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연애실록 1
로즈빈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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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소설을 소장가치가 크다고 이야기할까? 독자가 이 책을 읽기 전 가졌던 의문이다. 조선의 세자 신분이라면 차기 왕이 예약된 사람이다. '나라의 국본'이라고 왕 못지않은 경호와 신분상의 예우를 받는다. 대개 세자는 현 왕의 아들이 맡는 게 옛 왕조 시대의 정치 체제다. 특히 동양에서 왕은 나라의 주인임과 동시에 국민들에게도 아버지나 다름없다. 모든 권력은 왕으로부터 나오고, 모든 정책은 왕의 결재가 이루어져야 시행된다. 한마디로 전 국민의 생사 여탈권과 생존권을 쥐고 있다. 사상적으로도 '왕도정치'가 나라의 근본 이념이다. 우리나라도 고대 국가 틀을 갖춘 삼국시대부터 이 제도로 이어져 내려왔다. 왕정은 왕 이하의 모든 사람은 왕의 신하다. 왕비도 신하다. 왕의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왕에게는 어머니이지만 신하다.

세자는 왕을 이어받을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철저하게 교육 받는다. 왕의 교육은 당대 최고의 학자들이 맡는다. 흔히 영의정을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고 하지만 왕족 이외의 사람들 간의 이야기다. 특히 세자 위에 영의정이 군림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영의정에 대한 추앙의 의미가 깊은 데서 말하는 것일 뿐이다. 세자는 어렸을 때는 궁내에서 문무 교육만 받지만 성장하면 정책 결정 회의를 하는 어전에 나가 실기 교육도 받는다. 왕이 허락한다면 어전 회의에서 세자가 정책 결정을 위임받아 할 수도 있다. 이는 최고 권력자 부재시 권력 승계의 혼란과 그에 따른 나라의 무질서를 예방한다는 차원에서 순리적인 제도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 세자에 봉해져(조선 시대에는 왕이 지명하고 중국에 가서 황제의 허락을 받아야 절차가 완성되었다) 궁내에서만 살았던 세자는 국내 물정이 어두워 정작 왕이 되어서는 실정을 하기도 한다. 이 같은 폐단을 없애기 위해 가끔은 세자 시절에도 미행-신분을 숨기고 민정을 살피는 일-을 다녔다고 한다. 조선 16대 왕인 광해군은 임진왜란이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을 때 세자로 봉해져 왕을 대신해 분조를 지휘하며 전쟁터에서 왕을 대행하기도 했다. 세자의 막중한 신분을 실감할 수 있는 사례이다.

 


 

이 책 『조선연애실록』은 세자와 몰락한 반가의 여성 용희의 사랑을 다룬 이야기다. 가상의 역사이기에 조선이란 국호와 실록이란 기록을 토대로 쓰인 픽션이다. 웹소설로 나와 독자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다고 한다. 네이버 웹소설로 누적 조회 수 3300만을 기록했다니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것 같다. 첫 장의 제목이 「세자、출궁)出宮)하다」다. 가상의 해종실록 해종 17년 3월 15일 자 기사에 나온 기록이다. 당시 해종실록에는 이렇게 적혔다.

세자가 문안을 이루러 오자 상이 이르기를.

"지금 듣건대 도성의 무뢰배가 흑단(黑團)을 만들어 흉악한 짓을 하는 것이 그지없다 하니, 이 근심을 어찌하랴?"

이에 세자가 아뢰기를.

"이미 관군 가운데 죽은 자만 수십이오, 근심은 적군의 침략보다 심할 줄 아뢰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영의정의 가문이 화재에 멸하였으니 정국이 난잡하기 이를 데가 없다. 시국에 힘을 더하여 생사를 같이할 그런 사람이 세상에 있는가?"

세자가 장고 끝에 아뢰기를.

"소자의 출궁을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그러자 상이 크게 놀라 이르기를.

"정녕 세자가 굽어살펴 돌아보는 것이 합당하겠는가?"(p.7)

 


 

왕의 허락이 떨어지고 장면이 바뀐다. 여주인공 용희가 초췌한 모습으로 발걸음을 숲속을 헤매고 있다.

"이 꼴이 대체 무어란 말인가?"

용희는 정신없이 앞을 가르며 걸음을 옮겼다. 벌써 며칠을 걷고 있는 것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수면 부족으로 얼굴은 초췌했고, 허기와 갈증이 지독한 탓에 입술은 거칠게 부르텄다. 눈물이 말라붙어 고왔던 두 볼도 입술만큼이나 거칠어져 있었다. 입춘은 진즉 지났지만 해조차 잘 들지 않는 산속은 여전히 냉했고, 시렸다.

"참 무더기무더기, 참으로 잘도 자랐네."

끝도 없이 늘어선 군사들처럼 시선을 어디로 돌려보아도 수풀 천지였다. 용희는 양손으로 수풀을 헤치며 적진을 가르듯 앞으로 나아갔다. 여러 열매 나무도 곧잘 보였으나, 입맛만 다실 뿐 바삐 움직이는 발걸음은 멈출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태진사(太進寺)에 도착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그녀의 어머니가 만사에 시름을 느낄 때면 딸아이의 손을 붙잡고 도성 밖 태진사를 찾곤 했다. 가마에 들어앉아 오갈 때는 이다지도 멀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는데, 막상 혼자 찾아가려니 여정이 만만치가 않다. 게다 남의 눈에 띄지 않으려 부러 산속으로 길을 잡으니 옳게 가고 있는지도 판단이 서질 않았다.

"평소대로 갈 걸 그랬나, 너무 험한데···."(1권, p.8~9)

 

출판사 측에 따르면 『조선연애실록』(전 4권)은 연재되는 작품마다 기본 300만 이상의 조회 수를 보이는 로즈빈 작가의 초기작이다. 독자들의 오랜 기다림과 성원으로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2016년 6월부터 총 104화 분량으로 연재되었던 이 작품은, 로맨스로 사랑받는 로즈빈 작가의 단 하나뿐인 역사물이다. “꼭 단행본으로 출간되길 바랍니다” “사극을 싫어하는 저에게 재미를 느끼게 해주셨어요” 등 독자들의 열화와 같은 사랑과 끊임없는 출간 요청으로 역주행 신드롬을 일으키며, 드디어 종이책으로 선보이게 되었다.

 

 

이 소설의 장점은 드라마 대본 같은 생생한 현장감이 살아 있고, 이야기의 전개가 빠르다는 것이다. 이는 엡소설의 필수 요건일 터다. 이 책을 각본으로 다시 쓴다면 이처럼 쉬운 일을 없을 듯하다. 종이책으로도 모두 2148페이지에 달하는 적지 않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완과 용희의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팽팽한 기 싸움을 보는 재미와 끊이지 않는 사건 사고들을 따라 웃고 울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장에서 젖은 눈시울을 닦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출판사 측은 호언한다. 작가 특유의 따뜻한 감정과 주옥같은 대사, 감각적인 문장과 살아있는 캐릭터들 그리고 역사적 고증이 더해진 『조선연애실록』은 소장가치 1000%의 작품이라는 주장이다.

 

여인임이 들통날까, 용희는 저도 모르게 자꾸만 얼굴을 숨기게 되었다. 사람 속도 모르고, 지담은 눈앞의 홍시가 자꾸만 불량한 태도로 말을 이어 가는 것이 못내 비위 상했다.

“너,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라.”

지담의 냉한 음성에 용희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굳이 사내와 시선을 마주하지 않아도, 온몸으로 뿜어져 나오는 살기를 모를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의 방자함은 웃으며 넘겨주겠다. 생각 같아선 당장 네놈을 패대기치고 싶지만, 그분의 뜻이 그러하니 백 번도 참고 넘어가 주지.”

한주먹 거리도 안 될 것 같은 홍시의 어깨를 붙잡으며 지담은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 음성이 어찌나 살벌한지 용희는 말을 잃었다.

“하지만 내게 금상의 어명이 내려온들 두 번은 참기 힘들 것이다. 하니 다시 마주치는 일은 없길 바란다.”(1권, p.72~73)

 


 

이 책의 표제어와 겉표지에서 조선 시대가 배경이다. '실록'은 조선 시대 왕의 정치적 활동을 역사 기록으로 남긴 것이라는 의미로 쓰인 단어다. 소설의 대화도 옛말 구어체를 그대로 사용한 것도 조선 시대임을 추정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기와집이나 대화의 어투도 고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나와 더 확실하게 해준다. 궁중 로맨스라는 증거는 왕과 세자가 등장하고 특히 영의정이란 직위는 지금의 총리에 해당하는 직책으로 정 1품의 조선 시대에만 사용하던 명칭이다. 로맨스 소설이라는 느낌은 표제어의 '연애'라는 말과 표지화로도 알 수 있다. 책 내부에 격자 무늬로 감싸고 있어 시대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옛 서책과 다르게 두께가 엄청나다. 각 권마다 55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이다. 웬만큼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도전 의식이 있지 않는 한 손을 대기가 부담스러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쨌든 소설의 내용이나 전개가 웹 소설답게 젊은 사람들을 주 대상층으로 본다면 두께는 별 문제가 되지 않을 듯하다. 고증이 철저하게 잘 됐다고 출판사 측의 주장대로 읽으면서 어색한 부분이 발견되지 않아 느낌이 좋다.(이 사실은 독자가 증명하기 어려운 부분이라 구체적으로 지적하긴 어렵지만)

세자가 주인공인 점에 대해서는 저자 로즈빈의 자신감일 터 크게 어려울 것은 없지만 남장여자의 신분을 알고 있는 독자에게 설득 가능한 행동을 해야 할 텐데 독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궁금하다. 또 세자 일행이 남장 여자라는 사실을 알면서 눈감아 주는 것도 흥미롭다. 신분을 밝힐 수 없는 여주인공의 사정을 감안해 독자들이 이해해 주길 바라는 마음은 독자로서도 공감한다. 복수극이나 미스터리 소설이 아니라는 점에서 남자 여자 캐릭터는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작용을 하길 바란다는 마음에서다. 무척 매혹적인 소설임도 부인할 수 없다. 신분을 뛰어넘는 로맨스는 사극에서 흔히 다루는 소재이지만 세자와의 로맨스라니 조금은 더 특별해진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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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스타일 아이콘
찰리 콜린스 지음, 박경리 옮김 / 브.레드(b.read)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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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로서 프리다 칼로의 이미지는 독자에게 시련과 극복의 예술가로 각인되어 있다. 그를 안 지 불과 5년도 채 안 되었지만 최근 2년 내 그의 책이 그림 위주로 많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모두 그의 그림과 그의 짧은 생애에 대한 것으로 채운 책이었다. 그에 관한 스토리는 굉장히 풍부했다. 그는 1907년 생이다. 1954년까지 47년간 그의 삶은 파란만장하다. 멕시코의 코요아칸에서 유태계 독일인 아버지 빌헬름 칼로와 스페인과 인디오의 혼혈(메스티조)인 어머니 마틸데 칼데론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가 세 살이 되던 해인 1910년 멕시코에서는 농민과 노동자들이 중심이 된 혁명이 일어났다고 한다. 1917년 러시아 볼세비키 혁명보다 7년 앞선 노동자·농민 혁명이다. 혁명의 열기가 가득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칼로는 6살 때 소아마비로 오른쪽 다리가 불편힜다. 그러나 총명하고 아름다웠다고 한다. 당시 멕시코 최고의 교육기관이던 에스쿠엘라 국립 예비학교에 진학했는데 여학생은 전교생 2,000명 중 35명뿐이었다고 하니 우수한 재원이었음에 틀림없는 듯하다. 칼로는 생물학, 해부학 등을 공부해 장차 의사가 되는 꿈을 가졌다고 전해진다.

칼로는 이 학교에 다닐 때 강당에 벽화를 그리러 온 리베라를 처음 본다. 당시 리베라는 멕시코와 혁명을 대표하는 미술가라는 명성과 함께 분방한 여성편력과 돌발적이고 기괴한 행동으로 인해 '식인귀'라는 악명도 함께 드날리고 있었다. 그림에 관심은 있었지만 화가가 될 생각은 없었던 칼로에게 리베라는 자신의 인생과는 무관한 그저 괴팍한 예술가였을 뿐이었다. 칼로가 18살이던 1925년 9월에 일어난 교통사고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멕시코의 진보적인 여성 의사로 인생을 살아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운명은 계획한대로 그녀의 삶을 이끌지 않았다. 하굣길에 오른 버스와 전차가 부딪히면서 칼로는 치명상을 입었다. 그녀의 옆구리를 뚫고 들어간 강철봉이 척추와 골반을 관통해 허벅지로 빠져 나왔고 소아마비로 불편했던 오른발은 짓이겨졌다.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의사들은 아무도 그녀가 다시 걸을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했다. 칼로는 꼬박 9개월을 전신에 깁스를 한 채 침대에 누워 있어야만 했다. 그녀는 이 사고로 자신은 ‘다친 것이 아니라 부서졌다’고 표현했다. 아무 것도 꿈꿀 수 없는 시간들이 칼로를 덮쳤다. 깁스를 한 채 침대에 누워 두 손만 자유로웠던 칼로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그림을 그리는 것뿐이었다. 부모는 그녀를 위하여 침대의 지붕 밑면에 전신 거울을 설치한 캐노피 침대와 누워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이젤을 마련해주었다. 누워서 운신할 수 없었던 칼로는 거울에 비친 자신을 관찰하고 또 관찰하며 스스로의 모습을 그려가기 시작했다. 이것이 그녀가 평생을 두고 자화상을 그리기 시작한 계기였다. 칼로는 자화상에 대해 “나는 너무나 자주 혼자이기에 또 내가 가장 잘 아는 주제이기에 나를 그린다”고 말했다.

걷기 위한 수 차례의 수술 끝에 칼로는 기적적으로 걸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후유증으로 인한 고통은 그녀를 평생 동안 괴롭혔다. 척추의 고통은 그녀에게 새로운 꿈을 꾸게 하였다. 병상에 누워 그림을 그리는 동안 칼로는 자신의 운명이 그림에 있음을 느꼈다. 그러나 미술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었기에 그림을 정확히 평가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칼로는 리베라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칼로는 사회주의 사진작가인 티나 모도티를 통해 리베라를 만났다. 그리고 그로부터 자신의 그림에 대한 재능과 열정을 평가받고 싶어했다.

칼로의 그림을 본 리베라는 “프리다의 작품에서 예기치 않은 표현의 에너지와 인물 특성에 대한 명쾌한 묘사, 진정한 엄정함을 보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잔인하지만 감각적인 관찰의 힘에 의해 더욱 빛나는 생생한 관능성이 전해졌다고 해야 할까. "나에게 이 소녀는 분명 진정한 예술가였다”고 평했다는 것. 리베라는 화가가 되겠다는 칼로의 결심을 굳혀주었다 그리고 둘 사이에 사랑이 싹텄다. 1929년 8월, 22세의 칼로는 그녀보다 21년 연상인 리베라와 결혼을 했다.

 


 

이미 두 번이나 결혼한 적이 있는 리베라와 칼로의 결합을 사람들은 ‘코끼리와 비둘기의 결합’이라고 했다. 당시 멕시코를 대표하는 천재화가의 반열에 올라있던 리베라의 아내로서 칼로는 만족하는 듯이 보였다. 멕시코 공산당 입당과 탈당을 같이 했으며 함께 사회운동에 나섰고 그의 그림을 위해 기꺼이 모델이 되었으며 영감을 주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한 남자의 아내로 사는 조용하고 행복한 삶은 칼로와는 먼 것이었다. 이미 수많은 여성편력을 가지고 있던 리베라는 결혼 후에도 외도를 멈추지 않았다. 남편 리베라로 인해 칼로는 질투와 분노를 넘어선 고독과 상실감을 평생 안고 살아가야만 했다.

“나의 평생소원은 단 세 가지, 디에고와 함께 사는 것, 그림을 계속 그리는 것, 혁명가가 되는 것이다.”

프리다 칼로에게 있어서 디에고 리베라는 배우자 그 이상의 존재였다. 그녀에게 그는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사랑이자 증오였으며 기쁨이자 지극한 고통이었고 갈망이자 짐, 희망이자 절망, 연인이자 적이었다. 리베라와의 결혼은 운명이고 필연이었지만, 그것이 행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리베라는 결혼생활 동안 칼로의 삶 전체를 지배했고, 고독과 고통에 피눈물을 흘리게 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칼로에게 화가로서, 혁명가로서의 인생도 함께 주었다.

프리다 칼로만큼 강렬한 이미지의 예술가가 또 있을까? 풍성하게 땋아 올린 머리와 짙은 눈썹, 상대를 뚫어지게 응시하는 깊고 야성적인 눈. 그녀가 남긴 작품 속, 사진 속 이미지는 프리다 칼로를 예술가로서뿐만 아니라 시대와 나라를 대표하는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우뚝 서게 했다. 프리다 칼로의 독보적이고 화려한 스타일은 그녀를 평생 짓누른 고통에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어린 시절 겪은 소아마비로 인해 왜소했던 오른쪽 다리와 비극적인 버스 사고로 인해 산산이 부서졌던 몸. 프리다 칼로는 이러한 자신의 약점에 좌절하지 않았다. 스페인과 멕시코 혼혈이라는 정체성, 사진작가인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예술성과 어머니에게 배운 강인함을 토대로 삶의 의지를 다졌다. 수많은 액세서리와 의복, 소품을, 자신을 일으켜 세우고, 때로는 숨기며, 반대로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마법의 도구로 삼으며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 책에서 우리는 만인의 뮤즈이자 혁명가, 사상가로서의 프리다 칼로를 만날 수 있다. 그녀가 자유롭게 날아오르고자 선택했던 아이템들, 자신의 정치적 행보를 뒷받침하기 위해 변모한 스타일, 프리다 칼로를 유일한 존재로 만든 멕시코의 전통 의복과 뒷이야기까지. 프리다 칼로 인생의 주요 순간과 그녀를 지탱했던 삶의 도구를 그린 일러스트는 이야기와 또 다른 매력으로 우리를 이끈다.

이 책 『프리다, 스타일 아이콘』은 프리다 칼로를 한 시대를 살다 간 예술가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장 폴 고티에, 알렉산더 맥퀸 등 수많은 패션 디자이너의 뮤즈이자 만인의 뮤즈였던 프리다 칼로의 스타일을 통해 패션이 자기표현의 매우 중요한 수단이었던 프리다 칼로의 삶을 조명한다. 옷을 대하는 프리다 칼로의 태도를 형성한 데 일조한 극적인 사건부터 처음 패션계의 ‘잇 걸’로 우뚝 섰던 순간과 프리다 칼로의 영향으로 탄생한 패션의 역사적 순간, 프리다 칼로가 살던 라 카사 아술의 문이 열린 2004년의 순간까지. 그의 그림과 고통과 극복의 삶만을 조명하던 책과는 다른 각도, 시선으로 그를 재조명하는 것이다. 패션이나 독창적이고 강렬한 스타일에 대한 고찰이다. 독자로서는 처음 접하는 프리다 칼로가 될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다. 어쩌면 독자는 이 책을 통해 프리다 칼로의 고갈되지 않는 패션의 영감을 접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프리다 칼로가 패션계와 프리다마니아에게 남긴 지속적인 유산에 대한 통찰력과 영감을 기대하게 한다.

 


 

저자 찰리 콜린스(Charlie Collins)는 패션 컨설턴트이자 스타일리스트로서 우이필과 전통 테우아나 드레스부터 직접 고르고 장식한 원주민의 보물로 만든 장신구까지 빠짐없이 챙기고 설명을 통해 '프리다, 스타일'을 설명한다. 프리다 칼로가 자신의 스타일을 개인적이고 정치적인 표현의 수단으로 어떻게 사용했는지 세밀하게 분석하고 보여준다. 프리다 칼로 사후 50년이 지나 대중에 공개된 프리다 칼로의 옷장에서 멕시코 전통 드레스인 레보소, 자수가 놓인 블라우스인 우이필, 롱 스커트인 에나과와 올란, 코르셋이 발견되었다. 프리다 칼로가 고른 의류, 액세서리에는 모두 저만의 의미가 있었다고 저자는 귀띔한다. 코르셋은 평생 프리다 칼로를 옭아매는 동시에 지탱해 주는 힘이었고, 멕시코 전통 의류는 프리다 칼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유일한 존재로 만들었다. 이 책에서는 프리다 칼로의 옷장에서 발견된 의류와 액세서리들이 각자 어떤 의미를 담고 있었는지 프리다 칼로의 비밀을 톺아보고 있다. 독자처럼 칼로의 그림만 알고 있는 독자로서는 마땅히 굉장한 '득템'이다. 보관하고 언제든 자료로 쓰고, 또 인용할 필요가 있을 때 저자의 이름으로 인용할 수 있는 책임감 있는 책임에 틀림없다.

이 책은 모두 5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성장통」, 2장 「파워 드레싱」, 3장 「내밀한 옷장」, 4장 「슈퍼 스타일리스트」, 5장 「불멸의 인플루언서」 등이다. 저자 찰리 콜린스는 〈서문〉을 통해 칼로의 생애는 물론 그림에 대한 설명을 곁들이지만 대체로 그의 스타일이 완성되어 가는 삶과 극복의 의지로서의 그림 및 그의 생활 등에 초점을 맞춰 풀어내고 있다. "그러나 아픔은 그의 잠재력을 깨웠다. 프리다는 거듭되는 붓질을 통해 자신의 고통을 처절한 아름다움으로 승화하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릴 때 그의 불행은 감정적 힘을 이끌어 내는 자양분이 되었고, 부상당한 육체를 극복하고자 하는 도전은 그를 하나의 아이콘으로 탄생시켰다."(p.7)

 


 

1장부터 5장까지 저자는 매 장마다 장의 제목 아래 간략한 문장으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각 장에서 다루는 칼로의 스타일에 대해 조목조목 해석하고 설명한다. 1장-Growing Pains(성장통)에서는 "프리다 칼로는 어릴 때부터 남다른 안목을 키웠다. 어린 프리다는 아름다움에 대한, 그리고 훗날 스타일을 향한 그의 탐욕에 영향을 미치는 영감의 파편들을 포착했다"고 말한다. 두려움이 없었으며 공상하기를 좋아하고, 자연을 사랑했다는 어린 시절의 칼로를 설명한다. 상상력이 풍부하고 자연 관찰을 즐겼다는 이야기다. 2장-Power Dressing에서 저자는 디에고 리베라와의 관계에서 칼로의 '열정'을 이끌어 내고 있다. "디에고 리베라는 칼로가 겪은 어떤 끔찍한 사고보다도 그를 거듭 산산조각 냈다. 디에고의 예측할 수 없는 기행과 진실을 왜곡하는 경향은 프리다를 미칠 지경까지 몰아갔다. 그러나 한편으로 프리다는 다른 어떤 영약보다도 디에고에게서 자양분을 얻었고, 이를 통해 정신을 단련하고 오래도록 뜨겁게 열정에 불을 지필 수 있었다고 해석한다.

3장-Closet Confidential(내밀한 옷장)에서 저자는 "라 카사 아술을 그토록 선명한 푸른색으로 칠한 이유는 사악한 영혼들을 쫓기 위한 것이라고 사람들은 수근댔다. 그러나 프리다 칼로가 자신을 지켜 주던 담장 안쪽에서 마지막 숨을 내쉰 지 반세기가 훌쩍 넘었고, 그곳에 반쯤 잊힌 채 잠들어 있던 보물들이 감탄해 마지않은 수집가들에 의해 깨어났다."고 기술하고 있다. 4장-Super Stylist에서 저자는 칼로가 스타일 면에서 자신만의 개인적이고 정치적이며 이데올로기적인 시선을 담아 독창적이고 심리적인 요소를 가미해 나갔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어떤 복식은 그저 아름답기 때문에 따른 것도 분명하다. 그의 옷장을 조심스럽게 복원해 나가는 과정 덕에 우리는 그 옷 뒤에 숨어 있는 한 여자에 대해 보다 잘 알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5장-Immortal Imfluencer(불멸의 인플루언서)에서 "프리다 칼로의 독특한 미의식은 장 폴 고티에와 엘사 스카아파렐리부터 알렉산더 맥퀸과 레이 카와쿠보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경계를 넘어 최고의 패션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그들의 창조력을 새로운 수준으로 이끌었다. 프리다는 불멸의 인풀루언서이자 진정한 스타일 아이콘으로서 수준 높은 패션 문화를 형성하는 데 일조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1937년에 실린 첫 번째 사진에서부터 프리다 칼로는 멋스러운 ‘잇 걸’이자 인플루언서로 자리를 굳혔다. 프리다뿐 아니라 그가 되고자 하는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의 사진이 화려한 패션 잡지에 실렸다. 에디터, 스타일리스트, 디자이너, 그리고 제작 감독들에게 프리다의 이미지는 그야말로 영감의 원천이었다. 오늘날에도 그는 ‘보그(Vogue)’라는 이름이 의미하는 바 그대로, 변함없이 ‘유행’을 선도하고 있다.(p.137) - 「〈보그〉 속 프리다」 중에서

 

저자 : 찰리 콜린스(Charlie Collins)

 

찰리 콜린스는 고객이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품질과 실용성에 중점을 두고 옷장을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 패션 컨설턴트이자 스타일리스트다. 개인이나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패션 분야에서 10년 넘게 일하며 필요없는 아이템들이 재판매되거나 기부를 통해 보다 가치 있게 쓰이도록 했다. 콩고민주공화국 지역사회 모델인 말라이카 채러티(Malaika Charity)의 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를 통해 400명이 넘는 소녀와 그 가족이 도움을 받고있다. 프리다 칼로의 오랜 팬이며, ‘창조적인 옷장’(Creative Wardrobe)이라는 커뮤니티를 설립하고 보물 같은 빈티지 물품이나 구제 물품을 찾아 다닌다. 남편 매트와 아들 이보, 메인쿤 고양이, 울프와 함께 이스트 서식스주(East Sussex) 루이스(Lewes)에 살고 있다.

 

역자 : 박경리

 

프랑스 누벨 소르본에서 비교문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고 인문, 실용, 한국문학 등 편집 일을 배우다가 민음사에서 프랑스어 작품 담당 편집자로 자리 잡았다. 세계문학전집을 비롯하여 ‘밀란 쿤데라 전집’,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위고의 『레 미제라블』을 편집했다. 말레이시아로 이주하여 번역 일을 하며 지내고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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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들
진하리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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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 인물들의 미묘한 심리를 섬세하게 써내려간 6편의 소설들은 오늘날 세상 모든 이웃들, 심지어 혈연까지도 관계의 감춰진 비밀의 공모자가 될 수 있고, 새로운 공모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감춰진 것을 감춘 채 나는 너의 이웃으로, 너는 나의 이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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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들
진하리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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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이웃들』은 소설가 진하리의 첫 소설집이다. 단편 여섯 편으로 구성된 단출한 느낌이지만 쓰는 기간은 꽤 오래 걸렸다고 한다. 저자 진하리는 이 책의 여섯 편의 소설이 2019년 여름부터 2022년 봄 사이에 쓴 것이라고 〈작가의 말〉을 통해 밝힌다. 고치고 다듬는 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창작의 고통을 은근히 내비친다. 애정을 쏟는다고 자식이 내 뜻대로 자라주지는 않는 것처럼 소설도 그렇더라고 고백한다.

저자의 한 친구가 몇 년 전 깊은 산속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귀촌했다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해발 700미터의 친구의 산장에서 발밑으로 지나가는 구름을 보며 '향기롭고 쌉쌀한' 이야기를 구상했다다. 그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연작소설로 이어졌다고 털어놓는다. '향기롭고 쌉쌀한'은 이 소설집의 시작인 셈이다. 퇴고를 거쳐 소설이 완성될 즈음 산장의 주인이었던 한나(친구의 이름인 듯하다)는 그곳을 떠났다. 산장에서 19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한적한 마을로 이사해 카페를 열었다고 전한다. 낮엔 이즈니 버터와 잠봉햄을 듬뿍 넣은 샌드위치를 만들어 팔고 밤엔 그림을 그리는 대신 시를 쓰게 되었다. 요즘은 가끔 저자에게 카톡으로 시를 보낸다고 전한다. 아직은 미완인 그녀의 시가 나는 참 좋다.

이 책에 수록된 소설들은 제목처럼 '이웃들'의 삶을 그렸다. 평범한 삶인 듯하지만 '세상물' 다 든 사람들이 서로 이웃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담았다. 이 책에 실린 소설들에 대해 문학평론가 허 희는 "서로가 서로에게 속물인 세상"이라는 제목의 글로 평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마지막에 수록된 「휴가」는 가장 나중에 쓴 소설이고 다른 다섯 편과는 결이 다르다고 굳이 〈작가의 말〉을 통해 밝혔다. 왜일까? 저자는 연남동(서울 마포구)에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연 사촌동생을 찾아갔다가 그 애의 뒷모습을 보며 구상한 이야기란다. 지금은 그 이야기를 잇는 새로운 연작소설을 쓰고 있다.

 


 

저자는 왜 소설을 쓴 동기를 밝히는 것인가? 아마 저자가 지향하는 소설의 성격을 암시하는 듯하다. 독자의 추정이지만 저자는 우리 이웃들의 삶의 모습을 담아내고 싶은 것이다. 아마 저자가 앞으로도 비슷한 지향점을 가진 소설을 쓸 것으로 독자에게는 읽힌다. 저자는 심훈문학상 수상자로서 작가 입문을 한 분이다. 인물들의 미묘한 심리를 섬세하게 써내려간 소설들은 심훈문학상 심사 당시에도 “중산층의 복잡한 세태와 심리를 끌어내는 관점과 주제의식이 새롭다”는 평을 받았다. “스노비즘이 장악한 현실의 양상을 투시도처럼 재현”하며 독자들에게도 많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 책 『이웃들』에 수록된 여섯 편의 소설 중 마지막 작품 「휴가」를 제외한 다섯 편의 소설은 연작의 성격을 갖는다. 저자가 〈작가의 말〉을 통해 이미 언급했다. 「야외수업」의 주인공 ‘태미’는 「해피버스데이」에, 「해피버스데이」의 ‘한나’ 부부는 「향기롭고 쌉쌀한」에 다시 나온다. 이 외에 「이웃들」과 「지나간 이야기」도 동일한 세계관을 공유한다. 어느 작품에서는 조연이던 인물이 또 다른 작품에서는 주연으로, 혹은 그 반대로 전환된다. 인물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시간과 공간을 공유한다. 일상의 조각들을 나누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각자의 필요에 의해 서로를 호출할 뿐 다정한 ‘이웃들’은 아니다. 이들은 친밀함을 연기하고, 위로하는 척하면서 슬며시 배신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초상이기도 하다. 타인의 행운과 성공 앞에서 자신의 불운을 들추어내 견주고 마는 인간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그들의 속물성을 끄집어내 폭로한 뒤에 자기반성으로 이어진다거나 갈등이 해소되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진실과 거짓말의 무게를 감당하며 계속 살아가야 하는 날들이 이어질 뿐이다.

 


 

소설가 손홍규는 〈추천평〉을 통해 여섯 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이들이 한결같이 벼랑 끝에 서게 된다고 지적한다. 몰락 직전의 순간이라고나 할까. 문득 눈을 뜨고 보니 발아래가 까마득하다. 거기가 바로 그들의 내면이다. 그들은 일상의 어느 순간 과거의 선택이 만들어낸 결과를 맞닥뜨린다. "타인의 비밀은 언제나 흥미롭지 않던가. 죄책감 없이 저지를 수 있는 유일한 죄처럼 말이다. 정작 그들이 목격하는 건 흥미롭지 않은 자신의 비밀에 불과하지만. 마침내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지탱해준 비밀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모른 척할 수 없게 된다. 살면서 한 번쯤 겪게 되는 운명적인 순간이라 할 수 있지만 이 순간을 견디고 맞이하는 내일 역시 희망적일 것이라는 암시 따위는 없다. 그렇다. 깨달음조차 그들을 구원하지 못한다. 간절히 바라던 것을 손에 쥐고도 행복해지기는커녕 불행해진 아니, 불행이라는 말로도 다 표현할 수 없는 삶이라니. 모든 게 그들 탓인데 차마 그들에게 손가락질할 수 없는 까닭은 쓸쓸하다거나 서글프다고 말하지 않았음에도 그들의 외로움과 슬픔이 고스란히 눈에 보여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었고 말로 표현될 수 없는 것을 표현했으니 이 여섯 편의 소설은 한 편 한 편이 눈부신 언어도단이다. 『이웃들』은 진하리 작가의 첫 소설집이다. 첫 소설집이 이토록 무시무시해도 되는 건가. 아마도 독자는 낯선 이 작가의 이름을 결코 잊지 못하게 될 것이다."

허희 평론가의 평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 이웃의 내면이나 삶의 모습을 소설 내 인물에 국한시키지 않고 현재 우리들의 모습을 투영한다고 본다. "친밀하다기보다는 친밀함을 연기하고, 위로하는 척하면서 슬며시 배신하는 인물은 중산층만으로 한정되지 않는 현재의 군상이다. 이에 대한 어떠한 소설적 대안이 있을 수 있나. 진하리는 섣부른 해결책을 논하지 않는다. 그저 스노비즘이 장악한 현실의 양상을 투시도처럼 재현하였을 따름이다. 단편의 임무는 이로써 완수되었다."

 

 

이는 대한민국 사회의 일단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오늘날 살고 있는 전 세계 사람들의 내면이고 삶의 양태다. 평론가 허 희는 이를 〈표리부동의 처세술〉이라고 말한다. 허 평론가는 "『월든』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면서도 나는 진정한 교제를 고통스럽게 갈망한다. 하지만 이는 결코 충족될 수 없는 소망'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는 세속에서의 생활이 마치 스스로를 죽이는 일인 것 같다고 적어놓기도 했다. 그래서 사회 대신 자연에 머물기를 희망했으리라. 오늘날 사람들을 피해 은거하는 '자연인'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소로의 정신이 현대에도 면면히 이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모두가 소로를 비롯한 자연인처럼 살지는 못한다. 실상 이들은 예외적 존재라서 주목받는 것이다. 다수의 사람은 타인과 얽힌 사회에서 살아간다. 무리에서 떨어져 나오는 선택보다는 무리에 속해 있는 편이 자연스러워진다. 사회의 평범한 일원이 아닌 괴짜가 되는 것은 쉽지 않은 결단을 필요로 한다고 허 평론가는 강조한다.

사회의 평범한 일원으로 사는 길도 편안하지만은 않다. 1997년 이른바 'IMF체제' 성립 이후 한국은 속물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허 평론가의 말에 귀기울여본다. 이에 따르면 한 사회학자는 속물이 지배하는 사회를 스노보크라시(snobocracy)라고 규정한다. 그는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귀기울여 듣는 진정성을 잃어버리고, 타인지향적 삶을 추종하며, 도구적 성찰성만을 발휘하는 소노비즘이 2000년대를 관통하는 마음의 레짐(regime)이라고 정의 내린다. 특징적인 점은 만연화된 스노비즘을 비판하는 사람조차 본인이 속물이 아니라고 자신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속물인 세상은 구성원들을 기만하고 상처 입힌다. 그러는 한에서 속물은 나이고, 당신이며, 곧 '이웃들'의 얼굴이다. 이때의 이웃은 살가운 관계를 뜻하지 않는다.

 


 

얼마 전 〈완벽한 타인〉이란 영화를 본 적이 있다. 한자리에 모인 친구들은 어린시절부터 친구였고 결혼을 한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갑자기 시작된 휴대폰 공유 게임으로 진실이 하나 둘 밝혀지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 리메이크 작품으로 원작이 따로 있다. 이탈리아 영화 〈퍼펙트 스트레인저〉라고 한다. 개봉 후 3년 만에 한국, 스페인, 터키, 인도, 프랑스, 그리스에서 리메이크를 했을 정도로 작품성이 뛰어난 영화로 평가된 수작이라고 한다. 우리의 리메이크 작품 〈완벽한 타인〉도 원작 못지않게 잘 만들었다고 평가를 받았다는 후문이다. 현대인은 누구나 무언가를 숨기고 사는 인간이라는 강한 메시지가 담긴 영화다. 휴대폰 속에 다들 한 가지 비밀쯤은 있지 않은가?

갑자기 독자가 영화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은 이 책 『이웃들』에서 저자가 메타포로 쓰고 있는 '이웃'의 실체에 접근하기 위해서다. 허 평론가가 제시한 〈타인이라는 적〉의 명제에 다가서기 위해서다. 표제작 「이웃들」은 세 부부의 모임에 초점을 맞춘다. 태하아빠와 엄마, 재이아빠와 엄마(파라: 제이엄마의 이름이 '파라'인 것은 「지나간 이야기」에서 밝혀진다), 루키아빠와 엄마(주연)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이라고 할 만한 인물은 '주연'인데, 다른 인물과 달리 그녀만 서술자에게 이름으로 불리면, 그녀와 '노인' 및 '여자' 사이에 에피소드가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세 부부가 정기적으로 모이는 자리에서 이들은 태하아빠의 제안으로 게임을 시작한다. 그 게임이란 자신이 알고 있는 이웃의 비밀을 밝히는 것이다. 자기 의견은 제외하고 직접 본 것만 이야기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어느새 경계는 흐릿해진다. 허 평론가는 그럴 수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직접 본 것이라는 제한을 두고 객관성을 담보하는 척하지만, 이러한 이웃 이야기는 가십과 뒷소문의 속성을 띤다. 남에 대한 음험한 대화를 통하여 그들은 본인만은 결백한 존재라고 믿어버리기 때문이다. 또한 속물적이고 의뭉스러운 남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는 구설의 대상으로 전락하지 않는다는 안도감, 그러한 구별 짓기가 빚어내는 효과야말로 이웃의 비밀을 화제로 올리는 이유이라는 지적이다.

 


 

'정치적 적'에 대하여 『이웃들』의 인물들은 노골적으로 적대하지 않는다. 배타성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것은 세련된 태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세간에 비난받을 일을 저질렀을지언정, 알려지지 않으면 괜찮다고 여기며 그들은 타인과 본인마저 속인다. 한나 남편(준성)은 소리친다. "다들 정신 차리라고." 이는 타인에게만 향하는 일갈이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적용되는 외침이다. 허 평론가는 그들이 정신 차리지 않고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한다. '왜'와 '어떻게'라는 메타적 질문이 결여되어 있을 뿐이라고 강조한다. 저자 전하리는 혈연으로 묶인 가족도 다르지 않음을 「휴가」에서 예증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휴가」는 '영주'는 사촌동생 '준왕'이개업한 '펍을 겸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고모들과 같이 방문한면서 옛날 일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난다.

 

전남편에게 연락이 왔을 때 파라는 놀이터 벤치에 앉아 미지근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여름의 한가운데였고 태양이 작열했고 모든 사물이 정신없이 햇빛을 튕겨냈다. 아들 재이는 친구들과 정글짐 위를 날아다니듯 뛰어다녔다. 파라는 동네 엄마들과 나란히 앉아 있던 벤치를 벗어나 전화를 받았다. 그가 전하는 진부한 안부 인사를 들으며 이제 그와는 인사 너머의 마음은 짐작할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고 생각했다.(p.69) - 「지나간 이야기」 중에서

 

그는 뒤늦게 자신만의 세계를 찾아냈다.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획득했다. 오래전, 컬렉터들이 남편을 쫓아다닐 때 그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정대가 한나에게 호감을 보였을 때 그녀는 그를 돈만 많은 바보라고 생각했다. 뜻밖의 일들은 끊임없이 일어났고 한나가 기대하고 짐작했던 것들은 모두 틀렸다.

한나는 이 층으로 올라갔다. 벽마다 걸린 유화 작품에서 오래된 기름 냄새가 났다. 언젠가 한나의 작품도 이곳에 걸렸었다. 동남방앗간이 갤러리였을 때 한나는 여기에서 개인전을 가졌고 작품 한 점을 이정대에게 팔았다. 그 그림이 컬렉터들의 눈에 띄어 중견작가와 협업을 하기도 했지만 그 이상의 좋은 작품은 나오지 않았다. 한나의 그림은 점점 정형화되어 누구의 마음도 흔들지 못했다.(p.106) - 「해피버스데이」 중에서

 

저자 : 진하리

 

2022년 심훈문학상을 수상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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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름이 돋는다 - 사랑스러운 겁쟁이들을 위한 호러 예찬
배예람 지음 / 참새책방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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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 가장 인기 있는 소설이라면 누가 뭐래도 공포(호러) 소설이다. 물론 모든 독자들이 공포 소설을 다 읽는 것은 아니다. 공포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은 일년 내내 공포 소설을 찾아 읽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의외로 공포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가 적었다. 때문에 공포 소설 작가도 많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탐정·추리·미스터리 소설 등도 분류상 공포 소설과 한 카테고리에 들어가겠지만 아무래도 결은 좀 다른 것 같다. 이 책 『소름이 돋는다』의 저자 배예람은 공포 소설 작가로서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고 한다. 독자도 공포 소설 작가라고 하니 저자의 이름을 들은 것 같다. 모 출판사에서 엔솔로지 소설집을 펴낼 때 배예람 작가가 글을 함께 실은 것 같다.

그런데 배예람 작가는 '겁이 많다'고 스스로 털어놓는다. 그런데 어떻게 공포 소설을 쓸 생각을 했고, 실제 공포 소설 작가가 되었을까? 혹시 엄살? 그럴 리는 없겠지만... 사실 저자는 출판 관계자 몇몇 사람으로부터 비슷한 질문을 받는다고 한다. "공포 영화 좋아하시겠네요?" 저자는 늘 같은 대답으로 위기를 넘긴다고 한다. "좋아하긴 하는데, 겁이 많아서 잘 못 봐요." 당연히 웃음 섞인 답이 돌아온단다. 그럴 때마다 저자는 진지하게 자신이 겁이 얼마나 많은지, 그렇지만 공포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논리적으로 납득시키기에 애를 먹는다고 고백한다. 열변을 토하면 이야기가 점점 수렁으로 빠져 스스로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오히려 독자들에게 되묻는다. '겁쟁이'와 '공포 애호가'는 결코 양립할 수 없는 수식어인 걸까? 그렇지만 저자는 정말로 겁이 많고 또 호러라는 장르를 좋아한다고 한다. 양립할 수 있고 없고는 문제가 아니다. 한 발 더 나아가 공포 소설을 쓰고 있으니 고개가 갸우뚱거린다는 말이다.

 


 

이 책은 공포 소설이 아니다. 공포 소설에 대한 나름대로의 분석과 경향, 그리고 공포 소설의 세계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주로 풀어 쓴 에세이다. 간혹 겁쟁이면서 공포 영화를 보러 가는 사람들에게 흔히 던지는 힐난조의 말 "모르는 사람들은 ‘어차피 눈 감고 있을 거면서 돈 아깝게 왜 자꾸 공포영화를 보고 싶어 하느냐." "그렇게 무서워할 거면 괴담을 읽지 마라." 핀잔을 준다. 힐난이든 핀잔이든 저자는 겁쟁이 호러 애호가 편에 선다. 겁쟁이들은 억울하다고 항변하고 대변도 한다. “겁이 없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저도 모르게 비명이 튀어나오고 심장이 뜨거워지며 눈을 질끈 감게 되는 순간이 얼마나 짜릿하고 즐거운지 말이다.” 호러 장르를 좋아하는 겁쟁이의 삶이란 이토록 모순적이라고 말하는 것도 사실은 할 필요가 없는 변명에 불과하다.

저자의 겁쟁이의 삶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것은 오래전 일이라고 한다. 어렸을 적 집 거실에 밤마다 무언가가 나타났다. 그 정체 모를 형체의 첫 발견자였다고 한다. 편의상 '귀신'이라고 한다며 경험을 이야기한다. 이에 따르면 초등학생 때 귀신을 처음 만났다. 순간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달빛이 희미하게 내려앉은 거실에서, 소파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앉아 있는 검은 그림자를 똑똑히 보았다. 처음에는 단순히 소파가 움푹 들어간 자리에 드리워진 그림자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오늘 유독 도드라져 보이는 것뿐이며, 내일이면 소파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라 믿었다. 겁에 질린 가운데서도 뇌가 의외로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려고 노력했던 듯하다. 하지만 다음 날 밤에도 귀신은 그 소파에 앉아 있었다. 저자에게는 그 모습이 성인 여성이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얌전히 자리에 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일주일이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몇 달이 지나도 그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를 밤마다 화장실에 가는 저자를 쳐다보곤 했다.

 


 

그 뒤로 일어난 일은 설명할 것도 없이 허무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대학에 갈 때까지 그 집에서 자랐다. 귀신은 어느 순간 보이지 않았다. 밤늦게 화장실에 가다 말고 이유 모를 충동에 이끌려 거실을 돌아본 적도 종종 있었지만,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여전히 저자는 그가 정말 귀신이었는지 어둠에 겁먹은 초등학생이 만들어낸 환상이었는지 확신할 수 없다고 한다. 그것은 저자가 인생 처음으로 '진짜' 공포를 마주한 순간이었지만, 당시 단순한 공포를 뛰어넘어 다양한 감정을 맛보았다고 밝힌다. 자신이 보고 있는 존재에 대한 참을 수 없는 호기심과 진짜 귀신이었으면 좋겠다는 이상한 바람. 하필 왜 자신의 집에 나타난 건지, 왜 항상 움직이지 않고 소파에 앉아만 있는지 너무 궁금했다고도 한다. 용기 내서 귀신 옆에 앉은 건 나름의 소통을 해보려는 시도였다고 말하는 것으로 미루어 겁쟁이는 아닌 듯하지만. 아쉽게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아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고.

저자는 공포 추억 하나를 더 풀어놓는다. "공포를 느끼고 두려워하면서도 동시에 순간을 미묘하게 즐겼던 기억은 이뿐만 아니다. '소파 귀신'을 만나기 전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는데, 바로 아동용 애니메이션 〈꼬마 펭귄 핑구〉를 보았을 때라고 한다. 〈꼬마 펭귄 핑구〉는 귀엽고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팽귄 '핑구'를 주인공으로 하여, 이글루에 사는 핑구 가족의 일상을 다룬 옴니버스 애니메이션이란다. 독자는 본 적이 없지만. 푹신해 보이는 클레이의 질감과 등장인물들의 독특한 목소리가 일품이라고 저자는 소개한다. 그 당시 저자 또래 친구들은 모두 핑구를 보았고, 저자 역시 핑구의 열렬한 애청자 중 한 명이었다고. 그중에서도 저자가 가장 좋아했고 여러 번 돌려본 에피소드는 '핑구의 악몽' 편이라고 한다.

 


 

저자가 당시 '핑구의 악몽'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던 어린아이 중 하나였다. 소소하고 재미있는 일들로 가득한 일상을 보내던 핑구의 꿈속에 무시무시한 괴물이 나타나다니! 일일이 저자의 말을 전부 여기에 적을 수 없다.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을 압축해 보면 어린 시절 즐겨 보던 애니메이선에서 주인공이 꿈을 꾸었는데 포식자로서 바다표범이 보여준 짙은 갈색 피부 위에서 번득이는 거대한 눈, 빗자루처럼 꽂힌 수염 아래로 빼곡히 자리 잡은 이빨들이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 기억이 너무 선명하해 아마 저자의 기억에 불쑥불쑥 나타나는 등 트라우마로 남았다는 이야기다.

저자는 이처럼 어린 시절 한밤중에 거실 소파에서 만난 정체불명의 검은 형체, 오프라인 공포 체험에서 나를 소스라치게 했던 귀신(?) 등 일상 속에서 소름 돋는 감각을 느꼈던 경험을 이 책에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다. 2000년대 초 우리 모두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빨간 마스크 괴담도 어김없이 저자의 기억속에 각인돼 있고. 그즈음 ‘엽기’라는 타이틀을 달고 쏟아져 나왔던 공포 플래시 게임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독자도 향수가 느껴진다.

이 책은 으스스하고 음산한 소리를 흘리며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괴담들과 호러 문학, 공포영화, 공포 게임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호러 콘텐츠를 나름의 기준으로 정리해 나간다. 하우스 호러, 각종 괴생명체가 등장하는 크리처물과 좀비물, 고어 호러, 스페이스 호러, 시선과 물의 이미지를 활용한 공포 콘텐츠 등 주제별로 세분하여 분석하고 있어 호러 장르 입문서로서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비교적 새로이 등장한 규칙 괴담이라는 장르를 다루는 편에서는 호러 소설가인 작가가 직접 쓴 규칙 괴담도 에피소드처럼 한 편 담겨 있다. 관심 독자는 놓치지 말고 읽어보길 먼저 읽은 독자로서 권유한다. 많은 영감을 얻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저자가 소설가라서 그런지 스토리텔링이 굉장하다는 느낌을 독자는 받는다. 처음 소개한 '소파 귀신'부터 예사롭지 않더니 이후 호러를 분류하는 데서도 독자로서는 처음 듣는 단어들도 많은데 저자는 누구나 잘 아는 영화나 애니메이션, 캐릭터 등을 동원해 대입시켜 설명한다. 흥미롭고 이해가 제대로 된다. 독자들이 책을 덮을 때쯤에는 읽고 싶은 호러 소설, 보고 싶은 공포영화, 플레이하고 싶은 공포 게임 등 각종 호러 콘텐츠 위시 리스트가 마음속에 가득 쌓일 것으로 믿는다. 놀이공원 귀신의 집에 들어갈 때마다 소리를 꽥꽥 질러서 함께 간 친구가 다른 손님들에게 사과하게 만들지만, 팔다리 수십 개 달린 괴물 앞에서는 두 손을 마주 잡고 탄성을 지른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아아, 너무 멋지다!”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다음에 기회가 되면 군말 없이 또 가서 즐긴다. 놀라움과 소름이 돋고, 숨도 헉헉거리게 되지만 말이다. 누군가는 우리의 그런 모순적인 모습을 타박하고, 다른 누군가는 그렇게 무서워하면서 ‘호러 마니아’라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반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좋아하는 건 좋아하는 거다. 좋아하는 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부정해서도 안 된다.

무서워 죽을 지경이었다면서도 자신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나를 깜짝 놀라게 한 괴물의 위용이 얼마나 멋졌는지 신나게 이야기하는 저자의 모습은 조금 버릇없는 표현이지만 귀엽다. 그러면서도 호러 장르를 진지한 자세로 대하는 모습은 그 좋아하는 감정이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고 책을 쓰게 된 원동력이 됐다고 독자는 감히 추정한다. 억울하게 죽임당하고 누명까지 쓴 여성이 원귀가 되어 사또에게 해원(解?)을 부탁하였다는 아랑 설화. 이 이야기는 시대를 거듭하며 변천했고 그때마다 그 메시지 또한 변화하였다. 이 책은 아랑 설화의 변천을 되짚어가며 왜 귀신은 항상 여자였을지 궁금해하며 우리가 무서워하는 대상에 대하여 고민한다. 어린 시절 친구의 죽음 이후 또래 사이에 돌았던 괴담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깊이 반성하며 진지하게 질문한다.

 


 

‘우리가 진정 무서워해야 할 대상은 무엇이었을까?’ 당연한 일이다. 사랑에는 언제나 책임감이 따르는 법이니까. 이 책은 우리로 하여금 좋아하는 마음의 또 다른 형태를 발견하고 그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한다.

 

이상적이라는 건 알지만, 나는 그 모든 범죄와 사건이 그저 괴담으로 남을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지 않는 세상에서, 피해자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모두가 안전한 가운데 괴담을 읽으며 소름이 돋는 감각을 즐기고 싶다. 늦은 밤에 아무 걱정 없이 거리를 거닐고, 뒤따라오는 사람을 의식하지 않으며 걷고, 편한 마음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싶다. 뉴스에서 끔찍한 범죄 소식이 흘러나올 때마다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안전하기를 기도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괴담을 읽으며 편안한 마음으로 두려워하고 겁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괴담 속 일들이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가진 채로 덜덜 떨 수 있었으면 좋겠다.(p.165) - 「10. 사실은 사람이 제일 무서워」 중에서

 

저자 : 배예람

 

잔인하고 끔찍한 이야기를 즐겨 쓴다. 밤마다 침대에 누워 내일 무엇을 쓸지 상상만 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지독한 게으름뱅이. 게으름을 이겨 내고 한 줄이라도 쓰는 것이 매일매일의 목표. 2019년 안전가옥 앤솔로지 『대스타』에 수록된 「스타 이즈 본」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안온북스 ‘내러티브온’ 소설 편 『왜가리 클럽』에 수록된 「인어의 시간」을, 안전가옥 앤솔로지 『호러』에 수록된 「엔조이 시티전(傳)」을 썼다. 오래오래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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