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말 - 아픈 몸과 말의 기록
홍수영 지음 / 허클베리북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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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 ‘디스토니아’라는 근육병이 찾아온 뒤 이 책 『몸과 말』의 저자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사전에 따르면 디스토니아(dystonia)란 근육 긴장 이상 증세를 보이는 병으로서 몸의 한쪽 또는 그 이상에서 발생하는 불수의적이고 지속적인 근육 수축이 특징이다. 빈번하게 꼬이며 반복적인 운동 또는 비정상적인 자세를 발생시킨다. 이 때문에 근육 긴장 이상을 가진 환자들은 영향을 받은 신체 부위에서 팽팽함, 경련, 비틀림 같은 비정상적인 자세를 가진다. 영향을 받은 몸의 부위에 장애 또는 기능의 손상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근육 긴장 이상의 운동 범위는 무정위 운동에서부터 빠르고, 순간적인 근간대성 경련까지 다양하며, 때로는 율동적이고 떨림을 동반한다. 근육 긴장 이상 운동은 동작에 의해 악화되는 경향이 있다. 목의 운동 이상은 가장 흔한 형태 중 하나로, 머리의 비틀림 또는 경련, 머리 떨림, 경부 통증 등이 포함된다.[네이버 지식백과]

 

 

책에 따르면 제어할 수 없는 근육의 경련과 발성 장애는 말하는 일을 힘겹게 만들었다. 말하는 일이 어려워지면서 관계의 불균형과 소통의 단절이 시작됐다. 사람들은 저자의 ‘느린 말’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이 책은 ‘말하는 일’이 어려워진 저자가 장애에 대한 사회의 고정관념 속에서 ‘침묵’하며 조용히 빚어낸 고통의 기록이다. 저자 자신의 몸에 대한 정직한 증언과 보이지 않는 병증을 가진 몸을 향해 파고드는 의심, 경증과 중증을 나누며 끊임없이 아픈 몸을 위축시키는 사례들, 말이 어눌하다는 이유로 받았던 크고 작은 차별들이 기록되어 있다. 상상만 해도 엄청난 고통이 수반됐을 것 같고, 타인과의 소통이 어려워지면 결국 침묵 속에서 살아야 할 터 그 고통의 시간이 일반인이 당하는 고통의 수십, 수백 배에 이를 것으로 생각된다. 더욱이 희귀병인 데다 병의 원인도 아직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은 듯하다. 특효약이 없다는 뜻이다. 통증이 찾아오면 진통제나 주사 등 일시적 고통 완화 외에 방법이 없다면 치료 희망도 갖지 못한 채 하루하루 침묵과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한다. 책의 뒷부분에 나오는 저자의 기도문을 보면 고통과 치유의 희망이 엇갈리며 독자의 눈시울마저 붉게 물들인다.

 

 

저기 지하철 노약자석에 멀쩡해 보이는 20대 여자가 앉아 있다. 고개를 한쪽에 기댄 채, 해사한 얼굴을 하고... 이 책의 저자 바디에세이스트 홍수영이다. 14살 가을, 저자에게 근육병이 찾아왔다. 의지대로 몸을 움직이기 힘들어졌다. 목이 자꾸 곱아져 앞을 응시하는 일조차 어려웠다. 저자의 몸은 하루에도 수십 번 상태가 달라진다. 어떤 시간에 저자의 병은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제법 다부지고 씩씩하게 보인다. 그러다가도 곧 몸의 리듬이 사라진다. 근육병은 근육의 불수의적 경련과 기억력 저하 그리고 발성 장애를 가져왔다. 생각을 뚜렷하게 말로 정리해서 다른 사람과 대화 나누는 일을 어렵게 만들었다. 저자에게 대화는 높이뛰기보다 어렵다. 저자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보이지 않는 병증을 가진 몸을 향해 파고드는 판단과 의심, 경증과 중증을 나누며 끊임없이 아픈 몸을 위축시키는 장애에 대한 고정관념, 말이 어눌하다는 이유로 받았던 크고 작은 차별들 속에서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오랜 침묵의 시간 동안 저자가 가장 많이 한 일은 역설적이게도 말하기였다. 이는 목의 떨림과 안면 근육을 사용해서 ‘몸으로’ 하는 말하기와는 다르다. 저자는 ‘기도'로 말을 한다. 서로가 애써 무관해지려는 세상에서, 너의 기도가 나의 기도가 되지 않는 이곳에서 저자는 하나님과의 대화를 시도한다. 그녀에게 기도는 무언가를 구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과 대화하는 일이다. 저자는 하나님과 자신의 아픈 몸을 두고 이야기하며, 우리 사회가 ‘함께 겪는’ 방식으로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게 되길 기도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세상에는 이름 붙여졌거나 이름 붙여지지 않은 수많은 질병이 존재한다는 것과 사회의 지배적 이미지와 장애의 상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성찰의 노력이 없는 한 아픈 몸을 향한 섣부른 판단과 언어적 폭력은 계속될 수밖에 없음을 강조한다. 또한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아픈 몸들이 우리의 도처에서 억압을 견디며 연대의 마음들을 기다리고 있음을 글로써 외친다. 이 책은 우리가 어떤 아픔들 앞에서도 익명이 되지 말 것을 촉구하는 호소의 책이자, 가장 내밀한 고통은 결국 우리 모두의 고통임을 깨닫게 해주는 성찰의 책이다.

 

 

몸통이 앞으로 수그러지고 복부에 심한 통증이 온다. 똑바로 섰을 때 무게 중심이 발 안쪽과 발가락에만 실린다. 그러나 걷고 난 뒤는 다르다. 발바닥 전면이 고르게 땅을 딛고 있다는 느낌과 함께 목과 어깨가 가벼워진다. 일주일에 세 번, 한 시간 이상을 걷고부터 균형감각이 확연히 좋아졌다. 비록 앞서 말한 조용한 소란과 일체 무관한 일상을 누리는 건 아니지만 컨디션을 그나마 좋게 하게 위한 방법이랄까. 건강한 한나절을 능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링거액 같은 역할. 많이 걸은 날은 작은 동작에도 역동성이 생긴다. 나는 환자마다 치료에 있어 다른 접근법을 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p. 46)

 

얼굴 하나, 표정 하나를 갖고 싶어서 헤맸던 시간들. 경련이 웃음으로 변하고, 그 어떤 웃음도 내 것이 아니었던 시간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나를 떠나갔다. 나를 스치듯이 보고 스치듯이 사랑하려 했던 사람들. 그런 내게도 정말 뛸 듯이 기쁜 순간이 찾아오는데, 누군가가 헤어짐의 인사 뒤에 어색한 악수 대신 이 말을 건네줄 때다. “수영 씨, 우리 내일 만날래요?”, “다음 주에 또 볼까요?”(p.126)

 

 

질병이 나를 찾아온 뒤로 작디작은 것들의 소중함을 체감하는 삶을 살아왔다. 한순간이 얼마나 낭비될 수 없이 무거운지, 내가 건네는 한마디가 다른 이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깨닫는 삶의 연속이었다는 거다.(p.182)

 

나는 이번 책을 통해서 세상에는 이름 붙여졌거나 이름 붙여지지 않은 수많은 질병이 존재한다는 것과,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만들어낸 장애의 상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섣부른 오해에서 비롯된 언어적 폭력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다.(p.322)

 

저자 : 홍수영

 

바디 에세이스트. 기다리고, 듣고, 느리게 대답하는 사람. 약을 복용하면 근육의 수축과 떨림이 경감되는 ‘경증’의 근육병 환자로 살고 있다. 근육을 쥐어짜는 통증과 휴지기가 반복적으로 오기 때문에 몸 상태가 급작스럽게 바뀌며, 하루에도 몇 번씩 다른 몸과 만난다.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 날은 ‘사랑해요’와 ‘감사해요’라는 두 마디 안에서 소통을 완성한다. 그 두 마디는 건네지 못한 모든 말들이 담긴 귀중한 그릇이다. 보이지 않는 통증과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병증을 가진 환자들이 겪는 사회적 차별과 오해와 편견을 글로 풀어내고 물음을 던지는 작업을 하고 있다. 사랑을 주장하는 곳에 있는 배제, 다양성을 외치는 곳에 있는 선긋기를 마주하는 순간들을 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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