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수필을 평하다
오덕렬 지음 / 풍백미디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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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수필은 창작문학'이라는 저자 오덕렬의 평론집이다. 『창작수필을 평하다』를 읽어보면, ‘붓 가는 대로’라는 잡문론을 왜 버려야 하며, 어떻게 수필의 문학성을 높여, 수필을 창작문학으로 자리매김할 것인지에 대한 명쾌한 답을 얻을 수 있다. 평론가이자 수필가인 저자 오덕렬이 21편의 〈창작 · 창작적 수필〉을 엄선하여 평을 하면서 애써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수필은 창작문학이라는 것이다. 어느 순간 수필, 에세이, 산문, 생활수기, 신변잡기 등 그 명칭이 혼용되면서 수필은 정체성에 혼란을 겪기도 했다. ‘붓 가는 대로’의 잡문론이 한 세기를 지배한 결과다. 이에 수필가 오덕렬이 직접 21편의 〈창작 · 창작적 수필〉을 발굴, 거기에 현대문학 이론에 근거한 평문을 붙인 것이다.

이 때문에 『창작수필을 평하다』는 한국 수필계 최초의 〈창작 · 창자적 수필〉 평론집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책에서 언급된 21편의 수필은 박연구 「외가 만들기」, 유주현 「탈고 안 될 전설」, 반숙자 「백일몽」, 정채봉 「스무 살 어머니」, 피천득 「수필」 등 각각 〈창작 · 창작적 수필〉의 성격을 잘 나타내는 대표적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수필은 〈에세이(수필)〉 → 〈창작적 수필(에세이)〉 → 〈창작수필(에세이)·산문의 詩〉로 진화 · 발전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런 진화 · 발전 과정에서 진화의 특징을 말해주는 작품이 나올 때마다 ‘작품평’을 해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21편의 작품과 그 평을 음미하다 보면 수필의 진화 과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기존 우리가 배운 수필에 대한 지식을 잠시 옆자리에 놔두고 배움의 자세로 이 책을 경청하고 싶다.

 

 

저자는 어떤 문제작이 발표되면 그 작품을 평해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그 작품에 대한 평자(評者)의 도리고 의무다. 그런데 우리 수필계에는 〈창작수필〉 평론 활동을 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수필 문단의 불행 중 하나다. 이에 창작수필 평론가인 저자가 〈창작 · 창작적 수필〉 21편에 대해 개별 작품 평문을 쓰고 작품의 질을 높였다. 단순한 덕담 수준의 평이 아닌, 현대문학 이론에 근거한 평문으로서의 격을 갖추어 평론가가 해야 하는 '작품에 대한 정확한 평'을 한 것이다. 이 일은 수필계 최초의 평론이며 이 글들을 모아 〈창작 · 창작적 수필〉 평론집을 냈다.

저자에 따르면 문학은 구체적인 형상(形象)이라 했다. 어떤 정서나 서사, 감정, 이성 등 인간이 생각해내는 추상을 형상(形象)화 시키는 게 문학이란 말로 읽힌다. 즉 예술가의 생각은 없는 것을 있게(BEING·EXIST)는 만들 수 없다. 다만 문장을 가지고 어떤 형상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렇기에 비유(은유·상징)를 창작해야 하는 것이다. 아직도 ‘붓 가는 대로’를 주장하고 가르치는 일이 왕성하고, 세상은 여전히 수필을 ‘신변잡기’라 한다.

 

 

책에 따르면 '한국 산문의 詩 문인협회'는 〈‘붓 가는 대로’를 공개 부정, 폐기〉 및 〈수필의 현대문학 이론화 운동〉 선언식을 지난 2015년 가진 바 있다.소설이 “소설(小說)이란 잔 나부랭이의 속된 말”(정주동: 《고대소설론》, 형설출판사, 1981. 11쪽.)이란 원뜻을 버리고 소설이란 명칭만 취하면서 현대문학의 길을 택하여 지금의 위치를 차지하였듯이, 수필 역시 수필(隨筆)이라는 명칭만 취하고, 현대문학 이론에 기초한 창작론을 받아들여야 한다. 다행히 수필산문의 ‘창작적 변화’를 연구해온 선각자들이 있어서 지금은 수필이 〈창작·창작적 수필〉 시대를 맞아 산문의 꽃인 〈산문의 詩〉까지 진화하여 제3의 창작문학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동안 1세기가 넘게 이론 부재의 장르로 수필은 제대로 발전을 못했다. 타 장르에 비해 100년이 늦은 것이다. 이 책을 그동안 세간의 비아냥거림을 잠재우고 수필 쓰는 사람들을 ‘우물 안 개구리’에서 창작의 대명천지를 보게 할 것이다. 수필 평론가, 수필의 현대문학 이론화를 공부하는 수필가, 수필교실 선생님, 수필을 공부하는 문학도는 물론 수필과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고 저자는 밝혔다.

 

 

1. 춘희 엄마의 이야기로 풀어낸 동백꽃 시정(詩情) / 정태헌 「동백꽃」

2. 허구적 사실의 소재 형식 / 목성균 「소년병」

3. 조각보 구성법에 의한 창작 / 피귀자 「조각보」

4. 은유적 동일성의 형상화 / 이현재 「유리창」

5. 액자 구성법의 창작 / 반숙자 「백일몽」

6. 여심(女心) 수필의 한 전형 창조 / 은옥진 「내 마음 깊은 곳에」

7. 한 형식 창조의 구성 작품 / 김선화 「순환(順換)의 톱니」

8. 한 문장 수필 형식의 실험 / 선정은 「용(龍)은 산을 넘고」

9. 대화적인 독백체 문장 세계 / 김광 「동굴洞窟에게」

10. 사투리 의물화의 독백체 언어 세계 / 김연분 「미꾸라지의 변」

11. 의물화 형식의 문장 세계 창작 / 권현옥 「나는 손톱입니다」

12. 아까시나무를 의물화한 창작작품 / 김영곤 「내가 사랑 받는 이유」

13. 사투리 문장법의 의인화 / 전미란 「하루살이」

14. 시적 정서의 산문적 형상화 / 정경희 「그 텁텁헌, 그 끈끈헌」

15. 상상력으로 사물과의 대화를 통한 〈소년기〉를 형상화 / 김열규 「어느 바다의 少年期」

16. 상상력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창작적인 산문 / 변해명 「섬인 채 섬으로 서서」

17. 구성적 비유의 존재론적 형상물 창작 / 장금식 「따뱅이」

18. 서사 구성법에 의한 창작적인 산문수필 / 박연구 「외가 만들기」

19. 수필서사의 창조적 구성법에 의한 〈창작적인 산문수필〉 / 유주현 「탈고(?稿) 안 될 전설(傳說)」

20. 운문(시) + 산문(수필) 양식의 작품 / 정채봉 「스무 살 어머니」

21. 피천득의 「수필」은〈 수필〉이 아니고 〈산문의 詩〉다 / 피천득 「수필」

 

 

이 책의 마지막 21번째 평론은 금아 피천득의 「수필」에 평문을 붙인 것이다. 어떤 이는 피천득의 「수필」을 ‘수필로 쓴 수필론(隨筆論)’이라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그냥 ‘수필’ 작품이라 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수필이 아니라 시(詩)라고도 한다. 이에 오 작가는 지금까지 논의되었던 피천득의 「수필」에 대한 자료를 정리하고 소개하면서 “피천득의 「수필」은 〈수필〉이 아니고 〈산문의 시〉다.”고 결론짓는다. 수필문단에서 피천득의 위치를 폄훼하는 것은 우리 수필문학의 전반을 폄훼하는 우를 범할 수 있으리라 독자는 생각한다. 그만큼 지난 세기 우리 수필문학계에서 피천득을 뛰어넘을 만한 수필가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독자의 수필문학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부족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수필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독자의 생각에 별반 반기를 들지 않으리라 믿는다. 수필이란 문학도 사실 학교 다닐 때 교과서를 통해 그의 글 「수필」을 처음 읽고 알았다.

그리고 시, 소설, 희곡으로 대별되는 문학에 대한 인식으로 수필은 늘 뒷전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안타까운 면도 없지 않다. 이 책 『창작수필을 평하다』 저자도 이 점에 있어서는 독자와 인식을 같이하는 것 같다. 사실 수필은 문인들의 등용문으로 지난 세기 자리잡았던 각 신문사 신춘문예에도 수필은 자리가 없었다. 철저하게 배제돼 온 것이다. 이젠 우리도 수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때라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한다.

 

 

참고로 독자는 어렸을 때 교과서를 통해 배웠던 피천득의 '수필'이란 제목의 글 일부를 소개한다. 그 다음글은 사전적 의미의 수필이다.

"수필(隨筆)은 청자 연적(靑瓷硯滴)이다. 수필은 난(蘭)이요, 학(鶴)이요, 청초(淸楚)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女人)이다. 수필은 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 속으로 난 평탄(平坦)하고 고요한 길이다. 수필은 가로수 늘어진 포도(鋪道)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길은 깨끗하고, 사람이 적게 다니는 주택가(住宅街)에 있다. 수필은 청춘(靑春)의 글은 아니요, 서른여섯 살 중년(中年)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며, 정열(情熱)이나 심오한 지성(知性)을 내포한 문학이 아니요, 그저 수필가(隨筆家)가 쓴 단순한 글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통칭하는 에세이(essay)는 중수필(formal essay), 미셀러니(miscellany)는 경수필(informal essay)이라 한다. 전자는 어느 정도 지적(知的)·객관적·사회적·논리적 성격을 지니는 수필을 말하며 후자는 감성적·주관적·개인적·정서적 특성을 가지는 신변잡기, 즉 좁은 의미의 수필을 말한다. 요즈은 경중을 가리지 않고 에세이로 불리우는 것 같다. 중수필의 부재 탓인지, 경수필의 확장 탓인지 모르지만. 『시사상식사전』에 따르면 영어의 essay는 프랑스어의 essai에 그 기원을 둔다. 프랑스어의 '에세(essai)'는 '시도' 또는 '시험'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이 말은 '계량(計量)하다' '음미(吟味)하다'의 뜻을 가진 라틴어 '엑시게(exigere)'에 그 어원을 두고 있다.

 

 

저자는 창작수필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합의문을 결의했다고 지난 저서 『힐링이 필요할 때 수필 한 편』에서 소개한 바 있다. 그 내용을 보면,

하나, 에세이의 시조는 몽테뉴이고, 창작에세이는 찰스 램에서 싹텄다. 두 장르가 함께 발전하도록 힘쓴다.

둘, ‘붓 가는 대로’는 잡문(메모)론으로 단 한 줄의 창작론도 없다. 이에 우리는 이를 공개 부정, 폐기한다.

셋, 창작문예 수필문학이 제3의 창작문학이 되면서, 이제 변방문학 시대를 청산하고 문학의 중심부에 서게 될 날을 기대한다. 제3의 창작문학은 창작의 마루에서 <산문의 詩>로 태어날 것이니, 작품 창작과 이론 개발에 온 힘을 쏟는다.(p. 291)

기발한 아이디어다. 또 저자의 수필에 대한 애정과 관점을 드러내는 것으로 다른 수필집에서 볼 수 없는 수필문학론이다. 저자는 이 글에서 수필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독자는 저자의 수필이나 비평을 평할 수준이 못 되고, 새로운 수필 문학의 움직임에 응원을 보낸다. 아니, 저자의 주장대로라면 이미 우리 수필문단은 새로운 길에 들어섰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오랜만에 좋은 글, 좋은 책, 좋은 수필가를 만난 즐거움이 크다. 그리고 그의 글 중 기억에 남겨둘 몇 개 문장만 소개한다.

 

「소년병」은 회상 기억으로 쓴 창작 작품이다. 그러니까 망각의 강을 건넌 사실의 소재를 작품의 제재로 삼았다는 말이다. 허구적 사실의 소재―변질·왜곡된 정서적 경험 기억의 잔상을 창조적 구성법으로 작품화했다. 창작문예수필의 형식인 〈허구적 사실의 소재 형식〉의 전범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 「허구적 사실의 소재 형식」 중에서

 

창작 작품을 읽는 사람은 작가가 창작한 상상력[허구]의 세계를 감상하려는 것이고, 에세이를 읽는 사람은 허구가 아닌 사실에 관한 작가의 생각을 읽기 위해서 에세이를 읽는 것이다. 그렇다면 창작은 창작대로 분명한 창작의 모양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고, 일반 산문문학은 그것대로 분명하게 생각을 짓는 문학의 논리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 「한 문장 수필 형식의 실험」 중에서

 

창작문예수필의 태생적 특성은 창조적 실험 문학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개념은 몽테뉴의 에세이 개념인 ‘시도하다’ 혹은 ‘시험하다’에서부터 시작된다. 실험은 현대문학이 추구하고 있는 최선의 창작 개념이다. 창작문예수필 작가는 이 같은 창조적 개념을 가진 문학을 하는 사실에 종래의 ‘붓 가는 대로라는 잡문(메모)론과는 비교 자체가 안 되는 문학적 자존심을 가져야 한다.

- 「한 문장 수필 형식의 실험」 중에서

 

 


저자 : 오덕렬

 

평생을 교직에 몸담은 교육자이자 수필가로, 방송문학상(1983) 당선과 <한국수필> 2회 완료추천(1990)으로 등단하였고, 계간 <散文의詩>를 통해 ‘산문의詩 평론’ 당선(2014)과 ‘산문의詩(창작수필)’ 신인상 당선(2015)으로 산문의詩 평론가와 산문의詩 시인으로 재등단하였다. 수필집 <복만동 이야기> <고향의 오월> <귀향> <항꾸네 갑시다> <힐링이 필요할 때 수필 한 편>, 수필선집 <무등산 복수초> <간고등어>, 평론집 <수필의 현대문학 이론화> 등을 펴냈다. 광주문학상과 박용철문학상, 늘봄 전영택 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모교인 광주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임 시절 ≪光高문학관≫을 개관(2007)하여, 현재 은사님 16분과 동문 작가 103명을 기념하고 있으며, 문학관 개관 기념으로 ≪光高 문학상 백일장≫을 제정하여 매년 5월에 광주전남 중·고생을 대상으로 백일장을 개최하고 있다. 2020년 현재 <전라방언 문학 용례사전>을 편찬 중이며, 수필의 현대문학 이론화 운동으로 <창작수필>의 문학성 제고와 <산문의詩>의 외연 확장에 힘쓰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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