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 판결문 - 이유 없고, 무례하고, 비상식적인 판결을 향한 일침
최정규 지음 / 블랙피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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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국민은 법에 대해 그다지 잘 알지 못한다. 법이 어려워서이기도 하겠고, 가장 큰 이유는 법을 몰라도 세상 사는 데 큰 지장은 없기 때문이리다.독자 역시 대학 교양학부 때 「법학개론」을 한 한기 선택 수강한 것을 끝으로 법과는 무관하게 살아왔다. 죄를 짓지 않는 한 법 조항이나 법 내용을 몰라도 어떤 불이익을 받거나 삶에 문제가 초래되지 않았다. 그러다 법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3년 전부터 갈등을 빚었던 '검찰 개혁' 때문이었다.

왜 개혁을 해야 하느냐에 대한 답변은 명확한 듯하지만, 그럼 왜 개혁에 반대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꽤 어색했던 기억이 있다. 이는 급기야 국회 여야 극한 대치와 몸싸움, 국회 상임위원장 야당 보이콧,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의 대립 등 끊임없이 문제가 제기되며 극한 갈등으로 이어졌다. 마침내는 진영 논리로 이어져 국민이 양쪽 편으로 갈리어 대립하는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노정했다. 화합과 일치단결로 나아가도 이루어질까말까한 경제 선진국 자리도 팬데믹과 함께 뒤로만 미뤄지고 있는 형국이다. 인구와 1인당 GDP를 곱해 산출하는 국가경제력을 10~11위에 걸쳐놓고 한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젠 우리 뒷 순위를 잇는 나라들의 추격에 우왕좌왕하는 모양새여서 더욱 긴장감이 감돈다.

거기에 최근 LH공사 일부 직원의 부동산 불법투기가 적발돼 임기 마지막 1년을 앞둔 문재인 정부의 힘을 빼놓고 있다. 팬데믹 방역에도 국민 방역 피로감에 정부 불신이 겹치면서 제대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선량한 국민만 방역 협조하느라 힘들고, 한편으론 일 못해 수입 없고... 양뺨을 다 맞는 격이다. 한시바삐 코로나 해제를 기다리는 온 국민의 마음은 점점 무거워지고 있다. 올해엔 바캉스를 갈 수 있으려니 하며 은근히 기대했던 다소 여유 있던 국민들도 기대감이 무너지는 느낌에 분노를 정부에 표출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왜 사법개혁을 해야 하느냐'의 문제에 대해 질문하면 법조계에 있는 사람도 양 편으로 갈라지고, 법에 대해 아무런 지식도 없는 일반 국민들도 두 편으로 갈라진다. 서로의 의견은 팽팽히 대립되며 과연 이번 정부 임기 내에 가능한 일이나며 회의론적 발언을 내는 법조계 인사도 하나둘씩 늘고 있다. 지난 검찰 개혁 때 법원 개혁도 함께 해야 한다는 주장에 자체 개혁과 판사 탄핵도 해야 한다는 의견이 거세게 일어난 적이 있다. 지금은 다소 가라앉았지만 이전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눈밖에 났던 일부 판사들의 부각된 행동도 있었고, 조용히 법원 자체로 잘 해결하겠지 하는 바람은 역시 무지에서 나온 낙관(독자의 경우)이었다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법원 개혁은 단순히 사람만 바꾼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무지한 독자는 이 책 『불량 판결문』을 읽곳서야 깨달았다. 독자가 법을 몰라도 어지간히 모른 게 아니었나보다는 생각이 들 때는 부끄럽기까지 했다. 이 책은 법원 내부, 특히 재판 과정을 자주 접하는 최정규 변호사가 썼다. 내용의 대부분은 법 해석과 판사의 자질, 재판 과정의 문제점, 문제 있는 재판의 결과 등이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이 같은 법원의 문제점은 하나씩 하나씩 쌓이고 있던 것이었다.

 


 

이 책은 ‘상식에 맞지 않는 법’과 싸우는 최정규 변호사가 부조리하고 비상식적인 법정을 향해 일침을 날리는 사회 고발서다. 불의를 보면 물불 가리지 않고 싸움을 거는 탓에 검경 블랙리스트에 오른 저자는 이번엔 누구도 쉽게 건드릴 수 없었던 대한민국의 마지막 특권, 재판부에 거침없이 반기를 든다. 입 꾹 닫은 법조계를 대신해 사법부의 부끄러운 민낯을 낱낱이 드러내고, 악한 법과 불량한 판결에 함께 맞서는 법을 소개한다.

저자는 2014년 신안군 염전 노예 사건을 비롯해 자신이 지나온 부당한 사건을 예로 들며 법정의 뒷모습을 생생히 포착해 이 책에서 부각시켰고, 오늘도 국민의 공분을 일으킨 불공정하고 불량한 판결을 향해 “그 판결은 유죄”라고 당당히 외친다. 기득권의 논리로 가득한 판례 대신 상식에 부합하는 법 해석을 기대하며, ‘진짜 공정과 정의’란 무엇인지 심도 있는 질문을 던진다. 저자와 함께 책 속으로 한걸음 들어가본다.

 


 

법은 국회에서만 만들어질까? 우리는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나쁜 법의 책임을 입법기관에 물으면 될까? 신안군 염전 노예 사건, 저유소 풍등 화재 사건 등 사회적 약자의 공익을 위해 ‘상식에 맞지 않는 법’과 싸워온 최정규 변호사는 “좋은 법도 나쁜 법도 국회가 아닌 법원의 해석을 통해 재생산될 수 있다”고 말하며 악법(惡法)의 책임을 법 해석의 주체인 판사와 법정에게 묻는다.

저자가 변호사로서 풀어놓는 법정의 생생한 뒷모습을 읽다 보면, 대한민국 사법기관이 왜 불신의 아이콘이 되었는지가 한눈에 보인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재판을 받을 일이 생겼다 치자. 기껏 시간을 내 법원에 방문해도 판사와의 약속 시간은 늦어지기 일쑤다. 판사가 짧은 시간에 많은 재판을 처리하겠다는 무리한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어떤 판사는 한 시간 10분 동안 무려 40여 건이 넘는 재판을 처리하겠다고 일정을 짰다. 한 재판당 2분 안에 끝내겠다는 말이었다.

책에 따르면 이유도 알려주지 않은 채 공판 기일이 변경되기도 한다. 선고를 받기까지가 아니라 재판이 열리기까지 1년이 넘게 소요되는 일은 허다하다. 누군가에게는 전 재산보다 큰 2,500만 원이 법정에 가면 ‘소액사건’으로 치부되고, 그 때문에 판결의 이유가 생략되기도 한다. 어떤 판사는 재판 전에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소송 결과를 예단하는 듯한 말을 하고, 또 어떤 판사는 긴장해서 답변을 하지 못하는 피고인에게 “귀가 안 들리시나?”라는 모욕적인 발언을 한다.

법원이 이처럼 무례하고 비상식인 모습으로 일관한다면, 과연 법이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 저자는 대한민국 법 시스템의 근본적인 문제를 파고들며 부조리하고 불공정한 법정의 현주소를 공개하고, 사법개혁이 시급한 대한민국의 현실을 고발한다.

 


 

책은 계속해서 지적한다. 저자는 법원의 부조리한 재판과 판사의 직무유기에 가까운 '실패한 재판' 등의 사례를 많이 갖고 있다. 재판 현장에 있는 변호사기에 느낄 수 있는 사례들이다. 패소한 이유가 생략된 판결문, 이유 같지 않은 이유가 버젓이 기록된 판결문, 오타 판결문, 기존 판례를 기계처럼 복사 붙여넣기 하는 판결문…. 믿을 수 없지만 지금도 법정에서는 이런 불량 판결문이 꽤 자주 탄생하고 있다고 한다. 온갖 억울함과 부당함을 호소할 마지막 관문인 법원에서 계속해서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과연 우리의 사법부가 얼마나 신뢰 있는 기관으로 국민에게 인식될까? 국민의 신뢰 없는 법원이란 민주주의 사회에서 설 자리가 없는 것일 터. 신뢰할 회복한 데 배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더 이상 재판에 의한 억울한 피해자 없이 소외되고 약한 국민의 마지막 권리를 지켜줄 법원과 판사들에게 바라는 점이기도 하다.

저자에 따르면 변호사이자 활동가로서 수많은 ‘비상식적인’ 일을 겪어왔다. 그중 가장 화가 났을 때는 국민을 지켜야 할 국가가 불량한 판결을 내림으로써 오히려 국민에게 피해를 입혔을 때다. 한 예로 염전 노예 사건 재판부는 자신의 이름과 생년월일만 쓸 수 있는 지적장애인 명의의 조작된 처벌불원서를 제대로 검증도 하지 않고 인정해버려 가해자에게 유리한 양형 참작 사유를 만들어줬다. 또 10년 치 최저임금에 해당하는 8,000만 원을 공탁했다고 집행유예 선처를 내렸던 판결은 이후 비슷한 다른 사건에도 나쁜 영향을 미쳤다.

노동자 산재 사망 사건에서 내려지는 불량한 판결은 더 나쁜 영향력을 행사한다. 법원이 늘어놓는 솜방망이 양형이 사업주로 하여금 노동자의 안전을 위한 선택 대신 경제적 이득을 위한 선택을 하게 만든 것이다. 사업장에서 노동자가 사망해도 사업주는 집행유예 선처를 받을 수 있고 최대 1억 원만 배상해주면 되는 현실에서, 사업주가 더 경제적인 선택을 하는 걸 현재 법원의 태도로 막아낼 수 있을까?

 


 

저자는 판결은 기존 판례에 의지할 때가 많고, 따라서 한 번 잘못 내려진 판결은 오래도록 남아 많은 피해자를 양산한다고 강조한다. 법원의 현명한 법 해석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저자는 안일하고 관성에 젖은 태도로 판결을 내리는 법원의 행태를 경계한다. 그리고 판결에 ‘법관의 치열한 논증’을 담으라 말한다. 국민에게는 그런 예의 있는 판결을 받을 권리가 있다.

많은 법조인들이 법원의 눈치를 보기 급급할 때, 저자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법원의 불량한 서비스와 불량한 판결문에 눈감아선 안 된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야만 잘못된 행태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신념으로 그는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디딤돌 판결·걸림돌 판결 선정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판결문 모니터링을 통해 국민 감시 체계를 구축하고, 판결문이 공익적 가치를 다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아직 판결문이 공개되는 범위는 지극히 제한적인 탓에 법조인이 아닌 일반인들이 판결문 모니터링 작업을 하기는 쉽지 않다. 대신 저자는 어려운 법원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국민이 직접 할 수 있는 가장 쉽고 대표적인 대처방안으로 ‘재판 녹음·속기 신청’을 소개하고 있다. 이에 더해 불량 판결을 가장 현실적으로 A/S 받을 수 있는 3심제의 활용, 법관 임용에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제도 등 명품 판결을 이끌어내기 위한 여러 현실적인 경로를 모색한다.

매번 법정에 쓴소리를 하는 탓에 종종 “변호사 그만하고 싶어요?”라는 말을 듣지만, 그럼에도 저자는 이 투쟁을 멈추지 않는다. “우주상에 사람의 생명보다 더 귀중한 것을 있을 수 없다”고 말하는 판사, 시민을 존중하고 우러러보며 ‘존댓말 판결문’을 작성하는 판사가 우리 사회에 더 많아지기를, 이로써 법과 정의를 둘러싼 국민의 신뢰가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저자는 끊임없이 재판에 잘못을 묻는다.

 


 

사법부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곱지 않고 사법개혁을 외치는 목소리는 날로 높아지고 있지만, 지금까지 이렇게 법원의 부당하고 불합리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책은 없었다. 이 책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기득권의 논리로 가득한 판례에 기대는 대신 상식에 맞는 법을 위해 함께 투쟁하자는 것. 우리가 목소리를 높일 때 비로소 법원의 문턱은 낮아질 수 있다.

 

저자 : 최정규

 

권리는 저절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라는 믿음 아래 ‘상식에 맞지 않는 법’과 싸우는 변호사 겸 활동가. 공익 법무관, 대한법률구조공단 소속 변호사로 일하며 부당하고 불공정한 법 때문에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이에 국민을 대표해 나쁜 법과 불량한 판결에 이의를 제기하는 변호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2014년 신안군 염전에서 100여 명의 지적장애인을 상대로 행해졌던 노예 사건을 긴 싸움 끝에 승소로 이끌었지만, 평소에는 판례상 패소할 것이 뻔한 사건에 맞서는 게 일상이다. 기득권의 논리로 가득한, 틀에 박힌 판례를 거부한다.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국경 없는 마을’ 안산 원곡동에 2012년 원곡법률사무소를 연 것을 시작으로 이주민, 장애인, 국가 폭력 피해자, 공익제보자 등 사회적 약자의 기본권과 공익을 위해 변호사로서 눈치 보지 않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2015년 한국장애인인권상, 2017년 사랑샘재단 제2회 청년변호사상, 2020년 참여연대 공익제보자상, 제1회 홍남순변호사 인권상, 제1회 MBN 공익변호사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사)경기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소장, SBS 〈인-잇〉 필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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