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 있든 나는 나답게 - 전 아사히신문 기자 나리카와 아야의 슬기로운 한국 생활
나리카와 아야 지음 / 생각의창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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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친척이 사는 사람은 괜찮게 사는 사람"이란 말이 있던 시절이 있었다. 여기서 시절은 1960~1980년대, 외국이라면 주로 미국을 의미하는 것이었지만.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은 친척 중에서 찾을 필요도 없이 주변 친구나 동료들 중에 이민 가서 사는 사람이 많다. 없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그만큼 세계화되고, 우리나라도 경제적으로 선진국 대열에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다. 이때문에 예전처럼 일하러 외국에서 사는 사람보다 아예 그 나라 환경이 좋거나 생활비가 싸게 먹혀 외국으로 이민 가는 사람이 더 많다. 그곳 공기나 자연 환경이 좋다고 장기 체류하는 사람도 많다. 대상국은 주로 우리보다 가난한 나라들이다.

최근엔 '외국에서 한 달 살기'라는 여행 풍습이 생길 정도로 지구촌이란 말이 실감나는 시대다. 코로나 이전까지만 해도 그렇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대한민국의 의료 수준이나 방역 문제, 국가 경제, 복지 문제 등이 오히려 선망하던 외국에서 우리나라로 오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는 말에 은근히 어깨에 힘도 들어간다. 코로나로 주눅들어 집안에서만 지내는 사람들에게 자부심과 '그래도 내 나라가 제일 낫다'는 말도 린다.

독자는 외국으로 이민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기회도 있었지만 싫어서 거부했다. 가장 문제는 체력이나 체질이 외국과 잘 안 맞는다는 생각이다. 언어도 잘 안 되지만... 여기서 특별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외국에서 살 필요성을 못 느낀다가 가장 근사한 답이다.



여기 잘 나가는 일본의 신문사 기자직을 때려치우고 혈혈단신 한국으로 건너온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아사히신문 기자 출신 저널리스트 나리카와 아야(成川彩)다. 그녀가 아사히신문을 그만둔 것은 한국과 한국 영화에 대한 애정 그리고 관심 때문이었다. 9년 넘게 아사히신문 기자로 일하면서 다양한 분야의 기사를 써온 그녀는 “좋아하는 한국 영화를 마음껏 보고 배우기 위해” 과감하게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뒀다.

그리고 동국대학 영화영상학과 석사 과정에 입학해 ‘1년만’ 유학하고 오겠다는 처음 생각과는 달리, 벌써 4년 차 ‘한국 생활자’로 살아가고 있다.

나리카와 아야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품기 쉬운 ‘일본 사람’이라는 선입견을 깨게 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막걸리와 해장국을 즐겨 먹고, 일산호수공원 산책을 좋아하는 소탈한 ‘한국 생활자’다. 어딘가 도도하고 벽이 있을 것 같다는 지레짐작이 무색하게 다정하고 다감하다.

그러나 그런 면모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다. 그녀는 아사히신문 기자 출신답게 사회 현상의 배경을 꿰뚫어보는 예리한 통찰력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한국어와 일본어, 두 언어로 수려하게 풀어낼 줄 아는 ‘글쟁이’기도 하다.



이 책 『어디에 있든 나는 나답게』는 ‘글쟁이’이자 ‘한국 생활자’인 나리카와 아야가 예리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써내려간 중앙일보 칼럼을 단행본으로 엮은 것이다. 중앙일보에 ‘나리카와 아야의 서울 산책’과 ‘전 아사히신문 기자의 일본 뚫어보기’라는 제목으로 연재된 칼럼은 조금이라도 양국 간의 이해의 폭이 넓어지기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됐다. 그래서 단행본으로 엮으며 새로운 내용이 추가되고 보충됐어도 그 기저에 흐르는 주제는 여전히 ‘일본인이 바라본 한국과 한국 사람’이다. 한국에 사는 일본인이 한국과 비교하며 일본을 깊이 꿰뚫어보고 있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자 특징은 한국인보다 한국어를 더 잘하는 일본인이 한국어로 직접 쓰고, 또 한국에서 발행하는 책이라는 점이다.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한·일 관련 보도는 정치와 역사 문제가 주를 이룬다. 그러나 그 보도에는 실제로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의아하게 여겨지는 부분이 많은 듯하다. 이 책의 저자 나리카와 아야는 자신이 직접 생활하며 느낀, 그러니까 있는 그대로의 한국과 일본의 모습을 담담하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전하려 노력했다.



나는 한국의 동국대학 대학원에서 영화를 공부하는 유학생이지만 한국에 오기 전까지 일본 아사히신문 문화부 기자로 일했다. 기자로 일하던 2016년 2월 〈동주〉를 본 뒤 김인우 씨를 인터뷰하는 게 퇴사 전 목표가 됐다. 2016년 가을 ‘기적적’으로 한국에 출장 올 일이 생겼고, 김인우 씨를 만날 수 있었다. 그 인터뷰 기사가 아사히신문 기자로서 쓴 마지막 기사가 됐다.(p. 24)


제주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처음엔 일본에서 남편과 시부모님이 오면 신나게 관광만을 즐길 생각이었다. 그런데 일정에 제주 4·3 사건 기념지를 더해 좀 엄숙한 제주 돌아보기로 수정했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p. 39)


‘우리말’을 빼앗긴 적 없는 일본 사람들은 그 아픔을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윤동주 시인에게서 배웠고, 보다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관련 이야기를 여러 번 글로 쓴 바 있다.(p. 73)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나 시골에서 사는 것을 권하는 게 아니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도시에 살면서도 일상을 소중히 하며 살 수 있다. 평창 올림픽 폐회식 말미 어느 방송국 캐스터가 “내일부터는 여러분의 올림픽 같은 일상을 응원하겠다”고 했다. 나는 이제 올림픽 같은 일상은 싫다. 모두가 경쟁하면서 살아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p. 90)


일본에서 매년 윤동주를 추모하는 행사가 열린다는 사실이 한국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많은 일본의 윤동주 팬은 해마다 2월에 만나 27세라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그를 추모한다. 그건 물론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전쟁 책임을 생각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한·일 관계가 악화될 때마다 혐한을 외치는 일본 사람들이 한국 매체에 등장한다. 하지만 한·일 역사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본 사람들도 많이 있다는 사실은 별로 소개되지 않아 아쉽다.(p. 173)


일본과 한국은 닮은 듯하지만 살아보면 아주 다르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살아보지 않아도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부분도 있다. 내가 문화 교류에 힘을 쏟는 것도 단순히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쌍방의 문화를 통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p. 199)



나도 요즘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적극적으로 어필해야 한다”는 충고를 자주 듣는다. 동기의 이야기를 들으며 프리랜서라고 무시당했다며 억울해할 게 아니라, 내가 나를 잘 편집해서 보여주는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스토리를 어떻게 보여줄지가 관건인 사회니까 말이다.(p. 240)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았고 뭘 믿고 보도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운 현장이었다. 일주일의 취재를 마치고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로 일본으로 돌아갔다. 눈물도 나오지 않는 나 자신이 놀라웠다. 그런데 1년이 지난 후 지인에게 세월호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눈물이 쏟아져 한참을 울었다.

그때서야 눈물도 안 날 정도로 충격이 컸다는 것을 겨우 알았다. 울고 나니까 조금 마음이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사람마다 이야기하고 싶은 타이밍, 울고 싶은 타이밍이 따로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p. 284)



지금 한국과 일본은 여러 가지에서 전혀 다른 문화(의식)를 가지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은 개인생활에 대한 의식이 다르다고 한다. 명함에도 절대 자신의 개인 연락처를 적지 않는 일본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오히려 명함에 개인 번호를 강조한다. 개인주의가 강한 일본의 문화로 현대 일본 젊은 세대는 자기 주변 일 외에는 관심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의 영화 '1987'과 같은 영화는 일본에서는 나올 수 없는 영화라는 것이다.

일본에서도 유명한 소설이 한국에서도 출간되었다. '한자와 나오키'라는 소설은 일본 직장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소설로 인기를 끌었다. 절대로 상사에게 복종하는 문화인 일본에서 상사에게 바른말이라도 조언을 할 수 없다. 그런데 한국은 그와는 반대로 상사라도 틀린말을 한다면 조언을 할 수 있는 문화가 놀랍기도 하지만 일본에서도 조금씩 변화가 있어 보이는 것이 소설 '한자와 나오키'이다. 이런 다양한 문화들을 조금씩 알아간다면 두 나라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라는 희망은 여전하다.



이 책에는 재일코리안에 관한 이야기도 많은데, 그것은 나리카와 아야가 동국대학 일본학연구소에서 재일코리안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재일코리안 영화제’를 개최하고, 한·일 영화 관계자들을 초청해 직접 대담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그녀는 이 일이 무척 보람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녀가 일본에 돌아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과 일본은 비슷하면서도 참 많이 다른 나라다. 저자가 말하듯 이 책을 선택한 독자들도 그 차이를 즐기면서 읽으면 저자의 한국 생활을 더 이해할 수 있으리라.

“서로의 다름을 알고 그 차이를 즐길 수 있는 우리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저자 : 나리카와 아야


1982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아름다운 자연에 둘러싸인 시골 고치에서 자랐다. 영화관 집 딸인 엄마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영화 보는 것을 좋아했다. 고베대학 법학부를 졸업했으며, 한일 월드컵이 열린 해에 한국으로 어학연수를 왔다가 한국 영화의 매력에 빠졌다. 오사카대학 대학원에서 통·번역을 전공했으며, 2008년에 아사히신문에 입사했다. 나라, 도야마, 오사카, 도쿄에서 문화부 기자로 활동했다. 임권택, 봉준호, 허진호 등 한국의 영화감독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매년 부산국제영화제를 취재하면서 본격적으로 한국 영화를 배우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2017년 1월 아사히신문을 퇴사하고, 그해 3월 동국대학 영화영상학과 석사 과정에 입학했다.

중앙SUNDAY, 아사히신문GLOBE+에 칼럼을 연재하는 등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KBS 월드 라디오 일본어 프로그램 〈현해탄의 무지개〉에서 한국 영화와 소설을 소개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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