산하여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만다. 그릇이 하나 없어져 아홉 개 뿐이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이를 확인한 영주는 오키쿠를 다그쳐 그릇의 행방을 묻지만 오키쿠는 용서를 구하며 빌었으나 오키쿠를 의심하기에 이른다. "에제 그릇이 아홉 개가 되어 열 개를 셀 일이 없어졌으니, 네 손가락 하나도 더 이상 필요가 없겠구나." 칼을 빼들어 그녀의 손가락 하나를 잘라 버렸다. 그릇을 찾을 때까지 매일 손가락 하나씩을 자르겠다고 엄포를 놓고 오키쿠를 가두라고 명한다. 이때 방 안으로 몰래 들어온 데츠잔이 "나는 당신이 훔치지 않은 것을 알고 있소. 영주님께서는 나를 신뢰하시니, 내가 잘 말씀드리기만 한다면 이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오." 그러나 오키쿠는 거절하고 강제로 제압하려는 데츠잔을 피해 몸을 틀어 근처 우물에 몸을 던진다.

이후 우물에서 밤마다 그릇 세는 여자 목소리가 들리는데, 귀신이 열까지 세는 것을 들은 사람은 모두 죽게 된다는 이야기다.

 

 

「도쿄를 불바다로 만든 저주받은 기모노」 장도 흥미롭다. 이를 '후리소대의 저주'라고 한다. 17세기 일본 에도에 혼묘지라는 사찰이 있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주로 사찰에서 장례를 치르곤 하였는데, 혼묘지는 에도 안에서도 큰 곳이었기에 수많은 사람이 장례를 치르고자 찾던 곳이었다. 추운 겨울 어느 날에 가면 장수 부부가 시신 한 구를 가지고서 혼묘지를 찾았다. 장례를 치르는 승려가 관을 받아 열어 보니 그 안에는 한 묘령의 여인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죽어 있었다. "짝을 찾지 못해 죽은 아이이니 죽은 뒤에라도 그 한을 풀 수 있도록 빌어 주십시오." 승려는 더 이상 묻지 않고 소녀의 장레를 치러 주었다. 시신을 묻을 때가 오자 가면 장수 부부는 딸의 몸 위에 화려한 후리소데 한 벌을 덮어 주었다. "딸아이가 생전에 아끼던 것입니다···." 후리소데란 당시 결혼하지 않은 여인들이 성인식이나 혼례를 올릴 때 입던 예복으로, 본래 화려한 것이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었다. 짙은 보랏빛 천에 아름다운 무늬가 빈틈없이 수놓아져 있는 것이 전에 본 적 없이 화려했다.

한 해가 지나고 어느 날 도착한 시신 또한 공교롭게도 젊은 여인이었다. 승려는 문득 1년 전 절에 왔던 가면 장수의 딸이 떠올랐다. 날짜를 헤아려 보니 그날은 그녀의 시신이 온 지 딱 1년째가 되는 날이었다. 절차에 따라 장례를 치르다가 관을 덮을 때 그녀의 부모가 딸이 생전 아끼던 물건을 관속에 넣어주는데, 이를 본 승려가 깜짝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1년 전 가면 장수 부부가 딸의 시신 위에 덮어 주었던 그 보랏빛 후리소데와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또 1년이 지난 날 그 후리소데가 또다시 죽은 여인의 몸에 덮인 채 사찰에 돌아온 것이다. 시체를 옮기는 일을 하는 일꾼의 고백이 이어진다. 자신이 옷을 빼돌려 시장에 내다 팔았다고 고백한 것이다. 그러핟고 이번에도 같은 날 이곳으로 돌아오다니··· 승려가 가면 장수 부부를 찾아가 들은 사연인 즉 딸을 엄하게 키운다고, 바깥 출입을 금했다고 한다. 다만 1년에 단 두 번 마을의 큰 축제 때만 밖으로 나가는 것을 허락했다. 손꼽아 기다리던 소녀는 열일곱 살 되던 해 마을을 떠나 세상 구경을 하다 화려한 무늬의 보라색 예복을 입은 사내와 눈이 마주쳤는데 흔히 말한 사랑에 빠진 것이다. 집에 돌아와 상사병에 걸려 앓아눕게 되자 부부가 사내의 행방을 찾아 결국 찾아냈다. 그러나 딸에게 그 사실을 말해 줄 수 없었다고 한다. 사내의 직업은 남자 귀족들의 잠자리 수발을 드는 와카슈도였기 때문이다.

 


 

결국 승려는 절에 돌아와 그녀의 후리소데를 두고서는 제를 올렸다. '당신의 한은 잘 알겠으나, 억울하게 죽은 처녀들은 무슨 죄겠소? 생전의 한은 그만 잊고 이제 편히 잠드시요···' 그러자 주변에 한차례 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마치 오키쿠의 혼이 응답하는 듯했다. 승려는 안심하여 제의 마지막 순서로 오키쿠의 후리소데에 불을 붙였다. 오키쿠의 화려한 후리소데가 타들어 가는 것을 보고 발길을 돌리지 문득 숲에서 바람이 거세게 불기 시작했다. 활활 타오르는 후리소데가 오키쿠의 모습이 보이는가 싶더니 법당으로 불이 번지고 하늘 높이 올라 삽시간에 사찰을 집어 삼켰고 마침내 근처 민가까지 번졌다. 후리소데에서 시작된 불길은 금세 온 도시에 번져 이윽고 에도를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다. 이 사건이 바로 1657년 일본에서 일어난 '메이래키 대화재'다. 화재는 사흘이나 계속되면서 동경의 7할을 불태웟고, 무려 1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저자 : 괴담실록

동아시아 야사와 전설, 괴담을 들려주는 유튜브 채널이다. 괴담 특유의 으스스한 분위기와 과하지 않은 효과음, 묵직하지만 차분한 목소리로 역사적 인물들이 겪은 기이한 이야기부터 괴이하고 기묘한 이야기를 모두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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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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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으로 쓰는 춤
김윤정 지음 / 오렌지디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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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안무가'란 직업은 주위에 흔히 있는 직업은 아니다. 무용에 대해 문외한인 독자로서는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생소하다. 무용가 혹은 현대무용가, 영어로 발레리나 정도를 말하는 것 아닌가 싶다. 어쨌든 춤을 추는 일과 관련된 분인 것으로 생각하고 책을 읽는다. 한참을 읽다가 글 내용이 예사롭지 않다. 인용하는 말이나 저자들이 무용은 당연하겠지만 철학자나 화가, 음악가 등 다양하다. 어쩔 수 없이 저자 소개를 들춰본다. "안무가, 공연예술가. 수원대학교 무용과를 졸업한 후 이화여자대학교 예술대학원에서 현대무용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로 돼 있다. 이후 독일로 건너가 무용 공부를 더 하신 것 같다. 또 현장 활동도 유럽 현지에서 많이 활동하신 것 같다.

이 책 『펜으로 쓰는 춤』이 말하듯이 본업인 공연 예술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한 여러 예술을 책이나 사색을 통해 깊은 연구를 하시는 분으로 짐작된다. 재독 안무가 김윤정의 예술과 인생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펜으로 쓰는 춤』은 춤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과 결합하기도 하고, 분리해 다른 점을 연구하기도 하는 예술인이 쓴 책이다.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던 독자의 무지로 빚어진 오류였음을 밝힌다. 이 책은 한 무용가가 무용의 예술적인 부분을 독자들에게 깊이 있게 알리기 위해 쓴 것으로 이해된다. 저자 김윤정은 이미 ‘철학하는 무용가, 사유하는 예술가’라고 불리우고 있다니 독자의 무지함만 드러나는 것 같아 송구할 따름이다. 저자는 공연예술뿐만 아니라 문학, 철학, 미술 등 인문학과 예술 분야에도 해박하다고 한다. 모두가 책읽기를 통해 지식을 습득하고 다른 예술과의 결합성, 비교적 고찰 등을 통해 글로써 현대무용의 예술성을 표현해 내는 데 독보적 글쟁이이기 때문이란 사실도 독자는 뉘늦게 이해한다. 다양한 사상가와 예술가에게 받은 영감과 끊임없는 고뇌를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저자는 예술과 우리의 삶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이 책에서 이야기한다.

 


 

“무엇이 나를 춤추게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고자 시작되었다는 글쓰기는 예술을 창작하고 향유하는 안무가의 삶, 타국에 사는 이방인의 삶을 그려낸다. 공연예술에 대한 성찰에서부터 세계 여행기, 문화 감상록에 이르는 다채로운 글들은 때로는 기분 좋은 유쾌함을, 때로는 진지한 사유를 건네며 독자들을 지적인 사색의 세계로 이끈다. 국내에서 석사학위까지 마치고 유럽(독일)로 건너간 것은 현대무용은 물론 타 예술이 보여주는 예술성과 현대무용이 보여주는 예술성의 다름을 인지하고 자신의 예술 세계 확대를 꾀하려고 유학 갔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그가 독일에서 니체를 만난 것도 그의 끊임없는 예술에 대한 사유를 더하기 위해서였을까? 책의 맨 앞에 「춤추는 별이 되기 위해」란 제목의 〈들어가며〉 통해 니체를 말한다. 제목 「춤추는 별이 되기 위해」도 니체의 일부를 인용했다. 첫 문장에 저자는 이렇게 썼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춤추는 별을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내면에 혼돈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인용한다. 이 아포리즘*은 "무엇이 나를 춤추게 하는가?", "무엇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가?", "무엇이 나를 인간으로 규정하는가?", "끊임없이 창작하려는 의지와 집착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하고 스스로 질문하게 했고, 늘 혼란스러웠다고 털어놓는다.

저자는 깊은 사색을 거듭하고 성찰했을 것이다. 질문은 늘 있었고, 저자는 늘 생각했을 것으로 이해된다. "그래서 그 질문과 혼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춤을 만들고 춤을 추는 것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술가의 깨달음은 예술의 깊이를 더하고 예술은 그 예술가의 사유를 깊게 한다. 여기서 얻은 통찰력은 저자에게 삶에 대한 지혜에 이른다. "글을 쓰면서 내 삶의 혼란들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오히려 삶을 다양하게, 흥미롭게, 가치 있게 해주는 생산적인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p.7)

* 아포리즘 : 경구나 격언, 금언이나 잠언 등을 일컫는 말이다. 인생의 깊은 체험과 깨달음을 통해 얻은 진리를 간결하고 압축적으로 기록한 명상물로서 가장 짧은 말로 가장 긴 문장의 설교를 대신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주로 일반적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기발한 생각이나 기지를 짧은 글로 나타냄으로써 어떠한 원리나 인생의 교훈을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다.(『문학비평용어사전』, 한국문학평론가협회, 2006)

 


 

『펜으로 쓰는 춤』은 예술을 창작하고 향유하는 한 안무가의 삶, 타국에 사는 이방인의 삶을 그려낸다. 이 책은 공연 예술에 대한 성찰에서부터 세계 여행기, 문화 감상록에 이르는 다채로운 글들은 때로는 기분 좋은 유쾌함을, 때로는 진지한 사유를 건네며 독자들을 지적인 사색의 세계로 이끈다. 예술가들은 예술의 힘을 말할 때마다 "삶이 힘들 때 더욱 빛을 발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것이 예술의 힘일 것이다. 그것이 예술가들이 예술을 하는 이유일 것이다. 예술이 인생의 모든 질문에 답을 줄 수는 없지만, 우리의 일상을 구원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살다 보면 시시때때로 부딪히는 난제를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저자는 예술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기다운 삶의 모습을 찾아 일상을 사소한 행복으로 채우다 보면 진정한 삶의 완성에 이르게 되지 않겠느냐는 답을 이 책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삶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소소한 것들이 사실은 훨씬 크고 고귀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들은 우리의 삶을 구해주기 위해 존재한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난 그게 진실이란 걸 알고 있다."(p.55) - 「인터넷 시대 우리에게 행복이란」 중에서

 

이 책은 모두 3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무대와 인생 - 삶이라는 예술에 대하여〉, 2장 〈친밀한 이방인 - 독일살이와 세계 여행기〉, 3장 〈나를 채우는 조각들 - 보고 읽는 것에 대한 단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인생에서 예술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공연예술가에게 ‘무대’가 지니는 의미와 예술에 주어지는 상에 대한 단상부터, 독서와 공연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일화들은 예술이 인생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려준다.

 


 

2장에서는 무대를 바깥으로 옮겨 독일살이와 여행기를 다룬다. “독일에서도 한국에서도 늘 아웃사이더로서의 삶에 익숙하다 보니, 어디를 가도 관찰하고 영감을 받는 것이 나의 정체성이 되어버렸다”는 저자는 20여 년 넘게 이방인으로 살면서 겪은 경험을 털어놓는다. 또한 공연을 위해, 개인적인 여행을 위해, 친구를 만나기 위해 떠난 수많은 여행은 내면을 한 뼘씩 성장시켰음을 발견한다. 새로운 세계와의 조우는 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여행은 자기라는 실체를 잊고 다시 태어난 듯 새로운 시간과 공간이 주어지는 것이다. 일상에서 형성된 의식들이 새로운 공기와 섞이는 순간, 기분 좋게 자기 부정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시간의 법칙과 공간의 법칙을 넘나들 수 있는 또 다른 세계를 만나는 것이다.(p.141) - 「아프리카, 카보베르데」 중에서

 

3장은 저자에게 영감을 준 전시와 영화, 문학 작품에 대한 감상록이다. 쿠사마 야요이, 페데리코 펠리니, 파스칼 키냐르, 페르난두 페소아, 버지니아 울프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에서 건져 올린 사유의 결과물은 저자의 유연하면서도 단단한 문장이 만들어진 과정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한결같이 삶을 예찬하는 긍정의 힘이 있다. 삶에서 피할 수 없는 사랑, 죽음, 만남과 이별을 말하면서도 비관이 아닌 긍정주의를 견지하는 태도는 우리에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위로와 용기를 준다. “내일, 아니 한 시간 뒤, 10분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우리는 모르기 때문”에 “매 순간 하고 싶은 말과 감정을 표현하고 살아야 한다”라는 저자의 말은 그래서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특히 1장 〈무대와 인생 - 삶이라는 예술에 대하여〉에서 8개의 항목으로 나눠 자신의 예술관이나 무용예술의 속성, 무용의 힘 등을 '삶'과 연결해 매우 깊은 사유를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한참 읽다보면 '예술가인가, 철학자인가' 하는 혼란이 올 정도다. 첫번 째 항목에서 '무대'라는 세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에 따르면 움직임만으로 부족해서 언어를 쓰고, 언어를 표현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움직임을 찾는 것은 늘 작품의 모티브가 되었다. 90세가 넘도록 평생 창작에만 몰두하던 조각가 루이스 부르주아는 인생의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예술을 한다고 했다. 춤을 출 때마다 살아 있음의 자유를 온전히 누린다. 춤을 추는 그 순간만큼은 백(百)으로 현재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에서는 자신은 오로지 무대 위에서만 '100% 나'로 존재함을 느낀다는 말이다. 충분히 몰입해서, 다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자신만의 예술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데 혼신을 힘을 기울인다는 뜻으로 읽힌다.

여기에 저자는 '예술의 시간성'에 대해서도 덧붙인다. "창작을 한다는 건 어딘가 깊숙이 갇히면서도 모든 감각을 열어야 하는 아주 특별한 일이다. 그리고 과거와 미래의 모든 시간성을 내포한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다.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시간의 늪이자 고독한시간이라고 말한다. 시간의 흐름 속에 있는 '나'와, 시간의 어떤 명령에도 따르지 않는 '예술', 이 두 가지는 언제나 따로 또 같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로써 방향성을 지닌 신체와 어떤 방향성도 지니지 않는 예술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는 늘 중요한 과제로 남는다. 춤의 본질에 대한 저자의 답은 "연마한 기술과 영혼이 담긴 표현의 자유가 있는 움직임이다. 그것을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시키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이다. 춤은 그 자체로 본질이기도 하지만 시간과 공간, 의미가 조화를 이루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고 강조한다. 작업은 나 자신의 내면의 소리와 세상을 연결하는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저자는 이처럼 1장에서는 예술의 속성, 공연 예술의 특수성, 창조로서의 예술 등 무용과 예술의 일반론에 대해서 나름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워낙 해박한 지식이라 내용이 독자의 머릿속에 바로 입력되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마침내 뜻을 이해할 수 있다. 그만큼 깊은 사유의 표출이라고 생각되는 대목이다. 또 2장에서는 '독일살이'와 세계 여행기'로 꾸몄다. 문화 충격의 부분과 하이데거에 대한 관심,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이야기, 아프리카의 원색의 힘 등에 대해 저자의 독자적인 시각으로 풀이해준다. 마지막 3장은 '보고 읽는 것'에 대한 단상을 적었다. 전시회를 관람하며 떠오르는 추억, 햇살 예찬, 죽음의 사유 등에 대해서의 생각들이다. 생각에는 느낌과 저자의 견해가 포함된다. 마지막 '가을날, 프랑스 영화, 다가오는 것들'이란 제목의 글은 독자에게도 비슷한 감정의 사연이 있는 탓인지 '공감 백(百)'이다.

 

가을은 왠지 고독해도 될 것 같은 계절이다. 가을에는 불행 속에 빠져들어도 되는 특권을 부여받은 듯하여 마음껏 불행해진다. 기왕이면 매우 근원적이면서도 시작도 끝도 없는 심연 속으로 빠져드는 불행이었으면 하는 열망에도 빠진다. 불행하고 싶은 열망이라니! 가당치 않은 소리 같지만 우리에게 가을이 없었다면 이 불안함에, 이 고독에 기댈 근거가 없었을 테니 얼마나 다행인가.(p.288) - 「가을날, 프랑스 영화, 다가오는 것들」 중에서

 

저자 : 김윤정

 

안무가, 공연예술가. 수원대학교 무용과를 졸업한 후 이화여자대학교 예술대학원에서 현대무용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유럽으로 건너가 아시아인 최초로 네덜란드 아른험 예술대학에서 무용으로 디플롬을 받았다. 독일 주정부의 지원으로 첫 작품 활동을 시작한 후 미국, 러시아, 영국, 일본 등 전 세계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펼치며 해외 평론가들로부터 “춤 안에서 명확히 표현되어야 할 자신만의 언어를 알고 있는 안무가”로 인정받았다. 2001년 독일 푀르데룽 프라이스 후보에 올랐으며, 2006년 〈닻을 내리다〉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선정 올해의 예술상을, 2007년 〈베케트의 방〉으로 무용예술상 작품상을, 2018년 〈인터뷰〉로 한국춤비평가협회 작품상을 수상했다. 〈그런데 사과는 왜 까먹었습니까?〉로 2021년을 빛낸 안무가상과 한국춤비평가협회 베스트 6 작품상에 선정되었다. 예술의 전당과 LIG아트홀, 나비아트센터에서 제작 공연을 맡았으며, 서울국제공연예술제와 서울세계무용축제 등 다양한 무용 페스티벌에 참가하였다.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일에도 매혹되어 문화예술 웹진 ‘더 프리뷰’에서 칼럼을 연재했다. 현재는 ‘YJK 댄스 프로젝트’ 대표로 활동하면서 다양한 무용 장르를 해체하고 조합하여 새로운 언어로서의 춤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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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 스파이 - 나치의 원자폭탄 개발을 필사적으로 막은 과학자와 스파이들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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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Second World War / World War II)은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유럽, 아시아, 북아프리카, 태평양 등지에서 독일, 이탈리아, 일본을 중심으로 한 추축국과 영국, 프랑스, 미국, 소련, 중국 등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 사이에 벌어진 세계 규모의 전쟁이다.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인명과 재산 피해를 낳은 전쟁이라고 알려져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은 흔히 1939년 9월 1일에 일어난 독일의 폴란드 침공과 이에 대한 영국과 프랑스의 대독 선전포고에서 발발하여,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종결된 것으로 전쟁 사가들은 기록한다. 이 기간에 1941년 독일의 소련 공격과 일본의 진주만 공격을 계기로 발발한 태평양 전쟁 등의 과정을 거쳐 세계적 규모로 확대되었다. 우리가 고등학교 때 세계사 시간에 배운 제2차 세계대전의 개요다.

하지만 전쟁의 경과에 따라 각 진영에 가담한 국가들은 변동이 있으며, 중립을 표방한 나라들 가운데에서도 실제로는 어느 한 진영에 적극 가담한 나라도 있다고 한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엄청난 개별적 행위들로서 결과적으로 수천만에 이르는 인명 피해가 나타났으며, 세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도 커다란 변동이 나타났다. 전승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중국을 중심으로 1945년 10월 24일 국제연합이 창설되었으며, 전후 경제 질서의 회복을 위해 1944년 체결된 〈브레튼우즈 협정〉으로 달러가 세계의 기축 통화로 자리를 잡음으로써 미국 중심의 경제 체제가 성립하였다. 소련 군대가 주둔한 동유럽, 외몽고, 북한 등에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섰고, 중국에서도 중국공산당이 내전에서 승리하면서 세계는 미국과 서유럽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진영과 소련, 동유럽, 중국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진영으로 재편되었다. 또한 1960년대까지 패전국의 지배 아래 식민지 상태에 있던 나라들도 상당수가 주권국가로 독립을 이루면서 국제 관계에도 큰 변화가 나타났다. 현대 세계사나 전쟁사, 군사 관련 책 등을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쓰여 있는 제2차 세계대전의 개요 부분이다.

 


 

이 책 『원자 스파이』는 「나치의 원자폭탄 개발을 필사적으로 막은 과학자와 스파이들」이란 부제를 갖고 있다. '스파이'란 단어로 독자는 소설 작품인 것으로 지레짐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후 독일의 원자폭탄 제조를 저지할 목적으로 첩보전을 펼치는 소설 작품쯤으로 독자는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책 소개글을 읽고서야 실록에 근거한 논픽션임을 알게 됐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 독일의 과학기술은 세계에서 가장 앞섰으며 유럽에서도 단연 압도적이었다고 한다. 히틀러를 중심으로 한 제3제국 건설을 주창한 독일 군부와 권부 세력들은 이를 근거로 전쟁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이 가능한 대목이다. 유럽에서도 낙후된 독일의 전 명칭 〈프로이센〉 말기에 나온 걸출한 인물 비스마르크 재상을 세계사 책에서 배운 바 있다. 그는 독일이란 나라의 기틀을 바로 세우고, 세계가 놀랄 만한 추진력으로 '철혈 재상' 이란 별칭이 붙은 정도로 독일 부흥에 가장 영향력을 준 재상으로 세계사에 이름을 올렸다. 또 경제적 정책에도 크게 기여해 튼튼한 재정에도 과학기술 선도에도 많은 힘을 기울인 것으로 기억되고 있다. 독자 역시 독일 과학의 기틀을 세운 사람은 비스마르크란 사실을 몇 권의 책에서 확인한 바 있다.

원자폭탄의 열쇠를 쥐고 있는 라듐을 발견한 폴란트 태생의 마리 퀴리는 대학에서 평생의 동반자를 만났다. 물질의 결정을 연구하는 피에르라는 과학자였다. 두 사람이 결혼한 해인 1895년은 독일의 과학자 빌헬름 뢴트겐이 X선을 발견한 해였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프랑스의 앙리 베크렐이 우라늄이 포함된 광석의 특이한 성질, 즉 인광(燐光) 방출 현상을 발견했다. 이 두 가지 발견에 자극을 받은 마리는 그런 특이한 성질에 관해 연구하기로 마음 먹었다. 남편 피에르의 도움을 받아가며 우라늄의 성질을 연구하고 실험하던 중, 마리는 우라늄보다 훨씬 강한 빛을 방출하는 원소를 발견했다. 마리는 이 새로운 원소에 조국 폴란드의 이름을 따서 〈폴로늄〉이란 이름을 붙였다. 1898년 7월, 폴로늄에 관한 논문을 쓰면서, 마리는 〈방사능〉이란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했다. 그리고 그 해 12월, 강력한 방사능을 방출하는 새로운 원소를 또 발견하고, 그것에 라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순수한 라듐을 분리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과학 인력을 죽이는 것은··특별히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책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이 주도한 맨해튼 계획의 총 책임자인 레슬리 그로브스 장군이 한 보고서에서 사용한 표현이다. 당시 나치에 비해 원자 폭탄 연구가 크게 뒤졌던 연합국은 히틀러의 손에 원자 폭탄이 들어갈까 전전긍긍했다. 그로브스는 나치의 군사 시설과 산업 시설만 폭격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표적 자체를 제거할 필요성을 느꼈고, 독일의 폭탄 연구에 도움이 될 만한 과학자를 납치하고 심문하는 특공대 〈알소스 부대〉를 탄생시킨다. 이른바 ‘원자 스파이’. 과학자와 군인으로 구성된 이 부대는 과학자를 스파이로 만들어 첩보 활동을 맡겼다. 전쟁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새로운 시도다.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닐스 보어, 로버트 오펜하이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졸리오-퀴리 부부, 리제 마이트너… 이 책에 나오는 많은 과학자들의 이름은 들어보면 불멸의 업적을 남긴 20세기의 전설적인 과학자들이다. 그와 동시에 이들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쟁인 제2차 세계 대전의 어두운 터널을 통과한 과학자들이었다. 이들은 단지 참화에서 생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전쟁의 승패를 가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인의 위치에 서게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은 인류 역사뿐만 아니라, 과학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돈 많은 이들의 독특한 취미 생활로 여겨졌던 과학은 어느 순간부터 전쟁의 향방을 가를 수 있는 정보 자산이 되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인류가 발명한 가장 위험한 무기인 원자폭탄이 있었다. “과학자와 군인 모두 원자핵에 숨어 있는 초자연적 힘이 곧 미치광이의 손에 들어갈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것을 막을 수만 있다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아까울 것이 없었다.”

때로는 부풀려진 소문을 믿어서, 때로는 진실된 정보를 최악의 방향으로 잘못 해석해서,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연합국은 나치와 히틀러가 원자폭탄을 손에 넣어서 런던과 뉴욕이 잿더미가 될 것이라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때문에 연합국은 원자폭탄을 개발하는 맨해튼 계획을 실행함과 동시에 나치의 원자폭탄 개발을 방해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퍼부었다.

 


 

이 책 『원자 스파이』는 탁월한 과학 스토리텔러 샘 킨이 처음으로 쓴 물리학 책으로서,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에 운영되었던 과학자와 스파이들로 구성된 특수 부대인 ‘알소스 부대’의 활동을 추적하면서, 과학이 처음으로 세계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위치에 서게 된 과정을 들려준다. 오늘날 가장 탁월한 과학 이야기꾼인 샘 킨의 다섯 번째 책이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히틀러가 원자폭탄을 손에 넣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과학자와 스파이로 구성된 과학 특공대가 비밀 임무를 수행했다. 이 책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그 비밀을 파헤쳐 흥미진진한 대서사시로 들려준다. 연합군의 과학자들은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특수 부대를 만들어 적국 영토 깊숙이 침투시켜 정보 수집과 파괴 공작, 심지어 나치 독일의 우라늄 클럽 회원 암살 작전까지 벌였다. 소설 작품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로 그들의 마음속까지 표현해낼 정도로 자료 수집과 기록 검토를 충분히 했다는 게 독자로서는 놀랍고 감사할 뿐이다.

이 책을 빛내는 것은 믿기 힘든 등장인물들이다. 그중에는 메이저 리그 야구 포수 출신에서 스파이로 변신한 모 버그도 있고, 훗날 대통령이 된 동생 존 F. 케네디보다 나은 전공을 세우려고 애쓴 조 케네디 주니어도 있다. 또, 독일의 최고 과학자들을 체포하려고 노력하는 와중에 자신의 유대인 부모를 강제 수용소에서 구출하려고 애쓴 네덜란드 출신의 물리학자도 있다.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마리 퀴리의 딸인 이렌 졸리오-퀴리를 비롯해 노벨상 수상자들도 다수 등장한다. 이 과학자들과 군인들은 국제 첩보전의 어두운 세계로 뛰어들어 인류사에서 가장 어두운 역사의 물결을 되돌리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이 책에 나오는 인물 몇몇은 이름마저 생소한 사람들이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사나 이후 세계에 가장 영향력을 미치는 인물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놓치기 쉬운 일을 저자 샘 킨이 세밀하게 파악해 이 책에 빼놓지 않고 기록했다. 특히 저자는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명에 헷갈릴 수도 있지만, 저자가 책 뒤에 따로 분류해 놓은 「주연급 등장인물」과 「조연급 등장인물」를 별도 소개하고 있어 책을 읽다가 헷갈리면 다시 뒤적여 찾아보면 혼란으로부터 피할 수 있다. 적지 않은 분량 약 6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을 이해하기 쉽도록 한 저자의 배려도 놀랄 만하다.

 


 

샘 킨은 미국 메이저 리그 선수였던 모 버그를 '흥미로운 인물'로 묘사한다. 우크라니아 출신의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프린스턴 대학을 나온 그는 야구 성적보다 다른 면모로 충분히 화제가 될 만 했다. 라틴어를 비롯해 여러 언어에 능통했을 뿐 아니라, 라디오 퀴즈 프로그램에 출연해 다방면에 해박한 지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가장 이채로운 이력은 1940년대초 메이저 리그에서 코치로 일하다 OSS(전략정보원), 즉 미국 정보기관 CIA의 전신인 조직에 합류한 점. 쉽게 말해 스파이가 되어 유럽의 과학자들과 접촉하거나 심지어 암살을 준비하기도 했다. 핵심적 과학자를 제거해 독일의 원자폭탄 개발을 막기 위해서였다.

미국의 논픽션 작가가 쓴 이 책은 그를 비롯한 여러 인물에 초점에 맞추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원자폭탄 개발을 막기 위한 여러 활동을 그린다. 미국이 〈맨해튼 프로젝트〉를 추진했다면, 나치 독일이 자국의 화학자·물리학자들을 소집한 모임은 〈우라늄 클럽〉으로 불렸다. 일찌감치 30대 초반에 노벨상을 받은 이론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비슷한 연구를 진행한 퀴리 가문을 앞질러 1938년 핵분열 연구 논문을 가장 먼저 발표한 화학자 오토 한 등이 포함됐다.

이들이 원자폭탄을 개발할 가능성은 큰 위협으로 여겨졌다고 저자는 기록한다. 독일의 중수 확보를 막기 위한 작전을 필사적으로 벌인 것도 이를 짐작하게 한다. 노르웨이 발전소의 중수 생산 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영국과 노르웨이가 연합해 펼친 첫 번째 작전은 참담한 희생과 함께 실패로 돌아갔지만, 노르웨이는 정예 군인들을 투입해 두 번째 작전을 펼친다.

물리학·영문학을 전공한 저자는 원자폭탄 관련 연구의 내용과 의미 등도 짚어가는데, 책 전체로 보면 과학사보다 군사작전과 첩보전에 무게가 실린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등장인물들의 면면. 퀴리 부부의 딸인 이렌과 그 남편 프레데리크 졸리오 같은 과학자들도 그렇다. 이 부부는 결혼 이후 '졸리오-퀴리'라는 성을 쓰면서 노벨상도 함께 받았는데, 나치의 점령 이후 프랑스를 떠나지 않았다. 프레데리크는 연구실에 있던 사이클로트론(입자가속기가)가 독일 측에 넘어가면서 한때 부역자로 소문이 나기도 했지만, 실은 직접 화염병까지 만들며 레지스탕스 활동을 펼쳤다고 한다.

 


 

저자는 영웅이나 위인전의 주인공처럼 인물을 묘사하는 대신 각자의 약점이라고도 할 만한 부분을 포함해 대중의 눈높이에서 흥미로운 일화나 면면을 그려낸다. 흥미로운 접근이되, 특정한 면모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 때도 있다. 이 책에 따르면, 덴마크 물리학자 닐스 보어는 고국을 비밀리에 탈출하는 과정에서도 주변에서 감당하기 쉽지 않은 수다쟁이였다. 물론 그의 수다가 단지 일화에만 그치는 건 아니다. 그가 미국 측에 전달한 정보는, 비록 하이젠베르크와의 몇 년 전 만남에서 얻는 것이라고 해도, 독일의 연구 속도에 대한 두려움을 증폭시켰다. 이는 군인에 과학자들까지 참여해 첩보 수집 등의 활동을 하는 특수 부대, 이름하여 '알소스' 부대가 만들어진 계기이기도 하다.

이 책이 가장 인상적으로 그려내는 과학자는 물리학자 새뮤얼 가우드스밋이다. 네덜란드 출신으로 미국에서 대학교수로 일하고 있던 그는 나치의 점령 이후 고국의 부모와는 소식이 끊어졌고, 가까운 사이였던 하이젠베르크와는 공적인 관계에서부터 적대적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는 알소스에서 스파이로 활동한 과학계 인사를 탈출시키거나, 연합군에 붙잡힌 과학자들을 심문하고 나치의 관련 정보를 분석하는 등의 일을 했다. 하지만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는 사전에 알지 못했다. 책에 따르면, 그는 몇 달 전 독일의 원자폭탄 계획이 한참 뒤쳐져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그러니 미국이 원자폭탄을 쓸 일도 없으리라고 낙관했다. 저자는 이렇게 썼다. "원자폭탄은 두려움에서 시작되었다, 즉, 핵무기를 보유한 독일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방어무기로 개발되었다. 하지만 독일의 위협이 사라지자, 단순히 방어 무기로 사용한다는 개념도 사라졌다."

책에는 비밀 편지를 마이크로필름으로 전달하거나, BBC 뉴스 앵커 멘트에 작전 개시 암호를 넣는 등 당시의 첩보전과 관련해서도 흥미로운 면면이 드러난다. 포로로 붙잡은 독일 장군들의 대화를 도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독일의 연구 수준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쉽지 않았다. 책에는 관련 동향을 전혀 엉뚱하게 판단했던 사례도 나온다. 독일이 원자폭탄을 만들지 못한 이유는 견해가 분분하다. 이 책에도 나오는 대로 사랑에 빠진 어느 과학자가 실험에서 실수를 한 게 영향을 미쳤는지, 과연 나치가 어느 정도 자원을 쏟아부었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흥미롭게 읽히는 책인데, 전문 역사가의 책처럼 본문 내용에 대해 세세하고 구체적으로 출처를 밝혀 놓지는 않은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을 듯 싶다. 사족으로, 모 버그는 종전 이후의 행적도 예사롭지 않았다. 미국 정부가 민간인에게 주는 최고 훈장은 마다하고 권총과 청산가리 캡슐을 기념품으로 챙겼다고 한다.

 


 

저자 샘 킨은 이처럼 방대한 사료와 연구를 토대로 그동안 대중에 공개되지 않았던 흥미로운 사실들을 발굴하고, 영웅과 불한당을 비롯해 제2차 세계 대전기에 활약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내면 심리를 생생하게 되살린다. 때문에 『원자 스파이』는 마치 한 권의 스파이 소설을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하기도 하다. 대중에 공개되지 않은 사진들을 포함하는 40여 장의 사진과 도판, 과학적 내용을 해설하는 일러스트가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저자 : 샘 킨(Sam Kean)

 

베스트셀러 『사라진 스푼』 『바이올리니스트의 엄지』 『뇌과학자들』 『카이사르의 마지막 숨』 『얼음송곳 의사』의 저자. 미국 워싱턴 D.C.에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 미네소타 대학에서 물리학과 영문학을 전공했으며, 〈뉴욕 타임스 매거진〉 〈슬레이트〉 〈뉴 사이언티스트〉에 글을 썼다. 미국과학작가협회 특별상(2009)을 수상했다. 『사라진 스푼』은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미국 아마존 ‘사이언스 Top 10 Books’에 꼽혔고, 『바이올리니스트의 엄지』는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최고의 책’, 미국 아마존 ‘올해의 책’, 〈퍼블리셔스 위클리〉 ‘에디터스 픽’에 선정되었다. 『뇌과학자들』은 『바이올리니스트의 엄지』와 함께 PEN/E.O. 윌슨 문학적 과학 작품상과 AAAS/Subaru SB&F상 후보로 지명되었고, 미국 아마존 ‘올해의 책’, A.V. 클럽 ‘올해의 책’에 선정되었으며, 굿리드 초이스상 비문학 부문 파이널리스트에 올랐다.

 

역자 : 이충호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화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교양과학과 인문 분야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신은 왜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는가』를 번역하여 2001년 제20회 한국과학기술도서 번역상을 받았다. 옮긴 책으로 『진화심리학』, 『사라진 스푼』, 『이야기 파라독스』, 『화학이 화끈화끈』, 『59초』, 『내 안의 유인원』, 『많아지면 달라진다』, 『루시퍼 이펙트』, 『행복은 전염된다』, 『우주의 비밀』, 『세계의 모든 신화』, 『루시, 최초의 인류』, 『공포의 먼지 폭풍』, 『흙보다 더 오래된 지구』, 『처음 읽는 양자물리학』, 『돈의 물리학』, 『원소의 이름』, 『유전자가위 크리스퍼』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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