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
이은정 지음 / 마음서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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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전성시대'가 있었다. 한국문단을 뒤적이다 보면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독재의 시대, 산업화 시대의 그늘엔 단편소설이 있었다. 독자가 감히 '전성시대'를 붙인 이유는 우리 근현대사의 뒷편에서 묵묵히 글을 써온 작가들이 단편소설을 많이 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금 이 시대에 단편소설은 잘 읽히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작가들, 특히 소설가들은 단편소설부터 쓴다. 작가로서의 역량 부족 때문이 아니다. 시대 정신이 뒤떨어져서도 아니다. 독자가 단편소설을 많이 읽기 때문이다. 문학계나 평론가들은 어떻게 이유를 분석했는지 모르지만 몇몇 작가를 빼놓고는 대부분 단편소설부터 썼다. 압축적으로 시대 정신을 담을 수 있고, 사회의 그늘진 곳을 조명하기 좋기 때문이다. 굳이 한 가지 이유를 덧붙이자면 시대의 흐름상 장편소설을 읽을 독자가 많지 않았다. 장편은 발표할 지면이 많지 않고 검증되지 않은 작가의 장편소설을 출판하는 것은 경제적 이유로도 쉽지 않았다. 독자 역시 장편소설을 읽고 있다는 것은 한가로운 사람들이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였다. 산업화로 접어든 제 3공화국 시절에는 생계를 잇기 위해 책 읽는 것은 사치일 때이다. 누가 장편소설을 읽겠는가라는 시대였다. 작가들은 단편 위주의 소설로 생계를 잇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교편을 잡거나 출판사에서 다른 책을 출판하는 데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작가 등단의 유일한 길이었던 신문사 신춘문예도 장편소설 공모는 없었다. 지면(그때는 신문 지면이 4면에서 8면)에 실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당선작을 내기도 어려운 상황이어서일 것이다. 70년대 들어서야 처음으로 중앙일보가 중편소설 부문을 신춘문예 분야에 더했다. 이 시대에는 작가가 책을 내기에는 무척 어려웠다. 출판사들도 어려워 선뜻 장편소설은 손에 들지 않으려 했다. 출판사들은 외국의 유명한 장편소설이나 드라마 대본을 가져다 번역해 소설로 써서 찍어냈다. 당시에는 저작권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기 전이라 이른바 '해적판' 소설이 출판사의 수입이 되고, 성장의 바탕이 된 시절이었다. 70년대 후반 들어서야 장편소설이 하나 둘 빛을 보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경제성장을 이뤄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때도 선정적인 대중소설이 히트작(대량 판매)에 들어갈 뿐 시대의 아픔이나 이념, 분단의 아픔 등을 쓴 소설들은 문단에서 크게 호평을 받아도 출판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단편소설은 꾸준히 발전을 거듭했다. 밥을 굶어도 작가를 고집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만 역량을 꾸준히 축적해왔다. 그렇게 단편소설은 우리 문단 20세기를 가로질렀다. 이 즈음에는 시대의 아픔이나 분단, 산업화의 그늘, 소외 계층의 삶 등을 조명한 책들이 많이 팔림에 따라 단편소설로 역량을 쌓아오던 작가들이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20년 만에 소설가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 이은정 작가가 첫 소설집을 펴냈다. 2018년 단편소설 「개들이 짖는 동안」으로 동서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그가 산문집 『눈물이 마르는 시간』, 7인 연작 에세이 『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공저)에 이어 소설가로서 처음 펴내는 작품집이다. 이 책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은 작가의 단단한 내공이 응축된 책으로 모두 여덟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삶이 완벽한 어둠으로 다가올지라도 절망 뒤에는 희망이 웅크리고 있음을 온기 어린 시선으로 포착해낸다. 여기 실린 소설들은 대부분 사회의 평범한 사람들이고 상처 받은 사람들이다.

이 소설집에서 작가는 존재의 이면을 끈기 있게 응시하며 평범한 사람들이 주고받은 평범하지 않은 상처에 대해 그린다. 상처를 주거나 상처받는 이들은 가족, 부부, 친구, 이웃의 이름으로 서로 얽힌다. 작가는 이들 관계의 단면을 부각함으로써 “희망과 사랑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을 비극적 감성으로 표출”한다. 더불어 구모룡 평론가가 해설에서 말한 바 “수직적 초월이 불가능한 세계, 모두가 상처받고 고통을 감내하는 현실을 회피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침내 한 가닥 빛과 물줄기를 찾아낸다.” 서늘한 충격을 안겨주는 표제작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을 비롯하여 이 한 권의 책에 실린 소설들로 이 작가를 한국문학의 뜨거운 신예로 기억하게 될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구모룡 문학평론가는 책 뒷부분의 「작품 해설」에서 이렇게 썼다.

“이은정의 인물들은 부서지기 쉬운 삶에서 생의 이면을 들여다보려는 의지를 잃지 않는다. 사랑과 희망의 미미한 빛을 포기하지 않는다.”

작품 해설에 따르면 누군가의 고단한 삶, 상처받은 마음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들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는 사람. 이은정 작가는 그런 사람이다. 밥 대신 글을 택한 그가 ‘무명작가’로 20년을 살아오면서 견딘 가난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런 이에게는 타인의 고단함이 더 잘 보이는 것일까. 절망이 깊이 드리운 이들의 삶을 작가는 온기 어린 시선으로 끈기 있게 응시해왔다. 삶을 치열하게 붙들고 있는 그의 소설이 더 깊고 넓은 공감의 지점을 만들어내는 이유다.

문단을 떠들썩하게 할 만한 데뷔는 아니었어도 이은정 작가는 쉬지 않고 성장했으며, 천천히 작가가 되었다. 그가 오랜 시간 차곡차곡 쌓아 올린 문장들은 어느덧 여덟 편의 소설로 모였고,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이란 표제를 달고 세상에 나왔다. 부서지기 쉬운 삶을 아슬아슬 살아내는 사람들의 내밀한 삶을 비추며 희미한 별 하나 찾아지지 않는 ‘연탄 같은 하늘’을 이고서 다만 오늘을 살아갈 뿐인 모두에게 진한 위로를 보낸다.




제작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은 비틀린 사랑으로 시작된 관계가 맹목과 집착으로 나아가 한 가족을 폭력의 극단으로 몰아가는 이야기다. 미진과 미주 자매는 아버지의 폭력에서 기인한 부모의 불화를 지켜보며 자랐다. 불안과 슬픔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자매의 영혼은 위태롭기 짝이 없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폭력이 난무하는 가정, 그 모습을 그려내는 작가의 묘사가 현장을 목도하는 듯 생생하다.


“묵직한 어떤 물체가 왼쪽 벽에 부딪히면 곧이어 사기 재질의 어떤 것이 오른쪽 벽에 부딪혀 쩍 하고 소리를 냈다. 씨발년이 왼쪽 벽에 부딪히면 개새끼가 오른쪽 벽에 부딪혔다. 옷 찢어지는 소리가 들리면 뺨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죽어라’와 ‘죽여라’가 안방에서 합창하며 클라이맥스를 찍었다.”

p. 52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 중에서





엄마의 상처는 고스란히 딸들에게 전염되고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 “같이 살면 안 되는 사람들”도 있다면 그들이 완벽하게 헤어질 수 있는 방법이란 과연 무얼까. 우발적인 듯하지만 필연에 가까운 폭력으로 이들은 마침내 가장 완벽한 이별을 맞이한다. 담담한 서사에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담아 독자를 서늘한 충격에 빠뜨리는 문제작이다.

「잘못한 사람들」 역시 사소하고 우연인 듯한 사건이 점점 복잡하게 얽히면서 파국에 이르는 과정을 그린다. 새벽녘 친구 세호의 전화를 받고 술자리에 불려 나온 ‘나’는 이 시대의 전형적인 소시민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직장에서 잘린 친구의 신세 한탄이려니 했던 술자리는 점점 이상한 분위기로 흘러간다. 자신이 어쩌면 폐지 줍는 할머니를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세호의 고백 때문이다. 친구 세호에 내재한 분노가 폐지 줍는 할머니에 대한 폭력으로 표출된 것이다.


“나는 잘못 하나도 안 했는데 어릴 때는 처맞고 커서는 회사도 잘리고 그러는데, 왜 잘못인 줄 알면서도 잘못하고 사는 거야? 어? 잘못인 줄 알면 안 그래야지! 어?”

p. 20 「잘못한 사람들」 중에서




여자는 와인잔에 담긴 소주를 단번에 모두 들이켰다. 휴지로 손가락과 입가를 닦아내고 입안에 남은 음식물을 혀끝으로 걷어내던 여자는 몹시 신중해 보였다. “헤어지자……고?” 여자가 중얼거렸다. 여자의 손아귀에서 휴지가 구겨지고 나서야 여자는 결심한 듯 말했다. “서른 대만 맞아. 그럼 헤어져줄게.”

「피자를 시키지 않았더라면」 중에서


어릴 때는 어른들이 무서워서 솔직하지 못했고, 어른이 되어서는 솔직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솔직하지 않았다. 얼마든지 솔직한 척할 수도 있는 게 어른이었고, 때론 진실보다 진실처럼 포장된 거짓이 신뢰받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나는 혼란스러웠다.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사람들이 믿는 쪽을 택하고 살았다.

「친절한 솔」중에서


예민하게 바라보던 여자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더럽고 천박하다는 양 바라보던 시선과 다 알고 있으니 까불지 말라는 듯 얄팍한 미소. 도리질할 때 헝클어지던 여자의 머리카락마저 내 안에 어떤 수치심을 불러일으켰다. 여자가 그럴수록 나는 더 숨고 싶었다. 여자의 아들과 함께. 당신에게서 영원히.

「숨어 살기 좋은 집」중에서



구모룡 문학평론가는 이밖에 도시의 남루한 골목에서 발생한 우발적 폭력은 ‘나’의 안온한 삶을 일거에 흔들어놓는다. 개인의 분노에서 비롯된 듯한 이 폭력은 “사회의 병적 징후를 내포하며, 연관이 없는 인물이 희생양이 되는 구조적 아이러니를 보여준다.”고 소설평을 내놨다.

또 ‘도시 탈출’을 모티브로 한 「숨어 살기 좋은 집」, ‘귀향’을 모티브로 한 「그믐밤 세 남자」 「개들이 짖는 동안」 등도 작가의 서정적 문장과 특유의 섬세함이 반짝이는 소설이라고 평가했다.

“모두가 상처받고 고통을 감내하는 현실을 회피하지 않는” 이은정 작가로 인해 우리는 비로소 생을 비추는 “한 가닥 빛을 찾아낸다.”

이 한 권의 책에 실린 소설들로 우리는 이 작가를 한국문학의 뜨거운 신예로 기억하게 될 것이라며 작가의 소설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작가는 이 소설들을 쓰면서 끊임없이 떠올린 단어는 ‘가해자’와 ‘피해자’였다. 이분법으로 말해도 되는 것인지 깊게 고민해야 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주거나 받아야 했던 평범하지 않은 상처들은 생각보다 너무 많았고 나도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다. 매번 내가 피해자이기만 했는지 생각하는 내내 몸이 아팠다. 내가 찾은 어설픈 답을 여덟 편의 소설로 남긴다. 평화롭고 무해한 세상에서 나와 당신, 그리고 아이들의 영혼이 안전했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소설이 아니라서 미안하다고 밝혔다. 치열한 '쓰는 삶'을 택한 작가는 작품 성격만 말한 것이다. 작가의 말을 통해 겸양을 보인다. 아름다움은 작가가 말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독자가 작품을 읽고 표현할 일이다. 작가는 작품으로 남는다는 말이 생각난다.

이 작품을 읽은 독자는 생각해낼 것이다. 어려운 삶에서 찾아낸 아름답고 빛나는 '사랑스러운' 작품이라고.


저자 : 이은정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성장했다. 단편소설 〈개들이 짖는 동안〉으로 2018년 동서문학상 대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2020년 아르코 문학창작기금을 수혜했다. 일간지에 짧은 에세이를, 계간지 《시마》에 ‘이은정의 오후의 문장’ 코너를 연재 중이다. 저서로 산문집 《눈물이 마르는 시간》과 《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공저)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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