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불행한 대통령들
라종일 외 지음 / 파람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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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누구나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왜 모두 불행했을까"를 생각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독자도 정치에 뜻은 없지만 선거를 할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물론 독자가 투표한 대통령도 있고 표를 주지 않은 대통령도 있다. 박정희 대통령까지는 독자에게 선거권이 없었지만 노태우 대통령부터는 독자에게도 선거권이 있어 대통령 선거 때는 빠짐없이 투표해왔다. 그때마다 누구에게 투표하는지와 관계 없이 퇴임 후에도 존경 받는 대통령이 되기를 바랐다. 당연히 민주 정치가 안정돼야 우리의 삶이 안정되고 경제적으로도 더 나아질 수 있을 거란 기대 때문이지만 결과는 늘 불행한 모습을 갖고 왔다. 무사히(?) 대통령직을 마친 후에도 대통령의 불행은 계속됐다. 대체로 정치적 이유가 원인이다.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도 5.18 이후 엄청난 부담을 안고 차례로 대통령을 했지만 결국 대통령을 그만 둔 후에는 감옥을 가고 최고 사형까지 선고 받은 바 있고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두 사람은 지금도 영어의 신세다. 그나마 민주화 투쟁을 했던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등은 정치적 이유로 불행하지는 않았지만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에 의해 어려움을 겪었다. 자신이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동안 자식이 감옥에 가고 형제가 가고... 결과적으로 결코 행복한 대통령의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같은 민주주의 대통령제를 갖고 있는 미국은 역대 대통령이 불행한 길을 걸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초대 워싱톤 대통령부터 현직 트럼프 대통령까지. 물론 이런 저런 문제로 사임을 한 대통령은 있고, 암살 당한 일도 있지만 개인적 비리나 정치적 이유로 불행한 대통령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린 왜? 민주주의 역사가 짧아서인가, 아니면 몸에 맞지 않은 민주주의란 옷을 억지로 입어서인가. 그런 말은 설득력도 없고 역사상 그런 일도 없다. 이 책 『한국의 불행한 대통령들』은 이유를 살펴보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쓰인 책이다.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국정을 운영하는 최고 책임자일 뿐 아니라, 정치인 개인적 차원에서도 다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사전 검증과 공개 경선이라는 험난한 과정을 통과한 후, 국민 다수의 선택까지 받아야만 비로소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역경을 뚫고 전 국민에게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여 한 나라의 최고 책임자 자리에 오른 대통령의 끝은 끊임없이 불행했다.

이러한 현실은 한반도의 반대쪽에 있는 북한과 비교해보면 더욱 역설적으로 다가온다. 모든 면에서 최악의 상황인 북한의 역대 지도자들은 평생 안정된 집권을 누리며 신처럼 추앙을 받다가, 죽은 후에는 자기 자손에게 고스란히 그 절대 권력을 물려주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어디에서 생겨난 것일까? 한국 역대 대통령들의 불행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인 걸까?




“우리의 첫 번째 대통령은 망명을 간 후 작고했다. 두 번째는 측근에게 살해당했다. 세 번째 네 번째 대통령들은 모두 감옥에 갔다.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대통령의 경우는 자신들은 감옥에 가지 않았지만, 자손들이 감옥에 갔다. 자 살펴보자. 분명히 상황은 조금씩이라도 좋아지고 있지 않은가. 처음 자유롭고 공개적인 민주 정치를 해보는 나라로서는 이 정도는 긍정적인 발전이 아닌가.”

이 책의 기획자이자 공동저자인 라종일이 영국에서 대사로 근무할 때, 당시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을 돕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런데 이별의 자리에서 한 지인이 한국의 대통령들은 대개 그 끝이 좋지 않았다며 걱정하는 말에 대한 그의 대답이다. 하지만 그 이후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까지 불행은 어김없이 반복되었다. 도대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식민지 지배와 전쟁의 폐허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한 대한민국. 하지만 한국을 성공적인 나라로 이끈 역대 대통령들은 왜 한결같이 불행했을까? 『한국의 불행한 대통령들』은 정치, 외교, 언론, 리더십 등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들이 역대 대통령들이 불행한 말로를 겪게 된 다양한 원인들을 분석하고, 이러한 불행을 더 이상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처방과 대안을 제시한다.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외교에서 특별히 많은 부담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서쪽에는 세계 최대의 인구와 2위의 경제력을 가진 중국이 있고, 동쪽에는 한때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점령했고 지금도 세계 3위의 경제력을 가진 일본이 있다. 북쪽에는 세계 최대의 영토와 2위의 핵전력을 보유한 군사 대국 러시아가 있으며, 세계 패권국인 미국은 우리나라와 일본을 동맹으로 묶어 동아시아 전략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게다가 한반도는 남북으로 분단되어, 북한에는 주체사상과 핵무기로 무장한 세습 정권이 3대를 잇고 있다. ‘외교 함정’이라고 불릴 정도로 힘겨운 우리의 외교 현실은 늘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와 국정 과제 추진 동력을 빼앗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지정학적 이유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우리나라 대통령이 되면 누구나 겪어야 할 숙명적인 의무이고 책임이다. 그 과정에서 잘못된 정책이 있었다고 해도 처벌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대통령직 수행하다 결과가 잘못된 데 따른 것이고, 이 문제는 언제까지나 지속될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 국민의 의사에 반했다고 볼 수도 없다.



이 책은 우리나라 대통령들의 불행에 대해 한 가지 이유만 지적하지 않는다. 앞서 말한 '외교 함정'뿐만 아니라 언론과의 관계, 정치 구조, 리더십 등으로 나뉘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글을 실었다. 그만큼 우리나라 대통령직은 다방면에 권한과 책임을 모두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과도 관련이 깊다는 점도 부각된다. 1970년대 이후 한동안 권위주의 지배 체제가 한창일 때, 국민들은 언론의 자유가 권위주의 독재에 맞서는 데 반드시 필요한 도구라고 인식했다. 하지만 언론이 정치 권력과 협력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오히려 언론을 민주주의 발전의 장애 요소라 여기게 되었다. 특히 한국 정치에서 권위주의 체제와 군사 정권에 맞선 대표적인 인물인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과 언론의 관계에는 험악한 적대적 순간이 여러 번 존재했다. 이 부분은 전두환 집권 당시 언론통폐합을 통해 소수 언론만 특혜를 주는 식으로 입을 틀어막았기 때문이란 말과도 동의어다. 가장 큰 피해를 본 세 분이니까. 이른바 보수 언론에 의해서... 사실 박정희 대통령 때는 언론에 대한 강경한 자세였지만 지배하지는 않았다.


한국 정치에서 권위주의 체제와 군사 정권에 맞서며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대표적인 인물인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과 언론의 관계는 드라마틱한 면이 있습니다. 언론과 이 세 대통령과의 관계는 그들의 정치 역정만큼이나 극적이었으며, 심지어 험악한 적대적 순간도 여러 번 존재했습니다. 실제로 이들은 권위주의와 군사 정권 아래에서 야당 정치인으로 심한 탄압을 받았던 인물이었는데, 그런 이유 때문인지 정치 권력과 유착 관계에 있던 언론을 몹시 불신했으며 그 사실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습니다.(p. 115)




또 정치 제도적인 측면에서 보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와 ‘5년 단임제’, ‘승자 독식 제도’의 부작용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나라에 대통령제가 도입되기 전 국민이 경험해본 정치 체제는 왕조 지배 체제뿐이었다. 그렇기에 국민이 대통령을 왕조 시대의 군왕과 동일한 존재로 이해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하지만 대통령 1인에 대한 지나친 권력 집중은 산업화 시기에는 민주주의를 희생시켰고, 민주화 이후에는 소통과 타협을 부정하는 권위주의의 잔재로 남아 민주적 정치 문화의 정착을 어렵게 만들었다. 더불어 장기 독재를 막기 위해 도입한 ‘5년 단임제’는 장기 독재를 막는 데에는 기여했으나 국정 운영의 불안정성과 비효율성을 초래했고, 상대방에 대한 관용과 포용이 설 자리가 없는 ‘승자 독식 제도’로 이어졌다. 이 점은 앞으로도 개선될 여지는 많지만(선거제도 개선)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는 없다. 지금 문재인 정권 때도 마찬가지다. 여와 야의 정치적 속셈이 다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권위주의 사회에서 자라난 역대 대통령들에게는 민주적 리더십이 부족했다. 청와대가 국민과 소통하는 방식은 지극히 일방적이고 단순했으며, 국민에게 그저 통고하는 행위를 국민과의 소통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짙었다. 국민과 공감을 나누는 양방향 소통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이 점은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앞선 대통령들이 잘못해 왔기 때문에 양방향 소통이 어렵게 된 것이다. 그것은 권위 의식이라고 말할 수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그리 많지 않다. 대통령은 일반인과는 특별히 다른 사람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생각의 출발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대통령 자신이 그렇다기보다는 대통령의 측근들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대통령의 권위가 클수록 자신들의 권위도 그만큼 커지니까.

민주적 헌정 질서에 의한 국민 선거로 이루어진 대통령인데도 막상 대통령직 수행에는 자신을 대통령으로 있게 해준 수행 측근들의 공도 무시할 수는 없을 테니. 이 점은 정당 정치가 올바로 서지 못했다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아니 이 책을 통해 확실히 알았다는 말이 훨씬 정확하다.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정치 제도가 대통령의 개인 리더십 스타일에 따라 정치에 아주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겉으로 드러난 민주 사회의 모습과는 달리 우리의 대통령제 통치 구조는 일방적 하향식 형태인 중앙 집권적 형태로 운영되고 있으며, 행정부에 대한 입법부와 사법부의 견제 기능이 미약한 상태에서 임기 초반 대통령의 리더십에 의해 일방적 전횡과 독선적 행태가 구조화되는 제도라 하겠습니다.(p. 156~157)




역대 대통령들의 정치적 역정과 행태를 돌아보면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보려 하고, 정치 공학적 차원에서 국민이란 이름을 내세울 때가 적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정치 문화 역시 그에 맞추어 ‘대권’이란 이름으로 전근대적으로 형성되어왔다. 그러나 현재의 지도자란 자기희생을 통해 국민들의 신뢰와 존경심 속에서 국민적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지도자가 된다는 것, 특히 한 국가의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개인에 게 축복이면서도, 더 좋은 후보자들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정치적 기회를 빼앗은 채무일 수도 있다. 겸허한 마음으로 국민과 소통하고 후진적 정치 문화를 개선해나갈 때 비로소 대통령의 불행을 멈출 수 있을 것이다. 보스턴 필하모닉 지휘자 벤자민 젠더의 말은 우리 시대 진정한 대통령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든다. 이 책에서 쓴 말이 끝내 귓전을 맴돌다 머릿속으로 박힌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지휘자는 자기는 정작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 그는 얼마나 다른 이들로 하여금 소리를 잘 내게 하는가에 따라 능력을 평가받는다. 다른 이들 속에서 잠자고 있는 가능성을 깨워서 꽃피게 해주는 것이 바로 리더십이 아닐까?”


대통령에게는 동양에서 전통적으로 군림해온 왕 또는 황제의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어서, 일반 국민들은 대통령과 직접 대화하는 것에 적잖은 어색함을 느낍니다. 또한 왕조 국가에서 지도자의 메시지는 미리 계획되는 것은 물론이고 국민을 압도하는 위엄이 있어야 했으니, 사전 계획 없이 대통령이 국민과 소통하는 것은 대통령의 권위에 금이 간다고 느끼게 됩니다. 왕조 국가의 의식이 낳은 잔재가 사람들의 잠재적 인식 속에 깊이 자리한 것입니다. 이런 사고의 고착이 결국 그동안 한국의 대통령이 국민과 소통하는 방법을 획일적으로 제한하고, 측근과 정치적 동지, 즉 개인의 사적 관계에 기반한 비공식적 채널들로 대통령의 창을 한정하는 전근대적인 모습을 보여준 이유 중 하나가 될 터입니다.(p. 215)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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