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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모든 새들
찰리 제인 앤더스 지음, 장호연 옮김 / 허블 / 2025년 9월
평점 :

<리뷰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사회란 다른 사람의 자유와 너의 속박 사이의 선택이야.” 이 소설 작품 『하늘은 모든 새들』은 멸망을 앞둔 지구 위, 인류를 구하기 위해 실험을 가속하는 과학기술자들과 그들로 인해 상처 입는 자연을 보호하려 인류를 멸하려는 마법사들의 전면전을 그리고 있다. 소녀와 소년의 사랑과 성장을 통해 세계의 공존 같은 심오하고 복잡한 문제부터 자아정체성이라는 내밀한 문제까지 밀도 있게 풀어내고 있다. 특이한 것은 문제들의 답을 찾는 과정에서 ‘페러그린’이라는 AI가 핵심적으로 기능한다는 점이다. 만화 주인공 같은 등장인물 설정이 화려한 색채를 자랑하는 판타지적인 첫인상을 선사하지만, 등장인물이 자아를 찾으며 느끼는 슬픔과 허무감을 표현하는 작가의 냉소적인 문장이 위화감 없이 조합되었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신선함을 풍기기도 한다.
인공지능 페러그린은 입력된 질문을 무한히 자동 학습하며 전 세계 단말기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는지를 볼 수 있게 됐고, 결국은 그만의 방법으로 인간과 마법사들에게 새로운 소통 방법이 있다는 것을 제시한다. 〈로스엔젤레스 타임스〉가 “마치 우리의 미래를 대비하라는 말처럼 읽히는 문장”이라고 평가한 이 소설은 약 10년 전에 쓰인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미래를 읽은 듯 지금의 우리를 주시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저자 찰리 제인 앤더스은 〈작가의 말〉을 통해 다소 생뚱맞은 창작 취지를 내보인다.
"독자 여러분이 이 책을 즐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혹시 그러지 못했다면, 혹은 이해가 안 되거나 지나치게 생뚱맞은 대목이 있다고 생각되면 내게 이메일을 보내주시길. 내가 독자 여러분의 집으로 찾아가서 모든 것을 재연해 보일 테니까. 어쩌면 종이로 접은 손가락 인형들을 데려갈 수도 있을 것이다."(p.475) SF를 사랑하는 저자는 “나는 명확한 이분법에 직면할 때마다 항상 그것을 분해하고 복잡하게 뒤섞으려 한다. 어쩌면 그 안에 내재된 모순을 조화시키고 싶은 것 같다.”는 SF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이야기하고 있다.
“온 세상이 혼란에 휩싸이면 우리는 혼란의 전면에 나서야 해.” 마법과 과학, 자연과 기술, 감정과 이성··· 다른 방식으로 망가진 두 세계 속 인간과 마법사 사이에서 만들어진 AI의 목소리는 구원과 파멸 사이에서 독자들에게 갈등과 대립감을 확실하게 각인시킨다.

퍼트리샤는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그처럼 거대하고 오래된 존재와 맞닥뜨리자 갑자기 자신의 문제가 하찮고 이기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아무래도 난 가짜 마녀 같아요.” 그녀가 말했다.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내 친구 로런스는 슈퍼컴퓨터도 만들고 타임머신과 광선총도 만들어요. 원할 때면 언제든 근사한 일이 벌어지게 할 수 있어요. 나는 어떤 근사한 일도 일으키지 못해요.”
“근사한 일이.” 나무는 세차게 몰아치는 모음과 덜거덕거리는 자음으로 말했다. “벌어지고 있다. 바로 지금.”
“맞아요.” 퍼트리샤는 또다시 얼굴이 달아올랐다. “확실히 멋진 일이죠. 정말로요. 하지만 이건 저절로 벌어진 일이잖아요. 내가 원해서 일어나도록 만든 일이 아니라요.”
“네 친구는 자연을 통제하려고 하지.” 나무는 단어 하나하나를 힘 주어 말했다. “마녀는 자연을 섬겨야 한다.”
“통제는 환상이야.” 나무가 말했다.(p.73)
마녀가 되어 동물과 대화하고 싶어 하는 순수함을 악마에 홀린 것으로 오해받는 소녀 퍼트리샤. 과학고 합격증을 혼자 타올 정도의 두뇌를 지녔지만 소심한 성격 탓에 반사회적인 어른으로 자랄 거라는 평을 받으며 병영학교에 강제 입학하게 된 로런스. 가족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한 두 어린이는 서로의 외로움을 알아보는데, 로런스가 퍼트리샤에게 자신이 만든 AI, ‘페러그린’을 우정의 증표로 선물할 정도로 둘의 사이는 가까워진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재회한 둘은 멸망 직전의 지구를 두고 정반대의 의견을 펼치며 충돌하기 시작한다.

로런스와 그의 동료 과학자들은 인류를 살리기 위해 지구를 버리고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려는 프로젝트를 꾀한다. 퍼트리샤가 속한 마녀 사회는 인간들 때문에 죽어가는 자연을 살리기 위해 인간 절멸 마법을 구상한다. 그사이 사랑에 빠진 퍼트리샤와 로런스는 무언가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만, 브레이크 없이 달리기 시작한 종말을 멈출 수 있는 해답은 보이지 않는다. 과연 이들은 함께 성장시킨 AI, 페러그린과 함께 어떤 결말을 맞이할까?
이 책을 번역 출판한 〈허블〉에 따르면 전통적인 성장 소설처럼 보이는 줄거리지만 찰리 제인 앤더스가 그리는 ‘성장’은 일반적인 궤도를 따라가지 않는다. 이는 관계라는 개념을 언제나 혼란 속에서 살아가는 소수자의 시점에서 서술하고자 하는 저자의 이력과도 관련되어 있다.
학교를 마치고 퍼트리샤는 침대에 걸터앉아 로런스의 슈퍼컴퓨터 CH@NG3M3에게 말을 걸었다. 요즘 매일 하는 일이었다. “부모님이 내가 살아 있는 한 절대로 숲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겠대. 그건 말이지, 내가 아무한테도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뜻이야. 학교에서는 모두가 나를 자해자, 미친 사람이라고 불러. 가끔 내가 정말로 미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그러면 견디기가 한결 쉬울 것 같아.”
“만약에 네가 미쳤다면, 미쳤다는 것을 어떻게 알지?” CH@NG3M3이 물었다.
“좋은 질문이네.” 퍼트리샤가 인정했다. “전적으로 믿는 사람이 있어야겠지. 그런 사람이 있으면 둘이서 같은 것을 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으니까.” 그녀는 주전자가 수놓인 누비이불 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엄지를 깨물었다.
“같은 것을 보지 않는다면?” CH@NG3M3이 물었다. “그럼 미친 거야?” 가끔 컴퓨터는 자신의 틀을 벗어던지고 퍼트리샤가 앞서 한 말을 살짝 바꿔서 돌려주곤 했다. 그러면 정말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p.84)

저자는 갈라진 세계, 다른 관점, 모순된 가치관 속에 등장인물을 던져넣고 결말을 지켜보는 작품을 주로 써왔다고 출판사 측은 밝힌다. 저자는 그동안 삶을 경험하는 방법으로 ‘마법’, ‘AI’, ‘기억’ 등의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며 독보적인 그만의 ‘성장’을 구축해 왔다는 것이다.
그의 데뷔작이자 람다 문학상을 받은 『성가대 소년Choir Boy』은 트렌스젠더 소년이 변성기에 대한 광기 어린 공포에 휩싸여 이를 피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휴고상을 받은 그의 두 번째 작품 「6개월, 사흘"Six Months, Three Days"」은 변할 수 없는 운명을 볼 수 있는 사람과 변할 수 있는 미래의 변곡점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서 벌어지는 갈등을 그린다. 개인적 성찰 그리고 개인 간의 이해를 그린 저자 찰리 제인 앤더스는 시선을 세계 범위로 넓힌 『하늘의 모든 새들』을 세 번째 작품으로 써내며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과 다른 나머지 사람들을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를 제시했다.
책을 번역한 역자 장호연은 〈옮긴이의 말〉에서 저자의 작가적 성향과 이 작품의 독창성을 높게 평가한다. "이런 장르소설은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를 선사한다. 현실에 없는 모습을 어떻게든 구현해 보여주는 영상물과 달리 책은 이를 우리의 상상에 맡긴다. 새가 말하고 컴퓨터가 말하고 웜홀 발생기가 부서지는 장면을 독자 스스로 상상하며 읽어야 한다. 독서는 곧 독자에게 많은 상상의 자유와 여지가 부여되며, 이런 경험은 상상력을 키우는 훈련이 된다. 이렇게 쌓은 훈련의 과정이 세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페러그린’과 통하는 면이 있다. 로런스의 침실 벽장 뒤에서 처음 만들어졌고, 사람들과 교류하며 학습하고 성장해 마침내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컴퓨터 말이다. 두 주인공이 페러그린과 말을 주고받는 대목은 어느 모로 보나 챗GPT를 떠올리게 한다. 페러그린이 기계적인 존재에서 감응적인 존재로 넘어가게 만든 결정적 계기가 있다. 바로 질문이다. 그 질문은 퍼트리샤가 어렸을 때 새에게서 받았던 질문이기도 하다. 평생 그녀의 마음속에 수수께끼처럼 남은 그 질문이다. 그러므로 이 질문은 자연과 기계를 이어줄 뿐만 아니라 두 주인공을 이어준다. 이렇듯 좋은 질문은 존재 - 사람은 물론 컴퓨터도 - 를 성장시킨다. 책도 충분히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 좋은 질문을 던져 세상을 경험하고 스스로 깨닫도록 만든다. 이 책은 좋은 질문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p.478~479)

『하늘의 모든 새들』은 사춘기에 걸린 것 같은 소설 작품이다.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채도 높은 자연의 정경과 이질적이지만 계산된 아름다움을 지닌 기계들을 생생히 묘사하며 날카로운 감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웨스 앤더슨이 SF에 흥미를 가진다면 이 소설을 각색하고 싶을 것이다”라는 평이 어울리는 선명한 묘사는 눈앞에 장면이 펼쳐지는 것 같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안정하고 미성숙한 주인공들의 내면을 적나라한 언어로 서술하며 진행되는 서사는 결말을 예측할 수 없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 것을 망가뜨려서는 안 됐어. 너한테 그러지 않았어야 했어.” 아무리 해도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이라는 존재를 그저 감내할 것인가, 혹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행동할 것인가. 완벽한 답은 존재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 버둥거리는 등장인물의 모습을 지켜보는 AI는 이런 인간들의 행동을 토대로 다시 학습하고, 분석을 다시 시작한다. 이 AI 성장의 구심이 된 한 가지 질문이 있다. “나무는 붉은가?” 이 질문은 퍼트리샤가 마녀 사회에 소속되기 위해 부여받은 궁극적인 과제이자, 지구를 ‘바위’라고 말하는 인간이 자연의 아주 작은 일부인 나무를 인지하게 만들며, 단순한 연산기기였던 슈퍼컴퓨터가 ‘페러그린’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찾게 했다. 이 한 가지 질문을 통해 자연과 과학이라는 두 세계를 설득력 있게 연결한 찰리 제인 앤더스는 독자에게도 한번 이 질문의 답을 고민해 볼 것을 권한다.
이 책은 아직 어른이 되지 않았다고 느끼는 어른을 위한 성장 소설이다. 찰리 제인 앤더스는 도서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사실 성장 소설에서 흔히 나오는, 과거의 악몽을 이겨내는 멋진 성장을 잘 경험하지 못한 채 어른이 된다”라고 언급했다. 유년기에 겪은 문제에 대한 답을 아직 찾지 못하고 어린 채 머물러 있는 독자들에게 『하늘의 모든 새들』은 위로를 건넨다. 명확한 정답을 찾는 것만이 인생은 아니며, 계속 고민하는 것이야말로 인생일지 모른다고.

“정말 인상적인 기계야.” 확실히 공학의 결정체에는 미적으로 아름답고 만족스러운 뭔가가 있었다. 반짝거리고 견고했다. 퍼트리샤는 발렌시아 스트리트의 힙한 갤러리에서 팔던 오래된 수동 타자기나 멋진 증기기관에서 느꼈던 것과 똑같은 애정을 이 기계에도 느꼈다. 이런 것들은 항상 망가졌고 더 나쁘게는 모든 것을 망쳤으므로 오만함의 산물이다. 하지만 로런스의 말처럼 이런 장치들은 우리를 유일무이한 존재로, 인간으로 만들어 준다. 거미가 거미줄을 만들듯 우리는 기계를 만들었다.(p.225)
저자 : 찰리 제인 앤더스(Charlie Jane Anders)
장편소설 『밤 한가운데의 도시(The City in the Middle of the Night)』를 썼다. 다른 저서로는 네뷸러상, 크로포드상, 로커스상 수상작인 『하늘의 모든 새들(All the Birds in the Sky)』, 람다상 수상작인 『성가대 소년(Choir Boy)』, 중편소설 『록 매닝, 버티다(Rock Manning Goes For Broke)』, 단편소설집 『육 개월, 사흘, 다른 다섯 편(Six Months, Three Days, Five Others)』이 있다. [토르닷컴], [보스턴 리뷰], [틴 하우스], [콘정션스], [판타지 앤드 사이언스 픽션], [와이어드 매거진], [슬레이트], [아시모프스], [라이트스피드] 등의 매체와 여러 작품 선집에도 단편소설을 기고한 바 있다. 단편소설 「육개월, 사흘(Six Months, Three Days)」로 휴고상을 수상했고, 「요금을 부과하지 않는다면 고소하지 않겠습니다(Don’t Press Charges And I Won’t Sue)」로 시어도어 스터전상을 수상했다. 조만간 새로운 단편소설집 『심지어 더 큰 실수(Even Greater Mistakes)』가 출간될 예정이다. 찰리 제인은 또한 매월 〈작가와 술 한잔(Writers With Drinks)〉 낭독 시리즈를 조직하고, 애널리 뉴위츠와 함께 팟캐스트 [우리 의견은 옳다(Our Opinions Are Correct)]를 공동 진행 중이다. 단편소설 「아메리카 끝에 있는 서점」으로 2020년 로커스상을 수상했다.
역자 : 장호연
1971년에 출생하여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음악학과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영국 뉴캐슬대학교에서 대중음악을 공부했다. 음악 동호회 얼트 바이러스에서 음악평론을 하면서 글쓰기를 시작해 웹진 [웨이브]에 음악평론을 기고했고 방송작가로도 활동했다. 현재 음악과 뇌과학, 문학 분야를 넘나드는 번역작가로 활약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얼트 문화와 록 음악 2』(공저), 『오프 더 레코드, 인디 록 파일』(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뇌의 왈츠』, 『뮤지코필리아』, 『인문학에게 뇌과학을 말하다』, 『낯선 땅 이방인』,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 『에릭 클랩튼』, 『레드 제플린』, 『거금 100만 달러』, 『라스베이거스의 공포와 혐오』,『과학으로 풀어보는 음악의 비밀』, 『긍정의 뇌』, 『지금까지 알고 있던 내 모습이 모두 가짜라면』, 『자연의 노래를 들어라』, 『클래식의 발견』 『이 레슨이 끝나지 않기를』 『스스로 치유하는 뇌』 『소리의 마음들』『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하워드 구달의 다시 쓰는 음악 이야기』 『고전적 양식』 『쇼스타코비치』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