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작가지만 글쓰기로 먹고삽니다 - 나는 이렇게 전업 작가가 되었다!
이지니 지음 / 세나북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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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무명작가'라고 자신을 더 채찍질하는 저자의 진솔한 '작가수업' 과정이 감명을 준다. 이 책 『무명작가지만 글쓰기로 먹고삽니다』는 저자 이지니의 작가 수업 과정을 가감없이 쓴 글이다. 저자는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일 정도로 힘든 과정을 몇 번이나 겪었으나 오직 글쓰기에 정진하는 모습이 눈물겹다. 글자 한 자, 한 자, 문장마다 혼신의 힘을 기울인 흔적이 역력하다. 어쩌면 울면서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짠한 장면들이 여러 번 나와 독자로서도 감정이 격해지기도 한다.

왜 저자는 글쓰기에 이토록 매달렸을까. 전업작가가 아직 우리나라에선 '먹고살기' 힘든 일인데도 그런 불투명한 일에 온몸과 마음을 다해 쓰고 또 썼을까. 글쓰기를 직업으로 갖고 있는 사람들은 안 쓰고는 못 배길 정도의 어떤 영감이나 문혼(文魂)이 있는 걸까? 글쓰기를 좋아하고 책도 좋아하는 독자지만 자신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 작가를 꿈꾸며(일부 인기 작가는 충분한 수입이 있겠지만) 그토록 영혼을 불사르고 에너지가 바닥나 지쳐 쓰러질 때까지 쓰기만을 고집하는지에 조금은 의문스럽다.

독자가 글쓰기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어서인지 그들의 아픔을 알면서도 한편으론 왜?란 물음표를 늘 가지고 있다. 좀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글쓰기와 책 쓰기만으로 먹고 살 수 있을까?이다. 저자는 5년차 작가로서 어느 정도는 이름도 알려지고 인정도 받은 후라 후배를 위한 충고쯤으로 이 책을 쓴 걸까. 누구를 위해 이 글을 썼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독자는 이 책을 단어 하나하나에 집중하면서 읽어나갔다.

 


 

책에 따르면 많은 이들이 전업 작가를 꿈꾸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글만 쓰며 먹고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저자는 10년 동안 간직했던 꿈인 방송작가가 되었지만 3년 만에 그만뒀다고 한다. 중국어를 공부해 10년간 중국 관련 회사에 다니고 번역 공부도 했지만 가슴 두근거리는 일은 아니어서 5년 전, 평생 글쓰기와 책 쓰기를 하며 살기로 결심했다. 이유는 단 하나,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고 싶고 잘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5년을 꿈을 향해 달렸다. 그동안 네 권의 종이책과 세 권의 전자책을 출간했다. 지난해부터는 전업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글쓰기 및 책 쓰기 강의와 '동기부여' 강연도 시작했다. 아직 무명작가지만 글쓰기로 잘(?) 먹고 잘살고 있다고 술회한다.

 


 

저자는 글쓰기로 먹고사는 이 길 위에 서기까지 힘든 일도 많았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진정 원하는 자신의 길이었기에 즐거움과 만족감과 감사함이 앞섰다. 처음부터 돈과 명예를 보고 책 쓰는 길로 들어선 게 아니기에 버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커피 한 잔 사 마실 돈도 없던 시절을 억지로 견디고 이겨낸 것이 아니다. 책 쓰기 하는 생활을 즐겼다. 지금도 책 쓰기의 즐거움과 함께하고 있으며 덕분에 강의도 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유명 스포츠 선수의 성공기를 보거나 들으면 꼭 나오는 멘트와 비슷한 점이 많다. "좋아해서 힘든 훈련을 참아낼 수 있었고, 좋아하기 때문에 돈과는 무관하게 열심히 했다"는 말이다.

이 말은 겸손도 아니고, 부정직한 말도 아니다. 글쓰기나 운동하는 사람들만이 겪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든 잘하려면 이같은 열정과 인내, 성실함과 진정성 등이 모두 필요하다. 그것을 그대로 표현한 작가의 말이 허언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무명작가에서 유명작가로 되는 과정이다. 무명의 운동선수가 거금의 연봉을 받으며 스카웃되기도 한다. 그들은 모두 위와 같은 과정을 거친 사람들이다. 우리 사회 어디에서나 이 공식은 통하는 '약속된 룰' 같은 것이다. 그래서 중도 포기는 실패다. 유명작가가, 유명 운동선수가 안 된 것이 실패가 아니다.

 


 

저자에 따르면 이 책에는 잘나가는 유명작가의 성공기나 글쓰기 비법은 나와 있지 않다. 그저 5년 차 무명작가의 지극히 현실적인 글 쓰는 삶과 소소한 글쓰기 이야기와 책 쓰기 과정이 담겨 있다. 오로지 꿈을 이루겠다는 생각만으로 힘들고 긴 시간을 버텨고 앞으로도 전업 작가로 살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다.

이런 글을 보면 글쓰기에 뜻이 있거나 작가가 꿈인 사람들은 쉽게 감동된다. 그리고 희망과 신념이 생긴다. 독자도 감동한다. 지금까지 유명 작가의 글쓰기 수업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밝혀지지 않아서인지 크게 감동 받은 일이 별로 없다. 그러나 이 책은 다르다. 마치 현장 건설 노동자가 대기업의 사장이 되고 회장이 되는 얘기를 들은 것처럼 희망과 감동과 새로운 신념이 싹튼다. 독자는 비로소 한 자, 한 자 꼼꼼히 읽은 보람을 느낀다. 책 한 권 읽고 감동하고 희망과 신념이 생겼다면 적어도 독자에게 이 책은 '성서'에 다름없다. 절망과 좌절에 빠져 있는 어떤 사람이 성경을 읽고 새삶을 사는 것처럼...

출판사 측은 그래서 이 책 소개글에 이렇게 썼나보다.

"내 삶을 솔직히 써 내려갈 자신이 있는 이에게, 책을 써보고 싶은 이에게, 글로 먹고살고 싶은 이에게 이 책은 분명 작지만 따듯한 도움의 손길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 줄 것이다."

 


 

책을 읽다 중간 중간 밑줄을 치고 가끔은 느낌이나 영감에 대한 주석을 몇 자 적는 습관이 있는 독자는 이 책에 너무 많은 밑줄을 그어 한 번 읽었을 뿐이데 '헌책'이 된 듯하다. 명언이나 격언 등에서 오는 감동은 아니지만 진솔한 표현이나 내용 등에서 오는 감동이 컸기 때문이다.

"단 한두 명이라도 내 글을 읽고 힘을 얻었다면, 좋은 기운을 받았다면 그걸로 감사하자. 욕심은 또 다른 욕심을 낳는다고 했으니 첫 숟가락에 배부를 생각 말고 묵묵히 쓰자."(p. 60)

글쓰는 저자의 모습이 눈에 잡힌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잘 써지는 날은 그래도 위안이 되겠지만 밤새도록 앉아 단 한 줄도 못 쓸 땐 얼마나 참담했을까. 이런 날이 얼마나 많았을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저리고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돌아보니 나라는 사람, 한 걸음 한 걸음 잘 걸었다. 느릴지라도 잠시 주저앉았을지라도 제자리에 멈춰 서지 않고 일어서서 계속 걸었다. 남과 비교할 때도 있었지만 이내 일어나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돌아봤다. 조급할수록 더욱 하늘의 타이밍을 신뢰했다. 되든 안 되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움직였다. 타인의 속도를 들추기보다는 거북이만큼 느리지만 내가 해야 할 일에 초점을 맞췄다."(p. 91)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자는 말에 힘을 보탠다. 저자가 이 말을 쓴 것은 간혹 두려움도 느꼈기 때문이리라.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고 더욱 꾸준히 쓰기를 계속한 저자의 모습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것으로 독자는 확신한다.

 


 

이 책에는 또 한 가지 특징이 있다. 미사여구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의 성격인지 모르지만 미사여구를 찾아볼 수 없다. 가끔씩 멋진 문장이 있지만 미사여구를 화려하게 사용해 멋진 게 아니라 진솔하고 매끄럽기 때문에 멋지다.

독자들은 화려한 미사여구가 아니라 진솔하고 간결하게 표현된 글에 더 매료된다. 감동도 받는다. 오래 기억하기도 한다. 작가의 이름과 함께... 이 책을 읽은 독자로서 글쓰기뿐만 아니라 책쓰기에도 작지만 밝은 희망이 생겨난다. 언젠가는 책을 쓰고, 무명이어도 좋으니 후세에 남겨지면 좋은 책을 꼭 한 권 쓰겠다는 의욕이 다시 불타오른다. 책 읽고 의욕이 솟는 것을 오랜만에 느낀다. 읽어서 감사한 책이다.

 

저자 : 이지니

 

그만두기가 취미도 아닌데 지금껏 아르바이트를 포함해 서른다섯 가지 일을 경험했다. 현재까지 지속하는 건 10년의 메모, 7년의 블로그 운영, 그리고 5년의 책 쓰기다. 그동안 집필한 책의 인세를 전부 합쳐도 겨우 몇 백만 원이지만, 글 쓰는 게 좋았다. ‘돈을 좇지 않고 그저 이 일이 좋아서 지속했더니 어느 날 돈이 들어오더라’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좋아하는 일을 5년 넘게 하니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돈이 들어왔다. 현재 전업 작가로 활동하며 글쓰기 및 책 쓰기 강의와 동기부여 강연을 하며 다음 책을 집필 중이다. 지은 책으로 『힘든 일이 있었지만 힘든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영심이, 널 안아줄게』, 『아무도 널 탓하지 않아』, 『꽂히는 글쓰기의 잔기술』 외 세 권의 전자책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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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폴리스 - 홍준성 장편소설
홍준성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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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배경은 '비뫼시'라는 가상의 도시이다. 지하철이 다니고 텔레비전이 존재하며 방송국 또한 존재한다. 무정자증을 진단할 수 있고 스테로이드 주사가 존재하며 댐을 건설하는 현대의 도시 모습을 갖추고 있다. 이 도시는 여왕이 통치하는 절대왕권의 도시국가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신하(각료) 한두 명쯤은 지하 감옥으로 끌고 들어가 고문하고 죽여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공포정치로 다스리는 왕국이다.

도시 안 고서점의 주인인 곱추는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건물이 경매에 넘어가고 그곳에서 쫓겨난다. 고서점 안에서 비밀스럽게 지내오던 박쥐는 그 사건으로 여파로 보금자리를 잃고 바깥세상으로 나간다. 나가자마자 송골매에게 먹이로 사냥을 당하게 되고, 박쥐를 사냥한 송골매는 고양이와 싸우다 결국 3마리 모두 죽는다. 그 박쥐와 송골매를 노숙자가 주워 약재상에 팔고 심각한 관절염에 시달리던 유리부인이 그 박쥐를 약으로 먹게 된다. 그러던 중 빈밀굴에 살던 유리부인은 갑작스럽게 40이 가까운 나이에 임신을 하게 된다. 이들을 부양하기 위해 나라에서 진행하던 댐 공사 현장에 유리부인의 남편이 일하게 된다.

 


 

공포정치로써 왕권을 유지하던 비뫼시의 가시여왕은 갑작스럽게 변덕이 생겨, 현재 진행중인 댐 공사에 시멘트가 너무 많이 들어간다고 줄이라고 명령한다. 목이 달아날까(해고가 아닌 죽음) 무서웠던 건설부 차관은 건축사를 종용하여 시멘트를 줄여서 공사를 진행한다. 때마침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고 댐은 붕괴하여 비뫼시를 덮친다.

대홍수 물난리로 남편은 죽고 유리부인은 죽기 직전 아이를 출산한다. 그 아이는 괴기스럽게도 박쥐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태어난다. 물난리로 비뫼시는 아비규한이 되고, 시체를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 신원 확인조차 없이 다같이 묻어버릴 정도로 치안과 국가 행정은 마비 상태에 이른다. 이에 콜레라가 창궐하고 빈민가의 시민들은 더욱 가난해지고 공권력도 점점 힘을 잃어간다. 비슷한 시기에 가시여왕은 아이를 출산한다. 이 아이의 얼굴은 박쥐와 똑같은 얼굴로 태어난다. 불행하게도 이 아이는 자아가 붕괴된 채 태어나 짐승과 같은 행동을 한다. 절대왕권의 왕국, 카르마의 도시 비뫼시의 앞날과 시민, 대홍수 고아, 여왕의 아들의 앞날은...

 


 

이 소설의 주인공인 42번은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울 가능성이 있었지만 그날 일어난 대홍수, 명백히 인재라고 해야할 바로 그 재난 때문에 번호로 불리우게 된 고아이다. 다른 소설이라면 분명 주인공의 위치이지만 이 책에서는 주인공이라 부르는 것조차 애매하다. 이 책에서는 누구도 주인공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이야기의 전개가 42번에 맞춰져 있지만 이야기를 이끌고 가지는 않는다. 이쯤 되면 주인공은 없거나 모두가 주인공일 수 있다. 소설 속 전지적 시점의 스토리텔링을 하는 작가가 주인공이 되는 셈이다.

작가는 독자의 시선을 붙잡고 이야기가 흐르는 곳마다 들여다보게 한다. 익숙하지 않은 서사 방식임에도 불구하고 첫 페이지부터 독자의 시선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대단한 스토리텔링의 예를 보여주고 있다. 작가 특유의 스토리텔링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소설의 전개 등 구성력도 뛰어나다. 소설 속 사건 하나하나가 전부 개인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유기적 연관관계를 맺고, 가끔은 억지스러울 수도 있지만 작가는 완력으로 독자를 이끄는 듯한 구성 능력도 갖춘 것으로 보인다.

 


 

중견 소설가 정유정은 저자에 대해 “독자를 끌고 가서 기어코 끝을 보게 만드는 이야기의 완력”을 보여준다는 평을 내놨다. 지금 이 책을 읽어보니 정유정 작가의 평이 설득력을 얻는다. 정유정 작가는 2015 한경신춘문예 장편소설 공모작 심사에서 홍준성이 제출한 작품을 장편소설 부문 당선작으로 내면서 이 같은 심사평을 했다고 한다. 저자의 지적 수준 역시 소설 전개 능력을 뛰어넘는 굉장히 높은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를 연상케하는 것과, 절대왕권의 독재정치, 절대왕권 아래서 신음하며 피폐해가는 시민의 삶, 서서히 무너지는 공권력 등 고대부터 현대까지 세계사의 중심에 섰던 정치 권력들을 두루 갗춘 느낌의 절대왕권의 여왕을 내세워 소설의 극적 부분을 담당케 한다. 또 제목으로 채택한 '카르마'란 용어도 범상치 않다.

카르마(karma)는 불교에서 말하는 심신의 활동과 일상생활을 뜻한다. 불교에서 중생이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선악의 소행을 말하며, 혹은 전생의 소행으로 말미암아 현세에 받는 응보(應報)를 가리킨다. 산스크리트 Karman의 의역으로, 음역하여 갈마(?磨)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신업(身業)·구업(口業)·의업(意業)으로 나누고 이를 삼업이라 하는데, 신업은신체적 행동으로 나타나고 구업은 언어적 표현으로 나타나며 의업은 정신적 활동으로 나타난다. 대개는 전생에 죄를 많이 져서 이 세상에 와 고생한다고 할 때처럼 쓰인다. 부정적으로 상황을 비난할 때 주로 쓰이는 용어다.

 


 

즉, 이 소설은 인간사를 관통하는데 특정 시대나 지역을 뛰어넘는다. 가장 자주 등장하는 42의 이야기는 모든 역사와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 같다. 결국 42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다. 비판적, 우화적 성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글에는 에너지가 넘친다. 한 문장, 한 문장마다 작가가 쉽게 쓰지 않았을 것이란 느낌이 강하게 온다.

인물의 대사를 활용해서 역사와 철학적 지식을 엿볼 수 있다. 표현도 대화법으로 소크라테스가 떠오르는 건 독자만의 과민한 탓일까. 단순한 대화 같지만 한 단어 한 단어가 매우 절제돼 있고, 다듬어졌다. 다양한 지식과 높은 소설 작성 능력, 그리고 전개와 구성 능력 등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독자로서는 읽기만 해도 독자의 머릿속에 저장돼 있는 지식을 이리저리 찾아내는 데 신경 써야 할 정도로 지식이 동서고금, 가상과 현실, 실제인듯 상상인듯 현실인듯 느낌마저 몽롱한게 하는 텍스트의 매력은 한 번 빠지면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지식 탐구의 늪 같다는 느낌도 든다. 그 지식은 단순 지식이라기보다 역사와 철학,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삶에 대한 지독한 사유의 결과가 아닐까 생각된다.

 


 

모두 9장으로 구성돼 있는 이 작품의 중간에 '악곡 없는 간주곡'이라는 연극이나 오페라의 대사 같은 대목이 나온다. 내용도 옛날 그리스 시대의 희곡처럼 시적(詩的)이다. 당장이라도 오페라나 뮤지컬의 대사로 다듬어 무대에 올려도 될 만큼 압축적인 노래 가사 같다. 독자의 긴장을 풀어주려는 것인지, 아니면 긴장감을 더 조이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독특하고 실험적 구성이다. 이런 저런 이유를 다 합쳐도 이 소설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사회 풍자적이고 시적이라는 점이다. 독자는 소설을 평가할 능력은 갖추고 있지 않지만 재밌다, 재미없다 정도는 가릴 줄 안다. 이 모든 요소를 감안하더라도 요즘 소설로서는 보기 드문 수작(秀作)임에는 틀림없다.

 

저자 : 홍준성

 

1991년 부산 출생. 부산대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2015년 제3회 한경 청년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에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장편소설 《열등의 계보》가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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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화가들 - 살면서 한 번은 꼭 들어야 할 아주 특별한 미술 수업
정우철 지음 / 나무의철학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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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국내외에 잘 알려진 미술계 거장들의 삶과 사랑, 그리고 예술관 등에 관한 개별적 '작가론'이자 그들의 삶의 공간을 비춰준 서치라이트다. 도슨트 정우철이 쓴 『내가 사랑한 화가들』은 예술가들의 '사적 공간(그가 허용한)'을 들여다보는 기회를 독자들에게 제공한다. 잘 알려진 내용도 있지만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이 더 많다. 저자는 이 책을 그림 감상을 하는 사람들 중 그림을 감상하는 법을 잘 몰라 당혹해하거나 재미 없어 하는 독자들에게 그림 감상은 모두 자신들의 감상법에 따라 하면 되는 것이지만 기초적인 감상법은 스스로 세워두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그림에 숨겨진 의미를 찾든, 재료를 살펴보든, 구도와 기법과 사조를 분석하든,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감상하면 충분하다"며 "그러나 이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며 대체적으로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꾸준히 접하면서 하나씩 하나씩 알아가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화가마다 다른 그림을 그린다. 자신의 생각과 말과 경험을 포함해, 일일이 표현하지 못했던 모든 것을 그림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화가이다. 그들의 인생을 따라가는 것은 어쩌면 그 화가의 언어를 배우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그림 감상에 대한 영감을 주는 말을 한다. 이 책을 펴낸 이유이기도 하다.

 


 

도슨트계의 아이돌, 전시장의 ‘피리 부는 사나이’라는 닉네임을 갖고 있는 저자는 미술관을 찾은 관객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림과 사랑에 빠지도록 돕는 사람, 국내 최고의 지식인들이 진행하는 EBS 클래스E에서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미술의 대중화에 앞장서는 사람이다.

지금 대한민국 미술계에서 가장 많은 화제를 모으고 있는 정우철 도슨트가 첫 책을 출간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출간을 환영했다고 한다. 책 제목은 『내가 사랑한 화가들』. 흔한 듯, 뭔가 담겨 있는 듯한 제목이다.

“그저 도슨트가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림을 공부하다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특별히 사랑하는 열한 명의 화가를 직접 골라 그들의 인생과 대표작들을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의 키워드가 '사랑'임을 어렴풋이 감지한다.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화가였던 어머니가 그림을 그리고 개인전을 여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란 덕에 일찍부터 미술과 친숙했다고 한다. 대학 졸업 후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다가 ‘나를 정말 행복하게 하는 일이 뭘까’ 고민한 끝에 무작정 퇴사했고, 그림을 보며 즐거워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고 도슨트가 되기로 결심한다. 미술 공부와 전시장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몇 차례 전시해설을 진행하다가〈베르나르 뷔페전〉의 전시해설을 맡게 되었고, 일본까지 직접 가서 도록을 구하는 등 몇 달간 만반의 준비를 한 끝에 전시회가 대성공을 거두며 도슨트로서 이름을 알리게 된다.

전시회 관계자들에 따르면 정우철 도슨트의 전시해설이 갖는 가장 큰 특징은 유려한 스토리텔링이다. 이전까지의 전시해설은 작품 분석에 주력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이 그림을 어떻게 그렸는지, 이 화가는 어떤 사조에 속해 있었는지 등 정보 설명 위주로 진행하는 해설은 관련 지식을 익히기에는 유익하지만 미술과 친숙하지 않거나 전시회가 낯선 관객에게는 ‘미술은 어렵다’라는 인식을 주는 경우가 많았던 것.

정우철 도슨트는 달랐다. 한 화가의 인생을 탄생부터 죽음까지 한 편의 영화처럼 소개하면서 그가 왜 이러한 선택을 했고 이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지, 이 작품이 화가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이후 화가의 삶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등을 소개하는 데 집중한다. 관객들이 그의 해설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고 감동을 받는 이유는, 대단한 미술 지식을 알아서가 아니라 내 눈앞에 걸려 있는 이 엄청난 그림을 그린 사람이, 나와는 차원이 다른 위대한 예술가이기 이전에 평생 고통받고 고뇌했던 한 인간으로 다가오는 감동 때문이다. 먹고사는 데 아무 필요가 없는 예술을 우리가 끊임없이 갈망하는 이유를, 정우철 도슨트의 해설이 정확하게 채워주는 것이다.

 


 

이 같은 전시회장에서의 스토리텔링 활약을 저자는 이 책에 그대로 녹여냈다. 우선 많은 화가들의 이야기 중에서 너무 많이 알려진 것은 제외하고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거장들 중에서 '사랑'과 관련이 있는 화가들로 생각을 모았다. 또 미술사에 공헌한 정도로 유명한 화가들로 간추렸다. 욕심껏 하다가는 백과사전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일 터 많은 생각과 노력으로 열한 명의 화가를 선정했다. 저자가 밝히지는 않지만 편집진과도 의논을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위대한 예술가라고, 천재라고, 거장이라고 추앙받는 화가들의 인생을 공부하면서 제 나름대로 찾은 그들의 공통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입니다. 그들은 삶에 버거운 고통이 찾아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갔습니다. 그 덕분에 거장이라는 반열에 오를 수 있었죠. 그들에게 어떤 아픔이 있었고 어떻게 이겨냈는지를 공부할수록, 때로는 공감이 됐고 때로는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어느새 화가들의 그림이 제 마음속에 쑥 들어와 있었습니다.”(P. 6)

남들 눈에 잘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기보다 본인이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면, 그런데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아 고민이라면, 이 책과 함께 정우철 도슨트가 들려주는 화가들의 인생에 귀 기울여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서툴고 부족해도 우직하게 자기 삶을 살았던 예술가들을 통해 위로와 격려를 한껏 받을 수 있는 계기가 제공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이렇게 해서 선정한 열한 명의 화가는 이제 독자와 사랑에 빠질 시간이 된다. 샤갈, 마티스, 모딜리아니, 무하, 프리다 칼로, 클림트, 룰루즈 로트레크, 콜비츠, 고갱, 베르나르 뷔페, 에곤 실레 등 11명이다. 성만 적은 화가도 있고, 이름과 성을 함께 적은 화가도 있다. 그렇게 세간에 알려져 있어 어색함을 피하기 위해 독자가 임의로 쓴 것이니 양해 바란다.(저자는 물론 풀 네임으로 차례에 써놓았다)

독자가 이 책을 접하며 기분 좋았던 것은 독자들이 아는 화가들이 많고, 심지어는 아는 내용도 있었다. 독자는 그림의 문외한이다. 그래서 전시회를 자의반 타의반 간 적이 많은데 모두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한 채 주눅들어 간신히 따라다니며 전시회장을 돌아나온 적이 많았다. 지금도 사실 그런 경우가 많다.(최근 1년 여간은 코로나로 그나마 전시회장에도 못 갔다) 전시회장에 못 가면서 전시회를 기다리는 많은 그림 애호가들의 타는 목을 적셔주기 위해 미술에 관한 책들이 많이 나왔다. '쏟아져나왔다'는 표현은 부적절할지 몰라도 예년에 보기 드물게 많이 출간된 것은 사실이다. 아마 그림과 함께 실린 해설과 설명이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오는 우울과 불안감을 다소 진정시키고 달래주는 효가가 있기 때문이리라. 독자도 그들 중 한 사람이다. 덕분에 많은(?) 책을 접했고 그림에 조금 더 익숙해진 느낌을 가진 정도로 나아졌다. 개인의 사적 자부심이지만 이 책을 통해 확인된 느낌이어서 기분이 좋았던 것이다.

 


 

특히 독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클림트와 샤갈의 얘기에 많이 매료됐다. 두 화가의 우리나라 전시회 때 모두 가밨다. 그림을 통해 본 두 화가는 확실히 느낌이 달랐다. 샤갈 전시회장은 약간은 우울하지만 아늑한 느낌이 들었고, 클림트 전시장은 밝고 화려함으로 전시회 참관객을 압도했다. 단지 독자만의 느낌인지 모르지만 샤갈의 그림들은 원색 중 푸른색과 흰색, 붉은색이 많았고, 클림트 전시장은 밝은 조명 아래 금색의 그림들, 크기로 압도하는 그림 등 화려한 궁궐 안에 들어온 느낌을 주었다. 물론 저자의 생각을 조금 다르게 두 화가를 이 책에 모셨지만 독자 생각까지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저자는 샤갈의 그림 중 '비레프스크 위에서'란 작품 해설에서 "공기처럼 허공을 떠돌며 살아가는 동시에 공기처럼 누구나 필요로 하는 이간이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담은, 당시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아야 했던 유대인들의 절박한 상황을 표현한 것"(p. 16)이라면서도 샤갈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순간부터 마지막 작품을 완성할 때까지, 샤갈의 그림에는 사랑이 빠지지 않았다. 인생의 어두운 터널을 통과할 때조차도 그는 사랑이 주는 다채로운 감정을 붓으로 표현했다. 삶에 기쁨을 가져다 준 것도, 고통을 가져다준 것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 가로막혀 실의에 빠졌을 때 다시 일어서게 해준 것도 모두 사랑이었다"고 말한다.

"삶이 언젠가 끝나는 것이라면 삶을 사랑과 희망의 색으로 칠해야 한다."(p. 38)

 


 

저자는 클림트의 '키스'에 대한 작품 해설에서도 "남성은 클림트 본인이지만 여성은 에밀리 플뢰게라는 연인으로 클림트는 에밀리를 향한 뜨거운 사랑과 그녀가 자신을 떠날 것 같은 두려움을 함께 느끼는데, 이 작품이 우리를 유독 사로잡는 이유도 황홀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운 두 사람의 심정이 잘 느껴져서이다. 〈키스〉는 의심할 여지 없이 클림트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키스〉 이후 클림트는 에밀리 플뢰게와 27년을 함께하는데, 클림트는 육체적 사랑을 포함한 단순한 연인이 아닌 정신적 지주이자 예술의 동반자로서 그녀를 대한다. 그런데 에밀리 또한 평범한 여성은 아니었다. 그녀는 당시 빈에서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였는데 당시 사교계에서는 에밀리의 옷을 입는 게 유행일 정도로 그녀의 인기가 대단했다. 당시 많은 여성들이 클림트에게 구애를 했는데 에밀리는 그렇지 않았다"고 덧붙인다.

 

저자 : 정우철

 

‘한 폭의 그림 같은 스토리텔링’, ‘화가와 사랑에 빠지게 만든다’, ‘전시를 봤을 뿐인데 화가의 자서전을 씹어 먹은 기분이다.’ 작품 분석이 주를 이루던 기존의 미술 해설에서 벗어나 화가의 삶을 들려주는 방식으로 관객들을 매료시키며, 입 문 5년 만에 스타 도슨트로 자리매김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시해설가. 특히 EBS 클래스E 〈도슨트 정우철의 미술극장〉에서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미알못’들에게 그림 감상하는 재미를 선사했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1989년에 태어나 직장 생활을 하던 중 ‘행복한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무작정 퇴사했다. 평소 그림을 좋아한 데다 화가였던 어머니의 개인전에서 처음 전시를 경험했던 기억을 떠올리고 전시장 스태프로 일하며 도슨트가 되 기 위한 준비를 했다. 2019년 8월 우연히 맡게 된 〈베르나르 뷔페전〉 전시해설이 SNS에서 엄청난 화제를 모으 며 이름을 알렸고, 이후 툴루즈 로트레크, 알폰스 무하, 앙리 마티스, 마르크 샤갈 등의 전시해설을 맡으며 ‘믿고 신청하는’ 도슨트로 급부상했다. 지금은 전시해설뿐 아니라 여러 강연과 인터뷰를 통해 그림 감상하는 재미를 알 리는 데 힘쓰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미술을 쉽고 친근하게 접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이 책 《내가 사랑한 화가들》을 썼다. “예술 가들의 인생을 공부하다가 내 인생이 바뀌어버린”, 그래서 특별히 사랑하는 열한 명의 화가들이 이 책을 읽는 이 들의 삶도 바꿔주길 바란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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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판결문 - 이유 없고, 무례하고, 비상식적인 판결을 향한 일침
최정규 지음 / 블랙피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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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국민은 법에 대해 그다지 잘 알지 못한다. 법이 어려워서이기도 하겠고, 가장 큰 이유는 법을 몰라도 세상 사는 데 큰 지장은 없기 때문이리다.독자 역시 대학 교양학부 때 「법학개론」을 한 한기 선택 수강한 것을 끝으로 법과는 무관하게 살아왔다. 죄를 짓지 않는 한 법 조항이나 법 내용을 몰라도 어떤 불이익을 받거나 삶에 문제가 초래되지 않았다. 그러다 법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3년 전부터 갈등을 빚었던 '검찰 개혁' 때문이었다.

왜 개혁을 해야 하느냐에 대한 답변은 명확한 듯하지만, 그럼 왜 개혁에 반대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꽤 어색했던 기억이 있다. 이는 급기야 국회 여야 극한 대치와 몸싸움, 국회 상임위원장 야당 보이콧,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의 대립 등 끊임없이 문제가 제기되며 극한 갈등으로 이어졌다. 마침내는 진영 논리로 이어져 국민이 양쪽 편으로 갈리어 대립하는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노정했다. 화합과 일치단결로 나아가도 이루어질까말까한 경제 선진국 자리도 팬데믹과 함께 뒤로만 미뤄지고 있는 형국이다. 인구와 1인당 GDP를 곱해 산출하는 국가경제력을 10~11위에 걸쳐놓고 한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젠 우리 뒷 순위를 잇는 나라들의 추격에 우왕좌왕하는 모양새여서 더욱 긴장감이 감돈다.

거기에 최근 LH공사 일부 직원의 부동산 불법투기가 적발돼 임기 마지막 1년을 앞둔 문재인 정부의 힘을 빼놓고 있다. 팬데믹 방역에도 국민 방역 피로감에 정부 불신이 겹치면서 제대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선량한 국민만 방역 협조하느라 힘들고, 한편으론 일 못해 수입 없고... 양뺨을 다 맞는 격이다. 한시바삐 코로나 해제를 기다리는 온 국민의 마음은 점점 무거워지고 있다. 올해엔 바캉스를 갈 수 있으려니 하며 은근히 기대했던 다소 여유 있던 국민들도 기대감이 무너지는 느낌에 분노를 정부에 표출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왜 사법개혁을 해야 하느냐'의 문제에 대해 질문하면 법조계에 있는 사람도 양 편으로 갈라지고, 법에 대해 아무런 지식도 없는 일반 국민들도 두 편으로 갈라진다. 서로의 의견은 팽팽히 대립되며 과연 이번 정부 임기 내에 가능한 일이나며 회의론적 발언을 내는 법조계 인사도 하나둘씩 늘고 있다. 지난 검찰 개혁 때 법원 개혁도 함께 해야 한다는 주장에 자체 개혁과 판사 탄핵도 해야 한다는 의견이 거세게 일어난 적이 있다. 지금은 다소 가라앉았지만 이전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눈밖에 났던 일부 판사들의 부각된 행동도 있었고, 조용히 법원 자체로 잘 해결하겠지 하는 바람은 역시 무지에서 나온 낙관(독자의 경우)이었다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법원 개혁은 단순히 사람만 바꾼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무지한 독자는 이 책 『불량 판결문』을 읽곳서야 깨달았다. 독자가 법을 몰라도 어지간히 모른 게 아니었나보다는 생각이 들 때는 부끄럽기까지 했다. 이 책은 법원 내부, 특히 재판 과정을 자주 접하는 최정규 변호사가 썼다. 내용의 대부분은 법 해석과 판사의 자질, 재판 과정의 문제점, 문제 있는 재판의 결과 등이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이 같은 법원의 문제점은 하나씩 하나씩 쌓이고 있던 것이었다.

 


 

이 책은 ‘상식에 맞지 않는 법’과 싸우는 최정규 변호사가 부조리하고 비상식적인 법정을 향해 일침을 날리는 사회 고발서다. 불의를 보면 물불 가리지 않고 싸움을 거는 탓에 검경 블랙리스트에 오른 저자는 이번엔 누구도 쉽게 건드릴 수 없었던 대한민국의 마지막 특권, 재판부에 거침없이 반기를 든다. 입 꾹 닫은 법조계를 대신해 사법부의 부끄러운 민낯을 낱낱이 드러내고, 악한 법과 불량한 판결에 함께 맞서는 법을 소개한다.

저자는 2014년 신안군 염전 노예 사건을 비롯해 자신이 지나온 부당한 사건을 예로 들며 법정의 뒷모습을 생생히 포착해 이 책에서 부각시켰고, 오늘도 국민의 공분을 일으킨 불공정하고 불량한 판결을 향해 “그 판결은 유죄”라고 당당히 외친다. 기득권의 논리로 가득한 판례 대신 상식에 부합하는 법 해석을 기대하며, ‘진짜 공정과 정의’란 무엇인지 심도 있는 질문을 던진다. 저자와 함께 책 속으로 한걸음 들어가본다.

 


 

법은 국회에서만 만들어질까? 우리는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나쁜 법의 책임을 입법기관에 물으면 될까? 신안군 염전 노예 사건, 저유소 풍등 화재 사건 등 사회적 약자의 공익을 위해 ‘상식에 맞지 않는 법’과 싸워온 최정규 변호사는 “좋은 법도 나쁜 법도 국회가 아닌 법원의 해석을 통해 재생산될 수 있다”고 말하며 악법(惡法)의 책임을 법 해석의 주체인 판사와 법정에게 묻는다.

저자가 변호사로서 풀어놓는 법정의 생생한 뒷모습을 읽다 보면, 대한민국 사법기관이 왜 불신의 아이콘이 되었는지가 한눈에 보인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재판을 받을 일이 생겼다 치자. 기껏 시간을 내 법원에 방문해도 판사와의 약속 시간은 늦어지기 일쑤다. 판사가 짧은 시간에 많은 재판을 처리하겠다는 무리한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어떤 판사는 한 시간 10분 동안 무려 40여 건이 넘는 재판을 처리하겠다고 일정을 짰다. 한 재판당 2분 안에 끝내겠다는 말이었다.

책에 따르면 이유도 알려주지 않은 채 공판 기일이 변경되기도 한다. 선고를 받기까지가 아니라 재판이 열리기까지 1년이 넘게 소요되는 일은 허다하다. 누군가에게는 전 재산보다 큰 2,500만 원이 법정에 가면 ‘소액사건’으로 치부되고, 그 때문에 판결의 이유가 생략되기도 한다. 어떤 판사는 재판 전에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소송 결과를 예단하는 듯한 말을 하고, 또 어떤 판사는 긴장해서 답변을 하지 못하는 피고인에게 “귀가 안 들리시나?”라는 모욕적인 발언을 한다.

법원이 이처럼 무례하고 비상식인 모습으로 일관한다면, 과연 법이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 저자는 대한민국 법 시스템의 근본적인 문제를 파고들며 부조리하고 불공정한 법정의 현주소를 공개하고, 사법개혁이 시급한 대한민국의 현실을 고발한다.

 


 

책은 계속해서 지적한다. 저자는 법원의 부조리한 재판과 판사의 직무유기에 가까운 '실패한 재판' 등의 사례를 많이 갖고 있다. 재판 현장에 있는 변호사기에 느낄 수 있는 사례들이다. 패소한 이유가 생략된 판결문, 이유 같지 않은 이유가 버젓이 기록된 판결문, 오타 판결문, 기존 판례를 기계처럼 복사 붙여넣기 하는 판결문…. 믿을 수 없지만 지금도 법정에서는 이런 불량 판결문이 꽤 자주 탄생하고 있다고 한다. 온갖 억울함과 부당함을 호소할 마지막 관문인 법원에서 계속해서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과연 우리의 사법부가 얼마나 신뢰 있는 기관으로 국민에게 인식될까? 국민의 신뢰 없는 법원이란 민주주의 사회에서 설 자리가 없는 것일 터. 신뢰할 회복한 데 배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더 이상 재판에 의한 억울한 피해자 없이 소외되고 약한 국민의 마지막 권리를 지켜줄 법원과 판사들에게 바라는 점이기도 하다.

저자에 따르면 변호사이자 활동가로서 수많은 ‘비상식적인’ 일을 겪어왔다. 그중 가장 화가 났을 때는 국민을 지켜야 할 국가가 불량한 판결을 내림으로써 오히려 국민에게 피해를 입혔을 때다. 한 예로 염전 노예 사건 재판부는 자신의 이름과 생년월일만 쓸 수 있는 지적장애인 명의의 조작된 처벌불원서를 제대로 검증도 하지 않고 인정해버려 가해자에게 유리한 양형 참작 사유를 만들어줬다. 또 10년 치 최저임금에 해당하는 8,000만 원을 공탁했다고 집행유예 선처를 내렸던 판결은 이후 비슷한 다른 사건에도 나쁜 영향을 미쳤다.

노동자 산재 사망 사건에서 내려지는 불량한 판결은 더 나쁜 영향력을 행사한다. 법원이 늘어놓는 솜방망이 양형이 사업주로 하여금 노동자의 안전을 위한 선택 대신 경제적 이득을 위한 선택을 하게 만든 것이다. 사업장에서 노동자가 사망해도 사업주는 집행유예 선처를 받을 수 있고 최대 1억 원만 배상해주면 되는 현실에서, 사업주가 더 경제적인 선택을 하는 걸 현재 법원의 태도로 막아낼 수 있을까?

 


 

저자는 판결은 기존 판례에 의지할 때가 많고, 따라서 한 번 잘못 내려진 판결은 오래도록 남아 많은 피해자를 양산한다고 강조한다. 법원의 현명한 법 해석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저자는 안일하고 관성에 젖은 태도로 판결을 내리는 법원의 행태를 경계한다. 그리고 판결에 ‘법관의 치열한 논증’을 담으라 말한다. 국민에게는 그런 예의 있는 판결을 받을 권리가 있다.

많은 법조인들이 법원의 눈치를 보기 급급할 때, 저자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법원의 불량한 서비스와 불량한 판결문에 눈감아선 안 된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야만 잘못된 행태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신념으로 그는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디딤돌 판결·걸림돌 판결 선정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판결문 모니터링을 통해 국민 감시 체계를 구축하고, 판결문이 공익적 가치를 다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아직 판결문이 공개되는 범위는 지극히 제한적인 탓에 법조인이 아닌 일반인들이 판결문 모니터링 작업을 하기는 쉽지 않다. 대신 저자는 어려운 법원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국민이 직접 할 수 있는 가장 쉽고 대표적인 대처방안으로 ‘재판 녹음·속기 신청’을 소개하고 있다. 이에 더해 불량 판결을 가장 현실적으로 A/S 받을 수 있는 3심제의 활용, 법관 임용에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제도 등 명품 판결을 이끌어내기 위한 여러 현실적인 경로를 모색한다.

매번 법정에 쓴소리를 하는 탓에 종종 “변호사 그만하고 싶어요?”라는 말을 듣지만, 그럼에도 저자는 이 투쟁을 멈추지 않는다. “우주상에 사람의 생명보다 더 귀중한 것을 있을 수 없다”고 말하는 판사, 시민을 존중하고 우러러보며 ‘존댓말 판결문’을 작성하는 판사가 우리 사회에 더 많아지기를, 이로써 법과 정의를 둘러싼 국민의 신뢰가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저자는 끊임없이 재판에 잘못을 묻는다.

 


 

사법부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곱지 않고 사법개혁을 외치는 목소리는 날로 높아지고 있지만, 지금까지 이렇게 법원의 부당하고 불합리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책은 없었다. 이 책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기득권의 논리로 가득한 판례에 기대는 대신 상식에 맞는 법을 위해 함께 투쟁하자는 것. 우리가 목소리를 높일 때 비로소 법원의 문턱은 낮아질 수 있다.

 

저자 : 최정규

 

권리는 저절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라는 믿음 아래 ‘상식에 맞지 않는 법’과 싸우는 변호사 겸 활동가. 공익 법무관, 대한법률구조공단 소속 변호사로 일하며 부당하고 불공정한 법 때문에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이에 국민을 대표해 나쁜 법과 불량한 판결에 이의를 제기하는 변호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2014년 신안군 염전에서 100여 명의 지적장애인을 상대로 행해졌던 노예 사건을 긴 싸움 끝에 승소로 이끌었지만, 평소에는 판례상 패소할 것이 뻔한 사건에 맞서는 게 일상이다. 기득권의 논리로 가득한, 틀에 박힌 판례를 거부한다.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국경 없는 마을’ 안산 원곡동에 2012년 원곡법률사무소를 연 것을 시작으로 이주민, 장애인, 국가 폭력 피해자, 공익제보자 등 사회적 약자의 기본권과 공익을 위해 변호사로서 눈치 보지 않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2015년 한국장애인인권상, 2017년 사랑샘재단 제2회 청년변호사상, 2020년 참여연대 공익제보자상, 제1회 홍남순변호사 인권상, 제1회 MBN 공익변호사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사)경기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소장, SBS 〈인-잇〉 필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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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걷는 밤 - 나에게 안부를 묻는 시간
유희열.카카오엔터테인먼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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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보자마자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 「밤을 잊은 그대에게」(약칭 '밤그대')가 생각난다. 밤 방송 프로그램, 음악, 에세이라는 키워드가 독자를 옛날 추억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5060세대임을 자백하는 격이지만 이 세대에게 밤그대는 전설과 같은 것이다. 깊은 밤, 아름다운 음악과 따뜻한 사연으로 청취자에게 휴식과 즐거움을 주기 위해 시작한 프로그램이다. 요즘 말로 '신드롬'이 생길 만큼 청춘 남녀의 귀를 사로잡았다.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의 전성기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독자도 마니아는 아니었지만 자주 들었던 라디오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의 시작은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밤 12시부터 2시간 가량 진행됐던 것 같다. 밤 프로그램이니만큼 조용한 음악이 신청곡이고 방송곡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때는 밤 TV가 자정쯤부터는 끝났기 때문에 TV 무풍지대에서 청소년들과 청춘 남녀의 마음까지 사로잡은 프로그램으로 대단한 인기였다.

특히 출연자의 속삭이는 듯한 아나운스멘트는 지금도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으로 현재까지 출연자와 스탭진만 바뀌면서 이어오고 있다. 최장수 프로그램이 아닌가 싶다. 그때는 산업사회로 치닫는 한복판에 있어서 젊은 노동자부터 화이트칼러 직장인까지 이 프로그램을 좋아하지 않은 사람이 드물 정도였다. 야근하는 곳도 이 프로그램을 틀어놓고 일했다는 곳도 많았다. 일의 피로를 풀어주고 음악의 갈증을 해소해주는 최고 프로그램의 대명사였다.(프로그램 방송사 사이트로 들어가 확인해보니 1964년부터 시작(당시 TBC)돼 지금은 KBS 제 3방송에서 유지원 아나운서가 진행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의 장기 지속으로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의 피로감이 큳 요즘이다. 마음의 환기가 절실한 지금, ‘프로 산책러’ 유희열이 일상 속의 작은 여행을 위한 밤의 산책지를 책으로 펴냈다. 카카오TV 오리지널 예능 「밤을 걷는 밤」을 알차게 재구성한 이 책은 도시의 고즈넉한 밤 풍경, 유희열의 산책길 토크, 재기발랄한 일러스트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페이지를 넘기는 것만으로 산책하는 기분이 드는 사랑스러운 에세이다. “익숙한 동네도 밤에 걸으면 전엔 전혀 몰랐던 게 보인다”는 저자 유희열은 그만의 날카롭고 따스한 관찰력으로 우리가 알지 못했던 도시의 다정함을 꼼꼼히 비추어 보여준다.

이 섬세한 기록은 무력하고 무거운 마음을 한 자락씩 일으켜 당장이라도 집밖을 나서 자기만의 밤길을 걷고 싶게 한다. 마음이 답답할 때, 생각하고 싶지 않을 때, 만날 수 없는 누군가가 그리울 때, 사는 게 문득 견딜 수 없이 시시하게 느껴질 때, 거리로 나서 천천히 그의 뒤를 따라 걸어보는 것도 힐링이자 마음 치유의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책 속의 그가 그랬듯, 돌아오는 길에 독자들의의 마음은 산책을 나설 때와 다른 말을 들려줄 것이다.

 


 

저자는 뛰어난 음악성과 따뜻한 감수성으로 폭넓은 세대로부터 사랑받아온 뮤지션이다. 그가 산책 중의 사색을 담은 에세이 『밤을 걷는 밤』을 독자들에게 선보였다.

베스트셀러 삽화집 『익숙한 그 집 앞』 이후 22년 만의 신작이다. 카카오TV 오리지널 예능 「밤을 걷는 밤」을 재구성한 이번 에세이엔 『익숙한 그 집 앞』 속의 감성과 「대화의 희열」 속의 연륜이 고루 배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밤은 하루 중 제 에너지가 가장 반짝이는 시간이에요.”

「FM 음악도시」부터 「스케치북」까지 유독 심야 방송 진행을 자주 맡아온 저자 유희열은 한결같이 ‘밤의 남자’였다.(이 표현은 임경선 작가가 사용했다고) 평소에도 밤에 걷기를 좋아하는 저자는 ‘그냥 아무 준비 없이 같이 걸으면 된다’는 제작진의 출연 요청을 선뜻 수락했다. 독자는 밤 음악방송과 위 사진의 결합으로 '서울 야곡'이 생각나 어쩔 수 없는 5060 세대임이 알려지지만 '꼰대'로부터는 벗어나는 느낌이어서 다소 위로를 받는다.

 


 

그로부터 약 4개월간, 청운효자동, 홍제천, 성북동, 합정동 등 서울의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시종일관 놀라고(“와! 저게 뭐야?”), 감탄하고(“와, 여기 이런 게 있었어?”), 쓸쓸해한다(“와…… 여기가 이렇게 변했어?”). 특유의 익살과 즉흥적인 감탄사로 오디오를 가득 메웠던 이 영상은 “잊었던 라디오 감성을 고스란히 되살린 힐링 방송”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폭발적인 조회 수를 기록했다. 대본도, 조명도 없이 오직 ‘혼자 걷는다’는 한 줄짜리 연출로 시작한 〈밤을 걷는 밤〉이 수많은 시청자의 마음을 붙든 건 ‘유희열의 시선’이 있기에 가능했다.

‘매의 눈’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그는 우리가 무심히 스치는 일상의 풍경들을 한 컷, 한 컷 남김없이 따사롭게 비춘다. 먼발치서 걷는 행인의 등 뒤, 인적 없는 버스 정류장, 담벼락의 풀꽃 등, 지극히 평범한 장면들도 그의 시선이 닿으면 한 폭의 다정한 그림이 된다. 사는 게 문득 시시하게 느껴진다면 찬찬히 그의 시선을 따라가보자. 잘 안다고 믿었던 길들은 낯선 여행지가 되고, 쓸쓸하고 삭막했던 밤의 길목은 더없이 특별하고 매혹적인 산책지가 될 것이다.

 


 

“이 책은 산책을 닮은 에세이입니다. 산책하는 마음으로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제가 좀 앞서 걸어가고 있고 한번 같이 밤 산책을 떠나신다, 하는 마음으로요.”(- 출간 전 저자 인터뷰 중에서)

이 책에는 독자가 잘 아는 길도 있고, 처음 들어본 길도 있다. 독자도 서울에서 50여년을 살았으니 웬만한 곳은 다 아는 편인데 처음 들어본 곳이 여러 곳 있다는데 저으기 놀랐다. 그러나 이내, 1,000만 명이 넘게 사는 서울 구석구석을 다 안다는 것은 직업상 서울을 이잡듯 다니는 사람이 아니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을 바꿔먹는다. 독자가 유독 서울을 더 사랑해서 골목 구석구석을 일부러 돌아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는 곳이 많다는 것은 흠이 되지 않을 것 같다.

“오르막길에서는 숨이 차면 쉬엄쉬엄 갈 수 있지만, 내리막길에서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누가 뒤에서 등을 툭툭 미는 것 같다. 산도, 인생도, 오를 때만큼이나 잘 내려가는 것이 중요하다.” 책 속에 저자가 사용한 멘트가 마치 귓가에 스치듯 들려온다.

 


 

산책하는 모습은 살아가는 모습을 닮게 마련. 담담하고 차분하게 기억을 되짚는 그의 산책기에는 인생을 대하는 그만의 태도가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미로 같은 골목길에 갇혀 우왕좌왕하다가도 느닷없이 나타난 옥수수밭에 감동해 넋을 놓고 감상하고, “길을 잃어버리는 것도 여행의 한 방법”이라며 짐짓 여유를 부리는가 하면, 숨이 턱까지 차도록 오른 어느 산 정상에서는 “살다 보면 때로 돌이킬 수 없는 길에 들어서지만 순리대로 걷다 보면 어딘가엔 도착하더라”는 어른의 조언을 툭 내어놓기도 한다.

추억이 깃든 동네로 떠난 밤이면 시선은 늘 풍경 너머 아득한 기억을 향한다. 태어나고 자란 청운효자동에서는 텅 빈 골목에 혼자 남아 있던 어린 시절의 자신을 생각하고, 홍제천 물길을 따라 걸으면서는 “재래시장 가서 과일 한 알 사는 것이 소원인” 어머니를 생각하고, 너무 변해 낯설어진 홍대 거리를 걸으면서는 “별일 없이 만나 시시한 얘기만 나누고 아무 소득 없이 헤어지던” 친구를 생각한다. 그렇게, 홀로 걷는 그의 밤은 잊고 지낸 ‘나’와 ‘우리’의 안부를 묻는 길이 된다.

 


 

예전엔 온통 뽕밭이었다는 잠실을 지금의 우리가 상상하기 어렵듯, 오늘의 풍경도 언젠가 누군가에게는 거짓말 같은 풍경이 될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러니 부지런히 기억 속의 사진을 찍어두자고. 길고 긴 밤을 걸은 끝에 그는 또 말했다. 이제는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와 그 길을 함께 걷고 싶었다고, 그랬다면 내게 해줄 얘기가 참 많았을 거라고. 이제 그는 그 길을 딸과 함께 걷는다. 딸의 마음속에 언젠가 거짓말 같은 추억이 될 풍경을 새기며. 이 모든 기록은 익숙한 하루를 바라보는 우리 눈에 다른 안경을 씌운다. 지루했던 오늘을 언젠가 사라질 애틋한 풍경으로, 훗날의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로 덧칠하며, ‘견디는 삶’을 떠나 ‘만끽하는 삶’으로 가는 길을 안내한다.

 

저자 : 유희열

 

28년째 대중음악을 하고 있고, 심야 라디오 DJ를 거쳐 방송인으로 살고 있다. 라디오 [유희열의 FM 음악도시]부터 뮤직 토크쇼 [유희열의 스케치북]까지, 90년대 말부터 줄곧 ‘밤의 진행자’로 활약해왔다. ‘그냥 밤에 산책하면 된다’는 제작진의 간단명료한 설득에 넘어가 카카오TV [밤을 걷는 밤]에 출연, 약 4개월간 서울의 동네 구석구석을 걸으며 그만의 기민한 관찰력과 오랜 DJ 생활로 특화된 심야 감성을 여과 없이 발휘했다. 평소에도 밤에 걷는 걸 좋아하지만 제작진이 물색해준 다양한 코스를 걸으며 예전엔 미처 몰랐던 서울의 아름다움을 많이 알게 됐다.

 

저자 : 카카오엔터테인먼트

 

국내 최초 디지털 모닝 예능쇼 [카카오TV모닝]의 한 코너로 ‘연출 없는’ 예능 〈밤을 걷는 밤〉을 제작했다. 조명도, 대본도 없이 촬영한 [밤을 걷는 밤]은 도심 속 매력적인 산책 코스와 밤 풍경의 아름다움을 감각적인 영상으로 담아내, “라디오 감성 충만한 힐링 방송”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큰 인기를 끌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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