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의 생각 - 이 세상 가장 솔직한 의사 이야기
양성관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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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으로 요즘 뉴스의 절반은 코로나 관련 뉴스다. TV 뉴스 화면에 병원 전경이든 진료 모습이든 안 나오는 날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처음 나온 것은 지난 2월달이다. 지금부터 9개월이 다 됐다. 우리는 TV를 통해 방역복을 입고 진료하는 치료진의 모습을 자주 봤다. 그리고 그들의 치료하는 과정의 어려움, 위험에 대해서 안타까움과 고마움이 각자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졌을 것이다. 이들의 희생적인 노력으로 우리는 코로나 모범 방역국을 넘어 'K 방역'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감염병 대처의 의료 수준을 낱낱이 볼 수 있었다.

선진국보다 더 철저하고 정확하게 대처해 확진자 숫자가 미미하다고 표현될 정도로 없는 편이다. 그 중심에 의사가 있다. 우리에게 감염 위험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벗어나게 하고, 만일 감염병에 걸려도 세계 최고의 의료 수준임을 이번 방역 의료진이 보여줬다. 그들은 대한민국 의사이기 때문에 국민들은 한마음으로 고마움을 표시하고 세계 최고의 의료보험 제도나 의료제도 등에 자부심을 느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자긍심을 키워준 것도 이들 의사의 헌신적인 노력 덕택이다. 이런 점에서 의사에 대한 존경심을 갖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책 『의사의 생각』은 우리가 1년에도 몇 번씩 가는 동네 의원의 평범한 의사가 쓴 책이다. 의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의사가 되는지, 어떤 고민 속에서 환자를 돌보는지 솔직하게 그려낸다. 환자를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슈바이처나 이국종 같은 의사는 이 책에 없다.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은 텔레비전의 의사들처럼 고상하지도 않고 잘생기지도 않았다. 능력이 뛰어나 매스컴에 잘 알려진 의사도 아니다. 우리가 쉽게 찾는 동네 의원 의사가 진료 현장에서의 부끄러운 실수조차 솔직히 밝히면서 환자를 통해 의학을 배우고, 의사로서의 자신을 돌이켜본다. 의사가 책을 쓸 경우는 대부분 그들의 뛰어난 의학 수준과 능력을 등에 업고 많은 환자들에게 치료 방법과 환자의 할 일에 대해 알려주기 위해 쓴 책밖에 없었다. 아니, 있겠지만 잘 알려지지 않거나 독자가 못 읽어봤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일 듯하다. 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는 과정을 보면 웬만한 사람은 극복해내기 어려운 과정을 거친다. 도제식 의술 전수제도 때문이다. 마치 군인이 되기 위해 훈련병 시절의 독자 같은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제도의 잘못보다는 오히려 의사가 되는 과정이 그만큼 어렵고 험난하다는 의미로 많이 언급되는 부분이어서 의사가 아닌 독자가 말할 부분은 아니다.



평생 병원 한 번 안 가본 사람은 없다. 혹시 있다면? 돈이 없어서? 옛날 얘기다. 지금은 전 국민 의료보험 제도를 시행하는 대한민국에서 그런 일은 없을 듯하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감기 한 번쯤 안 걸린 사람 없고, 감기로 병원 안 가는 사람도 건강검진을 하려면 병원을 가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은 건강에 굉장히 민감한 편이라고 한다. '건강한 몸이 재산'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건강 문제가 늘 걱정이다.

자신이 건강관리를 잘 해서 병원 안 가본 사람이 있을까. 큰 병이 아니면 대개는 동네 '의원급 병원'부터 찾는다. 이른바 '동네 병원'이다. 큰 병원은 번거롭고 진료비나 각종 검사비 등도 비싸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사람은 큰 병원이 유능한 의사가 많다고 생각해서인지 감기만 걸려도 큰 병원으로 갔다. 그러다보니 동네 병원 의사들은 문을 닫고 폐업하는 경우도 많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당시 의료보험공단)은 동네 의원을 살리기 위해 의료전달체계를 재정비했다. 특별한 경우나 응급환자가 아니면 의원급 동네 병원을 먼저 들러 진료 받은 후 의사의 치료 여부에 따라 2차, 3차 진료병원인 큰 병원으로 가도록 의료체계를 정비한 것이다. 지금은 의료비 문제로 돈 때문에 동네 병원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의료 체계 때문이다.



이 조치로 동네 의원은 괜찮아졌을까? 독자는 병원을 자주 찾는 편이지만 궁금하다고 의사에게 이런 문제를 물어볼 수는 없다. 또 친절한 의사라도 궁한 모습을 자신의 입으로 얘기할 리 없다. 이 책은 동네 의원 평범한 의사가 쓴 책이다. 사실 유명한 의사가 쓴 책들은 많이 봤지만 이름 없는 동네 의사가 자신의 진료실 안팎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책으로 쓴 것은 이 책 『의사의 생각』을 쓴 양성관 의사가 처음일 듯하다. 생각나는 의사가 한 명은 있는 것 같다. 지금은 그 분의 이름을 잊었지만 '시골 의사' 제목이 들어간 책이었던 것 같다. 조금 관점이 다르다. 그리고 독자가 읽어보질 못해 어떤 책인가 하는 기억이 별로 없다. 이 책은 우리의 건강을 1차적으로 책임지는 최일선 동네 의사가 써서 관심이 갔다. 동네 의사를 많이 만나는 독자로서는 궁금한 점이 많았다. 이 책을 통해 어느 정도 궁금증은 해결되리라 기대한다. 사실 진료 문제보다 수입이라든지, 에피소드 등에 더 관심 있지만 그런 문제를 다루지는 않았을 터 동네 의사가 쓴 책이라 애정이 더 가는 것은 사실이다. 차례를 훑어보니 어떤 과정을 거쳐 의사가 되는지,어떤 고민 속에서 환자를 돌보는지를 중심으로 쓴 책인 것 같다. 그런데 관심을 끄는 것은 고상하지도 잘생기지도 않았다고 고백하는 점이다. 의사가 단정한 모습에 존경심이 일지, 잘생긴 이유로 존경하거나 자신의 건강 치료를 부탁하는 것은 아닌데... 혹시 외모 콤플렉스? 슬며시 웃음을 흘리고 책장을 넘긴다.



『의사의 생각』이란 제목에서 의사들이 환자를 진료하면서 어떤 생각들을 하는지는 별로 궁금한 사안이 아니다. 진찰을 통해 병의 원인을 찾고 자신의 의학 지식과 경험으로 처방전을 써주고 할 테니까.

그러나 책 속의 의사는 정말 생각이 많은 것 같다. 환자 한 명 한 명을 인간적으로 대한다. 우리 동네 의사는 그런 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분도 있으니까 그려려니 하고 만다. 그러나 저자인 책 속의 의사는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그들의 주변에 흐르는 공기까지 관찰한다고 한다. 처음 듣는 얘기다.

환자로서 병원에 가보면 의사는 병에 관한 얘기부터 질문하고 문진과 필요한 진찰을 하면 그걸로 끝이다. 처방전을 밖에 나와 간호사에게 받아 가면 끝이다. 특히 환자가 많을 때(요일별, 시간대별, 계절별로 차이가 있는 듯하다)는 여러 다른 걸 물으면 오히려 환자 입장에서 미안한 감정이 든다. 다른 환자를 계속 진료해야 하는데 '날 붙잡고 뭐 별로 쓸데없는 얘기를 하시나' 하는 마음에서다.

책 속에 이런 말이 나온다. "유치원 교사는 유치원생만 보고 선생님은 학생만 보듯 의사인 사람은 항상 아픈 사람만 본다." 직업으로서는 그래서 별로다. 그런 의미에서 썼다. 아픈 사람만 보는 것은 가족이라도 쉽지 않은 일이다. 심지어는 "3년 병에 효자 없다"는 우리 옛말도 있잖은가.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의사란 직업은 최고의 직업으로 꼽는다. 이유는 대부분 사람들이 인정하겠지만 '돈을 잘 버니까'다. 그렇지 않고는 특별히 존경할 만한 일은 없을 듯하다. 머리가 좋아서? 아니다. 그럼 자상해서? 천만에. 그런 일은 의사의 개인적 성격이고 성품이지 모든 의사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니까.

그렇다면 의사가 존경 받는 이유는 뭘까? 사람의 생명을 다루고, 환자는 국적이고 인종이고 성별이고 가리지 않고 치료하고 보는 '히포크라테스' 정신을 가진 분이라서? 독자가 장담컨대 '돈을 잘 벌어서'가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니 정말 지금도 독자는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의사가 힘든 직업이라는 사실은 의사가 아니라도 안다. TV나 책을 통해서 보고 들었다.

의사가 되기까지의 12년의 의학공부(전문의)는 일반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들보다 수십 배 힘들 것이란 말은 동의한다. 큰소리 빵빵 치는 사법시험(지금은 제도가 조금 바뀌었지만) 합격한 검사를 보면 의사는 부러워할 직업은 아니다. 두 분야 최고 수재들이 시험 치고 수련 과정을 거쳐야 하니까 처음엔 머리 좋은 것도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튼 큰소리 치며 사는 사람은 검사이지 의사는 아니다.



TV에서 묘사되는 의사는 모두 굉장한 직업의식과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다. 실제 의사 대부분은 그럴 것이다. 그러니 존경할 만하다. 환자로서 의사를 보면 존경심이 우러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돈과 관련되면 존경하는 마음은 조금씩 멀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의사라는 직업은 모두 돈을 잘 버는 줄 알기 때문에 더 그렇다. 그러나 평소에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지만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의사들의 단체행동을 보면 돈을 도대체 얼마나 벌려고 저렇게 '밥그릇 싸움에 열심이나' 하는 생각이 들 때 의사에 대한 존경심은 조금 더 멀어진다. 평소에 의사는 환자의 병을 고쳐주고 꺼져가는 생명을 살리는 힘든 일을 하는 사람으로 대해 마땅히 존경 받을 대상으로 생각하다

의사들의 단체행동 땐 왜 의사들이 그럴까 하는 생각이 앞선다. 의사들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갖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반성도 해본다. 이 책은 최소한 의사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바로잡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주었다. 이 책을 쓴 의사의 진정성이 느껴졌고, 이 책에 쓴 사실이 모두 스트레스 많은 의사들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여준 데서 많은 반성을 하게 되어서다. 가끔 보여준 의사들의 무표정한 모습도 이해해줄 부분이 많다는 생각도 든다.



의사에 대한 말 중에 독자가 아는 말은 우리나라 의사, 의료 현실을 가장 잘 말해주는 말이라 생각한다.

"명의가 돈 잘 버는 것은 아니다. 명의 따로 있고, 돈 잘 버는 의사 따로 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의사는 명의를 꿈꾼다. 즉, 돈 잘 벌기 위해 의사 된 사람은 없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명의가 많다. 존경 받는 명의. 돈 잘 버는 의사가 명의는 아니다. 환자의 아픔을 함께하고 환자의 고통을 치료해 덜어주는 의사가 명의다.


저자 : 양성관


브런치 조회수 100만의 작가. 한 여자의 남편, 그리고 딸아이의 아빠이지만 사람들은 ‘대머리 선생님’으로만 기억하는 의사. 배가 아파서 온 고3 학생에게 ‘인생에 찾아오는 다섯 번의 기회’에 대해 강연을 하고, 감기로 온 운동부 고등학생에게 운동선수의 인생을 말아먹는 ‘도핑’과 ‘승부 조작’의 위험성에 대해서 특별 강의를 늘어놓는 꼰대 겸 멘토. 의사가 아니라 작가로 돈을 벌어서, 하루에 환자 열다섯 명을, 한 명당 30분씩 보는 게 꿈인 의사이다. 1982년 김해시 봉황동 회현리 패총 근방에서 태어났다. 5번이나 이사를 다녔지만, 태어난 곳에서 100m를 벗어나지 못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들었던 구지가(龜旨歌)는 애국가보다 더 익숙하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서야 사촌 동생에게 자전거를 처음으로 배웠다. 김해 서중학교와 김해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고등학교 졸업을 4일 앞두고 친구 두섭이와 간 4박 5일의 여행이 인생을 바꾸었다. 졸업과 동시에 재수를 시작해, 공부한다는 핑계로 하동 고시촌에서 책을 읽고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2002년 부산대학교 의예과에 입학하여 의학공부 30%, 독서 30%, 여행 30%, 스타 10% 비율로 대학 생활을 보냈다. 2007년 대학교 마지막 방학을 뜻깊게 보내기 위해 달랑 20만원짜리 자전거에 텐트를 싣고 혼자서 전국 자전거 일주를 했다. 2008년 의사자격증을 취득하였다. 의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3년간 지리산 아래의 시골 마을 산청에서 보건지소 지소장으로 군복무를 마쳤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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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떻게 나이 들고 싶은가 - 생각보다 행동이 필요한 노년들을 위한 꿈 설계
김여진 지음 / 한국경제신문i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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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수명은 다른 생물, 특히 동물들에 비하면 수명이 꽤 길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수명이 길어진다고 행복 기간이 정비례해 늘지 않는다. 의학의 발전으로 고령화 사회로 변해가면서 이미 사회 문제화 돼 있다. 대체적으로 선진국이라는 나라들도 이 고민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선진국 국민들은 은퇴 후 이른바 '노후 대책'을 개인에 맡겨서는 적절한 대책이 안 된다고 판단, 은퇴 후 고령의 노인들에 대한 다양한 복지 대책을 마련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선진국에 끼지 못하고 개발도상국 상황은 벗어난 상태의 국가들은 노후 대책에 대한 국가적 대책이 미흡하다. 급속도로 성장한 나라들이 대부분이어서 노령화 인구 대책을 제대로 마련할 틈도 없었고, 다양한 사회적 요구에 대한 문제 해결을 위한 충분한 재원도 없다. 우리나라가 대표적인 예다. 당장 인구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어 문제점으로 부각되고 있는데도 대책은 없다. 고령화 기준을 60세에서 65세로 늘린다는 것은 대책이 될 수 없다.

미봉책으로는 급한 효과는 낼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대책'이 아니라 문제만 더 키우는 졸속대책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이들 나라의 정부는 하루아침에 해결할 능력을 축적해올 시간도, 재원도 충분하지 못했다.




더욱이 우리나라 인구 분포도를 보면 이 문제는 더 크게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인구 증가가 멈추거나 마이너스 증가를 기록하는 시점을 중심으로 고령화 문제가 해결하는 방안은 수십년 안에는 기대하기 어렵다. 가장 큰 문제점은 경제적 재원이다. 지금 65세 이상 노인들은 대부분 산업 현장에서 평생을 일해오며 가족을 꾸리고 생계, 의료을 위해 온 몸을 바쳤다. 흔히 말하는 노후대책을 마련할 정도로 버는 돈이 충분하지 못하다.

우리 사회가 경제적으로 하위권에서 중위권, 상위권으로 올라오면서 일하는 사람들에 충분한 대우를 해주지 못한 데서 비롯된 문제다.

이에 따라 사회나 국가가 해결 못하는 노령화 인구의 삶을 현재의 상황에서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노인 개개인의 대안을 연구하고 경험한 것들을 중심으로 한 '노년의 자기계발서'가 자주 눈에 띈다. 이들 책들은 돈이 없어도 보다 풍요롭고 아름답게 노년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노년의 삶을 자신이 처한 범위에서 조금이라도 더 평온하고 행복한 삶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책들이다. 이 때문에 이들 책은 노인에게 필요하다기보다 오히려 노인이 아직 안 된 사람들에게 더 잘 읽히는 책이다.




이 책 『당신은 어떻게 나이 들고 싶은가』도 노년의 삶은 결코 돈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 김여진은 간호사로 일해오다 요양병원 간호사로 일할 때 노년의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저자에 따르면 간호사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쌓은 노년의 삶에 대한 지혜와 간호사로 본 지식을 정리해 쓴 글이다. 특히 현장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가 바탕에 깔려 있어 더 공감되는 부분이 많을 것이라 믿는다. 돈이 없고 건강마저 잃으면 인간의 기본적인 품위를 지키기 힘들다. 특히 건강하지 못하면 기본적 품격은 기대하기 어렵다.

저자는 이 책의 서두에 이렇게 쓰고 있다. 옛날 평균 수명이 70~80세였던 시절에는 정년 퇴직 후 유유자적하면서 살아도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100세 시대다. 퇴직한 후 그 많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옛날에는 ‘노인이란, 오래된 지혜를 가진 현명한 생각의 소유자다’라고 생각해 사람들이 노인을 존경하고 노인의 말을 잘 귀담아들었다. 일, 기능, 지혜가 차세대로 계승되어왔기에 노인의 말에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책에 따르면 지금은 AI의 시대로, 모든 정보와 노하우 등이 기계로 전파되기에 노인의 이런 말과 기술, 경험과 지혜가 조금 퇴색된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100세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이 시점에 노인이라고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노년이지만 누구나 한 가지씩은 잘하는 것이 분명히 있다. 또한, 젊은이들보다 오래 살아왔던 경험들이 노하우로 축적된 지혜와 영감이 있다. 마음만 고쳐먹으면 타고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진짜로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찾아 나서야 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100세 시대가 된 지금, 긴 노년을 보내야 하는 이들에게는 보다 즐겁게 노후 생활을 할 수 있는 마음가짐과 중장년층에게는 노년을 대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정보와 행동지침을 일러준다. 저자의 말에 완전 공감하며 "너무 늦은 나이는 없다. 인생을 즐겁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삶이라면"이란 생각이 든다.




노년기에 접어든 사람들은 생각보다 꿈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주장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늙어서 무슨 꿈이냐고 말하거나 꿈은 젊은 사람들이나 꾸는 것이지, 나이 들어서 무슨 꿈이냐고 생각한다는 것. 충분히 설득력을 가진 주장이다. 독자도 공감한다. 하지만 저자는 현장에서 다른 관점을 발견한다.

"꿈을 가진 자는 그 정신이 늙지 않으며 언제나 젊다. 꿈이 가슴속에 살아 있기 때문에 눈동자는 늘 빛난다. 삶에 목적을 가지고 그것을 완수했을 때만이 후회가 없고 여한이 없는 삶을 살아냈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람에 따라 전성기는 일찍 올 수도 있고 늦게 올 수도 있다. 각자에게 언제 그 전성기가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꿈을 포기하면 안 된다."

저자는 만약 당신이 지금 힘들다면, 아직 당신의 전성기는 오지 않은 것뿐이라고 말한다. 꿈이 있는 한 나이는 없다. 인생의 참 의미는 성장에 있다.

포기하지 않으면 우리는 죽는 날까지 성장한다. 어제보다 행복한 하루를 나 자신에게 선물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지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무엇이며, 무엇을 가장 하고 싶어 했는지, 무엇을 할 때 가장 자신 있고 행복한지, 지금이라도 자기만의 달란트를 찾아 나서 보자. 노년이라고 꿈을 꾸지 말라는 법은 없다. 노년이 되어도 꿈이 있는 사람은 진정 살아 있는 사람이다. 우리는 각자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며, 어떻게 나이 들고 싶은가 깊이 성찰해보아야 한다. 몸은 늙더라도 마음은 늘 청춘을 유지하는 법, 이 책을 통해 배울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다.





‘품위 있는 죽음’은 삶만큼 중요하다고 한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맞는다. 건강하게 사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품위 있는 죽음이다. 사람들은 평소 살아가면서, 자신의 품위를 유지하며 존경받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건강하게 살면서 품위를 유지하고 오래 사는 것도 좋지만, 과연 우리가 삶의 최후 순간까지도 그 품위를 얼마만큼 잘 유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p. 19)


자신을 해방하는 데 정해진 법칙이 없듯이, 삶에도 정해진 법칙은 없다. 어떤 삶을 살든 그 삶의 본질은 자유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자신만의 원칙을 세워서 규칙적으로 끈기 있게 일하다 보면, 반드시 값진 보상을 얻을 것이라 확신한다. 우리는 우리 삶의 중심을 잘 잡기만 하면 된다. 내가 삶을 잘 조종해서 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p. 29)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모든 것은 자신의 생각에 달려 있다’는 사실부터 깨달아야 한다. 경험하지 못한 것을 경험하고 나면 아무리 낯선 곳이라도 가볼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우리의 삶은 한 번뿐이고, 그 삶을 만족과 행복으로 채워나갈 권리가 있다. 배움은 희망을 보게 한다. 그리고 끊임없는 도전은 스스로에게 좋은 자극을 준다.(p. 68)




이제 꿈을 나이 뒤로 숨기지 말자. 우리는 우리 뒤에 있는 것을 볼 수가 없다. 나이 핑계를 대면서 차일피일 미루기에는 나의 꿈이 너무나 아름답고 눈부시다. 인생에서 무언가를 이루어야 하는 나이가 정해져 있지 않듯이, 무언가를 이루지 못할 나이 역시 정해져 있지 않다. 우리 인생의 클라이맥스는 아직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p. 144)


자존감을 잃지 않고 행복을 찾는 ‘진짜 나를 사랑하는 법’은 유리처럼 산산이 부서진 마음을 스스로 보듬어 안아주는 일’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삶의 순간순간, 내면의 빈칸들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자신을 돌아보며 물음표를 던진다. 타인이 정한 기준에 맞춰 타인의 바람대로 살아가는 삶은 과연 옳은지, 세상의 중심엔 다른 무엇보다 내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닌지 말이다.(p. 187)


후회가 없는 삶을 사는 많은 비결 중에서도 반드시 꼭 신경 써야 하는 것이 건강이다. 요양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대부분의 환자들은 젊어서 건강을 잘 지키지 않고 무절제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태반이다. 술과 담배, 불규칙한 생활 습관, 부정적인 생각 등 다양한 원인을 가지고 있다. 그분들과 대화하다 보면 하나같이 지난날을 후회한다. 아무리 금은보화가 많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워도 건강하지 못하면 행복하지 않다.(p. 195)



이 책은 처음에는 '내 문제는 아니야'라는 심경으로 읽어갔지만 읽을수록 '바로 내 삶의 문제'라고 인지하게 됐다. 저자의 글솜씨 때문이 아니라 현장 경험을 통한 진솔한 내용을 풀어썼기 때문이다. 더욱이 책상이나 도서관에서 배운 지식이 아니라 현장 경험에서 얻은 지혜로 이 문제에 접근하고 해결 방안을 내놨기 때문에 '내 문제'로 인식하기 쉽게 썼기 때문이다. 내 문제로 인식하고부터는 정말 읽는 데 속도가 붙었다. 가끔은 읽다 '이렇게 살아야겠다'는 공감과 '내 생각, 내 생활의 일부가 책 속에서 드러나자 완적히 몰입했다. 마지막에 "앞으로 이렇게 살아야겠다"는 확신이 선 것은 저자의 주장에 공감하고, 논리에 설득되니 매우 자연스러운 논리고,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객관성의 공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삶을 살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다르게 느꼈을 수도 있지만 이 책의 논리나 주장은 최대공약수를 포함한다고 독자는 믿는다. 사람 삶은 개개인별로 세밀하게 접근하면 다 다르지만 크게 분류해보면 거의 비슷비슷하다. 그 비슷한 점은 우리가 살아오면서 말 없이, 법 없이 살아온 우리 모두의 삶에 녹아든 것이다.

노인에게 자기계발서를? 노인들이 자기계발서를 읽는다고? 이 책이 읽힐까? 걱정은 전혀 할 필요없다. 그것은 저자의 문제이지 독자의 문제가 아니니까. 사람은 누구나 노인이 된다.


저자 : 김여진(자기계발 작가. 동기부여가)


드림 메이커, 꿈 메신저, 인생 2막 코치. 간호사로 카톨릭의과대학부속 성빈센트병원, SAUDI RIYADY CENTURAL HOSPITAL에 근무했고, 현재는 요양병원 근무 중이다. 자기계발 작가, 인생2막 코치, 동기부여 강연가, 드림 메이커, 꿈 메신저, 작가이자 동기부여가로 노년들에게 멋지게 나이 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인생 학교를 열어 노년의 인생 2막 준비를 도와준다. ‘김여진 인생 2막 연구소’를 운영 중이며, 공동저서로 《버킷리스트 24》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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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해서 - 소란과 홀로 사이
배은비 지음 / 하모니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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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어중간하다'는 형용사가 자주 나온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어중간하다'(於中間하다)는 뜻은 ① 거의 중간쯤 되는 곳에 있다. ② 이것도 저것도 아니게 두루뭉술하다. ③ 시간이나 시기가 이러기에도 덜 맞고 저러기에도 덜 맞다. 등으로 쓰인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쓰는 말 중의 하나다.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보통으로 평범하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등의 뜻으로 읽힌다. 그러나 부정적인 뜻으로 쓰이면 부정확하고 정체성에 문제가 있는 정도의 뉘앙스를 갖고 있다. 우리 삶에서 적용하면 대부분 '어중간한 사람'은 '어정쩡한 사람'이 되듯 정체성이 부정확한 이른바 '박쥐'를 생각케 한다. 흔히 일상에서 어중간한 사람은 자신의 뜻을 분명히 드러내지 않거나, 어떤 상황이나 사건이 발생할 때 부적임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에선 정상적인 대우를 받기 어려운 처지에 빠질 때가 많다. 수동적으로 어중간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이 책 『어쩌면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해서』의 저자 배은비는 자신을 '어중간함 그 자체인 사람'으로 말한다. 책 제목도 '어쩌면'도 그래서 붙인 건가?



'어쩌면'도 역시 자주 사용하면 부정적으로 오해의 소지가 높은 단어다. 어쩌면은 '확실하지 아니하지만 짐작하건대'로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풀이되고 있다.

이 때문에 책 제목에 '어쩌면'이라는 단어를 넣은 것은 오해받을 이유가 된다. '확실치 않지만 짐작컨대'로 해석되면 독자에게 어필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단어들은 독자들 입장에서 견주어 보면 정말 어중간한 사람들은 모두 이 단어의 뜻을 긍정적인 매력이 있는 단어로 받아들일 것이다.

부조리가 없거나 상식대로 흘러가는 사회라면 '어중간한 사람'도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으로 대우받을 수 있다. 어쨌거나 어중간한 사람들은 늘 중심에서 멀어져가는 이방인이나 요즘 말로 '투명인간' 대우를 받을 우려가 크다. 저자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었을 것이라는 게 책을 읽어본 독자의 소감이다. 저자는 먼저 자신이 어중간한 삶을 살았고, 그런 사람들에 대한 사회 시선을 자주 받았기 때문에 어중간해서 소외되는 사람들의 입장을 잘 이해한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소란스러운 세상에서 어중간하기만 한 나 같은 사람이 설 곳은 없는 것만 같을 때, 주눅 들고 외롭다 느끼는 사람들에게 괜찮다는 위로를 전해주고 싶다. 늘 어중간하기만 한 사람. 그래서 무엇을 하던 온갖 애를 써야만 남들과 비슷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여러 번의 취업, 사기, 경제적 바닥,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 열심히 살아봐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느끼던 날들이었다.

내가 꿈꿔온 삶은 이런 것이 아닌데 나만 이렇게 살아가는 것 같았다. 빛나는 사람들 틈에서 평범하고 어중간한 '나 같은' 사람이 설 곳은 없었다. 하던 일들은 포기하거나 실패하기 일쑤였고 욕심은 많아서 이것저것 툭툭 건드려 놓기만 했다. 제대로 이뤄 놓은 것 하나 없는 나 자신이 한심스러워 견딜 수 없을 때면 나를 버티게 해 주었던 건 글이었다.

이젠 당신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고 싶은 마음에 이 글을 썼다. 세상은 언제나 불공평하고 뜻대로 되지 않겠지만 그래서 당신이 힘들고 슬플 때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당신이 빛나는 순간은 올 것이라고 그러니 자신을 믿고 사랑하며 살아가라고 전해주고 싶다.



이 책을 읽기 전 열심히 내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독자는 저자의 입장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독자는 처음 책을 읽어가면서 곧 "내 삶에 뭔가 빈 곳이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다 읽고 난 후 독자 스스로의 삶을 성찰하면서 깨달았다.

학교를 나와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저자의 선택은 정해져 있었다. 그곳에서 선택 받은 후 그곳에서 맡긴 일에 충실하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입장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 일을 잘하는 것은 선택권이 자신에게 있지 않고 그들('나'가 아닌 나를 뽑은 사람이나 집단)에게 있었고 그들에 의해 선택받는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도 "맡은 일을 최선을 다해 인정받고, 대우받고, 승진도 한다. 그것이 직장생활이다" 라는 항변도 마음속으로 해봤다. 성찰을 계속했다. 거기서 남는 것은 무엇인가. 삶을 계속할 수 있는 각종 대우를 받았으니, 자신의 능력이 인정받았으니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돌아보면 정작 중요한 '자신의 삶'은? 없다. 흘러간 수십년 시간 속에 '나'가 없다니. 이건 아이러니고 역설이다. 애써 찾아보려는 독자들은 똑같은 입장에 처해질 것이다. 독자는 이렇게도 생각해봤다. "내가 노력해서, 나와 내 식구 먹고살고, 남한테 손 안 벌리고, 해 끼치지 않고 2세 교육 열심히 시키고... 그보다 더 값진 삶이 어디 있느냐"고 반박도 했다. 그러나 공허한 메아리만 들려온다. 그래서 너는 달라진 게 뭐냐고...

결국 저자의 믿음은 곧 독자의 믿음으로 전이된다. 저자는 '어중간한 삶'이었다면 독자는 '어정쩡한 삶'이라고.



세상이 독자에게 '잘했다'는 평점을 주는 것에는 인색하다. 열심히 산 건 인정해도 잘 산 건 인정하지 않는 거다. 그것을 자신이 알아야지 누가 내 삶을 잘 살았다, 못 살았다 평가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열심히 산 건 맞지만 잘 산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지? 저자는 일일이 예를 들어가며 어중간한 삶을 지적한다.

내게 이런 말을 한 사람이 있었다. “부단히도 애를 써야 발 한쪽이라도 이 땅에 붙이고 살아갈 수 있어.” 하지만 난 그 말을 부정하기로 했다. 세상에 애를 쓴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어느새 시들」 중에서


서른이 넘어가면 주변에선 왜 이리도 말들이 많은지 골치가 아플 정도다. 나이도 있는데 결혼은 언제 할 건지, 돈을 모아 놓기는 했는지, 연애는 하는 건지, 요즘에는 평생직장이 없다던데 공부는 꾸준히 하는 건지, 저번에 보니 살 좀 빼야 할 거 같던데 운동은 하는 건지 등등의 말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쏟아진다. 나는 그때마다 무사히 넘어갈 수 있는 대답을 한다.

“때 되면 다 되겠죠, 알아서 하고 있어요.”

도대체 저 기준은 누가 정한건지 모르겠다. 이 나이쯤이면 결혼을 해야 하고 일한지 꽤 됐으면 돈도 모아놨어야 한다는 게 진짜일까. 요즘은 100세 시대라고도 하던데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것들을 바라는 것이 아닐까.

「편견의 무게」 중에서



저자는 계속해서 격려와 함께 '자신의 삶'을 위한 노력을 실례를 들며 보여준다. 저자의 삶과 깨달음을 통해.


사람에게 실망하는 일이 반복 될 때마다 많은걸 바라지 말자고 다짐 아닌 다짐을 하곤 했지만 누군가 내게 기대는 것이 좋았다. 남에게 힘든 일이 있을 때 조금이나마 버팀목이 되어 줄 수 있다는 건 사실 나를 위로하는 일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결국 이것이 사람들에게서 벗어나고 싶다 생각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지겨워졌다. 대개 부정적인 이야기들이었기 때문에 그런 말들을 듣고 있자면 덩달아 지쳐가는 것 같았다. 끝없는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

「마음의 크기」 중에서


넌 항상 떨쳐버릴 수 없는 존재였다. 나는 너를 부정하기보단 온몸으로 끌어안아 본다. 아쉬워하지 않기 위해, 미련을 남기지 않기 위해 밀려오는 너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고 나면, 그렇게 꽃잎이 다 떨어지고 나면 내게도 새로운 계절이 올테니까.

나는 분명, 지금 이 순간들을 사랑한다. 그러니 애써 지난 마음을 달래려고도 억누르지도 말 것. 온 마음을 다해 그리워하고 추억할 것. 그러다 조금 가라앉고 나면 아무렇지 않은 듯 살다 다시금 마음이 간지러워질 때면 온전히 그 마음을 다할 것. 그러고 나면 또다시 온 힘을 다해 사랑할 것.

「산책하는 오후」 중에서



독자는 간신히 정신을 추스리고 책을 계속 읽어나간다. 아까보다 집중력도 훨씬 떨어졌지만 가다듬고 독서를 계속한다. 저자의 위로와 잘 사는 삶을 위한 '행동강령'을 듣기 위해서. 저자는 천천히 그러나 진솔하게 조언한다.


불필요하거나 못 나온 부분들을 잘라내고 보정할 수 있는 사진처럼 내 인생도 그럴 수는 없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별로라고 말하던 사진들에 눈길이 가는 걸 보면 그건 아마 그 순간에 있어야 할 것들이 온전히 담겨 있어서겠지. 혹여, 당신의 삶에도 지워버리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면 잊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본다. 지금의 삶이 견디기 힘들다 할지라도 아마도 그건 당신에게 꼭 필요한 시간일 거라고. 우리에겐 불필요한 순간도 삶도 없다고. 그러니 당신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주 예쁘다고.

순간을 기록한다는 건 모든 순간에 있던 나를 잊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기도 했다.

「순간을 기록한다는 것」 중에서


하루가 끝이 나고 모두가 잠이 드는 때,

당신의 하루엔 끝이 없는 것만 같다면

올려다본 밤하늘에 뜬 달을 보고도 눈물이 난다면

열심히 노력해도 무엇 하나 손에 잡히는 것 없는 현실에 모든 걸 포기해 버리고 싶다면

이 말로는 충분하지 않겠지만,

정말 괜찮다고.

당신이기에 괜찮을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극심한 추위가 가고 나면 유난히 따뜻한 계절이 찾아오듯

당신의 밤은 깊었으니 유난히도 빛나는 날이 찾아올 거라고.

그러니 조급해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본다.

빛나는 별들을 보며 외롭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본다.

당신을 사랑하고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을 바라보길 바라본다.

그렇게 이 글이 어쩌면 당신에게도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마치는 글」 중에서


저자 : 배은비


어중간함 그 자체인 사람. 매일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지만 이제는 이것 또한 나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 매일 어딘가 내가 가야 할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하루의 끝이 있어 좋은 사람. 역마살이 세개나 있는 덕분에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 약속시간 보다 일찍 도착해 시간이 비는 틈 사이를 좋아하고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 환한 낮보다는 어스름히 빛나는 밤을 더 좋아하는 사람. 모든 걸 솔직하게 말할 수 있게 만들어준 글이 내게 위로가 되었듯 당신에게도 그 위로가 닿기를 바라는 사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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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중독자 봉호 씨
이봉호 지음 / 왼쪽주머니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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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다." 스위스의 화가 파울 쿨레(Paul Klee)가 한 말이다. 예술의 본질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 책 『문화중독자 봉호 씨』는 존재하되 눈에 보이지 않는, 눈에 보이지 않되 현실에 존재하는 다면의 문화를 담담한 시선과 필치로 짚어낸 에세이다. 저자 이봉호의 실명을 그대로 제목에 썼다는 점에서 '문화중독자'인이 자신의 문화관(文化觀)이 당당한 것임을 내비친다.

여기, 한 사람이 있다. ‘문화중독자’라 불리는 그는 경계와 경계 사이를 넘나든다. 낯익은 것과 낯선 것 사이의 풍랑을 요요히 가로지른다. 익숙한 것의 새 얼굴을 드러낸다. 익숙지 않은 것의 살가운 내음을 속삭인다. 현재와 레트로를 상징하는 LP와 유튜브를 넘나들며, 가깝고도 먼 대중음악과 클래식을 호흡하며, 추상적으로만 미술과 상징을 삶에 접목하며, 문화중독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문학과 작가, 영화와 연극, 동양과 서양, 현대사의 밝은 그늘을 비롯한 어제와 오늘의 다채로운 문화가 독자를 유혹한다. 봉호 씨가 중독된 문화를 단숨에 들이쉬고, 이채로운 문화의 빛에 함께 중독된다. 문화중독자 저자의 눈에는 우리 인간의 삶 속에 드러난 모든 것이 문화의 대상이고, 문화이다.





칼럼니스트이자 대중문화평론가이며 강사이고 여러 권의 책을 출간한 작가. 누가 보아도 문화인이라 칭해도 모자랄 것 없는 타이틀이다. 다방면의 문화계 인사와 교류하며 명실공히 문화중독자로 인정받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기나긴 타이틀의 맨 뒤에야 자그마한 목소리로 ‘문화중독자’라 덧붙인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 보면 어째서 그를 ‘문화중독자’라 일컫는지 어렵지 않게 이해된다. 우리 곁의 사회와 세계를 향한 시선, 오늘날의 환경과 과거의 역사, 책과 독서와 문학과 작가를 아우르는 목소리, 음악과 미술과 영화, 다양한 인물을 비롯한 드넓은 관심사가 독자를 사로잡는다. 그렇게 홀리듯, 놀라운 순간을 만난다. 총천연색 문화가 한데 모인 이곳에서. 문화는 이렇게 우리 삶의 이야기이며, 우리 삶은 '문화'라는 이름을 가지고 우리 앞에 드러난다. 문화의 정체성은 정치에도 있고, 경제에도 있다. 사회에도 있고 자연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그것은 우리의 삶이다. 잘못된 정치를 '예술이 관여할 바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부는 맞는 얘기다. 예술은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아름다움을 찾아내 우리 앞에 보여주는 인간 활동의 하나다.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드러내는 표현에 걸림돌이 정치가 있었기에 정치에 관여하는 것일 뿐 예술의 본질은 정치가 아니다. 잘못된 정치가 우리 삶을, 아름다움을 방해하기 때문에 정치에 관여하는 것이다. 이는 사회도, 경제 정책에서도 그렇다.





"봉호 씨를 알게 된 것이 커다란 행운이자 기회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글에는 그리운 이름과 생소한 이름이 하늘의 별처럼 등장한다. 사람을 좋아하고 음악과 영화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렇게 쭉 이어지는 이름만 보고도 행복감을 느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별이 없어진 것은 아닌데, 우리는 때때로 그 존재를 잊고 산다." 출간에 앞서 인터뷰를 가진 지승호 씨는 이렿게 이 책을 이렇게 평하며 추천사를 썼다.

"그 별들의 존재를 잠시 잊고 살던 내게 봉호 씨의 글은 그야말로 나침반과 같았다. 원고를 받자마자 단숨에 읽어버렸다. 소설, 영화, 음악, 그림, 사람이 하나로 모이는 놀라운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그는 문화라는 통로를 이용해서 더 나아질 사회와 세상을 그려내 보인다.

그의 글에는 그리운 이름과 생소한 이름이 하늘의 별처럼 등장한다. 사람을 좋아하고 음악과 영화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렇게 쭉 이어지는 이름만 보고도 행복감을 느꼈다. 그리운 이름을 보면서는 '아, 예전에 좋아했는데'라 생각하기도 했고, 생소한 이름을 보면서는 '나중에 찾아서 감상해봐야지'라 마음먹기도 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별이 없어진 것은 아닌데, 우리는 때때로 그 존재를 잊고 산다. 그 별들의 존재를 잠시 잊고 살던 내게 봉호 씨의 글은 그야말로 나침반과 같았다. 동양과 서양, 대중음악과 클래식을 거침없이 횡단하고 종단한다. 예술을 포함한 문화는 삶을 흥미롭게 하고, 창조적인 사고를 하게 도와준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부디, 문화중독자 봉호 씨를 통해 '예술과 삶이 하나가 되는 천국'으로 가는 계단의 입구를 발견하길 바란다."





저자는 말한다. ‘예술의 생명은 누가 뭐라 해도 표현의 자유가 우선이다.’ 그와 동시에 또다시 말한다. ‘모든 예술 작품이 사회정치적 이슈를 담을 필요는 없다’라고. 시대와 문화를 관조하는 저자의 자세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자유와 방종의 상징으로 포장된 밥 말리의 이상. 죽음까지 불명예를 안고 가야 했던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의 이면. ‘금서’라는 치명적 단어 속에 묻힌 도전. 단골이 사라진 오늘날. 스스로 피부색을 선택한 사람들. 무능력한 능력자들. 아날로그와 디지털, 어제와 오늘, 그리고 우리의 열린 내일. 그렇게 켜켜이 쌓인 시간 속의 문화가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릿하게 글 걸음을 재촉한다.

‘예술과 삶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는 공간, 그곳을 우리는 천국이라 부른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책 속에서 다채로운 문화와 하나가 된다.

바빠지는 글 걸음만큼 그곳에 가까이 다가간다. 그 달콤한 맛이 내 안에 축적되어 문화의 풍미를 돋운다.

저자인 문화중독자 봉호 씨는 그렇게 문화를 사랑하고 문화에 빠지고 문화를 옹호한다. 여기서 '옹호'라는 표현은 조금은 표현임을 독자는 시인한다. 잘못된 문화, 예를 들어 폭력 지상주의, 선정적 표현 일방주의 등도 '문화'인가라는 질문이 있을 것 같아서다. 물론 그것을 표현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폭력이나 선정적 표현 난무 등은 사회의 일시적 현상이지 결코 문화가 아니라고 항변하는 답변에 독자 임의로 안심하고 '옹호'라고 표현했음을 밝힌다.




문화전쟁의 주인공은 뉴욕에서 태어난 안드레 세라노(Andress Serrano)라는 사진작가이다. (중략) <오줌 속의 예수(Piss Christ)>는 작가의 오줌, 정액, 피가 섞인 통에 빠진 십자가를 표현한 사진 작품이다. 이를 기독교에 대한 신성모독이라고 비난하는 종교인의 일갈은 미국제일주의를 주장하는 공화당원의 좋은 요릿감이 된다. (중략)

모든 예술 작품이 사회정치적 이슈를 담을 필요는 없다. 이 또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역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품을 통해 일그러진 세상을 바로잡으로려는 예술혼을 탄압하는 사회는 후진국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 (중략) 예술가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보라. 그곳은 뇌사 상태에 빠진 권력자가 지배하는 디스토피아와 다를 바 없다. 천국은 먼 곳에 있지 않다. 예술과 삶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는 공간. 그곳을 우리는 천국이라 부른다.

<그저, 아름답기를> 중에서





시오노 나나미는 책 『로마인 이야기』를 통해서 전쟁광의 활약상을 집요하게 나열한다. 대표적인 예가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이다.

로마라는 국가의 관점에서 카이사르는 위인으로 추앙받을 만한 여지가 없지 않다. 하지만 로마 군단에게 패배한 피지배 민족에게 카이사르란 위인이 아닌 광폭한 지배자일 뿐이다.

세상의 모든 위인에게 빛과 그늘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어떤 위인은 인종주의자였고, 다른 위인은 성차별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인간은 모두 위인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동시에 인간은 모두 위인답지 않은 행위를 범하는 양가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 머리털부터 발끝까지 위인다운 인물이란 없다. 단지 위인다운 행위만이 존재할 뿐이다.

<무엇보다 강하고, 무엇보다 약한> 중에서


소설 『망원동 브랏더스』를 마포아트센터에서 연극으로 다시 만날 기회가 이었다. 소설의 분위기를 살리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다. 무대에 등장하는 배역은 마지막까지 서로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멈추지 않는다. 이들은 소설처럼 누구에게도 미안해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자신의 생활 여건이 비록 누추할지라도 세상을 향해 비수를 던질 줄도 모르는 심약한 인문이었다.

"미안하다"라는 말을 다시 생각해본다. 미안하다는 말을 들을 기회보다 건넬 기회가 많았는가, 미안한 상황에서 미안하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는가,

미안하다는 말이 듣고 싶어 관계를 차단하지는 않았는가, 자문해본다. 우선은 나 자신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해줘야 할 듯싶다. 자신에 대한 설득을 마쳤다면 흐트러진 마음을 챙겨야겠다.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지 못한 누군가를 위해서.

<개인의 취향, 타인의 취향> 중에서





1914년 미국 세인트루이스 사업가 집안에서 출생, 1936년 하버드대학교 문학부 졸업, 소설 창작으로 비트제너레이션의 주역으로 등장, 작가이며 배우이며 미술가인 동시에 음악가로 활동, 1974년 뉴욕시립대학교에서 문예창작과 교수 역임, 1983년 미국문예아카데미{American Academy and Institute of Arts and Letters) 회원으로 선출, 앤디 워홀과 수전 손태그(Susan Sontag) 그리고 톰 웨이츠와 교류. 마약중독자, 장물과 모르핀 주사기 밀거래, 뉴욕 지하철역 권총 강도, 텍사스에서 마리화나 재배, 마약 소지 혐의로 미국에서 추압, 1950년 총기 오발 사고 살인범으로 구속 수감, 1953년 마약을 소재호 한 자전소설 『정키(Junky』) 발표, 이후 사디즘(Sadism)과 섹스와 퀴어(queer) 그리고 마약과 폭력을 소재로 한 연작소설 출간.

문학의 본령이 추함을 제거한 제한적인 미의 추구라면, 윌리엄 버로스는 저주받은 작가에 해당한다. 그는 소설을 통해서 제2차세계대전 이후 풍요화 기회의 땅으로 알려진 미국의 두 얼굴을 분해한다. 예상대로 그의 문학세계는 극단적인 평가를 받는다. 1966년 매사추세츠주 대법원은 『네이키드 런치』의 무혐의 처분을 내린다. 출간 당시 음란물이라 혹평했던 문학비평가들의 주장을 무색케하는 판결이었다.

<사랑일까요, 연민일까요> 중에서





여기서 죽음의 계급성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인간의 죽음에도 계급이 존재한다. 언론은 망자의 국적에 따라 사건의 경중을 조절한다. 언론이 정보권력화라는 철가면을 쓰는 순간이다. 정승 집 개가 짖어야만 마이크를 들이대는 시청률 및 구독률 지상주의의 결과이다. 정당한 침략전쟁이란 없다. 언론에서 진정 다뤄야 하는 기사란 전쟁이 남기는 비극성과 참혹성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권력투쟁으로 인한 집단사망이 이어지고 있다. 어떤 죽음은 언론의 무관심으로 조용하고 쓸쓸하게 자취를 감춘다. 또 다른 죽음은 언론의 관심으로 오래도록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이러한 언론의 구별 짓기 현상은 죽음의 차별화를 당연시하는 우매한 대중을 양산한다.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죽음이란 없다. 전쟁을 둘러싼 세상의 뉴스는 평등하게 다뤄야 한다.

<부디, 늦지 않기를> 중에서


저자 : 이봉호


문명보다 문화를 생각한다.

물질보다 시간을 신뢰한다.

언어보다 사유를 지향한다.

순응보다 변화를 추구한다.

찰나보다 영원을 응시한다.

과거보다 미래를 질문한다.

반복보다 창조를 고민한다.

잡설보다 직설을 선택한다.

권력보다 자유를 열망한다.

채움보다 비움을 수용한다.

작가, 강사, 칼럼니스트, 대중문화평론가, 다음으로 문화중독자이다. 《음악을 읽다》, 《취향의 발견》, 《독서인간의 서재》, 《음란한 인문학》, 《나쁜 생각》, 《광화문역에는 좀비가 산다》, 《나는 독신이다》, 《제9요일》을 출간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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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나와 이별하기로 했다 - 융 심리학에서 발견한 오래된 나로부터의 자유
제임스 홀리스 지음, 이정란 옮김 / 빈티지하우스 / 2020년 10월
평점 :
절판



올 한 해를 온통 코로나 때문에 시달리며 팬데믹이 장기화됨에 따라 '코로나 불루'라는 증세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코로나 블루는 일종의 우울증을 말하는 것으로 일상이 정지된 채 인간의 교류가 차단되고, 대화하는 것조차 어렵게 된 데 따른 의학적으로 정신과적 이상 증세다. 이에 과학자들과 감염병 전문 의사들 및 약학 연구자들이 치료제와 백신을 만들어내기에 골몰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어서 1년이 다 돼가는데도 확실치 않다. 다만 일부 제약회사 연구진들이 빠르면 올 연말이나 내년 초쯤에 임상실험을 마친 치료제가 나올 수 있다는 건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다. 이에 출판계는 마땅한 치료제나 백신이 나올 때까지는 증세 회복에 도움이 될 만한 의사들의 연구서나 심리치료 차원의 에세이 등을 집중 발간하고 있는 추세다. 이 책 『나는 이제 나와 이별하기로 했다』도 분석심리학 창시자 융 연구소에서 정신분석학을 연구한 제임스 홀리스가 집필했다. 불안 공포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심리적 안정을 주기 위해 쓴 것으로 보인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기 전에 정신분석학의 선구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Sigmund Freud, 1856년생), 그와 함께 일하기도 했지만 의학적, 정신분석학적 의미에서 의견을 달리한 분석심리학의 창시자 칼 구스타브 융 (Carl Gustav Jung, 1875년생), 그리고 소설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년생)에 대해 약간의 지식을 갖는 것이 좋다. 알려진 대로 세 사람은 각기 서로 크게 교류하며 지낸 사이는 아니다. 앞의 두 사람은 의사이며 학자이고 카뮈는 소설가이다. 프로이트와 융은 모두 정신과 의사로서 같이 일한 적도 있긴 하지만 카뮈는 알제리 출생으로 소설가여서 두 사람과 일면식도 없다. 다만 이 책의 저자가 책에서 '과거'가 어떻게 '현재'를 얽매이는가를 설명하기 위해 카뮈의 소설을 인용했기 때문이다.



독자도 코로나 이전에는 프로이트와 융, 카뮈를 고등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 언급된 '이름만 아는' 정도지만 봇물처럼 쏟아지는 책 속에서 유난히 이름이 자주 거론되는 세 사람을 조금 더 알게 됐다. 그러나 분야는 다르지만 세 사람이 남긴 의학적 이론이나 연구, 문학 작품을 이해하기는 어렵다는 점은 공통이다.

카뮈는 '어린 왕자'로 우리나라에도 알려진 지 매우 오래돼 읽고 또 읽은 기억이 있어 친근감은 있지만 그의 소설 이방인 등 '부조리의 문학'이란 점에 들어가면 어렵긴 마찬가지다. 찾아다니면서 그들을 알기 위해 노력은 기울이지 않았다. 독자의 삶과 독서에 이들의 이름이 끼어들게 만든 것은 역시 문학이고, 예술가들이고 문화 장인들이 끼어 있어서다. 저자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함께 심리학, 정신분석학의 큰 줄기를 만들어낸 칼 구스타프 융과 그림자와 무의식, 콤플렉스, 페르소나 등의 이론을 통해 ‘진정한 나’에 관한 성찰을 제시해온 융 심리학이 BTS와 조던 피터슨,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헤르만 헤세 등과 같은 수많은 석학과 예술가, 사상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한다. 이 점이 독자에게 이 책을 읽게 한 이유이다.

융 심리학 전문가이자 ‘중간항로’라는 표현을 통해 이제 막 인생 2막을 시작한 독자들에게 큰 울림을 전한 저자 제임스 홀리스는 오래된 나와 이별하고 ‘진정한 나’로 성장하기 위해 지금 던져야 할 21가지 질문을 『나는 이제 나와 이별하기로 했다』에 담았다.

그리고 저널리스트 올리버 버크먼의 다음과 같은 찬사를 받았다. “이 책은 ‘인생 2막’을 위해 애쓰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주는 엄청난 선물이다.”



이 책에는 일상의 불안과 고독, 혼란을 치유할 21가지의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이 담겨 있다. 분석심리학의 궁극적인 목표답게 개인인 '나'라는 존재에 집중하고 내가 가진 인생의 고통이나 문제점을 개선해 진정한 나를 찾는 여정을 안내하는 책이다.

모두 21가지의 스스로 한 질문에 저자가 답을 쓴 형식이다. 독자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차근차근 읽는 것이 불편하면 목차에서 관심 있는 단어나 제목을 찾아 읽으면 된다. 책의 내용이 처음부터 끝까지 연결된 논문이나 소설 형식이 아니고 분석심리학에서 주로 다룬 문제나 키워드를 중심으로 구성해서다.

1장 선택의 누구의 몫인가

5장 불안은 무엇으로 나를 지배하는가

13장 가장 오래 지속되는 기쁨은 무엇인가

15장 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16장 불안의 그림자는 누구의 것인가

17장 영혼은 우리를 어디로 안내하는가

21장 성찰하는 삶이란 무엇인가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의 외딴 마을. 아랍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던 한 교사에게 두 명의 손님이 찾아온다. 교사를 찾아온 이들은 살인범과 그를 호송하던 경찰관. 경찰은 교사에게 죄수를 다른 마을의 경찰서로 인도하라고 명령한다.

그날 저녁, 교사는 죄수에게 자유의 사막으로 가는 길과 식민지 감옥으로 가는 길 모두를 알려주며 탈출의 기회를 준다. 하지만 죄수는 감옥으로 향하는 길을 선택하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교사는 그의 선택이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방관한다."

앞서 말한 알베르 카뮈의 단편 『손님』은 모든 책임을 회피해왔던 이방인의 모습을 탁월하게 묘사한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처럼 우리 또한 인생을 살아가면서 예측 가능하고 안전하며 익숙한 것들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 선택이 비참한 결말로 이어질 것이 뻔해도 해보지 않은 일로 불확실성을 느끼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다고 저자는 언급한다. 학대받으며 자란 수많은 피해자들이 배우자로 학대자를 선택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들은 정신적으로 충격적인 경험을 ‘더’ 안전한 것으로 여기고 비정상적으로 제한된 관계 맺기를 반복한다.

융학파 정신분석가이자 저자 제임스 홀리스는 이와 같은 제한적인 균형 상태에서 보이는 경험적이고 무의식적이며 무기력한 ‘일상화된’ 반응을 경계한다. 자유의 사막 대신 감옥을 선택한 죄수, 선택의 결과를 회피하기 위해 선택하지 ‘않는’ 것을 선택한 교사, 그리고 과거의 익숙함을 선택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끔찍하게 고통스러운 현실뿐이라고 말한다.



책에 따르면 과거의 것을 버리고 진정한 내가 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스스로를 다른 방법으로 생각하는 것은 우리를 위협하는 일이고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적으로 부모나 역할 모델 의해 정의 내려진 모습에 집요하게 집착해왔다. 우리 모두는 동일한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고, 무기력에 빠지기 쉽다. 성장을 회피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진정한 나 자신이 되는 일, 즉 성장을 회피하는 동안 우리의 영혼이 혼란에 빠진다고 말한다. 희망적인 것은, ‘고통에 대한 영혼의 호소’로 정의되는 신경증과 우울증 뒤에는 삶의 진정한 의미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가 주는 확실성을 떠나 우리를 괴롭히는 불안감을 참아낼 수 있다면, 그 과정에서 우리는 의미와 성장, 그리고 영혼의 회복력을 얻을 수 있다.

존중하는 태도로 내면과의 대화에 나설 때 우리는 과거와 이별할 준비를 시작할 수 있다. 집을 청소하고 낡은 옷들을 정리하듯, 우리는 우리의 축적된 과거와 삶의 태도, 무의식적 행동, 반응을 정리해야 한다. 바울이 고린도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썼듯, 성인이 되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아이의 모습을 버리게 된다. 그렇게 되었을 때 우리는 용기와 신중함이 필요한 미지의 세계를 향한 여정에 동참할 수 있다. 독자로서는 저자에 공감이 가장 큰 부분이다.



이 책은 우리 삶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문제들을 성장의 발판으로 바꾸기 위한 삶의 태도와 행동, 원칙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에 따르면 성장은 자기반성, 즉 지금껏 변화에 저항해왔던 과거의 나로부터 서서히 탈피해나가는 과정이다.

지금 이곳에 우리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는 어떻게 불려야 하는 존재인가? 삶에서 나는 어떠한 가치나 특성, 능력을 구현해나가야 할까? 이러한 질문들은 우리를 사소한 것들로부터 벗어나게 하며, 우리의 좌절과 실망을 재구성하도록 돕는다. 또한 세상의 기대에 맞추며 안전한 상태로 머물고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애쓰기보다 더 큰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이와 같은 순간들은 편안함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우리에게 에너지를 제공하고 그다음 단계로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새로운 미래로 뻗어갈 수 있게 한다. 그렇게 될 때만 우리는 단지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진정으로 살아 있는 존재가 된다.

우리는 오랜 시간 영혼의 험난한 바다를 표류했다. 이제 이 책의 21가지 질문들을 통해 우리에게 내려진 지시가 무엇이었는지 확인해볼 시간이다. 그렇다고 서두를 필요는 없다. 새로운 항로를 설정하고 바람의 방향에 맞춰 행해를 계속해나가면 된다.

이렇게 이동해나가는 동안, 우리의 목적지는 바로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저자 : 제임스 홀리스


스위스 융연구소에서 정신분석학을 공부했다. 17권의 책을 집필한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미국 워싱턴DC에서 활동하고 있는 융학파 정신분석가로 워싱턴 융소사이어티 이사를 지냈다. 마흔의 위기를 ‘인생의 중간항로’라고 표현한 그는 그림자와 무의식, 콤플렉스 등 융 심리학의 지혜를 통해 인생의 갈림길에서 영혼의 부름에 귀를 기울이고 불안과 혼돈의 시간을 현명하게 통과하는 21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채 마흔이 되었다》, 《인생 2막을 위한 심리학》, 《에덴 프로젝트》 등이 있으며, 모두 19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역자 : 이정란


국민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출판사에서 에디터로 근무했으며, 호주 맥쿼리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며, 옮긴 책으로 《스파크》, 《자포스는 왜 버려진 도시로 갔는가》, 《선물의 힘》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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