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시민들
백민석 지음 / 열린책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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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대체로 부정적인 인식이 심어져 있는 나라다. 구 소련 때문이다. 러시아 혁명(1917) 후 제정 러시아는 붕괴되고,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소련)이란 이름으로 국호를 바꿨다. 공산주의, 사회주의 체제 국가의 원조이다. 우리와 국경을 접하고 있지만 조선과 구한말 대한제국은 주로 중국(명, 청)과 교류했다. 이에 러시아는 우리나라에 미치는 정지, 외교적 영향력이 약했다. 그러나 우리가 일제에 의해 강제 병합되기까지는 외교와 정치적 이유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려 했다. 이후 우리는 세계의 냉전시대에 따라 분단시대에 접어들었고, 북한에 군사적, 외교적 원조를 해주고 북한을 공산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물론 제 2차 세게대전의 승전국으로서의 자격이었다. 지금의 러시아는 1991년 12월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The 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 약칭 USSR, 소련蘇聯)이 해체되면서 구성된 독립국가연합(CIS)을 구성한 공화국의 하나로 그 주축이 되는 국가이다. 면적은 약 1710만㎢로 구소련의 약 4분의 3에 해당되고, 인구는 약 1억 4242만 명(2015년 현재)이다. 며, 수도는 모스크바이다.

 

 

러시아연방공화국 이전의 구소련은 1917년 10월 볼셰비키혁명에 의하여 탄생된 사회주의 국가로서 정식명칭은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이었다. 유럽과 아시아 북부지역에 걸쳐 있었으며, 면적은 세계 제1위로서 2240만 2200㎢이었고, 인구는 세계 제3위로 2억 8450만 명(1988년 1월 기준)이었다. 구 소련은 1985년 3월 고르바초프 등장 이후 이른바 개혁(페레스토로이카)과 개방(글라스노스트)이라는 목표를 내걸고 권력구조, 경제관리, 대외정책 등에서 많은 변화를 보여왔다. 이와 같은 목표를 내건 고르바초프의 6년에 걸친 개혁은 무질서, 범죄의 증가, 지식인 이탈, 생산격감, 민족분리주의 요구 증가 등을 가져왔으며, 이로 인하여 일어난 8월 쿠데타는 1991년 12월 25일 소비에트사회주의연방을 공식적으로 해체시키고 옐친이 이끄는 러시아연방공화국을 출범시켰다.

한편, 18세기 초부터 1917년 러시아 혁명까지의 러시아를 ‘제정러시아’라고도 한다. 정식으로는 1721년에 표트르1세가 ‘황제’, 즉 임페라토르(imperator)라는 칭호를 사용한 시기부터 1917년 2월 혁명으로 니콜라이 2세가 퇴위하기까지를 말한다.

 

 

우리와 국교 정상화(1990년) 이후 교류가 다시 이어졌지만 구 소련은 우리에게 매우 어두운 그림자만 남겼다. 분단, 전쟁, 공산화 등 북한, 중공(지금의 중국)과 함께 '갈 수 없는 나라'였기 때문에 러시아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인식이 좋을 리 없다. 전쟁 이후 태어난 대부분의 대한민국 사람들은 반공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공산 체제의 소련, 중공, 북한에 대한 비판 교육을 많이 받아왔다. 구 소련 붕괴로 탈냉전 시대라고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분단의 이유가 이념의 피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에 대해 좋은 인식으로 바뀌기는 쉽지 않을 터다. 그래도 국교 정상회 이후에는 정식으로 비자나 여권 발급이 쉽기 때문에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미지의 땅에 대한 설렘 때문이다. 또 러시아는 예술적으로도 대문호와 위대한 음악가, 화가, 무용가 등을 배출한 예술적인 측면에서는 서양 어느 나라에 비해도 뒤지진 않아 거기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갖고 있는 사람은 많다. 또 샹페테르부르크 같은 멋진 도시도 있고, 일주일간을 달려야 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등은 우리의 낭만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영화나 다큐 영상물을 통해 어느 정도 모습이 드러난 러시아는 이렇게 우리 앞에 어렵게 다가선 나라다.

 

 

이 책은 소설가 백민석의 여행 산문집이다. 저자 백민석은 홀로 러시아의 도시들을 가로지른 3개월의 시간을 80여 편의 짧은 단상과 120여 장의 사진으로 기록했다. 사진을 훨씬 많이 찍었지만 이 책에 실린 사진의 숫자를 말한다. 사진을 보고 있으면 사진작가임에 틀림없다. 사진의 중요한 포인트를 잡아내는 데 익숙한 듯 보인다. 사진 구도가 독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고 있으며 새로움을 강조하면 아낌없이 클로즈업 시키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그를 소설가 겸 사진작가라고 하는 것 같다. 사실 저자는 여행을 시작하기 전부터 〈러시아의 시민들〉에 대해 써보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때문에 이 책이 탄생했을 것이다. 그 타지에서 보냈던 시간들을 자유롭고 솔직하게 문자와 이미지로 남겼다. 일반인들이 보고 느꼈을 감각과 소설가 겸 사진작가로서 느낀 감정과 감각은 다소 다를 터, 아름다운 것은 아름답게, 음산한 것은 으스스한 감정으로 들여다보기만 하면 된다. 혹시 감정이 떨어질까 저자는 간단한 설명도 잊지 않으니 책 한 권에 담긴 의미는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 여행을 꿈꾸는 사람이나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내 인생의 책'이 될 수도 있으리라 예상해본다.

 

 

블라디보스토크가 지리적으로 일본의 도쿄와 중국의 북경보다도 가까이에 있음에도 서양 문화에 속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정치적, 역사적으로 교류가 없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러시아는 멀게만 느껴진다. 이 책 『러시아의 시민들』의 저자 역시 "러시아는 냉전 시절의 이미지로 남아 있으며, 그나마 할리우드 영화에서 그리는 이미지로 러시아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산문을 통해 만난 러시아의 다양한 풍경과 분위기, 도시와 사람들 틈에서 KGB, 혁명, 레닌 등 머릿속에 강하게 자리 잡았던 〈과거의 남루한 편견들〉이 많이 깨지는 경험을 했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직접 가보지 않으면, 영영 그 실체를 알지 못하고 지나가 버릴 수도 있는 나라'라고 말하는 저자는 어느 도시엘 가나 웃기를 잘하고, 외국인에게 친절하고, 주변을 엄청 예쁘게 꾸며놓고 사는 사람들을 만났다. 이 꾸밈 없고 담백한 여행기를 읽다 보면 그와 함께 러시아의 곳곳을 다니며 그가 만났던 사람들과 도시와 자연과 마을을 같이 본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열차와 버스와 도보로 러시아를 경험한 그의 소박한 여행 수단과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약간의 무덤덤한 시선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탓이기도 하다. 추운 나라에서 찍은 그의 애정이 담긴 흐뭇하고 따뜻한 사진들을 보면, 다음 여행지로 러시아를 추가하게 될 것 같다.

 

 

이날 또 하나 깨달은 것이 있었다. 니즈니의 크렘린을 둘러보다가 산책을 나온 부녀와 마주쳤다.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묻고는 나는 무릎을 굽혀 자세를 낮췄다. 인물에 위엄을 더하고 싶을 때 나는 종종 아래쪽에서 사진을 찍는다. 그런데 내가 자세를 낮추자 아이의 아빠도 무릎을 굽혔다. 나는 무릎을 더 굽혔고 그러자 그도 더 자세를 낮췄다.

그러다 결국 나는 한쪽 무릎을 땅바닥에 대고 꿇었다. 그러자 아이 아빠도 사진처럼 무릎을 완전히 굽히고 쭈그리고 앉은 자세가 되었다. 그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스치고 지나갔다. 나도 당혹스러웠지만 더 낮출 자리가 없으므로 그제야 셔터를 눌렀다. 사진은 그렇게 두 당혹스러움 사이에서 찍힌 것이다. 그래도 그는 끝까지 미소를 표정에서 지우지 않았다. 이 일로 나는 잠시 혼란스러웠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무릎 꿇는 행동이 러시아인의 습속에는 어딘가 온당치 않은 일일 수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이를테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무릎을 꿇는 건 그저 사진을 찍기 위한 것일지라도 온당치 않은 것이다. 앞서 「부모의 표정을 행복하게 바꾸는 방법」의 도망가는 아이의 아빠도, 무릎을 꿇은 나를 따라 자세를 낮추다가 쭈그리고 앉게 된 것이었다. 내가 자세를 낮출 때마다 표정이 굳던 러시아인들이 기억났다. 이날 이후로 나는 러시아인들의 사진을 찍을 때는 꼿꼿이 선 자세로 눈높이를 수평으로 맞추고 찍었다.

-p.180, 「눈높이는 평등하게」 중에서

 

 

횡단의 뜻은 '대륙이나 대양 따위를 동서의 방향으로 가로 건넘'이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끝에서 끝까지 6시간의 시차가 있다. 그 때문에 나는 모스크바에서 첫 기차를 탄 다음 중간 기착지에 내릴 때마다 손목시계의 시간을 새로 맞춰야 했다.

이처럼 횡단은 자신이 가로 건너는 시공과 물리적으로 접촉을 하는 일이다. 그곳에 직접 가보는 일이며, 시간과 공간이라는 현실의 제약을 순차적으로 가로질러, 그곳의 실재와 구체적으로 만나는 일이다. 그런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만남 속에서 여행자는 실존에 대한 현실 감각을 되찾고 세계에 육체성을,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다. (…) '횡단'은 그러므로, 자신이 가고자 하는 특정 지역과 그 지역에 이르는 경로를 실제적이고 구체적으로 체계화하려는 의지에서 나온 행위, 실증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러시아 여행도 그랬다. 직접 횡단해 보지 않았다면, 내가 러시아에 대해 가졌던 많은 허황된 편견들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실증은 편견을 깨는 데 필수적인 행위다.

어떤 여행지든 여행자에게 그곳은, 여행자가 다닌 만큼 새롭게 다시 생성된다. 나는 열차를 타고 시베리아를 횡단하기도 했지만, 도시에 내려서는 걷고 또 걷는 식으로 도시들 또한 횡단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다른 누군가가 보여 주고 들려준 러시아가 아니라, 나만의 또 다른 새로운 러시아를 만들어 갖고 싶었다.

- p.291, 「횡단과 실증」 중에서

 

 

지금도 가끔 듣는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전람회의 그림'으로 유명한 무소르그스키의 흔적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또 백야의 러시아 음악을 좋아하는 독자로서는 러시아 땅에 발을 내딛는 순간 그 애절하고 우수에 찬 목소리의 가수가 곳곳에 살고 있으리란 환상도 떠올린다.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푸시킨 등 문호들과 영화 속의 '닥터 지바고'의 설원 등 독자의 로망을 한껏 내뿜는 러시아에 대한 갈망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 준 소중한 책이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열차 안에서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읽고 싶고 푸시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읊조리고 싶다. 동토의 왕국으로만 각인된 러시아는 수많은 예술가들의 영혼이 깃든 땅이기도 하다.

 

저자 : 백민석

 

그로테스크한 상상력으로 세상의 모순을 파헤치고 분노의 감수성을 일깨워 독보적인 존재감으로 한국 문학의 새로운 경향을 이끌어 온 소설가. 1995년 『문학과사회』에 「내가 사랑한 캔디」를 발표하며 소설가 활동을 시작했다. 대표작으로는 소설집 『16믿거나말거나박물지』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 『혀끝의 남자』 『수림』, 장편소설 『헤이, 우리 소풍 간다』 『내가 사랑한 캔디/불쌍한 꼬마 한스』 『목화밭 엽기전』 『죽은 올빼미 농장』 『공포의 세기』 『교양과 광기의 일기』 『해피 아포칼립스!』 『버스킹』 에세이 『리플릿』 『아바나의 시민들』 『헤밍웨이: 20세기 최초의 코즈모폴리턴 작가』가 있다. 2017년 [김현문학패]를 수상했다. 그리고 사진을 찍는다. 그의 작품에는 대부분 소년이 등장한다. 어른인 등장인물 역시 심리적으로는 소년인 상태의 어른들로 보인다. 현실의 인물을 기준으로 볼 때 기괴한 인물을 등장시킨다고 평가받는 그는, 스스로의 표현대로 ‘반사회적’ 경험으로 인해 날렵하면서도 냉소적인 문체를 구사한다. 이러한 문체는 힘 또는 권력에 대한 비판의 의미로 이해되기도 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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