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역사 공부 - 사마천, 우리에게 우리를 묻는다
김영수 지음 / 창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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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저술했던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말했다. 오늘날 이를 일컬어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고 표현한다. 그가 말한 대로 신흥 강국과 패권국의 충돌은 역사에서 수도 없이 반복되어 왔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과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영국의 대립 등이 그 대표적인 예시이다. 그러므로 역사를 알아두는 것은 중요하다. 언제 또 비슷한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역사의 연구』의 저자 영국의 역사가인 아널드 J.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는 독자적인 문명사관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유기체적인 문명의 주기적인 생멸이 역사이며 또, 문명의 추진력이 고차문명의 저차문명에 대한 '도전' 과 '대응'의 상호 작용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스 이후 쇠퇴하였던 역사의 반복성에 빛을 부여함으로써 고대와 현대 사이에 철학적 동시대성(同時代性)을 발견하고 역사의 기초를 ‘문명’에 두었다. 이로써 토인비는 19세기 이후의 전통 사학에 맞서 새로운 역사학을 개척했다고 평가받는다. 대체적으로 서양에서는 투키디데스로부터 시작해 토인비에 이르러 역사학의 전형으로 완성되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동양의 역사관도 결은 조금 다르지만 명쾌하게 역사를 보는 입장을 정리하고 그에 따른 역사를 기술함으로써 이미 기원전 시대부터 역사 서술의 정확한 사관을 세웠다. 사마천과 그의 저서 『사기』이다. 위대한 역사가 사마천은 ‘술왕사(述往事), 지래자(知來者)’라고 했다.

‘지난 일을 기술하여 다가올 일을 안다’는 역사의 미래 예견력에 대한 통찰이다. 사마천은 중국 고대사를 이 같은 사관에 입각해 기록한 최초의 역사서 『사기』를 저술했고, 불세출의 통찰력과 날카로운 안목을 보여주었다. 이로써 『사기』는 기전체라는 형식에 바탕을 둔 정확한 기술과 투철한 역사관으로 동양 역사 서술의 기본이 되었다. 특히 행간 행간에 작가의 숨결이 느껴지는 문학서이자 학문의 전 분야를 아우른 백과전서이다.

이런 점에서 정치를 하든 기업을 경영하든 각계각층의 리더는 반드시 역사 공부를 제대로 해야 한다. 더욱이 지식이 해방된 집단지성의 시대에서 역사 공부는 특정한 사람의 전유물이 결코 아니기 때문에 리더들의 역사에 대한 관심과 공부는 한층 더 심화되어야 할 것이다.

역사책을 읽는 자가 성공한다.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고, 미래의 길을 제시하는 나침반이다. 과거 속에 미래가 있다!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고, 미래의 길을 제시하는 나침반이다. 저자의 주장이 큰 설득력을 갖고 다가온다.



이 책 『리더의 역사 공부』는 김영수 저자가 지난 10년 동안 이런저런 매체에 기고했던 글과 이번 책을 위해 새로 쓴 글을 모은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기존의 원고를 다듬고 현 상황에 맞게 일부 바꾸었다. 총 97꼭지의 글들이 모두 칼럼 형식이다. 주로 사마천과 『사기』의 정신과 내용을 많이 다루고 있다.

사마천의 생각을 빌려 우리 사회 각계각층을 향해 자성을 촉구하는 글들이 대부분이다. 길게는 10년, 짧게는 1년 전의 글인데도 시사성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정말이지 역사의 진전은 참 더디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하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거나 후진할 수는 없다. 몇 사람이 바뀌었을 뿐 적폐세력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준엄한 역사 평가와 심판은 아무리 시간이 걸리더라도 확실하게 수행하고 넘어가야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각계각층의 리더들, 세상을 바른 쪽으로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 사마천과 『사기』의 정신을 추구하는 사람들,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에 대한 해결책을 바로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전하고 싶다.



'역사는 그 자체로 뒤끝이다' 편에서 명장 악비를 모함해 죽게 만든 간신 진회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된 것은 독자에게 큰 보람이다. 얘기를 들은 적이 있지만 정확히 잘 알지 못했던 악비에 대한 이야기다. 그 당시 진회는 악비를 죽이고 떵떵거리며 살았을 테지만 나중에 사람들이 그 부부의 철상을 만들어 악비의 무덤 앞에다 무릎을 꿇려놓았는데, 그걸 보는 자손들이 얼마나 고통이었을까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악비의 충(忠)이 어리석은 것이라 말하는 이들도 그 당시도 있었을 텐데 그가 무조건 강경 대응만을 고집하느라 송나라 백성들이 크게 희생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백성들은 끊임없이 악비를 칭송했다. 이유는 그의 '충'이 조정이나 권력자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자기 조국과 백성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진회는 왕이나 자신의 안락만을 위한 것이었기에 외면당하고 악비를 영원히 응원하는 걸 백성들이 선택했다는 이야기이다. 사마천의 사기가 전하는 많은 이야기들 중에서도 이 부분은 생각할 게 많아진다. 아무것도 모를 줄 알았던 백성들은 이미 높은 이들의 선택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이다.

그 시대가 지나면 인간은 기억하지 못하거나 잊을 수 있지만 긴 역사에는 망각이란 게 없다. 망각이 없는 역사의 기록과 기억이 생각보다 무서운 일일 수밖에 없다. 오늘날이라 해서 다르지 않다. 우리 현대사에 이름을 남기는 정치인으로 남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겐 특히 교훈이 될 만한 이야기다.



앞서 말한 대로 이 책에는 모두 97꼭지의 칼럼 형식의 글들이 들어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언론 등 사회 각 방면의 여러 문제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통일성과 일관성이 없었다. 이번에 원고를 정리하면서 독자들을 위해 편의상 다음 일곱 개 큰 범주(주제)를 설정하여 그에 맞는 꼭지들을 배치했다. 이 일곱 개의 주제가 갖는 의미를 간략하게 소개해둔다.

1. 역사는 기록(記錄)이 아니라 기억(記憶)이다

이 범주에는 주로 역사의 기능과 역사가의 자세 등을 다룬 글들이 포함되어 있다. 역사는 이제 역사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모두가 역사를 쓰는 시대다. 특히 정치인, 지식인, 언론의 말과 글이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시대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그 말과 글을 수시로 소환하여 바로바로 판단하고 심판을 내린다.

집단지성 시대에 역사는 이제 더 이상 기록물이 아니라 다수의 기억이 되고 있다. 이 기억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필요할 때 언제든 소환되어 증언하고 증명하고 판결한다. 이런 인식을 가지고 적폐의 주범으로 지목된 언론 문제도 함께 짚어 보았다.

2. 옳은 길은 한 번도 편한 적이 없었다

이 범주에는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리더와 공직자들의 자세를 주로 다룬 글들이 포함되어 있다. 역사에 긍정적인 영향을 남긴 인물들에게서 무엇을 배워야 할 것인가? 백성들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던 공직자들의 확고한 공사 분별의 자세와 멸사봉공의 정신을 확인할 수 있다. 혁명보다 어렵다는 개혁의 문제를 다룬 글도 몇 꼭지 실었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과제가 다름 아닌 개혁이기 때문이다.



3. 백성이 부유해야 나라도 부유해진다

이 주제는 춘추시대 제나라의 재상이자 경제 전문가였던 관중(管仲)의 기본 철학인 ‘부민부국(富民富國)’이란 네 글자를 풀이한 것이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부국강병(富國强兵)’ 논리에 억눌려 왔다. 이 국가적 폭력논리에 기생하여 대기업과 재벌들이 정치와 결탁했고, 성장을 거듭했다. 그 결과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이 심화되었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로 떠오른 최저임금, 기초 생활 등과 같은 어젠다를 역사 속 사례들과 비교해 보았다. 성장과 분배의 문제 등 예민한 주제들이 적지 않다.

4. 권력(權力)은 힘을 나누는 것이다

권력이란 단어에서 ‘권(權)’은 저울추다. 물건의 무게를 달 때는 그 무게에 맞는 저울추를 사용한다. 따라서 권력의 정확한 뜻은 ‘힘을 고르게 나눈다’는 것이다. 권력과 거기에서 파생되는 여러 문제들을 다양한 사례로 살펴보았고, 아울러 리더십 문제도 다루었다. 아무래도 이 부분의 비중이 가장 클 수밖에 없었다.

5. 언격(言格)이 인격(人格)이다

2020년 4.15 총선거의 승부를 가른 여러 요인들 중 하나를 꼽으라면 필자는 맨 먼저 ‘말’을 꼽겠다. 말은 그 사람의 내면의 세계, 정신세계를 비추는 거울과 같다. 이런 점에서 말은 글보다 그 사람을 더 잘 나타낸다. 따라서 모든 말실수는 실수가 아니라 평소 소신의 표출이다. 실수로 포장하고 변명할 뿐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 사회는 이 ‘말의 격’, 즉 ‘언격(言格)’이 곧 ‘인격(人格)’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목격하고 체험했다. ‘언격’은 인문학 소양에서 나온다. 인문학의 기본은 문사철((文史哲)이며, 역사는 인문학의 핵심이다.

역사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또 하나, 자신보다 지적으로 도덕적으로 뛰어난 사람에 대한 막말과 비난의 본질도 새삼 확인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시기와 질투였고, 그 뒤에는 탐욕이 웅크리고 있었다. 시기와 질투는 인간의 본성에 가깝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남을 해치게 된다. 시기와 질투를 극복하는 길은 끊임없는 자기수양과 자아성찰, 그리고 공부다. 삐뚤어진 지식인들과 갈 데까지 간 언론들을 염두에 둔 글들이 있다.



6. 좀 알자, 중국

여기에는 주로 중국 지도자들의 언행과 인문학적 소양 및 리더십을 다룬 글들이 포함되어 있다. 바람직한 한중관계를 정립하고, 한 단계 더 진전된 관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중국 지도자들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몇 꼭지 다루어 보았다. 이와 함께 중국의 우주 프로젝트에 대한 글도 있다. 우주굴기, 우주강국으로 떠오른 중국 우주 프로젝트에서 잘 다루어지지 않는 부분을 짚어 보았다. 진시황을 다른 측면에서 조명한 글도 한 편 있다.

7. 지식이 해방된 시대

마지막 범주와 주제는 지식이 해방된 집단지성의 시대를 과거 역사 속의 번득이는 지혜들과 견주어 보기 위해 마련했다. 인간과 사물의 관계를 옛사람들은 어떻게 보고 통찰했는지, 또 그런 통찰력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았다. 이밖에 흥미로운 사회적 주제들이 함께 마련되었다.

이 책의 독창적인 특징은 사마천과 중국의 역사가 거듭되면서 기록된 현상들이 되풀이됨을 보여주는 데 있다. 따라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간의 삶에는 언제나 위기와 기회가 따른다. 그것을 판단해 극복하고 해결하는 것 자체가 삶인지도 모른다. 어렵고 힘들다고 극복하지 않고 회피하거나 우회하는 방법만 사용하다보면 늘 같은 상황이 다시 펼쳐진다. 그러기에 되풀이되는 역사를 또 기록하는 것 아닐까. 이 책의 모든 꼭지마다에 명언명구가 하나씩 딸려 있다. 저자는 여기에다 ‘일침견혈(一針見血)’이란 네 글자를 달았다. ‘침 한 번 찔러 피를 보다’는 뜻으로 흔히 ‘정곡을 찌르다’는 말과 통한다. 단번에 핵심을 움켜쥔다고 풀어도 될 것 같다. 『후한서(後漢書)』[곽옥전(郭玉傳)]이 그 출전이다. 해당 글의 핵심을 짤막한 명언명구로 정리한 것으로 보면 된다.



저자 : 김영수


이 책의 지은이 김영수는 지난 31년 동안 사마천(司馬遷)과 《사기 (史記)》, 그리고 중국을 연구하고 22년 동안 중국 현장을 150차례 이상 탐방해온 사마천과 《사기》에 관한 당대 최고의 전문가이다. 저자는 지금도 사마천과 중국의 역사와 그 현장을 지속적으로 답사 하고 미진한 부분을 계속 보완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이번에 펴낸 《리더의 역사 공부-사마천, 우리에게 우리를 묻는다》 는 저자가 오랜 동안 〈사마천 컬럼〉에 연재한 100여 꼭지 글을 7개 의 주제로 관련 도판 자료와 함께 엮었다. 각 꼭지 주제마다 쉽게 풀 어쓴 《사기》 속의 적절한 예화들은 《사기》 마니아는 물론 《사기》에 대해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지적 감흥을 불러일으킴은 물론, 이 시대를 이끌고 있는 리더와 앞으로 리더가 될 분들을 위한 훌륭한 역사 공부 지침서가 될 것이다.

주요 저서와 역서로는 《완역 사기》 시리즈를 비롯하여 《역사의 등 불 사마천, 피로 쓴 사기》 《사마천과 사기에 대한 모든 것 1 : 사마 천, 삶이 역사가 되다》 《절대역사서 사기- 사마천과 사기에 대한 모든 것 2》가 있다. 또한 《사마천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난세에 답하다》 《사마천, 인 간의 길을 묻다》 《사기의 경영학》 《사기의 리더십》 《사기를 읽다》 《사마천과의 대화》 《현자들의 평생 공부법》 《나를 세우는 옛 문장 들》 《1일 1구》 《36계》 《태산보다 무거운 죽음 새털보다 가벼운 죽음》 《백양柏楊 중국사 1, 2, 3》 등 50여 권이 있다. 영산 원불교대학교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는 사단법인 한국 사마천학회 이사장으로 활동하면서 집필과 강연을 병행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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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cm 인물 교양 수업
앤드류의 5분 대백과사전 지음 / 나무의철학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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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어렸을 때부터 역사를 배운다. 어렸을 때의 역사는 개인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배워야 한다. 한 발 나아가 자신이 속한 나라의 선조들의 정신과 육체를 이어받아 더 나은 사회로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올바른 역사가 필수적이다. 독자도 학교에서 가르치는 역사를 배웠고, 한 학년이 올라가서는 세계 역사도 배웠다. 그러나 대학 입학을 위한 역사 공부이다 보니 이해와 역사 의식보다는 연대 외우기에 치중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금속활자는 고려 때 우리나라가 가장 먼저 발명한 사실을 '1234년 고려' 때다는 식이다. 대입에서도 역사 문제는 연대를 정확하게 외워야 풀 수 있도록 몇 개의 사건이나 인물을 나열해놓고 연대순으로 맞는 것은? 하는 식이었으니, 전체 우리 역사에서 그 사건, 그 인물의 역사적 위치 등을 배웠다기보다는 언제 일어난 일인지 어느 시대 누가 발명했는지 등을 암기했을 뿐이다. 당시 선생님이 "어려운 과목이 뭐냐'고 물으면 '역사'라고 대답한 대부분의 학생들이 '암기를 못해서'이었다.



이처럼 우리나라 학생들은 역사를 공부하다 포기해버린 사람들은 사건이 발생한 연도나 딱딱한 재미없는 사실들을 외우다가 지친 경험이 있다. 그런데 어렸을 때 ‘위인전’을 읽으며 재미를 느꼈던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인물의 삶 속에 자연스레 녹아 있는 역사적 사건들이 다르게 다가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 『1cm 인물 교양 수업』도 전형적인 위인전 스타일의 글보다는 조금 독특한 방식으로 각 인물들에게 접근한다. 이 책에 소개된 인물들을 모두 ‘위인’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은 사람들이므로 자유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시각에서, 흥미로운 사실들을 뽑아 구성해 독자들에게 스스로 정말 필요한 역사 중 인물 한 사람임을 깨우쳐 '교양인'으로 거듭나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생각된다.

일상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지식이 필요하고, 어제보다 지적인 나를 원하는 독자들은 이 책의 구성과 설명에 수긍하리라 본다. 교양은 쌓고 싶지만 긴 글을 읽는 것은 부담이 될 때 이 책은 그야말로 독자의 약한 점을 보완해주는 역할을 해내기에 충분하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한나 아렌트, 알프레드 히치콕, 파블로 에스코바르까지, 읽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요즘 같은 정보화 시대에는 지나간 역사 의식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가오는 정보의 홍수를 막기에 바쁜데 과거를 돌아볼 겨를이 없어서일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살아가는 동안 다가오는 문제는 정보의 홍수만 있는 게 아니다. 수시로 판단하고 선택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 때 가장 중요한 판단과 선택에는 역사에서 배우는 게 가장 좋다. 또 TV나 신문 등에서도 역사 이야기만 나오면 앞뒤 맥락을 이해하지 못해 재미가 반감될 때 '역사를 조금 더 공부해둘걸' 하는 후회도 해보는 사람이 많다. 여가의 재미를 즐기기 위해서도,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할 상황에서 역사의 중요성은 크게 부각된다. 아라비안나이트처럼 독자들에게 정보와 재미를 동시에 주는 이 책은 발간 취지를 프롤로그에서 자세히 밝히고 있다.

"전형적인 위인전 스타일의 글보다는 조금 더 독특한 방식으로 각 인물들에게 접근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 책을 ‘세상에서 가장 짧고 재미있는 위인전’이라 칭하고 싶다. 이 책을 ‘세상에서 가장 짧고 재미있는 위인전’이라고 칭하고 싶다. 이 책에 소개된 인물들을 모두 ‘위인’이라 칭할 수 없지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역사에 남은 사람들이므로 자유로운 방식으로, 필자만의 시각에서, 재미있는 사실들을 뽑아만들었다. 이 인물들을 통해 역사가 어떻게 흘러 갔는지 알고 기쁨을 느낀다면 그 이상의 영광은 없겠다."(p. 5)




『1cm 인물 교양 수업』은 세상을 바꾼 100명의 인물이야기를 통해 방대한 역사 지식을 매일 '1cm'씩 쌓을 수 있는 책이다. 경제, 정치, 사회, 문화, 과학, 철학, 종교 다양한 분야에서 한 획을 그은 사람들의 일대기와 명언을 압축해 각 분야의 흐름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구성했다.

어렸을 때 읽었던 위인전처럼 훌륭한 사람들의 이야기만 담은 것은 아니다. 역사 속 핵심 사건은 물론, 희대의 악인과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까지 알차게 담았다.

책에 따르면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바흐는 왠지 점잖고 푸근했을 것만 같지만 그는 사실 다혈질에 사고뭉치였다. 제자와 한바탕 싸움이 벌어져 교회를 순식간에 난장판으로 만든 적이 있었고, 고용주와의 트러블로 감옥에도 다녀왔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집안으로 손꼽히는 로스차일드 가문. 그 가문에서 역사상 최초의 주가 조작이 벌어졌다면? 이 가문의 아들이었던 나탄은 워털루 전투에서 영국이 프랑스를 꺾고 승리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낸 뒤, 프랑스가 승리했다는 거짓 소문을 흘려 영국의 국채 가격이 떨어지자 그것을 사들였다가 파는 방법으로 20배가 넘는 엄청난 차익을 남겼다. 여기까지만 해도 놀라운데 나탄은 영국에만 베팅해 돈을 번 것이 아니라 같은 방식으로 프랑스에서도 이득을 챙겼다고 한다. 펼치면 금세 숙면에 빠져들게 했던 지루한 교양서가 아닌 독특한 유머와 해박한 지식이 넘치는 이 책을 읽고 나면 내가 지금껏 알고 있었던 역사가 더 새롭고 넓게 보일 것이다. 평소 역사와 담을 쌓고 지냈던 사람들은 역사의 참맛을 알게 되고, 평소 역사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은 지적 허기를 든든하게 채울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독자가 좋아하는 레오나로도 다빈치와 베토벤이 빠졌다는 점이다. 저자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개인으로서는 아쉽다. 그러나 두 명이 빠졌다고 이 책의 인물 선정에는 독자의 아쉬움을 주장할 수는 없다. 더욱이 더 재미 있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가진 인물이나 현재 우리에게 삶의 지혜를 던져준 사건이나 인물 두 사람이 더 실렸으니까.

우선 눈에 가장 먼저 띈 인물은 아리스토텔레스다. 그가 말하는 경제에 대한 이야기는 신선했다.

첫째, 사유재산이 공유재산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소유한 물건에는 온갖 정성을 다 들이면서 남들과 같이 쓰는 물건에는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노력한 대가를 직접적으로 보상받아 내 것이 될 때에 무언가를 할 의욕을 가진다.

둘째,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분배하는 것은 정의가 아니다. 동등하게 일한 사람들에게는 동등하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다르게 분배하는 것이 정의다. 개개인의 능력 차이가 있는데 그에 상관없이 똑같은 보상을 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한 것이다.

셋째, 베푸는 것이나 호의를 제공하는 것은 사유재산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모든 사람이 같이 소유하는 공동의 재산이 있을 때는 진정으로 베푸는 것이 아니다. '내 것'을 남에게 준다는 것이 바로 베푼다는 것이다. 이것이 미덕이며 사유재산은 사람들의 미덕을 드높일 수 있는 출발점이다. 그러나 돈이 돈을 벌어들이는 것을 경계했고, 사유재산을 쌓아두는 것에 대해 반대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재산과 화폐는 거래를 하고 개인의 덕성을 끌어올리는 수단일 뿐 절대로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경제와는 전혀 관계없는 철학자인줄만 알았던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요즘 많이 등장하는 히포크라테스다.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그는 의학도들이 의사가 되고자 할 때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다는 그 인물이다.

히포크라테스는 왜 의학의 아버지라고 불릴까? 그가 나타난 이후에 사람들이 질병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당시 그리스인들은 질병은 신이 내린 벌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신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신전에서 기도를 해야 한다고 믿었다. 신전이 병원이었던 셈이다.

히포크라테스는 질병이 신의 노여움이 아니라, 인체의 내부와 외부 환경이 변화해 발생하는 것으로 이를 올바르게 관리하면 병도 낫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질병에 대한 생각 자체를 완전히 바꾼 것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우리는 여전히 신에게 병을 낫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pp. 215~216)]

2,000여년 전부터 그리도 말했지만, 아직도 일부 종교인들은 그가 세운 의학과 그가 베푼 의술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아직도 있다. 종교와 과학은 대립되는 개념이어선지 모르지만 어차피 인간과 인간의 삶을 위해 생겨난 것들 아닌가? 일부 의료인들이 '돈만 밝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돈만 밝히는 일부 의사가 있겠지만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의사들은 '명의'다. 이번 코로나 팬데믹에서 대한민국 의사들처럼 자신을 희생해가며 치료한다는 의사의 예를 전 세계적으로 별로 들은 바가 없다. 일부를, 자신의 판단을 바탕으로 보편화시켜 매도해서는 안뒬 일이다.



또 조셉 퓰리처는 '현대 저널리즘의 아버지'라고도 불리운다. 그는 '두 얼굴을 가진 아수라백작'이란 불명예(?)스러운 칭호를 얻었다. 언론의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는 이때, 이보다 더 생각나는 사람은 없다.

플리처도 처음에는 돈을 위해 자극적인 기사를 썼다. 이 책에 왜 황색언론이라는 말이 나왔는지 설명되어 있다.

"당시 사람들은 이런 그들의 행보를 보고 플리처의 신문에 실린 ‘황색 옷을 입은 소년’에서 착안해 황색언론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중략) 플리처는 언론이 과연 어떤 기능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다시 고민해 보게 된다. 이후 플리처의 「뉴욕 월드」는 방향을 180도 선회한다. 끈질긴 고집으로 정경유착과 부패에 대한 진실을 밝혀내 사람들에게 알렸다. 독자들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저널리즘을 살려낸 것이다."(p.156)

돈을 벌기 위해 황색언론의 비판도 감수했던 그가 깊은 고민 끝에 언론의 정도를 밝혀내고 새로운 언론인의 의무를 다하는 삶을 살아 사망 이후 존경받는 인물이다. 자신의 잘못을 고민하고 사유해 반성하고 진정한 저널리즘의 선구자가 된 사람이다. 그의 삶에 뒤늦게라도 경의를 표하고 싶다. '쓰레기 기자'라는 말이 유행처럼 많이 퍼진 요즘은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수많은 유튜버들까지 언론인 행세를 하고 있다.

거짓은 점점 교묘해지고 진실과 구별하기 어려워진다. 퓰리처가, 그의 삶이 존경받는 이유이다. 진정 후회했다면 거듭나야 한다.





책 속엔 각 장마다 마지막에 <쉬어가는 페이지>로 앞서 소개되었던 인물들의 비하인드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에 자칫 지루함을 느낄 무렵에 재미를 선사해 주었습니다. 예를 들면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인 '아돌프 히틀러'. 그렇게 사람을 많이 죽였던 히틀러였지만 반려동물은 끔찍하게 사랑했다고 한다. 그는 평생 동안 여러 마리의 개를 길렀고 자신의 이미지를 위해 이를 선전 선동의 도구로 활용하기도 했다. 1933년 11월 세계 최초로 독일에서 동물보호법이 제정되었는데 이 법을 제정한 것은 히틀러와 나치당이었다. 이 법은 오늘날 전 세계의 동물보호법의 기초가 되었다.(p. 120)

팝아트를 대표하는 예술가인 '앤디 워홀'.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순간 소름이 돋았다. 이 분이 천재야, 예언자야?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앤디 워홀은 "미래에는 모두가 15분 동안 세계적으로 유명해질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기술의 발달로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같은 플랫폼이 등장할 것을 미리 예측했던 걸까?(p. 197)

지금까지 그가 살아 있었다면 그는 우리에게 어떤 작품으로 또 한 번의 충격을 선물할지 궁금할 정도다.

'악의 평범성'을 논했던 한나 아렌트도 위인이다. 평범한 인간들이 악한 행동을 한다는 것을 일러준 그의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이 긴 여운과 함께 남는다.

오늘날에도 자신의 말과 행동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 전혀 고민해보지 않고 그저 행동하는 것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타인의 비윤리적인 행동에 치를 떨면서도 반인간적인 사건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이 도처에 널려 있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꾸준히 생각해야 한다. 내가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는 않는지, 내 행동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과연 이것이 올바른 길인지 말이다. 한나 아렌트는 꾸준히 생각하지 않으면 말하는 것도 무능해지고 행동도 무능해진다고 보았다. 결국 그 행동은 악을 불러오고 사회와 국가를 붕괴시킬 수도 있다. 좋은 국가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결국 '우리들의 깊은 사유'인 것이다.(p. 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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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딧세이 4
한율 지음 / 문학세계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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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발간된 책 중 마지막 4권은 성 중사와 정 하사가 F Zone을 침입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작가는 두 사람이 침입하는 과정을 아주 세밀하게 묘사하여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이다. 제주도 서귀포 상모리 앞바다에 설치된 F Zone의 실체는 아직 아무도 알 수 없는 존재감으로 베일에 가려졌지만 국정원의 지시를 받은 성 중사와 정 하사의 침투를 위한 작전 상황이 시작의 문이다. 지금까지 앞 부분에서 F Zone에 관한 수많은 도면들이 수록되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성 중사가 가진 의문인 F Zone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F Zone의 하부는 생명을 키워나가는 요람이기도 하고 죽음이 펼쳐져 있는 바다이기도 한 혼재된 장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4권에서는 F Zone의 구조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F Zone 침투를 통해 목적을 달성해야 할 성 중사와 정 하사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마침내 침투에 성공한 성 중사와 정 하사는 그곳에서 미리 잠입해 있던 국정원 인물과의 만남을 갖는다.






헨리 유 사장은 F Zone 총관리자이자 더 스테이지 게이트사의 사장인 드레이크에게 향후 F Zone을 관리하는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투자자들이 F Zone 투자를 철회하게 만들 사건을 일으키라고 요구한다. 드레이크는 F Zone을 침입하려는 의사가 담긴 암호 통신문을 입수했다고 말하며 그들을 이용하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일이라는 게 늘 그렇듯 침입자를 이용하겠다는 드레이크의 생각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침입자들이 F Zone 내에서 폭발을 일으키며 헨리 유 부사장을 만나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이전에 성중사가 참여했던 군사 작전과 F-zone의 연관성이 조금씩 밝혀지기 시작한다.

난공불락의 성처럼 여겨지는 F Zone의 비밀을 숨기려는 헨리 유와 드레이크의 비밀이 숨겨져 있는 듯한 대화는 성 중사와 정 하사의 앞날에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 것 같은 분위기도 감지된다. 이전에 성중사가 참여했던 군사 작전과 F-zone의 연관성이 조금씩 밝혀지기 시작한다.



콘크리트 격자망 구조물로 이루어진 미로를 계속 헤매이다 보니, 마지막엔 반인반수(半人半獸)의 미노타우로스(Minotauros)가 갑자기 튀어나오든가, 아예 모습을 감추고 목소리로만 유혹하는 세이렌(Seiren)이라도 드러날 것 같은 불길한 느낌마저 감돌기 시작했다. 성 중사는 속도를 내어 앞에 가고 있는 정 하사를 잡아 세우고는, 할 수 없으니 아래로 깊이 잠수하여 가자는 수신호를 보냈다. 둘은 아래로 천천히 내려갔다.

온몸을 조이는 수압이 점점 강하게 느껴졌다. 다이브 컴퓨터는 수심 22미터가 넘어가고 있다고 액정 화면에 표시했다. 하강을 멈추었다. 다시 수평 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생명이 넘쳐 흐르는 바닷속 ‘미로 정원’을 머리 위로 이고 가면서, 종종 고개를 들어 쳐다보았다.

물고기 떼들이 수많은 태양 주위를 불규칙한 폐곡선을 그리며 뱅뱅 맴돌면서, 자신들의 자취를 드러냈다 감추었다 하는 중이었다.(p. 29)




“아무리 봐도, 그림은 살풍경하단 말이야!”

헨리 유는 오직 유리와 철골로만 이루어져 시원하게 바깥 경치가 내다보이는 커튼월(Curtain Wall) 앞에 서서 혼잣말을 지껄였다. 그의 발밑에 펼쳐지는 경치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시이기도 했다. 멀리 해안선의 불규칙한 검은 선들이 푸른 바다에 선명히 드러나고 있었고, 수평선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은근하게 알리는 아주 완만한 곡선으로 하늘과 바다 사이에 부드러운 분할을 보여 주고 있었지만, F Zone은, 선명하고 딱딱한 직선들의 조합일 뿐인 장방형의 인공 대지를 측면 부감으로 위에서 내려다본 결과, 원근 투시가 심하게 먹은 마름모꼴의 생뚱맞음으로 다가오는 중이었다.(p. 51)




이제 총 7권의 이야기 중에서 절반을 읽었다. 앞으로도 지금까지 읽은 분량에 버금가는 이야기들이 남아있다.

세계 최고 부유층을 상대하는 객실단가 3억2000만원의 제주테마파크이지만 F Zone의 성공과 실패는 아직 점칠 수 없다. 이 무렵 수혁에게 전달된 문서에는 놀라운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었는데...

4권 후반부는 수혁이 가진 문서의 내용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루고 있어 조금 난해한 부분이 없지 않다. 특히 황당스러운 물질의 순간이동과 복제라는 의미를 담은 재규정화에 대한 부분의 이해는 작가 자신도 미심쩍은 부분으로 지정하고 있기에 소설적 맥락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더라도 핵심적인 부분일 것이다. 그리고 F Zone 실체에 다가갈 수 있는 의미 있는 것이기에 더욱 명확한 증거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F Zone에 얽힌 문서에서 미국의 앞날에 대한 의지를 읽은 수혁에겐 놀라움의 연속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이다. 더불어 F Zone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또 그곳에서 발생되는 변이라는 문제는 어떻게 벌어질지 벌써 5권이 기대된다. 지금까지의 여정이 '모험으로의 준비'였다는 사실을 밝힌 작가의 말에 따라 유추해보지만 독자의 기대와 일치할지는 미지수다.



비밀문서의 내용이 전재돼 있다. 그러나 핵물리학자나 우주공학 박사들이나 이해할 듯한 매우 어려운 단어, 축약어, 암호 등으로 이루어진 문서의 내용을 파악하기는 독자로서는 너무 어려워 포기했다. 저자도 군데군데 주를 달아 이해시키려 노력한 흔적이 보이지만 그 정도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아무튼 독자는 눈으로 한 페이지 당 서너 단어만 읽고 넘기기로 했다. 저자가 뒤에 지문을 통해 풀어줄지도 모르니까... 다음 내용은 저자가 주까지 달아 그래도 쉽게 이해되는 문서의 한 부분이다.


■ 범위

허수-복소수 차원(Imaginary-Complex Number Dimension)내의 복제를 통한 물질들의 재규정화(Redeterminalization)* / 본 평가서는, 물질복제 연구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을 목적으로, 매우 특수하고 제한된 서술형식을 사용하여 지나친 정보 공개를 억제하는 동시에, 거론된 소수에게 연구의 개괄적 이해를 제공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따라서, 기술적 사용과 응용이 가능한 구체적인 예증과 수식에 대해 우리는 언급을 자제하였으며, 전쟁이 아닌 작전 계획(OPLANOTW) ‘더 스테이지 게이트(THE STAGE GATE)’의 실현 문제에 대해서, 도면화의 가능성을 예상할 수 있는 어떠한 형식의 프리젠테이션도 사용할 수 없었음을 사전에 말하고자 한다.(p. 225)

*재규정화 : 새로운 조어가 사용되었는데, 본 문서를 기술한 연구진들이 자신들 실험 결과의 개념을 세우기 위해, 새로 만들어 낸 단어로 생각된다.(저자 주)



수혁이 이 부분을 포함한 표지부터 시작하여 2페이지에 이르기까지, 문서 앞부분 석 장이 알 수 없는 축약어와 보안 경구로 점철되는 협박성 문구로 가득 채워지다가, 3페이지에 들어서자 문서의 내용이 서서히 펼쳐지기 시작하는데, '재규정화((Redeterminalization)라는 사전에도 없는 기다란 단어가 시각의 소화불량을 일으키고, '시간단면뭉치'니, '양자적 얽힘'이니 하는, 생소하기가 꼭 아침 해가 서쪽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 소리들로 결합된 문장을 읽어 내느라 초장부터 애를 먹는 느낌이었다. 소파에 누워 있다가 일어나, 쭈구리고 앉아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영어 단어를 일일이 입력해 브리태니커와 위키피디아로 검색하면서, 대충이라도 무슨 뜻인지를 유추해 내느라고 진땀을 뺐다.(p. 227)



연육교 3킬로미터 지점을 지나면서부터, 바다 위의 예리한 햇살이 갑자기 사라졌다. 모든 빛의 세기와 그에 따라 반사되는 느낌이 확연히 달라지면서, 수혁 들의 앞에 경계면이 나타나며 세계가 갑자기 두동강나는 듯했다. 제주 바다 위의 날씨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변덕의 마술이었다.

경계선이 그려지듯이 저편으로 하늘의 반을 선명히 차지한 구름은, 짙은 회색빛의 융단처럼 빈틈없이 그 자리를 메우는 중이었고, 그 밑으로 연무가 약간 끼어 있는 F Zone의 모습은, 수혁의 눈앞으로 커지는 속도가 더욱더 빨라지며 다가오고 있었다. 흐린 날씨와 연무 때문인지, 바다 위에 어울리지 않는 모나고 장대한 장방형들이, 입체감 없이 연이어 좌-우로, 가끔씩은 위-아래로, 다양하게 결합되어 줄지어 늘어선 느낌으로 시야를 압박하였다. 다양한 장방형들은 다시 모여, 바다 위로 들썩 모습을 드러낸 빙벽인 듯, 옆으로 기다란 하나의 장방형으로 형태를 뭉치고 있었다.

바다 수평선 쪽의 한 부분을 완전히 차지하고 있었다. 수혁은 생각보다 그 모습이 너무 크고 위압적이라 깜짝 놀랐다. 불길한 기운이 돈다는 미신 같은 생각까지 불쑥 들었다. 수혁이 가는 방향으로 비행장이 있는지 검은색 수송기 동체 하나가 순간 이륙했고, F Zone을 방금 벗어난 그 수송기가 수혁들 머리 위를 낮게 스쳐 지나가느라 사방에 퍼뜨린 진동과 굉음이, 접근하고 있는 두 사람에게 무자비할 정도로 맹렬하게 다가왔다.(pp. 294~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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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딧세이 3
한율 지음 / 문학세계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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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시작할 때 처음 소개된 부분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본다. 소설의 스케일과 작가의 집필 구상 등 여러가지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글의 흐름에 매몰되지 않으려면 처음 시작 부분을 되새겨 둘 필요가 있다. 더욱이 대하소설은 자칫 흥미에 너무 빠져버리면 작품 전체를 보지 못하고 조각조각을 읽고 맟추려는 독자로서의 오해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다. 한율의 『오딧세이』이다. 『오딧세이』는 200자 원고지로 9,300매의 분량이다.

작가 한율에 따르면 이 작품의 분량은 『전쟁과 평화』에서 「에필로그 제2편」을 빼면 길이가 똑같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하고는 길이가 똑같다고 한다.

우선 그 양이 놀랍다. 14년을 썼다고 한다. 장편소설이다. 대하 장편소설이다. 총 18부로 구성된 『오딧세이』는 총 7권으로, 이번에 4권까지 출간되었고, 나머지 세 권도 출간 예정이다.

『오딧세이』는 「서문」에 이은 「1부 전주곡」에서 예수의 12제자 중 한 사람 '도마'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사도 도마에 대해, ‘의심 많은 도마’라는 그 동안의 단편적 해석에서 벗어나, 편집증 강박증이란 어찌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 속에 믿음을 추구했던 한 인간의 모습으로 재해석하는 작가의 노력은, 인간 존재에 대한 믿음을 편집적 강박적으로 잃어버렸던 20세기에 대한 비유적 성찰로서, 새로운 밀레니엄을 준비하려는 사전 정지작업, 바로 ‘전주곡’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마침내 「2부 도화선」부터, 탐험선 ‘험난한 모험의 긴 여정’, 바로 소설 제목 그대로인 우리의 『오딧세이』호가 근해(近海)를 벗어나 원양 항해로 막 접어들게 되었음을 독자들은 깨닫게 된다.



작가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이 『오딧세이』의 집필에 매달렸을까? 대단한 미학적 목적의식이 내재되어서일까? 아니면, 개인적 인생체험 때문일까? 그건 본인이 아닌 이상 제 3자 입장에선 완전히는 알 수 없는 법이다. 그러나 소설 첫머리 「서문」의 문장 몇 가지로도 작가의 속셈을 어슴푸레하니 유추해 볼 수 있다.

‘장중하면서도 신비로움에 가득한 일이라는 것은 현실엔 흔치 않은 법이다.’ ‘진실로 독자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이야기란, 그 자체로 내재된 복잡다단한 모순과 다층적인 구조들 덕분에, 겹겹이 둘러쳐진 황금의 베일들 속에 내밀히 숨어 있다 하겠지만,’ ‘신의 이야기란 언제나 인간에게 옷깃을 여미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버티어 내야 하는, 긴장과 경건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장중함과 신비로움’, ‘심금을 울릴 수 있는 이야기’, ‘다층적인 구조들’, ‘황금의 베일들’, ‘신의 이야기’, ‘긴장과 경건’, 이 단어들이 표현하고 있는 의미들을 모두 견디어내려면 무엇보다도 소설이 풍부해야 한다. 소설의 길이도 길이겠지만, 구조와 형식~(하략)



이상의 작품 배경을 뒤로 하고 3권 읽기에 돌입한다. 바야흐로 테마파크를 둘러싼 대장정이 본격 궤도에 오르는 느낌이다. 제주도 서귀포 상모리에 테마파크를 세우기 위한 탐모라디자인공작소 가동 4개월 후에 발생된 마을 주민들의 거센 반발 데모로 3권은 시작된다.

현실에서나 소설에서나 이권을 둘러싼 갈등과 잡음은 늘 있다. 테마파크 부지로 결정된 상모리 지역이 국방부 소속이기에 큰 문제 없이 진행될 줄 알았던 수혁과 헨리 유 사장은 상모리 주민들의 거센 반발이 문제가 되고 언론에서조차 부정적 시선을 보여 난감함을 감출 수 없다.

테마파크 진행을 위한 대책이 나오고 기자단 설득 작업 및 주민들을 위한 마을회관 연회 등을 열어 대처하는가 하면 수혁과 미란의 달콤한 로맨스 역시 지금까지와는 다른 흐름으로 전개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소설의 흐름에서 반전은 극적 분위기 쇄신이나 놀라운 전개를 펼치고자 할 때, 혹은 대단원의 막을 내리기 앞서 극적 요인을 첨가하는 데 주로 쓰인다.

지금껏 알아왔던 헨리 유 사장의 과거에 대한 비밀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지금까지의 인물의 정체성이 모호해지고, 그가 어떤 구상을 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3권이면 이제 기-승-전-결의 승의 자리쯤 도달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앞서 1, 2권에서 다소 느리게 이야기가 전개되었다고 하면 이제는 무언가 박차고 이야기를 훅 끌어올릴 단계가 되었다 싶다. 독자의 기대감이 소설 내용에 따라 크게 올라간다.

이에 따른 3권의 시작이 좋다. 첫 장면은 제주도에 세우려는 테마파크에 제동이 걸리는 장면이다. 소설의 묘미라고 할 만한 갈등의 서막이 서서히 부상한다. 갈등의 시작은 테마파크 부지로 결정된 상모리 주민들의 거센 반발이다. 테마파크 부지로 선정된 상모리는 국방부 소유지이지만 이전부터 상모리에 터를 잡고 살아온 이들은 따로 있었고, 이들이 자신들의 부지에 결코 테마파크를 세울 수 없다며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상모리 주민들의 반발과는 달리 수혁과 미란의 달달한 사랑 이야기는 또 다른 재미거리를 선사한다. 2권에서 서로의 감정을 확인한 두 사람은 3권에서는 더욱 친밀한 관계로 발전한다. 두 사람이 쌓아가는 서로에 대한 깊은 사랑의 감정은 이 책의 또 다른 묘미이다.



제주도 서귀포 상모리 앞바다에 'F Zone'이라는 인공섬을 세우려 하는 헨리 유 사장의 속내는 과연 무엇일까? 더하여 현세중공업 엔지니어로 신분을 속인 정 하사는 반잠수식 해양구조물인 F Zone의 누에고치에 대한 비밀을 알아내려 하지만 철저하게 비밀에 가려진 F Zone의 정보는 국정원의 의지대로 그들을 침투조로 만드는데... 과연 이들은 F Zone의 '누에고치'에 침투할 수 있을지 기대감을 갖게 한다. 수혁의 미란과의 달콤한 로맨스가 후반부의 일부를 차지하고 미란에게 빠진 수혁의 모습과 욕망과 현실 사이를 오가는 수혁의 고뇌를 보여주기도 한다.

작가는 또 다양한 역사적 실체를 소설 속에 버무려놓아 독자층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현실감을 더하는 묘한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제주 4.3 사건과 같은 이야기들은 역사적 실체를 가진 존재이기에 그저 흘려 듣거나 무시할 대상이 아니라 제주 사람들의 삶에 상처로 기록되어 있는 현실을 오롯이 받아들여야 하는 내용이다. 지나간 역사적 사건을 부정할 수도 없기 때문에 간혹 작가들은 역사적 유물이나 유적을 등장시켜 글의 흐름과 맥락을 같이 하는 호흡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이 소설의 내용이 살갑게 느껴지는 이유의 하나이다.



1, 2권에 비해 조금씩 구체화되는 모습들이 소설을 읽는 재미를 높여준다. 중간 중간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섞여드는 건 1, 2권과 크게 달라지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흥미를 끄는 요소들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호기심을 자극하기 시작한다.

3이라는 숫자에 관한 이야기를 3권에 실은 건 우연인지 작가 나름의 의도인지 모르겠지만 꽤 흥미롭다. 다양한 문화적, 종교적 의미까지 끌어와 설명하는 장면에서 작가의 전체 소설의 신비로움을 강조하는 의도적 장치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독자의 추측에 머물 수는 없다. 읽다보면 작가의 의도인지 아닌지는 드러날 터. 작가의 작품 구상이나 스토리 구성 능력이니 독자는 판단하지 말고 읽기만 하면 의문점은 풀릴 것이다.

어느덧 소설의 전반부가 끝나간다.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은 결이 다른 듯싶지만 서서히 드러나는 전체적인 윤곽에 다음 권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4권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16조 원이 들어가도 하나도 아깝지 않은 것, 그것은, 선점한 자에게 막대한 이윤을 가져다 주는 첨단 산업 이외에 다른 것은 없습니다. 그 F Zone에 들어오는 것은 첨단 산업이에요. 게다가 어쩌면 경이적인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첨단 산업이란 대부분 국방과 유흥에 먼저 쓰이는 법이지요. 레이저 광선이 처음 나왔을 때, 어디에 처음 쓰였는지 압니까? 산업 시설인 줄 압니까? 아니에요. 쇼 무대 조명 장비로 먼저 쓰였어요. 첨단 산업은 유흥, 즉 노는 것에 먼저 쓰여요. 또한 하나가 더 있으니 바로 군사, 즉 국방 시설에 먼저 쓰이지요. 아마도 F Zone, 우리의 그 인공섬에 들어오는 것은 유흥 시설이자 아마 군사 시설이기가 쉬울 거예요.”(p. 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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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딧세이 2
한율 지음 / 문학세계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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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을 읽기 시작했다. 테마파크에 합류하기로 한 수혁의 이야기가 이어질 거라는 독자의 예상을 깨고, 처음에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1권을 다시 찾아 대충 훑어본다. 왜 갑자기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지? 아, 이거 7권짜리 대하소설이지! 비로소 아직 이야기의 전개가 끝나지 않았는데... 독자의 조급성을 가라앉히고 다시 천천히 읽어나간다.

이번에도 테마파크나 도마와의 연관성을 찾아보기 힘든 군사작전 이야기이다(2권 후반부에서 테마파크와의 연관성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군대 이야기, 그것도 최첨단 장비로 무장한 특전사의 비밀스런 작전 이야기라 상당히 흥미진진하다.(군대 용어가 나오면 남자 독자들은 재미있어 하지만 여성 독자들은 에이~ 하고 넘어가 버릴까 괜히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제대한 지 20여년 되어서 군대 용어도 많이 바뀌었겠지만 편제가 바뀐다든지 명칭이 바뀐다든지 하면 국민들에게도 다 알려져 알고 있지만 복무한 주특기가 다른 데다 최첨단 군사 장비들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인지, 가공의 무기인지 조금 의아해하긴 하다. 그러나 작가의 치밀성은 군대를 안 간 사람이 책을 놓치게 놔주지 않는다. 건축 설계도 등을 직접 그린 건축미술가 출신이라니...

군사 작전 관련 이야기, 훈련 이야기 등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니 크게 거슬리지 않지만 저자는 친절한 설명을 기술적으로 표현하고 있어 읽기에 아무 문제가 없다.(사실 군사작전 이야기나 군사 용어 등은 몰라도 상관없다. 소설의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저자가 기술해 놓은 것일 뿐이다.



곧 뒤이어 스티글리츠 회장과 헨리 유가 나누는 이야기와 제주도에 내려간 수혁이 테마파크를 세우기 위한 기초 작업을 시작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2권 마지막 부분에서 드디어 군 작전과 테마파크와의 연관성이 드러나고 작전 지역에서 가져온 돌에 관한 궁금증을 남긴 채 마무리된다.

2권에서 가장 강하게 받은 인상은 얘기를 너무 장황하게 끌고 가는 것 아닌가 할 정도로 줄거리의 전개를 늦추지 않는다. 조바심도 나고 읽을수록 만만치 않은 소설이란 느낌이 강하게 든다.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지와 관련해 스티글리츠 회장과 헨리 유가 나누는 이야기나 수혁과 이안이 나누는 테마파크의 본질에 관한 이야기는 소설을 읽는다기보다는 전공 서적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한-미 합동 공중강습작전 ‘오퍼레이션 나이트 고스트’. 한국군 특전부대 야간기습침투 표적지점-동굴진지의 마지막인 비밀창고. 그 장소의 진실은? 그곳에서 공군CCT 대원 성준모는 무언가를 발견하는데…. 붉게 빛나는 아름다운 홍옥석! 펠드스파홀딩스로 자리를 옮긴 수혁. “드림밸리사 디자이너들과 함께 월트 디즈니 문법을 벗어난 혁신적인 테마파크를 디자인해라.” 갑자기 떨어진 헨리 유의 명령으로, 푸른 제주에서 새로운 테마파크를 궁리하지만 쉽사리 해결되진 않는다. 한편 미란의 사랑은 다가오고 수혁은 갈등에 빠진다.



그러나 저자가 자세하게 기술하면 기술할수록 점점 더 소설 속으로 빠져드게 하는 매력이 있다. 대하소설로의 면모를 보이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2권의 내용은 사건의 전개보다 세밀 묘사에 치중한 느낌이 강하다. 중간 중간 너무 전문적인 용어가 나와 읽어나가기에 다소 걸림돌도 있지만 저자를 믿고 찾아서 확인하지 않고 읽으면 언젠가는 용어에 익숙해지고 사건의 줄거리도 손에 잡힐 듯하다. 아주 생소한 것은 밑에 달아놓은 저자의 주석만으로도 충분하다. 2권을 끝나는 시점에선 저자와 독자의 머리 싸움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저자가 앞으로 이야기를 어떻게 전개하려고 세밀한 묘사에 치중하나를 생각하다보니 미리 예측해보는 것도 재미를 더할 것 같아서다. 매우 차분한 마음으로 2권을 덮는다.

앞으로 남은 5권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테마파크를 둘러싼 이야기는 도마의 이야기와 어떻게 연결될까? 수혁이 그려낸 테마파크의 새로운 모습은 과연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까? 무엇보다 그렇게 비싼 입장료를 내고 테마파크에 간 사람들은 그곳에서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정말 궁금해진다.



군사작전과 훈련에 대한 이야기와 수혁과 헨리 유 사장의 제주도 테마파크 비즈니스에 대한 기초작업 이야기가 드이더 실체로 드러나고 작전 지역에서 가져온 돌에 대한 의문을 남긴 채 2권의 여정은 마무리된다. 기대감을 가졌던 향단고택과 도마와의 관련성에 대한 이야기는 없지만 새로운 방향으로 소설이 전개되고 있음을 실감했다.

소설의 주 무대가 테마파크인 걸 보면 작가의 테마파크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큰지 짐작이 된다. 더욱이 저자는 건축미술의 전공 아닌가. 사전 지식이라 할 저자의 약력이 독서에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약이 될 수 있어 미리 읽지는 않지만 이 소설은 처음 대하는 작가이고 그림도 직접 그리는 건축가라니 아마 소설 구성이나 첫 구상 단계부터 예술성과 치밀성을 담보하고 있다고 생각하던 터였다. 테마파크에 가까이 온 것 같다.

현실적 상황으로 드러나기까지는 아직 무수히 많은 난관이 존재하리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지만 작가의 이력에 어울리는 테마파크의 존재를 생각하면 꽤나 멋진, 어쩌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테마파크를 상상해보기도 한다. 막연하지만.



“난 드림밸리(Dream Valley)사에 있는 디자이너들을 모조리 다 한국에 불러 합숙을 시키면서, 완전히 새로운 테마파크를 생각해 내게 할 결심이야. 새로운 것, 혁신적인 것, 한 번 구경한 사람은 반드시 다시 오고 싶어서 좀이 쑤시는 것, 월트 디즈니를 넘어서는 것, 그게 내 꿈이자, 반드시 이뤄내야 할 목표일세. 이런 내 마음을 자네가 가장 잘 이해해 줄 거야. 그렇지?”

"예, 그렇습니다."

"그래 맞아 자네가 앞장서야 돼. 걔네들을 모두 제주도 현지에 합숙시키고 해내야 돼. 현지의 실제 입지 지역을 수시로 보면서, 그리고 이 한국의 정취도 맛보면서, 정말 대단한 디자인을 해야 되네. 그러니 자네는~"(p. 74)


“Hey Guys! 한국 친구들. 고생 많아. 나는 USSOCOM* 소속 알렉산더 스티븐슨(Alexander Stevenson) 대령일세. 귀관들과 같이, ‘오퍼레이션 나이트 고스트’를 진행하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하네. 여기는 네바다주, 모처에 위치한 USSOSTC**이네. 자네들은, 여기서 우리들과 향후 4주 동안, 모든 상황에 맞추어진 훈련을 실시하고, 아프간-파키스탄 국경 지대, 즉 북 와지리스탄에 투입될걸세. 나는 귀관들의 건승을 믿네. 한국 친구들. 우리 같이, 한번 잘해 보자고."(p.102)

*USSOCOM : 미합중국 특수작전사령부

**USSOSTC : 미합중국 특수전 과학화 전투훈련장((저자 주)



“자연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차원이 아니고, 조경과 건축이 같이 결합되어 인간이 자연에게 인위적 상징을 부여하면서, 보다 높은 차원으로 같이 나아가고 흔연히 돌려준다는 의미를 내포(內包)하고 있네. 바로 한국 정원과 고건축을 한 범주 안에 묶어 버리는 거지. 그런 후에 ‘환원(還元)’이란 개념을 붙여 보는 거라네. 어떤가, 내 생각이? 이런 생각들을 평소에 하고는 했지. 좋지 않은가?” 스티글리츠 회장은 동의를 구하는 듯한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헨리 유를 쳐다보았다.(p. 149)


“이걸로 가는 거야! 이만큼 새로 만들기도 쉽지 않아! 모든 건 만들기 나름이야! 이제부턴, 다른 컨셉 스케치들을 보면서 품평해 보자고. 이 친구, 진땀 좀 나게 말이지. 핫하하하.” 마크 페린의 말에 다섯 명의 로컬 디자이너들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각자 다른 데를 쳐다보며 딴전을 피워 댔다. 수혁의 제주테마파크 개념도가 일단 수용된 것은 확실해 보였다. 수혁은 자신이 그린 컨셉 스케치들을 가지고 다음 순서를 밟아 나갔다. 로컬 디자이너들은 이제, 그의 설명을 꽤 열심히 듣는 눈치를 보이고 있었다.(p. 248)



정 하사가 손에 쥐어 주는 것을 받아 들고, 성 중사는 무슨 소린가 싶어 들여다보았다. 순간, 험준한 산맥 사이를 뚫고 나와 여명의 시작을 알리는, 호박 색깔 같은 부드러운 여린 햇살 한 조각이, 헬기의 창문 너머로 대원들의 윤곽을 도드라지게 하기 시작했다. 성 중사는 자세히 보고 싶어, 정 하사가 건네 준 그 조그만 돌덩어리를 햇살에 비추어 보았다. 선홍색(鮮紅色) 표면을 가진 별도의 조각들이 두 군데 정도 돌덩어리 속에 박혀 있었다. 돌덩어리 자체는 평범해 보이는 갈색과 연한 회색빛의 불투명한 재질이었다. 돌덩어리에 햇살이 비추어지니, 선홍색 부분들에서 붉은 광채가 번지듯 흘러나왔고 전체를 불사르듯 찬란히 물들여 갔다. 블랙호크의 강한 진동으로, 핏빛 광채는 떨리는 잔상을 남기며 성 중사의 눈으로 들어왔다.(p. 260)


뭐 어떻게 하겠는가! 어차피 하윤정이가 어디 가나 감내해야 할 인생의 축복이자, 가시이다. 다만 저 경국지색(傾國之色)이 몰고 온 파문이 오늘 하루로 한정되기만을 바랐다. 하윤정도 미란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 아무 소리 없이 버스에 올라탔다. 이 두 여자는 중문단지에 있는 호텔에 여장을 풀어 놓고 있었다. 이래저래 미란이를 부른 덕분에, 수혁은 썩 유쾌하게 오늘을 자신의 의지대로 요리하지는 못한 꼴이 되고 말았다. 퍽 신경 쓰고 준비했던 것인데..... 아들 자신의 사생활은 희생하고 있지 않은가! 마음이 찜찜했다.(pp. 296~297)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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