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코르뷔지에 - 건축을 시로 만든 예술가 클래식 클라우드 23
신승철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는 지금까지 모두 25번째 발간한 것으로 안다. 전부 다 읽거나 보관하고 있진 않지만 예술에 대한 남다른 해석이 있는 것 같다. 비평 쪽이라기보다는 안목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이 책이 25번째가 아닌가 한다.

그동안 발간한 작품을 모두 열거할 수는 없지만 최근 발간한 것은 모두 읽고 보관하고 있어 남다른 애정이 있다. 페이메이르나 코난 도일 등의 화가, 작가 등 많은 작품이 매우 인상적이어서 알게 된 클래식 클라우드는 이젠 가장 아끼는 책들이 됐다. 이 책 역시 그 중의 한 권으로 다 읽고 난 다음 가장 좋은 자리에 꽃힐 것이다. 내용은 물론 대상 예술가나 저자, 책 표지까지 정말 아름답다. 이렇게 예쁘고 좋은 책을 먼 훗날 디지털 기록으로만 남을 것 같은 아쉬움이 크다. 그래도 보관하면 훗날(지금도 그렇지만) 우리 시대 좋은 책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 분들로 기억될 것이다.

독자는 건축에 대해 문외한이나 다름없다. 학교에서도 다른 것을 전공했고, 이후 사회생활 할 때도 건축 관련 책은 많이 읽은 것 같지 않다. 간혹 미술사는 물론 세계사에 등장하는 건축물에 대한 것들은 해설서나 찬양하는 책만 읽은 것 같다. 물론 찬양할 만한 건축물임에는 틀림없다.

옛 로마 건축물이나 중세, 근대, 현대에 이르는 동안 수많은 건축물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물론 해외여행 패키지로서다.

르코르뷔지에는 이름만 들어본 기억이 있다. 그에 대한 책은 그래서 낯설지만 정감이 간다. 건축만을 위해 평생을 살고 싸웠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앙드레 말로는 근대건축의 선구자 르코르뷔지에의 인생을 한두 문장으로 응축해 표현했다고 한다.

“그는 화가이자 조각가, 그리고 남몰래 시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로지 건축만을 위해 투쟁했습니다. 건축은 인간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겠다는 그의 막연하고 열정적인 희망이 투입된 유일한 분야였기에 그는 열과 성을 다했습니다.”

스위스 태생의 프랑스 건축가인 르코르뷔지에(1887∼1965)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통과하면서 소수 특권 계급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기존의 건축에서 벗어나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집을 주기 위하여 일생 분투했다.

『르코르뷔지에』의 신승철 저자에 따르면 르코르뷔지에는 ‘집은 살기 위한 기계’라는 모토 아래 불필요한 장식을 배제하고 한층 기능적이고 효율적인 공간을 선보임으로써 건축의 대량생산과 표준화를 가능하게 했다. 이를 위한 수단이 바로 그의 트레이드마크 가운데 하나인 ‘돔이노 구조’다. 몇 개의 기둥과 슬래브만으로 단순하게 구성된 이 구조는 주택의 대량생산을 꿈꾸던 그에게 효율적인 수단이 되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향후 현대건축의 기본 구조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이 구조를 바탕으로 ‘새로운 건축의 다섯 가지 원칙’을 천명했으니, 우리에게 친숙한 필로티 구조를 비롯하여 옥상정원, 수평창, 자유로운 평면, 자유로운 입면이 그것이다. 이 원칙은 그때까지 건축가마다 공법과 미의 기준이 제각각이었던 건축을 표준화, 규격화하는 데 크게 공헌했으며, 오늘날에도 이 원칙을 따르는 건축물을 쉽게 볼 수 있을 만큼 후대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 책은 크게 르코르뷔지에가 파리에서 ‘새로운 정신Esprit Nouveau’을 표방하며 건축가로 자리 잡기까지를 다룬 전반부와, 그의 대표적 건축물이 있는 공간 여행을 통해 예술 세계를 짚어보는 후반부로 나누어진다. 르코르뷔지에는 스스로 지중해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의 고향은 바다와는 거리가 먼 알프스 산간 마을인 스위스 라쇼드퐁이다. 시계 산업으로 유명한 이곳에서 그는 처음에는 시계 장식가인 아버지와 같은 길을 가려 했지만, 그의 남다른 재능을 눈여겨본 스승의 강력한 권유로 건축이라는 낯선 세계에 첫발을 내디디게 되었다. 스무 살이 되어 고향을 처음으로 벗어나기 전까지 소년 르코르뷔지에는 인근의 대자연 속에서 ‘숲의 인간’으로 길러지면서 대지에 대한 감각을 체화했다.

이후 아직 본격적으로 전문 건축가의 길을 걷기 전인 20대의 르코르뷔지에는 주로 여행을 통해 건축을 익혔다. 여행은 건축 학위도 자격증도 없던 그에게 그것을 대신하는 징표가 되어주었다. 특히 사적 영역과 공용 공간이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불필요한 것이라고는 하나 없으며, 아름다운 풍경까지 감상할 수 있는 이탈리아 갈루초의 에마수도원은 그에게 건축의 이상적 모델을 제시했고, ‘동방 여행’을 하면서 마주한 아크로폴리스의 고대 신전은 시공을 초월한 생명력과 예술을 본질을 맛보게 하면서 그를 진정한 건축가로 거듭나게 했다.






책에 따르면 르코르뷔지에는 파리에 정착하면서 화가 오장팡과 함께 장식으로 얼룩진 큐비즘 대신 기하학적이고 간결한 형태를 강조한 ‘순수주의’를 표방하며 전후 예술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이 순수주의의 연장선상에서 그는 자동차나 비행기 같은 당시 새롭게 부상하고 있던 기계들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면서 ‘집은 살기 위한 기계’라는 다분히 급진적인 주장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기계로부터 ‘새로운 정신’을 배우자는 그의 주장은 문화 엘리트층으로부터 호응을 얻으면서 점점 큰 영향력을 확대해갔다.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건축을 오랫동안 고민해오던 르코르뷔지에는 새로운 건축을 위한 다섯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그리고 이 원칙을 푸아시의 언덕 위에 짓게 될 빌라 사보아에 적용했다. 필로티 구조는 건물을 지열과 습기로부터 보호했고, 옥상정원은 추위와 더위를 막아주었으며, 자유로운 평면과 입면은 공간 구획을 자유롭게 했고, 수평창은 집 안을 밝게 하고 외부 풍경을 파노라마처럼 감상할 수 있게 했다.

이로써 빌라 사보아는 근대 건축의 기념비로 남게 되었다. 비록 집주인은 물이 새는 문제로 큰 고통을 겪었고, 이로 인해 르코르뷔지에는 건축은 예술이기 이전에 삶의 터전이라는 사실을 뼈아프게 절감해야 했지만 말이다. 이후 그는 삶을 편안하게 하고 사람들의 관계를 가깝게 해주는 ‘행복의 건축’을 화두로 삼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겪고 난 뒤에는 난민 문제와 주택난이 심각하게 대두되었다. 이에 르코르뷔지에는 1600명가량이 함께 살 수 있는 거대한 아파트인 위니테 다비타시옹을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마르세유의 언덕 위에 선보였다. 사람들은 잘 짜인 유닛에서 편안한 생활을 했고, 도시 기능이 집약된 건물 내에서 더불어 사는 삶의 기쁨을 누렸다. 이로써 그때까지 주로 소수 재력가들의 차지였던 건축은 보다 많은 인민들을 위한 것이 되었다. 건축의 모더니즘은 그렇듯 인민을 위해 시작되었다.

르코르뷔지에의 건축은 후기로 접어들면서 극적인 변화를 보여준다. 이전의 직선적이고 기하학적이며 합리적인 건축에 자유로운 형태들이 섞여들면서 예전에는 찾아볼 수 없던 곡선과 부드러운 형상이 관찰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롱샹성당이다. 대지와 자연의 울림에 공명하듯이 음악처럼 유려하고 아름다우면서도 기이하고 모호한 형태의 이 건축물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따뜻하고 시적인 감흥을 느끼게 한다.

살기 위한 기계로서의 집은 르코르뷔지에의 뛰어난 예술적 재능에 힘입어 이제 시를 닮은 건축으로 아름답게 빚어졌다.

딱딱하고 차가운 기술에 예술을 덧입힐 줄 알았던 그의 건축 세계는 내용 없이 형식만 남은 현대건축과 도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에 대한 관심이 여전히 식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르코르뷔지에의 무덤은 그의 건축만큼이나 세속적이다. 그는 일생 편안하고 안락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특히 노동자계급을 위해 집을 지었다. 동료 건축가들이 부유층을 위한 고급 주택을 지을 때 작은 공간에서 최대한의 편의를 누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던 그는, 모든 사람에게 사적 공간을 제공하려 했고, 이것이 행복의 기초가 된다고 믿었다.


르코르뷔지에의 납골묘는 푸른 하늘과 지중해를 향해 열려 있다. 경사진 그의 묘비는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곳을 가리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가 꿈꾸었던 건축의 감동은 여기서 성취된다. 그의 영혼이 살아 숨 쉬는 아름다운 자연과, 그의 유골을 품은 소박한 콘크리트 구조물, 그리고 그가 일생 추구한 ‘햇살 아래 아름다운 형상’은 이곳에서 조화롭게 공존한다.

「프롤로그」 중에서





에두아르는 1950년대 마르세유에 ‘위니테 다비타시옹Unite d’Habitation’이라는 아파트를 세우면서 이 수도원을 모델로 삼았다.

그가 “현대 도시”라 부른 에마수도원은 건축이 어떻게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개인의 자유와 사회생활의 조화, 합리적이고 기능적인 공간과 구조, 아름다운 풍경과 효율적인 동선 등 수도원의 모든 요소들이 훗날 마르세유의 집합 주거 건물에 담겼다. 수도원은 일생 건축가의 이상적인 모델로 자리 잡았다. 그는 갈루초에서 처음으로 인간의 삶을 건축의 형태로 구현하기 위한 고민을 시작했다.

아름다움과 장식뿐만 아니라 건축의 효용에 대해 사유하면서 그는 비로소 건축가로 거듭나게 되었다. 갓 스무 살이 된 청년은 그렇게 건축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02 미래를 위한 여행」 중에서


페레 사무소에서 에두아르는 대단히 중요한 시기를 보냈다. 그의 손을 거친 도면은 한결같이 장식미술의 미래에 의문을 던지고 있었다. 라쇼드퐁에서 본 세상과 도면 속 세상은 너무나 달랐다. 그에게 선택의 시기가 왔다. 고향에서 마치 종교처럼 신봉했고 그 중심지인 빈에서 오히려 그 이면을 보게 된 장식미술 대신, 그는 ‘새로운 예술’을 하고 싶어 했다. 이것은 취향이 아닌 생존의 문제였다.

「03 새로운 예술을 찾아서」 중에서





아토스산은 끝없이 높았고, 바다가 반사하는 빛 때문에 산 밑은 마치 빛 한가운데에서 부유하는 듯했다. 그것은 마치 무한의 공간을 떠다니는 듯한 인상이 들게 했다. 그는 “철근과 콘크리트를 강렬한 카덴차로 혼합하기를 꿈꾸며 이곳까지 밀려왔다”. 아토스산은 그런 그를 위로했고, 무엇보다 지친 삶에 숭고한 의미를 부여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미사, 노동, 묵상, 공동 식사, 손님 접대 같은 수도사의 삶은 그 자체로 상징적인 종교 활동이었는데, 에두아르의 건축 역시 그래야 했다. 수도사에게 빵이 그리스도의 몸인 것처럼, 철근콘크리트 건축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닌 삶을 위한 성전이 되어야 했다. 그는 이곳에서 영혼을 위한 건축과 마주했다.


지금껏 에두아르는 새 시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건축을 하고자 했다. 아크로폴리스는 그런 그에게 분명한 방향을 보여주었다. 그는 추한 진보가 아니라 조화로운 예술에 대한 강렬한 열망에 사로잡혔다. 그는 메마른 이론만을 설파하는 혁명가가 되기보다는 건축으로 진리를 드러내겠다는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 밝은 태양과 드넓은 바다, 고색창연한 빛을 뿜어내는 대리석과 기하학 형태들, 그리고 언덕 위 하얀 신전. 이 앞에서 더 이상의 문명 탐구는 필요하지 않았다.

「04 동방 여행」 중에서




두 예술가는 간결하고, 순수하고, 시간을 넘어 지속될 수 있는 보편적인 예술을 추구했다. 그들은 이에 ‘순수주의Purisme’라는 이름을 붙이고, 각종 전시와 비평문을 통해 소개했다. 여러 이념이 충돌하는 선전 선동의 시대를 살았던 두 예술가는 프로파간다의 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선전 전단을 만들어 세상에 뿌리는 대신 1920년 10월 새로운 예술 잡지인 《에스프리 누보》를 창간했다. 1920년 10월 창간되었다. 두 사람은 이 잡지를 통해 ‘새로운 정신Esprit Nouveau’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05 새로운 정신」 중에서


르코르뷔지에는 혁명적인 건축가였다. 그는 주거 공간을 혁신해 삶의 모습을 바꾸려 했다. 시대가 변했지만 당시 집들은 여전히 춥고, 어둡고, 비위생적이었다. 급속한 산업화와 전쟁의 여파는 그만큼 컸다. 인구 과밀로 도시가 슬럼화되었고, 전쟁은 낙후된 집마저 남겨놓지 않았다.

르코르뷔지에는 돔이노 같은 효율적인 건설공법을 고민하는 동시에 위생, 난방, 조명 등의 생활 요소를 원점에서 재검토했다. 건축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그는, 주택을 공급하고 이를 통해 현대적인 생활 방식을 제안했다.

「06 행복의 건축」 중에서


빌라 사보아는 르코르뷔지에의 자랑스러운 대표작이었다. 건물은 아름다웠고 필로티, 옥상정원, 수평창 같은 혁신적인 요소들을 조화롭게 담고 있었다.

하지만 쏟아지는 비가 모든 것을 뒤바꾸어놓았다. 비가 새는 집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는 필로티, 자유로운 평면, 자유로운 입면, 수평창, 옥상정원을 근대건축의 다섯 가지 요소라고 주장했지만, 줄줄 새는 비 앞에서 그것은 한갓 허황된 관념에 지나지 않았다.

「06 행복의 건축」 중에서




그는 건축가이기 이전에 매일 그림을 그리는 화가였고, 아름다움을 대단히 중시했다. 그의 주택은 편리한 기계이면서 예술이 되어야 했고, 무엇보다 시적인 감상을 불러일으켜야 했다. 그는 이를 ‘건축의 시학’이라 불렀다.

「07 모두를 위한 집」 중에서


저자 : 신승철


베를린 훔볼트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같은 학교 이미지행위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현재 강릉원주대학교 조형예술ㆍ디자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학과 미술 이론, 건축 이론을 연구하고 있으며, 이미지 문제를 중심으로 예술과 과학, 인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활발한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바이오 아트 : 생명의 예술』 , 『시뮬라크룸에서 이미지 존재로: 가상 예술의 도상파괴주의』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