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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딧세이 3
한율 지음 / 문학세계사 / 2020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작품을 시작할 때 처음 소개된 부분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본다. 소설의 스케일과 작가의 집필 구상 등 여러가지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글의 흐름에 매몰되지 않으려면 처음 시작 부분을 되새겨 둘 필요가 있다. 더욱이 대하소설은 자칫 흥미에 너무 빠져버리면 작품 전체를 보지 못하고 조각조각을 읽고 맟추려는 독자로서의 오해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다. 한율의 『오딧세이』이다. 『오딧세이』는 200자 원고지로 9,300매의 분량이다.
작가 한율에 따르면 이 작품의 분량은 『전쟁과 평화』에서 「에필로그 제2편」을 빼면 길이가 똑같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하고는 길이가 똑같다고 한다.
우선 그 양이 놀랍다. 14년을 썼다고 한다. 장편소설이다. 대하 장편소설이다. 총 18부로 구성된 『오딧세이』는 총 7권으로, 이번에 4권까지 출간되었고, 나머지 세 권도 출간 예정이다.
『오딧세이』는 「서문」에 이은 「1부 전주곡」에서 예수의 12제자 중 한 사람 '도마'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사도 도마에 대해, ‘의심 많은 도마’라는 그 동안의 단편적 해석에서 벗어나, 편집증 강박증이란 어찌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 속에 믿음을 추구했던 한 인간의 모습으로 재해석하는 작가의 노력은, 인간 존재에 대한 믿음을 편집적 강박적으로 잃어버렸던 20세기에 대한 비유적 성찰로서, 새로운 밀레니엄을 준비하려는 사전 정지작업, 바로 ‘전주곡’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마침내 「2부 도화선」부터, 탐험선 ‘험난한 모험의 긴 여정’, 바로 소설 제목 그대로인 우리의 『오딧세이』호가 근해(近海)를 벗어나 원양 항해로 막 접어들게 되었음을 독자들은 깨닫게 된다.
작가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이 『오딧세이』의 집필에 매달렸을까? 대단한 미학적 목적의식이 내재되어서일까? 아니면, 개인적 인생체험 때문일까? 그건 본인이 아닌 이상 제 3자 입장에선 완전히는 알 수 없는 법이다. 그러나 소설 첫머리 「서문」의 문장 몇 가지로도 작가의 속셈을 어슴푸레하니 유추해 볼 수 있다.
‘장중하면서도 신비로움에 가득한 일이라는 것은 현실엔 흔치 않은 법이다.’ ‘진실로 독자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이야기란, 그 자체로 내재된 복잡다단한 모순과 다층적인 구조들 덕분에, 겹겹이 둘러쳐진 황금의 베일들 속에 내밀히 숨어 있다 하겠지만,’ ‘신의 이야기란 언제나 인간에게 옷깃을 여미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버티어 내야 하는, 긴장과 경건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장중함과 신비로움’, ‘심금을 울릴 수 있는 이야기’, ‘다층적인 구조들’, ‘황금의 베일들’, ‘신의 이야기’, ‘긴장과 경건’, 이 단어들이 표현하고 있는 의미들을 모두 견디어내려면 무엇보다도 소설이 풍부해야 한다. 소설의 길이도 길이겠지만, 구조와 형식~(하략)
이상의 작품 배경을 뒤로 하고 3권 읽기에 돌입한다. 바야흐로 테마파크를 둘러싼 대장정이 본격 궤도에 오르는 느낌이다. 제주도 서귀포 상모리에 테마파크를 세우기 위한 탐모라디자인공작소 가동 4개월 후에 발생된 마을 주민들의 거센 반발 데모로 3권은 시작된다.
현실에서나 소설에서나 이권을 둘러싼 갈등과 잡음은 늘 있다. 테마파크 부지로 결정된 상모리 지역이 국방부 소속이기에 큰 문제 없이 진행될 줄 알았던 수혁과 헨리 유 사장은 상모리 주민들의 거센 반발이 문제가 되고 언론에서조차 부정적 시선을 보여 난감함을 감출 수 없다.
테마파크 진행을 위한 대책이 나오고 기자단 설득 작업 및 주민들을 위한 마을회관 연회 등을 열어 대처하는가 하면 수혁과 미란의 달콤한 로맨스 역시 지금까지와는 다른 흐름으로 전개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소설의 흐름에서 반전은 극적 분위기 쇄신이나 놀라운 전개를 펼치고자 할 때, 혹은 대단원의 막을 내리기 앞서 극적 요인을 첨가하는 데 주로 쓰인다.
지금껏 알아왔던 헨리 유 사장의 과거에 대한 비밀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지금까지의 인물의 정체성이 모호해지고, 그가 어떤 구상을 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3권이면 이제 기-승-전-결의 승의 자리쯤 도달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앞서 1, 2권에서 다소 느리게 이야기가 전개되었다고 하면 이제는 무언가 박차고 이야기를 훅 끌어올릴 단계가 되었다 싶다. 독자의 기대감이 소설 내용에 따라 크게 올라간다.
이에 따른 3권의 시작이 좋다. 첫 장면은 제주도에 세우려는 테마파크에 제동이 걸리는 장면이다. 소설의 묘미라고 할 만한 갈등의 서막이 서서히 부상한다. 갈등의 시작은 테마파크 부지로 결정된 상모리 주민들의 거센 반발이다. 테마파크 부지로 선정된 상모리는 국방부 소유지이지만 이전부터 상모리에 터를 잡고 살아온 이들은 따로 있었고, 이들이 자신들의 부지에 결코 테마파크를 세울 수 없다며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상모리 주민들의 반발과는 달리 수혁과 미란의 달달한 사랑 이야기는 또 다른 재미거리를 선사한다. 2권에서 서로의 감정을 확인한 두 사람은 3권에서는 더욱 친밀한 관계로 발전한다. 두 사람이 쌓아가는 서로에 대한 깊은 사랑의 감정은 이 책의 또 다른 묘미이다.
제주도 서귀포 상모리 앞바다에 'F Zone'이라는 인공섬을 세우려 하는 헨리 유 사장의 속내는 과연 무엇일까? 더하여 현세중공업 엔지니어로 신분을 속인 정 하사는 반잠수식 해양구조물인 F Zone의 누에고치에 대한 비밀을 알아내려 하지만 철저하게 비밀에 가려진 F Zone의 정보는 국정원의 의지대로 그들을 침투조로 만드는데... 과연 이들은 F Zone의 '누에고치'에 침투할 수 있을지 기대감을 갖게 한다. 수혁의 미란과의 달콤한 로맨스가 후반부의 일부를 차지하고 미란에게 빠진 수혁의 모습과 욕망과 현실 사이를 오가는 수혁의 고뇌를 보여주기도 한다.
작가는 또 다양한 역사적 실체를 소설 속에 버무려놓아 독자층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현실감을 더하는 묘한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제주 4.3 사건과 같은 이야기들은 역사적 실체를 가진 존재이기에 그저 흘려 듣거나 무시할 대상이 아니라 제주 사람들의 삶에 상처로 기록되어 있는 현실을 오롯이 받아들여야 하는 내용이다. 지나간 역사적 사건을 부정할 수도 없기 때문에 간혹 작가들은 역사적 유물이나 유적을 등장시켜 글의 흐름과 맥락을 같이 하는 호흡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이 소설의 내용이 살갑게 느껴지는 이유의 하나이다.
1, 2권에 비해 조금씩 구체화되는 모습들이 소설을 읽는 재미를 높여준다. 중간 중간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섞여드는 건 1, 2권과 크게 달라지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흥미를 끄는 요소들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호기심을 자극하기 시작한다.
3이라는 숫자에 관한 이야기를 3권에 실은 건 우연인지 작가 나름의 의도인지 모르겠지만 꽤 흥미롭다. 다양한 문화적, 종교적 의미까지 끌어와 설명하는 장면에서 작가의 전체 소설의 신비로움을 강조하는 의도적 장치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독자의 추측에 머물 수는 없다. 읽다보면 작가의 의도인지 아닌지는 드러날 터. 작가의 작품 구상이나 스토리 구성 능력이니 독자는 판단하지 말고 읽기만 하면 의문점은 풀릴 것이다.
어느덧 소설의 전반부가 끝나간다.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은 결이 다른 듯싶지만 서서히 드러나는 전체적인 윤곽에 다음 권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4권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16조 원이 들어가도 하나도 아깝지 않은 것, 그것은, 선점한 자에게 막대한 이윤을 가져다 주는 첨단 산업 이외에 다른 것은 없습니다. 그 F Zone에 들어오는 것은 첨단 산업이에요. 게다가 어쩌면 경이적인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첨단 산업이란 대부분 국방과 유흥에 먼저 쓰이는 법이지요. 레이저 광선이 처음 나왔을 때, 어디에 처음 쓰였는지 압니까? 산업 시설인 줄 압니까? 아니에요. 쇼 무대 조명 장비로 먼저 쓰였어요. 첨단 산업은 유흥, 즉 노는 것에 먼저 쓰여요. 또한 하나가 더 있으니 바로 군사, 즉 국방 시설에 먼저 쓰이지요. 아마도 F Zone, 우리의 그 인공섬에 들어오는 것은 유흥 시설이자 아마 군사 시설이기가 쉬울 거예요.”(p. 166)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