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들
진하리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 『이웃들』은 소설가 진하리의 첫 소설집이다. 단편 여섯 편으로 구성된 단출한 느낌이지만 쓰는 기간은 꽤 오래 걸렸다고 한다. 저자 진하리는 이 책의 여섯 편의 소설이 2019년 여름부터 2022년 봄 사이에 쓴 것이라고 〈작가의 말〉을 통해 밝힌다. 고치고 다듬는 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창작의 고통을 은근히 내비친다. 애정을 쏟는다고 자식이 내 뜻대로 자라주지는 않는 것처럼 소설도 그렇더라고 고백한다.

저자의 한 친구가 몇 년 전 깊은 산속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귀촌했다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해발 700미터의 친구의 산장에서 발밑으로 지나가는 구름을 보며 '향기롭고 쌉쌀한' 이야기를 구상했다다. 그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연작소설로 이어졌다고 털어놓는다. '향기롭고 쌉쌀한'은 이 소설집의 시작인 셈이다. 퇴고를 거쳐 소설이 완성될 즈음 산장의 주인이었던 한나(친구의 이름인 듯하다)는 그곳을 떠났다. 산장에서 19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한적한 마을로 이사해 카페를 열었다고 전한다. 낮엔 이즈니 버터와 잠봉햄을 듬뿍 넣은 샌드위치를 만들어 팔고 밤엔 그림을 그리는 대신 시를 쓰게 되었다. 요즘은 가끔 저자에게 카톡으로 시를 보낸다고 전한다. 아직은 미완인 그녀의 시가 나는 참 좋다.

이 책에 수록된 소설들은 제목처럼 '이웃들'의 삶을 그렸다. 평범한 삶인 듯하지만 '세상물' 다 든 사람들이 서로 이웃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담았다. 이 책에 실린 소설들에 대해 문학평론가 허 희는 "서로가 서로에게 속물인 세상"이라는 제목의 글로 평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마지막에 수록된 「휴가」는 가장 나중에 쓴 소설이고 다른 다섯 편과는 결이 다르다고 굳이 〈작가의 말〉을 통해 밝혔다. 왜일까? 저자는 연남동(서울 마포구)에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연 사촌동생을 찾아갔다가 그 애의 뒷모습을 보며 구상한 이야기란다. 지금은 그 이야기를 잇는 새로운 연작소설을 쓰고 있다.

 


 

저자는 왜 소설을 쓴 동기를 밝히는 것인가? 아마 저자가 지향하는 소설의 성격을 암시하는 듯하다. 독자의 추정이지만 저자는 우리 이웃들의 삶의 모습을 담아내고 싶은 것이다. 아마 저자가 앞으로도 비슷한 지향점을 가진 소설을 쓸 것으로 독자에게는 읽힌다. 저자는 심훈문학상 수상자로서 작가 입문을 한 분이다. 인물들의 미묘한 심리를 섬세하게 써내려간 소설들은 심훈문학상 심사 당시에도 “중산층의 복잡한 세태와 심리를 끌어내는 관점과 주제의식이 새롭다”는 평을 받았다. “스노비즘이 장악한 현실의 양상을 투시도처럼 재현”하며 독자들에게도 많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 책 『이웃들』에 수록된 여섯 편의 소설 중 마지막 작품 「휴가」를 제외한 다섯 편의 소설은 연작의 성격을 갖는다. 저자가 〈작가의 말〉을 통해 이미 언급했다. 「야외수업」의 주인공 ‘태미’는 「해피버스데이」에, 「해피버스데이」의 ‘한나’ 부부는 「향기롭고 쌉쌀한」에 다시 나온다. 이 외에 「이웃들」과 「지나간 이야기」도 동일한 세계관을 공유한다. 어느 작품에서는 조연이던 인물이 또 다른 작품에서는 주연으로, 혹은 그 반대로 전환된다. 인물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시간과 공간을 공유한다. 일상의 조각들을 나누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각자의 필요에 의해 서로를 호출할 뿐 다정한 ‘이웃들’은 아니다. 이들은 친밀함을 연기하고, 위로하는 척하면서 슬며시 배신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초상이기도 하다. 타인의 행운과 성공 앞에서 자신의 불운을 들추어내 견주고 마는 인간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그들의 속물성을 끄집어내 폭로한 뒤에 자기반성으로 이어진다거나 갈등이 해소되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진실과 거짓말의 무게를 감당하며 계속 살아가야 하는 날들이 이어질 뿐이다.

 


 

소설가 손홍규는 〈추천평〉을 통해 여섯 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이들이 한결같이 벼랑 끝에 서게 된다고 지적한다. 몰락 직전의 순간이라고나 할까. 문득 눈을 뜨고 보니 발아래가 까마득하다. 거기가 바로 그들의 내면이다. 그들은 일상의 어느 순간 과거의 선택이 만들어낸 결과를 맞닥뜨린다. "타인의 비밀은 언제나 흥미롭지 않던가. 죄책감 없이 저지를 수 있는 유일한 죄처럼 말이다. 정작 그들이 목격하는 건 흥미롭지 않은 자신의 비밀에 불과하지만. 마침내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지탱해준 비밀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모른 척할 수 없게 된다. 살면서 한 번쯤 겪게 되는 운명적인 순간이라 할 수 있지만 이 순간을 견디고 맞이하는 내일 역시 희망적일 것이라는 암시 따위는 없다. 그렇다. 깨달음조차 그들을 구원하지 못한다. 간절히 바라던 것을 손에 쥐고도 행복해지기는커녕 불행해진 아니, 불행이라는 말로도 다 표현할 수 없는 삶이라니. 모든 게 그들 탓인데 차마 그들에게 손가락질할 수 없는 까닭은 쓸쓸하다거나 서글프다고 말하지 않았음에도 그들의 외로움과 슬픔이 고스란히 눈에 보여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었고 말로 표현될 수 없는 것을 표현했으니 이 여섯 편의 소설은 한 편 한 편이 눈부신 언어도단이다. 『이웃들』은 진하리 작가의 첫 소설집이다. 첫 소설집이 이토록 무시무시해도 되는 건가. 아마도 독자는 낯선 이 작가의 이름을 결코 잊지 못하게 될 것이다."

허희 평론가의 평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 이웃의 내면이나 삶의 모습을 소설 내 인물에 국한시키지 않고 현재 우리들의 모습을 투영한다고 본다. "친밀하다기보다는 친밀함을 연기하고, 위로하는 척하면서 슬며시 배신하는 인물은 중산층만으로 한정되지 않는 현재의 군상이다. 이에 대한 어떠한 소설적 대안이 있을 수 있나. 진하리는 섣부른 해결책을 논하지 않는다. 그저 스노비즘이 장악한 현실의 양상을 투시도처럼 재현하였을 따름이다. 단편의 임무는 이로써 완수되었다."

 

 

이는 대한민국 사회의 일단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오늘날 살고 있는 전 세계 사람들의 내면이고 삶의 양태다. 평론가 허 희는 이를 〈표리부동의 처세술〉이라고 말한다. 허 평론가는 "『월든』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면서도 나는 진정한 교제를 고통스럽게 갈망한다. 하지만 이는 결코 충족될 수 없는 소망'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는 세속에서의 생활이 마치 스스로를 죽이는 일인 것 같다고 적어놓기도 했다. 그래서 사회 대신 자연에 머물기를 희망했으리라. 오늘날 사람들을 피해 은거하는 '자연인'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소로의 정신이 현대에도 면면히 이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모두가 소로를 비롯한 자연인처럼 살지는 못한다. 실상 이들은 예외적 존재라서 주목받는 것이다. 다수의 사람은 타인과 얽힌 사회에서 살아간다. 무리에서 떨어져 나오는 선택보다는 무리에 속해 있는 편이 자연스러워진다. 사회의 평범한 일원이 아닌 괴짜가 되는 것은 쉽지 않은 결단을 필요로 한다고 허 평론가는 강조한다.

사회의 평범한 일원으로 사는 길도 편안하지만은 않다. 1997년 이른바 'IMF체제' 성립 이후 한국은 속물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허 평론가의 말에 귀기울여본다. 이에 따르면 한 사회학자는 속물이 지배하는 사회를 스노보크라시(snobocracy)라고 규정한다. 그는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귀기울여 듣는 진정성을 잃어버리고, 타인지향적 삶을 추종하며, 도구적 성찰성만을 발휘하는 소노비즘이 2000년대를 관통하는 마음의 레짐(regime)이라고 정의 내린다. 특징적인 점은 만연화된 스노비즘을 비판하는 사람조차 본인이 속물이 아니라고 자신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속물인 세상은 구성원들을 기만하고 상처 입힌다. 그러는 한에서 속물은 나이고, 당신이며, 곧 '이웃들'의 얼굴이다. 이때의 이웃은 살가운 관계를 뜻하지 않는다.

 


 

얼마 전 〈완벽한 타인〉이란 영화를 본 적이 있다. 한자리에 모인 친구들은 어린시절부터 친구였고 결혼을 한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갑자기 시작된 휴대폰 공유 게임으로 진실이 하나 둘 밝혀지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 리메이크 작품으로 원작이 따로 있다. 이탈리아 영화 〈퍼펙트 스트레인저〉라고 한다. 개봉 후 3년 만에 한국, 스페인, 터키, 인도, 프랑스, 그리스에서 리메이크를 했을 정도로 작품성이 뛰어난 영화로 평가된 수작이라고 한다. 우리의 리메이크 작품 〈완벽한 타인〉도 원작 못지않게 잘 만들었다고 평가를 받았다는 후문이다. 현대인은 누구나 무언가를 숨기고 사는 인간이라는 강한 메시지가 담긴 영화다. 휴대폰 속에 다들 한 가지 비밀쯤은 있지 않은가?

갑자기 독자가 영화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은 이 책 『이웃들』에서 저자가 메타포로 쓰고 있는 '이웃'의 실체에 접근하기 위해서다. 허 평론가가 제시한 〈타인이라는 적〉의 명제에 다가서기 위해서다. 표제작 「이웃들」은 세 부부의 모임에 초점을 맞춘다. 태하아빠와 엄마, 재이아빠와 엄마(파라: 제이엄마의 이름이 '파라'인 것은 「지나간 이야기」에서 밝혀진다), 루키아빠와 엄마(주연)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이라고 할 만한 인물은 '주연'인데, 다른 인물과 달리 그녀만 서술자에게 이름으로 불리면, 그녀와 '노인' 및 '여자' 사이에 에피소드가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세 부부가 정기적으로 모이는 자리에서 이들은 태하아빠의 제안으로 게임을 시작한다. 그 게임이란 자신이 알고 있는 이웃의 비밀을 밝히는 것이다. 자기 의견은 제외하고 직접 본 것만 이야기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어느새 경계는 흐릿해진다. 허 평론가는 그럴 수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직접 본 것이라는 제한을 두고 객관성을 담보하는 척하지만, 이러한 이웃 이야기는 가십과 뒷소문의 속성을 띤다. 남에 대한 음험한 대화를 통하여 그들은 본인만은 결백한 존재라고 믿어버리기 때문이다. 또한 속물적이고 의뭉스러운 남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는 구설의 대상으로 전락하지 않는다는 안도감, 그러한 구별 짓기가 빚어내는 효과야말로 이웃의 비밀을 화제로 올리는 이유이라는 지적이다.

 


 

'정치적 적'에 대하여 『이웃들』의 인물들은 노골적으로 적대하지 않는다. 배타성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것은 세련된 태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세간에 비난받을 일을 저질렀을지언정, 알려지지 않으면 괜찮다고 여기며 그들은 타인과 본인마저 속인다. 한나 남편(준성)은 소리친다. "다들 정신 차리라고." 이는 타인에게만 향하는 일갈이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적용되는 외침이다. 허 평론가는 그들이 정신 차리지 않고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한다. '왜'와 '어떻게'라는 메타적 질문이 결여되어 있을 뿐이라고 강조한다. 저자 전하리는 혈연으로 묶인 가족도 다르지 않음을 「휴가」에서 예증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휴가」는 '영주'는 사촌동생 '준왕'이개업한 '펍을 겸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고모들과 같이 방문한면서 옛날 일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난다.

 

전남편에게 연락이 왔을 때 파라는 놀이터 벤치에 앉아 미지근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여름의 한가운데였고 태양이 작열했고 모든 사물이 정신없이 햇빛을 튕겨냈다. 아들 재이는 친구들과 정글짐 위를 날아다니듯 뛰어다녔다. 파라는 동네 엄마들과 나란히 앉아 있던 벤치를 벗어나 전화를 받았다. 그가 전하는 진부한 안부 인사를 들으며 이제 그와는 인사 너머의 마음은 짐작할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고 생각했다.(p.69) - 「지나간 이야기」 중에서

 

그는 뒤늦게 자신만의 세계를 찾아냈다.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획득했다. 오래전, 컬렉터들이 남편을 쫓아다닐 때 그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정대가 한나에게 호감을 보였을 때 그녀는 그를 돈만 많은 바보라고 생각했다. 뜻밖의 일들은 끊임없이 일어났고 한나가 기대하고 짐작했던 것들은 모두 틀렸다.

한나는 이 층으로 올라갔다. 벽마다 걸린 유화 작품에서 오래된 기름 냄새가 났다. 언젠가 한나의 작품도 이곳에 걸렸었다. 동남방앗간이 갤러리였을 때 한나는 여기에서 개인전을 가졌고 작품 한 점을 이정대에게 팔았다. 그 그림이 컬렉터들의 눈에 띄어 중견작가와 협업을 하기도 했지만 그 이상의 좋은 작품은 나오지 않았다. 한나의 그림은 점점 정형화되어 누구의 마음도 흔들지 못했다.(p.106) - 「해피버스데이」 중에서

 

저자 : 진하리

 

2022년 심훈문학상을 수상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