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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름이 돋는다 - 사랑스러운 겁쟁이들을 위한 호러 예찬
배예람 지음 / 참새책방 / 2023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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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 가장 인기 있는 소설이라면 누가 뭐래도 공포(호러) 소설이다. 물론 모든 독자들이 공포 소설을 다 읽는 것은 아니다. 공포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은 일년 내내 공포 소설을 찾아 읽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의외로 공포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가 적었다. 때문에 공포 소설 작가도 많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탐정·추리·미스터리 소설 등도 분류상 공포 소설과 한 카테고리에 들어가겠지만 아무래도 결은 좀 다른 것 같다. 이 책 『소름이 돋는다』의 저자 배예람은 공포 소설 작가로서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고 한다. 독자도 공포 소설 작가라고 하니 저자의 이름을 들은 것 같다. 모 출판사에서 엔솔로지 소설집을 펴낼 때 배예람 작가가 글을 함께 실은 것 같다.
그런데 배예람 작가는 '겁이 많다'고 스스로 털어놓는다. 그런데 어떻게 공포 소설을 쓸 생각을 했고, 실제 공포 소설 작가가 되었을까? 혹시 엄살? 그럴 리는 없겠지만... 사실 저자는 출판 관계자 몇몇 사람으로부터 비슷한 질문을 받는다고 한다. "공포 영화 좋아하시겠네요?" 저자는 늘 같은 대답으로 위기를 넘긴다고 한다. "좋아하긴 하는데, 겁이 많아서 잘 못 봐요." 당연히 웃음 섞인 답이 돌아온단다. 그럴 때마다 저자는 진지하게 자신이 겁이 얼마나 많은지, 그렇지만 공포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논리적으로 납득시키기에 애를 먹는다고 고백한다. 열변을 토하면 이야기가 점점 수렁으로 빠져 스스로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오히려 독자들에게 되묻는다. '겁쟁이'와 '공포 애호가'는 결코 양립할 수 없는 수식어인 걸까? 그렇지만 저자는 정말로 겁이 많고 또 호러라는 장르를 좋아한다고 한다. 양립할 수 있고 없고는 문제가 아니다. 한 발 더 나아가 공포 소설을 쓰고 있으니 고개가 갸우뚱거린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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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공포 소설이 아니다. 공포 소설에 대한 나름대로의 분석과 경향, 그리고 공포 소설의 세계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주로 풀어 쓴 에세이다. 간혹 겁쟁이면서 공포 영화를 보러 가는 사람들에게 흔히 던지는 힐난조의 말 "모르는 사람들은 ‘어차피 눈 감고 있을 거면서 돈 아깝게 왜 자꾸 공포영화를 보고 싶어 하느냐." "그렇게 무서워할 거면 괴담을 읽지 마라." 핀잔을 준다. 힐난이든 핀잔이든 저자는 겁쟁이 호러 애호가 편에 선다. 겁쟁이들은 억울하다고 항변하고 대변도 한다. “겁이 없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저도 모르게 비명이 튀어나오고 심장이 뜨거워지며 눈을 질끈 감게 되는 순간이 얼마나 짜릿하고 즐거운지 말이다.” 호러 장르를 좋아하는 겁쟁이의 삶이란 이토록 모순적이라고 말하는 것도 사실은 할 필요가 없는 변명에 불과하다.
저자의 겁쟁이의 삶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것은 오래전 일이라고 한다. 어렸을 적 집 거실에 밤마다 무언가가 나타났다. 그 정체 모를 형체의 첫 발견자였다고 한다. 편의상 '귀신'이라고 한다며 경험을 이야기한다. 이에 따르면 초등학생 때 귀신을 처음 만났다. 순간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달빛이 희미하게 내려앉은 거실에서, 소파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앉아 있는 검은 그림자를 똑똑히 보았다. 처음에는 단순히 소파가 움푹 들어간 자리에 드리워진 그림자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오늘 유독 도드라져 보이는 것뿐이며, 내일이면 소파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라 믿었다. 겁에 질린 가운데서도 뇌가 의외로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려고 노력했던 듯하다. 하지만 다음 날 밤에도 귀신은 그 소파에 앉아 있었다. 저자에게는 그 모습이 성인 여성이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얌전히 자리에 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일주일이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몇 달이 지나도 그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를 밤마다 화장실에 가는 저자를 쳐다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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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일어난 일은 설명할 것도 없이 허무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대학에 갈 때까지 그 집에서 자랐다. 귀신은 어느 순간 보이지 않았다. 밤늦게 화장실에 가다 말고 이유 모를 충동에 이끌려 거실을 돌아본 적도 종종 있었지만,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여전히 저자는 그가 정말 귀신이었는지 어둠에 겁먹은 초등학생이 만들어낸 환상이었는지 확신할 수 없다고 한다. 그것은 저자가 인생 처음으로 '진짜' 공포를 마주한 순간이었지만, 당시 단순한 공포를 뛰어넘어 다양한 감정을 맛보았다고 밝힌다. 자신이 보고 있는 존재에 대한 참을 수 없는 호기심과 진짜 귀신이었으면 좋겠다는 이상한 바람. 하필 왜 자신의 집에 나타난 건지, 왜 항상 움직이지 않고 소파에 앉아만 있는지 너무 궁금했다고도 한다. 용기 내서 귀신 옆에 앉은 건 나름의 소통을 해보려는 시도였다고 말하는 것으로 미루어 겁쟁이는 아닌 듯하지만. 아쉽게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아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고.
저자는 공포 추억 하나를 더 풀어놓는다. "공포를 느끼고 두려워하면서도 동시에 순간을 미묘하게 즐겼던 기억은 이뿐만 아니다. '소파 귀신'을 만나기 전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는데, 바로 아동용 애니메이션 〈꼬마 펭귄 핑구〉를 보았을 때라고 한다. 〈꼬마 펭귄 핑구〉는 귀엽고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팽귄 '핑구'를 주인공으로 하여, 이글루에 사는 핑구 가족의 일상을 다룬 옴니버스 애니메이션이란다. 독자는 본 적이 없지만. 푹신해 보이는 클레이의 질감과 등장인물들의 독특한 목소리가 일품이라고 저자는 소개한다. 그 당시 저자 또래 친구들은 모두 핑구를 보았고, 저자 역시 핑구의 열렬한 애청자 중 한 명이었다고. 그중에서도 저자가 가장 좋아했고 여러 번 돌려본 에피소드는 '핑구의 악몽' 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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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당시 '핑구의 악몽'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던 어린아이 중 하나였다. 소소하고 재미있는 일들로 가득한 일상을 보내던 핑구의 꿈속에 무시무시한 괴물이 나타나다니! 일일이 저자의 말을 전부 여기에 적을 수 없다.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을 압축해 보면 어린 시절 즐겨 보던 애니메이선에서 주인공이 꿈을 꾸었는데 포식자로서 바다표범이 보여준 짙은 갈색 피부 위에서 번득이는 거대한 눈, 빗자루처럼 꽂힌 수염 아래로 빼곡히 자리 잡은 이빨들이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 기억이 너무 선명하해 아마 저자의 기억에 불쑥불쑥 나타나는 등 트라우마로 남았다는 이야기다.
저자는 이처럼 어린 시절 한밤중에 거실 소파에서 만난 정체불명의 검은 형체, 오프라인 공포 체험에서 나를 소스라치게 했던 귀신(?) 등 일상 속에서 소름 돋는 감각을 느꼈던 경험을 이 책에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다. 2000년대 초 우리 모두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빨간 마스크 괴담도 어김없이 저자의 기억속에 각인돼 있고. 그즈음 ‘엽기’라는 타이틀을 달고 쏟아져 나왔던 공포 플래시 게임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독자도 향수가 느껴진다.
이 책은 으스스하고 음산한 소리를 흘리며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괴담들과 호러 문학, 공포영화, 공포 게임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호러 콘텐츠를 나름의 기준으로 정리해 나간다. 하우스 호러, 각종 괴생명체가 등장하는 크리처물과 좀비물, 고어 호러, 스페이스 호러, 시선과 물의 이미지를 활용한 공포 콘텐츠 등 주제별로 세분하여 분석하고 있어 호러 장르 입문서로서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비교적 새로이 등장한 규칙 괴담이라는 장르를 다루는 편에서는 호러 소설가인 작가가 직접 쓴 규칙 괴담도 에피소드처럼 한 편 담겨 있다. 관심 독자는 놓치지 말고 읽어보길 먼저 읽은 독자로서 권유한다. 많은 영감을 얻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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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소설가라서 그런지 스토리텔링이 굉장하다는 느낌을 독자는 받는다. 처음 소개한 '소파 귀신'부터 예사롭지 않더니 이후 호러를 분류하는 데서도 독자로서는 처음 듣는 단어들도 많은데 저자는 누구나 잘 아는 영화나 애니메이션, 캐릭터 등을 동원해 대입시켜 설명한다. 흥미롭고 이해가 제대로 된다. 독자들이 책을 덮을 때쯤에는 읽고 싶은 호러 소설, 보고 싶은 공포영화, 플레이하고 싶은 공포 게임 등 각종 호러 콘텐츠 위시 리스트가 마음속에 가득 쌓일 것으로 믿는다. 놀이공원 귀신의 집에 들어갈 때마다 소리를 꽥꽥 질러서 함께 간 친구가 다른 손님들에게 사과하게 만들지만, 팔다리 수십 개 달린 괴물 앞에서는 두 손을 마주 잡고 탄성을 지른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아아, 너무 멋지다!”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다음에 기회가 되면 군말 없이 또 가서 즐긴다. 놀라움과 소름이 돋고, 숨도 헉헉거리게 되지만 말이다. 누군가는 우리의 그런 모순적인 모습을 타박하고, 다른 누군가는 그렇게 무서워하면서 ‘호러 마니아’라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반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좋아하는 건 좋아하는 거다. 좋아하는 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부정해서도 안 된다.
무서워 죽을 지경이었다면서도 자신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나를 깜짝 놀라게 한 괴물의 위용이 얼마나 멋졌는지 신나게 이야기하는 저자의 모습은 조금 버릇없는 표현이지만 귀엽다. 그러면서도 호러 장르를 진지한 자세로 대하는 모습은 그 좋아하는 감정이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고 책을 쓰게 된 원동력이 됐다고 독자는 감히 추정한다. 억울하게 죽임당하고 누명까지 쓴 여성이 원귀가 되어 사또에게 해원(解?)을 부탁하였다는 아랑 설화. 이 이야기는 시대를 거듭하며 변천했고 그때마다 그 메시지 또한 변화하였다. 이 책은 아랑 설화의 변천을 되짚어가며 왜 귀신은 항상 여자였을지 궁금해하며 우리가 무서워하는 대상에 대하여 고민한다. 어린 시절 친구의 죽음 이후 또래 사이에 돌았던 괴담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깊이 반성하며 진지하게 질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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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진정 무서워해야 할 대상은 무엇이었을까?’ 당연한 일이다. 사랑에는 언제나 책임감이 따르는 법이니까. 이 책은 우리로 하여금 좋아하는 마음의 또 다른 형태를 발견하고 그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한다.
이상적이라는 건 알지만, 나는 그 모든 범죄와 사건이 그저 괴담으로 남을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지 않는 세상에서, 피해자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모두가 안전한 가운데 괴담을 읽으며 소름이 돋는 감각을 즐기고 싶다. 늦은 밤에 아무 걱정 없이 거리를 거닐고, 뒤따라오는 사람을 의식하지 않으며 걷고, 편한 마음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싶다. 뉴스에서 끔찍한 범죄 소식이 흘러나올 때마다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안전하기를 기도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괴담을 읽으며 편안한 마음으로 두려워하고 겁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괴담 속 일들이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가진 채로 덜덜 떨 수 있었으면 좋겠다.(p.165) - 「10. 사실은 사람이 제일 무서워」 중에서
저자 : 배예람
잔인하고 끔찍한 이야기를 즐겨 쓴다. 밤마다 침대에 누워 내일 무엇을 쓸지 상상만 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지독한 게으름뱅이. 게으름을 이겨 내고 한 줄이라도 쓰는 것이 매일매일의 목표. 2019년 안전가옥 앤솔로지 『대스타』에 수록된 「스타 이즈 본」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안온북스 ‘내러티브온’ 소설 편 『왜가리 클럽』에 수록된 「인어의 시간」을, 안전가옥 앤솔로지 『호러』에 수록된 「엔조이 시티전(傳)」을 썼다. 오래오래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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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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