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연애실록 1
로즈빈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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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소설을 소장가치가 크다고 이야기할까? 독자가 이 책을 읽기 전 가졌던 의문이다. 조선의 세자 신분이라면 차기 왕이 예약된 사람이다. '나라의 국본'이라고 왕 못지않은 경호와 신분상의 예우를 받는다. 대개 세자는 현 왕의 아들이 맡는 게 옛 왕조 시대의 정치 체제다. 특히 동양에서 왕은 나라의 주인임과 동시에 국민들에게도 아버지나 다름없다. 모든 권력은 왕으로부터 나오고, 모든 정책은 왕의 결재가 이루어져야 시행된다. 한마디로 전 국민의 생사 여탈권과 생존권을 쥐고 있다. 사상적으로도 '왕도정치'가 나라의 근본 이념이다. 우리나라도 고대 국가 틀을 갖춘 삼국시대부터 이 제도로 이어져 내려왔다. 왕정은 왕 이하의 모든 사람은 왕의 신하다. 왕비도 신하다. 왕의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왕에게는 어머니이지만 신하다.

세자는 왕을 이어받을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철저하게 교육 받는다. 왕의 교육은 당대 최고의 학자들이 맡는다. 흔히 영의정을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고 하지만 왕족 이외의 사람들 간의 이야기다. 특히 세자 위에 영의정이 군림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영의정에 대한 추앙의 의미가 깊은 데서 말하는 것일 뿐이다. 세자는 어렸을 때는 궁내에서 문무 교육만 받지만 성장하면 정책 결정 회의를 하는 어전에 나가 실기 교육도 받는다. 왕이 허락한다면 어전 회의에서 세자가 정책 결정을 위임받아 할 수도 있다. 이는 최고 권력자 부재시 권력 승계의 혼란과 그에 따른 나라의 무질서를 예방한다는 차원에서 순리적인 제도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 세자에 봉해져(조선 시대에는 왕이 지명하고 중국에 가서 황제의 허락을 받아야 절차가 완성되었다) 궁내에서만 살았던 세자는 국내 물정이 어두워 정작 왕이 되어서는 실정을 하기도 한다. 이 같은 폐단을 없애기 위해 가끔은 세자 시절에도 미행-신분을 숨기고 민정을 살피는 일-을 다녔다고 한다. 조선 16대 왕인 광해군은 임진왜란이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을 때 세자로 봉해져 왕을 대신해 분조를 지휘하며 전쟁터에서 왕을 대행하기도 했다. 세자의 막중한 신분을 실감할 수 있는 사례이다.

 


 

이 책 『조선연애실록』은 세자와 몰락한 반가의 여성 용희의 사랑을 다룬 이야기다. 가상의 역사이기에 조선이란 국호와 실록이란 기록을 토대로 쓰인 픽션이다. 웹소설로 나와 독자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다고 한다. 네이버 웹소설로 누적 조회 수 3300만을 기록했다니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것 같다. 첫 장의 제목이 「세자、출궁)出宮)하다」다. 가상의 해종실록 해종 17년 3월 15일 자 기사에 나온 기록이다. 당시 해종실록에는 이렇게 적혔다.

세자가 문안을 이루러 오자 상이 이르기를.

"지금 듣건대 도성의 무뢰배가 흑단(黑團)을 만들어 흉악한 짓을 하는 것이 그지없다 하니, 이 근심을 어찌하랴?"

이에 세자가 아뢰기를.

"이미 관군 가운데 죽은 자만 수십이오, 근심은 적군의 침략보다 심할 줄 아뢰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영의정의 가문이 화재에 멸하였으니 정국이 난잡하기 이를 데가 없다. 시국에 힘을 더하여 생사를 같이할 그런 사람이 세상에 있는가?"

세자가 장고 끝에 아뢰기를.

"소자의 출궁을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그러자 상이 크게 놀라 이르기를.

"정녕 세자가 굽어살펴 돌아보는 것이 합당하겠는가?"(p.7)

 


 

왕의 허락이 떨어지고 장면이 바뀐다. 여주인공 용희가 초췌한 모습으로 발걸음을 숲속을 헤매고 있다.

"이 꼴이 대체 무어란 말인가?"

용희는 정신없이 앞을 가르며 걸음을 옮겼다. 벌써 며칠을 걷고 있는 것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수면 부족으로 얼굴은 초췌했고, 허기와 갈증이 지독한 탓에 입술은 거칠게 부르텄다. 눈물이 말라붙어 고왔던 두 볼도 입술만큼이나 거칠어져 있었다. 입춘은 진즉 지났지만 해조차 잘 들지 않는 산속은 여전히 냉했고, 시렸다.

"참 무더기무더기, 참으로 잘도 자랐네."

끝도 없이 늘어선 군사들처럼 시선을 어디로 돌려보아도 수풀 천지였다. 용희는 양손으로 수풀을 헤치며 적진을 가르듯 앞으로 나아갔다. 여러 열매 나무도 곧잘 보였으나, 입맛만 다실 뿐 바삐 움직이는 발걸음은 멈출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태진사(太進寺)에 도착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그녀의 어머니가 만사에 시름을 느낄 때면 딸아이의 손을 붙잡고 도성 밖 태진사를 찾곤 했다. 가마에 들어앉아 오갈 때는 이다지도 멀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는데, 막상 혼자 찾아가려니 여정이 만만치가 않다. 게다 남의 눈에 띄지 않으려 부러 산속으로 길을 잡으니 옳게 가고 있는지도 판단이 서질 않았다.

"평소대로 갈 걸 그랬나, 너무 험한데···."(1권, p.8~9)

 

출판사 측에 따르면 『조선연애실록』(전 4권)은 연재되는 작품마다 기본 300만 이상의 조회 수를 보이는 로즈빈 작가의 초기작이다. 독자들의 오랜 기다림과 성원으로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2016년 6월부터 총 104화 분량으로 연재되었던 이 작품은, 로맨스로 사랑받는 로즈빈 작가의 단 하나뿐인 역사물이다. “꼭 단행본으로 출간되길 바랍니다” “사극을 싫어하는 저에게 재미를 느끼게 해주셨어요” 등 독자들의 열화와 같은 사랑과 끊임없는 출간 요청으로 역주행 신드롬을 일으키며, 드디어 종이책으로 선보이게 되었다.

 

 

이 소설의 장점은 드라마 대본 같은 생생한 현장감이 살아 있고, 이야기의 전개가 빠르다는 것이다. 이는 엡소설의 필수 요건일 터다. 이 책을 각본으로 다시 쓴다면 이처럼 쉬운 일을 없을 듯하다. 종이책으로도 모두 2148페이지에 달하는 적지 않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완과 용희의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팽팽한 기 싸움을 보는 재미와 끊이지 않는 사건 사고들을 따라 웃고 울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장에서 젖은 눈시울을 닦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출판사 측은 호언한다. 작가 특유의 따뜻한 감정과 주옥같은 대사, 감각적인 문장과 살아있는 캐릭터들 그리고 역사적 고증이 더해진 『조선연애실록』은 소장가치 1000%의 작품이라는 주장이다.

 

여인임이 들통날까, 용희는 저도 모르게 자꾸만 얼굴을 숨기게 되었다. 사람 속도 모르고, 지담은 눈앞의 홍시가 자꾸만 불량한 태도로 말을 이어 가는 것이 못내 비위 상했다.

“너,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라.”

지담의 냉한 음성에 용희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굳이 사내와 시선을 마주하지 않아도, 온몸으로 뿜어져 나오는 살기를 모를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의 방자함은 웃으며 넘겨주겠다. 생각 같아선 당장 네놈을 패대기치고 싶지만, 그분의 뜻이 그러하니 백 번도 참고 넘어가 주지.”

한주먹 거리도 안 될 것 같은 홍시의 어깨를 붙잡으며 지담은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 음성이 어찌나 살벌한지 용희는 말을 잃었다.

“하지만 내게 금상의 어명이 내려온들 두 번은 참기 힘들 것이다. 하니 다시 마주치는 일은 없길 바란다.”(1권, p.72~73)

 


 

이 책의 표제어와 겉표지에서 조선 시대가 배경이다. '실록'은 조선 시대 왕의 정치적 활동을 역사 기록으로 남긴 것이라는 의미로 쓰인 단어다. 소설의 대화도 옛말 구어체를 그대로 사용한 것도 조선 시대임을 추정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기와집이나 대화의 어투도 고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나와 더 확실하게 해준다. 궁중 로맨스라는 증거는 왕과 세자가 등장하고 특히 영의정이란 직위는 지금의 총리에 해당하는 직책으로 정 1품의 조선 시대에만 사용하던 명칭이다. 로맨스 소설이라는 느낌은 표제어의 '연애'라는 말과 표지화로도 알 수 있다. 책 내부에 격자 무늬로 감싸고 있어 시대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옛 서책과 다르게 두께가 엄청나다. 각 권마다 55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이다. 웬만큼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도전 의식이 있지 않는 한 손을 대기가 부담스러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쨌든 소설의 내용이나 전개가 웹 소설답게 젊은 사람들을 주 대상층으로 본다면 두께는 별 문제가 되지 않을 듯하다. 고증이 철저하게 잘 됐다고 출판사 측의 주장대로 읽으면서 어색한 부분이 발견되지 않아 느낌이 좋다.(이 사실은 독자가 증명하기 어려운 부분이라 구체적으로 지적하긴 어렵지만)

세자가 주인공인 점에 대해서는 저자 로즈빈의 자신감일 터 크게 어려울 것은 없지만 남장여자의 신분을 알고 있는 독자에게 설득 가능한 행동을 해야 할 텐데 독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궁금하다. 또 세자 일행이 남장 여자라는 사실을 알면서 눈감아 주는 것도 흥미롭다. 신분을 밝힐 수 없는 여주인공의 사정을 감안해 독자들이 이해해 주길 바라는 마음은 독자로서도 공감한다. 복수극이나 미스터리 소설이 아니라는 점에서 남자 여자 캐릭터는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작용을 하길 바란다는 마음에서다. 무척 매혹적인 소설임도 부인할 수 없다. 신분을 뛰어넘는 로맨스는 사극에서 흔히 다루는 소재이지만 세자와의 로맨스라니 조금은 더 특별해진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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