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1년
이인화 지음 / 스토리프렌즈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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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들어가기에 앞서 우선 작가 이인화의 불행한 일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을 터, 그의 개인사를 들먹이고 싶은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 독자는 저자가 그 고초와 고통을 오롯이 홀로 감내하고 극복해낸 사실이 반갑다. 벼랑 끝에 몰린 상황에서 아무도 그에게 손을 내밀어 그의 문학적 회복을 구원하지도 않았고, 하기도 어려운 상황 논리 속에 저자의 시간은 멈췄을지도 모른다. 그의 문학적 성과와 노력의 바탕으로 학교 강의도 맡았고, 바쁜 강의 일정으로 문학에서 잠시 떨어져 있었던 게 화근일까, 아니면 작품에서 자주 보이는 '중용'의 위치를 망각하고 사사로운 정이나 위계 질서의 위력 앞에 잠시 한눈을 팔았던 잘못에 대한 신(神)의 벌일까. 어쩌면 사회의 흐름에서 일탈한 행위를 꾸짖는 것일까. 독자로서는 그 아무것도 아니길 바라며 저자가 다시 문학의 세계로 돌아와 독자를 위한 글쓰기, 세상을 위한 글쓰기 본업을 다시 시작했다는 사실이 고맙기만 하다. 그런 이유로 이 책 『2061년』에 애착을 더 갖게 된다. 이 책에서 하룻동안 벌어지는 일은 저자 개인의 시간일 수도 있고, 우리 국민의 시간일 수 있고, 하루일 수 있고 영원일 수 있다는 점을 느낀다.

 


 

독자의 판단보다는 저자가 이 책 말미 「작가의 말」에 직접 쓴 글을 이 책을 읽고자 하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여기에 인용한다.

"나는 5년 전부터 외톨이가 되었다. 직장도 없어지고 사람들과의 연락도 일절 끊어져서 나와 사회 사이에는 무엇 하나 직접적으로 관계있는 것이 없는 것 같았다. 번민으로 밤을 지새운 뒤에 걷는 새벽길은 이 세상에서 저 세상까지 훤히 꿰뚫려 보였다.

나로부터 저 만치 멀리 떨어진 시대는 팬데믹과 인공지능이라는 두 가지 힘이 폭발하고 있었다. 그 깊고 빠른 운명의 균열이 삶의 구석구석으로 뻗어 가고 있었다. 나는 그 이면으로 들어가 우리에게 오랫동안 변하지 않은 어떤 것, 대체불가능한 것, 그래서 이 혼돈의 시대 뒤에 출현할 새로운 것을 생각했다.

우리는 흔히 미래를 과학기술과 관련된 외부로부터의 거시적인 변화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많은 가능성 가운데 무엇을 실현할지 선택하는 것은 이미 우리에게 내재적인 것, 우리 자신의 일부가 된 어떤 것이다. 한글은 가장 발달한 문자, 모든 언어가 꿈꾸는 알파벳이라고 한다. 이런 알파벳을 대영제국이나 미합중국 같은 지구 문명의 중심부가 아니라 한국인이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문자학적 사치’라고 말해진다. 나의 이 글은 ‘문자학적 사치’에 대한 탐구이다.

오래 전 세종 이도라는 고독한 사나이가 국경을 넓혀 민족을 재구성하고 그 민족을 위해 이 글자를 만들었다. 이도는 새로운 민족의 사고에 뭔가를 새겨 넣었다. 지금 남북으로 나뉜 우리는 이 글자로부터 강력한 불꽃을 나눠 받았다. 전쟁을 겪고 갈등을 겪었지만, 우리의 결속은 그리 약하지 않다. 백두산이 폭발하면 같이 죽을 사람들. 그 존명 공동체의 미래를 밝힐 횃불이 이 글자 안에 타오르고 있다. 지금 이 횃불을 높이 들어 캄캄한 밤을 밝히고 우리 힘의 결속을 세상에 꺼내놓을 때인지도 모른다."

 


 

저자의 글쓰기 주 재료는 역사다. 이는 역사가 우리에게 전하는 교훈을 바탕 삼아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 주는 작가적 눈과 판단이 있어야 가능하다. 전작 『영원한 제국』도 우리의 과거 조선으로 갔다. 저자는 정조 시대의 역사적 사실들을 바탕으로 역사적 인물들에 다시 숨을 불어넣어 그들이 남긴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한 바 있다. 독자가 과문(寡文)으로 저자의 다른 작품을 전부 읽지 못한 점을 미리 용서를 구하고, 저자의 이번 소설 『2061년』도 역사소설의 범주에 넣어도 문제가 없을 작품으로 판단한다. 물론 얘기의 시점으로는 2061년인 가까운 미래이지만 실제 사건이 벌어지고 가장 많은 지면을 차지하는 내용도 대부분이 과거 역사의 현장이고, 배경이다. 독자의 표현으로는 'SF요소의 역사소설'로 규정하고 싶다. '1896년'이란 연도의 역사적 의미는 무한하다. 국호를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변경하기 1년 전이고 일본인들이 명성황후를 시해한 1년 후이다. 제물포는 지금의 인천으로 서울로 들어오는 가장 가까운 국제항 구실을 하던 곳이다.

소설의 발단은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는 2061년으로 설정돼 있다. 이도 문자를 쓰는 인공지능들이 이도 문자 데이터의 저작권자인 한국인들을 제거한다. 가족을 잃은 시간여행 탐사자 심재익은 최악의 팬데믹을 막고 역사를 되돌릴 수 있다는 말에 설득되어 1896년 조선으로 이동한다. 이도 우파, 이도 좌파, 반이도파의 탐사자들이 팬데믹 바이러스의 원형 균주와 훈민정음해례본을 차지하기 위해 1896년 제물포에서 격돌한다.

 


 

전염병 바이러스가 2013년 메르스, 2020년 코로나 19와 같은 추세로 진화한다. 인공지능이 2015년 알파고, 2020년 알파폴드 투, 지피티 쓰리와 같은 추세로 발전한다. 2061년 전염성과 치명성이 극대화된 바이러스 아바돈이 출현하고, 이에 대응하는 전 지구적 인공지능 방역시스템 '이도의 무지개'가 가동된다. 이도의 무지개는 인간, 동물, 식물, 기계, 토양, 바다, 공기의 7개 영역에서 인간의 가청주파수 범위를 넘어서는 모든 소리를 감청한다. 그리고 이 천지자연의 소리를 ‘ ?’ ‘ㅡ’ ‘ㅣ’의 3 기본 모음으로 시작하여 398억개의 분절음을 만드는 자질문자, 이도 문자로 표기하여 바이러스 변화와 전파를 파악하고 차단하는 시스템이다.

2061년은 세종 이도의 문자와 사상이 지배하는 이도리안 문명기. 세계의 모든 정치 세력이 이도 우파, 이도 좌파, 반이도파로 나뉘어 있다. 세 세력은 1896년 2월 11일의 제물포로 시간여행 탐사자들을 파견한다. 탐사자들은 제물포의 일본군, 미국 선교사, 여의사, 세계어 운동가, 철벅이, 유곽 창녀, 만인계 도박꾼, 하역 인부 사이에서 팬데믹 바이러스의 원형 균주와 훈민정음해례본을 차지하기 위해 각축한다. 야인 여진을 민족 내부로 수용하면서 한글이라는 문자가 창제되던 과거가 소환된다.

 


 

기계 혼종인, 인체 임대인, 철벅이, 유곽 창녀, 만인계 노름꾼, 세계공동어 운동가, 아편쟁이, 부두 하역 인부 그리고 시간여행 탐사자들. 경이로운 인물들로 가득 찬 미스터리 스릴러. 2061년에서 1896년으로, 다시 신화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모험을 통해 인간이란 무엇이며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1896년 2월 11일 하루 동안 영원 같은 역사가 지나간다. 이 책에 등장하는 다수의 이색적이며 한 번 들어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용어들을 미리 몇 개만 정리한다.

실라리엔 관통선 : 과거의 한국으로 뻗어 있는 시간 폐곡선

치명적 옛 것 : 과거 치사율이 높아 숙주를 너무 빨리 죽였던 바이러스

인체 혼종인 ; 자신의 뇌에 전자칩을 이식해 몸을 인공지능에 임대한 사람

아바돈 : 예측되는 최악의 코로나 바이러스

데모닉 : 1896년에 발생한 아바돈의 치명적 옛것

이도의 무지개 : 바이러스가 일곱가지 영역에서 보이지 않는 변화를 보이게 하는 것

 


 

“너희가 한 일은 고작 젊은 객기를 주체하지 못한 뚱보를 숭배한 거였어. 그 뚱보의 유일한 욕망은 총을 들고 군인들과 장난질 하는 거였고 유일한 업적은 보천보 오지로 기어와서 경찰서에 방화하고 민간인 한 명을 죽인 거였지. 멍청한 성황당 숭배였어. 너희들은 열등감과 백일몽 때문에 삶 전부를 희생했던 거야. 독립군의 무장투쟁에 대해 실제의 사실이 아니라 이렇게 되어야겠다고 바라던 이상을 투사했어. 한때 성리학에 오염되었던 인간들이라 심리적으로 너무 취약했거든. 성리학 환자였어. 세상의 짐승스러움에 상처받고 세상에는 도나 천리 같이 정연한 질서 따윈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걸 알게 되는데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는 거지. 그래서 정신적인 승리를 추구하다가 집단적으로 돌아버린 거야.(p. 334)

 

검은 먼지 하늘이 온다면 너같이 교만한 자들은 보답할 가능성이 없는 좋은 사람들의 사랑을 기억하고 눈물을 흘릴 것이야. 그들의 온순하고 겸허한 말들이 네가 멸시했던 진실임을 깨달을 것이야. 왜 네 이웃과 착하게 대화하지 않느냐. 너희 무조가 무어라고 했느냐. 새벽의 여신 우얼둔이 꽃피는 해안에서 하얀 머리 산으로 달려올 때. 하일레 나무가 그 길 끝에 버들솜을 눈처럼 날리며 서 있을 때. 인간과 까치의 결혼으로 태어난 신성한 수령이 하일레 나무 앞에서 묵상에 잠겨 있을 때. 무수히 일어나는 천지자연의 소리를 들으라 하지 않았더냐.(p. 357)

 


 

조선인들은 여진족을 팔천(八賤)이라 부르면서 백정, 무당, 노비, 광대 같이 대접했다. 서북 사람에겐 벼슬도 주지 않았다. 말로만 동족이었다. 여진은 조선에게 문명의 이름으로 복속당했다. 조선이 일본에게 당한 것과 똑같은 수치를 겪었다. 내가 문명이다, 더러운 반편들아. 게을러터진 무지랭이들아. 너희는 나를 규범으로 받아들이고 나를 흉내 내어야 해. 그러면 나와 같아질 수는 없지만 언젠가 비슷해질 수는 있을 거야……. 오만한 대동주의와 장형의식의 끝은 언제나 최악의 결별이었다.(p. 360)

 

저자 : 이인화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8년 계간 [문학과 사회]로 등단하여 89편의 문학평론을 발표했다. 1992년 제1회 작가세계문학상 수상작인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를 시작으로 『영원한 제국』『인간의 길』『초원의 향기』『시인의 별』『하늘꽃』『하비로』등 18편의 소설을 발표했다.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며 한국적 팩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영원한 제국』은 미국, 프랑스, 스페인, 일본, 중국, 대만, 몽골 등에 번역되었고 영화화되기도 했다.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추리소설 독자상, 중한청년학술상, 이상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창작 발레 [신시21] 설치미술 [아슈켈론의 개] 오페라 [눈물 많은 초인] 영화 [청연] 등의 시나리오를 썼고 온라인 게임(MMORPG) [쉔무] [길드워] 등의 스토리 작업에 참여했다. 웹전략 게임(MMORTS) [인페르노 나인]을 개발했으며 영화·애니메이션 시나리오 저작도구인 ‘스토리헬퍼’를 개발 중이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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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청춘 - 어른 되기가 유예된 사회의 청년들
장 비야르 지음, 강대훈 옮김 / 황소걸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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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어진 청년기는 평균수명과 여가가 늘어난 시대의 필연적 부산물로, 국가와 기업, 시민사회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총체적 문제다. 이 작은 책은 그 어려운 과제를 향한 흥미로운 물음과 모색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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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청춘 - 어른 되기가 유예된 사회의 청년들
장 비야르 지음, 강대훈 옮김 / 황소걸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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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문제는 이제 대한민국의 사회 문제를 넘어 세계의 문제가 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취업이 어려워 연애, 결혼, 부모 되기 등을 포기한 '오포 세대'란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사회 문제로 고착화됐다. 이들은 서른 이전에 결혼하거나 안정된 직장을 갖기 힘들다. 첫 취업과 출산, 성년기 진입 연령도 반세기 전보다 10년 이상 늦어졌다고 사회학자들은 주장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사회적 붕괴뿐만 아니라 정가(政街)에도 큰 문제로 불어닥쳤으며 이젠 민주주의가 시험대에 올랐다고 강조하는 학자도 등장했다.

프랑스 사회학자 장 비야르는 "청년 문제가 현대사회의 중요한 정치적 과제이자 민주주의의 시험대가 됐다"고 말한다. 유동하는 현대사회에서 청년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그들은 4가지 청춘 수업(학업, 사랑, 여행, 노동)을 어떻게 치르고 있으며, 국가와 기업은 청년층의 어른 되기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작은 책 『기나긴 청춘』의 문제의식은 2010년부터 대한민국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헬조선’에서 연애와 결혼, 취업을 포기한 채 신음하던 청년들은 그 후로 어떻게 됐을까? 무엇이 당시 청년들을 그토록 좌절케 했고, 지금 그들은 어떤 어른이 돼가고 있는가? 또 계층 간 이동이 어려워지고 소리 없이 ‘중산층’이 사라져가는 현재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출신 배경이 다양한 청년들은 어떤 청춘기를 보내고 있을까?

저자 장 비야르에 따르면 길어진 청년기는 평균수명과 여가가 늘어난 시대의 필연적 부산물로, 국가와 기업, 시민사회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총체적 문제다. 이 작은 책은 그 어려운 과제를 향한 흥미로운 물음과 모색을 담고 있다. 독자는 개인적으로 청년문제가 우리나라의 고질병으로 알고 있었는데 프랑스의 경우 이미 이 문제의식이 태동한 지 50년이 지났다고 해 깜짝 놀랍고 부끄럽기만 하다. 그 50년 동안 독자는 대한민국 사람이 아니었고, 세계인의 한 사람이 아니었나 하는 자책감에서다.

 


 

대한민국 청년들만 겪고 있는 줄 알았던 문제들이 프랑스의 청년들 또한 다르지 않았다는 점은 우리 문제는 예방하거나 대책 수립을 할 만한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는 말로 들려 정치가나 정책 관계자들에게 실망감 또한 크다. 프랑스의 청년들 또한 양극화되어 있으며, 사회 한쪽에서는 우리보다 심각한 마약을 하는 청년들이 있었다니 우리보다 훨씬 심각한 상태로 인식된다. 물론, 그 반대쪽에는 상류층의 자제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정규직으로 바로 입사해 사회의 지도층이 되는 길이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저자는 이 작은 책을 통해 이미 전 세계가 아는 문제를 길게 말하고 논쟁하고 할 시간이 없다는 뜻을 간결하게 말하고 싶은 것으로 읽힌다. 매우 무겁고 큰 문제를 이 작은 소책자에 알맹이만 담아서 전 세계에 내놓은 것으로 봐서 다른 선진국에서 모두 인지하고 있는 문제인가 보다. 문제 의식을 재점화시키는 목적인가, 아니면 대안을 세워야 한다는 말을 간결하고 짧게 한 것인가. 지식이 짧은 독자로서는 헤아릴 길이 없지만 세계가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세계인의 문제인 것만은 분명히 인지하게 됐다. 코로나 팬데믹처럼.

 


 

책의 내용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본다. 프랑스 사회학자로서 72세의 저자는 평균수명의 연장과 노동시간의 단축으로 인해 오늘날 청년세대가 '어른'이 되려면 긴 시간이 필요하다고 빍힌다. 통계에 따르면 예수가 살던 무렵 인간의 평균 수명은 약 30만 시간이었다. 1900년 서구인의 일생은 50만 시간에 이르고, 한 세기 지나 현대인은 70만 시간을 살고 있다. 반면 노동시간은 갈수록 줄어든다. 과거엔 노동이 대다수 사람의 정체성을 결정했다.

오늘날 임금노동자, 특히 청년층의 첫 번째 관심사는 노동 외 활동에 부담을 주지 않고 자신이 꿈꾼 사생활을 영위하기에 충분한 급여를 받는 일을 찾는 것이다. 이 노동관으 노동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 사생활을 수호하겠다는 의지다. 10퍼센트에 불과한 근무 시간이 남은 90퍼센트의 비노동 시간을 침해해선 안 된다는 것. 바꿔 말하자면 비노동 시장이 우리의 노동과 창조성을 규정하며, 재택근무식 자가 생산이 개인의 수입과 인간관계에서 더 중요한 시대가 도래했다.

이 새로운 사회에서는 일상적이고 소소한 협업 활동이 중요해질 것이다. 타인과 어울림 속에서 각자의 시간을 향유하는 이런 활동이 앞으로 프랑스민주노동총연맹의 표현을 빌리면, 이제 새로운 시대의 '사회적 배낭 정책'이 필요한 때가 됐다.

 


 

오늘날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전 세대처럼 결혼, 집, 정규직을 통해 자리 잡는 게 아니다. 이제 어른 되기는 불연속성과 불안정성을 중심으로 짜인 사회, 즉 변화와 단절, 새 출발의 능력을 요구하는 사회에 진입한다는 의미이다. 이 시대의 과제는 새 세대의 열망과 생활 양식에 부응할 수 있는 공공 정책을 개발하고, 개인의 나이와 경력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마련하는 일이다.

사회학자 안느 뮈젤의 표현에 따르면 선거나 사회 참여, 노동에서 '단속성의 세대' 말이다. 청년 노동에 법적 지위를 부여할지는 다양한 논의와 협상, 보호가 필요한 문제다. 부동의 결론은 1968년 이후 50년이 지난 이후, 청년층의 자립과 어른 되기가 민주주의 가치의 수호는 물론 사회 전체의 긴급한 정치적 현안이 됐다는 것이다. 문제 제기와는 달리 결론은 빈약한 감이 있어 아쉽다. 이 책의 말미 「결론」에서 "이제 청년들의 4가지 청춘 수업(학업, 노동, 여행, 사랑)을 장려하는 방향으로 ‘청년’의 법적 지위 규정을 고민할 때가 됐다"고 결론 짓는다.(p. 89)

 


 

서문

1. 여가 혁명 시대의 노동

2. 노동이 삶의 전부가 아닌 시대

3. 자기 시간에 대한 권한 되찾기 : 업무에서 단절될 권리

4. 유동하는 사회에서 어른 되기

5. 사회적 징검다리로서 기업의 역할

결론

 

저자 : 장 비야르(JEAN VIARD)

 

프랑스의 사회학자이자 파리정치대학(SCIENCE PO) 교수로, 현대사회의 노동과 여가, 도시와 시골 공간의 변화, 주 35시간 노동의 효과 등을 중점적으로 연구했다. 지은 책으로 《PENSER LES VACANCES 바캉스를 생각한다》 《LE TRIOMPHE D’UNE UTOPIE: VACANCES, LOISIRS, VOYAGES-LA REVOLUTION DES TEMPS LIBRES 여가의 혁명》, 《AU BONHEUR DES CAMPAGNES시골에서 행복》 《LE SACRE DE LA TERRE 땅의 희망》(공저)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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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로 스타 작가 - 웹툰·웹소설·영화·드라마, 모든 장르에 먹히는 로맨스 스토리텔링
리 마이클스 지음, 김보은 옮김 / 다른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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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로 스타 작가』는 한마디로 '소설 작법'에 관한 책이다. 소설의 여러 장르 중 '로맨스' 소설에 관해 집중적으로 다루기는 했지만 일반 소설 작법과 같은 이야기다. 사랑과 연애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문학의 일부로 있어 왔고, 꾸준히 소설의 주제와 소재로 선택됐다. 다만 로맨스 소설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은 20세기 초 영국의 한 출판사로부터 시작됐다. 밀스 앤 분이 애거사 크리스티, 잭 런던 등의 작품을 펴내며 로맨스 소설도 출간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로맨스 소설 시장은 점점 커진다. 영국에서는 밀스 앤 분, 북미에서는 할리 퀸이라는 한 가지 브랜드에서 출발하여 점점 가지를 뻗어나갔다. 로맨스 소설 열풍은 이후 100여년 간 소설의 주요한 분야로 자리잡았다. 영화와 TV 등장으로 소설 책을 읽는 사람은 줄었지만 여전히 높은 수요로 문학의 가장 중요한 테마로 대우 받는다. 대부분의 독자들이 소설을 읽기 시작할 무렵의 나이가 청춘 때다. 사춘기 무렵부터 이성에 눈을 뜨고 관심이 커질 때가 이 무렵이니 사랑이나 연애 이야기의 독자 수요는 끊이지 않고 계속될 수 있다. 또 작가로 등단하는 사람도 대부분 로맨스 소설을 읽어봤기 때문에 '나도 쓸 수 있을까' 하는 자신감이 들어 작가 수업에 들어가는 사람도 많다. 즉, 쉽게 쓸 수 있을 것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에서 비롯되는 현상일 터다. 많이 읽어봤으니 쉽게 쓸 것 같은 느낌은 로맨스 소설이 대부분 '뻔한 이야기'여서 더 자신감이 생기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 『로맨스로 스타 작가』의 저자 리 마이클스는 100여 권이 넘는 로맨스 소설을 출간해서 전 세계 3,500만 부 이상을 판매한 이 분야의 대가다. 이 책은 소설가 리 마이클스가 쓴 '로맨스 소설 작법서'다. 몇 년 전 『NOW WRITE 장르 글쓰기 2 : 로맨스』란 제목으로 국내에 출간됐다가 이번에 다시 개정판이 나왔다. 부제는 「웹툰·웹소설·영화·드라마, 모든 장르에 먹히는 로맨스 스토리텔링」이다. 웹과 영화, 드라마에서 주요 테마로 떠오르자 로맨스 소설을 써보겠다는 작가의 수요가 높은가 보다. 저자는 이번 개정판 책에서 자신의 모든 노하우를 작심하고 공개하려는 듯 아주 상세하게 성공적인 로맨스 소설을 쓰는 법을 설명한다.

분량도 450페이지에 가깝다. 로맨스 분야에 관심이 있는 기성 작가든, 작가 지망생이든 이 책이 텍스트로 사용되기에 손색이 없을 것이란 독자의 믿음이다. 로맨스 소설 독자에게도, 타 분야의 소설 지망생들에도 이 책의 효용성은 그대로다. 로맨스 소설이라고 해서 다른 소설과 작법이 다를 리 없을 터다. 실제로 이 책을 읽어본 독자도 '나도 한 번 써볼까'에서 계획이 좀 더 구체화됐다.

 


 

이 책은 소설 작법의 기본부터 출판 판매 계약까지 원스톱 텍스트다. 이 책은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작가가 되기 위한 준비

2장 작품을 쓰기 위한 기본

3장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기술

4장 출판계약을 위한 노하우

1장은 로맨스 작가가 되기 위한 준비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이 장에서는 로맨스 소설이란 무엇이고 최근의 로맨스 트랜드는 어떤 것인지, 자료 조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로맨스 소설의 필수 요소는 어떤 것인지 등 로맨스 소설의 일반에 대해서 다룬다. 장르성이 짙은 로맨스 소설인 만큼 로맨스 소설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소설도 잘 쓸 수 있을 터. 그렇기에 저자는 첫째 장에서 로맨스 소설의 전반적인 부분을 일일이 열거한다. 순수 창작품인 소설을 쓰는 데 뭐 이렇게 공장에서 제품 만들어내듯 기본 틀에 맞춰 써야 하는가에 대한 회의를 잠깐 품었으나 이내 독자의 아집은 편견임을 발견한다.

 


 

2장에서는 로맨스 소설의 필수 요소인 주인공, 갈등, 관계와 결말을 어떻게 구성하는지 설명한다.

어떤 소설이든 주인공이 매력없으면 글에 대한 몰입도가 떨어진다. 특히 로맨스 소설은 독자가 주인공에게 몰입하며 대리만족을 얻는 장르이기에 주인공의 중요성이 어느 소설보다 크다. 저자는 어떤 주인공이 매력적인지 세세히 분석하여 어떻게 주인공을 구성해야 하는지 조언한다. 소설은 아디시피 이야기 중심의 글이다. 그렇기에 갈등과 결말도 중요하다. 저자는 갈등, 관계와 결말로 파트를 나누어 어떻게 갈등을 구성해서 소설을 이끌어내야 하는지, 어떤 결말을 내야 독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설명한다. 물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목조목 설명한다.

여기서 말한 세 가지 파트 중에서 한 가지만 빠져도 잘 쓴 로맨스 소설이라 할 수 없다. 그렇기에 이 세가지를 이 파트에서 탄탄히 잡고 가야 좋은 로맨스 소설을 쓸 수 있다. 사실 로맨스 소설이라 해서 일반 다른 소설과 작법상의 큰 차이점은 없는 것 같다. 다만 좀더 분야에 맞게 깊은 생각이 필요할 것으로 읽힌다.

 


 

제 3장에서 다루는 문제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이고, 민감한 부분이다. 이 장에서는 어떻게 일반적인 로맨스 소설을 넘어 베스트셀러를 만들 수 있는지 유용한 조언을 빼놓지 않는다. 어쩌면 이 부분이 이번 출간된 개정판 책의 핵심이자 전부라 할 수 있다. 그만큼 분량도 다른 파트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저자는 각각의 팁을 주며 마지막에 실전연습이라는 파트를 두어 실제로 연습을 해볼 수 있게 책을 구성했다. 다른 소설 작법서에서 흔히 사용하지 않는 방법이다. 마치 실전처럼 매달려보라는 저자의 속깊은 마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장을 주의깊게 보고 실전연습을 따라해 본다면 어느새 글쓰기 실력이 크게 늘 것이라 믿는다. 글쓰기는 어떤 분야든 많이 써보는 것처럼 좋은 방법이 없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쓴다 즉, '3다(多) 원칙' 동서고금을 통해 유일한 글쓰기의 왕도(王道)'다.

 


 

마지막 장에선 어떻게 출판 계약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어떤 출판사에 투고해야 하는지, 편집자에게 어떻게 대응하는지, 어떻게 투고해야 하는지 등 실제로 출판계약을 하고 싶으신 분들은 참고해볼 만한 경험 바탕 조언이 빛을 발한다. 로맨스 소설 작가를 지망하는 독자라면 이 부분 역시 주의 깊게 살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베스트셀러를 만들려면 이런 노력도 감수해야 하나보다. 독자의 생각과 다른 부분의 내용들이 많이 나와 저으기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알아두면 나중에 크게 소용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로맨스로 스타 작가』는 로맨스 소설 작법의 전반적인 부분에 대해 세세하게 잘 설명해 놓은 책이다. 저자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것이 운이 아니라 경험이고 실력이라는 생각이 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 책이 꼭 로맨스 장르 소설 작가에게만 유효한 것이 아니다. 작가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필히 읽어야 할 책으로 꼽고 싶다.

 


 

로맨스 소설에 국한돼 설명하는 부분 중 가장 독자의 머릿속에 남은 부분은 로맨스 소설의 기본적인 필수 요소 네 가지이다.

① 사랑에 빠지는 남녀 주인공

② 남녀 주인공 사이의 갈등

③ 평생 단 하나뿐인 사랑

④ 마지막은 해피엔드

로맨스는 남녀 주인공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다 서로 사랑에 빠지고 결국 해피엔드를 맞이하는 이야기다. 이것이 전부다. 그러나 실제로 로맨스를 쓰는 일은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다. 시놉시스에 ‘두 사람이 서로 알아가면서 사랑에 빠진다’라고 쓰기는 쉬워도, 과정을 보여주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다. 로맨스 소설의 독자는 책을 집어 드는 순간부터 마지막에 남녀 주인공이 함께하리란 것을 안다. 그러므로 남녀 주인공이 그저 사랑에 빠지기만 해서는 흥미를 유지할 수가 없다. 독자가 계속 책장을 넘기게 하려면 남녀 주인공에게 끊임없이 문제가 발생해야 한다. 해피엔드가 어려워 보일수록 더욱 감정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된다.

로맨스에 필수적인 러브신 또한 긴장과 갈등을 고조시킬 때 효과적이다. 러브신이 갈등을 잠시 진정시키더라도 나중에는 더 큰 어려움으로 이어져야 한다. 성적 긴장감은 남녀 주인공 사이에 이끌림이 충족되지 않을 때 발생하고, 정말로 관능적인 로맨스를 쓰고 싶다면 작가는 성적 긴장감의 수위를 높게 유지해야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무수히 많은 로맨스 소설이 존재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쓰이고 있지만 기본적인 골격은 이 네 가지이고, 여기다 어떻게 살을 붙여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느냐가 성공 여부를 결정한다. 이러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남녀 주인공이 매력이 있어야 하고, 살아 숨 쉬는듯한 생명력이 있어야 한다. 부록에서 구분해 놓은 것처럼 세상의 많은 로맨스는 세부 분류도 다양하다. 역사 로맨스, 리젠시, 로맨틱 코미디, 장편 현대 로맨스, 로맨틱 서스펜스, 에로티카, 시간 여행 로맨스, 인스퍼레이셔널 로맨스... 그만큼 로맨스 소설에 대한 수요가 탄탄하고 팬층이 두껍다는 반증이겠다. (p. 58)

 


 

저자 : 리 마이클스(LEIGH MICHAELS)

 

100여 권이 넘는 다양한 로맨스 소설을 출간했다. 전 세계적으로 3,500만 부 이상 판매되었으며 120개국에서 25개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NOW WRITE 장르 글쓰기 2: 로맨스》, 《로맨틱한 인물 창작CREATING ROMANTIC CHARACTERS》을 비롯해 여러 권의 작법서를 썼다. 존슨 브리검상, 베스트 트래디셔널 로맨스상 등 다수의 로맨스 소설 관련 상을 수상했으며, 고담작가워크숍에서 로맨스 소설 쓰기 강의를 하고 있다.

 

역자 : 김보은

 

서울대학교에서 미학을, 호주 매쿼리 대학교 대학원에서 통번역을 공부했다. 현재 ‘펍헙 번역그룹’에서 활동하고 있다. 《유럽의 시간들》, 《뉴욕에서 살아남기》, 《냉혹한 이야기》, 《사회주의 100년 1》(공역), 《사회주의 100년 2》(공역), 《어반 스케치》, 《게으른 작가들의 유유자적 여행기》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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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열전 - 지금 우리 시대의 진짜 간신은 누구인가?
이한우 지음 / 홍익출판미디어그룹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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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은 “바른 것을 북돋우고, 재능이 뛰어나며, 자신에게 주어진 때를 잃지 않고, 천하에 공명을 세우는 사람들을 위해 열전을 짓는다.”고 하였다. 인물에 관한 열전의 경우, 행적을 서술하면서 인물의 시비와 득실을 논하였으므로 편찬자의 의도가 확연히 드러난다. 기전체 역사서에서 대체로 가장 많은 분량으로 구성되는 것이 일반적이다.보통의 열전은 한 사람의 인물을 표제로 내세워 전(傳)을 세우지만, 사적이나 행실이 같은 여러 사람들을 묶어서 종합적인 전기로 적기도 하고, 같은 유형을 개괄하여 명칭을 정하기도 하였다.혹은 다른 이의 인물에 부속하여 정리해 놓기도 하였다. 소수 민족이나 이웃 국가 혹은 각종 전문 직업을 내용으로 한 열전도 있다. 그런데 일반 문인들이 지은 전기체 산문은 열전이라 하지 않고 ‘전’이라고 부르는 게 관례였다.

역사서에 수록된 인물열전이 대체로 저명한 인물을 다루고 있는 데 반해, 일반 문인들의 전기물 속에는 사회적 지위가 낮거나 유명하지 않은 사람에 대한 기록도 많아, 인물 전기의 대상폭이 생각보다 넓었음을 알 수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간신은 동서고금 언제나 있었다. 충신이 있었던 것처럼 간신 역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며 한 시대를 살다 갔다. 역사 속의 인물들은 최후가 어떻든 그가 공직에 있을 때 어떻게 했는지가 더 중요하고 더 교훈적이다. 이 때문에 이 책 『간신열전』은 어떻게 간신으로 역사에 남았는지를 잘 살핌으로써 공직자가 어떻게 일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반면교사의 중요한 이정표가 될 수 있다. 저자 역시 그런 뜻에서 이 책을 집필했으리라.

간신들이 역사에 이름이 남아 있는 것은 '공직자가 공무를 행할 때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후세에 남겨 공직 기강과 공직의 임무 등을 얼마나 책임 있게 처리해야 하는지를 알게 함이라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쓰여진 것으로 독자는 믿고 있다. '열전(列傳)'으로 표기돼야 할 이유는 그런 간신들의 이야기를 통사적으로 고찰했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본다.

책에 따르면 간신의 역사는 인간 역사의 시작과 함께 탄생했다. 이 책은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온갖 수단을 써서 나라를 망친 역사 속 간신들의 이야기를 통해 ‘현대사회에서의 간신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찾아간다. 저자는 〈조선일보〉 오피니언 란에서 인기리에 연재 중인 ‘이한우의 간신열전’을 토대로, 흥미로운 역사적 배경과 친절한 해설을 풍부하게 추가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간신은, ‘신하’라는 신분의 문제보다는, 야심이 많은·표리부동한·사악한 사람이라는 ‘유형’에 가깝다. 이 책은 전통사회에서 제기되던 고정관념으로서의 간신론을 해체하고, 현대사회에 맞게 재구성된 간신 개념을 갖고 역사를 뒤흔든 간신들의 실상과 문제점을 짚어낸다.

 


 

저자가 말하는 간신의 유형은 모두 7가지다. 나라를 통째로 빼앗은 찬신, 황음에 빠진 임금을 시해한 역신, 임금을 무시하고 권력을 휘두르는 권간, 임금의 눈과 귀를 멀게 하는 영신, 군주의 총애를 믿고 설치는 참신, 아첨으로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유신, 자리만 지키며 녹봉이나 축내는 구신. 역사가 이야기하는 최고의 간신은 누구일까?

진나라 2세 황제 때의 환관 조고, 고려 공민왕 때의 환관 김사행 등 다양한 인물들을 소개하고, 간신으로서의 면모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시각에서 책은 긍정적으로 재평가할 수 있는 점도 함께 밝혀서 객관적으로 간신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였다. 뿐만 아니라 제갈공명의 간신 식별법 7가지, 간신들의 충신 저지술, 《고려사》의 제1호 간신이 된 사람 등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속 이야기가 가득하여 새롭게 아는 즐거움이 크다.

조선 정조 때 익히 들어 알고 있는 홍국영의 다른 면모들을 볼 수 있어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서에 대해 재발견하는 듯한 느낌이었다.정치권이나 국제 사회에서는 어제의 동료가 오늘은 적이 되는 경우를 수없이 보아왔다. 그만큼 살아 움직이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요즘 말로는 "정치는 생물(生物)"이라는 말이 역사서를 통해 보아도 실감나는 말이다. 동료를 중상모략하는 참신들의 방법은 다른 책에서는 자세하게 자주 다루지 않은 부분이다.역시 새롭게 알아가는 즐거움이 배가 된 부분이다.

 


 

가장 충격적으로 관심을 끌었던 간신은 '강윤충'이다.

저자에 따르면 강윤충은 충숙왕의 총애를 받아 노비를 면한 데다 수완이 좋았다. 여인들이 먼저 유혹할 정도로 외모마저 뛰어난 강윤충은충혜왕에게 여인을 은밀하게 바치며, 막강한 권력을 잡아나간다. 난을 진압하는 공도 세운 강윤충은 재상이 된다. 그는 대비 격인 충숙왕의 어머니와 간통을 하고, 본부인이 있음에도 죽은 재상의 부인 장씨와 잠자리를 한다. 놀라운 점은 장씨가 먼저 강윤충을 유혹했단 점이다.

강윤충이 저지른 행위는 여기까지라면 '간신열전'에 오를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유념하고 저자의 설명을 따라간다. 이후 그는 장씨에게 붙어 재산만 빼먹고 그녀를 버린다. 간통의 이유가 사랑이 아닌 재산이었다. 강윤충은 충정왕을 거쳐 공민왕까지 모시며 1품의 자리에 올랐으나 역모로 죽는다. 역모죄는 삼족을 멸족시킨다 했는데 말로만 엄중한 죄를 묻겠다는 의미인가. 그의 후손은 씨가 마를 듯하나 그의 형 강윤성의 딸이 이성계의 두 번째 부인이 된다. 방번, 방석을 낳은 신덕왕후 강씨라는 사실은 놀랍다 못해 경악스럽다. 이 책에는 이처럼 놀라운 간신의 이야기가 연달아 나온다.

 


 

간신을 바라보던 백성들의 시선과 <고려사>에 언급된 악행이 상반되기도 하고, 그들에게 휘둘렸던 왕의 사정과 시대에 따라 우리가 알던 것과 다른 내용도 있다. 조선 시대엔 같은 뜻으로 사용했지만 고려 시대의 환관과 내시는 전혀 달랐다고 한다. 즉 내시는 신진 엘리트 중에서 왕의 측근인 보좌관을 맡았고, 환관은 서민과 천예(賤隸: 천한 종)의 후손 출신으로, 어려서 개에 물린 자들이 환관이 되었다고 한다. 표현을 개에 물렸다고 했을 뿐 거세를 말한 것이리라. 이 무렵 거세라는 형벌이 전혀 쓰이지 않았다는 점도 놀랍지만 이를 반증하기도 한 것 아닐까 독자는 생각한다. 개에게 물린 아이들이 그렇게 많았나? 궁금하기도 했다.

진지하게 과거의 간신을 보며, 현재의 간신을 생각해보는 저자의 의도와는 달리 독자로서는 크게 떠오르는 사람은 없는 듯하다. 물론 지금 우리 공직사회에 간신이 없기를 더 바라지만. 아마 독자가 공직자들의 사회나 정치인들의 생각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책의 뒷 부분에 있는 「부록」에서 '제갈량의 사람을 알아보는 방법'도 재미있다.

첫째, 어떤 일을 물어 그 대답의 옳고 그름을 통해 그 속마음을 살핀다.

둘째, 말로 궁지에 몰아넣어 그의 임기응변을 살핀다.

셋째, 계책에 관해 말해보게 해서 그의 식견의 깊이를 살핀다.

넷째, 재난이 났다고 말해주어 그의 용기를 살핀다.

다섯째, 술에 취하게 해서 그의 밑바닥 성품을 살핀다.

여섯째, 재물로 유혹해서 그의 청렴함을 살핀다.

인간의 욕심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그 욕심을 채우기 위해 행동하느냐, 진심으로 국민들을 위해 부리는 욕심인가를 따져야 할 것이다. 사적인 자리에서도 이런 부분은 친교를 맺을 것인가의 여부를 따질 때 필요한 것인데, 공직에서는 말해야 무엇하랴. 욕심을 제어하는 사람과 욕심을 위해 남을 위해하는 사람으로 분류하기 위해 제갈량이 머리를 짜낸 것이란 생각이 든다.

 


 

왜 지금 시대 간신을 말하는가? 앞서의 언급처럼 여전히 간신들이 많다는 뜻인가. 나라에는 '충신도 있고, 간신도 있다'는 역사 속의 사실이 참이라면 구별해 등용하라는 뜻일진대 과연 제갈량처럼 명쾌한 구별법을 누가 알고 있을까. 충신은 나라와 백성을 위해 목숨 바쳐 일하지만 간신은 국가와 백성에게 막대한 손실과 피해만을 끼친다. 지나온 역사가 말해주는 '팩트'이다. 그럼 지금도 국민들이 피해 볼대로 다 본 다음 간신을 가려내 응징할 것인가.

우리의 정치 성숙도와 민주 경험에 의해 판별될 문제가 아닌가. 지금 우리 시대의 진짜 간신은 누구인가? 저자의 의도와는 달리 '잣대'만 던져주고 독자들이 알아서 판단하라는 의미인 듯 보인다. 물론 저자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한 독자 탓이지만.

간신의 역사는 인간 역사의 시작과 함께 탄생했다. 이 책은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온갖 수단을 써서 나라를 망친 역사 속 간신들의 이야기를 통해 ‘현대사회에서의 간신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찾아간다.

어떻게 간신인지 아는가? 어떤 일을 물어 그 대답의 옳고 그름을 통해 그 속마음을 살핀다. 말로 궁지에 몰아넣어 그의 임기응변을 살핀다. 재난이 났다고 말해주어 그의 용기를 살핀다. 재물로 유혹해서 그의 청렴함을 살핀다. 약속을 통해 그의 신뢰성을 살핀다. 이는 삼국시대 명재상이었던 제갈량의 '간신 식별법'이 오늘날에도 유효할까.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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