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시민들
백민석 지음 / 열린책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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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대체로 부정적인 인식이 심어져 있는 나라다. 구 소련 때문이다. 러시아 혁명(1917) 후 제정 러시아는 붕괴되고,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소련)이란 이름으로 국호를 바꿨다. 공산주의, 사회주의 체제 국가의 원조이다. 우리와 국경을 접하고 있지만 조선과 구한말 대한제국은 주로 중국(명, 청)과 교류했다. 이에 러시아는 우리나라에 미치는 정지, 외교적 영향력이 약했다. 그러나 우리가 일제에 의해 강제 병합되기까지는 외교와 정치적 이유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려 했다. 이후 우리는 세계의 냉전시대에 따라 분단시대에 접어들었고, 북한에 군사적, 외교적 원조를 해주고 북한을 공산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물론 제 2차 세게대전의 승전국으로서의 자격이었다. 지금의 러시아는 1991년 12월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The 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 약칭 USSR, 소련蘇聯)이 해체되면서 구성된 독립국가연합(CIS)을 구성한 공화국의 하나로 그 주축이 되는 국가이다. 면적은 약 1710만㎢로 구소련의 약 4분의 3에 해당되고, 인구는 약 1억 4242만 명(2015년 현재)이다. 며, 수도는 모스크바이다.

 

 

러시아연방공화국 이전의 구소련은 1917년 10월 볼셰비키혁명에 의하여 탄생된 사회주의 국가로서 정식명칭은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이었다. 유럽과 아시아 북부지역에 걸쳐 있었으며, 면적은 세계 제1위로서 2240만 2200㎢이었고, 인구는 세계 제3위로 2억 8450만 명(1988년 1월 기준)이었다. 구 소련은 1985년 3월 고르바초프 등장 이후 이른바 개혁(페레스토로이카)과 개방(글라스노스트)이라는 목표를 내걸고 권력구조, 경제관리, 대외정책 등에서 많은 변화를 보여왔다. 이와 같은 목표를 내건 고르바초프의 6년에 걸친 개혁은 무질서, 범죄의 증가, 지식인 이탈, 생산격감, 민족분리주의 요구 증가 등을 가져왔으며, 이로 인하여 일어난 8월 쿠데타는 1991년 12월 25일 소비에트사회주의연방을 공식적으로 해체시키고 옐친이 이끄는 러시아연방공화국을 출범시켰다.

한편, 18세기 초부터 1917년 러시아 혁명까지의 러시아를 ‘제정러시아’라고도 한다. 정식으로는 1721년에 표트르1세가 ‘황제’, 즉 임페라토르(imperator)라는 칭호를 사용한 시기부터 1917년 2월 혁명으로 니콜라이 2세가 퇴위하기까지를 말한다.

 

 

우리와 국교 정상화(1990년) 이후 교류가 다시 이어졌지만 구 소련은 우리에게 매우 어두운 그림자만 남겼다. 분단, 전쟁, 공산화 등 북한, 중공(지금의 중국)과 함께 '갈 수 없는 나라'였기 때문에 러시아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인식이 좋을 리 없다. 전쟁 이후 태어난 대부분의 대한민국 사람들은 반공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공산 체제의 소련, 중공, 북한에 대한 비판 교육을 많이 받아왔다. 구 소련 붕괴로 탈냉전 시대라고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분단의 이유가 이념의 피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에 대해 좋은 인식으로 바뀌기는 쉽지 않을 터다. 그래도 국교 정상회 이후에는 정식으로 비자나 여권 발급이 쉽기 때문에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미지의 땅에 대한 설렘 때문이다. 또 러시아는 예술적으로도 대문호와 위대한 음악가, 화가, 무용가 등을 배출한 예술적인 측면에서는 서양 어느 나라에 비해도 뒤지진 않아 거기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갖고 있는 사람은 많다. 또 샹페테르부르크 같은 멋진 도시도 있고, 일주일간을 달려야 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등은 우리의 낭만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영화나 다큐 영상물을 통해 어느 정도 모습이 드러난 러시아는 이렇게 우리 앞에 어렵게 다가선 나라다.

 

 

이 책은 소설가 백민석의 여행 산문집이다. 저자 백민석은 홀로 러시아의 도시들을 가로지른 3개월의 시간을 80여 편의 짧은 단상과 120여 장의 사진으로 기록했다. 사진을 훨씬 많이 찍었지만 이 책에 실린 사진의 숫자를 말한다. 사진을 보고 있으면 사진작가임에 틀림없다. 사진의 중요한 포인트를 잡아내는 데 익숙한 듯 보인다. 사진 구도가 독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고 있으며 새로움을 강조하면 아낌없이 클로즈업 시키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그를 소설가 겸 사진작가라고 하는 것 같다. 사실 저자는 여행을 시작하기 전부터 〈러시아의 시민들〉에 대해 써보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때문에 이 책이 탄생했을 것이다. 그 타지에서 보냈던 시간들을 자유롭고 솔직하게 문자와 이미지로 남겼다. 일반인들이 보고 느꼈을 감각과 소설가 겸 사진작가로서 느낀 감정과 감각은 다소 다를 터, 아름다운 것은 아름답게, 음산한 것은 으스스한 감정으로 들여다보기만 하면 된다. 혹시 감정이 떨어질까 저자는 간단한 설명도 잊지 않으니 책 한 권에 담긴 의미는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 여행을 꿈꾸는 사람이나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내 인생의 책'이 될 수도 있으리라 예상해본다.

 

 

블라디보스토크가 지리적으로 일본의 도쿄와 중국의 북경보다도 가까이에 있음에도 서양 문화에 속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정치적, 역사적으로 교류가 없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러시아는 멀게만 느껴진다. 이 책 『러시아의 시민들』의 저자 역시 "러시아는 냉전 시절의 이미지로 남아 있으며, 그나마 할리우드 영화에서 그리는 이미지로 러시아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산문을 통해 만난 러시아의 다양한 풍경과 분위기, 도시와 사람들 틈에서 KGB, 혁명, 레닌 등 머릿속에 강하게 자리 잡았던 〈과거의 남루한 편견들〉이 많이 깨지는 경험을 했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직접 가보지 않으면, 영영 그 실체를 알지 못하고 지나가 버릴 수도 있는 나라'라고 말하는 저자는 어느 도시엘 가나 웃기를 잘하고, 외국인에게 친절하고, 주변을 엄청 예쁘게 꾸며놓고 사는 사람들을 만났다. 이 꾸밈 없고 담백한 여행기를 읽다 보면 그와 함께 러시아의 곳곳을 다니며 그가 만났던 사람들과 도시와 자연과 마을을 같이 본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열차와 버스와 도보로 러시아를 경험한 그의 소박한 여행 수단과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약간의 무덤덤한 시선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탓이기도 하다. 추운 나라에서 찍은 그의 애정이 담긴 흐뭇하고 따뜻한 사진들을 보면, 다음 여행지로 러시아를 추가하게 될 것 같다.

 

 

이날 또 하나 깨달은 것이 있었다. 니즈니의 크렘린을 둘러보다가 산책을 나온 부녀와 마주쳤다.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묻고는 나는 무릎을 굽혀 자세를 낮췄다. 인물에 위엄을 더하고 싶을 때 나는 종종 아래쪽에서 사진을 찍는다. 그런데 내가 자세를 낮추자 아이의 아빠도 무릎을 굽혔다. 나는 무릎을 더 굽혔고 그러자 그도 더 자세를 낮췄다.

그러다 결국 나는 한쪽 무릎을 땅바닥에 대고 꿇었다. 그러자 아이 아빠도 사진처럼 무릎을 완전히 굽히고 쭈그리고 앉은 자세가 되었다. 그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스치고 지나갔다. 나도 당혹스러웠지만 더 낮출 자리가 없으므로 그제야 셔터를 눌렀다. 사진은 그렇게 두 당혹스러움 사이에서 찍힌 것이다. 그래도 그는 끝까지 미소를 표정에서 지우지 않았다. 이 일로 나는 잠시 혼란스러웠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무릎 꿇는 행동이 러시아인의 습속에는 어딘가 온당치 않은 일일 수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이를테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무릎을 꿇는 건 그저 사진을 찍기 위한 것일지라도 온당치 않은 것이다. 앞서 「부모의 표정을 행복하게 바꾸는 방법」의 도망가는 아이의 아빠도, 무릎을 꿇은 나를 따라 자세를 낮추다가 쭈그리고 앉게 된 것이었다. 내가 자세를 낮출 때마다 표정이 굳던 러시아인들이 기억났다. 이날 이후로 나는 러시아인들의 사진을 찍을 때는 꼿꼿이 선 자세로 눈높이를 수평으로 맞추고 찍었다.

-p.180, 「눈높이는 평등하게」 중에서

 

 

횡단의 뜻은 '대륙이나 대양 따위를 동서의 방향으로 가로 건넘'이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끝에서 끝까지 6시간의 시차가 있다. 그 때문에 나는 모스크바에서 첫 기차를 탄 다음 중간 기착지에 내릴 때마다 손목시계의 시간을 새로 맞춰야 했다.

이처럼 횡단은 자신이 가로 건너는 시공과 물리적으로 접촉을 하는 일이다. 그곳에 직접 가보는 일이며, 시간과 공간이라는 현실의 제약을 순차적으로 가로질러, 그곳의 실재와 구체적으로 만나는 일이다. 그런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만남 속에서 여행자는 실존에 대한 현실 감각을 되찾고 세계에 육체성을,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다. (…) '횡단'은 그러므로, 자신이 가고자 하는 특정 지역과 그 지역에 이르는 경로를 실제적이고 구체적으로 체계화하려는 의지에서 나온 행위, 실증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러시아 여행도 그랬다. 직접 횡단해 보지 않았다면, 내가 러시아에 대해 가졌던 많은 허황된 편견들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실증은 편견을 깨는 데 필수적인 행위다.

어떤 여행지든 여행자에게 그곳은, 여행자가 다닌 만큼 새롭게 다시 생성된다. 나는 열차를 타고 시베리아를 횡단하기도 했지만, 도시에 내려서는 걷고 또 걷는 식으로 도시들 또한 횡단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다른 누군가가 보여 주고 들려준 러시아가 아니라, 나만의 또 다른 새로운 러시아를 만들어 갖고 싶었다.

- p.291, 「횡단과 실증」 중에서

 

 

지금도 가끔 듣는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전람회의 그림'으로 유명한 무소르그스키의 흔적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또 백야의 러시아 음악을 좋아하는 독자로서는 러시아 땅에 발을 내딛는 순간 그 애절하고 우수에 찬 목소리의 가수가 곳곳에 살고 있으리란 환상도 떠올린다.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푸시킨 등 문호들과 영화 속의 '닥터 지바고'의 설원 등 독자의 로망을 한껏 내뿜는 러시아에 대한 갈망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 준 소중한 책이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열차 안에서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읽고 싶고 푸시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읊조리고 싶다. 동토의 왕국으로만 각인된 러시아는 수많은 예술가들의 영혼이 깃든 땅이기도 하다.

 

저자 : 백민석

 

그로테스크한 상상력으로 세상의 모순을 파헤치고 분노의 감수성을 일깨워 독보적인 존재감으로 한국 문학의 새로운 경향을 이끌어 온 소설가. 1995년 『문학과사회』에 「내가 사랑한 캔디」를 발표하며 소설가 활동을 시작했다. 대표작으로는 소설집 『16믿거나말거나박물지』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 『혀끝의 남자』 『수림』, 장편소설 『헤이, 우리 소풍 간다』 『내가 사랑한 캔디/불쌍한 꼬마 한스』 『목화밭 엽기전』 『죽은 올빼미 농장』 『공포의 세기』 『교양과 광기의 일기』 『해피 아포칼립스!』 『버스킹』 에세이 『리플릿』 『아바나의 시민들』 『헤밍웨이: 20세기 최초의 코즈모폴리턴 작가』가 있다. 2017년 [김현문학패]를 수상했다. 그리고 사진을 찍는다. 그의 작품에는 대부분 소년이 등장한다. 어른인 등장인물 역시 심리적으로는 소년인 상태의 어른들로 보인다. 현실의 인물을 기준으로 볼 때 기괴한 인물을 등장시킨다고 평가받는 그는, 스스로의 표현대로 ‘반사회적’ 경험으로 인해 날렵하면서도 냉소적인 문체를 구사한다. 이러한 문체는 힘 또는 권력에 대한 비판의 의미로 이해되기도 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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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말 - 아픈 몸과 말의 기록
홍수영 지음 / 허클베리북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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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 ‘디스토니아’라는 근육병이 찾아온 뒤 이 책 『몸과 말』의 저자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사전에 따르면 디스토니아(dystonia)란 근육 긴장 이상 증세를 보이는 병으로서 몸의 한쪽 또는 그 이상에서 발생하는 불수의적이고 지속적인 근육 수축이 특징이다. 빈번하게 꼬이며 반복적인 운동 또는 비정상적인 자세를 발생시킨다. 이 때문에 근육 긴장 이상을 가진 환자들은 영향을 받은 신체 부위에서 팽팽함, 경련, 비틀림 같은 비정상적인 자세를 가진다. 영향을 받은 몸의 부위에 장애 또는 기능의 손상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근육 긴장 이상의 운동 범위는 무정위 운동에서부터 빠르고, 순간적인 근간대성 경련까지 다양하며, 때로는 율동적이고 떨림을 동반한다. 근육 긴장 이상 운동은 동작에 의해 악화되는 경향이 있다. 목의 운동 이상은 가장 흔한 형태 중 하나로, 머리의 비틀림 또는 경련, 머리 떨림, 경부 통증 등이 포함된다.[네이버 지식백과]

 

 

책에 따르면 제어할 수 없는 근육의 경련과 발성 장애는 말하는 일을 힘겹게 만들었다. 말하는 일이 어려워지면서 관계의 불균형과 소통의 단절이 시작됐다. 사람들은 저자의 ‘느린 말’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이 책은 ‘말하는 일’이 어려워진 저자가 장애에 대한 사회의 고정관념 속에서 ‘침묵’하며 조용히 빚어낸 고통의 기록이다. 저자 자신의 몸에 대한 정직한 증언과 보이지 않는 병증을 가진 몸을 향해 파고드는 의심, 경증과 중증을 나누며 끊임없이 아픈 몸을 위축시키는 사례들, 말이 어눌하다는 이유로 받았던 크고 작은 차별들이 기록되어 있다. 상상만 해도 엄청난 고통이 수반됐을 것 같고, 타인과의 소통이 어려워지면 결국 침묵 속에서 살아야 할 터 그 고통의 시간이 일반인이 당하는 고통의 수십, 수백 배에 이를 것으로 생각된다. 더욱이 희귀병인 데다 병의 원인도 아직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은 듯하다. 특효약이 없다는 뜻이다. 통증이 찾아오면 진통제나 주사 등 일시적 고통 완화 외에 방법이 없다면 치료 희망도 갖지 못한 채 하루하루 침묵과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한다. 책의 뒷부분에 나오는 저자의 기도문을 보면 고통과 치유의 희망이 엇갈리며 독자의 눈시울마저 붉게 물들인다.

 

 

저기 지하철 노약자석에 멀쩡해 보이는 20대 여자가 앉아 있다. 고개를 한쪽에 기댄 채, 해사한 얼굴을 하고... 이 책의 저자 바디에세이스트 홍수영이다. 14살 가을, 저자에게 근육병이 찾아왔다. 의지대로 몸을 움직이기 힘들어졌다. 목이 자꾸 곱아져 앞을 응시하는 일조차 어려웠다. 저자의 몸은 하루에도 수십 번 상태가 달라진다. 어떤 시간에 저자의 병은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제법 다부지고 씩씩하게 보인다. 그러다가도 곧 몸의 리듬이 사라진다. 근육병은 근육의 불수의적 경련과 기억력 저하 그리고 발성 장애를 가져왔다. 생각을 뚜렷하게 말로 정리해서 다른 사람과 대화 나누는 일을 어렵게 만들었다. 저자에게 대화는 높이뛰기보다 어렵다. 저자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보이지 않는 병증을 가진 몸을 향해 파고드는 판단과 의심, 경증과 중증을 나누며 끊임없이 아픈 몸을 위축시키는 장애에 대한 고정관념, 말이 어눌하다는 이유로 받았던 크고 작은 차별들 속에서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오랜 침묵의 시간 동안 저자가 가장 많이 한 일은 역설적이게도 말하기였다. 이는 목의 떨림과 안면 근육을 사용해서 ‘몸으로’ 하는 말하기와는 다르다. 저자는 ‘기도'로 말을 한다. 서로가 애써 무관해지려는 세상에서, 너의 기도가 나의 기도가 되지 않는 이곳에서 저자는 하나님과의 대화를 시도한다. 그녀에게 기도는 무언가를 구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과 대화하는 일이다. 저자는 하나님과 자신의 아픈 몸을 두고 이야기하며, 우리 사회가 ‘함께 겪는’ 방식으로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게 되길 기도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세상에는 이름 붙여졌거나 이름 붙여지지 않은 수많은 질병이 존재한다는 것과 사회의 지배적 이미지와 장애의 상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성찰의 노력이 없는 한 아픈 몸을 향한 섣부른 판단과 언어적 폭력은 계속될 수밖에 없음을 강조한다. 또한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아픈 몸들이 우리의 도처에서 억압을 견디며 연대의 마음들을 기다리고 있음을 글로써 외친다. 이 책은 우리가 어떤 아픔들 앞에서도 익명이 되지 말 것을 촉구하는 호소의 책이자, 가장 내밀한 고통은 결국 우리 모두의 고통임을 깨닫게 해주는 성찰의 책이다.

 

 

몸통이 앞으로 수그러지고 복부에 심한 통증이 온다. 똑바로 섰을 때 무게 중심이 발 안쪽과 발가락에만 실린다. 그러나 걷고 난 뒤는 다르다. 발바닥 전면이 고르게 땅을 딛고 있다는 느낌과 함께 목과 어깨가 가벼워진다. 일주일에 세 번, 한 시간 이상을 걷고부터 균형감각이 확연히 좋아졌다. 비록 앞서 말한 조용한 소란과 일체 무관한 일상을 누리는 건 아니지만 컨디션을 그나마 좋게 하게 위한 방법이랄까. 건강한 한나절을 능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링거액 같은 역할. 많이 걸은 날은 작은 동작에도 역동성이 생긴다. 나는 환자마다 치료에 있어 다른 접근법을 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p. 46)

 

얼굴 하나, 표정 하나를 갖고 싶어서 헤맸던 시간들. 경련이 웃음으로 변하고, 그 어떤 웃음도 내 것이 아니었던 시간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나를 떠나갔다. 나를 스치듯이 보고 스치듯이 사랑하려 했던 사람들. 그런 내게도 정말 뛸 듯이 기쁜 순간이 찾아오는데, 누군가가 헤어짐의 인사 뒤에 어색한 악수 대신 이 말을 건네줄 때다. “수영 씨, 우리 내일 만날래요?”, “다음 주에 또 볼까요?”(p.126)

 

 

질병이 나를 찾아온 뒤로 작디작은 것들의 소중함을 체감하는 삶을 살아왔다. 한순간이 얼마나 낭비될 수 없이 무거운지, 내가 건네는 한마디가 다른 이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깨닫는 삶의 연속이었다는 거다.(p.182)

 

나는 이번 책을 통해서 세상에는 이름 붙여졌거나 이름 붙여지지 않은 수많은 질병이 존재한다는 것과,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만들어낸 장애의 상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섣부른 오해에서 비롯된 언어적 폭력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다.(p.322)

 

저자 : 홍수영

 

바디 에세이스트. 기다리고, 듣고, 느리게 대답하는 사람. 약을 복용하면 근육의 수축과 떨림이 경감되는 ‘경증’의 근육병 환자로 살고 있다. 근육을 쥐어짜는 통증과 휴지기가 반복적으로 오기 때문에 몸 상태가 급작스럽게 바뀌며, 하루에도 몇 번씩 다른 몸과 만난다.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 날은 ‘사랑해요’와 ‘감사해요’라는 두 마디 안에서 소통을 완성한다. 그 두 마디는 건네지 못한 모든 말들이 담긴 귀중한 그릇이다. 보이지 않는 통증과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병증을 가진 환자들이 겪는 사회적 차별과 오해와 편견을 글로 풀어내고 물음을 던지는 작업을 하고 있다. 사랑을 주장하는 곳에 있는 배제, 다양성을 외치는 곳에 있는 선긋기를 마주하는 순간들을 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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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0분 나를 생각해 - 날마다 자존감이 올라가는 마음 챙김 다이어리북
레슬리 마샹 지음, 김지혜 옮김 / 미디어숲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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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누군가 "당신은 행복합니까?"란 질문을 던져온다면 행복하다고 바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 자신 있게 행복하다는 응답을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돈이 많은 부자도, 돈이 없어 먹고 사느라고 자신을 돌볼 틈 없이 사는 사람도... 이 책 『하루 10분 나를 생각해』는 우리가 업무용으로 사용하는 다이어리도 아니다. 그렇다고 에세이나 자기계발서 혹은 심리학 책에서 보여주는 위로의 글이 빽빽한 힐링 서적도 아니다. 굳이 서점식 분류에 의하면 '자기계발서'가 맞을 듯하다.

동화처럼 아름다운 문장과 나를 돌아보게 하는 질문들은 길 잃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마음이 부서진 나를 다독인다. 단순한 일기책이 아닌,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마법과 같은 ‘다이어리북’이다. 이미 미국과 영국의 많은 독자에게 찬사를 받으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하루 10분, 이 책과 함께 나를 사랑하고 기억하는 연습을 하면 무너진 자존감이 회복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다. 그저 독자는 저자의 안내에 따라 속마음을 털어놓기만 하면 된다.

 

 

물론 자기 마음을 있는 그대로 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감정이 마음을 휘두르기 때문이다.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울분, 소슬바람처럼 밀려오는 그리움, 싱그럽게 다가서는 설렘, 그리고 불쑥 들어가 와락 안아버리고 싶은 사랑. 다른 사람은 모르는 나만의 생각이고 마음인데도 살그머니 들여다보다가 화가 나 씩씩거리기도 하고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기도 한다. 그러니 이를 구체적인 글로 써 내려가는 것은 더욱 어렵다.

이렇게 자신과 대면하기 힘들어하는 이들을 저자는 다정한 목소리로 위로하며 내면의 길로 안내한다. 이 책은 도움이 될 메시지, 영감을 주는 인용문,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고 사랑을 끌어내는 운동 등을 소개하며 따스하게 손을 잡고 희망을 불어넣어 준다. 읽고 쓰는 동안 자기비하가 줄어들고 자존감이 올라가고 내면에 집중하게 된다.

 

 

이 책 『하루 10분 나를 생각해』는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로 구성돼 있다.

Spring 나에게 더 다가가기

Summer 나의 지지자가 되기

Autumn 나를 믿어주기

Winter 나를 아끼기

계절별로 한 장 한 장 읽으면서 채워가다 보면 자존감도 높아가고 스스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키우기에 충분하다. 다음 한 문장이면 이 책 한 권을 충분히 읽은 셈이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을 기록하고, 묵상하고, 기억하라."

 

 

저자와의 마음 챙김 여행은 단계적으로 이루어진다. 잘못한 것이 있다면 용서하고 서툰 것이 있다면 이해해 주고 외롭다면 자신을 따스하게 안아줄 수 있게 해 준다. 그 과정에서 독자는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를 마침내 받아들인다. 그러고 나면 이제는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선택의 순간이 다가온다. 두려움과 기대가 교차하며 망설이는 자신을 발견한다. 결정한 이후에도 자신을 의심한다. 저자는 자신을 믿고 선택할 수 있게 하며 다음에는 끝없는 신뢰로 스스로를 응원할 수 있게 이끈다. 나 자신이 나의 든든한 지지자가 된다면 세상의 어려움은 한발 물러서고 우리에게 고개를 숙일 것이다. 우리는 조용히 상상하며 자신의 마음을 이 다이어리에 털어놓고 저자의 손을 잡고 이끄는 대로 마음의 여행을 떠나기만 하면 된다.

 

 

요즘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같은 SNS에 자신의 일상을 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가장 좋은(?) 사진과 함께 자신을 뽐내는 이런저런 글을 올린다. 서로 경쟁하듯 나는 너희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자랑하고 싶어 안달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힘든 하루에 치여 이리저리 멍든 가슴을 부여안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자신은 상처받지 않았고, 정말 괜찮다며 오늘도 진짜 속내를 숨긴 채 부지런히 스마트폰을 꺼내 든다. 어떻게든 누군가의 공감이 그리워 하는 행동이지만 차가운 디지털 공간은 못내 허무하고 쓸쓸하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외부로 향한 시선을 돌려 자신을 들여다보라고 말한다. 자신을 가장 사랑했던 순간을 떠올려보라고 다독인다. 그리고 그 순간을 풀어낼 수 있는 여백을 준비한다. 글을 잘 못 쓴다는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 그림으로 표현할 수도 있고 점 하나만으로도 마음을 온전히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글자, 한 단어, 한 문장에 담을 진실한 마음만 생각하면 된다.

 

 

이 책은 우선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찾기 위한 실용서로 보면 된다. 또 마음을 건드려 사랑과 기쁨을 가져다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들은 자기애의 방법을 찾기 위한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이 되어 보기도 하고,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낯선 곳으로 여행하는 상상도 해 보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좋아했던 노랫말을 떠올리기도 하며, 짧은 시간이지만 조금 더 나를 알아가고 기억하는 시간을 갖게 유도한다. 중간중간 아름다운 문장과 나를 돌아보게 하는 질문들을 통해 상처받거나 지친 마음을 위로하고, 다독여준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그리고 기억하는 연습을 하게 만들어준다. 삶의 변화는 오늘을 기록하고 자신을 기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누구든 저자가 던지는 질문에 대답하고 주어진 여백을 솔직하게 채우다 보면 자신의 신념과 행동에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마법을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새해 새 출발을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한 권쯤 갖고 안내대로 따라하면 좋은 길 안내를 받을 터다. 독자는 확신한다. 자신을 소중하고 매우 가능성이 높은 사람으로 만들고 어떤 것이든 원한다면 이뤄질 것이라고...

 

 

저자 : 레슬리 마샹(Leslie Marchand)

 

임상사회복지사로서 25년간 활동한 전문가이며 TEDx의 연사이자 SoyoCo Wellness 설립자이다. 그녀는 자신의 블로그와 www.soyoco.org의 온라인 강좌를 통해 개인의 건강, 전문적인 자기관리, 자신을 새롭게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방법에 대해 글을 쓰고 가르친다. 그 밖에도 요가 강사와 공인 생활코치로 건강, 긍정의 심리학, 자기계발, 기업가정신에 관한 최신 연구, 책, 기사 등을 읽으며 ‘자유’ 시간을 보낸다. 지은 책으로 『하루 5분 행복 일기(The 5-Minute Happiness Journal)』가 있다.남편과 함께 텍사스에 있는 유기농 목초지에서 아이 넷, 7마리의 개, 수십 마리의 돼지, 수백 마리의 칠면조, 수천 마리의 닭 그리고 땅에서 자라는 생산물과 더불어 살고 있다.

 

역자 : 김지혜

 

근사하고 멋진 어른이 되고 싶다. 내 마음이 향하는 곳, 내가 하고 싶은 일, 내 삶의 목적에 집중하며 자기에게 서툰 어른보다 자기 삶에 충실한 어른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누구의 인정도 아닌, 내가 나로서 바로 설 때 비로소 빛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믿는다. 저서로는 〈꿈꾸는 십대가 세상을 바꾼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및 번역서 〈이토록 재미있는 수학이라니〉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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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수필을 평하다
오덕렬 지음 / 풍백미디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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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수필은 창작문학'이라는 저자 오덕렬의 평론집이다. 『창작수필을 평하다』를 읽어보면, ‘붓 가는 대로’라는 잡문론을 왜 버려야 하며, 어떻게 수필의 문학성을 높여, 수필을 창작문학으로 자리매김할 것인지에 대한 명쾌한 답을 얻을 수 있다. 평론가이자 수필가인 저자 오덕렬이 21편의 〈창작 · 창작적 수필〉을 엄선하여 평을 하면서 애써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수필은 창작문학이라는 것이다. 어느 순간 수필, 에세이, 산문, 생활수기, 신변잡기 등 그 명칭이 혼용되면서 수필은 정체성에 혼란을 겪기도 했다. ‘붓 가는 대로’의 잡문론이 한 세기를 지배한 결과다. 이에 수필가 오덕렬이 직접 21편의 〈창작 · 창작적 수필〉을 발굴, 거기에 현대문학 이론에 근거한 평문을 붙인 것이다.

이 때문에 『창작수필을 평하다』는 한국 수필계 최초의 〈창작 · 창자적 수필〉 평론집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책에서 언급된 21편의 수필은 박연구 「외가 만들기」, 유주현 「탈고 안 될 전설」, 반숙자 「백일몽」, 정채봉 「스무 살 어머니」, 피천득 「수필」 등 각각 〈창작 · 창작적 수필〉의 성격을 잘 나타내는 대표적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수필은 〈에세이(수필)〉 → 〈창작적 수필(에세이)〉 → 〈창작수필(에세이)·산문의 詩〉로 진화 · 발전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런 진화 · 발전 과정에서 진화의 특징을 말해주는 작품이 나올 때마다 ‘작품평’을 해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21편의 작품과 그 평을 음미하다 보면 수필의 진화 과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기존 우리가 배운 수필에 대한 지식을 잠시 옆자리에 놔두고 배움의 자세로 이 책을 경청하고 싶다.

 

 

저자는 어떤 문제작이 발표되면 그 작품을 평해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그 작품에 대한 평자(評者)의 도리고 의무다. 그런데 우리 수필계에는 〈창작수필〉 평론 활동을 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수필 문단의 불행 중 하나다. 이에 창작수필 평론가인 저자가 〈창작 · 창작적 수필〉 21편에 대해 개별 작품 평문을 쓰고 작품의 질을 높였다. 단순한 덕담 수준의 평이 아닌, 현대문학 이론에 근거한 평문으로서의 격을 갖추어 평론가가 해야 하는 '작품에 대한 정확한 평'을 한 것이다. 이 일은 수필계 최초의 평론이며 이 글들을 모아 〈창작 · 창작적 수필〉 평론집을 냈다.

저자에 따르면 문학은 구체적인 형상(形象)이라 했다. 어떤 정서나 서사, 감정, 이성 등 인간이 생각해내는 추상을 형상(形象)화 시키는 게 문학이란 말로 읽힌다. 즉 예술가의 생각은 없는 것을 있게(BEING·EXIST)는 만들 수 없다. 다만 문장을 가지고 어떤 형상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렇기에 비유(은유·상징)를 창작해야 하는 것이다. 아직도 ‘붓 가는 대로’를 주장하고 가르치는 일이 왕성하고, 세상은 여전히 수필을 ‘신변잡기’라 한다.

 

 

책에 따르면 '한국 산문의 詩 문인협회'는 〈‘붓 가는 대로’를 공개 부정, 폐기〉 및 〈수필의 현대문학 이론화 운동〉 선언식을 지난 2015년 가진 바 있다.소설이 “소설(小說)이란 잔 나부랭이의 속된 말”(정주동: 《고대소설론》, 형설출판사, 1981. 11쪽.)이란 원뜻을 버리고 소설이란 명칭만 취하면서 현대문학의 길을 택하여 지금의 위치를 차지하였듯이, 수필 역시 수필(隨筆)이라는 명칭만 취하고, 현대문학 이론에 기초한 창작론을 받아들여야 한다. 다행히 수필산문의 ‘창작적 변화’를 연구해온 선각자들이 있어서 지금은 수필이 〈창작·창작적 수필〉 시대를 맞아 산문의 꽃인 〈산문의 詩〉까지 진화하여 제3의 창작문학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동안 1세기가 넘게 이론 부재의 장르로 수필은 제대로 발전을 못했다. 타 장르에 비해 100년이 늦은 것이다. 이 책을 그동안 세간의 비아냥거림을 잠재우고 수필 쓰는 사람들을 ‘우물 안 개구리’에서 창작의 대명천지를 보게 할 것이다. 수필 평론가, 수필의 현대문학 이론화를 공부하는 수필가, 수필교실 선생님, 수필을 공부하는 문학도는 물론 수필과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고 저자는 밝혔다.

 

 

1. 춘희 엄마의 이야기로 풀어낸 동백꽃 시정(詩情) / 정태헌 「동백꽃」

2. 허구적 사실의 소재 형식 / 목성균 「소년병」

3. 조각보 구성법에 의한 창작 / 피귀자 「조각보」

4. 은유적 동일성의 형상화 / 이현재 「유리창」

5. 액자 구성법의 창작 / 반숙자 「백일몽」

6. 여심(女心) 수필의 한 전형 창조 / 은옥진 「내 마음 깊은 곳에」

7. 한 형식 창조의 구성 작품 / 김선화 「순환(順換)의 톱니」

8. 한 문장 수필 형식의 실험 / 선정은 「용(龍)은 산을 넘고」

9. 대화적인 독백체 문장 세계 / 김광 「동굴洞窟에게」

10. 사투리 의물화의 독백체 언어 세계 / 김연분 「미꾸라지의 변」

11. 의물화 형식의 문장 세계 창작 / 권현옥 「나는 손톱입니다」

12. 아까시나무를 의물화한 창작작품 / 김영곤 「내가 사랑 받는 이유」

13. 사투리 문장법의 의인화 / 전미란 「하루살이」

14. 시적 정서의 산문적 형상화 / 정경희 「그 텁텁헌, 그 끈끈헌」

15. 상상력으로 사물과의 대화를 통한 〈소년기〉를 형상화 / 김열규 「어느 바다의 少年期」

16. 상상력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창작적인 산문 / 변해명 「섬인 채 섬으로 서서」

17. 구성적 비유의 존재론적 형상물 창작 / 장금식 「따뱅이」

18. 서사 구성법에 의한 창작적인 산문수필 / 박연구 「외가 만들기」

19. 수필서사의 창조적 구성법에 의한 〈창작적인 산문수필〉 / 유주현 「탈고(?稿) 안 될 전설(傳說)」

20. 운문(시) + 산문(수필) 양식의 작품 / 정채봉 「스무 살 어머니」

21. 피천득의 「수필」은〈 수필〉이 아니고 〈산문의 詩〉다 / 피천득 「수필」

 

 

이 책의 마지막 21번째 평론은 금아 피천득의 「수필」에 평문을 붙인 것이다. 어떤 이는 피천득의 「수필」을 ‘수필로 쓴 수필론(隨筆論)’이라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그냥 ‘수필’ 작품이라 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수필이 아니라 시(詩)라고도 한다. 이에 오 작가는 지금까지 논의되었던 피천득의 「수필」에 대한 자료를 정리하고 소개하면서 “피천득의 「수필」은 〈수필〉이 아니고 〈산문의 시〉다.”고 결론짓는다. 수필문단에서 피천득의 위치를 폄훼하는 것은 우리 수필문학의 전반을 폄훼하는 우를 범할 수 있으리라 독자는 생각한다. 그만큼 지난 세기 우리 수필문학계에서 피천득을 뛰어넘을 만한 수필가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독자의 수필문학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부족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수필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독자의 생각에 별반 반기를 들지 않으리라 믿는다. 수필이란 문학도 사실 학교 다닐 때 교과서를 통해 그의 글 「수필」을 처음 읽고 알았다.

그리고 시, 소설, 희곡으로 대별되는 문학에 대한 인식으로 수필은 늘 뒷전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안타까운 면도 없지 않다. 이 책 『창작수필을 평하다』 저자도 이 점에 있어서는 독자와 인식을 같이하는 것 같다. 사실 수필은 문인들의 등용문으로 지난 세기 자리잡았던 각 신문사 신춘문예에도 수필은 자리가 없었다. 철저하게 배제돼 온 것이다. 이젠 우리도 수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때라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한다.

 

 

참고로 독자는 어렸을 때 교과서를 통해 배웠던 피천득의 '수필'이란 제목의 글 일부를 소개한다. 그 다음글은 사전적 의미의 수필이다.

"수필(隨筆)은 청자 연적(靑瓷硯滴)이다. 수필은 난(蘭)이요, 학(鶴)이요, 청초(淸楚)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女人)이다. 수필은 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 속으로 난 평탄(平坦)하고 고요한 길이다. 수필은 가로수 늘어진 포도(鋪道)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길은 깨끗하고, 사람이 적게 다니는 주택가(住宅街)에 있다. 수필은 청춘(靑春)의 글은 아니요, 서른여섯 살 중년(中年)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며, 정열(情熱)이나 심오한 지성(知性)을 내포한 문학이 아니요, 그저 수필가(隨筆家)가 쓴 단순한 글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통칭하는 에세이(essay)는 중수필(formal essay), 미셀러니(miscellany)는 경수필(informal essay)이라 한다. 전자는 어느 정도 지적(知的)·객관적·사회적·논리적 성격을 지니는 수필을 말하며 후자는 감성적·주관적·개인적·정서적 특성을 가지는 신변잡기, 즉 좁은 의미의 수필을 말한다. 요즈은 경중을 가리지 않고 에세이로 불리우는 것 같다. 중수필의 부재 탓인지, 경수필의 확장 탓인지 모르지만. 『시사상식사전』에 따르면 영어의 essay는 프랑스어의 essai에 그 기원을 둔다. 프랑스어의 '에세(essai)'는 '시도' 또는 '시험'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이 말은 '계량(計量)하다' '음미(吟味)하다'의 뜻을 가진 라틴어 '엑시게(exigere)'에 그 어원을 두고 있다.

 

 

저자는 창작수필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합의문을 결의했다고 지난 저서 『힐링이 필요할 때 수필 한 편』에서 소개한 바 있다. 그 내용을 보면,

하나, 에세이의 시조는 몽테뉴이고, 창작에세이는 찰스 램에서 싹텄다. 두 장르가 함께 발전하도록 힘쓴다.

둘, ‘붓 가는 대로’는 잡문(메모)론으로 단 한 줄의 창작론도 없다. 이에 우리는 이를 공개 부정, 폐기한다.

셋, 창작문예 수필문학이 제3의 창작문학이 되면서, 이제 변방문학 시대를 청산하고 문학의 중심부에 서게 될 날을 기대한다. 제3의 창작문학은 창작의 마루에서 <산문의 詩>로 태어날 것이니, 작품 창작과 이론 개발에 온 힘을 쏟는다.(p. 291)

기발한 아이디어다. 또 저자의 수필에 대한 애정과 관점을 드러내는 것으로 다른 수필집에서 볼 수 없는 수필문학론이다. 저자는 이 글에서 수필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독자는 저자의 수필이나 비평을 평할 수준이 못 되고, 새로운 수필 문학의 움직임에 응원을 보낸다. 아니, 저자의 주장대로라면 이미 우리 수필문단은 새로운 길에 들어섰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오랜만에 좋은 글, 좋은 책, 좋은 수필가를 만난 즐거움이 크다. 그리고 그의 글 중 기억에 남겨둘 몇 개 문장만 소개한다.

 

「소년병」은 회상 기억으로 쓴 창작 작품이다. 그러니까 망각의 강을 건넌 사실의 소재를 작품의 제재로 삼았다는 말이다. 허구적 사실의 소재―변질·왜곡된 정서적 경험 기억의 잔상을 창조적 구성법으로 작품화했다. 창작문예수필의 형식인 〈허구적 사실의 소재 형식〉의 전범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 「허구적 사실의 소재 형식」 중에서

 

창작 작품을 읽는 사람은 작가가 창작한 상상력[허구]의 세계를 감상하려는 것이고, 에세이를 읽는 사람은 허구가 아닌 사실에 관한 작가의 생각을 읽기 위해서 에세이를 읽는 것이다. 그렇다면 창작은 창작대로 분명한 창작의 모양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고, 일반 산문문학은 그것대로 분명하게 생각을 짓는 문학의 논리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 「한 문장 수필 형식의 실험」 중에서

 

창작문예수필의 태생적 특성은 창조적 실험 문학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개념은 몽테뉴의 에세이 개념인 ‘시도하다’ 혹은 ‘시험하다’에서부터 시작된다. 실험은 현대문학이 추구하고 있는 최선의 창작 개념이다. 창작문예수필 작가는 이 같은 창조적 개념을 가진 문학을 하는 사실에 종래의 ‘붓 가는 대로라는 잡문(메모)론과는 비교 자체가 안 되는 문학적 자존심을 가져야 한다.

- 「한 문장 수필 형식의 실험」 중에서

 

 


저자 : 오덕렬

 

평생을 교직에 몸담은 교육자이자 수필가로, 방송문학상(1983) 당선과 <한국수필> 2회 완료추천(1990)으로 등단하였고, 계간 <散文의詩>를 통해 ‘산문의詩 평론’ 당선(2014)과 ‘산문의詩(창작수필)’ 신인상 당선(2015)으로 산문의詩 평론가와 산문의詩 시인으로 재등단하였다. 수필집 <복만동 이야기> <고향의 오월> <귀향> <항꾸네 갑시다> <힐링이 필요할 때 수필 한 편>, 수필선집 <무등산 복수초> <간고등어>, 평론집 <수필의 현대문학 이론화> 등을 펴냈다. 광주문학상과 박용철문학상, 늘봄 전영택 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모교인 광주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임 시절 ≪光高문학관≫을 개관(2007)하여, 현재 은사님 16분과 동문 작가 103명을 기념하고 있으며, 문학관 개관 기념으로 ≪光高 문학상 백일장≫을 제정하여 매년 5월에 광주전남 중·고생을 대상으로 백일장을 개최하고 있다. 2020년 현재 <전라방언 문학 용례사전>을 편찬 중이며, 수필의 현대문학 이론화 운동으로 <창작수필>의 문학성 제고와 <산문의詩>의 외연 확장에 힘쓰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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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모르겠고 내 집은 있습니다 - 지속 가능한 1인용 삶을 위한 인생 레시피
김민정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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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을 사서 이사하는 것은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일생일대의 기쁨이고 행복감이다. 특히 서울에서 내 집을 갖는다는 것은 아마 평생 벌어 한 번 있을까말까한 큰 성취다. 지나치게 비싼 집값 때문에 '거품' '부동산불패' 등의 수많은 신화와 논란 속에서도 결코 부동산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심지어 저금리 시대로 들어갈수록 집값은 오히려 뛰는 등 시장 논리로서도, 투기 논리로서도 풀기 어려운 숙제이기도 하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적절하지 못한 데도 원인이 있겠지만 인구 많고 땅 좁은 대한민국에서 서울 집값은 원래 비쌀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더욱이 산업화 시대를 거치고 강력한 중앙집권 정부가 개발 정책을 펴면서 자고 일어나면 뛰는 집값을 잡는 데는 한계가 있는 듯하다. 각종 세금 부과 정책이나 걍력한 규제 대책도 통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오늘이 제일 싸다던데…" 하는 우스갯소리도 나돌고 있다.

 

 

서울 시민들은 거의 절반 가량이 집 없이 남의 집을 빌리거나 임대료를 내고 산다. '내 집' 마련할 때까지 허리띠 졸라매고 사치품은 물론 생활 필수품마저 안 사며 집 사는 데 올인한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뛰는데 월급 받아 집 사는 것은 당초부터 불공정 게임일지도 모른다. 집 가진 사람은 자고 일어나면 부자가 되고, 집 없는 사람은 자고 일어나면 거지가 되는 악순환 속에 빈부의 차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현상은 서울에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수도권에 이어 이젠 지방 대도시 중심으로 서울과 똑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그야말로 대한민국 전제가 부동산 혼란 속에 몸살을 앓고 있는 것 같다. 이 책 『결혼은 모르겠고 내 집은 있습니다』의 저자 김민정은 자고 일어나면 "내가 화제의 ‘벼락 거지’가 되어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인 직장인이다. 평범하게 일하고 차곡차곡 저축해 왔지만 폭등하는 집값 때문에 하루아침에 전세는커녕 월세 난민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려왔다. ‘영끌’ ‘몸테크’ 등 부동산 대란 속에서 무주택자들의 애환이 담긴 신조어들이 연일 쏟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바야흐로 내 집을 마련하려는 이들은 영혼까지 끌어모으거나 극악의 주거 환경을 몸으로 때우며 먼 미래로 삶을 유예해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가구 구성원 모두가 똘똘 뭉쳐도 쉽지 않은 ‘내 집 마련’을 해낸 ‘1인 가구’가 바로 이 책의 저자이기도 하다. 서울 인근 경기도 고양시의 한 아파트에서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살아가는 ‘1인2묘 가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결혼은 모르겠고 내 집은 있습니다』는 뭐든 혼자서 해내려던 저자가 내 집을 마련하고, 고양이 두 마리, 친구들을 만나며 ‘따로 또 함께’의 삶으로서 비혼 라이프를 갱신하고 있는 1인 가구의 새로운 오늘에 대한 기록이다. 비혼을 결심하고 1인 가구로서 내 집 마련에 이르기까지 그녀에게 어떤 일이 있었을까? 자신의 집에서 그녀는 과연 행복하게 쭉 잘 살고 있을까? 유튜브 화제의 채널 ‘1인2묘 가구’의 내 집 마련 분투기와 그 후의 이야기를 이 책은 담고 있다.

이 책은 독자에게 공감과 거부감을 함께 준다. 부동산 문제와 혼자인 직장 여성의 문제, 세상에 대한 시선, 사회 인지 능력 등은 많은 공감이 가고 한편으론 응원의 박수를 보내기도 하지만 '비혼주의'라는 말엔 거부감이 든다. 물론 저자는 책에서 비혼주의자라고 "결혼하지 않겠다"고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지만 비혼에 우호적인 글을 쓴 것으로 보아 '아직은 비혼주의'임을 은근히 내비치는 것엔 동의하지 않고 싶다.

 

 

‘내 집 마련에 성공한 1인2묘 가구는 오래도록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동화라면, 흔한 성공담이라면 이쯤에서 이야기는 최종장을 맞이한다. 하지만 ‘1인2묘 가구’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사다난했던 내 집 마련 이후, 드레스룸을 만들고 인테리어 소품들로 로망을 실현하며 집을 채워 가던 저자는 어느 순간 집 안에서 고립되고 만다. 드레스룸은 옷들의 블랙홀로 전락하고, 일에서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인터넷 쇼핑을 반복하면서 '옥천 허브'를 방불케 할 정도로 문 앞에 택배가 쌓이고…. 저자는 이때의 자신을 아파트 앞 거치대에 방치된 자전거들 같았다고 표현한다.

방황하던 저자는 잠시 일을 그만두고 집 안에 가만히 머물면서 비로소 자신의 삶을 진정으로 돌보기 시작한다. 화이트 인테리어를 둘러싸고 고양이와 기 싸움을 하다가 포기하기도 하고, 드레스룸을 정리하고 서재로 바꾸기도 하면서 저자는 깨닫는다. 버지니아 울프가 외쳤던 ‘자기만의 방’은 ‘자기만의 시간’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그리하여 ‘1인2묘 가구’가 새롭게 정립한 가훈은 다음과 같다. 주 30시간 노동 준수하기, 현대 기술에 적당히 외주를 주고 집안일에서 해방되기, 내가 먹을 요리에는 고기 듬뿍 넣기, 매일 밤 잠들기 전 회사 탈출 궁리하기. 저자가 이 원칙들을 어떻게 실천하면서 살고 있는지는 책 속 특별 코너에서 구체적인 팁과 함께 확인하면 된다.(〈미니멀 옷장을 유지하는 방법〉, 〈작은 주방은 언제나 심플하게〉, 〈나만의 소비 원칙들〉 등.)

 

 

비혼이라고 하면 으레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단골 질문들이 있다. ‘눈앞에 진짜 괜찮은 남자가 나타나도 결혼 안 할 거야?’ ‘혼자서 살다가 아프면 어떡해?’ ‘모든 걸 다 혼자서 해결하는 거야?’ 등. 이미 비혼의 길을 걸어가고 있거나 고민 중인 여성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저자는 이런 질문들에 대해 뾰족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독자의 느낌뿐이지만 저자 자신도 아직 고민 중인 문제인 것 같다. 다만, 그 고민과 시행착오의 여정을 독자들과 솔직히 나누고 싶은 듯하다. 진짜 괜찮은 남자가 나타나면? 결혼할 수도 있지. 잼 뚜껑이 안 열리면? 같이 열 수 있는 친구들을 찾으면 되지. 아니, 그것보다 노인, 장애인, 아이 모두가 좀 더 쉽게 열 수 있는 잼 뚜껑을 만들면 좋겠네.

‘관은 1인용! 어차피 인생은 혼자!’라고 생각했던 저자에게 가족에 관한 생각에 대변혁을 일으키는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한다. 어머니의 죽음, 페미니스트 모임, 새로 생긴 동네 친구 등이 계기가 되어 집에 4인용 테이블을 들이고 자신만의 느슨한 가족을 찾아 나선다. 제도 밖의 새로운 가족을 꾸려야 하기에 비혼이야말로 가족계획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 지금껏 찍어 왔던 무수히 많은 점을 선으로 이어야 할 때가 아닐까? 그렇게 저자는 유튜브 ‘1인2묘 가구’ 채널을 시작했고, 그 결과 이 책도 태어나게 되었다. 온전히 독립적이면서도 때로는 함께하는 삶을 위해, 오늘도 ‘1인2묘 가구’는 자기만의 방, 자기만의 시간을 가꾸고 키워나가고 있다.

 

 

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해 집주인 대신 다음 세입자 구하기, 친절한 용달 업체 수소문하기, 밤낮없이 쌍욕을 해대는 옆집 남자에게 사과 한 봉지 들고 부탁하기…. 저자가 14년 동안 경기도와 서울을 오가며 세입자로서 시달려 보니, 집 없는 자와 집 없는 ‘여자’가 겪는 설움은 달랐다. 내 집 마련은 딴 세상 일이라고 막연히 생각하던 저자가 혼자 사는 여성이야말로 안전하고 안정적인 주거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계기다.

집을 사겠다는 결심 이후, 2년간 많게는 파이브잡까지 뛴 끝에 드디어 운명의 집을 만날 수 있었다. 남향, 고층, 20평 이상, 서울과의 근접성까지 이상적 조건을 모두 갖춘 집이었다. 인생은 한 번뿐이라면서 욜로, 소확행, 플렉스에 빠져 살던 저자가 이렇게 내 집 마련을 꿈꾸고 실제로 이룰 수 있었던 건 먼저 내 집을 마련한 친구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 책은 부동산 관련서도, 성공담도 아니다. 다만, 전국의 수많은 1인 가구 중 하나로서, 저자의 친구가 그랬던 것처럼 동료 1인 가구들에게 발신하는 메시지이다. 이 책은 많은 집 없는 여성 직장인들에게 교과서로 읽힐지도 모른다.

 

저자 : 김민정

 

1985년, 포항에서 태어났다. 19세부터 서울살이를 시작했고 서울과 경기도를 전전하다가 자취 14년 차에 내 집을 마련했다. 현재 고양시에서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직업은 방송작가, 정체성은 페미니스트. 2019년부터 ‘1인2묘 가구’라는 비혼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유튜브 : 1인2묘 가구, 인스타그램 : @KMJCATS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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