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
이은정 지음 / 마음서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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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전성시대'가 있었다. 한국문단을 뒤적이다 보면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독재의 시대, 산업화 시대의 그늘엔 단편소설이 있었다. 독자가 감히 '전성시대'를 붙인 이유는 우리 근현대사의 뒷편에서 묵묵히 글을 써온 작가들이 단편소설을 많이 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금 이 시대에 단편소설은 잘 읽히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작가들, 특히 소설가들은 단편소설부터 쓴다. 작가로서의 역량 부족 때문이 아니다. 시대 정신이 뒤떨어져서도 아니다. 독자가 단편소설을 많이 읽기 때문이다. 문학계나 평론가들은 어떻게 이유를 분석했는지 모르지만 몇몇 작가를 빼놓고는 대부분 단편소설부터 썼다. 압축적으로 시대 정신을 담을 수 있고, 사회의 그늘진 곳을 조명하기 좋기 때문이다. 굳이 한 가지 이유를 덧붙이자면 시대의 흐름상 장편소설을 읽을 독자가 많지 않았다. 장편은 발표할 지면이 많지 않고 검증되지 않은 작가의 장편소설을 출판하는 것은 경제적 이유로도 쉽지 않았다. 독자 역시 장편소설을 읽고 있다는 것은 한가로운 사람들이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였다. 산업화로 접어든 제 3공화국 시절에는 생계를 잇기 위해 책 읽는 것은 사치일 때이다. 누가 장편소설을 읽겠는가라는 시대였다. 작가들은 단편 위주의 소설로 생계를 잇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교편을 잡거나 출판사에서 다른 책을 출판하는 데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작가 등단의 유일한 길이었던 신문사 신춘문예도 장편소설 공모는 없었다. 지면(그때는 신문 지면이 4면에서 8면)에 실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당선작을 내기도 어려운 상황이어서일 것이다. 70년대 들어서야 처음으로 중앙일보가 중편소설 부문을 신춘문예 분야에 더했다. 이 시대에는 작가가 책을 내기에는 무척 어려웠다. 출판사들도 어려워 선뜻 장편소설은 손에 들지 않으려 했다. 출판사들은 외국의 유명한 장편소설이나 드라마 대본을 가져다 번역해 소설로 써서 찍어냈다. 당시에는 저작권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기 전이라 이른바 '해적판' 소설이 출판사의 수입이 되고, 성장의 바탕이 된 시절이었다. 70년대 후반 들어서야 장편소설이 하나 둘 빛을 보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경제성장을 이뤄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때도 선정적인 대중소설이 히트작(대량 판매)에 들어갈 뿐 시대의 아픔이나 이념, 분단의 아픔 등을 쓴 소설들은 문단에서 크게 호평을 받아도 출판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단편소설은 꾸준히 발전을 거듭했다. 밥을 굶어도 작가를 고집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만 역량을 꾸준히 축적해왔다. 그렇게 단편소설은 우리 문단 20세기를 가로질렀다. 이 즈음에는 시대의 아픔이나 분단, 산업화의 그늘, 소외 계층의 삶 등을 조명한 책들이 많이 팔림에 따라 단편소설로 역량을 쌓아오던 작가들이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20년 만에 소설가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 이은정 작가가 첫 소설집을 펴냈다. 2018년 단편소설 「개들이 짖는 동안」으로 동서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그가 산문집 『눈물이 마르는 시간』, 7인 연작 에세이 『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공저)에 이어 소설가로서 처음 펴내는 작품집이다. 이 책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은 작가의 단단한 내공이 응축된 책으로 모두 여덟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삶이 완벽한 어둠으로 다가올지라도 절망 뒤에는 희망이 웅크리고 있음을 온기 어린 시선으로 포착해낸다. 여기 실린 소설들은 대부분 사회의 평범한 사람들이고 상처 받은 사람들이다.

이 소설집에서 작가는 존재의 이면을 끈기 있게 응시하며 평범한 사람들이 주고받은 평범하지 않은 상처에 대해 그린다. 상처를 주거나 상처받는 이들은 가족, 부부, 친구, 이웃의 이름으로 서로 얽힌다. 작가는 이들 관계의 단면을 부각함으로써 “희망과 사랑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을 비극적 감성으로 표출”한다. 더불어 구모룡 평론가가 해설에서 말한 바 “수직적 초월이 불가능한 세계, 모두가 상처받고 고통을 감내하는 현실을 회피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침내 한 가닥 빛과 물줄기를 찾아낸다.” 서늘한 충격을 안겨주는 표제작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을 비롯하여 이 한 권의 책에 실린 소설들로 이 작가를 한국문학의 뜨거운 신예로 기억하게 될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구모룡 문학평론가는 책 뒷부분의 「작품 해설」에서 이렇게 썼다.

“이은정의 인물들은 부서지기 쉬운 삶에서 생의 이면을 들여다보려는 의지를 잃지 않는다. 사랑과 희망의 미미한 빛을 포기하지 않는다.”

작품 해설에 따르면 누군가의 고단한 삶, 상처받은 마음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들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는 사람. 이은정 작가는 그런 사람이다. 밥 대신 글을 택한 그가 ‘무명작가’로 20년을 살아오면서 견딘 가난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런 이에게는 타인의 고단함이 더 잘 보이는 것일까. 절망이 깊이 드리운 이들의 삶을 작가는 온기 어린 시선으로 끈기 있게 응시해왔다. 삶을 치열하게 붙들고 있는 그의 소설이 더 깊고 넓은 공감의 지점을 만들어내는 이유다.

문단을 떠들썩하게 할 만한 데뷔는 아니었어도 이은정 작가는 쉬지 않고 성장했으며, 천천히 작가가 되었다. 그가 오랜 시간 차곡차곡 쌓아 올린 문장들은 어느덧 여덟 편의 소설로 모였고,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이란 표제를 달고 세상에 나왔다. 부서지기 쉬운 삶을 아슬아슬 살아내는 사람들의 내밀한 삶을 비추며 희미한 별 하나 찾아지지 않는 ‘연탄 같은 하늘’을 이고서 다만 오늘을 살아갈 뿐인 모두에게 진한 위로를 보낸다.




제작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은 비틀린 사랑으로 시작된 관계가 맹목과 집착으로 나아가 한 가족을 폭력의 극단으로 몰아가는 이야기다. 미진과 미주 자매는 아버지의 폭력에서 기인한 부모의 불화를 지켜보며 자랐다. 불안과 슬픔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자매의 영혼은 위태롭기 짝이 없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폭력이 난무하는 가정, 그 모습을 그려내는 작가의 묘사가 현장을 목도하는 듯 생생하다.


“묵직한 어떤 물체가 왼쪽 벽에 부딪히면 곧이어 사기 재질의 어떤 것이 오른쪽 벽에 부딪혀 쩍 하고 소리를 냈다. 씨발년이 왼쪽 벽에 부딪히면 개새끼가 오른쪽 벽에 부딪혔다. 옷 찢어지는 소리가 들리면 뺨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죽어라’와 ‘죽여라’가 안방에서 합창하며 클라이맥스를 찍었다.”

p. 52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 중에서





엄마의 상처는 고스란히 딸들에게 전염되고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 “같이 살면 안 되는 사람들”도 있다면 그들이 완벽하게 헤어질 수 있는 방법이란 과연 무얼까. 우발적인 듯하지만 필연에 가까운 폭력으로 이들은 마침내 가장 완벽한 이별을 맞이한다. 담담한 서사에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담아 독자를 서늘한 충격에 빠뜨리는 문제작이다.

「잘못한 사람들」 역시 사소하고 우연인 듯한 사건이 점점 복잡하게 얽히면서 파국에 이르는 과정을 그린다. 새벽녘 친구 세호의 전화를 받고 술자리에 불려 나온 ‘나’는 이 시대의 전형적인 소시민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직장에서 잘린 친구의 신세 한탄이려니 했던 술자리는 점점 이상한 분위기로 흘러간다. 자신이 어쩌면 폐지 줍는 할머니를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세호의 고백 때문이다. 친구 세호에 내재한 분노가 폐지 줍는 할머니에 대한 폭력으로 표출된 것이다.


“나는 잘못 하나도 안 했는데 어릴 때는 처맞고 커서는 회사도 잘리고 그러는데, 왜 잘못인 줄 알면서도 잘못하고 사는 거야? 어? 잘못인 줄 알면 안 그래야지! 어?”

p. 20 「잘못한 사람들」 중에서




여자는 와인잔에 담긴 소주를 단번에 모두 들이켰다. 휴지로 손가락과 입가를 닦아내고 입안에 남은 음식물을 혀끝으로 걷어내던 여자는 몹시 신중해 보였다. “헤어지자……고?” 여자가 중얼거렸다. 여자의 손아귀에서 휴지가 구겨지고 나서야 여자는 결심한 듯 말했다. “서른 대만 맞아. 그럼 헤어져줄게.”

「피자를 시키지 않았더라면」 중에서


어릴 때는 어른들이 무서워서 솔직하지 못했고, 어른이 되어서는 솔직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솔직하지 않았다. 얼마든지 솔직한 척할 수도 있는 게 어른이었고, 때론 진실보다 진실처럼 포장된 거짓이 신뢰받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나는 혼란스러웠다.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사람들이 믿는 쪽을 택하고 살았다.

「친절한 솔」중에서


예민하게 바라보던 여자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더럽고 천박하다는 양 바라보던 시선과 다 알고 있으니 까불지 말라는 듯 얄팍한 미소. 도리질할 때 헝클어지던 여자의 머리카락마저 내 안에 어떤 수치심을 불러일으켰다. 여자가 그럴수록 나는 더 숨고 싶었다. 여자의 아들과 함께. 당신에게서 영원히.

「숨어 살기 좋은 집」중에서



구모룡 문학평론가는 이밖에 도시의 남루한 골목에서 발생한 우발적 폭력은 ‘나’의 안온한 삶을 일거에 흔들어놓는다. 개인의 분노에서 비롯된 듯한 이 폭력은 “사회의 병적 징후를 내포하며, 연관이 없는 인물이 희생양이 되는 구조적 아이러니를 보여준다.”고 소설평을 내놨다.

또 ‘도시 탈출’을 모티브로 한 「숨어 살기 좋은 집」, ‘귀향’을 모티브로 한 「그믐밤 세 남자」 「개들이 짖는 동안」 등도 작가의 서정적 문장과 특유의 섬세함이 반짝이는 소설이라고 평가했다.

“모두가 상처받고 고통을 감내하는 현실을 회피하지 않는” 이은정 작가로 인해 우리는 비로소 생을 비추는 “한 가닥 빛을 찾아낸다.”

이 한 권의 책에 실린 소설들로 우리는 이 작가를 한국문학의 뜨거운 신예로 기억하게 될 것이라며 작가의 소설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작가는 이 소설들을 쓰면서 끊임없이 떠올린 단어는 ‘가해자’와 ‘피해자’였다. 이분법으로 말해도 되는 것인지 깊게 고민해야 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주거나 받아야 했던 평범하지 않은 상처들은 생각보다 너무 많았고 나도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다. 매번 내가 피해자이기만 했는지 생각하는 내내 몸이 아팠다. 내가 찾은 어설픈 답을 여덟 편의 소설로 남긴다. 평화롭고 무해한 세상에서 나와 당신, 그리고 아이들의 영혼이 안전했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소설이 아니라서 미안하다고 밝혔다. 치열한 '쓰는 삶'을 택한 작가는 작품 성격만 말한 것이다. 작가의 말을 통해 겸양을 보인다. 아름다움은 작가가 말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독자가 작품을 읽고 표현할 일이다. 작가는 작품으로 남는다는 말이 생각난다.

이 작품을 읽은 독자는 생각해낼 것이다. 어려운 삶에서 찾아낸 아름답고 빛나는 '사랑스러운' 작품이라고.


저자 : 이은정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성장했다. 단편소설 〈개들이 짖는 동안〉으로 2018년 동서문학상 대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2020년 아르코 문학창작기금을 수혜했다. 일간지에 짧은 에세이를, 계간지 《시마》에 ‘이은정의 오후의 문장’ 코너를 연재 중이다. 저서로 산문집 《눈물이 마르는 시간》과 《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공저)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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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헤어지고 나를 만났다 - 심리상담사가 전하는 이별처방전
헤이후 지음 / 홍익출판미디어그룹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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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은 어찌해도 힘든 일이다. 그러나 이별의 상처가 나보다 클 수는 없는 법이다.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이 책 『너와 헤어지고 나를 만났다』에는 이별의 아픔을 치유하고, 오롯이 나로서 홀로 설 수 있는 방법이 담겨 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식의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전문 이별심리상담사인 저자가 이별을 겪은 사람들에게 건넨 조언이 충실히 담겨 있어 신뢰성을 더한다.

저자는 이별을 겪은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위로하며, 이별의 과정을 현명하게 겪어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 밖에도 책이나 영화 속 이별에피소드들을 인문학적 지식과 감수성으로 풀어내어 읽는 즐거움을 더했다. 헤어진 후의 일상이 버거운 당신에게 이 책은 “이별, 그거 별거 아니야!” 하고 털어낼 수 있는 용기를 줄 것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영화 속 주인공이 된다. 사소한 일이 드라마가 되고, 우연한 것들이 운명처럼 느껴진다. 그렇기에 이별은 더욱 아프다.

사랑받는 존재였던 특별한 나는, 밋밋해진 일상에 혼자 남겨졌다. 지나간 추억을 다시보기하고, 이별의 이유를 찾으며 괴로워하다가, 결국에는 나라는 사람의 가장 최저선으로 떨어지기까지 한다.

고통스러운 이별의 과정을 겪으며 우리는 깨닫게 된다.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건만, 결국 그 사람은 나와 전혀 다른 남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누군가와 온전히 하나가 되고 싶다는 소망은 불가능한 기대라는 것까지도. 사랑이 주는 충족감은 사라지고, 허무함과 결핍이라는 상처만 남는다. 내가 다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이별의 아픔이 언제쯤 사라질까?



살면서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사랑을 하다 보면 헤어지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랑할 때보다 헤어질 때가 더 힘들다고 말한다. 마음의 상처가 남기 때문일 것이다. 누가 얼마나 사랑했는지는 헤어질 때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똑같이 실연을 해도 반응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금세 회복하고 다음 사랑을 찾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아무리 긴 시간이 흘러도 옛사랑을 잊지 못하고 괴로워하거나 아예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기도 한다. 대체 왜 이렇게 반응이 다른 걸까. 현명하게 이별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별 전문 상담서비스 '헤이후'의 공동대표 오영미와 최영석이 같이 쓴 책 『너와 헤어지고 나를 만났다』에는 이별이 그저 고통스러운 경험에서 끝나지 않고 오히려 의미 있는 삶의 경험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책을 쓴 이들은 심리상담사로 일하며 상담실에서 직접 만난 내담자들의 사연을 바탕으로 이별법과 마음 치유를 위한 조언을 해주는 게 무척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이들은 사람들이 사랑을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사랑을 할 때 비로소 인생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책에 따르면 상대가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받아들이면, 그 자체로 우리는 자기의 존재 및 자기의 현실을 긍정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실제 연애 또는 결혼 생활에서 이러한 기대가 늘 충족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상대가 나의 사소한 단점이나 약점을 받아들여주지 않을 때, 우리는 자존감에 큰 상처를 입게 된다. 자신 또한 상대의 사소한 단점이나 약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있으면서도.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으로 받아들여지고 싶은 욕망 때문에 사랑을 하고 연애를 하는 것이라면, 사랑을 하거나 연애를 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으로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해보면 어떨까. 이별은 사랑을 통해 얻고자 했던 자신의 욕망에 직면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다.

이를테면 실연한 상대를 좋아했던 이유가 근사한 외모라면 나 또한 근사한 외모를 가지기 위해 노력해보고, 높은 학벌이라면 자신 또한 높은 학벌을 가져보는 것이다. 적절한 대응이 될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뭔가를 해봐야 할 상태에선 극한의 목표와 극한의 노력이 뒷받침될 테니까.



어떤 사람들은 이별 후에 결국 실패로 끝날 사랑에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며 후회하기도 한다. 이런 생각이 들 때에는 한창 연애할 때 좋았던 기억들이 모두 거짓처럼 느껴지고,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던 자기 자신을 탓하는 마음도 커진다. 이런 생각이 들 때에는 사랑도 이별도 성취 또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살다 보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성장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는 것이 좋다고 이 책은 조언한다.

평생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상처받지 않는 것보다는, 한 번이라도 뜨겁게 사랑하고 아파했던 기억이 있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왠지 강한 공감이 간다.



사랑이란 감정에 대하여 이렇게 세밀하게 이야기 해주는 책을 오래간만에 만난다. 특히 이 책은 사랑에서 가장 아픈 부분인'이별'에 관해서 이야기하기에 더욱 그렇다. 뿐만 아니라 사랑이란 도대체 무엇일까?란 원천적인 질문과 해답, 그리고 이별에 대처해야 하는 우리의자세를 말해주고 있어 현실적인 느낌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감정뿐만 아니라 사랑의 시작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사랑의 시작과 전개를 알아야지만 '이별'이 주는 감정과 행동의 변화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으며 그동안 수많은 사람과의 이별(꼭 사랑이 아니더라도)에서 받았던 아픔과 함께 그 사람에게 호감이 생겼던 그 순간의 감정도 떠오른다. 그래서 독자로서는 더 아픔을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것을 혹자는 미련이 남아 아직 완전한 이별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란 충고도 많이 들었다. 그럴 때는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삶 자체가 무의미하게 생각되던 기억이 자꾸 되살아난다. 독자로서는 "사랑의 가장 흔한 징후는 '자기답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이란 책의 내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별은 극복하는 게 아니라 충분히 느끼고 통과하는 과정을 통해서 지나가는 일입니다."(p. 104)

그리고 이 책의 핵심 주제인 이별에 대한 부분 역시 많은 공감을 했다. 저자가 수많은 사람들, 특히 이별을 경험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인지 다양한 이별의 이야기와 그 속내를 읽어내려가며 독자와 흡사한 부분에서는 몰입도가 더 높아지기도 했다.

독자가 경험하지 못한 이별에 대해서도 새로움과 함께 공감하는 점이 많았다. 특히 저자가 제시하는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는 가슴에새겨넣었다. 우리는 태어난 이상 만남과 이별을 필연적으로 하는 존재이다. 지금 사랑하다가 언제 또 이별의 순간을 맞게 될지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며 이별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그 감정변화들에 대한 세세함을 배울 수 있었고 무엇보다 앞으로 있을 이별의 아픔에 대처하는 법을 배워 큰 보람이다. 개인적으로 이별에 크게 아파하는 사람들은 꼭 읽어보길 권할 만한 책이다.



다음은 '헤이후'가 책을 발간하며 책과 작가들에 대한 소개를 한 내용이다. 독자들을 위해 아마 출간 전 밝힌 것으로 보인다.

"『너와 헤어지고 나를 만났다』라는 제목으로 홍익출판미디어그룹을 통해 이번 주에 출간되는데요. 이 책을 소개해드린다고 생각하니 떨리고 설레고 복잡 미묘한 기분이 드네요. 헤이후가 이별상담을 해오면서 느끼고 깨달은 것들을 글로 정리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사랑이 어렵고 이별에 상처를 받은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책을 써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한자 한자 고민을 해서 담아보았어요. 부디 이 책을 통해 상담사와 차 한잔하면서 편안한 장소에서 상담을 경험하는 느낌이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은 이별상담을 해온 심리상담사가 적은 사랑과 이별에 관한 에세이 형식입니다. 어려운 심리 이론보다는 마음을 깊숙이 들여다보고 사랑과 이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해볼 수 있도록 차분히 안내하는 글들로 구성해 보았습니다. 이 책을 통해서 이별의 상처가 나보다 클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사랑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라는 것을 공감해주셨으면 합니다. 그 사람과 헤어진 이후에 다시 만나야 할 것은 '나'입니다. 이별은 분명 아픈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성장할 자신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자신감으로 펴내서인지 독자를 제한하는 듯한 말도 서슴지 않는다. 이 책은 이런 분들께서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1. 건강한 사랑을 하고 싶은 강한 열망이 있으신 분들

2. 계속 같은 이유로 원하는 사랑을 하지 못하셨던 분들

3. 사랑하는 사람과 더 좋은 관계를 맺고 싶은 분들

4. 헤어짐의 위기에서 도움이 필요하신 분들

5. 이별한 뒤의 아픈 마음을 돌보고 싶으신 분들

6. 사랑이 준 상처에 깊은 위로가 필요하신 분들

7. 이별의 상처를 성장의 기회로 바꾸고 싶으신 분들

"이별의 고통은 필연적이지만 나에게 향하는 화살의 방향은 조정해야만 합니다. 두 사람의 관계, 혹은 이별과의 상관관계 속에 있는 것들은 무수히 많습니다. … 어쩌면 마음을 다해 만나고, 충분히 상대의 마음을 믿은, 작은 일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당신일 수 있는데 그 사람이 먼저 떠났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탓하지 않았으면 합니다."(pp. 45~46)



헤이후

심리치유 전문기업 화이트어비스에서 첫 번째로 만든 상담 서비스. 이별의 시간을 잘 통과할 수 있도록 찾아가는 이별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헤이후의 공동 대표 오영미, 최영석은 이별이 고통스러운 경험에서 끝나지 않고 오히려 의미 있는 삶의 사건으로 전환되기를 바라며 이 책 《너와 헤어지고 나를 만났다》를 썼다.


오영미

해진 옷을 수선하거나 망가진 물건을 감쪽같이 고치는 일을 좋아했는데 그런 학문은 따로 없어 미술을 전공했다. 적성을 다시 찾아 대학원에서 예술심리상담을 전공했고 타인의 삶에 놓인 장애물을 함께 치우는 일을 17년째 하고 있다. 자기 삶의 적극적 운영자가 되고자 노력하며 산다. 이별전문 심리상담 서비스 헤이후의 공동 대표를 역임하고 있다.


최영석

경영 공부를 하다 무용동작치료사가 된 특별한 이력을 가졌다. 헤이후의 공동 대표로 헤이후 블로그에 이별과 심리 관련 칼럼을 연재 중이고, 같은 이름의 유튜브에서도 얼굴을 비추며 구독자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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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의 미래 “좋은 삶”
김인회 지음 / 준평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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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공동체가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유지하는 데 개인 스스로 지키는 것보다 훨씬 유리하다는 것을 알아내고 일찍부터 공동체를 구성해 살아왔다.

그 공동체의 최초 단위는 가족이고 가장 큰 단위는 국가다. 개인 생활과 달리 공동체 사회는 구성원의 다양함과 다른 의견의 존재로 서로 다른 생각과 의견을 조율해야 한다. 의견이 다르다고 법으로 처벌할 수 없고,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회적 처벌을 할 수는 없다. 공동체의 이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비로소 윤리가 필요하다. 여기서 윤리란 인간의, 인간으로서의 삶을 위한 최소한의 구성원 모두가 인정하는 규약이나 다름없다.

구성원의 잘못된 행위에 대해서는 국가가 법에 의해 처벌할 수 있지만 생각과 종교, 이념 등의 무형의 가치에 대한 처벌을 국가가 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이런 문제는 윤리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윤리 중 일부는 사회에서 구성원 모두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행위에 대해서는 국가가 법에 의해 위임된 권한을 행사하도록 했다. 윤리적 문제는 국가가 나서 제한하는 것은 권력 남용이고 이는 개인 권리나 이익을 제한할 수도 있는 모순 위에 국가가 있는 꼴이어서 인정되지 않는다. 이처럼 국가 단위 공동체는 다른 국가나 공동체의 침범을 받았을 때는 힘을 모아 대적하면 되지만 내부 의견의 차이나 다양한 주장에 대해서는 취약할 수밖에 없는 문제점도 내포하고 있다. 국가가 나서서 어느 한 편의 주장을 들어주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는 윤리에 기댄 법을 제정하고 법에 위배되는 행위로 타인의 권리나 자유를 침범하지 못하도록 공동체 내의 질서 유지와 개인 이익간의 충돌 문제를 다뤄왔다. 인간다운 삶을 국가가 보장하거나 지켜주는 데는 법에 의해 가능할 뿐 윤리적 문제까지 강제 제한할 수는 없다. 이 때문에 윤리란 공동체를 유지하는 최고의 가치가 된다. 가장 강력한 국가는 개인의 생명과 재산의 위험을 다른 국가나 공동체로부터 지키는 데 앞장서지만 개인과 개인의 윤리적인 문제는 법에 규정된 것 이외에는 강제할 수 없는 것이다. 윤리는 무형의 인간 가치를 지키는 데는 최고의 규범이라 할 수 있다.

법처럼 글로써 제한하지 않지만 인간만이 가진 양심,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타인에 대한 배려, 희생 등의 관한 사회적 규범이기 때문에 사회 구성의 최고 규범이라 말해도 무방할 듯하다. 윤리는 원래 제한적 규정을 갖지 않는다. 다만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만 규정한다. 예를 들어 일부일처제 사회에서개인의 생각과 이익을 위해 둘 이상의 배우자를 선택해 같이 살 수 없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은 윤리적 규범에 어긋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어떻게 처벌해야 한다는 규정은 두지 않는다. 그러나 국가는 법에 윤리를 바탕해서 처벌할 수 있는 법 조항을 비로소 가질 권리가 생기는 것이다. 이상은 윤리에 대한 독자의 견해일 뿐임을 미리 밝히고 이 책을 읽어나간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윤리가 무엇인지, 그리고 현대사회에서 윤리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탐구한다. 저자는 주제에 썼듯이 윤리가 '좋은 삶'이라고 주장한다. 윤리는 삶과 떨어질 수 없고, 고통 없는 삶,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윤리, 좋은 윤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윤리를 정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윤리가 삶과 뗄 수 없는 존재이며 좋은 삶 그 자체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얘기한다. 좋은 삶과 좋은 행위가 행복을 보장하고, 윤리적인 삶은 바로 좋은 행위와 좋은 생각을 낳고, 좋은 행위와 좋은 생각은 좋은 삶을 낳는다는 선순환적인 삶으로서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윤리를 탐구하는 이 책은 저자의 이전작인 '정의의 미래 - 공정'과 연결되어 있어 먼저 윤리를 정의와 비교하면서 윤리의 성격을 드러내고 있어 함께 읽어보면 윤리와 정의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저자는 착하고 친절하고 마음 약한 사람들이 의지해야 할 것이라고 윤리를 규정한다. 가장 강조하는 부분이다. 윤리와 삶은 떨어질 수 없다는 점, 좋은 윤리를 가져야 좋은 삶을 살 수 있고, 윤리가 없다면 좋은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주장한다. 윤리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윤리는 모두에게 필요하지만 특히 착하고 친절하고 마음 약한 사람들을 위해 필요하다. 착하고 친절하고 마음 약한 사람들은 압도적인 다수다. 이들이 행복하면 사회는 행복해진다. 윤리는 개인과 공동체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특히 개인에게는 '좋은 삶'을 보장한다. 윤리는 여러 얼굴, 여러 단계를 가지고 있다.

좋은 삶이 여러 가지로 구성되듯이 윤리도 여러 가지 얼굴, 단계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개인과 세상을 움직이는 큰 가치들이 모두 여러 얼굴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 하나의 의미로 고정할 수 없다. 다양한 측면을 탐구함으로써 윤리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다. 저자의 명쾌하고 통찰력 있는 윤리관이다. 독자도 공감하고 동의한다. 다만 사회 구성원이 친절하고 마음 약한 사람들이 많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아지는 특수한 상황에 대한 고민은 엿보이지 않아 약간은 아쉽다.



그러나 저자의 윤리에 대한 탐구는 굉장한 통찰력이 있고, '윤리적인 삶'이 이뤄지는 좋은 사회이라는 주장에 적극 동의한다. 윤리를 탐구하는 이 책은 먼저 윤리를 정의와 비교하면서 윤리의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윤리는 정의에 비하여 따뜻하고 공동체를 중시하고 보편적이고 영적인 측면이 강하다. 정의는 제도와 가깝고 윤리는 삶과 가깝다. 정의는 부분적이지만 윤리는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윤리의 출발점은 마음이다. 마음에서 생기는 느낌, 감정 등이 출발점이다. 양심, 측은함, 부끄러움, 수치심 등이 출발점이므로 정의나 다른 제도에 비하여 훨씬 자연스럽다. 자연스러운 만큼 피하거나 무시하기 어렵다. 윤리가 항상 강조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마치 윤리가 상대방을 비판할 때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되는 것은 바로 윤리가 삶, 사람의 마음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마음에서 출발하는 윤리를 다섯 가지로 구성된다고 밝힌다. 독자가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편의상 다섯 가지로 구분하고 있지만 서로 서로 연결성을 갖고 윤리의 의미부터 고도의 윤리의 방향, 현실에서의 적용 등이 모두 집약돼 있다.

첫째, 법률준수, 범죄 저지르지 않는 것이 윤리다. 이것만으로도 착하고 친절하고 마음 약한 시민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다. 이 분명한 이치도 최근 법률을 경시하고 범죄를 일상적으로 저지르는 탐욕과 분노의 사회에서는 소중한 가치가 되었다. 탐욕과 분노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법률을 준수하는 것만으로도 평화가 보장된다. 그러나 이 측면만이 있다면 윤리는 법률과 다르지 않다.



윤리는 둘째, 예의, 공손, 품위로 드러난다. 사람사이의 관계는 법률만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암묵적인 수많은 질서와 태도가 있다. 그 질서가 잘 운영될 때 사람 사이의 관계도 잘 유지되고 개인의 삶도 좋아진다. 다른 사람을 대하는 기본태도인 예의, 공손, 품위는 모든 윤리강령에 포함되어 있다.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자신에게 좋은 삶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덕목도 최근 중요해졌다. 남에 대한 공격은 독해졌고 표현은 거칠어졌다. 고성과 욕설이 난무한다. 분노가 넘치는 사회에서 예의, 공손, 품위는 더욱 필요하다.

윤리는 셋째, 존중, 공감, 신뢰로 나타난다. 이 단계는 상대방을 적극적으로 이해하는 단계다. 이 단계에서 윤리는 상대방에 대한 무관심을 벗어나 상대방의 행복, 건강, 평화, 복지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상대방을 이해함으로써 상대방에게 중요한 것을 준다. 이렇게 서로에게 중요한 것을 주고받음으로써 신뢰를 교환하고 공동체를 형성한다. 신뢰가 태어나 사회적 자산으로 발전할 수 있다. 사회적 자산인 신뢰는 개인의 행복, 건강, 평화, 복지를 위한 무형의 자산이다.



윤리는 넷째로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한다. 개인의 정체성은 여러 가지 부분 정체성으로 구성된다. 부분 정체성 중의 하나가 바로 윤리 덕목이다.

윤리 덕목을 제대로 익히느냐 익히지 못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생존 및 출세가 결정된다. 그리고 개인의 통일성도 좌우된다. 정체성에는 좋은 정체성과 나쁜 정체성이 있다. 그리고 정체성은 부족해서도 안되고 넘쳐서도 안된다. 부족한 정체성은 외부 사물에 자신의 행복을 맡기고 과잉 정체성은 타인을 희생시킨다.

윤리는 마지막, 다섯째로 영적인 삶으로 이끈다. 좋은 삶은 행복한 삶이고 행복한 삶은 바로 영적인 삶과 연결되어 있다. 사람은 영적인 삶, 인생의 목적과 떨어져 존재할 수 없다. 윤리는 완전히 영적인 가치는 아니지만 영적인 삶의 기초를 이룬다. 모든 종교가 윤리적인 계율을 가지고 있는 이유다. 위 다섯 가지를 독자가 왜 가장 좋아하는 부분으로 뽑았는지는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이해할 것으로 믿는다.



윤리에 대한 이런 정의는 저자가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생각이다. 윤리의 여러 얼굴, 여러 단계를 봄으로써 윤리의 성격을 분명하게 이해한다. 윤리는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좋은 윤리가 있어야 좋은 삶을 살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윤리는 경제와 정치를 견제한다. 경제와 정치가 중요해지는 현대사회에서 윤리가 경제와 정치를 견제하지 않으면 경제의 폭주, 정치의 폭주가 발생한다. 좋은 삶을 적극적으로 지향하는 윤리를 통하여 경제와 정치가 좋은 삶이라는 궤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경제는 과학과 함께 스스로 자제할 줄 모른다. 자본의 힘으로 과학의 힘으로 한계를 확장하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는 윤리의 힘으로 통제되어야 한다. 핵무기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지만 만들어서는 안되고 치명적 바이러스도 만들 수 있지만 만들어서는 안된다. 인간복제 역시 같다. 정치는 주권의 표현이므로 자제를 모른다. 하지만 정치 역시 통제되어야 한다. 국회가 모든 청년을 고용하는 법률을 만들더라도 실제로 청년을 고용하는 것은 기업과 행정부다. 국회는 피부색에 따라 사람을 달리 대하는 불평등한 법을 만들 수 있다. 그렇지만 윤리적인 시민, 민주시민은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윤리의 힘으로 통제될 때 국가는 인간의 얼굴을 한 권력이 된다.



이에 따라 현대사회는 윤리에게도 도전이다. 윤리가 해결해야 할 현대사회의 문제는 공동체의 붕괴, 단기주의, 초과잉과 불평등, 직업윤리 등장, 인구감소, 세계화 등이다. 이들 문제는 현대 사회의 핵심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많은 지식인, 지성인들이 노력하고 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문제들은 경제적 관점, 정치적 관점과 함께 윤리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이다. 경제를 성장시킨다고 하여 공동체 붕괴나 단기주의, 초과잉과 불평등을 해소할 수는 없다. 정치 역시 불충분하다. 개인에게 좋은 삶을 보장하는 윤리가 경제, 정치와 함께 역할을 해야 한다. 이 부분에서 저자는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윤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이 부분 역시 저자가 핵심적으로 강조하는 분야다. 공동체의 붕괴에 따른 실존의 위기는 심각하다. 인간은 타인, 동물, 환경, 자연과 연결되어 있는 유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연결성, 총체성을 잃을 때 인간은 고통을 겪는다.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고 궁극적 행복을 이룰 수 없다. 단기주의 역시 현대 자본주의의 핵심적인 사조로서 경계해야 한다. 이동시간은 더 단축되었지만, 그리고 같은 물건을 더 빨리 생산하지만 현대인에게 시간은 항상 부족하다. 이것은 단기주의를 부추기는 정치, 경제적 구조 때문이다. 단기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적인 공동체가 필요하다. 직업윤리 등장 역시 충분한 정보 제공에 따른 자기결정권, 프라이버시 보호라는 측면에서 현대 윤리에 큰 영향을 미친다.



윤리는 삶과 떨어질 수 없다. 고통 없는 삶,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윤리, 좋은 윤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윤리는 제대로 정립해야 하고 공유해야 한다.

윤리가 위기일수록 윤리의 중요성은 높아진다. 윤리를 정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윤리가 삶과 뗄 수 없는 존재이며 좋은 삶 그 자체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삶과 좋은 행위가 행복을 보장한다. 윤리적인 삶은 바로 좋은 행위와 좋은 생각을 낳는다. 좋은 행위와 좋은 생각은 좋은 삶을 낳는다. 삶과 행위는 모두 윤리와 관련되어 있다. 이점을 각성하는 것이 윤리의 출발점이다.

한국인에게는 윤리친화적인 경험이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 성공의 경험은 좋은 삶을 가능하게 만드는 풍부한 원천이다. 근면하고 성실하고 남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자세, 좋은 제도를 만들어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고 모두가 평등하게 살 수 있는 민주주의를 향한 불퇴전의 자세는 한국인의 윤리를 위한 중요한 원천이다. 이를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 산업화와 민주화는 여전히 우리의 큰 자산이다.

윤리는 정의, 공정, 개혁과 같이 가야한다. 윤리가 정의, 공정, 개혁의 내용을 채우고 정의, 공정, 개혁으로 윤리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야 한다. 개혁 없는 윤리는 공허하고 윤리 없는 개혁은 더 공허한 법이다. 윤리적 삶은 행복한 삶과 동의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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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밤마다 수다를 떨었고, 나는 매일 일기를 썼다 - 어느 페미니스트의 우한 생존기
궈징 지음, 우디 옮김, 정희진 해제 / 원더박스 / 2020년 11월
평점 :
절판



온 세계를 팬데믹 상황으로 몰아넣은 코로나 감염병이 진앙지는 중국 우한이었다. 독자는 첫 환자 발생이 올해 1월 하순으로 기억한다. 코로나의 정체도 몰랐으나 호흡기 감염병이라고 했던 것도 똑똑히 기억난다. 시장이었던 것 같은데 중국의 시장은 사람과 물건의 양을 보면 상상을 초월하는 곳이 많다. 인구가 1000만 명이나 되는 대도시 우한은 이때부터 공포의 도시가 되고 말았다. 도시 봉쇄령이 내려짐과 동시에 거리는 유령의 도시처럼 썰렁했고, 인구 1000만의 활기는 찾을 수 없었다. 가끔 순찰 도는 경찰(공안)차만 카메라에 잡힐 뿐이었다. 이때부터 우한은 보도를 통해 본 것밖에 없게 됐다.

도시가 봉쇄된 만큼 아마 보도도 쉽지 않은 탓이리라. 그렇다고 인구 1000만 명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을 리는 없다. 무언가 할 것이다. 보도만 안 될 뿐이지. 에세이집 제목 같은 이 책 『우리는 밤마다 수다를 떨었고, 나는 매일 일기를 썼다』의 저자 궈징은 2019년 11월 우한으로 이사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한 달쯤 지난 12월 30일 원인 불명의 신종 폐렴이 우한에서 발견되고, 이 병의 전파로 이듬해 1월 10일 첫 사망자가 발생한다. 당시 우리가 접했던 보도는 한참 뒤의 일이다. 왜 정확하게 보도되지 않았는지는 중국의 언론 자유라든지, 정치 제제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훗날 코로나19(COVID-19)로 명명된 이 전염병은 중국 전역으로 급격히 번졌으며, 2020년 1월 23일 진원지인 우한시는 전격 봉쇄된다. 우리에게 보도되기 시작한 것은 봉쇄령이 떨어진 이후인가 보다.




‘어느 페미니스트의 우한 생존기’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1월 23일부터 3월 1일까지 39일 동안 궈징이 봉쇄된 우한에서 SNS에 올린 일기 모음이다.

1인 가구주, 서른 살, 여성,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우한에서 겨우 한 달 남짓 지낸 이방인 신분인 궈징은, 사회적 자원이 전무한 극도로 고립된 상황에서 어떻게든 스스로 살길을 찾아야 했다. 고립감을 이겨내고 정보를 모으기 위해 매일 밤 친구들과 화상 채팅을 하고, 아프지 않기 위해 꼬박꼬박 밥을 챙겨 먹고, 틈틈이 산책을 나가서는 낯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연결지점을 만들고, 봉쇄된 도시에서 관찰한 비상식적인 일과 일상의 소소한 풍경을 기록했다. 읽다보니 우리가 잘 아는 『안네의 일기』가 연상된다. 물론 상황은 다르지만 봉쇄되고 밖에 돌아다니지 못한 채 집안에 갇혀 연명하면서 일기를 썼다는 점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이다.

SNS에 게재된 그의 일기는 200만 회에 달하는 조회수를 기록했고, 《뉴욕 타임스》, 《뉴요커》, 《가디언》, BBC 뉴스, 《서울신문》 등 세계 여러 언론에 소개되어 봉쇄된 우한의 현실을 알리고 연대를 넓히는 데 기여했다는 점에 대해 이견이 없다. 여성학자이자 평화학자인 정희진은 팬데믹 시대에 “국가의 역할, 개인의 자유, 경제 활동, 봉쇄와 방역의 조건, 극도로 성별화되고 계급화된 ‘집’의 의미, 정치 지도자나 자본가 들이 ‘결정할 수밖에 없는’ 현재 자본주의 시스템” 등에 대한 '근본적인 사유의 전환이 요청'되는데, 이 책이 그 논의의 출발점으로 모범을 보인다고 말했다고 외신은 전했다.




이 상황을 일기로 써서 알린 궈징 역시 페미니스트이며 사회활동가다. 아까 독자가 언급한 안네와는 다른 신분이지만 일기 작성자의 신분이 일기의 내용에 미치는 큰 영향을 주지는 않으리라 독자는 믿는다. 한 일기는 독일 점령하의 유태인 소녀가 집안에 갇혀 지내며 쓴 일기이고, 다른 일기는 감염병 진앙지에 따른 국가의 봉쇄령 하에서 집안에 갇혀 지내며 쓴 일기일 뿐. 대학을 졸업한 2014년, 신동방요리학교 문서 작성 담당직에 지원했다가 남성만 채용한다는 이유로 거절당한 뒤 해당 학교를 법정에 고소, 중국 최초로 제기된 취업 성차별 소송에서 승리를 거머쥔다. 3년 뒤인 2017년, 뜻이 맞는 동료들과 함께 ‘074직장여성법률핫라인’을 만들어 취업 성차별에 시달리는 여성들에게 법률 지원을 해 주는 활동을 시작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광저우에서 거주하다가 2019년 11월 우한으로 이사했다. 그로부터 한 달쯤 지난 2019년 12월 말, 원인 불명의 폐렴이 우한에 퍼지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코로나19의 시작이었다.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되던 2020년 1월 23일 우한이 봉쇄되었고, 이날부터 궈징은 봉쇄된 우한에서의 소소한 일상과 전염병 시대 보통 사람들의 현실을 생생하게 기록한 일기를 써서 위챗 모멘트와 웨이보를 비롯한 SNS에 올리기 시작한다.

궈징의 일기는 웹에서의 활동을 기반으로 물리적 봉쇄를 깨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해 사람들 사이의 연대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




책에 따르면 2019년 11월 우한으로 이사한 궈징은, 한 달쯤 뒤인 12월 30일 원인 불명의 신종 폐렴이 자기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한다.

훗날 코로나19(COVID-19)로 명명된 이 전염병은 이듬해 1월 10일 첫 사망자를 낳았고, 우한시를 비롯한 중국 전역으로 급격히 번져 나갔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중국 정부는 2020년 1월 23일 우한시 봉쇄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내린다.

봉쇄는 전격적으로 시행되었다. 봉쇄에 임박해서 공고가 난 데다 봉쇄 기간과 생필품 공급에 대한 계획조차 공지되지 않아 사람들은 패닉에 빠졌다. 거리에서 사람과 자동차가 사라지고, 가게들은 전부 문을 닫았으며, 약국과 마트에서 순식간에 물품이 동나는 가운데 사람들은 식량이며 생필품을 구하려고 여기저기 길게 줄을 섰다. 전염병에 대한 공포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 우한 사람이 격리되거나 폭력의 대상이 되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 우한에서도 더 가장자리에 궈징이 있었다. 1인 가구주, 서른 살, 여성,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곳에서 겨우 한 달 남짓 지낸 이방인. 사회적 자원이 있으려야 있을 수 없는 신분, 기능을 멈춘 도시라는 극도로 고립된 상황. 하지만 궈징은 어떻게든 스스로 살길을 찾아야 했다.

전염병에 대한 정보도, 재난 상황에서 살아가는 방법도 모두 턱없이 부족했던 그는 웹을 통한 연결을 시도한다. 그것을 통해 물리적 봉쇄를 깨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그렇게 그는 친구들과의 화상 채팅과 일기 쓰기를 시작한다.



‘어느 페미니스트의 우한 생존기’라는 부제를 이 책은 봉쇄가 시작된 2020년 1월 23일부터 3월 1일까지 39일 동안 궈징이 SNS에 올린 일기 모음이다. 고립감을 이겨내고 정보를 모으기 위해 매일 밤 친구들과 나눈 화상 채팅 이야기, 아프지 않아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꼬박꼬박 밥을 챙겨 먹고 운동을 한 이야기, 틈틈이 나간 산책 그리고 길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 이야기, 봉쇄된 도시에서 일어나는 비상식적인 사건과 일상의 소소한 일들, 고립된 채 지내는 그의 내면 풍경이 담겨 있다.

하지만, 거리뿐 아니라 사람들의 목소리까지 봉쇄되던 중국에서 궈징의 개인적인 일기는 더 이상 개인적인 것에만 머물지 않았다. 총 조회수가 200만 회에 달하는 그의 일기는 어느새 중국 각지의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어 불의한 사회를 고발하고 연대하며, 앞날이 불투명한 시기에 위안과 희망을 주고받는 통로가 되어 있었다.

“인터넷에서 어떤 사람이 리원량 추모 활동을 제안했는데, 밤 8시 55분부터 9시까지 불을 끄고 묵념한 뒤, 9시부터 9시 5분까지는 빛을 내는 거면 뭐든 손에 들고 창밖을 비추면서 다 같이 호루라기를 불자는 것이었다. (중략) 내 방 창문 밖으로 보이는 건물은 평소 빛이 드문드문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데 9시가 되니 몇몇 건물 귀퉁이에서 미약한 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어둠 속에서,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빛이 되었다. 그건 봉쇄를 뚫는 빛이었다.”(p. 140)



팬데믹의 한복판에서 경험하는 내일을 알 수 없는 막막함, 삶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는 무력감, 시민을 책임지지 않는 국가에 대한 분노가 뒤섞인 채로 지내던 궈징에게는 삶을 붙잡아 주는 닻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 닻이자 부조리한 현실에 맞서는 무기는 매일 쓰는 일기, 그리고 친구들과의 수다인 ‘밤의 채팅’이었다. 궈징은 이 두 가지가 자신의 하루하루를 붙잡아 주었다고 몇 번이고 고백한다.

구체적인 상황과 정도야 제각각이겠지만 우리 역시 그처럼 고립된 현실 속에서 겨우겨우 살아 내고 있다. 하지만 궈징의 말처럼 “그래도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 열심히 살아가는 것도 일종의 투쟁이다.”(p.135) 그러려면 우리를 삶에 정박시키는 닻, 그 고립을 깰 수 있는 무기가 필요하다. 글쓰기, 수다, 규칙적인 식사, 산책, 운동, 독서, 반려종과 함께 살기 등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괜찮다. 중요한 건 직접 시도하는 것이다.

봉쇄된 우한에서 39일 동안, 궈징은 가끔만 실의에 빠지고 대체로 명랑하게 이 일을 해냈다. '안네의 일기'가 다시 떠오른다. 직접 보진 않았지만 안네도 그랬으리라 생각한다.



여성학자이자 평화학자인 정희진은 〈팬데믹 시대 인간의 조건〉이라는 이 책의 해제를 통해 코로나 시대에 우리에게 지워진 과제를 이야기한다.

“국가의 역할, 개인의 자유, 경제 활동, 봉쇄와 방역의 조건, 극도로 성별화되고 계급화된 ‘집’의 의미, 정치 지도자나 자본가 들이 ‘결정할 수밖에 없는’ 현재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진단, 인류의 미래에 대한 구상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근본적인 사유의 전환이 요청되는 이때, 그 출발점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각자의 구체적인 기록이라고 강조하며 이렇게 글을 맺는다. “그러므로, 다양한 『우리는 밤마다 수다를 떨었고, 나는 매일 일기를 썼다』들이 나와야 한다. 이 책은 그 모범적 선구이다.”

많은 이들이 이 책에 공감하길 바란다. 그리하여 더 많은 수다와 더 많은 기록으로 이어지기를, 그리고 그것들이 이 시대를 슬기롭게 건널 수 있도록 우리를 안내하기를 기대한다.



'코로나 19' '코로나 팬데믹' 등으로 불리우는 이번 감염병 사태는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이라고 정부나 언론은 발표했다. 감염병 전문의사들 주축으로 방역 기구가 만들어지고 적극 방역이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정부는 '선제 방역'을 실시했다. 감염 경로를 찾아들어가 그 경로에 있는 확진자를 찾아내 치료하고, 더 많은 확진자가 발생하는 것을 미리 막는 방역 방법이다. 다행히 국민들의 대대적인 협조로 대한민국은 '방역 모범국가'로의 영예로운 칭호도 받았다. 그러나 그것은 일부일 뿐이었다는 것을 우린 경험했다. 잠깐 방역 대책이 느슨해지면 어김없이 확진자 대량 발생 사태가 이어졌다. 집단 집합 장소인 유흥업소를 통한 확진, 대중 집회를 통한 대량 확진, 이제는 무증상 감염자에 의한 확진자의 대량 발생으로 10개월 간 해온 방역 활동이 무위로 돌아가는 상황에 이르렀다. 지금은 하루 확진자 300명 안팎의 추세가 연일 이어지고 정부는 연말까지 다중 이용 업소, 사설 학원 등 10명 이상의 집회 등을 전면 억제하기로 해 또다시 자영업자 등 사회적 약자 계층의 생계가 막연해지게 됐다.


집에 돌아와 촛불 하나를 켜 놓고 리원량을 애도했다. 샤워를 하다가 휴대폰으로 〈인터내셔널가〉를 반복 재생시켜 놓고 목놓아 울었다.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슬픔이자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분노였다.(p. 136)



우한은 봉쇄되었지만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생활했다. 매일 일을 하며 점점 올라가는 물가에 겨우 채소와 필요한 물품을 사며 살아가고 있었다. 점점 봉쇄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도 생겨났다. 코로나19 확진자로 판명되었지만 병원에서 더 이상 받아주지 않자 막다른 지경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이런 안타까운 이야기는 우리에게 하나의 영감을 주기도 한다. 방역에 있어서, 국가에게 그리고 개인에게도. 책에서는 또 한 가정의 어른들 모두가 코로나19에 걸려 격리되어 있었고 집에는 어린 아이 둘만 남게 된다. 어린 아이들을 돌봐 달라는 부탁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마스크 구하기도 힘들어진다. 인터넷을 통해 마스크를 구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지만 마스크는 구할 수 없었다. 저자는 채팅방에서 친구들과 소통하며 우한 봉쇄가 풀리는 4월초까지 일기를 썼다고 한다. 궈징은 그 상태에서도 살아 있음을 증명하려 했다.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면서... 안네와 같다. 그것은 우리에게 이젠 희망의 불씨를 살린다. 어떻게든 살아남으면 살아갈 수 있다. 그러니 버티고 살아내야 한다.


한 부부가 입구에서 마스크가 있느냐고 물었다. 남자가 입구에서 좀 떨어진 곳에 서 있으니까 여자가 말했다. “이제 보니까 당신 말이야, 사람 많은 곳에만 오면 매번 한쪽에 뚝 떨어져 있더라.”(p. 87)

친구가 물었다. “도대체 잔인한 게 바이러스니, 아니면 인간이니?”(p. 320)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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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불행한 대통령들
라종일 외 지음 / 파람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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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누구나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왜 모두 불행했을까"를 생각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독자도 정치에 뜻은 없지만 선거를 할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물론 독자가 투표한 대통령도 있고 표를 주지 않은 대통령도 있다. 박정희 대통령까지는 독자에게 선거권이 없었지만 노태우 대통령부터는 독자에게도 선거권이 있어 대통령 선거 때는 빠짐없이 투표해왔다. 그때마다 누구에게 투표하는지와 관계 없이 퇴임 후에도 존경 받는 대통령이 되기를 바랐다. 당연히 민주 정치가 안정돼야 우리의 삶이 안정되고 경제적으로도 더 나아질 수 있을 거란 기대 때문이지만 결과는 늘 불행한 모습을 갖고 왔다. 무사히(?) 대통령직을 마친 후에도 대통령의 불행은 계속됐다. 대체로 정치적 이유가 원인이다.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도 5.18 이후 엄청난 부담을 안고 차례로 대통령을 했지만 결국 대통령을 그만 둔 후에는 감옥을 가고 최고 사형까지 선고 받은 바 있고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두 사람은 지금도 영어의 신세다. 그나마 민주화 투쟁을 했던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등은 정치적 이유로 불행하지는 않았지만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에 의해 어려움을 겪었다. 자신이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동안 자식이 감옥에 가고 형제가 가고... 결과적으로 결코 행복한 대통령의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같은 민주주의 대통령제를 갖고 있는 미국은 역대 대통령이 불행한 길을 걸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초대 워싱톤 대통령부터 현직 트럼프 대통령까지. 물론 이런 저런 문제로 사임을 한 대통령은 있고, 암살 당한 일도 있지만 개인적 비리나 정치적 이유로 불행한 대통령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린 왜? 민주주의 역사가 짧아서인가, 아니면 몸에 맞지 않은 민주주의란 옷을 억지로 입어서인가. 그런 말은 설득력도 없고 역사상 그런 일도 없다. 이 책 『한국의 불행한 대통령들』은 이유를 살펴보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쓰인 책이다.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국정을 운영하는 최고 책임자일 뿐 아니라, 정치인 개인적 차원에서도 다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사전 검증과 공개 경선이라는 험난한 과정을 통과한 후, 국민 다수의 선택까지 받아야만 비로소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역경을 뚫고 전 국민에게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여 한 나라의 최고 책임자 자리에 오른 대통령의 끝은 끊임없이 불행했다.

이러한 현실은 한반도의 반대쪽에 있는 북한과 비교해보면 더욱 역설적으로 다가온다. 모든 면에서 최악의 상황인 북한의 역대 지도자들은 평생 안정된 집권을 누리며 신처럼 추앙을 받다가, 죽은 후에는 자기 자손에게 고스란히 그 절대 권력을 물려주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어디에서 생겨난 것일까? 한국 역대 대통령들의 불행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인 걸까?




“우리의 첫 번째 대통령은 망명을 간 후 작고했다. 두 번째는 측근에게 살해당했다. 세 번째 네 번째 대통령들은 모두 감옥에 갔다.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대통령의 경우는 자신들은 감옥에 가지 않았지만, 자손들이 감옥에 갔다. 자 살펴보자. 분명히 상황은 조금씩이라도 좋아지고 있지 않은가. 처음 자유롭고 공개적인 민주 정치를 해보는 나라로서는 이 정도는 긍정적인 발전이 아닌가.”

이 책의 기획자이자 공동저자인 라종일이 영국에서 대사로 근무할 때, 당시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을 돕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런데 이별의 자리에서 한 지인이 한국의 대통령들은 대개 그 끝이 좋지 않았다며 걱정하는 말에 대한 그의 대답이다. 하지만 그 이후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까지 불행은 어김없이 반복되었다. 도대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식민지 지배와 전쟁의 폐허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한 대한민국. 하지만 한국을 성공적인 나라로 이끈 역대 대통령들은 왜 한결같이 불행했을까? 『한국의 불행한 대통령들』은 정치, 외교, 언론, 리더십 등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들이 역대 대통령들이 불행한 말로를 겪게 된 다양한 원인들을 분석하고, 이러한 불행을 더 이상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처방과 대안을 제시한다.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외교에서 특별히 많은 부담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서쪽에는 세계 최대의 인구와 2위의 경제력을 가진 중국이 있고, 동쪽에는 한때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점령했고 지금도 세계 3위의 경제력을 가진 일본이 있다. 북쪽에는 세계 최대의 영토와 2위의 핵전력을 보유한 군사 대국 러시아가 있으며, 세계 패권국인 미국은 우리나라와 일본을 동맹으로 묶어 동아시아 전략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게다가 한반도는 남북으로 분단되어, 북한에는 주체사상과 핵무기로 무장한 세습 정권이 3대를 잇고 있다. ‘외교 함정’이라고 불릴 정도로 힘겨운 우리의 외교 현실은 늘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와 국정 과제 추진 동력을 빼앗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지정학적 이유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우리나라 대통령이 되면 누구나 겪어야 할 숙명적인 의무이고 책임이다. 그 과정에서 잘못된 정책이 있었다고 해도 처벌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대통령직 수행하다 결과가 잘못된 데 따른 것이고, 이 문제는 언제까지나 지속될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 국민의 의사에 반했다고 볼 수도 없다.



이 책은 우리나라 대통령들의 불행에 대해 한 가지 이유만 지적하지 않는다. 앞서 말한 '외교 함정'뿐만 아니라 언론과의 관계, 정치 구조, 리더십 등으로 나뉘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글을 실었다. 그만큼 우리나라 대통령직은 다방면에 권한과 책임을 모두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과도 관련이 깊다는 점도 부각된다. 1970년대 이후 한동안 권위주의 지배 체제가 한창일 때, 국민들은 언론의 자유가 권위주의 독재에 맞서는 데 반드시 필요한 도구라고 인식했다. 하지만 언론이 정치 권력과 협력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오히려 언론을 민주주의 발전의 장애 요소라 여기게 되었다. 특히 한국 정치에서 권위주의 체제와 군사 정권에 맞선 대표적인 인물인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과 언론의 관계에는 험악한 적대적 순간이 여러 번 존재했다. 이 부분은 전두환 집권 당시 언론통폐합을 통해 소수 언론만 특혜를 주는 식으로 입을 틀어막았기 때문이란 말과도 동의어다. 가장 큰 피해를 본 세 분이니까. 이른바 보수 언론에 의해서... 사실 박정희 대통령 때는 언론에 대한 강경한 자세였지만 지배하지는 않았다.


한국 정치에서 권위주의 체제와 군사 정권에 맞서며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대표적인 인물인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과 언론의 관계는 드라마틱한 면이 있습니다. 언론과 이 세 대통령과의 관계는 그들의 정치 역정만큼이나 극적이었으며, 심지어 험악한 적대적 순간도 여러 번 존재했습니다. 실제로 이들은 권위주의와 군사 정권 아래에서 야당 정치인으로 심한 탄압을 받았던 인물이었는데, 그런 이유 때문인지 정치 권력과 유착 관계에 있던 언론을 몹시 불신했으며 그 사실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습니다.(p. 115)




또 정치 제도적인 측면에서 보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와 ‘5년 단임제’, ‘승자 독식 제도’의 부작용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나라에 대통령제가 도입되기 전 국민이 경험해본 정치 체제는 왕조 지배 체제뿐이었다. 그렇기에 국민이 대통령을 왕조 시대의 군왕과 동일한 존재로 이해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하지만 대통령 1인에 대한 지나친 권력 집중은 산업화 시기에는 민주주의를 희생시켰고, 민주화 이후에는 소통과 타협을 부정하는 권위주의의 잔재로 남아 민주적 정치 문화의 정착을 어렵게 만들었다. 더불어 장기 독재를 막기 위해 도입한 ‘5년 단임제’는 장기 독재를 막는 데에는 기여했으나 국정 운영의 불안정성과 비효율성을 초래했고, 상대방에 대한 관용과 포용이 설 자리가 없는 ‘승자 독식 제도’로 이어졌다. 이 점은 앞으로도 개선될 여지는 많지만(선거제도 개선)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는 없다. 지금 문재인 정권 때도 마찬가지다. 여와 야의 정치적 속셈이 다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권위주의 사회에서 자라난 역대 대통령들에게는 민주적 리더십이 부족했다. 청와대가 국민과 소통하는 방식은 지극히 일방적이고 단순했으며, 국민에게 그저 통고하는 행위를 국민과의 소통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짙었다. 국민과 공감을 나누는 양방향 소통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이 점은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앞선 대통령들이 잘못해 왔기 때문에 양방향 소통이 어렵게 된 것이다. 그것은 권위 의식이라고 말할 수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그리 많지 않다. 대통령은 일반인과는 특별히 다른 사람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생각의 출발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대통령 자신이 그렇다기보다는 대통령의 측근들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대통령의 권위가 클수록 자신들의 권위도 그만큼 커지니까.

민주적 헌정 질서에 의한 국민 선거로 이루어진 대통령인데도 막상 대통령직 수행에는 자신을 대통령으로 있게 해준 수행 측근들의 공도 무시할 수는 없을 테니. 이 점은 정당 정치가 올바로 서지 못했다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아니 이 책을 통해 확실히 알았다는 말이 훨씬 정확하다.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정치 제도가 대통령의 개인 리더십 스타일에 따라 정치에 아주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겉으로 드러난 민주 사회의 모습과는 달리 우리의 대통령제 통치 구조는 일방적 하향식 형태인 중앙 집권적 형태로 운영되고 있으며, 행정부에 대한 입법부와 사법부의 견제 기능이 미약한 상태에서 임기 초반 대통령의 리더십에 의해 일방적 전횡과 독선적 행태가 구조화되는 제도라 하겠습니다.(p. 156~157)




역대 대통령들의 정치적 역정과 행태를 돌아보면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보려 하고, 정치 공학적 차원에서 국민이란 이름을 내세울 때가 적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정치 문화 역시 그에 맞추어 ‘대권’이란 이름으로 전근대적으로 형성되어왔다. 그러나 현재의 지도자란 자기희생을 통해 국민들의 신뢰와 존경심 속에서 국민적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지도자가 된다는 것, 특히 한 국가의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개인에 게 축복이면서도, 더 좋은 후보자들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정치적 기회를 빼앗은 채무일 수도 있다. 겸허한 마음으로 국민과 소통하고 후진적 정치 문화를 개선해나갈 때 비로소 대통령의 불행을 멈출 수 있을 것이다. 보스턴 필하모닉 지휘자 벤자민 젠더의 말은 우리 시대 진정한 대통령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든다. 이 책에서 쓴 말이 끝내 귓전을 맴돌다 머릿속으로 박힌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지휘자는 자기는 정작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 그는 얼마나 다른 이들로 하여금 소리를 잘 내게 하는가에 따라 능력을 평가받는다. 다른 이들 속에서 잠자고 있는 가능성을 깨워서 꽃피게 해주는 것이 바로 리더십이 아닐까?”


대통령에게는 동양에서 전통적으로 군림해온 왕 또는 황제의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어서, 일반 국민들은 대통령과 직접 대화하는 것에 적잖은 어색함을 느낍니다. 또한 왕조 국가에서 지도자의 메시지는 미리 계획되는 것은 물론이고 국민을 압도하는 위엄이 있어야 했으니, 사전 계획 없이 대통령이 국민과 소통하는 것은 대통령의 권위에 금이 간다고 느끼게 됩니다. 왕조 국가의 의식이 낳은 잔재가 사람들의 잠재적 인식 속에 깊이 자리한 것입니다. 이런 사고의 고착이 결국 그동안 한국의 대통령이 국민과 소통하는 방법을 획일적으로 제한하고, 측근과 정치적 동지, 즉 개인의 사적 관계에 기반한 비공식적 채널들로 대통령의 창을 한정하는 전근대적인 모습을 보여준 이유 중 하나가 될 터입니다.(p. 215)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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