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모든 새들
찰리 제인 앤더스 지음, 장호연 옮김 / 허블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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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사회란 다른 사람의 자유와 너의 속박 사이의 선택이야.” 이 소설 작품 『하늘은 모든 새들』은 멸망을 앞둔 지구 위, 인류를 구하기 위해 실험을 가속하는 과학기술자들과 그들로 인해 상처 입는 자연을 보호하려 인류를 멸하려는 마법사들의 전면전을 그리고 있다. 소녀와 소년의 사랑과 성장을 통해 세계의 공존 같은 심오하고 복잡한 문제부터 자아정체성이라는 내밀한 문제까지 밀도 있게 풀어내고 있다. 특이한 것은 문제들의 답을 찾는 과정에서 ‘페러그린’이라는 AI가 핵심적으로 기능한다는 점이다. 만화 주인공 같은 등장인물 설정이 화려한 색채를 자랑하는 판타지적인 첫인상을 선사하지만, 등장인물이 자아를 찾으며 느끼는 슬픔과 허무감을 표현하는 작가의 냉소적인 문장이 위화감 없이 조합되었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신선함을 풍기기도 한다.

인공지능 페러그린은 입력된 질문을 무한히 자동 학습하며 전 세계 단말기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는지를 볼 수 있게 됐고, 결국은 그만의 방법으로 인간과 마법사들에게 새로운 소통 방법이 있다는 것을 제시한다. 〈로스엔젤레스 타임스〉가 “마치 우리의 미래를 대비하라는 말처럼 읽히는 문장”이라고 평가한 이 소설은 약 10년 전에 쓰인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미래를 읽은 듯 지금의 우리를 주시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저자 찰리 제인 앤더스은 〈작가의 말〉을 통해 다소 생뚱맞은 창작 취지를 내보인다. 

"독자 여러분이 이 책을 즐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혹시 그러지 못했다면, 혹은 이해가 안 되거나 지나치게 생뚱맞은 대목이 있다고 생각되면 내게 이메일을 보내주시길. 내가 독자 여러분의 집으로 찾아가서 모든 것을 재연해 보일 테니까. 어쩌면 종이로 접은 손가락 인형들을 데려갈 수도 있을 것이다."(p.475) SF를 사랑하는 저자는 “나는 명확한 이분법에 직면할 때마다 항상 그것을 분해하고 복잡하게 뒤섞으려 한다. 어쩌면 그 안에 내재된 모순을 조화시키고 싶은 것 같다.”는 SF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이야기하고 있다.


“온 세상이 혼란에 휩싸이면 우리는 혼란의 전면에 나서야 해.” 마법과 과학, 자연과 기술, 감정과 이성··· 다른 방식으로 망가진 두 세계 속 인간과 마법사 사이에서 만들어진 AI의 목소리는 구원과 파멸 사이에서 독자들에게 갈등과 대립감을 확실하게 각인시킨다. 



퍼트리샤는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그처럼 거대하고 오래된 존재와 맞닥뜨리자 갑자기 자신의 문제가 하찮고 이기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아무래도 난 가짜 마녀 같아요.” 그녀가 말했다.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내 친구 로런스는 슈퍼컴퓨터도 만들고 타임머신과 광선총도 만들어요. 원할 때면 언제든 근사한 일이 벌어지게 할 수 있어요. 나는 어떤 근사한 일도 일으키지 못해요.”

“근사한 일이.” 나무는 세차게 몰아치는 모음과 덜거덕거리는 자음으로 말했다. “벌어지고 있다. 바로 지금.”

“맞아요.” 퍼트리샤는 또다시 얼굴이 달아올랐다. “확실히 멋진 일이죠. 정말로요. 하지만 이건 저절로 벌어진 일이잖아요. 내가 원해서 일어나도록 만든 일이 아니라요.”

“네 친구는 자연을 통제하려고 하지.” 나무는 단어 하나하나를 힘 주어 말했다. “마녀는 자연을 섬겨야 한다.”

“통제는 환상이야.” 나무가 말했다.(p.73)


마녀가 되어 동물과 대화하고 싶어 하는 순수함을 악마에 홀린 것으로 오해받는 소녀 퍼트리샤. 과학고 합격증을 혼자 타올 정도의 두뇌를 지녔지만 소심한 성격 탓에 반사회적인 어른으로 자랄 거라는 평을 받으며 병영학교에 강제 입학하게 된 로런스. 가족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한 두 어린이는 서로의 외로움을 알아보는데, 로런스가 퍼트리샤에게 자신이 만든 AI, ‘페러그린’을 우정의 증표로 선물할 정도로 둘의 사이는 가까워진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재회한 둘은 멸망 직전의 지구를 두고 정반대의 의견을 펼치며 충돌하기 시작한다.



로런스와 그의 동료 과학자들은 인류를 살리기 위해 지구를 버리고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려는 프로젝트를 꾀한다. 퍼트리샤가 속한 마녀 사회는 인간들 때문에 죽어가는 자연을 살리기 위해 인간 절멸 마법을 구상한다. 그사이 사랑에 빠진 퍼트리샤와 로런스는 무언가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만, 브레이크 없이 달리기 시작한 종말을 멈출 수 있는 해답은 보이지 않는다. 과연 이들은 함께 성장시킨 AI, 페러그린과 함께 어떤 결말을 맞이할까?

이 책을 번역 출판한 〈허블〉에 따르면 전통적인 성장 소설처럼 보이는 줄거리지만 찰리 제인 앤더스가 그리는 ‘성장’은 일반적인 궤도를 따라가지 않는다. 이는 관계라는 개념을 언제나 혼란 속에서 살아가는 소수자의 시점에서 서술하고자 하는 저자의 이력과도 관련되어 있다.


학교를 마치고 퍼트리샤는 침대에 걸터앉아 로런스의 슈퍼컴퓨터 CH@NG3M3에게 말을 걸었다. 요즘 매일 하는 일이었다. “부모님이 내가 살아 있는 한 절대로 숲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겠대. 그건 말이지, 내가 아무한테도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뜻이야. 학교에서는 모두가 나를 자해자, 미친 사람이라고 불러. 가끔 내가 정말로 미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그러면 견디기가 한결 쉬울 것 같아.”

“만약에 네가 미쳤다면, 미쳤다는 것을 어떻게 알지?” CH@NG3M3이 물었다.

“좋은 질문이네.” 퍼트리샤가 인정했다. “전적으로 믿는 사람이 있어야겠지. 그런 사람이 있으면 둘이서 같은 것을 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으니까.” 그녀는 주전자가 수놓인 누비이불 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엄지를 깨물었다.

“같은 것을 보지 않는다면?” CH@NG3M3이 물었다. “그럼 미친 거야?” 가끔 컴퓨터는 자신의 틀을 벗어던지고 퍼트리샤가 앞서 한 말을 살짝 바꿔서 돌려주곤 했다. 그러면 정말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p.84)



저자는 갈라진 세계, 다른 관점, 모순된 가치관 속에 등장인물을 던져넣고 결말을 지켜보는 작품을 주로 써왔다고 출판사 측은 밝힌다. 저자는 그동안 삶을 경험하는 방법으로 ‘마법’, ‘AI’, ‘기억’ 등의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며 독보적인 그만의 ‘성장’을 구축해 왔다는 것이다.

그의 데뷔작이자 람다 문학상을 받은 『성가대 소년Choir Boy』은 트렌스젠더 소년이 변성기에 대한 광기 어린 공포에 휩싸여 이를 피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휴고상을 받은 그의 두 번째 작품 「6개월, 사흘"Six Months, Three Days"」은 변할 수 없는 운명을 볼 수 있는 사람과 변할 수 있는 미래의 변곡점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서 벌어지는 갈등을 그린다. 개인적 성찰 그리고 개인 간의 이해를 그린 저자 찰리 제인 앤더스는 시선을 세계 범위로 넓힌 『하늘의 모든 새들』을 세 번째 작품으로 써내며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과 다른 나머지 사람들을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를 제시했다.

책을 번역한 역자 장호연은 〈옮긴이의 말〉에서 저자의 작가적 성향과 이 작품의 독창성을 높게 평가한다. "이런 장르소설은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를 선사한다. 현실에 없는 모습을 어떻게든 구현해 보여주는 영상물과 달리 책은 이를 우리의 상상에 맡긴다. 새가 말하고 컴퓨터가 말하고 웜홀 발생기가 부서지는 장면을 독자 스스로 상상하며 읽어야 한다. 독서는 곧 독자에게 많은 상상의 자유와 여지가 부여되며, 이런 경험은 상상력을 키우는 훈련이 된다. 이렇게 쌓은 훈련의 과정이 세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페러그린’과 통하는 면이 있다. 로런스의 침실 벽장 뒤에서 처음 만들어졌고, 사람들과 교류하며 학습하고 성장해 마침내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컴퓨터 말이다. 두 주인공이 페러그린과 말을 주고받는 대목은 어느 모로 보나 챗GPT를 떠올리게 한다. 페러그린이 기계적인 존재에서 감응적인 존재로 넘어가게 만든 결정적 계기가 있다. 바로 질문이다. 그 질문은 퍼트리샤가 어렸을 때 새에게서 받았던 질문이기도 하다. 평생 그녀의 마음속에 수수께끼처럼 남은 그 질문이다. 그러므로 이 질문은 자연과 기계를 이어줄 뿐만 아니라 두 주인공을 이어준다. 이렇듯 좋은 질문은 존재 - 사람은 물론 컴퓨터도 - 를 성장시킨다. 책도 충분히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 좋은 질문을 던져 세상을 경험하고 스스로 깨닫도록 만든다. 이 책은 좋은 질문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p.478~479)



『하늘의 모든 새들』은 사춘기에 걸린 것 같은 소설 작품이다.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채도 높은 자연의 정경과 이질적이지만 계산된 아름다움을 지닌 기계들을 생생히 묘사하며 날카로운 감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웨스 앤더슨이 SF에 흥미를 가진다면 이 소설을 각색하고 싶을 것이다”라는 평이 어울리는 선명한 묘사는 눈앞에 장면이 펼쳐지는 것 같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안정하고 미성숙한 주인공들의 내면을 적나라한 언어로 서술하며 진행되는 서사는 결말을 예측할 수 없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 것을 망가뜨려서는 안 됐어. 너한테 그러지 않았어야 했어.” 아무리 해도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이라는 존재를 그저 감내할 것인가, 혹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행동할 것인가. 완벽한 답은 존재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 버둥거리는 등장인물의 모습을 지켜보는 AI는 이런 인간들의 행동을 토대로 다시 학습하고, 분석을 다시 시작한다. 이 AI 성장의 구심이 된 한 가지 질문이 있다. “나무는 붉은가?” 이 질문은 퍼트리샤가 마녀 사회에 소속되기 위해 부여받은 궁극적인 과제이자, 지구를 ‘바위’라고 말하는 인간이 자연의 아주 작은 일부인 나무를 인지하게 만들며, 단순한 연산기기였던 슈퍼컴퓨터가 ‘페러그린’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찾게 했다. 이 한 가지 질문을 통해 자연과 과학이라는 두 세계를 설득력 있게 연결한 찰리 제인 앤더스는 독자에게도 한번 이 질문의 답을 고민해 볼 것을 권한다.

이 책은 아직 어른이 되지 않았다고 느끼는 어른을 위한 성장 소설이다. 찰리 제인 앤더스는 도서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사실 성장 소설에서 흔히 나오는, 과거의 악몽을 이겨내는 멋진 성장을 잘 경험하지 못한 채 어른이 된다”라고 언급했다. 유년기에 겪은 문제에 대한 답을 아직 찾지 못하고 어린 채 머물러 있는 독자들에게 『하늘의 모든 새들』은 위로를 건넨다. 명확한 정답을 찾는 것만이 인생은 아니며, 계속 고민하는 것이야말로 인생일지 모른다고.



“정말 인상적인 기계야.” 확실히 공학의 결정체에는 미적으로 아름답고 만족스러운 뭔가가 있었다. 반짝거리고 견고했다. 퍼트리샤는 발렌시아 스트리트의 힙한 갤러리에서 팔던 오래된 수동 타자기나 멋진 증기기관에서 느꼈던 것과 똑같은 애정을 이 기계에도 느꼈다. 이런 것들은 항상 망가졌고 더 나쁘게는 모든 것을 망쳤으므로 오만함의 산물이다. 하지만 로런스의 말처럼 이런 장치들은 우리를 유일무이한 존재로, 인간으로 만들어 준다. 거미가 거미줄을 만들듯 우리는 기계를 만들었다.(p.225)


저자 : 찰리 제인 앤더스(Charlie Jane Anders)


장편소설 『밤 한가운데의 도시(The City in the Middle of the Night)』를 썼다. 다른 저서로는 네뷸러상, 크로포드상, 로커스상 수상작인 『하늘의 모든 새들(All the Birds in the Sky)』, 람다상 수상작인 『성가대 소년(Choir Boy)』, 중편소설 『록 매닝, 버티다(Rock Manning Goes For Broke)』, 단편소설집 『육 개월, 사흘, 다른 다섯 편(Six Months, Three Days, Five Others)』이 있다. [토르닷컴], [보스턴 리뷰], [틴 하우스], [콘정션스], [판타지 앤드 사이언스 픽션], [와이어드 매거진], [슬레이트], [아시모프스], [라이트스피드] 등의 매체와 여러 작품 선집에도 단편소설을 기고한 바 있다. 단편소설 「육개월, 사흘(Six Months, Three Days)」로 휴고상을 수상했고, 「요금을 부과하지 않는다면 고소하지 않겠습니다(Don’t Press Charges And I Won’t Sue)」로 시어도어 스터전상을 수상했다. 조만간 새로운 단편소설집 『심지어 더 큰 실수(Even Greater Mistakes)』가 출간될 예정이다. 찰리 제인은 또한 매월 〈작가와 술 한잔(Writers With Drinks)〉 낭독 시리즈를 조직하고, 애널리 뉴위츠와 함께 팟캐스트 [우리 의견은 옳다(Our Opinions Are Correct)]를 공동 진행 중이다. 단편소설 「아메리카 끝에 있는 서점」으로 2020년 로커스상을 수상했다.


역자 : 장호연


1971년에 출생하여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음악학과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영국 뉴캐슬대학교에서 대중음악을 공부했다. 음악 동호회 얼트 바이러스에서 음악평론을 하면서 글쓰기를 시작해 웹진 [웨이브]에 음악평론을 기고했고 방송작가로도 활동했다. 현재 음악과 뇌과학, 문학 분야를 넘나드는 번역작가로 활약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얼트 문화와 록 음악 2』(공저), 『오프 더 레코드, 인디 록 파일』(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뇌의 왈츠』, 『뮤지코필리아』, 『인문학에게 뇌과학을 말하다』, 『낯선 땅 이방인』,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 『에릭 클랩튼』, 『레드 제플린』, 『거금 100만 달러』, 『라스베이거스의 공포와 혐오』,『과학으로 풀어보는 음악의 비밀』, 『긍정의 뇌』, 『지금까지 알고 있던 내 모습이 모두 가짜라면』, 『자연의 노래를 들어라』, 『클래식의 발견』 『이 레슨이 끝나지 않기를』 『스스로 치유하는 뇌』 『소리의 마음들』『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하워드 구달의 다시 쓰는 음악 이야기』 『고전적 양식』 『쇼스타코비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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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모른다면 인생을 논할 수 없다
김태환 지음 / 새벽녘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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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는 '철학'이란 단어가 몹시 생소했다. 산업화 시대 이야기다. 대학에 철학과는 있었지만 사회적 분위기나 취업 등을 생각하면 공대, 법대, 상대 등이 가장 인기 있었다. 물론 의대도 있었다. 그러나 의대는 무척 어려운 길이다. 사법고시(옛날에는 '고시'란 이름을 썼다)에 합격한 예비 법조인들만큼의 사회적 대우받았다. 당시 예비고사나 학력고사, 수학능력시험 등에서 일정 점수 이상이어야 할 정도로 우수 인재들만 가는 곳이다. 인문계가 가장 홀대 받았다. 당연히 산업화 과정에서 필요한 우수 인력을 뽑아야 했기에 취업이 쉽게 가능한 학과에 몰린다. 우수 학생이 문과에 가지 않는 것은 그때는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그중에서도 철학과는 정말 공부를 잘 못하는 사람들이 가는 학과로 치부했다. 그들은 학교 교사로 가려 해도 사실 철학이 고등학교 때까지는 교과목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쉽지 않았다. 기껏해야 〈국민윤리〉란 과목을 두고 동서양 철학자들의 이름만 소개할 정도다. 철학과는 졸업 후 취업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였다. 더욱이 철학과가 있는 대학에서는 학생 시위가 있을 때마다 철학과 학생들이 꼭 끼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세상이나 사회 돌아가는 것을 누구보다 더 신경 쓰는 학과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누구인가.”, “왜 살아야 하는가.”, “무엇이 옳은 삶인가.”

말이 철학이지 이런 문제를 다룰 만큼 사회의 변화는 한가하지 않았다. 당장 산업화에 기여하고, 돈도 빨리 벌어 출세해야 하는 사회 구조라서 철학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시대였다. 삶의 본질을 파고 들고, 인생을 논하는 철학은 무가치하고 쓸데없는 일을 한다는 느낌이었을까? 그러나 21세기 뉴밀레니엄에 들어설 무렵부터 철학의 중요성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이때는 우리나라 산업화와 민주화가 어느 정도 성과를 냈기에 철학이 대두된 것으로 독자의 막연한 추측일 뿐이다. 개인 소득도 전반적으로 높아졌다. 선진국 문턱이라고도 했다. 의식주가 해결돼야 '철학이 삶에 꼭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 것 같다. 두 가지 문제는 상당한 연관 관계가 있다고 느낀다.



이 책 『철학을 모른다면 인생을 논할 수 없다』는 고대에서 현대까지 27명의 철학자와 101개의 명언을 통해, 삶의 본질을 묻고 사유하도록 이끄는 철학서다. 소크라테스의 무지의 자각, 몽테뉴의 성찰, 니체의 초인 사상 등 시대를 초월한 철학자의 사유를 오늘날의 언어로 풀어내어, 독자들이 스스로의 철학을 세우고 삶을 단단히 다질 수 있도록 안내한다. 특히 단순한 읽기를 넘어 명언 필사와 사유 질문을 함께 담아, 책을 읽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내면의 철학을 완성할 수 있도록 구성한 편집진의 '촉'도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저자 김태환은 〈서문〉에서 철학이 삶에서 어떤 영향을 얼마나 끼치는지 '철학의 필요성'을 언급한다. "오랫동안 철학을 읽고, 배우고, 삶에 적용하려 애써왔다. 그 덕분에 불안과 흔들림 속에서도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고, 무너질 듯한 시절을 견디며 지금까지 걸어올 수 있었다"고 말한 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철학은 깊이 들여다볼수록 정답이 없고, 끝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고 밝힌다. 저자는 철학에는 완벽한 정답이 없다고 단언한다. 하지만 철학을 모르면 인생이라는 단어조차 공허하게 들린다. 철학은 스스로 무지함을 드러내지만, 바로 그 깨달음이 성장의 출발점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발전은 언제나 '나는 모른다'라는 자각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에는 27명의 철학자, 101개의 명언이 들어 있다. 숫자로는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수백 년을 건너온 삶의 고뇌와 지혜가 응축되어 있다고 독자들의 눈을 한 단계 올려놓는다. 흥미로운 건, 똑같은 주제를 두고 어떤 철학자는 A라고 말하고, 다른 철학자는 정반대인 B를 말한다. 또 철학자는 달라도 같은 뜻이 반복되기도 한다. 저자가 그 모순과 반복을 의도적으로 남겨둔 이유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철학은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는 학문이 아니라, 서로 다른 생각 속에서 스스로의 답을 길어 올리는 과정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독자들이 철학 책을 읽고 공부할 때 꼭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점을 제시한다. "철학자들의 가르침을 읽을 때는 그저 반듯한 말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반듯한 말일수록 실천은 어렵다. 그래서 반복해서 읽고, 마음에 새기고, 자기만의 언어로 다시 써야 한다. 좋은 문장을 읽는다고 삶이 단번에 변하지는 않는다."(p.7) 저자는 이어 책 곳곳에 필사란과 질문란을 따로 마련해 두었다. 마음에 울림을 주는 문장을 손으로 직접 옮겨 적으며, 그 속에서 더 오래 머물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손끝으로 적는 순간, 철학자의 문장은 독자들의 것이 되고, 질문은 독자들의 답을 찾아가는 길이 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다른 누구의 철학도 아닌 독자들만의 철학이 완성되는 것, 그것이 어떤 상황에서도 독자들을 지탱하는 뿌리가 되고, 길을 잃었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묻어나는 저자의 배려다.

이 책은 모두 4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나를 이해하는 철학 : 자기 인식과 존재의 탐구〉, 2장 〈타인과 함께 사는 철학 : 관계, 사랑, 책임에 관하여〉, 3장 〈삶의 태도를 말하는 철학 : 고통, 운명, 자유, 죽음에 대한 응답〉, 4장 〈세상을 바라보는 철학 : 정치, 사회, 권력, 자연에 대한 사유〉 등이다. 1장에는 「소크라테스」「르네 데카르트」「임마누엘 칸트」「장 폴 사르트르」「쇠렌 키르케고르」「블레즈 파스칼」「장자」「마르틴 부버」, 2장에는 「아리스토텔레스」「아르투어 쇼펜하우어」「장자크 루소」「바뤼흐 스피노자」「에리히 프롬」「공자」「마르틴 하이데거」를 다룬다. 3장에는 「프리드리히 니체」「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에픽테토스」「알베르 카뮈」「미셸 드 몽테뉴」, 마지막 4장에는 「플라톤」「존 로크」「노자」「레프 톨스토이」「에피쿠로스」「앙리 베르그송」이 각각 등장한다. 

저자는 독자들의 더 쉬운 이해를 돕기 위해 철학자들의 사상을 현대적으로 요약하고, 오늘의 언어로 재해석했다고 밝히고 있다. 철학자들의 언어를 마음 깊이 새기고 독자들만의 철학을 만든다면, 이전보다 삶이 훨씬 더 단단하고 풍요로워졌음을 문득 발견하는 기쁨을 맛보게 된다고 권유하고 있다.



서양 철학사 등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철학자는 '서양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소크라테스다. 이 책 역시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명언과 함께 소크라테스가 가장 먼저 소개된다. 철학 책을 한 번이라도 읽거나 TV 강의 등을 시청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출연하는 철학의 시조 소크라테스를 알 것이다. 그는 끊임없이 질문(대화)를 통해 지식과 진리를 탐구했다. 그가 사람들을 선동한다는 누명으로 법정에서 '사형'을 언도받았다. 당시 그의 제자들로부터 탈옥을 권유받았으나 "악법도 법이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독배를 마셨다는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누구나 아는 그의 간단한 프로필을 이 책은 설명한다. "소크라테스는 고대 아테네 출신의 철학자로, 서양 철학의 출발점이다. 그는 어떤 책도 남기지 않았지만, 아테네 거리에서 사람들과 나눈 대화를 통해 철학을 실천했다. 그는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며, 스스로의 무지함을 인정하고, 상대방에게도 그것을 자각하게 했다. 당시 아테네는 전쟁과 민주주의의 변화를 겪었고,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사회 속에서 진리와 올바름을 고민했다. 그 결과 그는 독배를 마시며 생을 마쳤고, 철학자로서 삶과 죽음 모두를 진지하게 마주한 인물로 남았다."(p.10)

저자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사람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하나의 중요한 진리를 발견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알고 있다고 믿고 있는 것들조차, 실제로는 모호하거나 불완전하다는 사실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무지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 평범한 사람보다 한 걸음 나아갔다. 그는 자만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무지를 인정함으로써 겸손이 최고의 지혜임을 알았다. 저자는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성숙한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한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나는 모른다"고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타인의 이야기를 더 잘 들을 수 있고, 더 겸손하게 배우게 된다는 점을 소크라테스로부터 얻을 수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저자는 또 소크라테스의 이 문장은 우리에게 묻는다고 밝힌다. "당신이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정말 아는 것인가? 아니면 익숙한 믿음일 뿐인가?"라는 질문이다. 내가 확신하는 신념, 옳다고 믿는 가치관 위에 다시 질문을 던질 수 있다면, 우리는 철학이 시작되는 첫 문단에 서 있는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 밖에 소크라테스의 말이라고 알려진 것 중에는 "너 자신을 알라"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를 바로잡는다. 이 짧은 문장은 고대 그리스 델포이 신전에 새겨진 말로, 소크라테스가 평생 붙들고 살아온 철학의 출발점이었다고 한다. 그는 인간이 완전한 삶을 살기 위해선 세상을 알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다고 늘상 말했다. 자신의 감정, 욕망, 두려움, 가치, 약점까지 철저히 직면하고 성찰할 수 있어야 비로소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몸소 실천했다고 저자는 전한다.

책에 따르면 우리는 종종 삶의 방향을 사회가 요구하는 길에 맡긴다.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고, 누군가와 결혼하고, 집을 사고, 자녀를 키우는 일련의 과정들을 '성공한 인생'이라 여긴다. 그러나 막상 원하는 것을 이루었을 때, 묘하게도 공허함이 찾아오는 순간을 맞이한다. 도대체 왜 그럴까? 그건 '내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온전한 나의 삶이 아니라 '누군가의 인생 시나리오'를 따라 살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호불호를 명확히 모른 채 살아간다. 무엇이 나를 설레게 하는지, 어떤 순간이 나를 답답하게 하는지, 어떤 말에 쉽게 상처를 받는지 모른 채 막연하게 산다. 이 모든 것이 '나'를 구성하는 요소들인데, 그것들을 들여다보는 대신 그냥 흘려보내며 사는 것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세상을 알기 전에, 너 자신을 알라."

저자의 해석이 이어진다. "그 말은 단순히 자기소개서를 잘 쓰라는 말이 아니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나'를 알려주는 단서들이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이 단지 살아 있는 것만으로 진정한 삶을 살고 있다고 보지 않았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삶의 방향을 묻고, 잘못을 성찰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간다운 삶이라 믿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하루를 살아가는 건 누구나 한다. 하지만 자신이 어떤 삶을 사는지 묻는 일은 아무나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지 않으면 남이 짜준 틀에 휩쓸려 살다가 어느 순간 자신이 누구였는지 모르게 된다고 저자는 경계한다. 

당신은 하루가 끝나고 침대에 누웠을 때,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돌아본 적이 있는가? 모종의 이유로, 스스로에게 소홀히 굴었던 순간들이 있지는 않은가? 저자의 질문에는 소크라테스의 답이 뒤를 잇는다. 소크라테스는 "반성 없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라고. 이 말은 지나간 삶이 가치 없다는 말이 아니다. 그 삶을 돌아보지 않으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되고 자신에게조차 무관심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경고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반성으로 자신을 자책하라는 말도 아니다. 반성을 통해 나를 더 잘 알고, '내면의 나침반'을 따라 더 나은 방향으로 한 발짝 나아가라는 의미라고 저자는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우리는누구나 실수한다. 하지만 반성은 실수를 삶의 재료로 바꾸고, 그 재료를 성장의 걸음으로 바꾸는 힘이 된다. 그래서 반성하는 삶은 아름답고, 반성하는 사람은 조금씩 내면이 단단해지고, 삶도 나아지게 된다는 것이 저자의 조언이다.

이 책은 27명의 위대한 철학자들이 등장한다. 저자는 그들의 철학을 단순하게 번역 소개하지 않는다. 당시 철학자들의 말한 격언 등을 중점적으로 다시 살펴본다. 그리고 시대적 배경이나 철학의 논리 등을 풍부하게 수집한다. 저자가 철학 지식과 사유를 바탕으로 탁월한 27명의 철학자들의 삶에서 그들은 무엇을 추구했는지를 정확하게 짚어 해석해준다. 독자들에게 철학자들의 언어를 자기 삶의 언어로 바꾸어내는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서다. 이 책이 단순한 철학 해설서가 아니다. 더 이상 누군가의 철학을 빌리지 않고, 오직 독자들 스스로의 철학이 완성되어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도록 돕기 위한 안내서다. 철학하기 좋은 계절, 우리가 그토록 애타게 바랐던 가을이다. 이 한 권의 책 『철학을 모른다면 인생을 논할 수 없다』를 추천한다.


저자 : 김태환(장문)


4년 전부터 SNS에서 꾸준히 글을 써오며, 현재는 약 5만 명의 팔로워에게 따뜻한 글을 전하고 있다. 또한 매월 평균 500만 명이 작가의 글을 보며 많은 공감과 위로를 받고 있다. 저자는 인생에서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질 때에도 부지런히 밝은 빛으로 채워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 역시 슬픔과 불행 대신 기쁨과 행복으로 삶을 가득 채워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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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인가요? - 정영진 인터뷰집
정영진.지승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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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방송인 정영진과 인터뷰어 지승호가 만났다. 『내 생각인가요?』는 대한민국의 사회, 문화, 정치까지 아우르며 묵직한 이슈를 다루는 경제전문 유튜브 〈삼프로 TV〉의 진행자 정영진과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가 인터뷰로 나눈 이야기를 책으로 엮었다. 지승호는 고(故) 신해철과의 인터뷰집 『신해철의 쾌변독설』을 시작으로 어림잡아 20권이 넘는 인터뷰집을 출간한 베테랑 인터뷰어다. 대한민국에서는 독보적이고 탁월한 전문 인터뷰어로 통한다. 「생각이 멈춘 시대에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다」란 제목의 〈서문〉에서 지승호는 선동·선전의 달인이라고 알려진 나치 독일의 국민계몽선전장관이었던 괴벨스의 말을 인용해 첫 문장을 대신한다. "선전의 가장 큰 적은 지성주의다." 오래된 경고처럼 들리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궤뚫는 냉정한 문장이라고 지승호는 설명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혼란과 대립으로 몰고 가는 가짜 뉴스, 정치 양극화에 따른 극한 대립을 염두에 두고 꺼낸 말인 듯하다. "누군가는 거짓을 생산하고, 누군가는 그것을 아무 의심 없이 옮긴다. 정치적 진영 논리와 감정적 확신은 진실보다 앞서고, 사람들은 생각보다 감정으로 말하고, 논리보다 구호로 싸운다."(p.5) 지금 우리 사회에서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는 음모론과 가짜 뉴스의 문제를 지적한다. 이 영향으로 대한민국 사회와 우리는 점점 더 사유의 언어를 잃어가고 있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언어를 잃지 않은 한 사람을 지승호는 떠올린다. 시사와 예능, 경제와 사회를 넘나들며 수많은 콘텐츠를 만들어온 기획자이자 진행자로 평가받는 정영진이다.

저자는 이 책 『내 생각인가요?』를 쓰기 위해 저자는 정영진을 사전 조사했으리라고 독자는 판단한다. 저자는 정영진을 '의심과 호기심, 합리적 이성으로 완성한 기획의 귀재'라 부르고 싶다고 털어놓는다. 그렇다면 정영진을 탁월한 기획자로 만든 요인은 무엇일까. 또 우리가 그에게서 배울 수 있는 점은 무엇일까? 그는 어떠한 생각과 철학으로 일을 할까? 그의 성장 배경은 어떠했고, 앞으로 꿈꾸는 크고 작은 희망은 무엇일까 등 여러가지가 궁금했다고 밝힌다. 저자는 인터뷰를 통해 궁금한 점을 이 책에 녹여냈다.



인터뷰어 지승호는 시사와 경제, 예능을 넘나들며 대중과 소통해온 방송인 정영진을 만나 ‘생각하는 삶’의 본질을 파헤친다. 지승호가 정영진을 인터뷰할 결심은 정영진이 최근 펴낸 책 『정영진의 시대유감』을 읽고 나서라고 말한다. 「나는 고발한다, 당신의 뻔한 생각을」이라는 부제를 가진 이 책에서 정영진은 "적당히 누구나 좋아할 법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조심하자. 이들이 사람들의 사고를 방해한다. 생각하는 사람들을 나쁜 사람으로 몰고 가는 정말 '나쁜' 사람이다. 생각하고 싸우자. 싸우고 또 생각하자. 생각이 끝나면 삶도 끝난다"라며 생각하는 삶을 강조했다고 한다. 이런 그의 지론은, 지승호가 만나 인터뷰한 이번 책에서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정영진은 생각하는 삶을 위해서는 의심과 호기심, 합리적 이성이 필요하다는 게 지론이고 신념이나 보다. 심지어 정영진은 남의 말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각까지 의심해야 한다고 말한다는 것. 그가 가진 진짜 힘은 생각을 잘하는 데 있다고 지승호는 강조한다. 

〈서문〉에 따르면 그(정영진)의 말은 단정하되, 단순하지 않다. 논리적이되, 딱딱하지 않다. 그의 말끝에는 사람에 대한 존중, 그리고 사회에 대한 냉정한 애정이 배어 있다. 그는 사람을 '판단'하기보다 '이해'하려 노력하고, 생각을 주입하기보다 함께 질문하려는 태도를 가진 사람이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저자는 그가 왜 그런 사람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의 가족 이야기, 방송 밖의 삶, 그리고 콘텐츠를 넘어선 생각의 결까지, 그 모든 이야기 속에서 저자는 생각이 사라져가는 시대를 버티는 한 사람의 신중한 태도를 발견했다고 귀띔한다. 저자가 이 책에 정영진 스스로 말하기엔 민망할 법한 SNS 채널 성공담, "유튜브, 이렇게 하면 실패합니다" 등의 답변을 끌어낸 그의 조언들, 윤석열 탄핵과 트럼프의 정치외교에 대한 한국의 외교 대응법, 우리나라의 여러 사회 경제 문제 등을 담았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은 모두 4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의심하라, 끊임없이 자문하라〉, 2부 〈실패에 가혹한 풍토〉, 3부 〈세상과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필요하다〉, 4부 〈왜 젊은이들이 우울할까?〉 등이다.



이 책은 정치, 언론, 경제, 사회, 개인적 성찰까지 깊이 있는 대화를 풀어놓는다. 대통령 후보와의 대담 뒷이야기, 〈삼프로 TV〉의 성공 전략, 가짜 뉴스와 정치 양극화, 그리고 유튜브 운영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기준까지? 겉만 스치는 정보가 아닌, 생각의 근육을 단련하는 대화가 펼쳐진다. 독자들은 정영진의 솔직하고도 예리한 시선, 그리고 지승호의 집요한 호기심이 교차하며, 우리는 ‘생각의 주권’을 되찾는 여정을 책과 함께 시작할 수 있다. 결혼제도의 문제, 의대 열풍, 온라인 댓글 문화, 자영업 현실 등을 소재로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짚어낸다.

이 과정에서 책 속에는 건질 말들이 풍성하다. 몇 가지만 꼽자면 "생각이 멈춘 시대에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라" "이 생각, 정말 나의 것인가?" "적정 성공에 관한 다양한 기준이 생겨야 한다" 등이다. 저자는 '세상과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필요하다'편에서 작가로서의 성장과 직업적 궤적을 회고한다. 새벽 독서 습관, 방송과 유학 경험, 팟캐스트 창작, 동료와의 협업을 통해 형성된 시선이 드러난다. 누군가의 목소리를 빌린 말이 아닌, 나의 말로 세상과 대화하는 법을 다룬, 이 책 『내 생각인가요?』는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되찾는 지적 자극제가 되어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말 속에 살지만, 그중 어느 정도가 나의 말이며, 나의 생각일까?를 고민해본 적이 있는가? 누군가의 주장과 목소리를 빌려 말하는 동안 우리는 어느새 생각의 주인인 나 스스로를 잃어 가고 있지는 않은가? 이 책은 우리에게 정직하고도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시사와 경제, 예능 등을 종횡무진하며 날카로운 시선으로 현실을 비추는 정영진, 그리고 한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인터뷰해 온 질문가 지승호가 네 번의 계절처럼 굽이치는 대화 속에서 사유의 온기와 날선 이성을 동시에 건넨다.



1부 〈의심하라, 끊임없이 자문하라〉 가운데 「지도층이라면 책임감을 가져야」란 소제목의 글이 눈에 띈다. 아무래도 요즘 대한민국은 아직 계엄령의 안 좋은 추억에서 벗어나지 못학로 있는 듯하다. 어쩌면 구속과 불구속을 오가고, 당선된 대통령도 하마터면 대선 후보로 선거운동을 하다가 중도 하차할 뻔한 일도 있어서일까. 새 대통령이 선출되고 정국이 안정될 거라 기대했던 독자가 어리석었을까? 공약으로 내세웠던 검찰, 사법 개혁이 쉽지 않은 것을 계엄의 밤만큼 똑똑히 눈으로 보고 알게 됐다는 점도 독자의 정치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더욱이 제1 야당의 새 대표와 지도부가 구성돼 계엄령과 탄핵을 넘어 정통 보수로서의 역할을 다함으로써 건강한 정국 안정이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이 너무 컸을까? 제 1양당에 대한 기대가 지나쳤을까? 야당은 '극우'를 벗어나지 못하고 반목과 상대에 대한 적대적 감정이 난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몇 해 전 대통령 후보 토론장에서 느낀 허탈감과 실망감, 유튜브 성공의 진짜 비밀, 가짜 뉴스와 정치 양극화의 그림자, 그리고 ‘내 생각’을 만드는 법까지. 거침없이 담아내는 이 책은 하나의 거대한 거울이다. 그 거울 앞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생각, 정말 나의 것인가?” 생각이 사라지는 시대를 건너는 법, 그 답을 찾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은 날카로운 나침반이자 든든한 동행이 된다. 

책 속의 이야기 일부를 여기에 옮겨 본다. 

지승호: 그런데 오늘(2025년 3월 7일) 오다 보니까 속보가 떴지 않습니까? 윤석열 대통령 구속이 취소됐는데 그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정영진: 제가 사실 그 판결에 대한 정확한 워딩을 다 읽지는 못했는데요. 법적인 것이기 때문에 일단 우리 법체계에서 사는 우리들로서는 그 판단에 대해 존중은 당연히 해야 될 것 같기는 하고요. 다만 그 법적 판단을 빼고 우리의 정치 지형이나 아니면 지금 현재 국민들의 여론이 쪼개진 거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대단히 큰 혼란이 다음 주 내내 이어질 가능성이 좀 크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탄핵심판에 영향을 주지 않을 거라고는 하지만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인식이 꽤 많이 다를 것 같긴 하거든요. 이대로 가면 이거 구속도 취소되고 탄핵도 혹시 안 되는 거 아닌가 이런 등등의 생각도 하실 수도 있고요. (중략) 어쩌면 민주주의라는 거를 우리가 그냥 너무 손쉽게는 아닙니다만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에 비해서 에너지를 덜 썼던 게 이런 식으로 하나씩 하나씩 오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긴 하고요. 만약에 판사가 이런 혼란까지 고려를 좀 했다면, 이런 결정을 내리는 거는 조금 성급하지 않았을까 싶죠. 

지승호: 사실은 탄핵이 인용이 되든 아니면 기각이 되든 양쪽 다 승복을 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거든요.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 유튜브나 SNS로 인한 편향성이나 편 가르기가 더 심해지고 있다고 지적을 하셨는데요.

정영진: 맞습니다. 예전에 젠더 갈등이 굉장히 심할 때 이런저런 데 나가서 했던 얘기 중 하나가 이건데요. 그게 한 2016년 아니면 17, 18년 이쯤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때 사람드이 너무 SNS 같은 걸 많이 쓰면서 읽게 되는 글의 길이가 굉장히 짧아지고 사람들의 생각과 판단의 길이도 역시 마찬가지로 비례해서 짧아진다는 생각을 했거든요.(p.31~32)

이 대목보다 더 눈길을 끌었던 것은 「고민이 없어 보였던 어느 대통령 후보」란 소제목의 글이다.

지승호: 검증 얘기 나오니까 지난 번 대선 후보 토론이 생각나는데요. 그때 말씀하시기로는 한 분은 되게 적극적이었고 한 분은 좀 섭외가 어려웠다고 했는데 적극적이었던 쪽은 이재명 후보였을 것 같고요.(웃음)

정영진: 예, 그렇죠.

지승호: 토론하시면서 어떤 점을 느끼셨나요?

정영진: (···) 한 분은 얘기하면서 저희가 물어보는 거에 대해서 깊은 고민이 없었다는 걸 직감했어요. 대통령이 꼭 모든 분야를 다 잘 알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대통령을 하겠다면 고민은 있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을 하거든요. 어떤 경제 이슈든, 뭐에 대해서도 참 고민이 별로 없으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래도 되나 싶은 생각은 들었는데, 문제는 그분은 그 대답에 스스로 너무 만족해 하시는 것 같더라구요.(웃음)


저자는 인터뷰를 끝내면서 「사유의 온기와 사람의 향기를 지닌 이성」이란 제목의 〈후기〉에서 정영진의 성격이나 인생관, 가치관 등을 모두 담아 설명한다. "말이 넘치는 시대입니다. 우리는 모두 어떤 말의 소비자이자 생산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영진님의 말은 달랐습니다. 그의 말들은 끊임없이 의심하고, 반추하며, 책임을 감당하려는 사람의 언어였습니다."(p.294)

이 책 마지막에 쓴 헤밍웨이의 말은 감동적이다. "타인보다 우월한 건 고귀한 게 아니다. 진정 고귀한 건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는 것이다"라고 한 말을 인용한다. 우리는 남보다 좋은 명품을 사고, 큰 차를 타고, 큰 집을 가지는 것을 우월하다고 착각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저자 : 정영진


영화 해리포터의 주인공과 꼭 닮았다고 해서 한국의 해리포터라 불린다. 방송 리포터인 그는 그 말을 '호그와트의 해리포터'처럼 도전하는 리포터로 해석하며 그의 애칭을 즐긴다. MBC '생방송 오늘 아침', SBS 라디오 '뉴스엔조이' 에서 각각 시사리포터와 시사강태공으로 활약하고 MBC '생방송 화제집중', '톡톡톡 오후2시', KBS '세상의 아침', YTN, 한국경제TV 등에 UCC 진행자와 리포터로 소개되기도 했다. 그러던 중 그는 돌연 잘 나가던 방송 리포터를 그만두고 유학길에 올라 또 한 번 삶의 터닝포인트를 만든다.

FM적인 길을 걸어가지 않더라도 꿈을 잃지 않고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고 믿는 그는 '도전을 시작하는 즐거움(도시락)'을 제대로 아는 젊은이다. 충남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후 방송인으로 TV와 뉴미디어에서 폭넓게 활동 중이다. 특히 〈삼프로TV〉, 〈매불쇼〉 등에서 활약했으며, 유튜브 채널 〈보다 BODA〉에서 진행하는 ‘과학을 보다’에 사회자로 고정 출연해 과학자들과 유쾌한 과학 수다를 떨고 있다. 팟캐스트와 유튜브에서 특히 왕성하게 활동한다.


저자 : 지승호


25년 가까이 인터뷰만 생각하고, 인터뷰 글을 써왔고, 꽤 많은 인터뷰 책을 냈습니다. 아마 조금이라도 더 유능했다면, 다른 길을 찾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인터뷰 일 외에는 크게 관심이 가는 일도 없고, 워낙 무능해서 어쩔 수 없이 한 길을 파온 인터뷰 인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해철님과는 결국 인터뷰로 인연을 맺어서 인터뷰로 결론지어지는 그런 관계네요. 제 첫 인터뷰이이기도 하고, 저를 인터뷰라는 세계와 운명적으로 만나게 해준 사람이 마왕이기도 합니다. 이제 더 이상 그를 만나 인터뷰를 할 수가 없네요. 그래도 사람 살기 좋은 세상을 위한 기록을 조금이라고 더 남기려고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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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의 어깨에서 사회와 힘을 묻다 거인의 어깨에서 묻다 철학 3부작
벤진 리드 지음, 진승혁 기획 / 자이언톡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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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카페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 『거인의 어깨에서 사회와 힘을 묻다』는 출판사 〈자이언톡〉 철학 3부작 중 하나로 「사회와 힘」의 문제를 다룬다. 1부 『거인의 어깨에서 존재와 참을 묻다』, 2부 『거인의 어깨에서 인간과 삶을 묻다』에 이은 3부에 해당된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서, 의식과 삶 자체가 사회로부터 강하게 영향을 받는다. 또한 인간은 사회적 참여와 실천을 통해 자신의 삶을 실현한다. 〈자이언톡〉은 인류 지성의 위대한 유산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대중과 공유하는 동시에, 미래의 디지털 휴먼 메타버스를 위한 핵심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해 기획했다. 〈자이언톡〉에 따르면 철학, 실천, 문학과 예술, 학문, 역사 분야에 걸친 방대한 시리즈를 기획했고, 그 대장정의 서막을 여는 것이 바로 이 '철학 3부작'이다. 

기획자 겸 발행인 진승혁은 「거인의 어깨 너머, 디지털 불멸의 지혜를 향하여」란 제목의 〈간행사〉를 통해 왜 철학 분야에서 시작하는가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존재와 참, 사회와 힘, 인간과 삶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야말로 인류 사유의 뿌리이자 줄기이며, 우리가 마주한 현재와 미래의 복잡한 문제들을 헤쳐 나갈 지혜의 원천이라고 믿기 때문"이라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동서고금의 철학자, 종교가, 과학자 등 179명의 사상가들을 엄선하여, 그들의 핵심적인 사유와 생애를 깊이 있게 탐구하고 현대적인 의미를 조명한다. 특히 이번 기획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기획팀, 그리고 쳇지피티, 제미니, 딥시크 등 다양한 인공지능 모델들이 하나의 팀처럼 협업했다는 점이 독창적이다. 발행인 진승혁은 "인공지능은 방대한 자료 조사와 초기 논점 정리에서 놀라운 효율성을 보여주었다"며 "하지만 인공지능이 쏟아내는 정보의 파편들을 꿰어 의미 있는 맥락을 만들고, 사상의 깊이를 탐색하며, 비판적 시각으로 오류를 걸러내고, 최종적으로 독자들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재구성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 전문가들의 몫이었다."고 털어놓는다.



이 책 『거인의 어깨에서 사회와 힘을 묻다』는 인류가 사회를 구성하고 질서가 탄생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21세기 흔들리는 민주주의적 가치 속에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현재까지 역사적 흐름과 사유의 성격을 고려하여 모두 15장의 '생각덩어리'로 구성되었다. 각 장은 일정한 역사적 흐름을 따라 구성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인류의 사유 속에서 주로 ‘사회와 힘’에 관련한 ‘본질적 질문들’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상세하게 정리하면 쉬워진다는 것을 이번에 글을 쓰면서 깨달았다고 저자 '벤진리드'는 「해체와 충돌의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인의 어깨’」라는 제목의 〈서문〉에서 밝힌다. 철학적 사유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대체로 해당 철학적 사유를 쉽게 설명한다고 피상적으로 표면적으로 다루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 책을 준비하면서 절실하게 느꼈다고 털어놓는다. 철학을 어렵지 않으면서도 깊이 있게 사유하는 방식은 가능하다. 이 책은 그 가능성을 현실화하기 위해 집필했다.

〈서문〉에 따르면 우리는 지금 혼돈의 시대, 경계가 무너지고 질서가 흔들리는 세상에 서 있다. 전쟁의 그림자가 세계 곳곳을 덮치고 있고, 글로벌 무역전쟁은 세계 질서를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 민주주의 선진국으로 여겨졌던 나라들에서 정치적 양극화와 극단적 포퓰리즘이 만연하고, 한국에서는 충격적인 계엄 선포와 내전에 가까운 정치적 대립을 겪으며 민주주의가 중대한 시험대에 오르기도 했다. 인공지능을 둘러싼 국가 주권의 문제가 제기되고, 빅테크 기업들의 데이터 기반 디지털 권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 팬데믹과 기후 위기는 전 세계적으로 기저를 흔들며 우리의 삶은 한층 더 불확실하고 불안한 상황에 놓였다. 국가의 미래와 글로벌 공동체의 운명도 자욱한 안개 속에서 한 치 앞을 내다보기가 어렵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이 모든 혼란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으며, 우리의 미래는 과연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이 책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여정이다. 혼돈 속에서 더 깊이 있는 시선을 갖추기 위해, 우리는 시대를 앞서 고민한 사상가, 즉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야 한다.



저자는 세상은 거대한 흐름으로 보고, 보이지 않는 힘들이 우리의 삶을 밀고 당긴다고 말한다. 권력은 우리가 일하는 방식, 소비하는 패턴, 사고의 틀마저 결정한다. 사회는 개인을 만든다. 우리가 어떤 시대와 환경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기회와 선택지는 달라진다. 문제는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우리가 수동적 존재로 머물 것인가, 아니면 흐름을 이해하고 스스로 방향을 설정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우리는 종종 '정치'가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 반대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정치적 선택은 우리의 삶을 가장 직접적으로 뒤흔든다. 어떤 세상이 정의로운가, 어떤 질서가 공정한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이 모든 질문들은 정치적 신념과 맞닿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신념의 형성과 유지와 변화이고 그 신념에 대한 이해와 선택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책에 따르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익숙한 것을 받아들이고, 내가 속한 사회적 환경과 미디어, 교육을 통해 사고방식을 구축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시대는 변하고, 권력의 형태는 달라지며, 기존의 상식은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 내 신념이 단단하면서도 유연하려면, 다양한 생각들을 접하고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동의하지 않는 의견이라도 한 번은 들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진짜로 원하는 사회가 무엇인지 고민하기 위해서다. 

게다고 현대는 진실하지 않는 시대이고 많은 주장들이 강한 어조로 충돌하는 시대이다. 너무나 투명하고 너무나 풍부하며 너무나 생생한 정보들이 흘러다니지만, 그럴 수록 우리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진짜 나에게 도움이 되고 해가 되는지를 알기 쉽지 않다. 시대를 관통해 권력과 사회를 고민한 인류 역사 속 거인들의 사유를 통해, 우리는 보다 넓고 깊은 시야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누가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를 이해하고 변화의 원리를 읽어내는 힘을 기르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첫걸음이다.



우리에겐 지금 단단한 신념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누가 뭐라 해도 흔들리지 않는 완고함이 아니라, 스스로 따져보고 책임지는 태도에서 비롯된 신념을 말한다. 이런 신념은 낯선 생각을 밀어내는 방패가 아니라, 그 생각을 이해하고 들을 수 있는 내면의 여유를 만들어준다고 저자는 믿는다. 그제야 우리는 나와 다른 입장을 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질문하고 반응하며 관용이라는 태도를 실천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모두 15개의 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앞서 '생각덩어리'로 언급) 0장 〈사회의 탄생: 인간은 왜 어떻게 함께 살게 되었는가?〉, 1장 〈권좌: 권력은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사라지는가?〉, 2장 〈권좌: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사라지는가?〉 3장 〈유토피아: 자유와 평등〉, 4장 〈국가와 사회: 어떻게 구성되고, 어떻게 변화하는가?〉, 5장 〈시장과 국가: 정보와 가격과 혁신〉, 6장 〈세계 : 어떻게 움직이는가?〉, 7장 〈이데올로기와 공론장: 대화는 가능한가?〉, 8장 〈지식과 미디어: 생각의 지배자들〉, 9장 〈통제와 배제 : 현대의 재생산〉, 10장 〈정의: 영원한 꿈〉, 11장 〈인정과 정체성: 누구이며,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 12장 〈연결: 새로운 행위자와 힘의 등장〉, 13장 〈민주주의: 위기와 극복〉, 14장 〈민주주의 너머: 새로운 대안을 찾아서〉 등이다.

독자가 나름대로 핵심어를 찾아본다. 좀 더 오래 기억에 남길 생각에서다. '사회' '권력' '자유' '평등' '시장' '국가' '세계' '공론' '지식' '미디어' '민주주의' 등이다. 사회는 인간 존재의 활동영역이며 사고와 행동이라는 씨줄, 날줄이 얽히고설켜 만들어진 삶의 인프라이다. 거인들의 사유와는 달리 나, 우리의 생각은 어떠한지를 되돌아보고 사유하는 것을 돕는게 이 책이 독자들에게 주고 싶은 선물이지 싶다. 특이하게 이 책의 첫 장은 '0'장이다. 「사회의 탄생」을 다룬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어떻게 함께 살게 되었을까? 0장의 전체 내용을 아우르는 저자의 주해(註解)가 달려 있다.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사회'는 법과 국가, 시장과 권력, 제도와 규범, 문화와 이데올로기 등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기원은 훨씬 더 오래된 시간의 층위에 놓여 있다. 이 '기원'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사회철학적 어떤 사유도 허공 위의 설계일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런 측면에서 이 책의 서장(序文) 형식으로 제'0'장을 만들어 인간 사회의 기원에 대한 최신 연구들을 탐색해 본다.



0장에서는 토마셀로(1950~ )의 '공유 의도성', 헨리(1968~ )의 '문화적 학습 기계', 보엠(1931~2021)의 '역지배계층', 하라리(1976~ )의 '허구'는 각각, 그리고 함께 '사회'에 대한 철학적 탐구의 출발점을 제공한다. 0장에 등장하는 인물 중 「허구는 어떻게 집단을 탄생시키는가?」라는 제목의 '하라리'를 만나본다. 하라리는 "우리는 성서의 창조 이야기, 호주 원주민의 꿈의 시간 신화, 현대 국가들의 민족주의 신화 같은 공통의 신화를 직조할 수 있다. 이러한 신화는 사피엔스에게 유연하고 대규모로 협력할 수 있는 전례 없는 능력을 부여했다."고 그의 저서 『사피엔스』(2011)에서 역설했다. 

저자의 설명이 이어진다. "인류는 지구상의 다른 어떤 동물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유연한 규모로 협력하는 능력을 보여준다. 개미나 벌과 같은 사회적 곤충은 혈연관계와 본능에 기반한 경직된 협력을 보이며, 침팬지와 같은 유인원은 소규모 집단 내에서의 직접적인 상호작용을 넘어서기 어렵다. 무엇이 인간, 사피엔스로 하여금 수많은 낯선 사람들과 함께 도시를 건설하고, 국가를 운영하며, 전 지구적인 교역망을 구축하게 만들었을까? 생물학적으로 인간의 뇌는 그렇게 설계되어 있지 않다. 인지과학자 로빈 던바(1947~ )는 인간이 직접적으로 사회적 유대와 신뢰를 유지할 수 있는 집단의 최대 크기를 약 150명이라고 추정했다. 이를 넘어서는 관계는 신뢰 기반보다는 기호, 규범, 제도와 같은 상징 체계를 필요로 한다. 바로 이 지점을 돌파하게 한 것이,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노아 하라리가 말하는 '허구'의 힘인 것이다."(p.35)

저자는 두 가지로 나눠 히라리의 '허구'에 대해 설명한다. ① 인지 혁명: 상상력의 도약과 허구의 탄생 ② 현실을 지배하는 것은 이야기다 "수많은 낯선 사람들이 협력할 수 있는 것은 공통된 허구를 믿기 때문이다." 유발 하라리는 공통된 허구를 믿는, '상상력의 진화'라는 인지적 전환의 결과로 재구성했다고 저자는 보고 있다. 저자는 『사피엔스』에서 약 7만 년 전 발생한 '인지 혁명'은 호모 사피엔스를 동물적 존재에서 문화적·사회적 존재로 탈바꿈시킨 결정적 계기였다는 서술에 공감한다. 인간이 '허구'를 창조하고 그것을 집단적으로 믿고 행위하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는 점을 하라리와 저자는 강조한다. 법, 종교, 국가는 허구이며, 그러나 그 허구가 수백만 명을 하나로 묶을 수 있었다. 하라리는 이를 '상상의 공동체'라고 정의한다. 그 외의 '법'과 '인권' 역시 허구라고 말한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명제는 생물학적으로 증명될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함께 믿는 순간, 그것은 헌법이 되고, 사법 시스템이 되고, 국제 인권 조약이 된다. 즉 현대 사회는 허구를 법적으로 구조화하고 제도화함으로써 그것에 현실성을 부여하는 매커니즘 위에 서 있다. 또 하나의 가설 ②에 대 "두 사람이 같은 신을 믿고, 같은 국기를 존중하며, 같은 법률에 동의할 때, 그들은 하나의 집단이 된다"에도 공통된 의견을 보이는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서 히라리와 저자는 "사회란 더 이상 인간 군집이나 법·제도의 집합만은 아니다. 그것은 의미가 공유되고, 존재가 이야기되고, 질서가 서사화되는 상상적 공동체의 결과물이다. 즉 인간은 허구를 통해 정체성을 만들고, 그것을 통해 자신이 속한 사회적 현실을 정의한다. 이는 도덕과 질서, 권력과 이념, 심지어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들조차도 정치적 상상력의 산물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한다. 하라리는 현실을 물질적 기반이 아니라 이야기에 의해 재정의하고, 신념이 실재를 만든다는 전환적 관점을 제시한다. 이 책은 62명의 '위대한 인물'들에 대해 저자가 15개 카테고리를 만들어 위대한 인물의 저서와 사상을 바탕으로 분류했다. 이 책의 독창성과 탁월한 인식 능력이 돋보이는 지점이다.

 

저자 : 벤진 리드(Benjin Reed)


벤진 리드는 철학과 기술의 접점을 탐구하며, 인류의 사유가 어떻게 변화하고 확장될 수 있는지를 연구하는 사상가이자 실천가다. 대학에서 미학을 전공한 그는, 이후 IT 교육과 패턴 검색 AI 분야에서 활동하며 철학적 탐구를 기술적 현실과 결합시키는 독창적인 경로를 걸어왔다. 철학적 사유가 단순한 개념적 논의에 머무르지 않고, 기술과 결합하여 새로운 형태의 인간 경험을 창출할 수 있다고 믿었던 그는 21세기 인공지능(AI)의 발전이 인간 존재의 본질을 변화시킬 것이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연구를 이어왔다.

벤진 리드가 주도하는 ‘자이언톡(giantalk, 위대한 대화) 프로젝트는 인류 역사 속 거인들의 사유를 디지털 휴먼 기술과 결합하여 새로운 형태의 지적 대화를 가능하게 하려는 시도이다. 이 프로젝트는 일차로 인류의 역사를 통해 사유와 실천의 전 영역에서 위대한 거인들의 사유를 복원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인문학적 콘텐츠를 구축 중이며, ‘거인의 어깨에서 묻다’ 철학 3부작은 이 프로젝트 팀의 첫 번째 결과물이다.


기획 : 진승혁


본 프로젝트의 기획자이자 제1저자로 참여하고 있는 진승혁은 인공지능(AI) 기반 디지털 휴먼 기술 스타트업인 클레온(KLEON)을 창업하고 현재 대표이사(CEO)로 일하고 있다. 세종과고를 졸업하였고, 대학 시절부터 다양한 IT 기업을 창업한 바 있으며, 2018년 디지털 휴먼 솔루션 기업 클레온을 창업하여, 현재 미국 세너제이에서 주로 일하고 있다. 클레온을 통해 ‘시공간을 뛰어넘는 소통의 혁신’을 꿈꾸며, 특히 본 자이언톡 프로젝트를통해 인류 역사의 사유의 거인들을 디지털휴먼으로 복원하여 살아있는 인류와의 소통이 가능한 메타버스를 추진 중이다. 본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발기하였으며, 저자로도 적극 참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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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용사의 쓸모 - 어른의 삶을 다채롭게 만드는 66개의 단어들
김범준 지음 / 한빛비즈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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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 『형용사의 쓸모』는 우리 시대 '어른'에 대한 이야기다. 어른이란 한글대사전에서 ①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의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주로 스무 살 이상의 사람을 통틀어 이른다. ② 지위나 나이, 항렬이 자기보다 높은 사람. ③ 남의 아버지를 조금 높여 이르는 말로 풀이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①과 ②의 뜻을 합친 뜻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렇다고 어떤 사람이 '어른'이냐는 것을 가리는 것은 아니다. '어른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를 위해 어른이 갖춰야 할 66개의 형용사를 갖고 어른의 조건, 자격 등을 이야기한다. 어른의 삶을 다채롭게 만드는 66개의 형용사에 대한 정의와 일상적 어휘에 대한 새롭게 풀이한다.

출판사 〈한빛비즈〉 소개글에 따르면 보통 인생을 흰 도화지에 비유하곤 한다. 무엇을 그리는가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는 것. 하지만 아름다운 그림은 ‘무엇’을 그리는가만큼이나 ‘어떻게’ 그리는지가 중요하다. 밑그림이 조금 부족해도 다채로운 색깔을 조화롭게 사용할 때 훨씬 아름답게 보인다. 인생에 무엇을 그릴지를 고민하는 것이 ‘명사’형 인생이라면 어떻게 그릴지 고민하는 것은 ‘형용사’형 인생이다.

저자 김범준은 인생에서 실패를 마주했을 때 그다음 결과를 반전시키는 방식으로 성공을 만들어 냈다고 한다. 행정고시에는 실패했지만 돈을 벌어 사람 구실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도전한 취업 시장에서 대기업에 입사한 것처럼. 방향을 바꾸는 건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좌절하거나 인생이 망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 이유를 두고 사실 자기 꿈과 목표는 사무관 같은 직업의 이름이 아니라 ‘괜찮은’ 어른이라는 형용사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누구라도 명사가 아닌 형용사를 목표로 삼으면 쉽게 좌절하지 않는다고. 이로 인해 저자는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66개의 형용사를 골라 “끊임없이 배우는 어른”, “존경받는 어른”, “활기찬 삶을 사는 어른”,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어른”, “따뜻한 영향력을 끼치는 어른”이라는 주제에 맞게 분류했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은 보통 일상에서 막연하게 알고 있던 어휘의 뜻을 사전적 정의로 정확하게 설명하고 자신만의 정의를 덧붙인다. 비슷한 의미이지만 미묘하게 다른 뉘앙스의 단어들, 동음이의어, 한자가 다른 어휘의 의미 차이 등을 설명해 독자들에게 어휘에 대한 깊은 이해를 전달하기도 한다. 그리고 소통의 전문가가 되려면 적어도 풍부한 어휘력과 단어의 뜻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듣는 사람에게 더 쉽게 이해시키려고 비유법이나 수식어 사용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차적인 명확한 단어의 뜻을 알고 필요할 때 적확한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 자신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언어나 꾸미기 위한 불필요한 단어 사용은 오히려 듣는 사람의 이해를 저하시킨다. 

저자는 이 책에서 소통을 위한 형용사보다는 '어른'을 위한(어른을 정확하게 수식할 수 있는) 형용사 66개를 선정 풀이하고 있다. 어른이 되기 위한 자격에 해당하는 형용사 모음집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저자는 커뮤니케이션답게 자신의 경험, 철학자의 사유, 유명인들의 사례까지 포함해 독자들이 어휘의 뜻을 더 속속들이 파악하고 체득할 수 있게 배려했다. 형용사 어휘를 다양한 관점과 용례로 맛보고 즐겨야 그 안에서 독자들이 인생 목표로 삼을 형용사를 고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집필 취지를 밝힌다. 독자들이 자신만의 형용사를 고르고 그 목표를 향해 단단하게 걸어나가기를 기대하하는 마음을 담아서다.

이 책은 〈서문〉과 5개의 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성장과 발전〉, 2장 〈인격과 품성〉, 3장 〈열정과 도전〉, 4장 〈지혜와 통찰〉, 5장 〈배려와 공감〉 등이다. 이 책에서 서술된 66개의 형용사에는 한자어도 적잖지만 독자도 처음 들어보는 순우리말도 다수 있어 '한글 세대'의 한 사람으로 부끄러운 마음도 든다. 명색이 한글 세대라면서 한자도 모르고, 순우리말에 대한 어휘력도 형편없다는 자각 때문이다. 「당신의 형용사는 무엇입니까?」란 제목의 〈서문〉에서 저자는 "우리나라는 유독 꿈을 직업, 즉 명사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하고, "(꿈꾸던) 직업을 갖지 못하면 좌절하고, 그 직업인이 되고 나면 꿈이 사라져 버린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인식은 꿈의 본질을 제한하고, 우리의 삶을 단편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저자는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말을 인용한다. "그는 현대 사회를 '액체 근대'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우리의 정체성과 목표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재형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즉 우리의 꿈 역시 유연하고 또 변화하는 형태여야 한다는 해석이다. 이에 따라 사람의 꿈이 꼭 명사, 직업일 필요는 없으며 그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너그러운' 사람, '명랑한' 사람, '다정한' 사람처럼 형용사도 꿈이 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자신이 되고 싶은 '형용사' 안에 더 많은 꿈과 가치관을 담을 수 있다는 논리를 제시한다.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가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는데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우리의 존재 방식을 규정한다"(p.7~8)는 말로서, 꿈을 형용사로 표현하는 것은 우리의 존재 방식 자체를 더욱 풍부하게 해준다고 강조한다.

1장 〈성장과 발전〉에서는 「'끊임없이 배우는 어른'을 꿈꾸게 하는 형용사」란 부제를 덧붙여 형용사 16개를 제시한다. 이 가운데 독자가 처음 보는 단어 「늘차다」와 아름다운 단어 「황홀하다」 등 2개의 형용사에 대한 저자의 풀이와 사유를 여기에 적어본다. 먼저 「늘차다」는 사전적 의미로 '능란하고 재빠르다'는 사전적 풀이다. 부가하여 '경험과 노력으로 기술과 재능이 다듬어져 숙련되다'란 뜻을 풀이한다. "늘차다? 처음 들어 보시는 분도 계실 겁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의 형용사는 정말 다양합니다. 「늘차다」라는 어휘는 오랜 시간 쌓아 온 경험과 노력의 결과로 얻어진 숙련도를 의미합니다. 쉽게 풀어 보면 '솜씨가 아주 익숙하고 빠르다' 정도의 의미일 것입니다. (···) 한국의 전통 공예인 나전칠기는 '늘찬' 기술의 힘을 보여 주는 훌륭한 예시입니다. 나전칠기 장인들은 수십 년의 경험을 통해 얻은 숙련된 기술로 자개를 정교하게 다루고, 칠을 여러 겹 입히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 아름다운 작품을 만드니까요."(p.35~36) 

「늘차다」에 대한 저자의 사유가 이어진다. '늘찬' 기술이란 단순히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학습과 경험의 축적을 통해 발달된다. 그러니 우리는 스스로 물어 봐야 한다. 「늘차다」라는 형용사를 붙이기에 적합한 사람인지를. 저자는 자신에게도 「늘차다」라는 형용사가 어울리는 어떤 삶의 기술이 얼른 붙었으면 좋겠다는 희망도 기술한다.



「황홀하다」는 ① 눈이 부시어 어릿어릿할 정도로 찬란하거나 화려하다. ② 어떤 사물이나 분위기에 혹하여 마음이 달뜬 상태이다. ③ 미묘하여 헤아려 알기 어려운 상태이다. ④ 흐릿하여 분명하지 아니하다 등 4개의 사전적 의미를 갖는다. 작가는 자신만의 정의로 "삶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우리 내면의 시적 감수성을 일깨우는 신비로운 순간을 발견하다."란 의미로 풀이한다. 「황홀하다」란 형용사를 저자는 "먼 우주의 거리만큼 떨어져 볼 줄 아는 어른, 영혼을 일깨우는 아름다운 선물""이라고 해석한다. "「황홀하다」라는 뜻은 아름다움을 넘어서서 다른 차원으로 들어선 듯한 압도적인 감동과 경이로움을 의미합니다. '황홀한' 경험이라면? 상상력의 극치를 체험하는 순간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언젠가 가본 광안리 앞바다 너머로 지는 일몰 그리고 야경, 황홀했습니다. 또 제주 밤하늘을 수놓은 수많은 별을 보게 되었을 때, 또 그 별을 보기 전에 바람에 일렁이는 바닷물 위로 부서지는 석양도 봤고요.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순간 앞에서 「황홀하다」라는 형용사가 무엇인지 느꼈습니다."(p.89) '아름답다'라는 말을 쓰기에는 미안한, '황홀함'이었다고 의미를 더한다.

저자에 따르면 황홀함은 단순한 감각적 쾌감을 넘어, 존재의 신비를 깨닫게 하는 영적 체험이기도 하다. 황홀경의 정점에서 우리는 성스러움을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저 멀리 우주에서 우리가 사는 지구를 바라본다면 황홀한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 일상적 현실을 초월하여 우주적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볼 때, 「황홀하다」라는 형용사는 더 강렬하다. 그렇다고 황홀감을 느끼려면 꼭 우주선을 타고 지구 밖으로 나가야 하는 걸까. 이니다. 가까운 곳에서 찾아도 된다. 예를 들어 독서가 그 대체물이 될 수도 있다. 자신이 모르는 누군가의 지적인 완성도에서 느끼는 황홀감도 얼마든지 강렬하다. 

저자의 사유는 깊이를 더해 간다. 아마 여행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세상은 하나의 책인데 여행을 통해 우리는 두꺼운 책 한 구너을 경험하는 셈이니까. 자신이 모르는 미지의 장소를 알게 되는 황홀함, 가능하다. 이렇듯 황홀함은 우리의 상상력과 창의성을 자극하는 원천이 된다.



3장 〈열정과 도전〉에서는 '더 넓게 세상을 포용할 줄 아는 성품'이란 부제가 달린 「늡늡하다」가 독자의 눈길을 잡아 끈다. 독자에게는 생경한 형용사로, '성격이 너그럽고 활달하다'는 사전적 의미다. 저자는 '포용력 있고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다'라는 사유적 의미를 더한다. 저자는 이 단어를 한국 소설의 한 문장에서 가져왔다고 밝힌다. "김 씨 아들의 늡늡한 인물과 문장이 출중한 것을 보고···" 도대체, 「늡늡하다」는 무슨 뜻일까. 사전은 '성격이 너그럽고 활달한'이라고 사전적 의미로는 뭔가 와닿지 않는다. 저자는 다른 예를 찾는다. 외국 유명인, 배우 키아누 리브스다. 그는 관대하고 활달한 성격으로 유명하다는데, 자신의 부를 나누는 것에 인색하지 않다고 한다. 특히 영화 제작 스태프에 대한 그의 관대함이 그의 '늡늡한' 특징을 말해 주는 사례라고 저자는 밝힌다.

"영화 〈매트릭스〉 시리즈 촬영 중 특수 효과를 담당한 팀에게는 수백만 달러의 보너스를 나눠 주었고, 또 다른 영화 〈존 윅 4〉 촬영 후에는 스턴트를 담당한 팀에게 고가의 명품 시계를 선물했다고 한다. 갑자기 그가 출연하는 영화의 스태프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p.193) 이어 저자는 그의 말을 인용해 「늡늡하다」를 설명한다. "나는 개인 재단을 운영하고 있어요. 5~6년 정도 됐죠. 몇몇 어린이 병원과 암 연구를 돕고 있습니다." 이런 걸 두고 늡늡하다고 하지 않을까? 라고 되묻는다. 저자는 이 단어의 결론을 '늡늡한' 성격을 갖는다는 것은 그저 좋은 성격을 가진 걸 넘어서는 경험이라고 말한다. 그건 우리의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이해심과 활력을 일깨우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맛을 표현하는 형용사도 눈에 띈다. 「쌉쌀하다」이다. 사전적 의미로는 '조금 쓴맛이 있다'이다. 저자는 이를 '삶의 복합적인 면모를 경험하다'로 바꾸어 받아들인다. 이 형용사에 대해 사유한 '쌉쌀한 관계를 겁내지 않는 어른, 균형 잡힌 삶의 예술'이라 표현한다. 「쌉쌀하다」라는 형용사는 우리가 인생의 다양한 면모를 동시에 경험할 때 느끼는 복합적인 심리 상태를 말한다는 게 저자의 풀이다. 달지도 않고, 쓰지도 않고, 쌉쌀한 그 맛이다. 이 쌉쌀한 맛이 그렇게 매력적일 수가 없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책에 따르면 「쌉쌀하다」라는 단어에는 사전적 정의로 보면 실제로는 감정을 나타내는 의미를 담고 있지 않다. 씁쓸하다는 말에는 '달갑지 아니하여 조금 싫거나 언짢다'라는 의ㅣ도 담겨 있지만 「쌉쌀하다」는 오로지 맛을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쌉쌀하다」라는 단어에도 저자만의 감정적 정의를 담아낸다. 즉 쌉쌀한 감정은 때로는 달콤하고 때로는 쓴 것을 넘어선 느낌이다. 그 인생의 모든 맛을 받아들일 때 진정으로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쌉쌀함은 우리를 성장시키는 엄격하나 훌륭한 교사와도 같다. 가장 강인한 나무는 가장 거친 바람을 맞으며 자라는 것처럼. 

저자의 사유가 이어진다. "달콤한 성공과 칭찬에 도취하여 있는 것보다는 쌉쌀한 실패와 좌절 속에서 겸허해질 때 진정한 자기의 모습과 내면의 힘을 직면할 수 있다. 인생은 늘 쌉쌀한 도전의 연속이지만 그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묵묵히 걸어가면 우리의 잠재력을 발견할 수 있다. 누군가와의 관계도 그렇다. 진정한 사랑은 달콤함과 쌉쌀함이 공존하는 것이니 쌉쌀한 경험을 맞이하게 된다면 이를 우리의 감정과 관계를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도구로 활요했으면 한다. 삶의 모든 맛을 음미하면서 그 속에서 균형과 조화를 찾을 수 있는 '원숙한 사람이 되어 보는 것, 어떤가요?"(p.283~284)


저자 : 김범준


자기 계발 분야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고려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한국기술교육대학교 테크노인력개발전문대학원에서 코칭과 리더십을 공부해 인적 자원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삼성그룹, SK그룹, 현대기아차, KB금융 등의 기업과 서울시, 경기도, 한국과학기술원, 국방부 등의 공공 기관에서 강연을 했다. 최근에는 청소년 교육 및 독서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어른의 국어력』, 『예쁘게 말하는 네가 좋다』, 『모든 관계는 말투에서 시작된다』 등이 있다.

사회생활 초반에 ‘재수 없는’ 말투를 사용하면서도 노력이 부족해서 나만 힘들게 직장생활하는 줄로 착각했다. 먼 길을 돌고 돌아 지금은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 살지만, 실력과 성실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빈자리가 있음을 그때는 몰랐다. 복잡하고 힘든 일을 잘 풀리게 하고, 실력에 걸맞은 매력적인 말투로 관계의 질적 수준이 달라지는 사례를 자주 경험하면서, 인생의 새 출발을 하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괜찮은 말투 하나”를 독자의 인생에 선물해주려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

『인생의 오후에는 적보다 친구가 필요하다』는 방대한 데일 카네기의 책 가운데 평생 적을 만들지 않는 불멸의 원칙만을 모아 지금 시대에 맞는 가장 현실적인 시선으로 정제하여 담아냈다. 소통, 관계에 대한 유쾌한 통찰로 정평이 난 김범준 작가는 직접 ‘데일 카네기 코스’에 참여한 뒤, 여기서 얻은 통찰을 바탕으로 현대인들이 최우선적으로 읽고 실생활에 즉시 사용할 만한 24가지 삶의 해법을 엄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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