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으로 쓰는 춤
김윤정 지음 / 오렌지디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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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안무가'란 직업은 주위에 흔히 있는 직업은 아니다. 무용에 대해 문외한인 독자로서는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생소하다. 무용가 혹은 현대무용가, 영어로 발레리나 정도를 말하는 것 아닌가 싶다. 어쨌든 춤을 추는 일과 관련된 분인 것으로 생각하고 책을 읽는다. 한참을 읽다가 글 내용이 예사롭지 않다. 인용하는 말이나 저자들이 무용은 당연하겠지만 철학자나 화가, 음악가 등 다양하다. 어쩔 수 없이 저자 소개를 들춰본다. "안무가, 공연예술가. 수원대학교 무용과를 졸업한 후 이화여자대학교 예술대학원에서 현대무용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로 돼 있다. 이후 독일로 건너가 무용 공부를 더 하신 것 같다. 또 현장 활동도 유럽 현지에서 많이 활동하신 것 같다.

이 책 『펜으로 쓰는 춤』이 말하듯이 본업인 공연 예술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한 여러 예술을 책이나 사색을 통해 깊은 연구를 하시는 분으로 짐작된다. 재독 안무가 김윤정의 예술과 인생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펜으로 쓰는 춤』은 춤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과 결합하기도 하고, 분리해 다른 점을 연구하기도 하는 예술인이 쓴 책이다.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던 독자의 무지로 빚어진 오류였음을 밝힌다. 이 책은 한 무용가가 무용의 예술적인 부분을 독자들에게 깊이 있게 알리기 위해 쓴 것으로 이해된다. 저자 김윤정은 이미 ‘철학하는 무용가, 사유하는 예술가’라고 불리우고 있다니 독자의 무지함만 드러나는 것 같아 송구할 따름이다. 저자는 공연예술뿐만 아니라 문학, 철학, 미술 등 인문학과 예술 분야에도 해박하다고 한다. 모두가 책읽기를 통해 지식을 습득하고 다른 예술과의 결합성, 비교적 고찰 등을 통해 글로써 현대무용의 예술성을 표현해 내는 데 독보적 글쟁이이기 때문이란 사실도 독자는 뉘늦게 이해한다. 다양한 사상가와 예술가에게 받은 영감과 끊임없는 고뇌를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저자는 예술과 우리의 삶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이 책에서 이야기한다.

 


 

“무엇이 나를 춤추게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고자 시작되었다는 글쓰기는 예술을 창작하고 향유하는 안무가의 삶, 타국에 사는 이방인의 삶을 그려낸다. 공연예술에 대한 성찰에서부터 세계 여행기, 문화 감상록에 이르는 다채로운 글들은 때로는 기분 좋은 유쾌함을, 때로는 진지한 사유를 건네며 독자들을 지적인 사색의 세계로 이끈다. 국내에서 석사학위까지 마치고 유럽(독일)로 건너간 것은 현대무용은 물론 타 예술이 보여주는 예술성과 현대무용이 보여주는 예술성의 다름을 인지하고 자신의 예술 세계 확대를 꾀하려고 유학 갔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그가 독일에서 니체를 만난 것도 그의 끊임없는 예술에 대한 사유를 더하기 위해서였을까? 책의 맨 앞에 「춤추는 별이 되기 위해」란 제목의 〈들어가며〉 통해 니체를 말한다. 제목 「춤추는 별이 되기 위해」도 니체의 일부를 인용했다. 첫 문장에 저자는 이렇게 썼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춤추는 별을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내면에 혼돈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인용한다. 이 아포리즘*은 "무엇이 나를 춤추게 하는가?", "무엇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가?", "무엇이 나를 인간으로 규정하는가?", "끊임없이 창작하려는 의지와 집착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하고 스스로 질문하게 했고, 늘 혼란스러웠다고 털어놓는다.

저자는 깊은 사색을 거듭하고 성찰했을 것이다. 질문은 늘 있었고, 저자는 늘 생각했을 것으로 이해된다. "그래서 그 질문과 혼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춤을 만들고 춤을 추는 것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술가의 깨달음은 예술의 깊이를 더하고 예술은 그 예술가의 사유를 깊게 한다. 여기서 얻은 통찰력은 저자에게 삶에 대한 지혜에 이른다. "글을 쓰면서 내 삶의 혼란들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오히려 삶을 다양하게, 흥미롭게, 가치 있게 해주는 생산적인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p.7)

* 아포리즘 : 경구나 격언, 금언이나 잠언 등을 일컫는 말이다. 인생의 깊은 체험과 깨달음을 통해 얻은 진리를 간결하고 압축적으로 기록한 명상물로서 가장 짧은 말로 가장 긴 문장의 설교를 대신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주로 일반적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기발한 생각이나 기지를 짧은 글로 나타냄으로써 어떠한 원리나 인생의 교훈을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다.(『문학비평용어사전』, 한국문학평론가협회, 2006)

 


 

『펜으로 쓰는 춤』은 예술을 창작하고 향유하는 한 안무가의 삶, 타국에 사는 이방인의 삶을 그려낸다. 이 책은 공연 예술에 대한 성찰에서부터 세계 여행기, 문화 감상록에 이르는 다채로운 글들은 때로는 기분 좋은 유쾌함을, 때로는 진지한 사유를 건네며 독자들을 지적인 사색의 세계로 이끈다. 예술가들은 예술의 힘을 말할 때마다 "삶이 힘들 때 더욱 빛을 발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것이 예술의 힘일 것이다. 그것이 예술가들이 예술을 하는 이유일 것이다. 예술이 인생의 모든 질문에 답을 줄 수는 없지만, 우리의 일상을 구원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살다 보면 시시때때로 부딪히는 난제를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저자는 예술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기다운 삶의 모습을 찾아 일상을 사소한 행복으로 채우다 보면 진정한 삶의 완성에 이르게 되지 않겠느냐는 답을 이 책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삶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소소한 것들이 사실은 훨씬 크고 고귀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들은 우리의 삶을 구해주기 위해 존재한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난 그게 진실이란 걸 알고 있다."(p.55) - 「인터넷 시대 우리에게 행복이란」 중에서

 

이 책은 모두 3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무대와 인생 - 삶이라는 예술에 대하여〉, 2장 〈친밀한 이방인 - 독일살이와 세계 여행기〉, 3장 〈나를 채우는 조각들 - 보고 읽는 것에 대한 단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인생에서 예술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공연예술가에게 ‘무대’가 지니는 의미와 예술에 주어지는 상에 대한 단상부터, 독서와 공연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일화들은 예술이 인생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려준다.

 


 

2장에서는 무대를 바깥으로 옮겨 독일살이와 여행기를 다룬다. “독일에서도 한국에서도 늘 아웃사이더로서의 삶에 익숙하다 보니, 어디를 가도 관찰하고 영감을 받는 것이 나의 정체성이 되어버렸다”는 저자는 20여 년 넘게 이방인으로 살면서 겪은 경험을 털어놓는다. 또한 공연을 위해, 개인적인 여행을 위해, 친구를 만나기 위해 떠난 수많은 여행은 내면을 한 뼘씩 성장시켰음을 발견한다. 새로운 세계와의 조우는 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여행은 자기라는 실체를 잊고 다시 태어난 듯 새로운 시간과 공간이 주어지는 것이다. 일상에서 형성된 의식들이 새로운 공기와 섞이는 순간, 기분 좋게 자기 부정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시간의 법칙과 공간의 법칙을 넘나들 수 있는 또 다른 세계를 만나는 것이다.(p.141) - 「아프리카, 카보베르데」 중에서

 

3장은 저자에게 영감을 준 전시와 영화, 문학 작품에 대한 감상록이다. 쿠사마 야요이, 페데리코 펠리니, 파스칼 키냐르, 페르난두 페소아, 버지니아 울프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에서 건져 올린 사유의 결과물은 저자의 유연하면서도 단단한 문장이 만들어진 과정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한결같이 삶을 예찬하는 긍정의 힘이 있다. 삶에서 피할 수 없는 사랑, 죽음, 만남과 이별을 말하면서도 비관이 아닌 긍정주의를 견지하는 태도는 우리에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위로와 용기를 준다. “내일, 아니 한 시간 뒤, 10분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우리는 모르기 때문”에 “매 순간 하고 싶은 말과 감정을 표현하고 살아야 한다”라는 저자의 말은 그래서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특히 1장 〈무대와 인생 - 삶이라는 예술에 대하여〉에서 8개의 항목으로 나눠 자신의 예술관이나 무용예술의 속성, 무용의 힘 등을 '삶'과 연결해 매우 깊은 사유를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한참 읽다보면 '예술가인가, 철학자인가' 하는 혼란이 올 정도다. 첫번 째 항목에서 '무대'라는 세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에 따르면 움직임만으로 부족해서 언어를 쓰고, 언어를 표현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움직임을 찾는 것은 늘 작품의 모티브가 되었다. 90세가 넘도록 평생 창작에만 몰두하던 조각가 루이스 부르주아는 인생의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예술을 한다고 했다. 춤을 출 때마다 살아 있음의 자유를 온전히 누린다. 춤을 추는 그 순간만큼은 백(百)으로 현재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에서는 자신은 오로지 무대 위에서만 '100% 나'로 존재함을 느낀다는 말이다. 충분히 몰입해서, 다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자신만의 예술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데 혼신을 힘을 기울인다는 뜻으로 읽힌다.

여기에 저자는 '예술의 시간성'에 대해서도 덧붙인다. "창작을 한다는 건 어딘가 깊숙이 갇히면서도 모든 감각을 열어야 하는 아주 특별한 일이다. 그리고 과거와 미래의 모든 시간성을 내포한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다.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시간의 늪이자 고독한시간이라고 말한다. 시간의 흐름 속에 있는 '나'와, 시간의 어떤 명령에도 따르지 않는 '예술', 이 두 가지는 언제나 따로 또 같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로써 방향성을 지닌 신체와 어떤 방향성도 지니지 않는 예술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는 늘 중요한 과제로 남는다. 춤의 본질에 대한 저자의 답은 "연마한 기술과 영혼이 담긴 표현의 자유가 있는 움직임이다. 그것을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시키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이다. 춤은 그 자체로 본질이기도 하지만 시간과 공간, 의미가 조화를 이루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고 강조한다. 작업은 나 자신의 내면의 소리와 세상을 연결하는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저자는 이처럼 1장에서는 예술의 속성, 공연 예술의 특수성, 창조로서의 예술 등 무용과 예술의 일반론에 대해서 나름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워낙 해박한 지식이라 내용이 독자의 머릿속에 바로 입력되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마침내 뜻을 이해할 수 있다. 그만큼 깊은 사유의 표출이라고 생각되는 대목이다. 또 2장에서는 '독일살이'와 세계 여행기'로 꾸몄다. 문화 충격의 부분과 하이데거에 대한 관심,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이야기, 아프리카의 원색의 힘 등에 대해 저자의 독자적인 시각으로 풀이해준다. 마지막 3장은 '보고 읽는 것'에 대한 단상을 적었다. 전시회를 관람하며 떠오르는 추억, 햇살 예찬, 죽음의 사유 등에 대해서의 생각들이다. 생각에는 느낌과 저자의 견해가 포함된다. 마지막 '가을날, 프랑스 영화, 다가오는 것들'이란 제목의 글은 독자에게도 비슷한 감정의 사연이 있는 탓인지 '공감 백(百)'이다.

 

가을은 왠지 고독해도 될 것 같은 계절이다. 가을에는 불행 속에 빠져들어도 되는 특권을 부여받은 듯하여 마음껏 불행해진다. 기왕이면 매우 근원적이면서도 시작도 끝도 없는 심연 속으로 빠져드는 불행이었으면 하는 열망에도 빠진다. 불행하고 싶은 열망이라니! 가당치 않은 소리 같지만 우리에게 가을이 없었다면 이 불안함에, 이 고독에 기댈 근거가 없었을 테니 얼마나 다행인가.(p.288) - 「가을날, 프랑스 영화, 다가오는 것들」 중에서

 

저자 : 김윤정

 

안무가, 공연예술가. 수원대학교 무용과를 졸업한 후 이화여자대학교 예술대학원에서 현대무용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유럽으로 건너가 아시아인 최초로 네덜란드 아른험 예술대학에서 무용으로 디플롬을 받았다. 독일 주정부의 지원으로 첫 작품 활동을 시작한 후 미국, 러시아, 영국, 일본 등 전 세계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펼치며 해외 평론가들로부터 “춤 안에서 명확히 표현되어야 할 자신만의 언어를 알고 있는 안무가”로 인정받았다. 2001년 독일 푀르데룽 프라이스 후보에 올랐으며, 2006년 〈닻을 내리다〉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선정 올해의 예술상을, 2007년 〈베케트의 방〉으로 무용예술상 작품상을, 2018년 〈인터뷰〉로 한국춤비평가협회 작품상을 수상했다. 〈그런데 사과는 왜 까먹었습니까?〉로 2021년을 빛낸 안무가상과 한국춤비평가협회 베스트 6 작품상에 선정되었다. 예술의 전당과 LIG아트홀, 나비아트센터에서 제작 공연을 맡았으며, 서울국제공연예술제와 서울세계무용축제 등 다양한 무용 페스티벌에 참가하였다.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일에도 매혹되어 문화예술 웹진 ‘더 프리뷰’에서 칼럼을 연재했다. 현재는 ‘YJK 댄스 프로젝트’ 대표로 활동하면서 다양한 무용 장르를 해체하고 조합하여 새로운 언어로서의 춤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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