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딧세이 4
한율 지음 / 문학세계사 / 2020년 10월
평점 :
절판



현재 발간된 책 중 마지막 4권은 성 중사와 정 하사가 F Zone을 침입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작가는 두 사람이 침입하는 과정을 아주 세밀하게 묘사하여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이다. 제주도 서귀포 상모리 앞바다에 설치된 F Zone의 실체는 아직 아무도 알 수 없는 존재감으로 베일에 가려졌지만 국정원의 지시를 받은 성 중사와 정 하사의 침투를 위한 작전 상황이 시작의 문이다. 지금까지 앞 부분에서 F Zone에 관한 수많은 도면들이 수록되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성 중사가 가진 의문인 F Zone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F Zone의 하부는 생명을 키워나가는 요람이기도 하고 죽음이 펼쳐져 있는 바다이기도 한 혼재된 장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4권에서는 F Zone의 구조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F Zone 침투를 통해 목적을 달성해야 할 성 중사와 정 하사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마침내 침투에 성공한 성 중사와 정 하사는 그곳에서 미리 잠입해 있던 국정원 인물과의 만남을 갖는다.






헨리 유 사장은 F Zone 총관리자이자 더 스테이지 게이트사의 사장인 드레이크에게 향후 F Zone을 관리하는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투자자들이 F Zone 투자를 철회하게 만들 사건을 일으키라고 요구한다. 드레이크는 F Zone을 침입하려는 의사가 담긴 암호 통신문을 입수했다고 말하며 그들을 이용하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일이라는 게 늘 그렇듯 침입자를 이용하겠다는 드레이크의 생각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침입자들이 F Zone 내에서 폭발을 일으키며 헨리 유 부사장을 만나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이전에 성중사가 참여했던 군사 작전과 F-zone의 연관성이 조금씩 밝혀지기 시작한다.

난공불락의 성처럼 여겨지는 F Zone의 비밀을 숨기려는 헨리 유와 드레이크의 비밀이 숨겨져 있는 듯한 대화는 성 중사와 정 하사의 앞날에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 것 같은 분위기도 감지된다. 이전에 성중사가 참여했던 군사 작전과 F-zone의 연관성이 조금씩 밝혀지기 시작한다.



콘크리트 격자망 구조물로 이루어진 미로를 계속 헤매이다 보니, 마지막엔 반인반수(半人半獸)의 미노타우로스(Minotauros)가 갑자기 튀어나오든가, 아예 모습을 감추고 목소리로만 유혹하는 세이렌(Seiren)이라도 드러날 것 같은 불길한 느낌마저 감돌기 시작했다. 성 중사는 속도를 내어 앞에 가고 있는 정 하사를 잡아 세우고는, 할 수 없으니 아래로 깊이 잠수하여 가자는 수신호를 보냈다. 둘은 아래로 천천히 내려갔다.

온몸을 조이는 수압이 점점 강하게 느껴졌다. 다이브 컴퓨터는 수심 22미터가 넘어가고 있다고 액정 화면에 표시했다. 하강을 멈추었다. 다시 수평 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생명이 넘쳐 흐르는 바닷속 ‘미로 정원’을 머리 위로 이고 가면서, 종종 고개를 들어 쳐다보았다.

물고기 떼들이 수많은 태양 주위를 불규칙한 폐곡선을 그리며 뱅뱅 맴돌면서, 자신들의 자취를 드러냈다 감추었다 하는 중이었다.(p. 29)




“아무리 봐도, 그림은 살풍경하단 말이야!”

헨리 유는 오직 유리와 철골로만 이루어져 시원하게 바깥 경치가 내다보이는 커튼월(Curtain Wall) 앞에 서서 혼잣말을 지껄였다. 그의 발밑에 펼쳐지는 경치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시이기도 했다. 멀리 해안선의 불규칙한 검은 선들이 푸른 바다에 선명히 드러나고 있었고, 수평선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은근하게 알리는 아주 완만한 곡선으로 하늘과 바다 사이에 부드러운 분할을 보여 주고 있었지만, F Zone은, 선명하고 딱딱한 직선들의 조합일 뿐인 장방형의 인공 대지를 측면 부감으로 위에서 내려다본 결과, 원근 투시가 심하게 먹은 마름모꼴의 생뚱맞음으로 다가오는 중이었다.(p. 51)




이제 총 7권의 이야기 중에서 절반을 읽었다. 앞으로도 지금까지 읽은 분량에 버금가는 이야기들이 남아있다.

세계 최고 부유층을 상대하는 객실단가 3억2000만원의 제주테마파크이지만 F Zone의 성공과 실패는 아직 점칠 수 없다. 이 무렵 수혁에게 전달된 문서에는 놀라운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었는데...

4권 후반부는 수혁이 가진 문서의 내용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루고 있어 조금 난해한 부분이 없지 않다. 특히 황당스러운 물질의 순간이동과 복제라는 의미를 담은 재규정화에 대한 부분의 이해는 작가 자신도 미심쩍은 부분으로 지정하고 있기에 소설적 맥락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더라도 핵심적인 부분일 것이다. 그리고 F Zone 실체에 다가갈 수 있는 의미 있는 것이기에 더욱 명확한 증거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F Zone에 얽힌 문서에서 미국의 앞날에 대한 의지를 읽은 수혁에겐 놀라움의 연속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이다. 더불어 F Zone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또 그곳에서 발생되는 변이라는 문제는 어떻게 벌어질지 벌써 5권이 기대된다. 지금까지의 여정이 '모험으로의 준비'였다는 사실을 밝힌 작가의 말에 따라 유추해보지만 독자의 기대와 일치할지는 미지수다.



비밀문서의 내용이 전재돼 있다. 그러나 핵물리학자나 우주공학 박사들이나 이해할 듯한 매우 어려운 단어, 축약어, 암호 등으로 이루어진 문서의 내용을 파악하기는 독자로서는 너무 어려워 포기했다. 저자도 군데군데 주를 달아 이해시키려 노력한 흔적이 보이지만 그 정도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아무튼 독자는 눈으로 한 페이지 당 서너 단어만 읽고 넘기기로 했다. 저자가 뒤에 지문을 통해 풀어줄지도 모르니까... 다음 내용은 저자가 주까지 달아 그래도 쉽게 이해되는 문서의 한 부분이다.


■ 범위

허수-복소수 차원(Imaginary-Complex Number Dimension)내의 복제를 통한 물질들의 재규정화(Redeterminalization)* / 본 평가서는, 물질복제 연구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을 목적으로, 매우 특수하고 제한된 서술형식을 사용하여 지나친 정보 공개를 억제하는 동시에, 거론된 소수에게 연구의 개괄적 이해를 제공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따라서, 기술적 사용과 응용이 가능한 구체적인 예증과 수식에 대해 우리는 언급을 자제하였으며, 전쟁이 아닌 작전 계획(OPLANOTW) ‘더 스테이지 게이트(THE STAGE GATE)’의 실현 문제에 대해서, 도면화의 가능성을 예상할 수 있는 어떠한 형식의 프리젠테이션도 사용할 수 없었음을 사전에 말하고자 한다.(p. 225)

*재규정화 : 새로운 조어가 사용되었는데, 본 문서를 기술한 연구진들이 자신들 실험 결과의 개념을 세우기 위해, 새로 만들어 낸 단어로 생각된다.(저자 주)



수혁이 이 부분을 포함한 표지부터 시작하여 2페이지에 이르기까지, 문서 앞부분 석 장이 알 수 없는 축약어와 보안 경구로 점철되는 협박성 문구로 가득 채워지다가, 3페이지에 들어서자 문서의 내용이 서서히 펼쳐지기 시작하는데, '재규정화((Redeterminalization)라는 사전에도 없는 기다란 단어가 시각의 소화불량을 일으키고, '시간단면뭉치'니, '양자적 얽힘'이니 하는, 생소하기가 꼭 아침 해가 서쪽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 소리들로 결합된 문장을 읽어 내느라 초장부터 애를 먹는 느낌이었다. 소파에 누워 있다가 일어나, 쭈구리고 앉아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영어 단어를 일일이 입력해 브리태니커와 위키피디아로 검색하면서, 대충이라도 무슨 뜻인지를 유추해 내느라고 진땀을 뺐다.(p. 227)



연육교 3킬로미터 지점을 지나면서부터, 바다 위의 예리한 햇살이 갑자기 사라졌다. 모든 빛의 세기와 그에 따라 반사되는 느낌이 확연히 달라지면서, 수혁 들의 앞에 경계면이 나타나며 세계가 갑자기 두동강나는 듯했다. 제주 바다 위의 날씨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변덕의 마술이었다.

경계선이 그려지듯이 저편으로 하늘의 반을 선명히 차지한 구름은, 짙은 회색빛의 융단처럼 빈틈없이 그 자리를 메우는 중이었고, 그 밑으로 연무가 약간 끼어 있는 F Zone의 모습은, 수혁의 눈앞으로 커지는 속도가 더욱더 빨라지며 다가오고 있었다. 흐린 날씨와 연무 때문인지, 바다 위에 어울리지 않는 모나고 장대한 장방형들이, 입체감 없이 연이어 좌-우로, 가끔씩은 위-아래로, 다양하게 결합되어 줄지어 늘어선 느낌으로 시야를 압박하였다. 다양한 장방형들은 다시 모여, 바다 위로 들썩 모습을 드러낸 빙벽인 듯, 옆으로 기다란 하나의 장방형으로 형태를 뭉치고 있었다.

바다 수평선 쪽의 한 부분을 완전히 차지하고 있었다. 수혁은 생각보다 그 모습이 너무 크고 위압적이라 깜짝 놀랐다. 불길한 기운이 돈다는 미신 같은 생각까지 불쑥 들었다. 수혁이 가는 방향으로 비행장이 있는지 검은색 수송기 동체 하나가 순간 이륙했고, F Zone을 방금 벗어난 그 수송기가 수혁들 머리 위를 낮게 스쳐 지나가느라 사방에 퍼뜨린 진동과 굉음이, 접근하고 있는 두 사람에게 무자비할 정도로 맹렬하게 다가왔다.(pp. 294~295)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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