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속도로 걸어가는 법
이애경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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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속도로 걸어가는 법'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나만의 속도. 그 말이 참 좋다. 책은 글과 함께 사진이 들어가 있다. 저자의 삶의 이야기들이 가득했고, 감성적 언어로 가득 차 있어,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한다. 짧은 글은 짧은 글대로, 긴 글은 긴 글대로의 매력이 있다. 섬세하면서도 잔잔하게 적어 내려가는 글. 강요하지 않고 부담스럽지 않은 글. 여유를 느끼며 읽을 수 있는 글. 책을 읽는 동안 나의 마음이 편안해지고 여유로워진다. 나의 감각들이 살아나 감성적이 되고, 단어 하나하나를 읊조리며 마음에 새겨본다.

책도 차를 마시는 것처럼 음미하며 읽을 수 있게 해준 저자에게도 따뜻한 응원의 메시지도 전하고 싶다.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위로해주어서 감사한 마음을 듬뿍 담아서...

오늘날 사람들은 하루하루 너무나 바쁘게 살아간다. 그저 남들처럼 살아가느라 지금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이 속도가 자신에게 맞는지 생각할 겨를조차 없다. 하지만 거센 바람 앞에서는 작은 풀잎도 날카로운 칼날이 되듯 너무 빠른 삶의 속도로 살아가는 사이 우리는 계속해서 마음에 생채기를 입는다. 이 책은 지친 하루를 위로하는 따뜻한 이야기로 많은 사랑을 받은 『눈물을 그치는 타이밍』의 작가 이애경이 들려주는 삶의 속도에 대한 스스로의 고백이자 다짐이며, 자신과 마찬가지로 삶의 속도를 잃어버린 채 힘겨워하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위로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 맞춰 살아가는 대신 조금 느릿하게, 혹은 느긋하게 살기 위해 제주의 삶을 택한 작가는 그곳에서 사람마다 자기에게 알맞은 속도가 있음을, 자신이 그동안 너무 빠르게 달려오느라 삶의 많은 부분을 놓쳐버렸음을 깨달았다. 이후 굳어있던 마음의 속도계를 조금씩 풀어내고 자기만의 속도를 찾아가면서 발견한 일상은 기쁨과 설렘이 가득한 기적의 순간들이었다.




책에 따르면 오랜 시간 일과 사람에 치이는 기자 생활을 하며 누구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 바쁘게, 빠르게 살았던 이애경 작가는 정신없이 돌아가는 도시 생활을 뒤로하고 제주로 터전을 옮기면서 처음으로 ‘삶의 속도’를 정하는 문제에 맞닥뜨린다. 지금까지 치열하게 살아왔으니 이제는 좀 천천히 가자, 마음먹고 스스로 제주로 온 것이건만 천천히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섬이라는 제약으로 인해 제주는 모든 것이 느렸고, 예상보다 더욱 느렸다. 익숙하지 않은 빠르기로 굴러가는 제주살이에 몇 번이고 마음의 멀미를 겪으며 지금까지 살아온 속도가 자신에게 맞는 속도보다 훨씬 빨랐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비로소 삶의 방향과 속도를 되돌아볼 여유를 얻을 수 있었다.

세상에는 ‘빠른 것’과 ‘느린 것’, 두 종류만 있는 게 아니라 각자에게 맞는 다양한 속도가 있음을 알게 된 작가는 스스로에게 맞는 삶의 속도를 찾아냈다.

그리고 지금껏 너무 빠르게 살아가느라 놓쳐버린 소중한 순간들의 아쉬움과 새롭게 발견하게 된 반짝이는 순간들의 즐거움을 이야기한다.






책의 구성도 독자의 마음을 고려한 흔적이 역력하다. 마치 바쁘게 사는 독자의 마음속을 들어가본 것처럼.

프롤로그. 나에게 맞는 속도를 찾는 시간

Ⅰ. '빠르게'와 '느리게' 사이, 보통의 속도로 걷다

Ⅱ. 서서히 스며들듯이, 보통의 속도로 사랑하다

Ⅲ. 아쉽지도 아프지도 않게, 보통의 속도로 멀어지다

Ⅳ. 마치 여행자처럼, 보통의 속도로 살아가다

Ⅴ. 조금씩 천천히, 보통의 속도로 어른이 되다


우리의 삶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이 하나씩 줄어들 때 가장 본연의 모습으로 빛나는 게 아닐까. 꽃이 떨어지고, 낙엽이 지고 나서야 내가 어떤 사람인지 오롯이 들여다볼 수 있는 것처럼. 그래서 인생에 겨울이 왔다고 슬퍼할 이유는 없다. 겨울에 나는 가장 나다우며, 이쪽저쪽으로 돌아온 인생에서 보이는 노련함과 치열함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되는 계절이 바로 겨울이니까. 혹여 당신이라는 나무 안에 촘촘한 단단함이 보이지 않는다 해도 서글퍼 말자. 엉성해 보이는 나를 너무 채근하지 않아도 된다. 밀도 있게 살아갈 수 있는 봄이 되면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면 된다.

「오롯이 나를 드러내는 계절」 중에서





조금 천천히 달린다고 해서 길을 잃는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하루하루의 삶이 더욱 풍성해졌다.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보통의 속도로 걸어가고 살아가는 삶, 서서히 스며들듯이 사랑하고 너무 아프거나 아쉽지 않게 멀어지고 이별하는 삶. 그런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많이 지치지 않고 크게 상처받지 않는다.

보통의 속도에 익숙해질수록 예전에는 상처로 다가왔을 일이 가볍게 웃어넘길 만한 에피소드가 된다. 천천히 걸어도 길은 사라지지 않고 길 끝의 너머에도 세상은 계속된다. 지금이 추운 겨울 같다면 다가올 계절은 따뜻한 봄이다. 남의 기준에 맞춰 걷는 대신 내 마음의 보폭에 맞는 속도로 걷는다면 인생은 언제나 내가 좋아하는 계절이 된다.

이 책을 읽으며 공감이 가는 많은 부분 중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단어를 하나 꼽으라면 단연코 '천천히'다.

우리의 삶 속에는 속도가 빨라야 이루어낼 수 있는 것들이 있고, 참고 기다려야 이루어지는 것들이 있다. 어떤 일은 성취감을 주고, 어떤 것은 만족감을 준다. 또 어떤 일은 오롯이 행복감을 준다. 이 가운데 행복감을 주는 것은 '빨리'보다는 '천천히' 이루어진다. 예를 들면 사랑, 과일의 맛, 맛있는 반찬도 그렇다.

우리의 찬란한 문명도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은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랜 세월 때로는 눈물 짓고, 때로는 땀 흘리려 이뤄낸 것들이다. 천천히.





이렇듯 천천히 혹은 느릿느릿 이루어지는 것을 일상에서 누리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느림의 미학'은 알지만 '빨리빨리' 해치우고 누리려 하는 마음이 우리를 항상 서두르고 바쁘게 한다. 세상이 빠르게 돌아가고 세상의 속도에 따라 바쁘게 살아온 우리다. 천천히 해서는 항상 남보다 뒤처진다는 생각이 우리를 바쁘게 몰아친다. 그러나 혹여 나만 뒤처질까 두려운 마음에 빠르고 바쁜 삶을 정신없이 살다 보면 자꾸만 몸과 마음에 병이 난다. 왜 아플까 생각할 틈도 없이 치열하게 살아가다 문득 돌아보면 남은 것은 언제 다쳤는지도 모르는 상처의 흔적들이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자기 자신에게 맞는 삶의 속도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빠르게 사는 사람은 더 멀리 갈 수 있지만 속도에 쫓겨 풍경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천천히 사는 사람은 더 멀리 가지는 못하더라도 인생의 소중한 순간, 소중한 사람, 소중한 마음을 놓치지 않는다. 저자의 삶의 철학이 묻어나오는 대목이다. 이 책은 우리가 각자 마음의 보폭에 맞는 속도, 자기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가게 되기를 바라는 작가의 따뜻한 위로와 격려로 가득하다.

오랜만에 저자 특유의 섬세한 감수성을 담아낸 글과 어울리는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글과 함께 실린 사진도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만나는 모습이다. 저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속도를 느끼게 한다. 사소한 것들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따뜻한 이야기를 통해 너무 빠르게 살아가느라 미처 보지 못했던 풍광들,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 제대로 치유하지 못했던 아픔들을 돌이켜보기를, 더 이상 지치지 않고 상처받지 않고 꾸준히 나아갈 수 있는 보통의 속도로 걸어가는 법을 알게 되기를 저자는 바라고 있다. 이 책도 천천히 읽어야 제 맛을 알 수 있다.





그동안 사람들이 자신의 보폭으로 걸어야 한다고 할 때 독자는 그 보폭을 찾아 헤맸다. 성큼성큼 살아야 하는지 아니면 느릿느릿 살아야 하는지도 몰랐다. 어떤 게 내 보폭인지, 그게 살면서 잃어버린 게 아니라 어쩌면 처음부터 몰랐다는걸 이 책을 통해 알았다. 비로소 안도감이 든다. 생각과 글이 어우러진 적당한 사진은 굳이 많은 이야기를 담지 않아도 충분히 공감된다.


아메리카노는 뜨거운 물에 에스프레소를 섞어 만드는데, 뜨거운 물을 잔에 담은 뒤 그 위에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면 크레마가 두껍고 향이 짙어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한다. 하지만 컵에 에스프레소를 먼저 추출한 뒤 그 위에 뜨거운 물을 부으면 크레마가 얇게 흩어져 커피가 묽고 신선하지 않다고 느낀다고 한다. 크레마가 깊게 입에 닿을 때 더 맛있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같은 커피인데, 다른 커피인 셈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생도 쓴맛부터 시작이라면 좋아할까. 커피 한 모금 인생 한 모금 아메리카노에게 묻는다.

「인생도 아메리카노처럼」 중에서




그리움이 닿다


예고 없이 비가 찾아오듯

너라는 비가 내린다.

늘 그렇듯 속수무책으로

마음이 다 젖고 만다.

흔들리고 흔들리고, 또 흔들리고

비는 늘 그리움을 몰고 온다.

그리움이 너에게 닿을 때까지

비는 그칠 줄 모른다.

언제쯤 그칠까, 이 비는.


이별도 운명이라면


만남이 운명이라면

헤어짐도 운명이다.

이별이 힘든 건

운명을 거스르려 하기 때문이다.






사랑도 비슷하다. 매일매일 쳐다보며 잎을 만져주고, 또 가끔씩 분무를 해주어 공중습도를 높여주지만, 물을 주는 타이밍은 아주 신중하다. 적절한 타이밍에 과하지 않게 물을 줘야 오래 살아남는다. 그리고 결국 식물은 나의 물 주는 습관에 적응하게 된다. 사랑은 길들이는 것이라는 말은 여기에서 나온 게 아닐까. 사랑도, 숨이 막히도록 퍼붓는 것이 아니라, 한여름 장맛비처럼 쏟아붓는 것이 아니라 고양이처럼 길러야 하는 것 같다.

정말 사랑하지만 시크하고 무심히. 그렇게 할 때 사랑은 늘 푸르게 유지되는 게 아닐까.

「사랑은 무심하고 시크하게」 중에서


네가 봄의 속도로 다가왔으면 좋겠다. 빠르게 다가왔다가 어느 지점에서 정차하는 바람에 애가 타지도 않고, 너무 느리게 왔다가 어느 변곡점에서 갑자기 달음박질을 하는 바람에 숨을 헐떡거리지 않아도 되는 적당한 속도. 누구든 봄이 오는 걸 알아챌 정도로 꾸준히, 그러나 서서히 진행되는 바로 그 속도로. 우리가 길들여진 사랑의 속도는 아마 이 정도일 것이다. 세상의 사랑이 혼잡스러운 건 이 적정 속도를 잃거나, 혹은 무시하는 사랑들이 여기저기에서 무질서하게 운행되기 때문이다

「사랑의 속도」 중에서




재봉틀을 돌리고 바느질을 하며 삶을 세어나간다. 그리고 이 속도에 내 삶의 한 땀 한 땀을 이으려고 노력한다. 너무 애쓰지 않으면서도 너무 무심하지 않은 정도의 속도. 내버려 둔 것 같지만 촘촘히 혹은 얼기설기 짜인 계획 안에서의 자유로움을 즐길 수 있는 정도의 속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 같지만 문득 돌아보면 확연히 달라져 있는 정도의 순차적인 이질감이 허용되는 속도이다. 이 속도에 익숙해지면 삶은 조금 편해질 것이다. 단거리 경주를 하듯 초반에 온 힘을 쏟지 않아도 될 것이고, 그저 그때그때 정해지는 방향대로 걸어가면 되니까.

모두가 기다리는 인생의 봄도 아마 이 정도 빠르기로 오는 중이지 않을까. 어떤 사람은 그 속도를 감지하지 못해 지쳐 있을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속도로 성큼성큼 봄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봄이 나에게로 오는 걸음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봄의 속도로 살아가기」 중에서


알람을 맞춰놓지 않고 산 지 꽤 되었다. 아침 비행기를 타야 하거나 새벽에 나가야 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몸이 알아서 자고 깰 수 있도록 자율권을 주었다. 생각보다 몸은 내 믿음을 배신하지 않았다. 해가 떠오르기 전, 빛이 창틈으로 스며들 준비를 할 때 나는 정확히 잠에서 깨어났고, 해가 사라지는 자리에 졸음이 밀고 들어오는 패턴이 시작되었다. 어쩌면 나는 태양이 창문을 어루만지는 소리를 듣고, 밤이 내려앉는 소리를 잘 듣는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도시를 버리고 자연에 안착하니 그것이 더 쉬워졌다.

「정해진 시간표를 버리다」 중에서






어느 순간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속도가 조금씩 변한 걸 느꼈다. 친구 생일 선물로 배송시킨 물건이 생일날까지 도착하지 않았는데, 배송기사에게 전화하거나 배송 추적을 하지 않았다. 대신 식사 자리에서 ‘선물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어’라고 말했다. ‘미리 예상해서 더 빨리 주문했었어야지!’라고 스스로를 볶아대던 것이 예전의 나라면 지금은 나에게 한결 여유로워졌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도 그걸 ‘가능하게’ 만들어내는 게 나의 능력이라고 자부했다면, 지금은 다르다. 조금 더 느슨해졌고, 조금 더 여유로워졌다. 고백하건데, 난 지금이 좋다

「조금 느리게, 좀 더 여유롭게」 중에서


식물들을 보며 사람이 가장 겁쟁이가 아닐까 생각해봤다. 우리는 늘 확률을 따지며 뭔가를 시도해보기도 전에 가능성의 씨앗을 없애버리는 데 익숙하니까. 식물은 확률을 따져보고 발아나 뿌리내리기를 시도하지 않는다. 또 기다림이 연습되어 있어 보채지 않고 자연의 속도대로 삶의 속도를 정한다. 식물에게서 삶을 배운다. 확률을 따지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삶 그리고 자기만의 속도로 꾸준히 성장해나가는 삶.

삶에 정답은 없고 정해진 속도도 없다. 나의 속도를 알고 그 속도대로 살아간다면 늘 자라나는 나무가 되지 않을까. 비록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사막에서도 자라나는 나무처럼」 중에서




저자 : 이애경


하루하루 숨 가쁘게 보내던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제주로 내려가면서 삶의 속도를 정하는 문제와 마주하게 되었다. 치열하고 복잡했던 삶을 내려놓고 조금 천천히, 조금 느리게 살고 싶었고, 제주는 그런 바람을 이루기에 알맞은 곳이었다. 섬이라는 특성으로 인한 반강제적인 느림이 있는 곳, 모든 것이 느리고 느린 곳이 제주였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속도 변화는 쉽게 적응할 만한 것이 아니었고, 익숙하지 않은 삶의 시차에 멀미를 겪던 중 깨달았다. 세상에는 빠른 것과 느린 것, 두 종류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사람마다 자신에게 맞는 적당한 삶의 속도가 존재한다는 것을.

바쁘게 살아가느라 잃어버렸던 나만의 속도,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은 보통의 속도를 찾는 순간 일상은 더욱 소중하고 아름다워졌다.

이제 우리 모두 ‘빠름’에서 벗어나 자기 마음의 보폭에 맞는 속도를 찾기를, 나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행복을 얻기를 소망한다. 여성들의 섬세한 심리 변화를 감각적이고 솔직하게 표현해내는 에세이스트. 글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는 것을, 생각을 변화시키는 기적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기에 희망을 갖고 오늘도 글을 쓴다. 연예·음악 담당 기자를 거쳐 조용필의 ‘기다리는 아픔’, ‘작은 천국’, ‘꿈의 아리랑’, 윤하의 ‘오디션’, ‘My song and…’, ‘Someday’ 등 다수의 곡에 노랫말을 붙였다. 지은 책으로 『눈물을 그치는 타이밍』, 『그냥 눈물이 나』, 『떠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나를 어디에 두고 온 걸까』, 『너라는 숲』 등이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에서 진행하는

체험단,리뷰단에서 제공 받아 작성한 솔직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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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락송 1 - 늦은 밤, 피나 콜라다
아나이 지음, 허유영 옮김 / 팩토리나인 / 2020년 6월
평점 :
절판




‘환락송歡樂頌’은 주인공들이 사는 아파트 이름이자, 베토벤의 교향곡 ‘합창’에 등장하는 ‘환희의 송가TO ODE TO JOY’를 이르는 말이다.

소설 『환락송』은 하이시라는 대도시를 배경으로 환락송 아파트 22층에서 함께 살게 된 다섯 여자의 우정과 사랑 그리고 일과 삶에 대한 에피소드들을 담고 있다.

환락송 아파트 한 채를 빌려 룸메이트로 함께 살고 있는 판성메이, 관쥐얼, 츄잉잉은 옆집에 새로 이사 온 취샤오샤오, 앤디와 만나게 되고, 각종 사건사고를 겪으며 이웃에서 절친이 된다. 이들은 각각 성격도, 집안도, 직업도, 연애관도 다르다. 겉으로는 대도시에 사는 멋있는 커리어 우먼 같지만, 화려해 보이는 이면에는 각자 아픔과 고충을 가지고 살아간다.

『환락송』은 조회수 183억 뷰를 돌파하며 ‘직장인 퇴근시간을 앞당긴 드라마’로 불린 같은 이름의 드라마 ‘환락송歡樂頌’의 원작 소설이다. 드라마 ‘환락송’은 시청자들의 요청에 힘입어 시즌 2까지 방영될 정도로 큰 사랑을 받았고, 방송 1주일 만에 주요 온라인 동영상 사이트의 조회수가 30억 뷰를 돌파, 방송 5주차까지 평균 클릭수가 200억 회에 달했다는 게 출판사의 설명이다.





각자 다른 환경과 다른 조건에서 나고 자란 5명의 여자가 대도시 하이시 그중에서도 환락송이라는 아파트 22층에 이웃하며 살게 된 계기로 서로 친해지게 되지만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가 아니다 보니 서로 다른 개성과 성격이 가끔씩 마찰을 빚기도 하지만 모두가 미혼이며 독립해서 살고 있고 직장에 다니는 커리어 우먼이라는 공통점이 이들을 뭉치게 했다.

어릴 적 고아원에서 자라 미국으로 건너가 성공한 커리어 우먼인 앤디는 자신의 기억에만 남아있던 남동생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이곳 중국으로 건너와 환락송 22층에 살게 되지만 어릴 적 봤던 엄마의 모습... 즉 남자에 미쳐 모든 것을 버리고 끝내는 정신까지 놔버린 그 모습이 트라우마로 남아 남자를 사귀는 데 걸림돌로 작용한다.

그래서 아름다운 외모에 뛰어난 능력을 가졌으면서도 변변한 연애를 해 본적도 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지만 우연이 한 채팅방에서 만난 사람인 필명 특이점과는 마음이 통하고 처음부터 편하게 느껴져 자신의 처지를 모두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감정을 알지 못해 당황하고 있다.




또 다른 여자 판성메이는 자신이 일하는 직장에서는 나름대로 인정받는 커리어 우먼이고 어떤자리에서도 자신을 돋보이게 할 줄 아는 관록이 있지만 자신의 뛰어난 미모를 이용해 부잣집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 오랜 숙원이기에 항상 소개팅이나 맞선을 보고 있다.

그리고 그런 판성메이를 경멸하는 부잣집 외동딸 취샤오샤오는 학창 시절을 비롯해 유학 생활 중에도 재벌인 부모를 믿고 마음껏 자유로운 생활을 하다 배다른 오빠들에게 아빠의 회사를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에 급히 귀국해 이곳 환락송에 자리 잡고 앤디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회사를 차려 잘나가고 있는 중 그녀에게 있어 자신의 외모만 믿고 남자로부터 명품 선물을 받기 위해 웃음을 팔고 틈을 노려 남의 자리를 뺏는 것도 개념치 않는 여자를 혐오하고 있는데 그녀에게 판성메이는 그런 유형의 여자이기에 둘 사이는 계속 삐걱거린다.

연애다운 연애를 제대로 해보지 못해 회사 내 직장 상사와 한순간 뜨거운 사랑을 했던 또 다른 여자 추잉잉은 그 팀장의 실체를 깨달은 것과 동시에 직장에서도 잘리는 불운한 신세가 되지만 22층 여자들의 격려에 힘 있어 재취업에 성공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마지막 관쥐얼은 넉넉한 집안에 태어나 부모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사람답게 모든 것에 온화하고 둥글둥글해서 다른 4명의 지지를 받지만 그런 이유로 오히려 뚜렷한 개성이 없다. 지금 다니는 직장의 인턴생활에 고가의 점수를 받아 그대로 취업에 성공하고픈 마음뿐...

이렇게 5명 모두는 각자의 개성과 성격에 맞게 일도 사랑도 열심히지만 열심히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닌 것이 인생 모든 것에 느긋했던 관쥐얼이 첫눈에 반한 상대가 알고 보니 취샤오샤오와 현재 뜨거운 사이고 모처럼 자신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 옛날 동창과 서로 거짓말을 한 게 드러나 이별의 아픔을 겪고 있는 판성메이는 가족문제까지 겹쳐 최악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앤디 역시 오랫동안 찾았던 동생의 모습을 확인한 후 자신에게도 정신병이 발병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다가오는 특이점과의 사이가 쉽지 않다.

이렇게 5명 각자의 캐릭터에 대한 설명과 그녀들이 현재 안고 있는 문제의 맛보기를 보여준 게 1권이라면 2권에서는 본격적인 그녀들의 이야기가 펼쳐질듯하다. 요즘 세대들의 취향에 맞게 각자 개성도 강하고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말할 줄 아는 그녀들의 이야기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다.


“누가 일찍 결혼한대? 여자는 말이야. 연애할 때가 황금기야. 연애 기간을 최대한 늘려서 황금기를 오랫동안 누려야 해.”

환락송 22층에 2201호와 2203호에 새로운 주인이 입주하며, 다섯 여자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복오빠와 경영권을 놓고 경쟁하던 취샤오샤오는 입찰 PT 기회를 따게 되고 앤디의 도움으로 사업 입찰권까지 따게 된다. 회사에서 짝사랑하던 바이팀장과 사귀게 된 추잉잉은 사랑에 눈이 멀어 이성적이지 못한 가운데 결국 상처만 받고 회사에서도 해고를 당하게 된다. 관쥐얼은 연말 성과평가로 정규직 전환의 기회가 주어지는 인턴직원으로 사랑보다는 지금 현재에 집중하며, 매일매일을 야근으로 지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앤디는 자신의 과거를 찾기 위해 하이시로 돌아왔다.

인터넷으로 알고 지냈던 친구 특이점(웨이웨이)과 오프라인 만남을 가지면서 사랑이라는 감정이 뭔지도 모른 채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특이점과 연인이 된다. 하지만, 그녀는 언제가 나타날지 모르는 자신의 발작증세로 인하여 특이점을 밀어내기만 한다.

대학시절 판성메이를 좋아했던 왕바이첸은 중소기업 사장님이 되어 그녀 앞에 나타나지만 아직 부족한 그의 조건과 끌리는 마음 사이에서 쉽게 결정내리지 못한다. 게다가 그의 차가 렌트카라는 사실을 취샤오샤오를 통해 알게 되자 더욱 자존심이 상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 다른 돈 많은 남자와도 데이트를 한다.

병원에서 우연히 만난 의사선생님에게 한 눈에 반한 취샤오샤오는 그를 남자친구로 만들기 위해 여우같은 작전에 돌입하게 되는데….





얼음주머니의 찬 기운에 앤디가 서서히 안정을 되찾았다. 그녀가 가까스로 힘을 내어 말했다.

“쭝밍, 얘기해.”

탄쭝밍이 어두운 얼굴로 책상 위에 있는 파일을 열었다. 그는 앤디의 식은땀을 닦아주고 있던 가사도우미를 내보내고 서재 문을 닫았다.

“정신병원에서 사람을 찾지 못했어. 그런데 옌뤼밍이 그 근처 복지시설을 조사하다가 한 요양원요양원에서 너와 DNA가 거의 일치하는 남자를 찾았어. 너와 혈연관계인 걸로 보여. 이 사진 속의 남자야. 잘생겼어.”

“어떻게 요양원에 있지?”

“자라면서 정신지체 성향이 나타나서 가족들이 먼 곳에 버렸다는군. 공안국에서 찾아서 집에 돌려보냈지만 가족들이 다시 어느 요양원에 돈을 주고 맡겼대. 얼마 후부터 가족들이 보내는 돈이 끊겼지만 요양원에서 어쩔 수 없이 계속 데리고 있었던 거야. 성격이 온순하고 기억력이 비상하대. 특히 숫자를 잘 기억한다는군.”

다시 앤디의 손이 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이 가진 숫자에 대한 비상한 기억력이 정상이 아니라고 의심하고 있었다. 그 의심이 사실로 입증된 것이다. 앤디가 이렇게 큰 충격을 받을 줄은 탄쭝밍도 예상하지 못했다.

“병원에 가보자.”

“싫어. 싫어. 안 갈래. 날 정신병원에 보내지 마.”

앤디가 바들바들 떨며 몸을 바싹 웅크려 소파 모퉁이로 파고들었다. 탄쭝밍이 앤디를 와락 품에 안았다. 그는 이것이 두 사람 사이의 신사협정을 위반하는 행동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한참 후 앤디의 떨림이 잦아들었다. 앤디가 탄쭝밍의 품에 안긴 채 말했다.

“쭝밍, 나도 실성하게 될까?”

탄쭝밍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런 일은 없어. 지금까지 아무 문제도 없었잖아.”

「6장」 중에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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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건 일레븐
폴 켄고르 지음, 조평세 옮김 / 열아홉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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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널드 레이건은 미국 제 40대 대통령이다. 역대 미국 대통령 중 가장 존경 받는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는 보수주의자다. 냉전시대 구 소련과의 정치, 이념, 경제 등 대결에서 소련을 무너뜨렸다고 평가 받는 대통령이다. 자본주의가 공산주의를 이겼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지만 '미국 보수의 힘으로 공산체제 소련을 무너뜨렸다'고 분석하는 게 일반적이다. 레이건 이후 당선된 대통령은 모두 레이건의 대통령직 수행을 성공적이다고 입을 모은다.

당이나 이념 성향에 관계없이 미국 국익이나 국력 신장에 엄청난 기여를 한 대통령으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대부분 보수주의가 구 소련 공산주의를 이긴 게 아니고 '레이건 보수주의(원칙과 가치에 기반한)'가 구 소련 공산제체를 무너뜨린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레이건은 스스로를 ‘위대한 소통가’라기 보다 ‘위대한 것들’을 소통했다고 평했다. 열아홉출판사의 첫 번역서인 『보수주의자의 양심』의 저자이자 미국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대통령 낙선자였던 공화당 후보 배리 골드워터는 대선에서 참패했지만, 그 패배의 원동력은 16년 뒤 레이건을 대통령으로 탄생시켰다. 레이건은 운명과도 같은 골드워터의 대선 찬조 연설 ‘선택의 시간’을 통해 화려하게 정치 무대에 데뷔했던 것이다.

그 연설에서 그는 200년 전 국부들의 독립정신과 건국이념으로 다시 돌아가 보수주의의 대담하고 미래지향적인 의제를 이야기했으며, 원칙과 가치를 재발견했다.







정부가 확대될수록 자유는 축소된다. 레이건은 과도한 세율과 이 세금이 키우는 거대정부라는 괴물이 ‘살며시 진행되는 사회주의creeping socializm’의 징후라고 보았다. 감세 그 자체가 바로 레이거노믹스의 본질적인 요소였다. 또 보수주의자는 결혼이나 가정과 같은 제도를 보전하고 진보주의자는 그것을 바꾸려 하기에, 레이건은 우리가 공유하고 소중히 여기는 가치들을 보전해서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가정의 역할이 공고해져야, 가장 연약한 존재인 태아의 존엄이 보호받는다고 믿었다.



대한민국 국민은 과연 지금 누리고 있는 자유와 번영의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을까? 철저히 실패한 거짓 유토피아(북한)의 모습을 가까이 보면서도, 김씨 왕조의 폭정에 저항하지 못하는 처참한 북한의 인권을 외면하며 서서히 사회주의로 기울고 있는 현실 앞에서 말이다.

스탈린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나라이자, 무신론 공산주의를 종교로 삼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민들의 존재와 의식까지도 국가가 통제하는, 이 기이한 형태의 신정체제는 희망의 땅 대한민국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자유에 대한 갈망은 공산권에서 가장 목말라 하는 것이지만, 자유세계에서도 많은 사람이 자유의 가치를 모르고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 로널드 레이건의 시대에도 자유인들에게 그들이 누리는 자유가 무엇인지 지속적으로 이해시키고 재확인시켜주어야 했다.








각자의 방식대로 그들의 삶을 만들어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상식과 예절, 과거에 일어난 일들에서 무언가를 기꺼이 배우려는 의지, 우리의 양심이 알려주는 삶의 태도이자 보편적 가치가 바로 레이건이 말하는 보수주의다. 개인은 국가보다 언제나 우선하며 모든 개인은 특별하고 유일무이하다.

때문에 레이건에게 영원하지 않은 국가가 영원한 개인을 부정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개인의 희망과 자유가 있는 땅에서 ‘아메리칸 드림’은 그 빛나는 도성에 들어오고자 하는 의지와 마음이 있는 이들에게 모두 열려있었다. 1980년대 미국인이란 곧 자유를 위해 일어서는 사람을 의미했다. 레이건에게 미국은 인류가 늪에서 긴 여정을 시작할 때부터 인간의 영혼에 깊이 자리했던 ‘자유의 열망’이라는 이미지의 원형 그 자체였다.








1981년 1월, 레이건이 대통령으로 취임했을 무렵 미국은 베트남 전쟁의 후유증과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에 허덕이며 자유세계의 동맹으로도 신뢰받지 못하고 있었다. 소련의 철의 장막 뒤에서는 포로가 된 국가들이 공산주의 폭정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그는 제한된 정부, 전통적 가족관, 강력한 국방을 통해 힘 있는 평화를 지켜냈다. 그리고 소련의 내폭을 이끌어내 냉전을 성공적으로 종식시켰다. 큰 정부와 공산주의, 높은 세금과 규제들을 단순히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유를 위한 투사가 되자고 호소했다. 마르크스는 종교를 대중의 아편으로 여겨, 무신론이 시작하는 곳에서 공산주의가 시작된다고 믿었다. 레닌은 ‘종교보다 더 고약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공산주의에게 종교는 경멸과 파괴의 대상이었다. 레이건은 신앙에 기초한 낙관주의로, 마르크스-레닌의 무신론적 공산주의에 대항해 싸웠다.







"이 책은 지금의 한국 보수에 꼭 필요한 가치관 회복의 이정표를 너무도 잘 제시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보수주의도 과거 1940~50년대에, 지금의 한국 보수만큼 좌절하여 무릎 꿇린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 미국은 가치관을 포기하지 않고 200년 전 미국의 독립정신과 건국이념을 보수주의라는 이름으로 회복해 우뚝 세워냈습니다. 현대 미국 보수주의 운동사를 잘 공부하면 한국 보수주의 회복의 로드맵이 그려집니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레이건이 말한, 그리고 한국 정치가 잃었던 ‘원칙 있는 정치principled politics'와 ’정치적 원칙political principle'이 바로잡힐 것입니다.

부디 이 책을 통해 한국 보수가 진정한 보수주의를 회복하길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를 또다시 종의 멍에에 옥죄려 하는 국내외에 도사린 전체주의 세력으로부터, 개인의 자유와 신앙의 자유, 그리고 창조주가 주신 가정이라는 사회의 기초 질서를 반드시 지켜낼 수 있길 기도합니다."(- 옮긴이 글 중에서)

옮긴이의 글이 일부만 발췌돼 자칫 오해의 소지가 있어 독자의 말을 얹습니다.

원칙과 가치가 지켜지는 보수주의가 대한민국에 자리잡을 때 비로소 우리 정치는 제 길을 갈 수 있다. 대한민국 국민은 보수주의가 옳다, 진보주의가 옳다를 판단하지 않는다. 그들이 나라를 위해 얼마나 더 열심히 정책을 개발하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느냐만 판단한다. 지금 대한민국 보수는 원점에서부터 철저히 성찰하며 재건의 밑바탕부터 다진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정치가 살 길이고 우리 국민을 위한 길이다.



“각자의 방식대로 그들의 삶을 만들어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상식과 예절, 바로 이것이 오늘날 미국 보수주의의 핵심입니다. 보수주의의 지혜와 원칙들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뿐 아니라 과거에 일어난 일들에서 무언가를 기꺼이 배우려는 의지에서 비롯됩니다. 보수주의는 사람들이 한 세대, 혹은 열 몇 세대 정도에 걸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인류가 지금까지 경험해온 모든 것을 종합해 발견한 것을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보수주의의 원칙이 옳을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p. 39)


“사람들이 예배하고, 창조하고, 건설할 자유가 있을 때만이, 그리고 그들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하고 그들이 감수한 위험을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을 때만이 사회는 원동력을 얻고 번영할 수 있습니다.”(p. 52)


자유는 소멸되기까지 결코 한 세대보다 멀리 있지 않습니다. 자유는 계속해서 싸워내고, 지켜내고,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어야 합니다.(p. 64)





“하지만 모세가 광야의 위험을 감수하기보다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계속 노예로 살라고 말해줘야 했을까요?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거부했어야 할까요? 콩코드 다리에서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세계에 울렸던 그 총소리를 울리지 말았어야 할까요? 우리는 역사의 모든 순교자들이 다 헛되이 죽었다고 믿어야 하는 것입니까?.”(p. 96)


“우리는 세상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힘이 있습니다.”(p. 96)


“영어에서 가장 무서운 9개 단어는 ‘I'm from the government and I'm here to help(정부에서 나왔습니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입니다.”(p. 126)




“우리는 우리의 아들들과 딸들을 전쟁에 보내지 않기 위해서 국방을 키우고 있는 것입니다.”(p. 135)


“소련 체제는 지난 수년 동안 의도적으로 자신의 국민을 굶기고 살해하고 괴롭혔습니다. 수백만이 죽임을 당했고, 그 모든 사실은 역사책에 명백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는 시민들을 정신병동에 수감하고, 때로는 무의식 상태가 될 때까지 약을 투여했습니다. 이런 짓을 자행한 체제가 어떻게 악하지 않다는 것입니까? 악하다면 왜 우리는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까?”(p. 144)


“세상을 바라보는 두 세계관은 계속해서 충돌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세계관은 모든 사람이 사랑의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고 그 창조주는 우리에게 자유라는 축복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에이브러햄 링컨이 말한 세계관이지요. 두 번째 세계관은 종교가 대중의 아편이라고 믿습니다. 그것은 진리, 자유, 민주제와 같은 영원한 원칙들이 국가의 변덕에 불과할 뿐 그 이상의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믿지요. 이것이 레닌의 세계관입니다."




저자 : 폴 켄고르(PAUL KENGOR)


그로브 시티 칼리지의 정치학 교수이자 동 대학 소재 CENTER FOR VISION&VALUES의 소장이며, 스탠퍼드대학교 후버연구소의 방문연구원으로 있다. 〈USA 투데이〉 〈뉴욕타임스〉 〈내셔널리뷰〉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글을 기고했고 폭스뉴스, BBC 등 다양한 라디오 및 TV 프로그램에 해설자로 출연하고 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 대한 세계적인 전문가로서 레이건 도서관, 레이건 목장센터, 미국 장로교, 프레스클럽, 헤리티지재단, CPAC 등에서 여러 해 동안 강연했고, 레이건의 잘 알려지지 않은 면모를 소개한 그의 저서 〈레이건의 십자군〉 〈하나님과 로널드 레이건GOD AND RONALD REAGAN〉은 과거 공산주의 국가들을 포함한 많은 국가에서 번역 출간되었다.피츠버그대학교의 공공 및 국제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아메리칸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그리고 프랜시스칸대학교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서부 펜실베니아 출신으로, 아내와 일곱 명의 자녀를 슬하에 두고 펜실베니아 그로브 시티에 거주하고 있다.


역자 : 조평세


초등학교를 마치기 전 한국을 떠나 인도와 영국에서 학창생활을 보냈다. 영국 킹스칼리지런던KCL에서 종교학(BA)과 전쟁학(MA)을 전공하고,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을 다니며 유엔평화유지군 및 구호활동가로 일했다. 그러던 중 어느 탈북민의 수기를 잃고 마음이 움직여, 곧 다가올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 19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 고려대학교에서 북한학 박사과정을 취득했다. 현재 보수주의 청년운동단체인 트루스포럼의 연구위원으로 있으며 사미즈다트 코리아(SAMIZDATKOREA.ORG)를 운영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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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코르뷔지에 - 건축을 시로 만든 예술가 클래식 클라우드 23
신승철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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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는 지금까지 모두 25번째 발간한 것으로 안다. 전부 다 읽거나 보관하고 있진 않지만 예술에 대한 남다른 해석이 있는 것 같다. 비평 쪽이라기보다는 안목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이 책이 25번째가 아닌가 한다.

그동안 발간한 작품을 모두 열거할 수는 없지만 최근 발간한 것은 모두 읽고 보관하고 있어 남다른 애정이 있다. 페이메이르나 코난 도일 등의 화가, 작가 등 많은 작품이 매우 인상적이어서 알게 된 클래식 클라우드는 이젠 가장 아끼는 책들이 됐다. 이 책 역시 그 중의 한 권으로 다 읽고 난 다음 가장 좋은 자리에 꽃힐 것이다. 내용은 물론 대상 예술가나 저자, 책 표지까지 정말 아름답다. 이렇게 예쁘고 좋은 책을 먼 훗날 디지털 기록으로만 남을 것 같은 아쉬움이 크다. 그래도 보관하면 훗날(지금도 그렇지만) 우리 시대 좋은 책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 분들로 기억될 것이다.

독자는 건축에 대해 문외한이나 다름없다. 학교에서도 다른 것을 전공했고, 이후 사회생활 할 때도 건축 관련 책은 많이 읽은 것 같지 않다. 간혹 미술사는 물론 세계사에 등장하는 건축물에 대한 것들은 해설서나 찬양하는 책만 읽은 것 같다. 물론 찬양할 만한 건축물임에는 틀림없다.

옛 로마 건축물이나 중세, 근대, 현대에 이르는 동안 수많은 건축물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물론 해외여행 패키지로서다.

르코르뷔지에는 이름만 들어본 기억이 있다. 그에 대한 책은 그래서 낯설지만 정감이 간다. 건축만을 위해 평생을 살고 싸웠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앙드레 말로는 근대건축의 선구자 르코르뷔지에의 인생을 한두 문장으로 응축해 표현했다고 한다.

“그는 화가이자 조각가, 그리고 남몰래 시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로지 건축만을 위해 투쟁했습니다. 건축은 인간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겠다는 그의 막연하고 열정적인 희망이 투입된 유일한 분야였기에 그는 열과 성을 다했습니다.”

스위스 태생의 프랑스 건축가인 르코르뷔지에(1887∼1965)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통과하면서 소수 특권 계급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기존의 건축에서 벗어나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집을 주기 위하여 일생 분투했다.

『르코르뷔지에』의 신승철 저자에 따르면 르코르뷔지에는 ‘집은 살기 위한 기계’라는 모토 아래 불필요한 장식을 배제하고 한층 기능적이고 효율적인 공간을 선보임으로써 건축의 대량생산과 표준화를 가능하게 했다. 이를 위한 수단이 바로 그의 트레이드마크 가운데 하나인 ‘돔이노 구조’다. 몇 개의 기둥과 슬래브만으로 단순하게 구성된 이 구조는 주택의 대량생산을 꿈꾸던 그에게 효율적인 수단이 되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향후 현대건축의 기본 구조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이 구조를 바탕으로 ‘새로운 건축의 다섯 가지 원칙’을 천명했으니, 우리에게 친숙한 필로티 구조를 비롯하여 옥상정원, 수평창, 자유로운 평면, 자유로운 입면이 그것이다. 이 원칙은 그때까지 건축가마다 공법과 미의 기준이 제각각이었던 건축을 표준화, 규격화하는 데 크게 공헌했으며, 오늘날에도 이 원칙을 따르는 건축물을 쉽게 볼 수 있을 만큼 후대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 책은 크게 르코르뷔지에가 파리에서 ‘새로운 정신Esprit Nouveau’을 표방하며 건축가로 자리 잡기까지를 다룬 전반부와, 그의 대표적 건축물이 있는 공간 여행을 통해 예술 세계를 짚어보는 후반부로 나누어진다. 르코르뷔지에는 스스로 지중해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의 고향은 바다와는 거리가 먼 알프스 산간 마을인 스위스 라쇼드퐁이다. 시계 산업으로 유명한 이곳에서 그는 처음에는 시계 장식가인 아버지와 같은 길을 가려 했지만, 그의 남다른 재능을 눈여겨본 스승의 강력한 권유로 건축이라는 낯선 세계에 첫발을 내디디게 되었다. 스무 살이 되어 고향을 처음으로 벗어나기 전까지 소년 르코르뷔지에는 인근의 대자연 속에서 ‘숲의 인간’으로 길러지면서 대지에 대한 감각을 체화했다.

이후 아직 본격적으로 전문 건축가의 길을 걷기 전인 20대의 르코르뷔지에는 주로 여행을 통해 건축을 익혔다. 여행은 건축 학위도 자격증도 없던 그에게 그것을 대신하는 징표가 되어주었다. 특히 사적 영역과 공용 공간이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불필요한 것이라고는 하나 없으며, 아름다운 풍경까지 감상할 수 있는 이탈리아 갈루초의 에마수도원은 그에게 건축의 이상적 모델을 제시했고, ‘동방 여행’을 하면서 마주한 아크로폴리스의 고대 신전은 시공을 초월한 생명력과 예술을 본질을 맛보게 하면서 그를 진정한 건축가로 거듭나게 했다.






책에 따르면 르코르뷔지에는 파리에 정착하면서 화가 오장팡과 함께 장식으로 얼룩진 큐비즘 대신 기하학적이고 간결한 형태를 강조한 ‘순수주의’를 표방하며 전후 예술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이 순수주의의 연장선상에서 그는 자동차나 비행기 같은 당시 새롭게 부상하고 있던 기계들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면서 ‘집은 살기 위한 기계’라는 다분히 급진적인 주장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기계로부터 ‘새로운 정신’을 배우자는 그의 주장은 문화 엘리트층으로부터 호응을 얻으면서 점점 큰 영향력을 확대해갔다.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건축을 오랫동안 고민해오던 르코르뷔지에는 새로운 건축을 위한 다섯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그리고 이 원칙을 푸아시의 언덕 위에 짓게 될 빌라 사보아에 적용했다. 필로티 구조는 건물을 지열과 습기로부터 보호했고, 옥상정원은 추위와 더위를 막아주었으며, 자유로운 평면과 입면은 공간 구획을 자유롭게 했고, 수평창은 집 안을 밝게 하고 외부 풍경을 파노라마처럼 감상할 수 있게 했다.

이로써 빌라 사보아는 근대 건축의 기념비로 남게 되었다. 비록 집주인은 물이 새는 문제로 큰 고통을 겪었고, 이로 인해 르코르뷔지에는 건축은 예술이기 이전에 삶의 터전이라는 사실을 뼈아프게 절감해야 했지만 말이다. 이후 그는 삶을 편안하게 하고 사람들의 관계를 가깝게 해주는 ‘행복의 건축’을 화두로 삼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겪고 난 뒤에는 난민 문제와 주택난이 심각하게 대두되었다. 이에 르코르뷔지에는 1600명가량이 함께 살 수 있는 거대한 아파트인 위니테 다비타시옹을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마르세유의 언덕 위에 선보였다. 사람들은 잘 짜인 유닛에서 편안한 생활을 했고, 도시 기능이 집약된 건물 내에서 더불어 사는 삶의 기쁨을 누렸다. 이로써 그때까지 주로 소수 재력가들의 차지였던 건축은 보다 많은 인민들을 위한 것이 되었다. 건축의 모더니즘은 그렇듯 인민을 위해 시작되었다.

르코르뷔지에의 건축은 후기로 접어들면서 극적인 변화를 보여준다. 이전의 직선적이고 기하학적이며 합리적인 건축에 자유로운 형태들이 섞여들면서 예전에는 찾아볼 수 없던 곡선과 부드러운 형상이 관찰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롱샹성당이다. 대지와 자연의 울림에 공명하듯이 음악처럼 유려하고 아름다우면서도 기이하고 모호한 형태의 이 건축물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따뜻하고 시적인 감흥을 느끼게 한다.

살기 위한 기계로서의 집은 르코르뷔지에의 뛰어난 예술적 재능에 힘입어 이제 시를 닮은 건축으로 아름답게 빚어졌다.

딱딱하고 차가운 기술에 예술을 덧입힐 줄 알았던 그의 건축 세계는 내용 없이 형식만 남은 현대건축과 도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에 대한 관심이 여전히 식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르코르뷔지에의 무덤은 그의 건축만큼이나 세속적이다. 그는 일생 편안하고 안락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특히 노동자계급을 위해 집을 지었다. 동료 건축가들이 부유층을 위한 고급 주택을 지을 때 작은 공간에서 최대한의 편의를 누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던 그는, 모든 사람에게 사적 공간을 제공하려 했고, 이것이 행복의 기초가 된다고 믿었다.


르코르뷔지에의 납골묘는 푸른 하늘과 지중해를 향해 열려 있다. 경사진 그의 묘비는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곳을 가리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가 꿈꾸었던 건축의 감동은 여기서 성취된다. 그의 영혼이 살아 숨 쉬는 아름다운 자연과, 그의 유골을 품은 소박한 콘크리트 구조물, 그리고 그가 일생 추구한 ‘햇살 아래 아름다운 형상’은 이곳에서 조화롭게 공존한다.

「프롤로그」 중에서





에두아르는 1950년대 마르세유에 ‘위니테 다비타시옹Unite d’Habitation’이라는 아파트를 세우면서 이 수도원을 모델로 삼았다.

그가 “현대 도시”라 부른 에마수도원은 건축이 어떻게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개인의 자유와 사회생활의 조화, 합리적이고 기능적인 공간과 구조, 아름다운 풍경과 효율적인 동선 등 수도원의 모든 요소들이 훗날 마르세유의 집합 주거 건물에 담겼다. 수도원은 일생 건축가의 이상적인 모델로 자리 잡았다. 그는 갈루초에서 처음으로 인간의 삶을 건축의 형태로 구현하기 위한 고민을 시작했다.

아름다움과 장식뿐만 아니라 건축의 효용에 대해 사유하면서 그는 비로소 건축가로 거듭나게 되었다. 갓 스무 살이 된 청년은 그렇게 건축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02 미래를 위한 여행」 중에서


페레 사무소에서 에두아르는 대단히 중요한 시기를 보냈다. 그의 손을 거친 도면은 한결같이 장식미술의 미래에 의문을 던지고 있었다. 라쇼드퐁에서 본 세상과 도면 속 세상은 너무나 달랐다. 그에게 선택의 시기가 왔다. 고향에서 마치 종교처럼 신봉했고 그 중심지인 빈에서 오히려 그 이면을 보게 된 장식미술 대신, 그는 ‘새로운 예술’을 하고 싶어 했다. 이것은 취향이 아닌 생존의 문제였다.

「03 새로운 예술을 찾아서」 중에서





아토스산은 끝없이 높았고, 바다가 반사하는 빛 때문에 산 밑은 마치 빛 한가운데에서 부유하는 듯했다. 그것은 마치 무한의 공간을 떠다니는 듯한 인상이 들게 했다. 그는 “철근과 콘크리트를 강렬한 카덴차로 혼합하기를 꿈꾸며 이곳까지 밀려왔다”. 아토스산은 그런 그를 위로했고, 무엇보다 지친 삶에 숭고한 의미를 부여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미사, 노동, 묵상, 공동 식사, 손님 접대 같은 수도사의 삶은 그 자체로 상징적인 종교 활동이었는데, 에두아르의 건축 역시 그래야 했다. 수도사에게 빵이 그리스도의 몸인 것처럼, 철근콘크리트 건축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닌 삶을 위한 성전이 되어야 했다. 그는 이곳에서 영혼을 위한 건축과 마주했다.


지금껏 에두아르는 새 시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건축을 하고자 했다. 아크로폴리스는 그런 그에게 분명한 방향을 보여주었다. 그는 추한 진보가 아니라 조화로운 예술에 대한 강렬한 열망에 사로잡혔다. 그는 메마른 이론만을 설파하는 혁명가가 되기보다는 건축으로 진리를 드러내겠다는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 밝은 태양과 드넓은 바다, 고색창연한 빛을 뿜어내는 대리석과 기하학 형태들, 그리고 언덕 위 하얀 신전. 이 앞에서 더 이상의 문명 탐구는 필요하지 않았다.

「04 동방 여행」 중에서




두 예술가는 간결하고, 순수하고, 시간을 넘어 지속될 수 있는 보편적인 예술을 추구했다. 그들은 이에 ‘순수주의Purisme’라는 이름을 붙이고, 각종 전시와 비평문을 통해 소개했다. 여러 이념이 충돌하는 선전 선동의 시대를 살았던 두 예술가는 프로파간다의 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선전 전단을 만들어 세상에 뿌리는 대신 1920년 10월 새로운 예술 잡지인 《에스프리 누보》를 창간했다. 1920년 10월 창간되었다. 두 사람은 이 잡지를 통해 ‘새로운 정신Esprit Nouveau’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05 새로운 정신」 중에서


르코르뷔지에는 혁명적인 건축가였다. 그는 주거 공간을 혁신해 삶의 모습을 바꾸려 했다. 시대가 변했지만 당시 집들은 여전히 춥고, 어둡고, 비위생적이었다. 급속한 산업화와 전쟁의 여파는 그만큼 컸다. 인구 과밀로 도시가 슬럼화되었고, 전쟁은 낙후된 집마저 남겨놓지 않았다.

르코르뷔지에는 돔이노 같은 효율적인 건설공법을 고민하는 동시에 위생, 난방, 조명 등의 생활 요소를 원점에서 재검토했다. 건축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그는, 주택을 공급하고 이를 통해 현대적인 생활 방식을 제안했다.

「06 행복의 건축」 중에서


빌라 사보아는 르코르뷔지에의 자랑스러운 대표작이었다. 건물은 아름다웠고 필로티, 옥상정원, 수평창 같은 혁신적인 요소들을 조화롭게 담고 있었다.

하지만 쏟아지는 비가 모든 것을 뒤바꾸어놓았다. 비가 새는 집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는 필로티, 자유로운 평면, 자유로운 입면, 수평창, 옥상정원을 근대건축의 다섯 가지 요소라고 주장했지만, 줄줄 새는 비 앞에서 그것은 한갓 허황된 관념에 지나지 않았다.

「06 행복의 건축」 중에서




그는 건축가이기 이전에 매일 그림을 그리는 화가였고, 아름다움을 대단히 중시했다. 그의 주택은 편리한 기계이면서 예술이 되어야 했고, 무엇보다 시적인 감상을 불러일으켜야 했다. 그는 이를 ‘건축의 시학’이라 불렀다.

「07 모두를 위한 집」 중에서


저자 : 신승철


베를린 훔볼트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같은 학교 이미지행위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현재 강릉원주대학교 조형예술ㆍ디자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학과 미술 이론, 건축 이론을 연구하고 있으며, 이미지 문제를 중심으로 예술과 과학, 인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활발한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바이오 아트 : 생명의 예술』 , 『시뮬라크룸에서 이미지 존재로: 가상 예술의 도상파괴주의』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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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있든 나는 나답게 - 전 아사히신문 기자 나리카와 아야의 슬기로운 한국 생활
나리카와 아야 지음 / 생각의창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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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친척이 사는 사람은 괜찮게 사는 사람"이란 말이 있던 시절이 있었다. 여기서 시절은 1960~1980년대, 외국이라면 주로 미국을 의미하는 것이었지만.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은 친척 중에서 찾을 필요도 없이 주변 친구나 동료들 중에 이민 가서 사는 사람이 많다. 없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그만큼 세계화되고, 우리나라도 경제적으로 선진국 대열에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다. 이때문에 예전처럼 일하러 외국에서 사는 사람보다 아예 그 나라 환경이 좋거나 생활비가 싸게 먹혀 외국으로 이민 가는 사람이 더 많다. 그곳 공기나 자연 환경이 좋다고 장기 체류하는 사람도 많다. 대상국은 주로 우리보다 가난한 나라들이다.

최근엔 '외국에서 한 달 살기'라는 여행 풍습이 생길 정도로 지구촌이란 말이 실감나는 시대다. 코로나 이전까지만 해도 그렇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대한민국의 의료 수준이나 방역 문제, 국가 경제, 복지 문제 등이 오히려 선망하던 외국에서 우리나라로 오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는 말에 은근히 어깨에 힘도 들어간다. 코로나로 주눅들어 집안에서만 지내는 사람들에게 자부심과 '그래도 내 나라가 제일 낫다'는 말도 린다.

독자는 외국으로 이민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기회도 있었지만 싫어서 거부했다. 가장 문제는 체력이나 체질이 외국과 잘 안 맞는다는 생각이다. 언어도 잘 안 되지만... 여기서 특별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외국에서 살 필요성을 못 느낀다가 가장 근사한 답이다.



여기 잘 나가는 일본의 신문사 기자직을 때려치우고 혈혈단신 한국으로 건너온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아사히신문 기자 출신 저널리스트 나리카와 아야(成川彩)다. 그녀가 아사히신문을 그만둔 것은 한국과 한국 영화에 대한 애정 그리고 관심 때문이었다. 9년 넘게 아사히신문 기자로 일하면서 다양한 분야의 기사를 써온 그녀는 “좋아하는 한국 영화를 마음껏 보고 배우기 위해” 과감하게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뒀다.

그리고 동국대학 영화영상학과 석사 과정에 입학해 ‘1년만’ 유학하고 오겠다는 처음 생각과는 달리, 벌써 4년 차 ‘한국 생활자’로 살아가고 있다.

나리카와 아야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품기 쉬운 ‘일본 사람’이라는 선입견을 깨게 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막걸리와 해장국을 즐겨 먹고, 일산호수공원 산책을 좋아하는 소탈한 ‘한국 생활자’다. 어딘가 도도하고 벽이 있을 것 같다는 지레짐작이 무색하게 다정하고 다감하다.

그러나 그런 면모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다. 그녀는 아사히신문 기자 출신답게 사회 현상의 배경을 꿰뚫어보는 예리한 통찰력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한국어와 일본어, 두 언어로 수려하게 풀어낼 줄 아는 ‘글쟁이’기도 하다.



이 책 『어디에 있든 나는 나답게』는 ‘글쟁이’이자 ‘한국 생활자’인 나리카와 아야가 예리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써내려간 중앙일보 칼럼을 단행본으로 엮은 것이다. 중앙일보에 ‘나리카와 아야의 서울 산책’과 ‘전 아사히신문 기자의 일본 뚫어보기’라는 제목으로 연재된 칼럼은 조금이라도 양국 간의 이해의 폭이 넓어지기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됐다. 그래서 단행본으로 엮으며 새로운 내용이 추가되고 보충됐어도 그 기저에 흐르는 주제는 여전히 ‘일본인이 바라본 한국과 한국 사람’이다. 한국에 사는 일본인이 한국과 비교하며 일본을 깊이 꿰뚫어보고 있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자 특징은 한국인보다 한국어를 더 잘하는 일본인이 한국어로 직접 쓰고, 또 한국에서 발행하는 책이라는 점이다.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한·일 관련 보도는 정치와 역사 문제가 주를 이룬다. 그러나 그 보도에는 실제로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의아하게 여겨지는 부분이 많은 듯하다. 이 책의 저자 나리카와 아야는 자신이 직접 생활하며 느낀, 그러니까 있는 그대로의 한국과 일본의 모습을 담담하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전하려 노력했다.



나는 한국의 동국대학 대학원에서 영화를 공부하는 유학생이지만 한국에 오기 전까지 일본 아사히신문 문화부 기자로 일했다. 기자로 일하던 2016년 2월 〈동주〉를 본 뒤 김인우 씨를 인터뷰하는 게 퇴사 전 목표가 됐다. 2016년 가을 ‘기적적’으로 한국에 출장 올 일이 생겼고, 김인우 씨를 만날 수 있었다. 그 인터뷰 기사가 아사히신문 기자로서 쓴 마지막 기사가 됐다.(p. 24)


제주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처음엔 일본에서 남편과 시부모님이 오면 신나게 관광만을 즐길 생각이었다. 그런데 일정에 제주 4·3 사건 기념지를 더해 좀 엄숙한 제주 돌아보기로 수정했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p. 39)


‘우리말’을 빼앗긴 적 없는 일본 사람들은 그 아픔을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윤동주 시인에게서 배웠고, 보다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관련 이야기를 여러 번 글로 쓴 바 있다.(p. 73)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나 시골에서 사는 것을 권하는 게 아니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도시에 살면서도 일상을 소중히 하며 살 수 있다. 평창 올림픽 폐회식 말미 어느 방송국 캐스터가 “내일부터는 여러분의 올림픽 같은 일상을 응원하겠다”고 했다. 나는 이제 올림픽 같은 일상은 싫다. 모두가 경쟁하면서 살아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p. 90)


일본에서 매년 윤동주를 추모하는 행사가 열린다는 사실이 한국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많은 일본의 윤동주 팬은 해마다 2월에 만나 27세라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그를 추모한다. 그건 물론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전쟁 책임을 생각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한·일 관계가 악화될 때마다 혐한을 외치는 일본 사람들이 한국 매체에 등장한다. 하지만 한·일 역사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본 사람들도 많이 있다는 사실은 별로 소개되지 않아 아쉽다.(p. 173)


일본과 한국은 닮은 듯하지만 살아보면 아주 다르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살아보지 않아도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부분도 있다. 내가 문화 교류에 힘을 쏟는 것도 단순히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쌍방의 문화를 통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p. 199)



나도 요즘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적극적으로 어필해야 한다”는 충고를 자주 듣는다. 동기의 이야기를 들으며 프리랜서라고 무시당했다며 억울해할 게 아니라, 내가 나를 잘 편집해서 보여주는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스토리를 어떻게 보여줄지가 관건인 사회니까 말이다.(p. 240)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았고 뭘 믿고 보도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운 현장이었다. 일주일의 취재를 마치고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로 일본으로 돌아갔다. 눈물도 나오지 않는 나 자신이 놀라웠다. 그런데 1년이 지난 후 지인에게 세월호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눈물이 쏟아져 한참을 울었다.

그때서야 눈물도 안 날 정도로 충격이 컸다는 것을 겨우 알았다. 울고 나니까 조금 마음이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사람마다 이야기하고 싶은 타이밍, 울고 싶은 타이밍이 따로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p. 284)



지금 한국과 일본은 여러 가지에서 전혀 다른 문화(의식)를 가지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은 개인생활에 대한 의식이 다르다고 한다. 명함에도 절대 자신의 개인 연락처를 적지 않는 일본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오히려 명함에 개인 번호를 강조한다. 개인주의가 강한 일본의 문화로 현대 일본 젊은 세대는 자기 주변 일 외에는 관심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의 영화 '1987'과 같은 영화는 일본에서는 나올 수 없는 영화라는 것이다.

일본에서도 유명한 소설이 한국에서도 출간되었다. '한자와 나오키'라는 소설은 일본 직장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소설로 인기를 끌었다. 절대로 상사에게 복종하는 문화인 일본에서 상사에게 바른말이라도 조언을 할 수 없다. 그런데 한국은 그와는 반대로 상사라도 틀린말을 한다면 조언을 할 수 있는 문화가 놀랍기도 하지만 일본에서도 조금씩 변화가 있어 보이는 것이 소설 '한자와 나오키'이다. 이런 다양한 문화들을 조금씩 알아간다면 두 나라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라는 희망은 여전하다.



이 책에는 재일코리안에 관한 이야기도 많은데, 그것은 나리카와 아야가 동국대학 일본학연구소에서 재일코리안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재일코리안 영화제’를 개최하고, 한·일 영화 관계자들을 초청해 직접 대담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그녀는 이 일이 무척 보람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녀가 일본에 돌아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과 일본은 비슷하면서도 참 많이 다른 나라다. 저자가 말하듯 이 책을 선택한 독자들도 그 차이를 즐기면서 읽으면 저자의 한국 생활을 더 이해할 수 있으리라.

“서로의 다름을 알고 그 차이를 즐길 수 있는 우리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저자 : 나리카와 아야


1982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아름다운 자연에 둘러싸인 시골 고치에서 자랐다. 영화관 집 딸인 엄마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영화 보는 것을 좋아했다. 고베대학 법학부를 졸업했으며, 한일 월드컵이 열린 해에 한국으로 어학연수를 왔다가 한국 영화의 매력에 빠졌다. 오사카대학 대학원에서 통·번역을 전공했으며, 2008년에 아사히신문에 입사했다. 나라, 도야마, 오사카, 도쿄에서 문화부 기자로 활동했다. 임권택, 봉준호, 허진호 등 한국의 영화감독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매년 부산국제영화제를 취재하면서 본격적으로 한국 영화를 배우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2017년 1월 아사히신문을 퇴사하고, 그해 3월 동국대학 영화영상학과 석사 과정에 입학했다.

중앙SUNDAY, 아사히신문GLOBE+에 칼럼을 연재하는 등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KBS 월드 라디오 일본어 프로그램 〈현해탄의 무지개〉에서 한국 영화와 소설을 소개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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